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입학 당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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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 딸, 같이 안 가도 정말 괜찮겠니? 가다가 내려야 할 역이라도 깜빡 지나쳐 버리면……”
“아, 정말! 괜찮다니까! 내가 무슨 열차 처음 타는 어린애도 아니고, 그럴 리가 있겠냐구요!”
황립 프론티어 아카데미 제 2학구.
“빨리 가아아! 나 시간 없어!”
프론티어의 바깥과 이어지는 간이 게이트 앞, 그곳에선 때 아닌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샛노랗게 빛나는 머리카락을 검은 리본으로 묶어 내린 작은 키의 소녀가, 온 힘을 다해서 쓸데없이 걱정이 많은 어머니의 등을 밀어내고 있었다.
겉보기엔 한창 때의 젊은 여성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중년의 여성이, 무척 곤란한 듯한 얼굴로 자기를 밀쳐내는 소녀를 돌아본다.
“그렇지만 말이다, 유리. 열차를 타보는 건 이번이 두 번째잖니.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해서 입학식에 늦기라도 하면……”
“아니이이이! 그럴 일 절대 없으니까 빨리 가라구! 가! 나 진짜 괜찮으니까!”
알티마 대륙 동부에 위치한 아르티나 왕국의 1왕녀— 유리 폰 아르티나가 씩씩거리며 얼굴을 잔뜩 붉혔다.
이 나이 먹고 어린애 취급 받는 것도 충분히 서러워 죽겠는데,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이곳에 한 번씩 시선을 던지고 가는 것이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창피야……’
얼굴이 절로 화끈거렸다.
딸을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그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이제 막 성인에 가까운 딸이 지금 열차 타고 내리는 거 하나 제대로 못할 것 같다며 걱정하고 있는 거다.
유리의 부모님, 그러니까 아르티나 왕국의 국왕과 왕후는 이번 입학 행사에 정식으로 초청받아 솔라 제국을 방문했다. 다름아닌 에픽 클래스 신입생 학부모의 자격으로 말이다.
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여쁜 딸 유리의 기념비적인 입학식을 보기 위해, 이미 예정이 잡혔던 외교 담화 스케줄도 차일피일 미루고 한아름에 솔라 제국까지 날아온 것이었다.
함께 황도에 도착해 직행 게이트를 타고 프론티어 안까지 들어온 건 좋았다.
문제는 이 뒤에 발생했다.
유리가 먼저 짐을 풀어야 할 기숙사로 향하는 열차 노선과, 에픽 클래스 입학식이 열리는 장소까지의 열차 노선이 서로 달랐던 것이었다.
사실 기숙사와 대강당 사이의 거리는 그렇게까지 큰 차이도 나지 않아서 유리와 같은 열차를 탄 뒤 조금 걷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유리는 한사코 부모님과 열차를 함께 타는 것을 거부했다.
프론티어에 들어왔으니 드디어 자기가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독립생활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어딜 가도 호위가 따라붙었던 갑갑한 궁전에서 벗어나, 마침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부끄럽지만 제대로 된 또래 친구도 사귀어 보고, 기숙사 안에서 친구와 날밤이 샐 때까지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유의 나날이 도래한 것이었으나…… 그 첫 출발을 극성 딸바보인 부모님과 함께하고 싶진 않았다.
입학식에 오는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각기 다른 열차를 타야 된다는 것을 알자마자 유리를 걱정하며 같이 타겠다는 그 말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유리의 아버지, 아르티나 국왕이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까지 싫어하는데 별수 있나. 그만 갑시다.”
“……에휴, 알았어요. 알았어. …근데 우리 딸, 혹시 학생증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주머니 꼭 다시 확인해 보고……”
“기야아아아악! 몰라! 나 갈 거야! 엄마 아빠도 빨리 가! 가서 이따 봐! 안녕!”
그만 열불이 터져 온몸의 털을 쭈뼛 세울 것처럼 하악거린 유리는, 결국 5분 동안이나 벌어진 실랑이 끝에 겨우 혼자가 될 수 있었다.
“학… 하악… 하악……”
내가 못 살아 진짜.
별것도 안 했는데 땀이 난다. 살짝 젖은 앞머리를 정돈하며 유리는 제 작은 몸집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의 캐리어를 끌었다.
아니, 끌려다가 말았다.
예상보다 시간도 늦었겠다. 좀 빨리 가야겠어.
“……늦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되면 전부 엄마 아빠 탓이야.
미간을 구기며 유리가 손을 휘저었다.
캐리어를 끌고 갈 여유가 없다. 역까지는 이백 미터 남짓한 거리를 걸어가야 했다.
우우웅— 휙!
유리의 의지에 반응한 미지의 마력이 캐리어를 휘감았고, 붕 떠오른 그것은 곧 뛰기 시작한 유리를 따라 전방으로 쇄도했다.
‘이따 아는 척도 안 할 거야, 씨이……’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프론티어의 장엄한 위용에 압도되어 감탄하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지금은 빨리 열차에 타서 기숙사로 향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거리 한복판에서 무슨 추태야, 이게…’
얼굴을 붉힌 유리가 황급히 역으로 향했다.
#3
제국 철도를 지나는 일반적인 열차와, 프론티어 내부에 설치된 열차는 비슷하지만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본질적인 구조의 차이부터 설명하려면 아예 각 잡고 세미나를 열어야 한다.
그러므로 간단히 축약한 제국 열차와 프론티어 열차의 결정적 차이는……
철도 위를 달리냐 안 달리느냐였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제국 열차가 바퀴로 굴러가는 한편,
프론티어의 열차는 선로로부터 살짝 공중에 뜬 채로 운행한다.
하여 마력 부상 열차라고도 불린다.
정식 명칭은 마나트램이라던가.
대부분의 프론티어 학생들은 그냥 트램이라고 부르는 듯하다.
트램은 공중에 살짝 떠 있기 때문에 일반 열차보다 구름저항과 마찰저항 등을 덜 받는다.
이로 인해 쿠궁거리며 온 지천을 울리던 일반 열차와는 다르게, 소음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승차감은 또 어떠한가. 프론티어 밖의 열차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흔들림 없이 부드럽다.
과연 구비된 좌석의 품질 역시 최상급. 잔뜩 지치고 피곤한 몸을 뉘이기라도 하면 마법처럼 잠들어 종점까지 직행해버릴 것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대체로 트램 좌석에 앉아 목적지로 향하는 주행길은 편안하기 그지없어야 한다.
……뭔가 흐름이 불안하다면, 골든 정답이다.
나는 미칠 정도로 똥줄이 타고 있었다.
불편하다.
누가 여기서 날 꺼내줬으면.
신이시여……
제발.
트램 좌석에 앉은 내 맞은편에, 길게 뻗은 다리를 안쪽으로 모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한 명의 소녀가 보였다.
아까 봤던 그 사람 맞다.
어쩌다 보니 같은 정거장에서 기숙사행 트램을 기다리게 됐고, 어쩌다 보니 같이 탑승해서 에픽 클래스 기숙사까지 향하고 있다.
칸 내부에 얼마 없는 사람들이 힐끗거리며 소녀를 훔쳐본다. 당연히, 프론티어 학생들이다.
나한테도 이따금 쿡쿡 찔러온다. 그러나 뭇 사람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어디에도 없었다.
“……크흠.”
빌어먹을……
목덜미가 안 보여.
머리카락에 가려져서 확인할 수 없다.
일단 변태적인 취향이 있어서 이러는 건 절대 아니다. 소녀의 새하얀 목덜미 왼쪽을 보려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뮤는 목덜미 왼쪽에 작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미치겠네. 아슬아슬하게 안 보인다. 굉장히 애매한 위치다. 트램에 같이 오르면서 확인하려고 했는데 옆머리가 가리는 바람에 결국 실패했다.
그러고 나서 저 좌석에 앉은 뒤 망부석처럼 가만히 앉아 지금까지 요지부동이다.
유니폼에 새겨진 문양을 슬쩍 살펴본다. 금빛 자수로 새겨진 문양 위로 하나의 별이 떠 있다. 나와 같은 1학년. 신입생이었다.
……그래. 침착하자.
내가 불안해할 이유는 없다.
어차피 아닐 테니까.
눈동자 색이 빛바랜 자주색인 걸 이미 확인한 차였지만, 생각해 보니 검은 머리칼에 자주색 눈동자가 뮤만 있으리란 법도 없다.
예컨대 뮤의 친척이라든지 숨겨진 가족이라든지 그럴 수 있잖은가. 아니면 아예 타인에 불과한 생판 남일 수도 있다. 세상은 의외로 넓으니까.
사실 딱히 확신하고 싶지 않다.
저 목덜미의 왼쪽을 보고 싶지만 보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애써 눈을 돌리려 해도, 자꾸 시선이 몰래몰래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건 호기심에 따른 본능이라기보다, 뭐랄지…… 저것을 반드시 확인해야만 이 미칠 듯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후우. 후하. 훅. 훅. 후우……
마음속으로 심호흡을 차분히 했다.
같은 신입생이라면 입학식 때에도 볼 사이다. 앞으로 확인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그때 판단해도 늦지 않다. 그렇게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한 가지 더 있었다.
향기.
저 소녀에게서 풍기는 꽃내음은.
이전의 그 독특한 향과 조금 다른 향기지만.
왠지 익숙하다.
……그리고 조금, 싫은 향기다.
위이이잉—!
트램의 문이 열렸다.
우르르르르……
칸을 채웠던 학생들이 빠져나가거나 새로 들어온다. 들어오면서 나를 비롯한 소녀에게 눈길을 툭툭 던지는 건 이미 예삿일이었다.
고개를 내려 손목시계를 본다. 시간은 대략 9시 30분이 다 되어가려는 참인가. 기숙사에 도착하면 거의 뛰다시피 해야겠다.
타타탁, 드르르륵……
그때, 지근거리에서 숨찬 목소리가 들렸다.
“후, 훅, 후우…… 안, 늦었다아……”
이마에 묻은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큼지막한 캐리어를 질질 끌고 좌석에 풀썩 앉는다.
히엑, 헤엑…… 얼마나 뛰어왔는지 가녀린 어깨와 흉부가 계속해서 크게 왕복 운동을 했다.
햇살을 받으면 참 예쁠 것 같은 금발의 포니테일 소녀…… 아니, 꼬마인가? 잘 모르겠다.
일단 키가 엄청 작은 건 알겠는데. 그래서인지 같은 사람이 아니라 마치 인형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눈길이 가는 건, 에픽 클래스 학생임을 뜻하는 흰색과 금색의 조화가 이루어진 유니폼이었다.
문양 위에 떠오른 별 하나. 신입생 확인.
“후, 후우……?”
불현듯, 한참 좌석에 앉아 숨을 고르던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
……뭘 꼬라보냐는 듯한 눈빛이다.
고운 미간을 잔뜩 좁히고.
한쪽 눈썹을 위로 치켜세운다.
그러나, 저 오밀조밀하게 깜찍한 외모로 깡패 같은 표정을 지으니 어린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는 것 같아 귀엽기만 했다.
“흐.”
“……!”
왠지 가소로워 피식하니 눈을 동그랗게 뜬다.
“……”
그러더니 눈을 가늘여 날 노려보기 시작했다.
오호.
저렇게 나오면 더 비웃어주고 싶어진다.
“……!”
씨익 웃어주니 눈을 부릅 뜨다가.
“……흥.”
이내 고개를 새침하게 돌려버린다.
이거…
뭔가, 뭔가……
감정을 조종하는 기분이라 재밌어졌다.
띵디디딩—
그렇게 정체불명의 동급생과 한참 의미 없는 눈빛 교환을 하고 있자니, 곧 우리가 내릴 정거장에 도착한다는 안내음이 울렸다.
이제 내려야 한다.
내 맞은편에 앉은 소녀의 눈꺼풀이 서서히 뜨이는 모습을 시야 구석으로 힐끔 바라보면서, 몸을 일으켜 트램 문 앞에 섰다.
#4
소녀는 아까부터 기분이 나빴다.
어느 정도냐면, 글쎄.
……확실치 않다.
기분의 좋고 나쁨을 정의하는 기준이 뭘까. 기분이 좋다고 느낀 적이 마지막으로 언제였던가.
하면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은 무엇일까. 무감정인가. 그렇다면 자신은 지금 기분이 나쁜 상태가 아닐 터였다.
기쁨도 슬픔도 모두 잊어버렸는데, 스스로의 기분이 좋고 나쁨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
다만 경험에 의존해 감정을 이끌어낸다.
자기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눈을 감고 있다고 해서 세상을 보지 못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눈을 뜨고 있을 때보다 감고 있을 때 보이는 것이 더 많을 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 불쾌한 남자의 끈덕진 시선은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베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막연히 생각만 한다.소녀는 항상 명경지수의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바라봐야 하는 것은 오직 검 하나뿐이다.
……그래.
다른 건, 볼 필요 없다.
그리 다짐한 순간.
소녀의 마음속에 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소녀는, 남자의 존재 따위도 말끔히 잊어버린 채 에픽 클래스 고학년의 인도를 따라 기숙사 건물로 향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