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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63화 (163/173)

〈 163화 〉 괴짜 주의보 ­ 2

* * *

초인종 소리를 듣고 마당을 돌아 정문으로 향한다.

그러다 창살로 된 문 앞에 서 있는 인영을 보고 놀란 소리를 내었다.

“어?”

아는 사람이었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큰 키에 왼쪽 뺨에는 칼자국.

조폭 같은 인상이지만 사실은 조폭이 두려워해야할 직업을 가진 인물이었다.

“설 형사님?”

예전에 만났던 설백호 형사였다.

그는 다가오는 나를 보며 반갑다는 듯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신현성 씨.”

“여긴 어떻게…….”

“이전 사건에 대한 조사가 전혀 진척이 없기도 하고……. 어떻게 지나고 있는지도 궁금해서 수소문하며 찾아왔습니다.”

이전 사건.

그 말에 반사적으로 몸이 굳어졌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았다.

확실히 새 집을 구하며 완전히 잊고 있었다.

레반, 레테라와 처음 만난 날.

그 두 사람은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며 싸웠고, 그 탓에 내가 살고 있던 원룸을 개박살 내놓았다.

당시 두 사람의 존재를 숨기느라 강도의 짓으로 꾸며놓은 사건의 범인을 설 형사는 아직도 찾아다니고 있던 것이다.

요즘 경찰이라면 설렁설렁 수사할 줄 알았건만, 설백호는 생각 달리 성실한 타입의 형사였나 보다.

“안부를 물을 거라면 전화로 해주셔도 됐을 텐데…….”

“전에 전화했을 땐 받지 않으시더군요. 최근 바쁘셨나 봅니다.”

바쁘기야 오죽 바빴겠는가.

다른 플레이어들을 만나랴, 레아 문제를 해결하랴, 현실로 나타난 몬스터 웨이브에 시달리기까지 했으니 휴대폰에 신경을 써놓는 일이 빈번했다.

아무튼 연락이 되지 않으니 내 새 주거지로 찾아온 설형사는 정문 앞에서 물었다.

“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나는 짧은 시간 오만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죄 없는 자가 형사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지만, 나는 없는 강도 사건을 만들어낸 전적이 있다.

또한 인간 사회엔 지나치게 치명적인 대형견(?)을 세 마리나 기르고 있기까지 하다.

숨기는 자와 파헤치는 자.

가까워져서 좋을 건 없었다.

설 형사 이 양반은 왜 나를 찾아온 것일까?

뭔가 수상한 냄새를 맡아서?

아니면 정말로 안부를 묻기 위해?

아무튼 여기서 거부하거나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행동을 보여선 안 된다.

‘적당히 맞춰주고 최대한 빨리 돌려보내자.’

그렇게 결정한 정문을 열어주었다.

실례한다고 말한 설 형사는 마당으로 들어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의외군요. 이렇게 좋은 집을 다 구하다니.”

“유령 나타난다는 소문 때문에 거저먹었거든요. 사는 곳이 그 꼴이 되었을 땐 참 막막했는데 이런 곳을 발견하다니, 세상만사 새옹지마가 맞나 봐요.”

“혹시 일부러 퍼트린 건 아니겠죠?”

찔러보는 듯한 한마디가 던져졌다.

확실히 두 달 전까진 원룸에서 살던 사람이 갑자기 넓고 마당까지 딸린 집까지 얻게 된다면 누구나 수상하게 여길 것이다.

“제가 그런 불법적인 일을 하고 다닐 상으로 보이시나요?”

하지만 난 거기에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서로의 시선이 오간 것도 잠시, 설 형사가 먼저 웃음을 터트리는 것으로 묘한 긴장이 풀어졌다.

“형사 생활로 단련된 직감으로 보건데, 그리 뒤가 구린 일을 하고 다닐 것 같지 않군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네요.”

“그래서, 유령은 있었습니까?”

“있긴 있더라고요.”

긍정의 대답이 돌아올 줄 몰랐다는 듯 설 형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유령이 있었다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농담인 줄 알겠지만, 설 형사는 이걸 진담으로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은 것이다.

“정말로 있었습니까?”

“네. 흐느끼는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깰 정도였는데, 실력 있는 퇴마사를 만난 뒤로 얌전해졌더군요.”

매가 약이다라는 말은 유령에게도 통용된다는 게 그때 깨달았었지.

“허……. 그런 쪽 이야기는 잘 믿진 않지만, 그래도 그렇게 용한 퇴마사가 있다면 나중을 위해서 알아두고 싶군요.”

알아두실 필요 없어요.

유령뿐만 아니라 사람 잡는 데도 능합니다.

“사건 이후로 주변에 무슨 변화는 없습니까?”

“이사하고, 학교 휴학한 거 외엔 딱히 특별한 건 없네요.”

“주변 소문을 듣자하니 이상한 사람들이랑 같이 산다고 하던데.”

그 말에 하마타면 표정이 흔들릴 뻔했다.

맞다. 집을 수소문하며 찾아왔다고 했지.

함께 살고 있는 존재감 쩌는 녀석들에 대해 들었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었다.

하지만 괜찮다.

언젠가 누군가가 그들의 대해 물을 때를 대비해 미리 말을 맞춰둔 게 있었다.

“아, 외국에서 온 유학생들인데, 최근 저희 집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홈스테이라는 거죠.”

“꽤 독특하다고 들었습니다?”

“그야 외국에서 왔으니까요. 환경도, 주변 가치관도 전혀 다른 곳에 왔으니 생각에 차이를 보이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조금씩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어서 최근에 사고는 잘 안 칩니다.”

“아, 그렇습니까?”

설 형사의 시선은 나를 넘어 저택 쪽으로 향했다.

무언가를 찾는 듯한 그 모습에서 그가 가진 외국인이라는 사람들에 대한 흥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난 식은땀이 등에 맺히는 기분이었지만, 굳이 일부러 만나야 할 핑계거리가 없었던 건지 설 형사는 이쯤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뭐, 특별한 이상이 없으면 됐습니다. 또 무슨 일이 생기시면 연락주세요.”

“살펴가세요.”

떠나려는 설 형사를 나가 안도의 한숨을 숨기며 배웅할 때였다.

퍼어어어어어억!!!!!

평화를 깨는 소리가 울렸다.

막 정문을 나서려는 설 형사의 몸도, 배웅하는 내 몸도 그 소리 하나에 경직되었다.

“방금 무슨 소리죠?”

“……글쎄요?”

나는 딱딱하게 굳은 미소와 함께 시치미를 떼 보았다.

“아니, 분명 정육점에 매달아놓은 고깃덩어리를 쇠몽둥이로 있는 힘껏 후려친 듯한 소리가 울렸는데요?”

하지만 설 형사의 의구심은 멈출 수 없었다.

심지어 그것에 무게라도 더해주려는 듯 뒷마당 쪽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굉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퍼어어억!!! 퍼어어억!! 콰아아앙!! 쿵!! 콰아아아앙!!!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어요, 이거!!”

이쪽이야 일상적으로 듣는 소리라지만 설 형사에겐 아니었다.

조폭들이 떼거지로 모여 연장 들고 패싸움 한다고 해도 이 정도로 소름끼치는 소음은 내지 못한다.

떠나려고 했던 설 형사는 그대로 몸을 돌려 문 안쪽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제지하려는 날 제치며 소리가 들리는 뒷마당을 향해 달려가는 설 형사의 모습을 나는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으며 뒤따라갔다.

“아오, 그 멍청이들!!”

***

뭔가 느껴졌다.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자는 알게 모르게 그런 분위기를 풍긴다.

직업 환경상 감추려는 자들과 자주 만나게 되며 그런 감각이 깨어난 것 같았다.

신요현이라는 청년에게선 그런 감추려는 자의 낌새가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걸 파헤치지 않는 건, 그에게 선인(?人)의 냄새를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힘이 있어도 함부로 누군가에게 상처주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

설백호는 그에게서 그런 인상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신요현이 무언가 감추려하는 기색은 그냥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도저히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다.

이 집에 뭔가 있다.

그것을 직감하고 뒷마당으로 달려간 설백호는 순간 숨이 멎었다.

피.

피를 뒤집어쓴 혈인(血人).

누가 보면 조폭간의 항쟁을 목격한 듯한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손엔 회칼이나 도끼 같은 건 없었다.

피를 묻힌 건 주먹.

주먹으로 죽을 때까지 팬다는 소린 자주 들어봤다.

그런데 주먹이 흉기를 대신 한다는 소리는 듣도 보도 못했다.

저게 정녕 사람의 주먹인가?

바위보다, 강철보다 더 확실하게 사람의 신체를 훼손하는 주먹을 과연 사람의 것이라 볼 수 있는가.

흉기가 된 주먹도, 그로 인해 피투성이가 된 세 남녀도 충격적이지만, 진짜는 아직 찾아오지도 않았다.

세 남녀가 뒷마당에 나타난 설백호를 눈치 채고 고개를 돌린 순간, 설백호는 반사적으로 옷 사이에 손을 찔러넣으려 했다.

권총집이 있는 위치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걸 느끼고 나서야 비로소 오늘이 비번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당연한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세 남녀의 눈빛은 공포심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도저히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는 짐승의 눈.

마치 ‘넌 뭐냐?’라고 묻는 듯, 농축된 살기를 품은 세 쌍의 시선이 설백호에게 날아와 꽂힌다.

세 남녀 모두 피투성이라서 그 흉흉한 분위기는 배가 되었다.

설백호가 총을 가져오지 않는 사실을 후회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것이 오히려 짐승들을 자극한 건지 그들도 한 걸음을 내딛으며 설백호에게 다가오려던 그 순간이었다.

타다닷!!

설백호의 옆으로, 아주 빠른 속도 세 짐승을 향해 달려가는 그림자가 있었다.

산전수전 다 겪어온 설백호가 경직되어버릴 정도로 강렬한 살기가 익숙하다는 듯 달려든 그 그림자가 공중에 몸을 눕히듯 날아오른다.

“내가……!!!”

가로로 뻗은 신체.

그 중 오른다리의 오금 부분을 은발 여성의 뒷목에 걸쳐진다. 마차 갈고리 같았다.

“소란 피우지 말라고……!!!”

동시에 양팔로 갈색 머리 남자의 목과 금발 머리 여성의 목을 휘감았다.

그리고 하나 남은 한쪽 다리는 하늘 높이 치켜오른다.

야구에서 투수가 공을 날리기 직전에 취하는 자세 같았다.

“했잖아아아아아아아아아!!!!!!”

분노 어린 외침과 함께 치솟았던 다리가 떨어진다.

지렛대의 원리처럼 다리가 떨어지면서 시작된 운동 에너지를 회전력으로 바꾸었고, 그대로 휘어감은 세 사람의 목을 끌어당겨 힘껏 휘둘렀다.

목을 붙잡힌 세 사람이 그 움직임에 상체가 달렸갔고, 각자의 얼굴을 땅으로 처박을 수밖에 없었다.

쿠우우웅!!!

마치 생전 보지 못했던 참신한 프로레슬링 같은 기술이었다.

온몸을 세 사람씩이나 붙잡고 매치기를 날리다니.

더욱 놀라운 건 거기에 저항하지 않는 세 사람이었다.

아무리 기술이 잘 들어갔다고 한들 한 사람의 체중으로 건 기술이다. 세 사람이 버티기만 했다면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세 사람은 순순히 그 힘을 따라가 땅에 머리를 처박았다.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다.

이 기묘한 광경에 설백호가 뭐라 할 말을 못 찾고 있을 때, 세 사람을 매다 꽂은 신요현은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일어났다.

그리고 한순간에 일으킨 과도한 운동으로 거칠어진 숨과 함께 설백호를 돌아보며 말했다.

“설명할 수 있으니까 일단 들어가서 차라도 한 잔 합시다.”

“……그, 그럽시다.”

설백호는 집으로 초대하는 신요현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아니, 거절할 수 없었다.

신요현과 수수께끼의 남녀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덫이 설백호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

“전쟁 군인 출신?”

“네. 중동 쪽에서 별의별 일을 겪은 녀석들이라 말이죠. 가끔 트라우마가 심하게 와서 난리 치곤 합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이제 얌전하니까. 그치?”

신요현은 동의를 구하듯 옆을 돌아보았고, 그곳에선 방금 전 흉포한 모습이 거짓말 같을 정도로 얌전히 앉아 있는 레아가 있었다.

그녀는 신요현의 말을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히 말하였다.

“가끔 난리 피우지만 지금은 괜찮아.”

“야, 레아. 말투.”

“내가 댁에게도 말을 안 높이는 걸, 왜 처음 본 놈에게 말을 높여야 하는데?”

신요현과 레아가 가볍게 틱틱거리는 모습을 설백호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전쟁 군인이라니.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때 본 그들의 눈빛을 떠올려 보면 마냥 신빙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느꼈다.

그 짐승 같은 살기를 품은 눈.

형사 생활을 하면서 만나온 그 어떤 범죄자조차 그런 눈빛을 가지진 않았다.

그건 사람을 죽여 본 정도를 넘었다.

마치 죽고 죽이는 게 당연한 세상 속에서 살아온 이와 같은 눈빛이었다.

물론 완전히 믿는 건 아니다.

형사는 의심하는 직업이다.

시종일관 상대를 의심하면서 숨기고 있는 어두운 면을 파헤쳐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수상함의 도를 넘은 나머지 도리어 함부로 접근하기 꺼려졌다.

뭐랄까…… 한 번 발을 담그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고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지금 이 사람들을 파헤치는 게 과연 현명한 일일까? 내가 총도 없는 맨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자칫하면 큰일 날 수 있어.’

설백호는 일단 오늘은 깊이 파고들지 말고 적당히 거리를 두는 선까지만 알아보자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주의해주십시오. 설령 자기들끼리 고소하지 않는다고 해도 타인에 의한 범죄 사실 인지만으로 상해죄를 물을 수 있어요.”

“제가 단단히 일러두겠습니다.”

신요현은 정좌를 한 채 설백호에게 깊이 고개 숙였다.

제발 이번만 눈감아 달라고 비는 듯한 모습에 기묘함은 커졌다.

동질감 때문이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무게, 철부지 자식들 때문에 휘어질 것 같은 등골.

자신 또한 마찬가지인 가장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동질감을 약관 겨우 넘은 신요현에게 느껴진다는 사실이 그렇게 이질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형님. 마당 정리 끝내고 왔습니다.”

그때, 한쪽에서 머리에 붕대를 감은 레반의 모습이 나타났다.

레반은 방금 전까지 구멍이 파헤쳐지고 피가 흩뿌려진 뒷마당을 깨끗이 정리하고 오는 길이었다.

“……형님?”

설백호는 레반과 신요현의 모습을 번갈아 보았다.

도무지 형님이라고 부를 만한 나이 차이로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전쟁 군인 출신이라 할 정도로 사나움을 품은 이들이다.

그런데 그런 이가 평범한 민간인이 신요현에게 깍듯이 형님이라 부르니 위화감이 넘쳤다.

신요현은 황급히 말했다.

“친해서 형 동생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저놈이 보기보다 나이가 어려요.”

“노안입니다. 늙었다는 소릴 자주 듣습니다.”

신요현의 재빠른 변명에 레반은 빠르게 발을 맞춰주었다.

서양 사람들이 동양 사람보다 나이 들어 보인다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나라고 설백호는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부엌에서 차를 끓이고 있던 레테라가 나타났다.

“오라버니! 차 가져왔어요!”

“…………오라버니?”

이건 위화감이 더 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한들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경우는 좀처럼 없지 않는가.

“사극 매니아입니다.”

신요현은 이쯤 되면 막나가자는 듯 얼굴에 철판 깔았다.

그가 눈짓하자 레테라는 눈치 빠르게 알아듣고 그의 말을 보탰다.

“아, 네. 저 사극 정말 좋아해요. 이순신과 척준경이 맞붙는 드라마를 아주 재미있게 시청한…….”

“그 두 사람 싸운 적 없으니 일단 닥치고 있으렴.”

신요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레테라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 안엔 참을 수 없는 빡침이 스며들어 있었다.

레테라는 기 죽은 것처럼 고개를 떨구고 신요현과 설백호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레아! 이 두 사람이 아직 머리 맞은 충격이 안 나은 것 같다! 방에 좀 데려다줘.”

신요현은 레아를 포함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이들을 빨리 물러나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거기에 응하며 내뱉은 레아의 말은 평소의 말투였다는 게 문제였다.

“알았어, 아버지.”

“………………아버지???”

오늘 들은 호칭 중 최고로 위화감 넘치는 단어였다.

신요현도 이것만큼은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감싸 쥘 정도다.

아무리 봐도 신요현은 20대 초반. 도무지 애아빠로 보이지 않았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한두 살 정도지, 저렇게 완벽한 몸매로 자라난 성인 여성은 아닐 것이다.

설백호가 캐물으려 할 때, 신요현이 먼저 그의 어깨를 잡으며 선수를 끊었다.

“‘그런 플레이’입니다.”

“……아, 예.”

너무 상식 밖의 대답에 산전수전 다 겪은 형사의 뇌가 얼어붙었다.

지금 설백호의 머릿속에선 ‘그야 사람에겐 다양한 취향이 있을 수 있지’와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갔지 않나?’라는 생각이 어지럽게 섞이고 있었다.

허를 찔리는 바람에 내뱉을 말을 잊어버린 설백호를 두고 신요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잠깐 화장실 좀…….”

그렇게 양해를 구한 뒤, 레아를 데리고 사라졌다.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대화소리만큼은 희미하게나마 전해졌다.

‘그러게 호칭 좀 빨리 고치라고 했잖아!’

‘가, 갑자기 오빠라고 부르기엔 부끄러우니까 그렇지!’

‘‘아버지’는 안 부끄럽디!?’

‘그게 왜 부끄러워!? 아주 당연한 호칭이구만!’

왜 ‘오빠’는 부끄럽고 ‘아버지’는 당연한 걸까…….

왜 ‘오빠’ 쪽이 어색하고 ‘아버지’ 쪽이 자연스러운 거냐고.

형사 생활 10년이 다 되어가는 설백호였지만, 저들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 건지 먼지 한 톨 만큼도 예상할 수 없었다.

‘대체 뭘까, 이 괴짜들은…….’

설백호는 이내 반쯤 생각하기를 포기한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차를 들이켰다.

저 세 외국인도 충분히 괴짜지만, 설백호가 보기엔 저들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끼어있는 신요현 또한 만만치 않은 괴짜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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