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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59화 (159/173)

〈 159화 〉 마지막 퍼즐 한 조각 ­ 1

* * *

멸신검은 하나로 이루어진 대검이다.

어딘가 게임에 나오는 검처럼 둘로 쪼개지는 기믹 같은 것 없는 것이다. 쌍검으로 쪼갠 자의 목숨을 앗아간다는 설정도 없다.

그런데 율은 멸신검을 둘로 나눠버렸다.

처음부터 둘로 나눠진 게 설계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덕분에 대검의 형태였던 멸신검은 길이가 좀 길 뿐인 도(?)가 되어버렸고, 눈앞에서 멸신검을 훼손당한 나와 연성화의 멘탈도 반으로 쪼개졌다.

저거 만들겠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가질 거면 상대가 가지게 더 낫다고 생각했기에 서로 양보한 거지 이럴 거면 차라리 내가 가지는 게 나았다. 아마 연성화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힘 빠지듯 털썩 주저앉자 율은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산타가 준 준 선물 상자의 포장지를 누군가 눈앞에서 멋대로 찢어버린 어린아이 같은 표정 짓지 말라고~. 내 가슴이 미어지잖아.”

“이게 누구 때문인데!”

“가슴 속에 심장 대신 데드풀 면상이라도 박아 넣은 듯한 녀석이!”

“니들이 내 심장 봤어? 한 번 보여줘? 보고도 미치지 않을 자신 있으면 보여주고.”

뭣하면 지금 심장을 갈라주랴, 라고 묻듯이 율은 떼어낸 멸신검 중 하나로 자신의 가슴을 툭툭 두드렸다.

“어쨌거나 사이좋게 나눴으니 냉큼 받기나 해.”

그렇게 말한 율은 양손으로 휘돌리던 두 자루의 멸신검 파편을 우리에게 던졌다.

하지만 반으로 나눠졌다 한들 큼지막한 날붙이가 날아오는데 캐릭터들이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그것을 붙잡으려 레아와 스콜이 가장 빠르게 손을 뻗고 각자 멸신검 파편에 닿았다.

후욱.

““……?!””

분명 그들은 멸신검을 붙잡았다. 붙잡을 수밖에 없는 각도였다.

그런데 멸신검은 그들의 손을 허무하게 빠져나갔다.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결국 멸신검은 나와 연성화의 눈앞까지 날아왔고, 당황한 우리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덥썩.

붙잡았다.

레아와 스콜은 이해할 수 없는 괴기한 현상과 함께 빠져나갔으면서 나와 연성화엔 손에는 미리 짜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손잡이 부분이 쏘옥 들어왔다.

“이건…….”

“마법은 아니야. 기술이지.”

기이한 현상을 경험한 연성화가 놀라 중얼거리자 예전에도 들었던 것 같은 소리를 지껄이며 율이 실실 웃어대었다.

전에 율이 내 심장에 단검을 꽂아넣었으면서 아무런 대미지나 상처도 남지 않았던 그 정체불명의 기술인 것인 것일까.

“확인해보라고. 2년 만에 드디어 본래 주인에게 돌아온 아이템이잖아?”

“아이템 확인!”

“감정!”

시동어는 일정하지 않고 그 사람이 가장 강하게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말이면 된다는 법칙이 확실히 적용되는 모양이다.

나와 연성화가 내뱉는 시동어는 달랐지만 그것이 보여주는 광경은 같았다.

파천뇌황(???)의 멸신검(???) ­우(?)­ 등급: 신화 분류: 직검

공격력: 700 → 350

내구력: 500/500 → 250/250

필요 스탯: 근력40 기량40 신앙30 → 근력??? 기량??? 신앙???

특수 효과: 뇌황의 분노 사용 가능(봉인), 아이템 귀속

「파천뇌황은 스스로 검을 버렸다. 검에 담긴 죄악감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의 힘, 그의 기억을 담아 만든 레플리카다. 그러나 비록 모조품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모방하는 파천뇌황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형용할 수 없는 힘이 개입하여 검을 둘로 나누었다. 본래의 힘은 봉인되었고, 두 자루의 파편이 모이지 않는 이상 힘을 해방하는 건 불가능하다.」

처음엔 아이템 이름 옆에 붙은 신화라는 글자에 놀랐다.

제작할 당시부터 예상은 했다만, 정말로 신화급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템 설명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나와 연성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봉인!?”

“장난해!?”

기껏 되찾은 멸신검은 능력치가 반으로 뚝 떨어진 것으로 모자라 특수 능력까지 봉인되어 있었다.

귀하긴 하지만 쓸 수 없는, 그저 관상용 아이템으로 전락한 것이다.

율 이놈은 병 주고 약 주고가 기본 사항인가?

그를 노려보자 율은 무덤덤한 얼굴로 답하며 손가락을 X자로 교차했다.

“클레임 걸기 전에 일단 사용 설명은 끝까지 듣지 그래, 고객님들? 둘이 쥐고 있는 멸신검을 맞대 봐.”

“……?”

수상하긴 했지만 일단 그의 말대로 연성화와 서로가 쥔 멸신검을 맞대어 보았다.

그 순간 황금색 스파크가 튀었다.

파직! 파직! 파지지지지직!!!

“……!!”

“이건…….”

반으로 쪼개지며 빛과 위엄을 잃었던 멸신검에서 그 특유의 위압감과 눈부신 빛이 되돌아와 검신을 감쌌다.

파천뇌황을 상징하는 황금빛 번개.

그것이 검신을 타고 흐르지만 우리에겐 어떠한 영향도 있지 않았다.

마치 잠들어 있는, 혹은 죽어 있던 무기가 다시 되살아난 것 같았다.

“멸신검은 서로 맞닿아 있는 동안 일시적으로 그 본래의 힘이 깨어난다. 그리고 그걸 사용할 수 있는 건 너희 둘뿐이야.”

“뭐?”

“‘플레이어 전용’ 무기라고. 다른 무기와 달리 그건 문제없이 들고 있잖아?”

그러고 보니…….

캐릭터들은 그냥 쑥 통과하는 모습에 놀라 눈치 채는 게 늦었지만 멸신검도 일단은 저쪽 세상의 물건이다.

본래라면 쥐기는커녕 깔려 죽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무게가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맞닿아 있는 동안 특수기 ‘뇌황의 분노’를 사용할 수 있지. 본래는 마나를 소모해야 하는 기술이지만, 너희 같은 일반인에게 그럴 마나가 있을 리 없잖아? 마나를 끌어내는 순간 필요량의 10분의 1을 채우기도 전에 모든 에너지를 빨려 미라가 되겠지. 그렇기에 필요마나는 검 자체가 충전하고 사용한다. 한 번 기술을 사용하면 재사용까지 딱 1시간이 필요해.”

항상 장난치거나 터무니없는 상황에 처하게 만드는 율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제법 진지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이 녀석 나름대로의 ‘공평함’일까?

“뭐, 아무튼 사용해봐. 두 사람이어서 대상을 정하고 거기에 벼락을 내리꽂겠다는 생각으로 검을 휘둘러. 그럼 특수기가 발동되며 벼락이 떨어질 거야.”

나는 연성화를 바라보았다.

번개빛이 감도는 검 너머로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우리는 벼락을 떨어드릴 곳을 정할 수 있었다.

휘익!

대상을 정한 우리는 닿은 멸신검을 아래로 휘둘렀다.

멸신검이 서로 떨어지며 거기에 머물러 있던 황금빛 번개도 모습을 감춘다.

번개의 소실은 우리의 시도가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우르르르르릉!!!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서 위압적인 소리가 울렸다.

소리는 곧 번개의 형태를 띄웠고, 그것은 표적을 향해 빛과 함께 떨어졌다.

……번개가 떨어지는 장소엔 율이 서 있었다.

콰과과과과아아아아아앙!!!!!

캐릭터들이라도 직격당하면 멀쩡할 수 없는 벼락이 율을 집어삼켰다.

피어오르는 열기, 쩌적 갈라지는 대지.

그 여파만으로 우리는 몸을 비틀거렸고, 훅 불어닥치는 열기를 일곱 명의 캐릭터들은 입을 떡 벌린 상태로 바라보았다.

설마 번개를 꽂아도 저렇게 꽂을 거라곤 상상도 못한 모양이다.

어느덧 벼락의 여파가 사라졌다.

짙은 연기가 걷힌 자리에선 여느 때와 다름없는 율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것들이?”

율의 모습은 상처 하나 찾아볼 순 없었지만, 누구든 통수를 맞은 게 좋은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특히 장난을 좋아하는 녀석이라면 더더욱.

우리의 의도가 어디까지 먹혔는지 모르겠지만, 율은 발칙한 놈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웃는지 아닌지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안. 실수야, 실수. 처음 써보는 건데 실수 좀 할 수 있지.”

“설마 관대하신 GM께서 이 정도로 발끈하는 건 아니지?”

나와 연성화는 미리 짜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시치미를 뗐다.

그 모습이 어이가 없었는지, 오히려 코믹하게 다가왔는지 율은 ‘핫!’ 하며 웃음소리를 냈다.

“이런 뻔뻔한 놈들. 이때다 싶어 골려 먹이려는 모습이 내가 아는 누구랑 쏙 빼닮았네.”

“……? 누구?”

“알 필요 없어.”

율은 대충 얼버무리며 손을 저었다.

율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는 더 이상 이 화제를 이어가지 않았다.

“아무튼 그게 멸신검의 사용법이야. 둘이 함께 사용하는 거지. 반대로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그냥 좀 튼튼한 쇠막대기일 뿐이다만.”

“왜 이렇게 쓰기 번거롭게 만든 거지?”

“너희 둘끼리 소유권을 나눠 갖기로 한 거잖아? 케이크 커팅을 할 거면 신랑 신부가 같이 칼을 그어야지.”

“야 임마, 비유.”

아직 교복 입고 학교 다니는 녀석과 한 되 묶고 남이 들으면 위험한 소릴 지껄이는 율을 향해 따지듯 지적했다.

하지만 율은 뭐가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뭘 쑥스러워 하고 있어? 서로 짝꿍 됐다고 놀림 받는 초등학생도 아니고.”

“미성년자라고! 누구 감옥 가는 꼴 보고 싶어!?”

“미성년자는 자기 짝이 고를 권리 없나? 애초에 고3면 충분히 성인이지. 하여튼 이 나라는 이게 문제야. 남녀 간의 일을 너무 깐깐하게 바라본다니까. 조선시대 때까지만 해도 10대 중반 즈음에 결혼하는 일은 흔했는데.”

어째 실제로 본 것처럼 말한다?

아, 이놈이라면 실제로 보고도 남지.

“걱정 말라고. 신들의 도시에 있을 수 있는 허용 시간 1시간 중 절반을 하늘의 여왕 몸매 감상하는데 쏟는 호색한에게 연애 감정 따윈 안 들어.”

연성화는 이 쓸데없는 화제를 끝내고 싶은 마음에 한 말이겠지만, 남에겐 드러내고 싶지 않은 비밀을 마음대로 밝히는 그 행동엔 살짝 울컥했다.

그렇기에 때문에 내 입에선 절로 반격의 말이 튀어나왔다.

“나도 자기 캐릭터에게 몸에 딱 달라붙는 가죽 멜빵바지 하나만을 덜렁 입혀 놓는 취향의 여자에게 그런 마음은 안 들거든?”

그 말에 연성화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고, 스콜은 낯부끄러운 과거가 들통 난 사실에서 눈을 돌리듯 고개를 돌렸다.

“그때 얘기는 왜 꺼내!! 그건 그냥 스콜에게 맞는 장비를 찾고 있던 것뿐이라고!!”

“지랄! 그런 놈이 40분 동안 엉덩이 윤곽이 가장 잘 드러나는 포즈를 취하게 하냐!? 네가 남자인 줄 알았을 땐 게이인가 한동안 의심했었다고!!”

“그러는 너야 말로 레아 가슴의 자신의 욕망을 잔뜩 투영했잖아!!”

다른 이들의 시선이 레아의 볼륨감 있는 가슴에 집중된다.

레아는 부끄러운 듯 가슴을 팔로 감췄다.

“남자가 여자 가슴을 좋아하는 건 죄가 아니야!”

“그럼 여자가 남자 엉덩이에 호기심을 가지는 건 죄겠니!?”

“지금 너희들 꼬라지가 초딩들 말싸움보다 더 가관인 건 알고 있지?”

“넌 좀 닥치고 있어!!”

율을 입 다물게 만든 뒤 다시 연성화와의 설전을 이어갔다.

율은 이런 것엔 별 관심도 없고, 자기 할 일은 다 마쳤다는 듯 그 자리를 떠나려 하였다.

“그래. 그 유치한 사랑싸움은 나중에 크리스마스 때 둘이서 모텔에서 계속하도록 해. 난 간다. ……아 참, 깜빡할 뻔했네.”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걸음을 멈춘 율이 다시 이쪽을 돌아보았다.

주머니를 아무렇게 뒤적인 그는 웬 쪽지 하나를 꺼냈고, 그것을 곱게 접어 종이비행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나를 향해 날렸다.

“자, 받아라.”

“하앗!!”

종이비행기가 율의 손을 떠나자 대기하고 있던 레아와 스콜이 움직였다.

조금 전에 두 눈 뻔히 뚜고 날아오는 물건을 놓친 것에 대한 설욕전을 하겠다는 듯, 혹은 거기에 담긴 트릭이라도 알아내겠다는 듯.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레반, 레테라, 하티까지 합세하여 사방에서 종이비행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매서운 날갯짓과 함께 비행하는 맹금류도 갈갈이 찢어버릴 듯한 기세의 짐승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종이비행기를 붙잡지 못했다.

우당탕탕!!!

종이비행기는 캐릭터들의 손 따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통과해선 내 앞까지 날아왔다.

캐릭터들은 표적을 놓치고 서로 뒤엉킨 채 땅바닥을 구를 뿐이었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종이비행기를 받아내었다. 이번에도 나는 그것을 만질 수 있었다.

“뭔데, 이게?”

“마지막 퍼즐 한 조각.”

“……???”

율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더 설명을 요구하듯 그를 바라보았다.

“사건이 여기까지 진행된 와중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게 있잖아? ‘멸신검을 빼내온 방법’. 거기에 적혀 있어.”

“……!!”

“잠깐. 그건 석오태에게 들어오 될 텐데 왜 굳이 네가 알려주는 거지?”

연성화가 묻자 율은 오히려 황당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뭐야, 눈치 못 챘어?”

율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뭔가 했더니 지금까지 계속 쓰러져 있는 석오태에게였다.

“아까 나에게 떨어뜨린 벼락이 근처에 있던 저놈에게까지 닿았어. 죽지는 않았지만 신경계가 타버려서 평생 반신불수 확정이야. 이미 너희가 원하는 대답을 들을 만한 상태가 아닌데?”

““………….””

나와 연성화는 침묵했다.

확실히 쓰러진 석오태 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고기 탄 냄새가 전해지긴 했다.

물론 죽어도 싼 개자식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사람 인생을 길 가다가 실수로 돌 걷어찬 느낌으로 앗아가 버렸다는 사실엔 살짝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석오태에게 시선을 떼 다시 율을 돌아보았다.

그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볼 일은 다 마쳤다는 듯이.

결국 남겨진 이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정확히 내가 쥔 쪽지에 집중되었다.

나와 연성화의 갈등.

그 모든 사건의 시작이 된 멸신검 도난 사건.

나도, 연성화도, 캐릭터들이 힘을 합쳐도 결국 밝혀내지 못했던 트릭이 바로 여기에 적혀 있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쪽지를 펼칠 준비를 했다.

연성화가 내 옆으로, 다른 캐릭터들이 등 뒤로 모이며 쪽지가 펼쳐지길 기다린다.

그들의 의지가 하나로 모였다는 걸 느끼며 나는 쪽지를 활짝 펼쳤다.

그리고 거기에 적힌 글을 읽어갔다.

“이딴 게…… 멸신검을 가져간 방법이라고……?”

쪽지의 내용을 확인한 모든 이들의 얼굴에서 불신의 감정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 방법은 복잡한 추리가 무색해질 정도로 간단하고, 또한 분노조차 생기지 않을 만큼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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