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 괴짜 주의보 1
* * *
다사다난한 며칠이 지났다.
옛친구와의 재회, 갈등, 충돌, 공조(??), 화해…….
그리고 그 끝에서 밝혀진 어이없는 진실까지.
뭐랄까, 허탈했다.
면제 대상인 사람이 병무청의 실수로 군대에서 2년간 썩다 나왔다는 진실을 알게 된 기분이다.
이런 경우라면 소송이라도 할 수 있지, 나와 같은 경우는 소송할 대상이 이 세상에 없었다.
막말로 저쪽 세계에 처들어가 피해보상을 하라면 깽판을 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중계인을 통하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놈이라면 짧은 한 마디로 답할 것이다. ‘내가 왜?’라고.
나는 그냥 잊기로 했다.
잊는 게 곧 낫는 거다.
마무리가 안 좋긴 했지만 결국 옛친구와는 화해했지 않는가.
일단은 푹 쉬고, 내일을 준비하는 거다.
콰아아아아앙!!!!!
그러나 내일을 위한 휴식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창문 밖에서 들리는 굉음 하나가 내 피로를 풀어주던 달콤한 수마를 엉덩이 걷어차듯 날려버린 것이다.
침대에 엎어져 있던 난 그 소리에 눈을 떴다.
그리고 다양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짜증과 귀찮음이다.
소리 자체에 놀란 게 아니라, 그 소리가 몰고 온 사건의 소식에 짜증이 난 것이다.
어찌된 게 매일 매일이 대형견을 키우는 기분이다.
그것도 비글 급으로 사고를 잘 치는 대형견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무언가가 일어나니 말이다.
“뭐하는 거야, 이 자식들아?!!”
창문을 열고 외치며 뒷마당 쪽을 내려다보았다.
사건의 현장엔 언제나처럼 사고뭉치인 대형견, 레반과 레테라가 있었다.
그리고 최근이 되어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온 대형견 레아도 함께.
***
과거 이 집은 유령 소문이 떠돌아다녔다.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 불길한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하여 주변 주택가는 빈 건물이 많았다.
그러나 그 문제시 되는 집에 사람이 들어 살고 아무 문제없이 지내면서부터 불온한 소문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역시 유령 따윈 헛소문이었어, 하며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사 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새로 온 이웃들은 모를 것이다.
유령이 없는 게 아니라 문자 그대로 때려잡았을 것뿐이라는 걸.
그리고 유령 소문이 사라지자 대신 그 빈자리에 이상한 소문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저 언덕길 큰 저택엔 이상한 괴짜들이 살고 있었다는 소문이.
한 퀵 배달원은 말했다.
“음식을 배달하러 찾아갔는데 웬 은발의 엄청 예쁜 여성이 나오더랍니다! 너무 예뻐서 한 동안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는데, 피자를 확인한 그 여자가 절 갑자기 번쩍 들어 올려 가지곤 바닥에 내동댕이친 뒤 식칼을 가져다대지 뭡니까! 그러고선 ‘이 피자에 파인애플 같은 불경한 것이 섞여 있는 이유를 10초 내로 고하지 않으면 손가락을 하나씩 끊겠다’라고 하는 거 있죠!? 진짜로 오줌 지리는 줄 알았습니다! 집 안에서 웬 평범해 보이는 남자가 달려와 여성에 이단옆차기를 날려서 겨우 살아날 수 있었죠. 솔직히 아직도 제가 겪은 일이 현실인지 헷갈립니다.”
한 인근에 거주하는 아주머니는 말했다.
“저 집 사람들이 뭐하는 사람들이 뭐하는지 모르겠는데, 가끔 장보러 갈 때 보이곤 해. 웨메메, 뭔 남자가 그리도 등빨이 좋은지, 쌀포대를 가볍게 들었을 땐 홀딱 반하는 줄 알았어. 친해지고 싶어서 호떡이라도 사서 챙겨주려 했는데 ‘왜 호떡 안에 호박 씨앗이 있는 거냐? 시비 거는 거냐?’라며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여! 뭔가 표정이 농담하는 거 같지 않을 만큼 흉흉해진다 싶었는데, 웬 평범한 청년이 달려와 그 남자를 뒤에서 붙잡고 들어 올려 뒤통수를 땅에 내리꽂는 거 있지? 놀라긴 했는데, 머리를 땅에 박은 남자는 의외로 멀쩡해 보이고, 달려온 청년은 갑자기 연신 사과하고, 아무튼 뭔가 좀 이상한 사람들이었어.”
그리고 한 인테리어 업체 직업은 말했다.
“그 집……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이상하리만큼 보수공사를 자주 신청해요. 보수할 곳을 확인하러 자주 방문하는데, 갈 때마다 낡아서 무너진 게 아니라 공사장 장비라도 끌고 왔나 싶은 듯한 구멍이 잔뜩 있더라니까요? 그리고 헛걸 본 건 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그 중엔 핏자국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어요. 집주인인 청년은 멀쩡해 보이지만, 같이 사는 외국인들 쪽이 정상이 아닌 거 같습니다. 특히 최근엔 못 보던 금발 여성도 함께 지내던데, 뭐랄까……. 경비견 같다고 할까? 아니면 맹견? 집 안에 들어와 있는 절 뚫어져라 쳐다보더랍니다. 제가 수상한 짓 하나라도 하는 순간 당장 물어죽일 듯한 그런 눈빛으로요. 사장님에게 다시 저더러 그 집에 답사 보낼 거면 차라리 때려 치겠다고 말해뒀습니다.”
“이상한 집이라…….”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얘기를 수첩에 정리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대체 뭐지?”
그는 의혹이 가득 찬 표정으로 저 멀리 있는 저택을 바라보았다.
***
애완견을 혼낼 땐 우선 자신이 혼나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식시켜야 한다.
물론 이 녀석들은 애완견이 아니지만, 문제를 저지르고 다니는 게 딱 그 수준이었다.
나는 마당에 난 커다란 구멍과 그 옆에서 무릎 꿇고 앉아있는 레아, 레반, 레테라 세 사람을 바라보며 자초지종을 물었다.
“팔씨름을 했습니다.”
“왜 팔씨름을 했다고 땅이 꺼지는데?”
“그게 받침대가 너무 약해서 말이죠…….”
구덩이를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확실히 흙에 파묻혀 있고, 조각조각 나뉘기도 했지만 돌판이었던 것의 흔적은 찾을 수 있었다.
돌판을 받침대로 썼는데 박살낸 것으로 모자라 구멍마저 파헤칠 정도의 팔씨름이라니……,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별로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전에 받침대를 박살낼 정도의 팔씨름을 하게 된 계기가 뭐야?”
그 물음에 레반과 레테라는 동시에 손을 뻗었다.
““이 여자 때문입니다(이에요).””
그들이 가리킨 건 레아였다.
“늬들 아직도 앙금이 남았냐?”
물론 첫만남 때부터 사이가 최악이었지만 레아가 태도를 고치며 돌아온 뒤로 그럭저럭 인정하고 받아들인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니에요. 물론 이 여자가 우리에게 건방지게 굴고 오라버니에게도 속썩였지만, 그래도 결론적으론 오라버니를 위한 행동이었으니까요. 가끔 언동을 보면 쳐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짜증나긴 해도 같은 오라버니의 캐릭터인데 굳이 죽일 이유는 없죠.”
“앙금 안 남은 거 맞지……?”
어째 당장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가 이들 사이에서 감돌고 있었다.
이런 때를 대비해 갈등이 생겼을 땐 싸우지 말고 적당한 경쟁으로 해결하라고 말한 적 있긴 하다.
팔씨름도 그에 의한 것이겠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결국 이유 없이 싸울 녀석들은 아닌데, 뭐가 문제인 거지?
“방 배치의 문제야, 아버지.”
“……뭐?”
이유가 놀랍도록 어이가 없었기에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방배치?
“아시다시피 4층엔 방이 네 개나 되지 않습니까? 하나는 형님 방, 다른 두 개나는 각각 저와 절벽가슴의 방. 그리고 남은 한 방은 비어놓은 상태였습죠.”
“그래. 언젠가 레아가 돌아올 걸 대비해서 그 방은 항상 비워놓기로 했지. 그게 왜?”
“이 여자가 방 위치가 마음에 안 든다며 바꾸자는 소릴 하잖아요!”
“……그랬냐?”
레아에게 눈을 돌리며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다른 방을 원해.”
“저기, 방끼리 넓이 차이는 특별히 없어. 지금 있는 방도 충분히 볕도 잘 드는 좋은 위치라고.”
“아버지. 계속 속 썩이던 나를 신경 써주고 방까지 미리 마련해둔 그 마음은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눈을 내리깔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던 레아는 어느 순간 눈을 부릅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내 의지로 정하고 싶어! 다른 건 양보해도 이것만큼은 양보 못해!!”
“대체 방 위치가 뭐라고…….”
강한 의지를 담아 외치는 레아를 보며 나는 어이없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예전 반항적인 면모가 잔재로 남은 건지 모르겠지만 레아는 간혹 자기주장이 강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뭐, 말만 하면 간 쓸개 다 빼줄 것 같이 과하게 따르는 레반, 레테라에 비하면 낫다고 할 수 있지만, 가끔 그게 어디로 폭주할지 몰라 걱정되기도 했다.
“너희 생각은 어때?”
“저희라고 방을 양보해줄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 여자는 우리에게 도전해 왔습니다.”
“왕좌의 앉을 자격이 있는 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자뿐! 그래서 방 재분배의 권리를 걸고 싸우고 있었어요.”
그게 이 뒷마당을 파헤칠 정도의 과격한 팔씨름 승부였냐…….
이젠 지적하기도 힘들었다.
한숨을 쉰 나는 집안으로 들어가 나무젓가락 몇 개를 가지고 나왔다.
젓가락 끝에 숫자를 1, 2, 3까지 적어놓은 뒤 빈 깡통 속에 꽂아 넣는다.
그리고 그걸 세 사람을 향해 내밀었다.
“제비뽑기다. 사실 가위바위보가 가장 간단하지만, 그걸로 해결하라고 하면 지난번처럼 손가락 부러뜨려서라도 이기려는 미친 짓을 저지를 테니까 패스. 이 젓가락을 뽑고 거기에 적힌 번호대로 우선권을 가져간다. 순수한 운 싸움이지. 이걸로 해결해. 알겠어?”
“““네!”””
세 사람은 선생님에게 대답하는 유치원생처럼 씩씩한 목소리로 답했다.
날뛰는 것도 유치원생 수준에서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엔 소란 없이 넘어가길 바라며 제비뽑기 통을 그들에게 넘겨주고 등을 돌렸다.
부족한 잠을 다시 보충하기 위해서 방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띵동~!
“응?”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뭐지?
택배로 올만한 것도, 누가 방문할 예정도 없는데 묘한 일이었다.
일단 누군가 찾아왔다면 집주인으로서 맞이해야겠지.
나는 일단 마당을 돌아 정문으로 향하기로 했다.
***
신요현이 떠나고나서 캐릭터들의 극한의 눈치 싸움이 시작되었다.
깡통에 꽂혀 있는 세 개의 젓가락.
가장 낮은 수를 뽑은 사람부터 방 선택의 우선권이 돌아간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1이 적힌 젓가락을 뽑아야 한다.
최적의 방을 차지하기 위해서.
그들이 이렇게까지 다투는 이유는 방 때문이었지만, 단순히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유를 좀 더 넓게 본다면, 거기엔 그들의 부모이자 주인인 신요현이 있었다.
‘가장 베스트라면 당연히 오라버니의 옆방이야. 벽 하나 사이에 둔 거리감. 그 너머로 감지할 수 있는 오라버니의 기척. 오라버니 방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갈 수 있는 최단 위치다. 벽이야 그냥 부숴버리면 되는 거고.’
누군가는 그저 심플하게 가장 가까운 거리를 원했다.
신요현의 프라이버시 따윈 전혀 상정해두지 않았다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지만 그들에겐 자각이 없었다.
‘형님의 맞은편 방도 나쁘지 않겠지. 아침에 형님이 일어나 방을 나왔을 때 가장 먼저 얼굴을 마주보며 인사할 수 있는 절호의 방향. 아침에 새 빤스로 갈아입는 것보다 더욱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의 스타트를 끊을 수 있다.’
누군가는 그저 심플한 안정감을 원했다.
그리고 최상, 차선이 있다면 가장 낮은 최악도 있을 터였다.
레아는 옆방, 맞은편 방의 가치를 따져보는 한편 대각선으로 떨어진 방이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그런 이유로 구석에 떨어진 방이 제일 별로야. 아버지의 방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뿐더러 양쪽으로는 망할 녀석들이 거주하게 된다. 세 방 중 가장 가치가 떨어지는 최악의 방이지. 무슨 일이 있어도 거기에서 탈출하겠어.’
………….
잠시간의 침묵.
그리고 동시에 손을 뻗는다.
덥썩!
각자가 젓가락의 끝을 붙잡았다.
이제 뽑기만 한다면 되지만, 이변이 생겼다.
젓가락을 동시에 뽑으려 하자 그 막대 끝이 내부에서 얽히고 말았다.
조바심이 난 캐릭터들은 어느 누구도 당기는 힘을 줄지 않았다.
손 끝에 들어간 괴력.
그것을 연약한 젓가락이 버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빠직!!
갈 곳을 잃은 힘이 젓가락을 부러뜨리고 깡통을 공중에 띄웠다.
뒤집혀진 깡통에서 숫자가 적힌 젓가락 파편이 튀어나왔고, 거기에 캐릭터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신요현은 이게 순수한 운 승부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게 있다.
레아, 레반, 레테라 세 사람은 공통적으로 운 수치가 낮다.
그것은 그들의 팔자가 불행함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운 수치는 다른 스탯과 다르게 레벨 업으로 투자할 수 없다.
운 수치의 변동은 그 캐릭터의 플레이 성향에 달렸다.
그저 우연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지 않겠다는 저돌적인 플레이가 늘어날수록 운은 낮은 채로 고정된다.
신요현 내면의 마초적인 성격에서부터 비롯된 수치이다.
그리고 아이는 부모를 닮는다.
허공으로 비산하는 부러진 젓가락.
그 중 하나에 새겨진 1이라는 숫자.
저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운이 아니다.
퍼어어어어어억!!!!
젓가락을 허공에 두고 세 남녀가 내지른 일격이 어지럽게 교차한다.
운이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고 그들의 주먹은 말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