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 묵힌 원한 2
* * *
석오태는 처음 검을 얻었을 땐 뛸 듯이 기뻤다.
자신이 발견한 이상한 ‘버그’ 하나.
왜 이런 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석오태는 그것을 그저 버그로 생각하고 이용해먹었다.
그렇게 해서 남의 길드의 물건을 훔치게 되었는데, 그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대박 아이템이었다.
바로 팔아도 되겠지만, 이런 걸 함부로 세상에 드러냈다간 원주인들의 표적이 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석오태는 이것을 자신만이 몰래 사용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아이템이 요구하는 필요 수치를 맞출 필요가 있었다.
과연 전설을 넘어 신화 속에서 전해질 아이템인 만큼 요구 수치도 굉장했다.
석오태는 그 요구 수치를 맞추기 위해 몇 년 간 다양한 수단을 연구했고, 결국 최근이 되어서야 그것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제 자신의 캐릭터는 그 무기를 마음껏 휘두를 수 있다.
최강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뭐, 뭐야, 저거?”
절대적일 줄 알았던 파천뇌황의 번개가 어이없게 불발되고 말았다.
바로 레아, 드래곤에게서 뜯어내 온 것 같은 대형방패를 휘두르는 저 캐릭터에 의해서 말이다.
“대체 뭔……!!”
타아아앙!!!
석오태의 비명 같은 외침이 퍼지기도 전에 레아가 방패를 앞세운 채 달려들었다.
그레토가 거기에 대응하여 번개를 감싼 검을 휘둘렀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도 강력했지만, 검 그 자체에서 뿜어지는 번개의 양도 만만치 않았다.
세상을 뒤덮어 버릴 듯 뿜어지는 번개의 흐름에 마중을 나오는 건 레아의 방패가 아니라 반대편 손이었다.
아무것도 쥐어져 있지 않은 그 손에 신요현의 목소리와 함께 무언가 쥐어졌다.
“‘뇌룡의 대형도끼’ 소환.”
콰가가가가각!!!!
번개의 격류가 단 일격으로 쪼개진다.
왼손에 방패와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듯한 거대도끼였다.
뇌룡의 대형도끼 등급: 전설 분류: 도끼공격력: 560내구도: 250/250필요 스탯: 근력40 기량35특수 효과: 공격 시 뇌격 효과「뇌룡을 토벌한 드래곤 슬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전설의 드래곤 웨폰. 뇌룡의 이빨과 발톱으로 만든 도끼는 지금도 살아있는 그대로의 힘을 품고 있다. 그 힘은 자신을 쓰러뜨린 숙적을 인정한 뇌룡의 의지이리라.」
도끼에서 뿜어진 것은 그레토 검에서 뿜어진 황금색 번개와는 다른, 짙은 주홍색 번개였다.
서로 다른 성질의 것을 밀어내듯, 양쪽에서 뿜어진 번개는 서로 반발하며 상대의 번개를 밀어내었다.
“……!!”
콰아아아아아앙!!!
그레토가 거기에 놀랄 세도 없이 전차처럼 돌격해온 방패면이 그의 몸을 후려치며 날려버렸다.
마치 갑자기 달려온 트럭 하나에 치여 버린 인간 같았다.
레아는 날아가는 그레토를 뒤쫓으며 말했다.
“파천뇌황의 번개가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돼? 오리지널의 번개는 진짜 대지를 꿰뚫고 하늘마저 무너뜨릴 정도였어.”
“크으윽!!”
날아가던 그레토는 바로 자세를 잡으려 하였다.
그런 그레토의 측면으로 푸른 무언가가 날아와 목을 베려 하였다.
“……!!”
파지지지직!!!
하지만 늦지 않게 검으로부터 번개를 뿜어낼 수 있었다.
완벽하게 카운터를 먹이고도 남을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번개가 뿜어질 것을 그레토보다 먼저 인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바로 방향을 꺾어 물러났다.
푸른빛은 그레토의 목을 베진 못했지만, 대신 그의 어깨 죽지를 일부 베어내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검!?’
상처의 감촉으로 푸른빛의 정체를 알아본 그레토가 상대를 바라보았다.
번개가 퍼지는 영역 밖까지 물러난 스콜이 한쪽 팔을 털고 있었다.
그 손엔 고목에서 꺾어온 것 같은 낡은 나뭇가지가 쥐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곳에 마나를 모으자 길고 커다란 푸른빛의 검 하나가 생성되었다.
“마법사가 원거리 공격만 생각하지 말라고.”
플레이어인 연성화가 원거리 공격을 즐길 뿐인지 접근전도 충분히 가능했다.
상황에 따라선 그게 나을 수 있었는데, 지금 상황이 그러했다.
콰과과과과아아아아아아앙!!!
지금 스콜이 상대하는 건 그레토만이 아니다.
그의 주위를 부유하는 파이어 애로우가 쏘아지며 파니야의 공격과 공중에서 어지럽게 얽혔다.
“크윽…!!”
하지만 파니야가 몇 개 불화살을 맞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물러나는 것에 비해 그녀가 날린 마법은 스콜에게서 한참 빗겨나간 장소에 떨어지고 있었다.
그레토가 쥔 검.
강력하긴 하지만 협동 플레이에 오히려 좋지 않았다.
벼락이 시야를 가려서 저쪽 파트너와의 연계가 틀어지고 있다.
만약 사전에 번개를 다루며 연계하는 법을 익혔다면 얘기는 달랐을 테지만, 그렇지 못한 지금으로선 오히려 파고들수록 허점이 들어날 수밖에 없는 약점이 되었다.
상대가 강력한 무기를 꺼내들었지만 스콜로선 오히려 지금이 더 편했다.
그레토와 파니야를 동시에 견제하며 신요현과 연성화를 지키는 멀티 플레이가 가능할 정도로.
“우리의 주인들이 묵힌 원한 해결하러 가야 하거든?”
“방해하지 말고 비켜라.”
“크아아아아아!!!”
콰지지지지지직!!!!
레아와 스콜의 말에 그레토는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검과 함께 번개를 휘둘렀다.
하지만 레아는 단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고, 오히려 번개의 흐름을 거스르며 그레토에 게 달려들었다.
스콜은 부유 마법으로 몸을 공중에 띄우며 마법을 영창 했다.
실드마법으로 신요현과 연성화에게 닿을만한 번개를 막고, 나머지 마력으로는 요격하는 데 썼다.
목표는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번개가 다가오자 막 피하려 하는 파니야였다.
“……!!”
서둘러 방어 마법을 시전하며 날아오는 마법을 막아냈지만, 밀려나는 몸까진 막을 수 없었다.
어서 빨리 석오태에게 다가가 그를 지키려는 파니야의 바람과 달리 그녀의 몸은 어쩔 수 없이 점차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주인이 위험에 노출된다는 생각은 파니야를 위험을 감수하도록 만들었다.
쏟아지는 마법 공격이나 번개를 맞게 되겠지만, 석오태를 사수할 수만 있다면 값싼 대가였다.
그렇기에 마법을 날려 최대한 길을 넓히고 그곳을 향해 뛰어들려 하였다.
후욱!!
“……!!”
그런 파니야를 푸른색 마력검이 막아선다.
분명 그레토와 대치하면서 원거리 요격을 하고 있었을 터인 스콜이었다.
어떻게 그가 순식간에 파니야의 눈앞으로 온 것일까? 텔레포트와 같은 공간 이동 마법에 의한 마나 진동은 감지되지 않나는데도 말이다.
사실은 스콜 또한 파니야를 막기 위해 다소의 위험을 감수했다.
보호막을 한 겹만 두르고 뿜어지는 번개를 맞은 것이다.
완벽하게 막은 건 아니라서 살짝 몸이 저리긴 하지만, 석오태와 접촉하려는 파니야를 막는데 성공했다.
스콜이 마력검을 들고 길을 막자 그의 뒤편으로 두 명의 그림자가 지나간다.
그들이 노리는 목표는 석오태였다.
그 사실에 파니야는 거의 이성을 잃을 듯 흥분했다.
“비켜!!”
“자기 아쉬울 때만 보내달라는 거냐? 거절한다!”
이미 플레이어가 위기에 빠졌을 때 파니야의 방해로 구하러가지 못한 전적이 있는 스콜은 그대로 갚아주겠다는 듯 각종 공격 마법과 함께 마력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발광하듯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한 파니야와 맞부딪친다.
콰과과과과아아아아앙!!!!
사방에서 폭음이 터지고 나무와 땅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충격이 일어난다.
그런 전쟁의 한복판 같은 곳에서 두 명의 인영이 똑바로 달려 나간다.
신요현과 연성화였다.
눈먼 공격 하나라도 맞는 순간 세상 하직 할 테지만, 캐릭터를 믿는 건지 아니면 분노로 눈깔이 돌아간 건지 그들은 거침없이 앞으로 내달렸다.
반면 석오태는 그 자리에서 굳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신요현과 연성화가 뻔히 접근해 오고 있는 순간에도 말이다.
사방에서 날아오고 터지는 공격이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자신을 덮칠 것 같았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건 눈앞에 현실을 부정하는 것뿐이었다.
“젠장! 젠장! 젠장! 이럴 순 없어!!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모든 게 자신에게 유일하게 돌아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뭔가 하나둘 씩 틀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이 상태다.
결국 비장의 카드라 할 수 있는 무기마저 꺼냈는데도 변하는 건 없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레토가 쥔 무기는 틀림없이 최강의 검이라고 할 만큼 강력하다.
위력 자체도 세고, 범위도 넓으며, 번개가 뿜어지는 속도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웬만한 상대라면 저 번개 앞에 갈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둘은 그렇지 않았다.
사방에서 휘몰아치고 떨어지는 번개를 모두 막거나 피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는 보지도 않고 피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그들이 초인이라고 해도 번개의 속도에 반응하긴 힘들다.
그러나 현실은 이렇게 버젓이 피하고 있다.
레아는 아예 방패라는 벽으로 그레토를 짓눌러 죽여 버릴 듯 압박하고, 스콜은 그것을 보조하는 한편, 두 플레이어를 보호하고 파니야의 마법을 견제하는 멀티 플레이를 당연한 듯 시행하고 있다.
눈앞의 현실을 인정하기 힘든 석오태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외쳤다.
“씨팔!! 파천뇌황의 힘이라고!! 토벌 난이도로 따지만 사대룡에 다음이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의 강력한 힘이란 말이야!! 그런데 어떻게!?”
그 의문에 답해주는 건 그를 향해 맹렬히 달려오는 신요현과 연성화였다.
“우리가 그 새끼를 한두 번 잡아본 줄 알아?!”
“그 검 하나 만들겠다고 그놈의 갑옷을 부수고 뽑아낸 게 도합 200번이야!!”
파천뇌황을 잡아보았다고?
검을 만들었다고?
그 소리를 들은 석오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고 보니 이 구도, 낯설지 않았다.
방패를 가진 주제에 지킨다기 보단 오히려 초공격적인 전투로 적들을 쓸어버리는 탱커.
마법을 사용하는 주제에 원, 중, 근거리를 가리지 않고 누비며 각종 마법을 난사하는 딜러.
석오태는 이러한 캐릭터들을 알고 있다.
SoR에서 한때 이름을 날리던 풍운아들을.
“서, 설마 너희들, ‘울프’ 길드!?”
오랫동안 보이지 않아 해체하고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라고?
그놈들의 캐릭터들이 현실에 나타났다고!?
멸신검의 원주인들이!?
퍼어어엉!!
뒤쪽에서 터지는 폭발의 충격을 오히려 부스터로 삼으며 날아든 신요현은 주먹을 내지르며 답했다.
“정답이다, 좀도둑 새꺄!!!”
빠아아악!!!
석오태도 잊어버렸던 수년간의 원한을 실은 주먹이 그의 얼굴에 작렬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