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입학 당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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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빛 열차가 철도를 달리고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 빛에 반사되어 테두리마다 번쩍이는 빛무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차체 전부가 순수 황금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으나, 가히 천문학적인 금액을 물처럼 쏟아부어 사치스럽게 금칠했음은 틀림이 없다.
1세기 이전의 위인들이 합심하여 고안해 낸 마력 열차는, 평민 4인 가족 기준 한 달 생활비에 맞먹는 게이트 이용비를 지불할 여유가 없었던 기존의 서민들을 위한 교통수단이었다.
해가 지날수록 무시무시하게 불어나는 제국 수도 인구의 유동성을 고려하면, 탁월한 발명이 아닐 수가 없었다.
다만 아직 대륙 전역을 횡단할 수준은 못 되었다. 제국을 제외한 나라들은 국고가 흔들릴 정도의 건설과 운용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하여, 오직 대륙에서 가장 강대하고 부유한 제국만이 마력 열차를 소유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공을 들였음이 돋보이는 황금의 열차는, 거쳐 가는 역 하나 없이 제국 수도의 중심을 가르며 종착지로 향하고 있었다.
닫힌 창문 아래로 보이는 것은 고풍스러운 건물들의 숲이다.
사이사이로 지나다니는 건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인영들이다.
시선을 위로 올려보면.
구름에 닿을 정도로 드높이 솟은 중앙 시계탑과, 아예 구름을 뚫고 상반신을 하늘 위에 감춰버린 건축물이 보인다.
세상 모든 지혜와 지식을 담고 있다는 아카샤의 별(?).
과거 분열된 세 개의 마학파를 모조리 흡수함으로써 탄생한 거대 마탑이다.
설립 이후로 쭉 마학의 정점에 군림하며, 그 위명과 위세를 백 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그 왼편에 위치한 황성의 전경은, 감히 웅장하단 말로는 설명이 부족할 정도였다.
겹겹이 쌓인 성벽 가운데 황제의 궁전이 있다. 저 궁전 내부, 멀지 않은 거리에 위대한 제국을 통치하는 황제가 있을 것이다.
거주 인구 수백만에 달하는,
태양과 황금의 도시.
여기가 바로 솔라 제국의 황도(??).
헬리오스였다.
열차는 계속하여 철도 위를 질주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치 이면세계에 들어온 것처럼, 창문 밖에 깔린 주변 풍경이 거짓말처럼 확 바뀌어버린다.
특급 열차의 종착지는 바로 이곳이었다.
터널을 통과하여 보이는 것은……
하나의 도시였다.
싱그러운 봄의 색으로 물들어 생기 가득한 길거리가 아름답다. 벚나무 아래를 지나는 학생들에게서 젊고 활기찬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공기를 가볍게 마시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 학생들의 거대한 도시에, 수만 명의 소년 소녀들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높낮이가 다양한 건물의 개수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이 도시를 처음 찾는 이들은 대개 넋을 놓고 제국의 역작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다.
교육, 편의, 유흥, 거주 등… 오로지 도시의 학생만을 위한 최상, 최고급의 시설들이 거리마다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 찬란한 도시의 이름은,
세기를 호령한 영웅들의 고향이자 새로운 별이 태동하는 곳. 제국 위의 또 다른 제국. 학생의 신분으로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찬란한 성공이 보장된다는 황금빛 꿈의 도시……
황립(??) 프론티어 아카데미.
끼이이익——
열차가 천천히 속도를 늦추었다. 느릿하게 철도를 걸어가던 열차는 곧 어느 한복판에서 정차했다.
창문 밖으로 프론티어의 입구가 보였다.
그 앞은 이미 무수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프론티어 유니폼 차림의 학생들뿐만 아니라 고고한 귀족들마저 발에 채일 정도로 즐비했다.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든 제국의 대귀족이 몇 있는가 하면, 제후국의 왕이나 그에 버금가는 고위 귀족들 역시 몇 보였다.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게이트가 무수한 사람들을 토해낸다. 물결치며 일렁거리는 경계면으로부터 긴장한 표정의 학생들이나 그들의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 차츰 걸어 나온다.
경비를 위해 배치된 제국의 기사들은 혼란을 통제하고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설 수 있도록 분주히 뛰어다닌다.
여러 국가의 주요한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만큼 더욱 철저한 감시와 통제가 필요했다.
귀빈들 전용 통로가 있긴 하지만, 그것도 개수가 한정되어 있기에 대기줄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평소에는 이렇지 않다. 유동 인구가 많긴 하지만 이 정도로 시끌시끌하게 바글거리는 일은 거의 없다.
하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가.
그것은 바로, 오늘이 바로 초봄의 계절이 다가오는 3월의 중순.
황립 프론티어 아카데미 신입생들의 입학식 당일이기 때문이다.
열차는 이미 정차한 지 오래였다.
치이이익—!
열린 문으로부터 사람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간다.
열차 내부가 쿵쿵 울렸다. 각기 다른 여러 쌍의 다리가 가림막 아래로 지나간다.
대다수가 프론티어 학생들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이번에 입학하게 될 신입생들.
몸을 일으켰다.
살짝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고개도 한번 위로 쭉 꺾어본다. 뿌득, 하는 소리가 나면서 곧 시원한 감각이 관절 부근에 일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열차를 탔는데, 극상의 부드러움을 자랑하며 워낙 푹신하고 편안했던 소파 덕분에 별 불편함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주머니에 든 학생증을 잃어버리지 않게 잘 보관한다. 위치 추적의 주문 각인이 새겨져 있어서 혹여 잃어버리더라도 금방 찾을 수야 있겠지만은.
밀봉된 우편으로 받았을 당시 봉투 안에 게이트 이용권도 같이 들어 있었는데, 느긋이 여행하는 듯한 운치를 느끼고 싶어서 일부러 열차행을 택했다.
결과는 대성공.
타고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옷매무새도 흐트러짐 없이 정리한 이후.
가벼운 짐이 든 캐리어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드르르륵……
그대로 끌고 객실을 나서는데, 때마침 칸을 지나던 프론티어 유니폼의 여학생과 맞닥뜨렸다.
“어……”
살짝 경직된 얼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각이 잡혀 오히려 뻣뻣한 자세. 어지간히 긴장한 걸 보니, 누가 봐도 신입생이었다.
적갈색 유니폼 오른쪽 상단에 새겨진 문양을 눈으로 훑었다. 나와 같은 클래스는 아니었다. 일반 프론티어 학생인 듯하다.
정확히 어디의 무슨 클래스인지는 알 수 없다. 프론티어 내부에 존재하는 클래스의 개수는 수십 여개를 넘어간다.
문양 한 번 슥 보고서 이름을 바로 알아낼 수 있을 정도로 프론티어에 빠삭한 건 아니라, 따로 관심을 두진 않았다.
“아, 으……”
귀부터 볼까지 전부 불그스름하다.
홍당무를 사람 모양으로 빚으면 저리 되지 않을까. 날 올려다보던 눈동자도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핑글핑글 돌고 있다.
저래서 친구나 잘 사귈 수 있을런지.
내가 먼저 지나가기 전까지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듯했기에, 힐긋 던졌던 시선을 거둔 뒤 캐리어를 끌고 출구로 향했다.
잠시 뒤.
“……사람 뒤지게 많네.”
그대로 출구를 나서니 시야가 확 트인다.
— 거 참, 줄을 서시라고요! 줄을!
— 삐이이이익! 거기 멈춰!
— 자네, 내가 누군지 모르겠나? 응? 내가 어디서 이런 대접 받고 다니는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 아이 씨, 누가 자꾸 밀치냐?!
멀리서도 선명했던 아우성들이 점차 증폭된다.
이건 뭐……
무슨 대규모 집회도 아니고.
구석마다 공간을 꽉꽉 채우는 바글바글한 인파가, 아무래도 저길 뚫으려면 적잖은 수고가 필요할 것 같다는 예감을 주었다.
벌써 기운 빠진다.
여기 가만 있으면 알아서 들여보내주는 것도 아니고.
일단 지금 줄을 서지 않으면 계속해서 충원되고 있는 대기열에 밀려 한참 뒤에나 입장이 가능해질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캐리어를 질질 끌며 계단을 내려간다.
……그런데.
역을 통과해 입구까지 걷는 내 주변으로, 알지 못할 이들의 목소리가 날아든다.
— 오오… 저게 바로 제국의 미래인가?
— 확실히 달라도 뭔가 다르구만.
— 이번 기수에는 평민 출신이 둘이나 섞여 있다지? 부럽군, 부러워. 타고난 재능 하나로 세상을 굽어보게 된다니 말이야……
공식 행사에 참석하기로 내정된 귀빈이나 학생 등 프론티어 관계자가 아니라면, 외부인은 프론티어 내부에 한 발자국도 들일 수 없다.
때문에 자기 자식을 배웅하고서 열차에 오르는 부모들이나, 추천장을 통해 제자를 입학시킨 교수들이 게이트로 향하는 도중, 그들의 시선이 한순간 이쪽으로 머물렀다 사라지는 것을 본다.
시끄러운 소음 속에 수군거림이 섞여들었다.
— 저거, 그건가? 문양 보면 맞는 거 같은데?
— 와, 와와, 존나 내 취향…… 츄릅.
— 꼭 저런 애들이 실속 없더라. 까보면 답 나오지.
— 뭐래, 적어도 너보단 세 보이는데?
나를 비롯한 신입생들은 주변에 널리고 널렸음에도, 신기한 생물을 본다는 듯한 눈빛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아는 신입생들은 감탄 내지 질투하는 눈치고, 모르는 신입생들은 사람들 따라 날 쳐다보다가 뭔가를 알아챈 뒤 짧은 탄성을 흘린다.
살짝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주목받는 일에는 그닥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그렇게 따끔거리는 시선들을 대충 흘려 넘기고 도착한 대기열의 끝.
……슬쩍 앞을 보면 적어도 삼십 분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이해는 한다. 족히 수천에 달하는 신입생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것이다. 다른 인원까지 죄다 합치면 입구가 터져 나가는 게 정상이다.
물론 도시의 입구는 여기 말고도 존재하나, 그쪽 상황 역시 이곳과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었다.
각 클래스마다 입학식의 시간 차야 조금씩은 있겠지만 대부분은 오전 10시로 통일된다.
현재 시각은…오전 9시를 막 넘긴 참이었다.
좀 빠듯하려나.
프론티어 내부에 따로 이동수단이 있긴 해도, 지금부터 한 시간 내로 도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툭, 툭.
그렇게 한 손에는 캐리어 손잡이를, 다른 한 손으로 손목시계를 보면서 대충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하고 있을 즈음에.
“학생 분.”
“……?”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리고 묻는다.
“혹시, 에픽 클래스 신입생이십니까?”
제식 복장의 기사였다. 이번 입학 행사의 경비를 위해 파견되었을 터. 바쁘게 뛰어다닌 모양인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내가 되물었다.
“……네, 그런데요?”
“아, 에픽 클래스 재학생 분께는 귀빈 전용 통로가 따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시면 기다리실 필요 없이 바로 입장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안내해 드릴 테니 따라오시지요.”
뭐야, 그런 특혜도 있었나?
이 지옥 같은 열기 속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뭐든 좋았다. 고개를 끄덕이자 기사는 등을 돌려 귀빈 전용 통로로 날 인솔한다.
기사의 말에 이쪽으로 시선들이 모여들었다가, 곧 불평하며 궁시렁거리는 듯한 수군거림이 일었지만 무시하고 기사를 따라 이동했다.
도시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높은 성벽이 아닌 무형의 막이다. 드넓은 프론티어의 전경을 어디서든 눈에 담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결계의 견고함과 보안 성능은 외부 침입에 의한 사건 사고가 백 년의 역사 중 단 한 건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저곳입니다.”
도시의 경계를 따라 빙 둘러 걸으니, 곧 게이트처럼 생긴 구조물 앞에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숫자는 입구에서 쭉 대기하던 이들의 처지가 측은해질 만큼 현저히 적었다.
……세상 참 불공평하군.
저 정도라면 기사의 말처럼 바로 입장이 가능할 듯하다.
문득 기사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들어가기 전에 잠시 학생증을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예.”
스윽.
유니폼 주머니에서 테두리가 금색으로 칠해진 학생증을 꺼내어 기사에게 보여주었다.
“음……”
위조된 것은 아닌지 면밀히 살펴보고, 학생증 안의 사진과 내 얼굴을 번갈아 확인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에지오 크라닐, 확인했습니다. 이제 입장하셔도 좋습니다. 저쪽으로 가시면 간단한 확인 절차 후에 들어가실 수 있을 겁니다.”
“예, 덕분에 감사했습니다.”
기사는 바쁜 듯 자리를 빠르게 떠났다.
우두커니 남겨진 내가 기사로부터 돌려받은 프론티어 학생증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
기분이 참 묘하다.
프론티어 입성을 평생의 목표로 내건 뒤 죽을 각오를 다해 노력하긴 했지만, 진짜 이루어질 거라곤 생각지도 않았다.
밤하늘의 별처럼 아득히 멀지만 동경하는 것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지 않는가. 직접 손을 뻗어 닿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그랬던 일 년 전의 에지오 크라닐과.
지금의 에지오 크라닐은 뭐랄지…
차라리 동명이인이라고 보는 게 옳았다.
내 스스로 이리 말하는 것도 참 우습지만은.
도무지 같은 사람이라고 보긴 좀 힘들다.
조금 전의 기사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부쩍 자라버린 신장. 이전과 비교할 바 없이 단단해지고 두꺼워진 골격.예전 그 말라깽이 꼬꼬마의 흔적이라곤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아울러 전신의 혈류를 통해 흘러넘치는 고순도의 마력과, 날짐승처럼 날뛰는 마력 회로를 다루기에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환경으로 재구성된 신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변색된 머리칼 등…
이것 말고도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
날렵해진 턱을 버릇처럼 매만지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가만 서서 감상에 잠길 여유가 없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유약했던 과거를 떠올리는 건 자리를 잡은 뒤에 해도 늦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떠올리고 싶은 것도 아니었지만.
귀하디 귀한 학생증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캐리어를 끌고 움직이려는 순간.
“……응?”
초청받은 귀빈들 사이로 나와 같은 흰빛의 유니폼을 보았다.
에픽 클래스 학생인가.
신입생인지 외출하고 돌아오는 선배인지 알 수 없다. 어차피 같은 에픽 클래스인 이상 언젠가 한 번은 마주칠 것이다.
딱 그 정도 생각뿐이었다.
……그래야 할 텐데.
옆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휘황찬란한 복장의 고고한 귀족들 사이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우월한 자태였다.
흰색과 금빛의 조화가 어우러진 유니폼은, 눈처럼 뽀얗고 새하얀 그녀의 피부색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허리춤에 찬 검집. 꽤 길다란 장도다.
푸른빛이 어스름하게 스며든 검은 머리칼이, 절도 있는 걸음걸이에 따라 부드럽게 찰랑인다.
설원의 꽃 같은 소녀였다.
어느 정도로 아름다운지는, 당장 그녀를 향하는 귀족들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감탄 내지 흥미의 시선이 있는가 하면, 어떤 배불뚝이 귀족의 눈에선 추잡한 욕망이 번들거리고 있다.
그러나 굳게 닫힌 그녀의 입술에선 매우 견고하며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경계를 넘으면 결코 좋지 못한 꼴을 볼 것이라는 걸,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를 본 그 자리의 모두가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그 사람은 곧 통로 너머로 사라졌다.
잠깐 보였을 뿐인데 아주 강한 인상을 받았다.
과연 제국의 미래, 에픽 클래스라는 것일까. 턱걸이로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는 나에 비해 훨씬 수준이 높아 보였다……
뭐.
멋진 건 멋진 거고.
……왜 어디서 본 것 같지?
기억 속에 감추고 있었던 한 명의 인물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내 격한 부정에 도로 잠수했다.
“……”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없지.
본질적인 분위기부터 전혀 다른 데다가, 뮤는 내 후배였다. 시기적으로 나와 같은 기수의 신입생이 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 그럴 리 없지.”
한데.
내 손바닥에는 왜 땀이 차는가.
왜 쓸데없이 쥐락펴락하면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을 달래려 하는가.
필시 프론티어가 내 코앞까지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었다. 저 통로를 넘어서는 순간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었으니, 이리 긴장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음. 좋아.
스스로 납득하듯 고개를 끄덕이곤 앞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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