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64화 (164/173)

〈 164화 〉 괴짜 주의보 ­ 3

* * *

“살펴 가십시오!”

굳이 배웅하러 나온 신요현의 인사를 뒤로 한 채 설백호는 멍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고는 어느 정도 떨어지고 나서 자신이 들어갔다 나온 저택을 돌아보았다.

뭔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함이 가득한 집이다.

신요현이 말한 유령과는 별개로, 그곳에서 살고 있는 이방인들 때문에 저택 자체가 하나의 이세계처럼 느껴진다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자신이 나온 곳이 사람 사는 집이었는지, 아니면 떡 벌어진 채로 있던 괴물의 입이었는지도 분간이 안 간다.

‘나중에…… 나중에 다시 오자.’

아직은 준비가 덜 된 게 분명하다.

최소한의 밑준비는 하고 와야 했다.

저 집에 다녀갔다는 메시지와 흔적 등을 남겨야 한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저 집에 뭔가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도록.

그래야만 만일 자신이 이 세상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게 된다 하더라도 괜찮을 테니까.

“역시 형사란 직업은 어렵다니까.”

저 맹수의 우리 같은 곳으로 다시 찾아갈 생각을 하니 식은땀이 몸에 맺혔다.

그럼에도 설백호는 갈 생각이다.

사람은 타인의 시선이 없는 장소에서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물론 선의로 무언가를 감추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비율을 따진다면 악의가 섞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신요현과 그 주변 인물들이 선인이던, 아니면 선량함으로 위장한 악인이던 그들에 대해 좀 더 파헤쳐봐야 한다.

설령 그것이 독사가 가득한 상자라는 걸 알더라도.

이 경우엔 독사 이상으로 위험한 맹수의 존재를 느꼈지만, 그럼에도 상자를 열고 본질을 확인해야 한다.

그렇기에 형사인 거다.

거기에 범법적인 무언가가 있다면 나서야 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의 성향은 이 직업과 잘 맞았다.

***

“어마어마한 불안 요소가 생겨버렸다.”

설백호 형사가 돌아가고 난 뒤, 나는 거실에 앉아 피곤에 절여진 목소리로 말하였다.

내가 앉은 탁자 건너편에는 레아, 레반, 레테라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오늘은 그냥 돌아갔지만 수상한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 버렸어. 다음에 올지도 몰라. 그땐 이번과 달리 작정하고 우리 사정을 파헤치려 하겠지.”

그 말에 레아는 손을 들며 물었다.

“묻어버리면 되지 않아?”

“와아. 이 느낌 오랜만이네. 환경 때문에 압도적으로 동떨어져 버린 가치관과 대면한 기분. 레반과 레테라는 겨우 교정시켰더니 이번엔 레아 차례냐……. 공권력은 건들면 안 돼.”

작게 한숨을 쉰 레아에게 고했다.

하지만 레아는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인다.

“이 게임판의 주인장이 외부의 개입을 싫어한다며?”

“그렇지. 하지만 솔선수범해서 막아줄 녀석도 아니야. 최악의 경우 간섭해오려는 사람의 제거를 우리에게 강요할 수 있어.”

율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때, 게임에서 튀어나온 이형의 존재들을 눈치 챈 공권력의 끝나풀이 접근해오는 걸 일일이 막는 것보다 그냥 소리 소문 없이 지워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도 아니라면 설백호 형사의 목숨을 던져놓고 죽일지 말지 양자택일을 강조하는 상황을 꾸밀지도 모른다.

역시 가장 좋은 전개는 설백호 형사가 우리를 조사해보려다 별다른 이상점을 발견 못하고 알아서 물러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설백호 형사는 그저 주어진 일에 열심인 선인일 뿐이야. 그리고 선인은 가능한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그를 해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나에게 악의를 가지고 피해를 주는 인물이 아닌 이상 그리 적대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마음을 담아 말하니 레아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솔레오스 같은 거구나.”

“솔레오스?”

꽤 그리운 이름이었다.

현실에서 만난 게 아닌, 그저 NPC의 이름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멸망이 다가오는 세상에선 사람들의 인정 또한 메말라가는 법이다.

음모를 꾸미고, 배신하고, 이용해먹고 뒷통수 치는 게 아주 사회적 기본 상식인 곳에서 솔레오스는 남자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 모험가는 모험을 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푸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

그런 성격 때문에 마음에 쏙 든 NPC였다.

“그때 솔레오스가 희망이 꺾이고 광기에 빠지려는 걸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잖아? 아버지는 다짜고짜 공격해오거나 통수치는 NPC는 문답무용으로 날려버리지만, 솔레오스만큼은 정말로 싸우기 싫어하는 게 느껴지더라고.”

“비슷한 NPC로 루틸로 있었습죠.”

“지크의 경우도 그랬어요.”

전부 글레이그 대륙을 여행하면서 만나본 NPC였다.

겨우 모니터 너머로 만나는 존재들에 불과했지만, 나에게 보여주는 순수한 선의와 험난한 세상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에 자꾸 정감이 갔지.

그 녀석들도 사실은 게임 속 NPC가 아닌 살아 있는 존재였을 것이다.

여기 있는 세 사람처럼.

왠지 그리운 이름이 자꾸 나오니 향수에 잠길 것 같았기에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를 되돌렸다.

“뭐, 아무튼. 내 말은 설백호 형사가 수색영장 들고 쳐들어오는 거나, 우리가 그를 집안에 감금할 수밖에 없는 사태는 피하고 싶다는 거야.”

“어? 영장이 나올 정도로 저희가 무슨 나쁜 짓 한 건가요?”

“…………원룸에서 지냈을 때부터 지금까지 너희가 저질러온 범법 행위를 싸그리 읊어주랴?”

천연덕스러운 레테라의 반응에 뒷골이 아파왔다.

원룸 파손과 공공재 기물 파손, 옷가게 습격…… 그리고 정당방위였다곤 하지만 조직폭력배들을 말 그대로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이들의 존재 자체엔 심각한 리스크가 동반되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우린 엄청 위태로웠다고. 설 형사가 그 자리에서 여권이나 비자증명서를 제시해달라고 했다면 바로 파국이었어.”

“여권? 비자증명서?”

“외국인이 이 땅에 사는 걸 허가받은 자격증 같은 걸로 보면 돼. 그걸 증명 못하면 불법체류자로 분류되고 말 거야.”

“그럼 저희도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어떻게 만들자는 거야? 너희는 외국을 넘어 아예 다른 세계에서 온 녀석들이라고.”

“위조도 안 되는 건가요?”

“그게 그리 쉽게 되겠냐? 허술한 위조는 금세 들통날뿐더러, 진짜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완벽하게 만들려면 그런 불법적인 영역에 전문적인 녀석들에게 맡겨야 돼, 근데 그런 놈들을 어디서 찾…….”

말을 이어가다 말고 입을 다물자 레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래?”

“……있어, 이 일을 맡길 만한 놈들이.”

“정말? 그럼 당장 맡기면 되잖아. 뭘 그리 고민하는 거야?”

“아니, 고민한다기보단…….”

나는 레반과 레테라에게 시선을 향했다.

예전 사건에 당사자라 할 수 있는 그들은 전혀 짐작 가는 게 없는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미안해서 그렇지.”

별로 선량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어떤 의미론 트라우마 스위치라 할 수 있는 우리와 만나는 걸 그리 좋게 여기긴 않을 것이다.

***

“이번 달 상납금은 모두 문제없이 들어왔습니다.”

“이번에 새로 시작한 주류 사업으로 이득을 꽤나 남겼습니다.”

“건설 사업 쪽도 준비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흐음.”

우정석은 상석에 앉아 지부장들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지금은 불곰파의 회의장이었다.

지금 불곰파는 과도기를 겪고 있다.

단순한 폭력조직이었던 그들이 기업처럼 움직이며 합법적인 사업에만 손을 대고자 했던 것이다.

원체 칼밥 먹던 사람들이 갑자기 온순해지라고 하면 반발이 없을 수가 없을 텐데, 이런 불곰파의 변화에 반감을 드러내는 인원 따윈 하나도 없었다.

몇 달 전, 진정한 ‘폭력’이 피부로 경험한 그들은 폭력조직 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큰맘 먹고 손 씻은 뒤 시작한 새 사업이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다니, 우정석의 입가가 조금은 풀어졌다.

그렇게 각 지부장의 보고가 끝날 무렵, 마지막 보고에서 조심스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그게…….”

“무슨 일 있나?”

“요즘 경찰이 저희를 들쑤시는 빈도가 늘어났습니다. 뭐라도 털어서 나와 보라는 듯이 자꾸 건들더군요. 다행히도 최근 합법적인 사업으로 전향한 덕분인지 책잡힐 구석은 내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경찰이라…….”

“살모사파 때문이겠죠.”

옆에 서 있던 비서의 말에 우정석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조용히 덮으려고 해도 사건의 규모가 너무 지나쳤어.”

불길한 기억을 떠올린 우정석은 몸을 으스스 떨었다.

지금도 간혹 꿈에서 그 광경이 떠오르곤 한다.

신체가 처참하게 파손되어 널브러진 수많은 시체, 그 붉은 물결을.

거대한 괴물이 나타나 일방적으로 사람들을 도륙내고 죽여 버린 일을 단 두 명이 저질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 시체의 뒤처리는 불곰파가 맡았다.

그 당시엔 그들을 돕는다는 거 외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하는 순간 자신들도 저 시체 중 하나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곰파가 나서서 핏자국을 지우고 남 몰래 묻어버린 시체의 숫자가 무려 50명이다.

50명의 인원이 하룻밤 사이에 증발한 것이다.

범죄 조직의 세계에서 사람 한둘 실종되는 거야 흔한 일이라지만, 50명이 동시에 사라지는 건 선을 과하게 넘었다.

뒷세계는 물론 양지까지 이어진 수많은 인간관계에서 50인분의 공백이 생겨버렸다는 거니까.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사건을 숨기려고 해도 어딘가에서 자꾸 정보가 샐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살모사파가 사라지고 그 남은 자리와 이권 등을 불곰파가 모조리 회수해갔다.

사람들이 불곰파가 무슨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 당연했다.

그렇기에 최근 들어 경찰이 그들의 조직 이곳저곳을 들쑤시는 거고.

“맹수들 쪽은 이상 없지?”

불곰파는 그들을 맹수라는 암호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서로 더 이상 접점을 만들지 말자고 합의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두려운 존재들을 모른척 하며 살아갈 수 없었다.

막말로 갑자기 마음이 돌변하여 자신의 목을 따라 온다면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는 전력 차이이지 않는가.

그렇기에 서로 접점이 없게 한다는 말은 지키되, 그들의 동향은 멀리 떨어진 채 지켜보는 형식으로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최근 이사한 집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모양입니다.”

비서의 말에 우정석은 안도했다.

그만한 흉성을 가졌음에도 그들은 착실히 조용한 삶을 살아가려는 모양이다.

갑자기 뒷세계의 권력을 탐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대로라면 그들에 관한 경계를 접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저, 근데…….”

그런데 비서의 말이 끝나지 않자 우정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뭐? 경찰들은 몰라도 그놈들 얘기할 때 말끝 흐리지 마라. 괜스레 불안하잖아.”

“아, 예. 감시하는 놈 말로는 최근에 동거인이 하나 더 늘었답니다.”

“동거인?”

“네. 금발의 미녀라는데요?”

“뭐지? 맹수들의 지인인가? 아니면 애인? 뭐, 누굴 만나든 그쪽 사정이지. 우리에게 피해만 안 오면 돼.”

“네, 그런데 그 여자 쪽도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뭔데?”

“맹수1,2와 주먹질로 피 튀길 때까지 치고받은 걸 목격했답니다.”

“………….”

회의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들의 마음속에 트라우마와 다름없을 정도의 충격을 남긴 맹수1,2과 비견되는 새로운 존재가 출현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팔!! 지금 장난해!?

“왜 맹수가 늘어나고 지랄이야?!!?!”

“혹시 잘못 본 거 아니야!?”

“맹수1,2만 하더라도 따로 감시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도 못 잘 것 같은 녀석들인데 맹수3까지 출현했다고!!?”

회의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우정석조차 그들을 진정시킬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비서에게 물었다.

“다, 다른 보고는 없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비서는 양해를 구하며 휴대폰을 꺼내들었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엔 오후 3시만 되면 정기 보고를 보내도록 되어 있는데……. 이놈이 농땡이라도 부리는 건지 오늘따라 늦는군요. 나중에 제대로 교육시키겠습니다.”

현재시간은 3시 20분.

보고하기로 한 시간을 20분이나 초과하였음에도 휴대폰엔 어떠한 메시지도 와 있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우정석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응? 잠깐만, 김 실장. 그쪽 감시는 성실한 놈으로 붙여둔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이쪽 세계일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정직하고 우직한 놈으로 붙여놨죠. 저쪽이 눈치 채지 않도록 가능한 같은 동네의 사는 사람이라는 정도의 거리를 두라고 지시했고요.”

“그런데 오늘만 보고가 늦어지고 있다는 거잖아?”

문뜩, 불길함이 스쳤다는 듯 우정석이 식은땀을 흘렸다.

“설마 들킨 거 아냐?”

그 순간, 회의실의 온도가 확실하게 내려간 것을 사람들은 느끼고 있었다.

그것을 느낀 비서가 황급히 말을 이어갔다.

“괘, 괜찮을 겁니다! 만약 들키게 되더라도 그저 스토커인 척 연기해두라고 지시해뒀습니다. 그쪽 집 아가씨들이 예쁘니 좋은 핑계거리가 되겠죠. 설사 남자 쪽을 감시하다 들켜도 게이라고 커밍아웃 할 정도로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높습니다! 절대 저희가 보낸 것이라 생각하진 않을 겁니다!”

그 정도로 철저한 놈을 붙여놨다면 설사 감시를 들켰다고 해도 불곰파에 피해가 올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인원들은 각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

우정석이 안심하며 커피잔을 들어올릴 때였다.

콰앙!!

“크, 큰일났습니다!”

밖을 지키고 있던 부하 한 명이 거칠게 문을 열고 나타나자, 커피잔을 입가로 가져가던 손도 자연히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설마? 아니겠지? 하는 심정과 염원을 모은 눈빛이 그 부하에게로 집중된다.

부하는 창백한 얼굴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간부들에게 말했다.

“‘사육사’가 ‘맹수’들을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쨍그랑!

우정석은 커피잔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다 식지 않은 커피가 우정석에 다리를 적셨지만, 그것만으로 등골을 타고 흐르는 한기를 지울 수는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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