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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70화 (170/173)

〈 170화 〉 폭풍전야 ­ 3

* * *

처음부터 싫은 여자였다.

플레이어란 캐릭터에게 세상의 전부. 태어나는 순간 세상보다 먼저 영혼에 맞닿는 존귀한 존재.

우리가 처음 세상에 나와 오라버니를 만났을 때, 저 여자만은 오라버니를 거부하듯 떠나갔다.

신과 동격인 오라버니의 말도 듣지 않는다.

위협하고, 화를 내고, 가시를 내보이고, 그런 주제에 자신이 가장 그분을 잘 알고 있는 것 마냥 행동했다.

짜증났다. 불쾌했다.

너희가 모르는 오라버니의 시간을 자신만은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얼굴을 갈가리 찢고 싶은 충동이 올라오려 했다.

그것을 표출하지 않는 건 심플한 이유다.

오라버니가 원하지 않기 때문.

정말로 우리끼리 선을 넘어 어느 한쪽이 죽게된다면, 그분은 정말 진심으로 분노하고 또한 슬퍼하게 되기 때문.

그분이 고통을 겪을 바에야 차라리 자기 자신을 죽이는 쪽이 훨씬 나았다.

그렇기에 집 나갔던 그 여자를 한 식구로서 집안에 받아들였다.

실제로 오라버니가 속으로 앓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했기도 했고, 더 이상 오라버니에게 반항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 오라버니가 저 여자를 아끼는 모습을 볼 때마다 충동이 또다시 나가겠다고 날뛰곤 한다.

이번 이벤트만 해도 그렇다.

단 한 명만 데려갈 수 있다는 제한 조건 속에서 오라버니가 택한 것은 나도, 근육 돼지도 아닌 그 여자였다.

아아, 제갈량과 친하게 지내는 유비를 보고 관우와 장비가 질투했다는 이야기가 바로 이러할까?

오라버니가 만든 첫 번째 캐릭터.

자신이 죽을지도 모를 위험한 이벤트에 데려갈 만큼 신임을 얻고 있는 여자.

정말이지…….

……진심으로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질투 나.

***

콰아아아아아앙!!!!

“오옷…!”

치켜든 대방패를 때리는 두 자루의 칼날.

거기에 실린 힘에 밀린 레아는 놀란 눈을 하며 몇 걸음 물러났다.

쌍검을 휘두른 레테라의 힘이 예상 이상으로 컸기에 놀란 게 아니다.

무식하게 힘만으로 휘두르는 일격이 그녀답지 않다고 느낀 것이다.

“너무 악을 쓰며 하는 거 아냐? 기량캐의 느낌이 안 살잖아.”

쌍검 같은 경량 무기로 대방패를 힘껏 쳐 봤자 데미지가 쌓일 리 없다.

그보다는 가장자리를 노려 방패의 방향을 틀어지게 하거나 팔에 부담을 지속적으로 가하는 게 올바른 전투법일 텐데, 냅다 둔기처럼 방패를 후려치는 레테라의 모습에 레아가 혀를 쳤다.

“시끄러.”

“눈빛 봐라. 시선만으로 사람 죽이겠어.”

신요현과 연성화는 대련이라고 말했지만, 그런 것치곤 거기에 임하는 녀석들이 살기가 등등했다.

지금 레아를 노려보는 레테라의 눈빛도 그렇고, 측면으로 치고 들어오는 레반의 대검도 그렇고.

콰아아아아아앙!!!!

“엇차.”

레아는 육중한 갑옷을 입고도 날렵한 스탭을 밟으며 대검이 떨어지는 장소에서 벗어났다.

그 움직임에 반응에 레테라가 달려들어 쌍검을 휘둘렀고, 거기에 레아가 대방패를 내민 순간 반 박자의 차이를 두고 그녀를 뒤쫓아온 레반이 대검을 휘둘른다.

콰아아아아앙!!!

분명 공격은 다른 방향, 다른 타이밍에 들어왔건만 터져 나오는 소리는 하나였다.

레아가 대방패와 도끼를 동시에 휘둘러 양측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쳐낸 것이다.

문제없이 막아낸 듯 했지만, 뒤로 물러나는 레아의 양팔이 가늘게 떨렸다.

힘을 아끼지 않고 전력으로 휘둘러오는 공격을 완벽하게 흘리거나 상쇄하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고, 무기를 쥔 두 팔엔 미약한 대미지가 감돌았다.

“쌩쌩 날아다니는구만. 역시 성직자의 버프가 있고 없고는 기세부터가 다르단 말이지.”

번쩍!!

레아의 말과 동시에 하늘에서 폭죽 같은 빛이 번쩍였다.

쏟아지는 마력화살. 그것을 막아내는 신성한 방패.

그 와중에 반격이라는 듯 거대한 빛의 창이 나타나 레아의 머리 위를 지나쳤으며, 그것의 표적이 된 스콜은 단거리 블링크를 시전에 공격을 피했다.

레아, 레반, 레테라 같은 전투직이 근접전을 벌이고 있노라면, 스콜, 하티와 같은 특수직이 버프와 원호, 원거리 욕격을 해주는 형식으로 싸움은 이어지고 있었다.

레반과 레테라.

평소라면 레아의 힘이 좀 더 우위에 있었지만 2대 1로, 그것도 신성력 버프로 능력치가 올라간 두 사람을 상대하려니 확실히 버거운 감이 있긴 했다.

하지만 레아는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입 꼬리를 쓱 올리는 여유를 가진 채 말하였다.

“너희들, 형제가 왜 사이가 나쁠 수밖에 없는지 알아?”

“……?”

“뭐라고?”

뜬금없는 질문에 거리낌 없이 표출되던 레반, 레테라의 살기에 제동이 걸렸다.

두 사람의 압박 때문에 쌓인 피로를 회복하기 위한 시간 벌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그 정도까지 싸움이 격해지진 않았고, 그런 시답잖은 수작을 부릴 성격도 아니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일이었기에 오히려 레아가 던진 물음은 두 사람의 주의를 끌어 모았다.

“간단해. 형제가 사이 나쁜 이유는 부모 때문이야. 정확히 말하면 부모의 ‘사랑’일까?”

힐끔, 하고 레아의 은색 눈동자는 안전하게 떨어진 장소에서 자신들의 대치를 지켜보는 신요현의 모습을 훑었다.

“우리는 모두 저 남자의 자식이야. 자식이 부모로부터 사랑 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건 당연하지. 하지만 형제가 생기면 그 사랑이 분산되거든. 때로는 자신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기도 하지. 그래서 형제는 필연적으로 사이가 나쁠 수밖에 없어.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다툼이 항상 거기에 깔려 있거든.”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다.

성장하면서 다툼의 이유가, 재산, 권력, 개인적인 이유 등으로 바뀌긴 하지만, 가장 원초적인 다툼에는 사랑이 있을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 가장 강조되는 감정이 불화의 씨앗이 되는 건 의외로 흔한 일이다.

레아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미 알고 있지? 이 대련은 너희들을 위한 거야. 아버지는 이미 날 선택했지만, 잠자코 따르라고는 하지 않겠지. 너희들이 불만을 속으로 꾹 누르고 있을 거란 걸 아니까. 그러니까 몸으로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 거야.”

이 싸움은 선택받지 못한 캐릭터들을 위한 배려다.

그들이 불만을 쌓아두지 않고 표출할 수 있도록. 그로인해 이들의 사이가 틀어지지 않고 좀 더 원활한 관계를 만들 수 있길 바라며.

“이걸 내가 말한 형제 관계에 비유하면 그거야. ‘넌 이만큼 받았으니 동생들에게 조금 나눠주련?’하고 일부를 떼어가 너희에게 나눠주는 거지.”

거기에 비해 레아와 스콜은 자원 봉사인 셈이다.

선택받지 못한 자들을 위한 작은 이벤트에 어울려주고 있는 것이다.

“난 나눠주기 싫은데.”

문뜩, 어린아이의 칭얼거림에 가까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만을 바라봐줬으면 좋겠는데. 나만을 사랑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리 쉽게 되지 않으니 짜증이 난다니까.”

쿵!

묵직한 울림과 함께 레아의 도끼가 어깨에 걸쳐진다.

동시에 감겨 있던 눈꺼풀이 올라왔고, 거기에 담긴 건 레반, 레테라에 비견될 정도의 질투와 살의였다.

“쳐죽이고 싶을 정도의 질투심을 참고 있는 건 늬들만이 아니야, 망할 동생 새끼들아.”

후욱!!

그 순간, 레아의 신형이 사라졌고 레테라는 좌측으로 쌍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쌍검이 속도를 끌어올리는 것보다 먼저 거대한 벽과 같은 대방패가 레테라의 측면을 파고들어왔다.

콰아아앙!!!

방패의 충돌을 막아낸 팔과 어깨, 다리의 갑옷이 삐걱거린다.

레테라의 가벼운 몸이 공중을 날았고, 그것을 쫓아 레아가 도끼를 휘둘렀다.

그 일련의 흐름을 끊어내기 위해 레반이 대검을 들고 달려들었으며, 레테라 충격의 여파를 억누르고 반격을 위해 쌍검을 휘둘렀다.

“누구더러 동생이래, 쌍년아?!”

“네 년을 누이로 인정한 적 없어!!”

레아가 반격해온 사실보다 감히 자신을 동생 취급 했다는 사실에 더 빡친 듯 레반과 레테라가 외쳤다.

그렇게 세 종류의 무기가 어지럽게 교차하려는 순간, 그들 사이에 푸른빛이 터져 나오며 상대방을 밀어내었다.

밀려나온 건 레반과 레테라였다.

“……!”

“인챈트?”

하티의 신성력 버프로 인해 강화된 신체가 강한 반발력에 밀려났다는 사실에 레반이 놀랐고, 레테라는 그 힘의 정체를 파악하였다.

레아의 대방패와 도끼에는 전에 없던 푸른빛이 맺혀 있었다.

틀림없이 마력으로 강화한 흔적이었다.

레반, 레테라가 하티의 신성력으로 육체를 강화했다면, 레아는 스콜의 마법으로 무기 자체의 힘을 강화한 것이다.

타아앙!!

놀라고 있을 겨를도 없이 레아가 달려들었다.

그녀의 주위로는 하티를 견제하던 스콜이 날린 마력 화살 수어 개가 함께 하고 있었다.

이전까지 협공에 밀려나던 것과 달리 이번엔 대놓고 두 사람 사이에 파고든 레아가 종횡무진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도끼날의 예리함과 방패의 묵직함, 마법의 눈부심이 지상에서 터져 나왔다.

콰과과아앙!!!

레반과 레테라는지지 않고 반격했다.

검과 날이 부딪쳐 공기를 찢고, 중량과 벽이 굉음을 울린다.

동시에 레반과 레테라를 강화하던 신성력에 흔들림이 생기기 시작했다.

뭔가 했더니, 레아가 두 사람을 상대 하면서 동시에 돌 등을 걷어차 하티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을 상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한 명 더 견제라니.

틈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 행위였지만, 그렇지 않았다.

레아의 방패가 빠져나가는 공간을 메꾸듯 스콜의 마법이 날아왔고, 그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의식을 움직인 순간, 그 찰나의 사각을 레아의 공격이 무섭도록 치고 들어온다.

‘이놈들……!!’

‘콤비 플레이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분명 양측 다 근접과 원거리의 조합이고, 숫자는 레반과 레테라 측이 더 유리했다.

그런데 밀리고 있다.

레반, 레테라, 하티가 힘을 합치는 시너지가 레아, 스콜이 힘을 합치는 시너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앙!!!

물리력과 물리력. 신성력과 마력이 한 곳에서 부딪친 충격이 세 사람을 떨어지게 만들었다.

뒤로 물러나던 레반과 레테라는 아까보다 훨씬 냉정해진 얼굴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아무래도 검에 감정 싣는 건 여기까지 해야겠군.”

“오라버니가 지켜보시는 싸움에서 꼴사납게 패배라는 추태를 보일 수 없지.”

마찬가지로 뒤로 물러나던 레아 또한 등 뒤에 스콜을 향해 말했다.

“스콜, 전투 레벨 한 단계 더 끌어올려.”

“이 이상 더? 이미 대련이라고 부를 레벨을 지났다만?”

“저놈들 눈빛 번들거리는 것 봐라. 스릴 넘치는 싸움에 흥분한 눈빛이라고. 하여튼 이상한 부분이 아버지를 쏙 빼닮은 녀석들이라니까.”

‘그건 너도 만만치 않은 것 같은데.’

스콜은 저들과 마찬가지로 번들거리는 눈을 한 레아를 보며 든 생각을 속으로 삼켰다.

닮은 건 저쪽만이 아닐 테니까.

레반과 레테라의 뒤편을 바라보자 엄청난 신성력을 끌어모으는 하티의 모습을 보였다.

일반인의 시각으로도 관측이 될 만큼 하티의 신성력은 그녀의 주위로 농밀하게 모여 있었다.

후광이 비치는 듯한 그 모습은 신이라도 현신한 것 같았다.

단, 신이라도 광기 어린 신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훗.”

피부에 파고들 정도의 압력에 오히려 호승심이 끌어오른다는 듯 스콜은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그 또한 마력을 끌어 모아 주변의 공간을 푸른색으로 덧칠시켜 갔다.

콰가가가가가아아앙!!!!

격전이 이어진다.

신성력과 마력이 맞부딪치며 대지가 쪼개지고, 중력을 잃은 듯 파편이 위로 솟구친다.

그리고 그런 낯선 사냥터를 제집처럼 활보하며 서로 뒤엉키는 세 마리의 맹수들.

4D 블록버스터 영화마저 빛바래버릴 정도의 전투를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구경하던 신요현과 연성화는 저마다 한마디씩 중얼거렸다.

“잘 들 노네.”

“그러게.”

제발 산 하나를 작살내기 전에 싸움을 끝내주길 속으로 바라며 그들은 남아 있는 팝콘을 먹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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