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마지막 퍼즐 한 조각 2
* * *
“…….”
“하하하…….”
차가운 시선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힌다.
내가 지을 수 있는 건 어색한 웃음뿐이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무재시 어느 아파트.
그 안에 달갑지 않은 손님을 연속으로 들이게 된 집주인, 오서연의 표정은 심히 좋지 않았다.
“요현아…….”
“네, 누님.”
딱딱한 호칭이 필요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나는 일부러라도 말을 높였다.
원래 철부지 자식들이 민폐 끼친 걸 수습하는 건 부모의 역할이었다.
결혼한 적도 없는 녀석이 이러고 있다는 게 우습긴 하다만…….
“그래. 너희에게도 사정이 있겠지. 캐릭터들이 강제로 날 강제로 말려들게 만든 것도, 너희도 흙투성이가 된 채 나타난 것도 분명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거야. ……하지만!!”
침착하게 말을 이어가던 오서연은 이내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사람이 좋은 성격이니 만큼 그녀는 앙금 또한 쌓아두다가 한 번에 폭발시키는 타입이었다.
“밤 11시가 넘어서 남의 집에 쳐들어오는 건 좀 그렇지 않니!? 개인적 공간이라고! 프라이버시라고! 가뜩이나 저녁까지 너희 캐릭터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단 말이야! 이제야 좀 한숨 돌리겠다며 차가운 도시 여자 모드를 벗어던지고 티셔츠에 돌핀 팬츠라는 편안한 옷차림으로 맥주 한 잔 꺾고 싶었는데, 그게 그렇게 과한 욕심이야!?”
제발 자신 좀 내버려 달라는 듯 오서연은 하소연했다.
오죽 쌓인 게 많았으면 눈 끝에 눈물을 맺히기까지 할 정도다.
한밤 중 갑자기 찾아온 탓도 있지만, 그 전에 캐릭터들에게 시달린 지분이 클 것이다.
“죄송합니다…….”
“저희 애들이 폐를 끼쳤어요.”
민폐 끼친 녀석들을 대신해 나와 연성화가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장본인들을 째려보았다.
남겨진 사고뭉치인 레반, 레테라, 하티는 잘못을 저지른 애완동물처럼 눈동자만을 움직여 시선을 피했다.
레아와 스콜은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는 듯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지그문트와 진혜는 할 일을 마쳤다며 제 주인의 품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하아…….”
한편, 속에 쌓인 말을 어느 정도 내뱉은 오서연은 깊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자신의 컴퓨터를 바라보았다.
“아무튼, 이것만 하면 너희들이 겪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거지?”
컴퓨터 화면에 떠올라 있는 건 소울즈 오브 라그나로크의 로그인 화면이었다.
우리는 율과 헤어지고 나서 곧바로 오서연의 집을 찾았다.
율이 남기고 간 쪽지.
그것이 정말 사실인지 검증하기 위해서는 직접 실행해보는 것밖에 없었고, 플레이할 수 있는 유일한 SoR가 바로 오서연의 컴퓨터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알았어. 이왕 한 배를 탄 거 끝까지 도와줄게.”
“감사합니다, 서연 누나!”
“정말 감사해요!”
오서연은 한숨을 쉬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처음엔 나나 연성화 둘 중 하나의 계정을 쓸 생각이었다.
그러나 계정에서 생성된 캐릭터들은 모두 현실로 나온 탓인지 로그인을 해도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현재 살아 있는 계정은 오서연의 것이 유일했다.
다른 사람이 대신 캐릭터를 다루는 건 예의가 아니라며 한 때 게임 속 캐릭터였던 녀석들이 입을 모아 말하니, 실제 실험은 오서연에게 맡겨야 했다.
“그래서? 뭘 하면 돼?”
게임으로 접속한 오서연이 돌아보며 묻자 나는 쪽지를 펼쳤다.
“이게 참, 하아…….”
다시 봐도 어이없는 내용에 잠시 한숨을 쉬고 머리를 긁적였다.
“우선 크기가 큰 무기를 준비해주세요.”
“큰 무기? 캐릭터는 마법사 직업이라 그런 건 쓸 수 없는데?”
“사용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쥐고 흔들 수 있다는 조건만 만족하면 되니까요.”
위력이 전혀 안 나오는 것뿐, 능력치에 맞지 않더라도 무기 자체는 사용할 수 있다.
예전에 던전에서 줍고 팔기 위해 가지고 있던 대형 무기가 하나 있다며 그녀는 인벤토리에서 도끼를 꺼냈다.
“다음은 길드 협회로 가주세요. 전송석을 타고 카르마니아로 가면 돼요.”
길드 협회.
모든 길드를 통괄 관리하는 기관이다.
길드 등록 및 관리는 모두 이 시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왜 카르마니아야? 로드제란에도 길드 협회가 있잖아?”
“그쪽 협회 관리인이 좀 더 일을 대충대충 처리하거든요.”
“……?”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오서연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말에 따라 카르마니아로 이동했다.
전사들이 모이고 전쟁이 끊이지 않는 나라.
오랜만에 본 로드제란도 황폐화가 진행되었지만, 카르마니아 만큼은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 칼부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사납고,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건물은 찾기 힘들 정도였다.
전부 어딘가가 부서지거나 금이 가 있었다.
기억과는 많이 달라진 풍경을 보며 내가 중얼거렸다.
“카르마니아가 소란스럽긴 하지만, 이 정도로 심각했었나?”
“뭐, 나라 이름만 통일됐지 사실상 군웅할거의 땅이었으니까. 왕도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고. 멀쩡할 리 없겠지.”
나라는 위태로웠지만, 그 난세에 지지 않기 위해 일어나는 수많은 영웅들의 모습을 보아온 우리로선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 사이 오서연의 캐릭터 앨리스가 길드 협회 건물에 도착했다.
나라와는 분리된 독립 기관이기 때문일까, 협회 건물만은 그나마 양호했다.
“도착했어. 이제 뭘 하면 돼?”
“길드 정보 갱신 신청을 하세요.”
길드 정보 갱신 신청.
SoR 내의 시스템이다.
던전 발견이나 업적을 달성하면 그 플레이어가 속한 길드의 업적으로 남길 수 있다.
그때마다 사용하는 게 정보 갱신이다.
그 업적이 쌓이면 쌓일수록 같은 길드에 소속된 길드원에게 보너스 혜택을 줄 수 있어, 길드를 운영하는 자라면 꼭 이행해야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그 작업은 제법 현실적이다.
길드 협회를 방문 후, 신청서를 작성, 제출한 신청서가 처리되기까지의 2,3분이나 되는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업적을 달성한 즉시 그 자리에서 길드 정보가 갱신되는 시스템이라면 더 편했을 것을, 쓸 때 없는 부분까지 리얼리티를 찾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게임이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NPC들이 리얼로 서류를 처리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 거였다.
“단, 지금 갱신을 신청하지 마세요. 다른 누군가가 길드 갱신 신청을 할 때를 기다려야 해요.”
또 다른 현실인 만큼 플레이어만이 길드를 만들 거나 하진 않는다.
그 중에는 NPC들이 만드는 길드도 있었다.
왜 NPC도 길드를 만들고 이용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당시 유저들은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유저를 위한 장치로 받아들였다.
혼자서도 길드 혜택을 누릴 여지를 주기 위함이었다.
NPC들과 친밀도를 쌓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귀찮은 대화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아싸들에겐 오히려 이쪽이 더 잘 맞았다.
“왔다.”
연성화가 중얼거리자 다시 게임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한 모험가 NPC가 협회에 나타났다.
길드 갱신을 하기 위함인지 그는 창구로 다가갔고, 나도 오서연에게 지시를 내렸다.
“지금이에요, 서연 누나. 저 NPC 바로 옆 창구를 통해 갱신 신청을 하세요.”
“알았어.”
“그리고 서류가 처리되는 동안 준비해온 무기를 주변에 마구 휘두르세요.”
“뭐? 하지만…….”
“일단 제 말대로 해주세요. 이 타이밍에 움직이지 않으면 안 돼요.”
“아, 알았어.”
묻고 싶은 게 많은 얼굴을 하는 오서연이었지만, 일단 내 말대로 무기를 휘둘렀다.
작은 토끼와 같았던 앨리스가 자신의 몸집만한 도끼를 휘두르다가, 근력 스탯이 따라가지 못하고 넘어지는 모습이 여러 번 비쳐졌다.
그리고 한쪽에서 무기와 갑옷으로 무장한 누군가가 달려왔다.
경비원 무자드: 이봐! 공공장소에서 무기 휘두르지 마! 누가 다치면 어쩌려 그래?
“이럴 줄 알았어. 역시 경비병이 제지하러 오잖아.”
협회와 같은 공공시설에선 함부로 무기를 휘두르는 걸 금지하고 있다.
그랬다간 경비원이 제지하러 오고, 만약 그것을 무시하고 계속 휘두르거나 누군가를 다친 게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전투가 벌어진다.
경비원의 제지에 오서연은 일단 공격을 멈추고 물어왔다.
“이제 어떻게 해? 무시하고 계속 날뛸까?”
“이제 됐어요.”
“뭐?”
“이걸로 끝이에요.”
끝이라니, 아직 아무것도 안 했다는 듯 오서연은 황당할 얼굴을 보여왔다.
그 심정 우리도 이해한다.
처음 이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었으니까.
“쪽지엔 50% 확률로 성공한다고 되어 있네요. 이번에 실패하면 될 때까지 다시 시도하면 돼요.”
연성화는 펼쳐진 쪽지를 들여다보며 말했고, 마침 화면에선 처리가 완료되었다는 안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나는 캐릭터의 길드창을 띄워줄 것을 요청했다.
“표식이…… 바뀌었어.”
길드 정보를 띄운 오서연은 놀란 듯 말하였다.
길드를 상징하는 표식이 바뀌어 있었다.
심지어 길드명까지.
“어떻게……? 내 길드는 분명 아는 지인들과 함께 만들었던 길드야.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길드는 확실히 유지되고 있었다고. 그런데 길드 변경도, 탈퇴도 한 게 아닌데 왜 바뀐 거지?”
당황하는 오서연.
나와 연성화는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결과에 깊고 무거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이런 거죠…….”
“……공무원의 태만함이 불러일으킨 비극.”
“뭐?”
그러니까 이런 거다.
모니터상으론 표시되지 않을 뿐, 게임 속에선 현실과 같은 물리법칙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다.
모니터에선 캐릭터가 그저 허공에 무기를 휘두른 것뿐이다.
그런데 저쪽 세상에선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무게, 그 풍압, 비대한 부피를 가진 무기가 휘둘리며 일어나는 모든 여파가 고스란히 일어난다.
저쪽은 서류를 어떤 양식으로 제출하는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 하다.
풍압에 날아간 서류가 섞이는 것으로 길드 정보까지 바뀔 정도로 일을 허술하게 처리한다는 것이다.
쪽지에 적힌 글로 보았을 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바로 눈앞에서 일어났다.
어이가 없어서 끓어오르지 않았던 분노가 지금 이 순간 다시 차오르기엔 충분했다.
“이딴 웃기는 수법 때문에 우리가 그 고생을 했다고!?!!!”
“심지어 우리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니야!! 그냥 게으름뱅이 공무원이 제대로 확인도 안 해서 일어난 전산 오류잖아!!!”
참고로 뒤바뀐 길드 표식은 하루 내지 이틀이 지나면 자연스레 돌아온다.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실수를 눈치 채고 몰래 수정하기 때문이다.
설마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겠어라는 안일한 생각과 자신의 실수를 감추려는 참으로 인간적인 대응에, 일정 시간 길드를 바꿔치기 당한 당사자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이것을 의도적으로 실행한 한 명 외에는.
“석오태 그 씹새끼는 어느 날 우연히 이 트릭을 발견한 거야!!”
길드 정보 갱신은 몇 분간의 시간을 소모해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야 한다.
몇 분이야 짧겠지만,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인으로선 도저히 가만히 있기 힘든 시간인 것도 맞았다.
그렇기에 심심풀이로 무기를 몇 번 휘둘러보자 이 트릭을 눈치 챈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 알아챈 트릭을 활용할 대상을 찾았겠지! 그 표적이 된 게 우리고!!”
당시 우리는 멸신검 제작을 위해 한참 열을 올리던 와중이었다.
주변의 시선으로 보면 수상함을 느낄 여지는 충분했다.
파천뇌황을 쫓으며 꾸준히 들락날락 거리는 왕실 공방.
제작 의뢰를 맡은 탓에 에이드멀은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뭔가 엄청난 아이템을 제작 중이라고 짐작할만 했다.
그리고 자신이 알아낸 트릭이라면 그것을 도중에 가로채는 것도 가능하리라 느꼈을 것이다.
보통 이런 고난이도 퀘스트는 길드원과 나눠서 수행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차라리 버그나 핵이었으면 억울하긴 해도 이해는 하지!! 그런데 트릭이 고작 기다리기 심심해서 무기 휘두르는 관종 짓!!? 지금 장난 해!?”
“오, 오라버니, 진정하세요!”
“애초에 저쪽 길드 협회는 뭔 일을 그따구로 처리하는 거야!! 세계관이 막장이라고 공무원까지 막장이야!?”
“주인님! 쳐죽이면 되나요!? 저쪽 세상으로 돌아가 그 협회원 녀석들을 전부 쳐죽이면 되나요!?”
분노는 분노를 더해 더 큰 폭주로 이어졌다.
제발 진정하라고 외치는 오서연의 목소리마저 잘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한편, 이곳의 난리에서 한 발 물러난 채 서 있던 스콜은 현자 타임이 세게 온 듯한 표정을 짓는 레아를 돌아보며 물었다.
“난 짐작 가는 게 없다만. 넌 있냐?”
“어. 있어. 멸신검이 완성되기 전날에 길드 정보 갱신을 하려 협회를 찾아갔는데, 그때 창구 앞에서 휠윈드를 시전 하는 이상한 놈이 있던 게 기억 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놈 우리와 싸웠던 그 기사 캐릭터와 인상착의가 비슷해.”
역시 그때 철저하게 다져놔야 했다고 레아는 후회했다.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은 찾았만, 차라리 알지 못한 게 더 나았을 거라 생각될 정도로 허무한 진실이었다.
***
다음날.
폭풍 같은 하루를 보냈던 오서연은 평소보다 더 피곤한 얼굴로 회사에 출근했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황량한 사장실 한가운데에서 홀로 의자에 누워 있는 율을 보고 대뜸 말을 꺼냈다.
“너무하지 않아요?”
“뭐가?”
“요현이와 성화요. 2년 넘게 이어진 갈등의 원인이 겨우 그런 어린애의 장난 같은 일 하나 때문이라니. 본인들이 얼마나 허탈해 했는지 아세요?”
“그게 나 때문이냐? 우연히 발견한 법칙을 제 입맛대로 이용해먹은 석오태 탓이지. 그놈도 몰랐을 거야. 가볍게 저지른 일이 스노우볼이 되어서 자신 앞으로 평생 병실 생활을 하게 되리라곤.”
“차라리 알 수 없는 음모가 있었다는 게 더 그 아이들을 위한 결말이었을 거예요.”
격렬한 분노 끝에 모든 것에 해탈한 수도승 같은 모습으로 집에 돌아가던 신요현과 연성화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 거리는 오서연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율은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모든 진실이 극적일 순 없어. 남들은 ‘겨우 이딴 거에?’라고 생각될 정도로 사소한 행동에서부터 온 우주도 감당 못할 희대의 재앙 하나가 탄생하곤 하거든.”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네 눈앞에 있잖아.”
율은 자신을 바라보라는 듯 두 팔을 벌리며 웃어보였다.
그것만으로 오서연의 얼굴은 기괴한 것을 본 듯 일그러졌다.
스스로를 우주도 감당 못할 재앙이라 칭하는 건 둘째 치고, 이런 괴기한 것을 만들어낸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에 기가 질렸다.
“아무튼 출근 했으면 커피나 타 와, 엉터리 비서. 그게 네 유일한 업무잖아?”
“아, 예이, 예.”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직장 내 성차별이라 부를 만한 발언이 율에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팩트였기에 오서연은 별다른 말대꾸 없이 커피를 타려고 이동했다.
그러던 중 율이 의자에 누운 채 태블릿 PC를 부지런히 조작하고 있다는 걸 보고 호기심 들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뭐하세요?”
“아, 이거?”
율은 태블릿 PC를 뒤집으며 오서연에게 보여주었다.
“곧 있을 두 번째 이벤트 개요. 재미있겠지?”
“아아……. 그러네요.”
별 감흥 없는 듯 오서연은 등을 돌려 걸어갔다.
그러면서 한 손으로는 휴대폰을 쥐며 빠른 속도로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신요현, 그리고 지난 번 만났을 때 번호를 교환한 연성화에게 보내는 장문의 경고 메시지였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 한 듯 땀에 젖은 손으로 메시지를 전송하기 위한 마지막 버튼을 누르려고 한 순간이었다.
후욱!
그녀의 엄지손가락은 어느새 액정 화면이 아니라 허공을 꿰뚫고 있었다.
“스포일러는 금지라니까~.”
사라진 휴대폰을 찾아 고개를 돌린 오서연은 율의 손가락 위에서 휘리릭 돌아가고 있는 자신의 휴대폰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휴대폰 내놔!!”
“아니 이 년이 사장에게 하는 말본새 좀 보소?”
“그런 정신 나간 내용을 봤는데 고운 말 나오겠냐!! 대체 그런 악취미적인 이벤트는 왜 만드는 거야!?”
“왜긴. 나 재미있으라고 만드는 거지.”
그 뒤, 오서연은 신요현에게 위험을 경고하려 갖은 방법을 동원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율에게 차단당했다.
한낱 인간인 그녀가 운명처럼 다가오는 이벤트를 막을 수 없다고 말하는 듯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