〈 152화 〉 묵힌 원한 1
* * *
어둠이 내려앉은 산.
사람의 손길이 잘 미치지 않는 이곳은 짐승의 영역이었다.
주행성인 짐승과 자리를 교대하듯 야행성 짐승들이 하나 둘 밤눈을 밝히며 영역을 되찾아갔다.
그런데 짐승들은 돌연 꽁지가 빠지게 그 자리에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영역이었던 산 속에 낯선 짐승 다섯 마리가 침범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짐승이되 짐승이 아니었다.
동물적인 감각으로만 느낄 수 있는 그 강렬한 존재감에 산짐승들이 벌벌 떨며 자신이 그들의 포식 대상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낯선 짐승들은 산짐승 따윈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산에서 나고자란 짐승들보다 더 빠르고 무시무시무한 기세로 산길을 가로지를 뿐이었다.
“어느 쪽이야!?”
“이쪽이야! 서둘러!”
도시를 벗어나는 산길.
그곳을 수어 명의 인영이 내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레반, 레테라, 하티……. 그리고 반쯤 강제로 함께 하게 됐지만, 이쯤 되면 끝까지 한 번 가보자며 뒤따르는 지그문트와 진혜가 있었다.
지금 그들이 달리는 산길은 신요현 일행이 있는 산길 인근의 숲이었다.
연락을 받았던 당시 그들이 있었던 오서연의 주거지는 무재시.
신요현 일행이 있는 성월시와는 한참 떨어져 있다는 걸 생각하면 지나칠 정도로 신속하게 도착했다.
거기에서 도움을 준 게 진혜였다.
신요현과 동맹을 맺게 되면서 원활한 교류를 위해 성월시 근처에 ‘헤븐즈 게이트’ 서클을 설치해둔 것이 지금 빛을 발했다.
덕분에 이동시간을 크게 단축시켰다.
나머진 그들이 있는 장소까지 달리는 것이다.
도중에 산간 도로를 달리는 트럭을 한 번 칠 뻔하긴 했지만, 주인들의 안위가 전부인 그들에겐 안중에도 없는 일이었다.
사실 비상사태가 아닌 평상시였어도 신경 쓰지 않는 건 똑같았을 것이다.
다치는 건 그들이 아니라 트럭 쪽일 테니까.
우르르릉……!
“……?”
“뭐지?”
그렇게 달려오는 트럭조차 무시해버리던 캐릭터들이 그 소리엔 반응을 보였다.
구름이 거의 없는 하늘에서 울리는 천둥소리가 신기한 건 맞지만, 그들이 반응한 건 다른 이유였다.
이 멀리서 들려오는 뇌명 하나에 심상치 않은 무거움이 서려 있었다.
그건 강력한 보스 몬스터를 대면했을 위압감과 비슷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그들은 달리는 발에 더욱 힘을 주었다.
쿠과과아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그들은 목격하였다.
청명한 밤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리꽂히는 눈부신 황금색 번개를.
그들이 목표로 나아가던 방향에 정확히 내리 꽂힌 그것은 황금빛 파장을 사방으로 뿜어내며 산 전체를 뒤흔들었다.
“저건 또 뭐야!?”
“오라버니!!”
“주인님! 제발 무사하세요!”
산전수전 다 겪은 자신들도 한순간 오한을 느낄 정도의 벼락을 목격한 캐릭터들을 거의 패닉에 빠지다시피 하며 전력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 그들 뒤로 진혜와 지그문트가 뒤따른다.
벼락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조금 긴장한 표정을 짓던 진혜는 옆에서 달리는 지그문트의 표정이 묘하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왜 그래요?”
“아니, 그냥…….”
벼락이 떨어졌던 하늘을 바라보던 지그문트는 의문스럽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저 번개,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세상을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것 같았던 벼락.
그는 그것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박일봉과 함께 하던 시기는 아니다.
그보다 이전, 박일봉의 손자를 부모이자 주인으로 두었을 시기.
그때는 한참 레벨 업에 몰두하면서 고레벨의 사냥터를 자주 다녔었다.
그러다 딱 한 번, 하늘에서 저런 번개가 터지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비룡을 타고 하늘을 누비면서 자신을 향한 도전자에게 벼락을 내리꽂는, 한 때는 신이었던 존재.
“……파천뇌황?”
번개의 정체를 깨달은 지그문트가 표정을 굳혔다.
***
가히 신의 창이라 칭함에 부족함이 없는 벼락이었다.
난데없는 물난리로 토석류가 일어나던 인근지대 전부 벼락에 열기에 수분이 증발되었다.
진흙이 도자기처럼 딱딱하게 굳은 것으로 모자라 표면이 뻘겋게 녹아내려 용암처럼 흐르는 것이다.
“하, 하하핫!”
벼락이 떨어지기 직전, 파니야가 친 보호막 안에서 석오태는 웃음을 흘렀다.
엄청난 위력이었다.
게임 내에서도 몇 번 사용하긴 했지만, 역시 모니터 속 세상으로 접하는 것과 실제로 그 위력을 접하는 것은 전해지는 감각부터가 달랐다.
황금빛 섬광하며, 보호막을 쳤음에도 전해지는 열기, 대지에 꽂힐 때의 충격과 흔들림까지.
전율이라고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잔뜩 흥분한 듯 동공이 팽창한 석오태의 눈동자가 그레토의 손에 쥐어진 무기의 모습을 담았다.
파지직…….
조금 전 떨어진 벼락과 같은 색의 스파크가 1.2m가량의 검신을 타고 흐르다 사라진다.
별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1.5m 크기의 양손검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압력을 느낄 것 같은 기이한 기운에 감싸여 있었고, 크로스 가드에 양각된 드래곤의 모습은 그 압력이 신성함보다는 파멸적인 기운에 가깝게 느끼게 했다.
“과연, 파천뇌황의 일격을 재현하는 무기라니……. 정말 신의 힘이라도 휘두르는 기분이군.”
벼락도 벼락이지만 가장 그를 고양시키는 건 그것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감히 자신을 우습게 본 녀석들이 드디어 땅 위에 엎드리는 모습이 되었다.
지금부터 일어날 일을 알고 미리 보호막을 사용할 준비를 하던 파니야와 달리 저쪽 마법사, 스콜의 대응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급하게 보호막을 펼치긴 했지만 신요현과 연성화를 보호하는 것으로 한계.
자신과 레아를 보호할 것까진 만들지 못하고 대지에 꽂히는 벼락을 직격으로 맞고 말았다.
심지어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플레이어를 완벽하게 보호하진 못했다.
급하게 만들어낸 보호막으론 내구성에도 한계가 있는 법.
반투명한 막 중 일부에 금이 가며 벼락 충격을 미약하게 남아 놓치고만 모양이다.
보호막 안에 있던 신요현과 연성화마저 의식을 잃은 듯 쓰러져 있다. 혹은 어딘가를 잘못 막고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하핫!! 하하하하하!!”
어쩌면 첫 살인이 되었을지도 모를 순간에 석오태는 웃었다.
사람이라면 보통 같은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불쾌감과 거부감을 느끼기 마련이건만, 윤리와 사회적 약속이라는 마지노선을 넘었을 때 그가 느낀 건 답답함을 벗어던진 해방감이었다.
사람을 죽였다는 충격 따윈 없었다.
거슬리는 놈들을 드디어 없앴다라는 후련함이 그가 느끼는 전부였다.
사람에게 천성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다면, 그는 이렇게 남의 것을 빼앗는데 특화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게 물건이 됐든, 목숨이 됐든 말이다.
“……어디서 난 거냐?”
“응?”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에 석오태는 웃음을 멈췄다.
죽었을 거라 생각했던 신요현이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보였다.
생명력이 질긴 건지, 아니면 보호막이 제 역할을 확실하게 해냈던 건지 모르겠지만 아직 살아 있었다.
“그거, 어디서 난 거냐고 물었다.”
신요현은 그레토가 쥔 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석오태는 비릿한 미소와 함께 그를 내려다보았다.
“놀랐나? 이건 그 유명한 파천뇌황의 힘을 가진 검이다! 네놈들 따위야 구경도 못해봤겠지!”
“어떻게 구했냐고 묻는 거다, 띨빡이 새끼야.”
“띨빡……!?”
모욕적인 단어에 석오태가 표정을 구기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돌아보았다.
벼락이 직접적으로 꽂히는 범위 내에 있던 레아가 머리를 털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온몸이 전류에 그을렸고, 대미지를 입은 듯 휘청거리기까지 했지만, 눈빛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까지 봐온 것 중 가장 강렬한 빛을 띄고 있었다.
부상을 입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사나운 기세에 울컥하고 반응하려던 석오태의 입이 굳어졌고, 주위에 있던 두 캐릭터가 반사적으로 경계 자세를 취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신요현이 다시 물었다.
“신공 에이드멀이냐?”
“뭐야, 그걸 어떻게……?”
그 말이면 충분했다.
신요현은 깊은 한숨을 쉬었고, 레아는 머리를 손으로 덮으며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군. 역시 그랬어……. 그리고 저 멍청한 놈은 우리가 누군지 전혀 짐작도 안 가는 모양인데…….”
거기까지 말을 이어가던 레아가 신요현을 돌아보았다.
아무리 맞은 놈은 기억해도 때린 놈은 기억 못한다지만, 저렇게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는 듯 얼빵한 표정을 짓는 석오태의 모습을 보니 속이 뒤집혔다.
“야, 아버지. 저놈 진짜 죽여 버리면 안 돼?”
“죽이지 마.”
이번에도 신요현은 허락하지 않았다.
저딴 개새끼라도 감정에 치우쳐 행동하지 말라는 걸까.
요현의 말이라면 따르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만을 억누르기 힘든 레아가 표정을 찡그릴 때였다.
그녀보다 더 흉흉한 표정으로 고개를 든 신요현이 말했다.
“……내가 쳐죽일 테니까.”
“아, 그럼 인정.”
그냥 자기 사냥감을 빼앗기기 싫은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놈만큼은 족치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그 분노할 얼굴에서부터 드러냈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때, 신요현의 옆에 쓰러져 있던 연성화도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신요현도 그러했지만 연성화 또한 벼락의 충격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하지만 그런 몸상태도 그녀의 분노를 막을 수 없었다.
“‘우리’가 쳐죽인다, 겠지.”
“저놈의 팔다리 잘라낸 뒤에 대령하면 되겠습니까?”
그리고 연성화에 앞에서 스콜 또한 전투 의지가 충만한 상태로 몸을 일으켰다.
파천뇌황의 번개를 정통으로 맞고 나가떨어지거나, 혹은 전희가 꺾일 거라 생각했던 석오태는 오히려 불 난 데 기름 부은 듯이 투지를 불태우는 그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뭐, 뭐야? 이것들 왜 이래?”
“모르겠냐? 그럼 깨달을 때까지 두들겨 패주마.”
우드득. 우드득.
신요현은 주먹을 풀며 석오태를 향해 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평범한 인간인 주제에 캐릭터들의 격전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을 가로지르며 석오태에게 다가가려 하는 것이다.
같은 인간인 연성화는 말리기커녕 나도 같이 때릴 거라는 듯 팔을 휘적거리며 어깨를 풀었다.
그리고 그들의 양옆으로 주인이 가시는 길을 깨끗이 치워버리겠다는 듯 레아와 스콜이 나섰다.
“저것들이 단체로 돌았나! 그레토! 죽는 게 소원인 거 같은데, 소원대로 해줘!”
“네!”
파지지지직!!!
우르르르릉!!!
그레토가 검을 들어 올리자 황금색 스파크가 검신을 감쌌다.
그리고 거기에 호응하듯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 천둥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대상 지정. ‘황동 거인 도끼창’.”
동시에 신요현이 시동어를 내뱉었다.
레아가 쥔 할버트가 빛에 감싸인다.
“웨폰 체인지, ‘뇌룡의 대형방패’.”
쿠과과아아아아아아아앙!!!!!!
또 다시 지상의 적들을 섬멸하기 위해 신의 힘을 재현한 창이 내려 꽂힌다.
그러나 그것이 신요현 일행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콰가가가가가가각!!!!
그들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지던 벼락은, 거대한 벽을 만난 강줄기처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꺾였다.
애먼 곳으로 튄 번개가 산등성이 까맣게 불태운다.
“……어?”
멍청한 소리가 울렸다.
신의 번개가 저렇게 어이없이 꺾이는 광경 따윈 전혀 예상치 못한 듯 그의 눈이 휘둥글 해졌다.
석오태의 시선이 거대한 방패를 머리 위로 세우고 있는 레아를 향했다.
보기만 해도 느낄 수 있는 바위 같은 무게감과 일반적인 방패라고 할 수 없는 거친 형태.
번개를 튕겨 낸 건 저것이었다.
“파천뇌황을 잡을 땐 번개 대책은 필수지. 그래서 잡았어. 사대룡과는 다르지만 명백하고 ‘용’으로 분류되는 센 놈 한 명을.”
뇌룡의 대형방패 등급: 전설 분류: 대형방패
방어력: 600
내구도: 300/300
필요 스탯: 근력40 기량35
특수효과: 뇌전계 공격에 대한 방어 성능 업
「뇌룡을 토벌한 드래곤 슬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전설의 드래곤 웨폰. 뇌룡의 뼈와 가죽으로 만든 방패는 지금도 살아있는 그대로의 힘을 품고 있다. 그 힘은 자신을 쓰러뜨린 숙적을 인정한 뇌룡의 의지이리라.」
석오태가 저지른 결정적인 실수가 있다면 바로 이것일 거다.
파천뇌황과 싸워온 당사자들을 상대로 파천뇌황의 힘으로 덤비는 이 어리석은 행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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