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 묵힌 원한 3
* * *
현실과 픽션의 차이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걸 꼽으라고 하면 역시 체감되는 감각의 유무일 것이다.
게임에서 몇 번이나 캐릭터가 찢겨죽더라도 현실의 플레이어에게 충격이 갈 리가 없었다.
그저 진 것에 분해하며 다음 플레이를 준비할 뿐이다.
통증의 부재는 감정을 둔감하게 만든다.
석오태의 경우는 게임 속에서만 통용되던 감각이 현실로 끌려나온 경우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보다 더 간단하게, 그저 말 몇 마디만 하면 캐릭터들이 그것을 실현시켜 준다.
타인과의 관계에 무감각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석오태는 현실로 침범한 게임에 여전히 취해 있는 셈이었다.
그런 취기를 한 번에 날려버리는 방법은 간단했다.
충격 요법.
고장 난 TV는 때려서 고친다.
눈에 봬는 게 없었던 석오태의 정신을 현실로 강제로 끌고 나온 것은 신요현의 매서운 주먹이었다.
빠아아악!!!
“크억!?!”
체중까지 싣고 휘두른 주먹에 석오태의 고개가 돌아갔다.
입 안으로 피 맛이 퍼지고, 이빨은 뿌리째 흔들거리더니, 신체가 균형을 잃어 꼴사납게 땅바닥을 나뒹굴려 하였다.
덥썩!
그러나 뻗어오는 손 하나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연성화는 쓰러지려는 석오태의 팔을 붙잡아 그의 몸을 지탱했다.
석오태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넘어지는 걸 막아주었지만 도저히 석오태를 위해 붙잡아 준 것 같지 않았다.
지금도 차갑게 꽂히는 연성화의 시선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훼엑!!
“헉……?!”
연성화는 붙잡은 팔을 들쳐 매든 어깨에 걸쳤다.
당기는 힘에 딸려간 석오태는 그녀의 허리 튕김과 함께 공중으로 치솟았다.
깔끔할 정도로 군더더기 없는 업어치기였다.
쿠우웅!!
“쿨럭!!”
연성화의 체구는 작았기에 내다꽂히는 높이도 그리 높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낙법도 취하지 못한 채 땅바닥에 등부터 떨어지는 충격이 별 거 아닌 건 아니었다.
한 순간 호흡이 안 되는 걸 느낀 석오태가 겨우 숨을 몰아쉬었고, 아찔했던 충격은 곧 분노가 되었다.
“이, 이 개새끼ㄱ……!!”
“개새끼가 누구더라 개새끼래!!”
빠아아악!!
쓰러진 석오태의 머리로 신요현의 발길질이 작렬한다.
승부차기에 나선 축구 선수에게 걷어차인 공처럼 석오태의 머리가 붕 떴다.
“으아아아!!!”
석오태가 이성을 잃든 듯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달려들었지만, 신요현에겐 우습기만 했다.
캐릭터들처럼 스테이터스를 올려보겠다고 지옥 훈련을 견딘 게 며칠이다.
눈에 띄는 성과는 얻지 못했지만, 적어도 저런 눈먼 주먹에 맞아줄 만큼 설렁설렁 훈련 받지도 않았다.
터업!
석오태가 달려들며 주먹을 휘두르는 방향으로 신요현이 몸을 빼내었다.
그와 교차하면서 막 내질러지려 하는 팔에 자신의 팔로 갈고리를 걸 듯 교차했다.
신요현의 팔에 가로막힌 석오태가 한순간 멈춰 섰고, 그 타이밍을 정확히 노린 연성화의 날아 차기가 그의 복부에 작렬했다.
게임 속에서 호흡을 맞추던 게 현실에서도 영향을 주는 것일까.
절묘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콤비네이션이었다.
뻐억!!
“쿨럭!!”
복부를 차인 석오태가 뒤로 날아갔다.
분노로 달아올랐던 머리가 계속 이어지는 고통에 차게 식는다.
그리고 자신이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석오태는 억울한 표정으로 외쳤다.
“쿨럭, 쿨럭……!! 뭐, 뭐야!?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왜 이러냐고? 야, 이 양심 없는 새끼야. 네가 한 짓을 하나하나 되짚어봐. 다짜고짜 살수를 쓴 것으로 모자라 훔친 물건을 피해자 앞에서 당당히 내보이며 자랑하냐? 네가 진짜 사람 새끼냐?”
“후, 훔치다니!?”
“파천뇌황의 멸신검. 네가 우리에게서 훔쳐간 물건 말이야.”
신요현이 가리킨 뒤편에서부터 황금빛 번개가 터져 나왔다.
주인에 대한 위해에 분노한 그레토가 멸신검을 휘둘러 신요현 일행에게 번개를 날렸지만, 그런 분노의 일격조차 레아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방패에 가로막히고,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지는 벼락의 모습을 보며 석오태가 말하였다.
“저, 저건 내가 만든 아이템이야! 너희들 게 아니라고!”
되도 않는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모습이 뻔히 보여서 웃음도 안 나왔다.
“차라리 누군가에게 샀다는 소리가 안 나와서 다행이네.”
연성화가 중얼거린 말대로였다.
여기서 용의자가 더 늘어나면 그만큼 골치 아픈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석오태의 섣부른 거짓말은 용의 대상을 자신에게 한정시키고 있다는 걸 본인만 몰랐다.
그 거짓말조차 질문 몇 개만 있어도 손쉽게 깨부술 수 있었다.
“파천뇌황의 멸신검 제작에 필요한 퀘스트의 트리거는?”
“뭐, 뭐?”
“5초 준다. 5, 4, 3, 2, 1 ……땡.”
빠아악!!
카운트가 다 됨과 동시에 신요현이 녀석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석오태가 비명을 지르며 다시 넘어가고, 그를 향해 신요현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답은 하늘의 여왕과의 친밀도가 친애 이상일 때 ‘벼락 맞은 나뭇가지’를 선물하며 얻는 인연 퀘스트야. 그것을 에이드멀의 퀘스트와 같이 연계해야 겨우 파천뇌황에 대한 언급을 들을 수 있지.”
이번엔 연성화가 물었다.
“멸신검 재작을 위해 필요한 재료 아이템은?”
“화, ‘황금의 용린 갑옷 파편’!”
다급하게 석오태가 대답했지만, 좋은 결과는 얻지 못했다.
“틀렸어.”
빠아악!!
연성화가 냅다 집어던진 돌멩이가 석오태의 머리에 적중했다.
깨진 이마를 붙들고 데굴데굴 구르는 석오태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연성화가 말했다.
“황금의 용린 갑옷 파편은 단순한 파천뇌황의 기본 레이드 보수야. 멸신검 제작 퀘스트를 얻었을 때만 획득 가능한 아이템의 이름은 ‘잃어버린 신의 뼛조각’이고.”
“멸신검을 제작 시도할 때마다 소모되는 재료 아이템 개수는?”
“레이드에서 잃어버린 신의 뼛조각을 추가로 획득할 수 있는 조건은?”
“퀘스트 진행 중 하늘의 여왕과에서 대화에서 들을 수 있는 특수 대화에 대해 말해보던가.”
“아니면 처음 퀘스트를 얻고 대면하는 파천뇌황의 특수 대화 이벤트는 어때? 말할 수 있어?”
압박해온다.
폭력이나 욕설이 아니라, 석오태로는 감히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서서히 압박해오고 있음을 느낀다.
“우린 모두 말할 수 있어.”
“저 검 만들겠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 굳은살 박힐 정도로 돌아다닌 게 바로 우리였으니까.”
어째 석오태에게 살해당할 뻔한 것보다 아이템을 도둑맞은 사실에 더 분노한 듯 두 사람의 목소리는 점차 살벌해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석오태의 습격은 당장의 원한일지 몰라도, 그의 도둑질은 몇 년의 시간동안 묵힌 원한이었기 때문이다.
빠아악!!
“끄아악!!”
“말해봐, 새끼야. 멸신검은 어떻게 훔친 거냐? 그것만 알아내면 널 깔끔하게 족칠 수 있을 거 같아서 가능한 턱뼈를 안 부러뜨리고 있다고,”
퍼어억!!
“크억!?!”
“턱뼈 정도는 분질러버려도 되지 않을까? 손으로 글을 쓰게 하면 턱은 필요 없잖아.”
뻐억!! 퍽!
“아니지. 이놈이 말귀를 못 알아먹으면 손가락을 하나씩 부러뜨리는 용도로 써먹을 수 있어.”
퍼억! 퍼억! 빠아악!!
“오. 그거 괜찮네.”
두 사람은 일상적인 말투로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석오태를 두들겨 패는 행위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주변에 굴러다니는 나뭇가지를 주워 부러질 때까지 후려치거나, 캐릭터들의 싸움으로 튄 돌조각 하나를 주워 허리부근에 내리찍는다.
새에게 쪼아 먹히는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리며 방어할 수밖에 없던 석오태는 비명을 질렀다.
“씨, 씨팔! 그만 때려!! 부모에게도 맞은 적 없었는데!!”
“오냐. 어째서 네가 그렇게 개차반인지 이해했다. 너무 오냐오냐 해주는 부모는 차라리 없는 부모만 못하다는 거 모르냐? 이 애미애비 있는 새끼야?”
“하는 꼬라지 보면 별로 부모에게 효도할 타입은 아닌 거 같긴 한데……. 이딴 새끼가 내 자식이었다면 가정 폭력 신고로 출동한 경찰들과 멱살 잡고 1대 100으로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정신머리만큼은 고쳐놓았을 거야.”
어떻게든 반항하려 외쳐보았지만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꼴사납게 바닥을 엉금엉금 기며 그들의 폭력 세례에서 겨우 벗어난 석오태가 참아왔던 분노를 폭발시키며 외쳤다.
“크아아아악!!! 그레토!! 파니야!! 뭐하는 거야!! 빨리 와서 이놈들 죽여 버려!!”
그말에 석오태를 뒤쫓으며 한 대 걷어차려던 신요현은 동작을 멈추고 표정을 찌푸렸다.
“너도 참 죽이라는 말을 쉽게 내뱉는구나.”
“시팔! 힘이 있는 자가 힘 휘두르는 게 뭐가 나쁘다는 거냐! 어차피 세상은 약육강식이라고!”
다른 사람이 했다면 그럴 듯한 설득력을 가졌겠지만, 석오태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니 개가 짓는 소리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국가와 사회복지가 마련한 지극히 문명적인 삶을 살아온 녀석이 약육강식 논하는 꼬라지하곤.”
“그럼 네 눈으로 직접 보든가.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약육강식의 논리대로 흘러가면 어떻게 될지.”
“뭐……?”
연성화가 가리키는 방향을 돌아본 석오태의 얼굴은 곧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
벽이 다가온다.
너무나도 높고 견고한 벽이었다.
콰아아아아앙!!!
번개를 머금은 대검으로 후려쳤지만 벽에 흠집이 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밀려들어와 그레토를 압박했다.
레아가 휘두르는 건 뇌룡의 비늘로 만들었다는 방패.
그것이 신의 번개를 모조리 튕겨내고 있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번개 이전에, 레아의 모든 힘과 기술,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응용력까지 그레토를 압도하고 있었다.
방패가 본래의 목적을 수행함과 동시에 한편으론 둔기로 변한 것처럼 그레토를 가격해온다.
그것을 막기 위해 대검을 맞대면, 측면으로 그의 허리를 두 동강내기 위해 거대한 도끼가 파고들어왔다.
그렇다고 도끼를 막았다간 거대한 방패가 기가 타이밍에 밀어닥쳐 그레토를 날려버린다.
신의 힘을 담은 대검을 휘두르고 있음에도, 그저 번개에 내성을 가진 방패를 쥐었을 뿐인 상대를 돌파할 수 없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레토는 시종일관 밀리고 있었다.
멸신검을 사용할 조건을 맞추기 위해 오랜시간을 스탯 조정이 힘을 쏟았건만, 그러한 노력은 레아의 앞에서 빛을 발하지 못했다.
“허억!! 허억!!”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이런 강자와 싸우는 경우가 없었으니까.
SoR시절 석오태는 불리한 싸움 따윈 하지 않았다.
철저히 준비된 상태에서, 자기보다 상대가 약할 경우에만 싸움에 나선다.
강자와 싸우는 건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게임을 하는 석오태에게, 패배하더라도 끊임없이 도전한다는 말따윈 절대 성미에 맞는 게 아니었다.
그레토는 그런 석오태의 플레이를 따랐다.
언제나 유리한 조건에서만 싸우려 하였고, 약자를 밟아뭉갤 때의 우월감도 느낄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석오태의 플레이가 가지는 모순 탓일 것이다.
강해지는 이유라 함은 본래 이겨낼 수 없던 역경을 이겨내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석오태의 플레이 목적은 위험을 피하고 약자를 괴롭히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과시하는 것에 있었다.
강한 자의 앞에선 자신을 과시할 수 없다. 그러니 그런 자리는 최대한 피했다.
강해지기 위해서 역경을 피하는 모순.
성립할 수 없는 모순은 그레토의 성격을 석오태처럼 비겁하고 오만한 성격이 아닌, 그저 기계처럼 그의 말만을 따르는 성격으로 변모시켜 갔다.
그는 기계다.
어떠한 경우에도 석오태의 말을 따르고, 그의 신변을 보호하는 걸 우선시해야 한다.
승산이 보이지 않는 레아와의 싸움은 피해야 한다. 그간의 경험이 그랫다.
그리고, 그레토는 오히려 앞으로 나섰다.
석오태를 구하러 가는 그레토를 레아가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자신의 주인을 구하기 위해선 눈앞에 레아를 반드시 쓰러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이유도 있지만…… 그레토 안에 깊은 무언가가 앞으로 나설 것을 바랬다.
콰지지지지지지지직!!!!!
“……!”
양손으로 꽉 쥔 대검에서부터 뿜어지는 황금색 번개는, 지금까지 보인 모습 중 가장 크고 맹렬했다.
그레토가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 부어 승부에 나섰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엔 뇌룡의 방패로도 막기 힘들지 몰랐다.
저것을 막았다간 레아의 몸이 방패째로 저 멀리 날아가 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피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레아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한 듯 앞으로 나섰다.
콰과과과과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번개가 터지고 세상을 뒤덮는다.
뇌룡의 번개 따위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진정산 신의 번개였다.
아무리 대방패로 막는다고 해도 이번만큼은 피해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짐작하던 대로 레아는 번개를 막을 수 없었다.
막으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콰지지지지지지직!!!!!
“……?!”
폭주하는 황금의 격류 속에서 원반과 같은 물체가 거슬러 오르자 그레토는 경악했다.
레아는 방패로 번개를 막지 않았다.
오히려 옆으로 세워 번개의 격류 속에서 내지른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지켜야할 방패로 저런 짓을 했다간 레아의 몸은 무방비가 되고 만다.
실제로 레아의 몸은 곳곳이 번개에 그을려 심하게 타들어갔다.
그러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레아의 오른손에 있던 뇌룡의 도끼가 날면을 앞세우며 주홍색 번개를 뿜어냈다.
그것은 신의 번개에 비하면 턱없이 약하지만, 어느 정도 방패로서의 효용은 가능했다.
방패를 무기로, 무기를 방패로.
생각지도 못한 발상을 굳이 실행에 옮긴 이유는 무엇일까.
다 막지 못한 번개가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리스크를 감내하면서까지.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면적을 좁혀 번개의 격류를 거슬러오른 방패가 힘껏 아래로 내리쳐졌다.
그 방패 면 밑에 깔리는 건 다름 아닌 그레토가 사용하는 멸신검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멸심검이 바닥에 처박히자 그것이 뿜어대던 번개도 땅속으로 사라졌다.
기 죽지 않고 하늘로 치솟으려는 번개는 레아의 방패가 솥뚜껑처럼 덮어 강제로 억눌러버렸다.
그렇게 방패로 멸신검을 억누른 레아가 이번엔 자신의 몸을 지키는 데 사용한 거대 도끼를 무기로 전환시켰다.
그레토의 목을 노리며 횡으로 날아드는 도끼날.
멸신검을 회수할 수 없던 그레토는 왼팔을 들어 도끼를 막아갔다.
도끼에 실린 위력은 매섭다.
그레토의 왼손은 잃게 되겠지만, 도끼날이 목을 파고들 즈음부터 가까스로 멈출 수 있을 터였다.
우지직!!
예상대로 도끼날은 그레토의 왼팔을 갑주째 우그러뜨렸다. 그리고 기세가 크게 죽은 도끼날은 그레토의 목에 닿았지만, 그대로 절단 내기엔 힘이 모자랐다.
그레토는 모골 송연한 감각 속에서도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며 다음 공격을 준비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레토가 다음 공격으로 행동을 잇는 일은 찾아오지 않았다.
이미 그의 순간은 끝나 있었다.
바로 멸신검을 억누르던 방패가 그의 팔 위를 미끌어지듯 타고 올랐기 때문이다.
“……!!”
한쪽에는 목을 파고드는 도끼날.
반대쪽에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드는 방패의 모서리.
마치 가위처럼 양쪽에서 파고들어오는 예리한 날에 저항할 수단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콰득!!!
살을 파고들고 뼈를 끊어내는 짤막한 신체의 단말마.
그레토의 머리는 공중을 날았다.
육체만을 홀로 남겨둔 채.
절단면에서 뿜어지는 피.
힘없이 꺾이는 다리.
그리고 그러한 그레토의 몸 앞에서 양손에 무기를 휘드르며 피를 털어내는 레아의 모습.
그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으며, 그레토는 목 안에 남아 있던 공기로 겨우 말을 이어갔다.
“너…… 강하구나.”
“당연하지.”
당당한 레아의 말.
저런 강자가 되고 싶었다.
약한 자를 이겨서 우위를 점하는 강자가 아니라…… 당당하게 강자를 쓰러뜨리고 그 위로 오르는 강자가.
투욱! 데구르르르…….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그레토의 머리를 땅 위를 굴렀다.
석오태가 자랑하는 송곳니는 그렇게 뽑혀 사라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