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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65화 (165/173)

〈 165화 〉 다시 만난 불곰파 ­ 1

* * *

부르르릉!

웅장한 울림과 함께 검은 빛깔의 바이크 한 대가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정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부하들이 기다렸다는 듯 바이크 옆으로 다가와 도열하며 허리를 90˚로 숙였다.

“오셨습니까, 범균 형님!”

“오냐.”

헬멧을 벗고 얼굴을 드러내는 건 불곰파의 행동대장 범균이었다.

“형님…… 아니, 회장님은 아직 회의 중이시냐?”

“그렇습니다. 안 들어가 보셔도 되겠습니까?”

“됐어. 난 주먹 쓰는 게 천직이라 사업 쪽 이야기는 골치 아파.”

불곰파가 합법적인 방향으로 탈바꿈할 때부터 주먹을 쓰는 게 주된 업무였던 범균이 하는 일이도 자연히 적어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폭력 조직의 근간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니었기에 그는 조직 내에서도 높은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

솔직히 할 일은 적어지는 데 비해 수입은 그대로인 지금 상황이 범균은 나쁘게 여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월급만 타 먹는 도둑놈 소리를 예방하기 위해 할 일이 없을 때라도 종종 불곰파에 얼굴을 비추곤 했다.

“오오, 그 바이크 이번에 새로 뽑은 겁니까?”

“흐흐. 알아보겠냐?”

평소 친하게 지내던 부하가 범균이 타고 나타난 바이크를 알아보고 화제를 꺼냈다.

최근 무슨 액이 꼈는지 그의 신형 바이크가 파손되는 일이 연속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바이크를 사랑하는 범균은 포기하지 않고 적금마저 깼고, 결국 한 동안 타고 다니던 낡은 바이크가 아닌 삐까번쩍한 새 바이크를 타고 나타났다.

“이번엔 무려 배기량이 1000cc에 달하는 녀석이지. 아직 제대로 몰진 않았지만 풀악셀을 당겼을 때의 느낌이 어떠할지 벌써부터 기대 돼.”

“좋으시겠군요!”

바이크에 대해 잘 아는 부하는 물론 잘 모르는 부하까지 눈을 빛내며 호응한다.

후자의 녀석은 그냥 아첨하는 느낌이었지만 범균은 그냥 무시하고 그들의 떠받음을 즐기기로 했다.

그때였다.

장정 여럿이 대로변에 모여 바이크 관람을 하고 있는 동안, 그들의 뒤편으로 한 무리의 인영이 지나가며 건물을 향해 다가갔다.

“무슨 볼 일입니까?”

범균이 가져온 바이크에 혹하지 않고 정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은 명백히 이곳에 볼 일 있는 듯 다가오는 네 사람을 경계하며 물었다.

수상한 인물들이었다.

자고로 주먹 쓰는 세계에서 몰려다니는 녀석들을 좋아하는 놈은 없다.

쪽수가 곧 힘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몰려다니는 것 자체가 무력시위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은데, 하물며 이 자들은 행색이 수상쩍었다.

가장 앞에 어린 청년은 볼 것도 없다.

주먹 쓰는 직업으론 보이지 않고, 그냥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이나 하는 게 어울리는 흔한 젊은이였다.

문제는 그 뒤의 일행들이다.

하나 같이 마스크와 모자,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자신을 감추려는 기색이 노골적이다.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일 뿐이었지만, 셋 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특히 남자 쪽은 옷 위로도 두드려진 근육이 경비원을 절로 긴장케 했다.

한쪽 어깨엔 내용물을 알 수 없는 큰 포대가 걸쳐져 있었는데, 근육남은 무게를 느끼지 않는 듯 자연스러운 걸음걸이였다.

“우정석 씨를 만나러 왔는데요.”

수상한 존재감을 가진 이들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때, 앞에 있던 청년이 말했다.

혹시 저 세 사람의 똘마니인가?

경계심이 생기는 와중 만만한 놈이 보이니 경비원의 말투도 절로 가벼워졌다.

“약속을 잡고 온 건가?”

“아뇨. 받은 연락처도 지워버려서 그냥 찾아온 겁니다.”

이건 또 뭔가 했다.

자신들의 회장 이름이 나왔을 땐 회장의 지인인가 했는데 약속도 뭣도 없이 무작정 찾아온 거라니.

“약속을 잡지 않고, 신원도 불분명한 자들을 들여보낼 순 없다. 돌아가.”

경비원은 잡상인 쫓아내듯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청년의 표정은 미동이 없었다.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을 거란 걸 예상한 듯, 오히려 순탄한 쪽이 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야, 여기 맞지?”

청년이 바라본 건 덩치 큰 근육남이었다.

그러나 말을 건넨 대상은 그가 아니었다.

청년의 말에 짊어지고 있던 포대가 꿈틀거리더니 입구가 벌어졌다.

그리고 스스로 벌어진 입구로부터 웬 사람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이곳에 오기 전에 끔찍한 꼴을 당한 듯 머리가 산발되고, 한쪽 눈가는 멍들었으며, 이빨은 하나 나가 있는 그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 여기가 맞습니다. 이 시간이면 이곳에서 지부장들과 회의하고 있을 겁니다.”

짊어지고 있던 건 사람을 담은 포대였다.

그것도 폭행이나 고문을 당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 모습을 본 경비원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너, 너……!”

포대에 담긴 남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조직의 사정을 알고 있는 걸 보면 자신이 모르는 조직원 중 하나가 분명했다.

그런 그를 붙잡고 나타난 이들의 행태는 명백한 선전포고였다.

“수상한 자다!! 잡아!!”

당연히 경비원은 이변을 알렸고, 주변에 있던 조직원들도 구역 내에 들어온 수상한 자들의 존재를 인지했다.

그 중엔 당연히 바이크를 자랑하던 범균도 섞여 있었다.

뭔 일인가 하며 고개를 돌린 그의 얼굴이 곧장 창백하게 질렸다.

“이 새끼들!! 어느 조직에서 보냈냐!?”

경비원은 거친 욕설과 함께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청년이 입을 열었다.

“레테라.”

“네, 오라버니.”

“가급적 큰 상처 없이 공포감만 잔뜩 느끼는 방향으로 처리 부탁해.”

“그냥 때려죽이는 것보다 어렵네요. 뭐, 그래도 오라버니의 말씀인데 해야죠.”

덥썩!!

청년, 신요현을 향해 날아오던 주먹을 레테라가 도중에 캐치했다.

분명 작고 고운 여성의 손이었다.

그런데 그 손에 붙잡히는 순간 경비원은 두꺼운 무쇠 족쇄가 손목에 채워진 느낌을 받았다.

“에잇.”

“어, 어엇!?!”

그 순간 경비원의 심정을 말하자면, 자신의 몸에 커다란 종이 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긴 종이가 바람에 낭창거리듯, 체중 90kg가 넘는 경비원의 몸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허공에 띄워졌다.

뒤집힌 하늘과 대지.

그런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여성.

그녀는 상체와 팔을 휘게 하며 수면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듯 경비원을 휘둘렀다.

챙그라아아앙!!!!

날았다.

인간이 도구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정문에 있던 유리 회전문이 돌아갈 여력도 없이 깨져나가고, 경비원은 그 너머로 날아갔다.

그는 이 부유감을 좀 더 느끼고 싶었다.

인간이 하늘을 나는 진귀한 경험에 감동한 게 아니다.

그저 달리는 차 위에서 내던져진 듯한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자신의 몸이 지면과 충돌했을 때 충격을 감당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중력을 이길 수 없고, 경비원은 깨진 유리파편과 함께 온몸이 갈려 나가는 충격을 느끼며 사납게 바닥 위를 나뒹굴어야 했다.

우당탕탕!!!

“단철아!!”

이 광경을 목격한 조직원들이 건물 안쪽으로 날아가 버린 동료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들보다 더욱 당황한 듯 보이는 범균이 흥분한 듯 외쳤다.

“미, 미친!! 저 등신 새끼 밟아 족쳐!!”

“아, 알겠습니다!!”

“개자식들! 감히 어디에 싸움을 건 건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마!”

범균의 말에 조직원들은 저마다 전투 태세를 갖추고 침입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뒤통수를, 특히 개자식들이라고 욕했던 부하의 뒤통수를 범균이 있는 힘껏 후려치며 욕했다.

“미친놈들아!! 저분들 말고 저 날아간 병신 새끼 밟아 족치라고!!”

“네, 네……?”

수상한 자들이 아니라 날아가 버린 동료를 밟아 족치라는 범균의 명령을 부하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씨팔!! 요즘 조직 상태 개판이네!! 너네 신입 교육 안 받고 들어왔냐!? 불곰파 정신 교육 중에서 가장 첫 번째로 가르치는 게 뭐였어!?”

“어? 그거 신입들 놀려먹으려고 하는 장난 아니었…….”

뻐억!!!

한 부하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범균의 발차기가 그의 복부에 작렬했다.

고통과 함께 쓰러지는 부하를 향해 성난 범균이 외친다.

“넌 지금 이게 장난 같냐아아아!?!?! 그 쓸모없는 눈깔 당장 뽑아줄까!?!!”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이쪽 일과 어울리지 않을 만큼 평범해 보이는 남자’가 외국인들과 함께 찾아오면 절대 시비 걸지 말고 윗선에 먼저 보고하라고 했잖아!!! 저 날아간 쓰레기 새끼 당장 치워버려!!!”

“네, 넵!!!”

부하들은 더 이상 물어오지 않았다.

그저 의심과 경계심, 그리고 공포가 한 되 섞인 시선으로 신요현 일행을 지나치고 쓰러진 경비원을 치웠다.

그리고 범균이 냅다 달려와 일행들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저희 멍청한 부하들이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사과는 됐어요. 그나저나 지금 우정석 씨 만나러 가도 되죠?”

“얼마든지요!!”

“조직이 커지니 저희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도 여럿 생긴 모양인데, 덤벼오는 사람이 있으면 적당히 날려버리고 가겠습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아주 그냥 뼈를 부러뜨려도 됩니다!! 저희가 뒤처리하겠습니다!!”

“뭘 그럴 거까지야…….”

과한 반응에 쓴웃음을 지은 신요현은 깨진 유리를 넘어 건물 내부로 들어갔고, 레아와 레테라가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한 그림자만은 고개 숙인 범균 앞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바닥에 보이는 그림자의 주인을 짐작한 범균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 소리 없는 대치를 이어갈 수 없었기에 범균은 슬쩍 고개를 들었다.

“…….”

“오, 오랜만입니다.”

범규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을 주시하는, 정확히는 자신의 뒤편을 주시하는 레반에게 말하였다.

그때 먼저 들어간 그의 일행에게서 소리가 들려왔다.

“야, 뭐하고 있어, 근육 돼지! 빨리 따라와!”

“그래, 알았다.”

그 소리에 답한 레반은 범균에게 한마디를 남기며 떠났다.

“바이크 좋아 보인다?”

레반은 그저 순수한 의도 말했을 뿐이다.

그는 더 이상 바이크를 강탈하거나 하진 않는다.

그랬다간 형님에게 혼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탐내는 마음 하나 없이 순수하게 멋진 바이크를 바라보며 좋아보인다고 했을 뿐이다.

허나 범규는 그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였다.

신요현 일행이 지나가고, 의식 불명의 경비원을 치우고 돌아온 부하들을 향해 범균은 말하였다.

“휘발유 가져와.”

“네!? 어째서입니까!?”

“닥치고 가져와! 빼앗길 바에야 차라리 내 손으로 태워버리겠어!!!”

범균은 새로 뽑은 지 48시간도 채 되지 않은 자신의 바이크와 눈물 나는 작별을 나눠야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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