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입학 당일 (3)
* * *
#5
“선배애애애애!”
붉은 노을에 걸린 벚꽃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뒤뜰 계단에서 책 페이지를 느긋이 넘기던 내가, 미약한 한숨을 내쉬면서 책 커버를 닫았다.
목소리 좀 낮추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역시나 들을 생각도 안 한다.
정규 수업도 전부 끝난 마당에 이 주변으로 사람이 올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담을 휙휙 넘으면서까지 소리를 지르면 곤란하잖나……
도도도도.
과연 경지에 이른 초인의 달리기라는 것인지, 분명 잠깐 돌아봤을 때 작은 점으로 보였던 뮤의 형체가 어느새 선명해졌다.
바람을 부수며 나에게로 달려드는 뮤의 팔.
“저 왔……!”
“멈춰.”
내가 손바닥을 들자 급제동이 걸려 끼익, 하는 소리가 들린다. 농담이 아니고 진짜다. 뮤의 발치에 있는 풀떼기들이 비명을 지르며 갈려나갔다.
이쯤이면 인간 전차가 아닌가 싶다.
뮤와 사귀고 나서 알게 된 건데, 그전에는 나름 힘 조절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연약한 내가 부서지지 않도록……
자존심 상하네. 왠지.
내 손바닥 바로 앞에서 멀뚱히 서 있는 뮤를 향해 물었다.
“…수업은?”
“당연히 제대로 다 받고 왔죠!”
물어보는 이유는 별거 없다.
이 녀석.
……나 만나려고 종종 수업 빼먹는다.
뮤의 유니폼은 작년과 비교해 살짝 달라졌다.
일단 2학년이 되면서 파랗던 명찰이 새하얗게 물들었고, 검술부 진학에 따라 허리춤에 검집을 꽂고 다니게 되었다.
반면 나는, 뭐.
…그냥 황금 명찰 단 게 끝이었다.
아무튼 검술부와 마법부를 비롯한 특별반들은 진학 이전보다 조금 달라진 커리큘럼을 받게 되는데, 뮤가 진학한 검술부의 경우 저녁 늦게까지 검술 수업을 연장할 때가 가끔 있었다.
그렇다.
연장 수업이 있는 날엔 전부 집어던지고 나한테 달려오는 것이었다.
자기 말로는 어차피 이래봤자 아카데미 입장에선 자길 놓치기 싫으니 경고 선에서만 끝난다며, 사실상 아무런 패널티가 없는 거나 다름이 없댔다.
때문에, 후배의 성적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듯한 죄책감은 오로지 나의 몫이었다……
근데 빼먹고 몰래 여기 오는 거 용케도 안 들킨다.
뮤 정도면 누군가의 추적 따위 쉽게 따돌릴 수 있을 정도라 그런가. 이유야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들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뮤가 부루퉁한 얼굴로 입술을 쭉 내민다.
“전 선배가 보고 싶어서 이렇게 수업도 빼먹… 아니, 끝나자마자 달려왔는데 선배는 맨날 반응이 무덤덤하네요. 치사해요.”
“잠깐. 중간에 뭐라고?”
“선배는 저 안 보고 싶었던 거죠? 그쵸? 또 저만 막 좋아하고 저만 맨날 선배 생각하고 그런 거죠? 와, 진짜 나빴다…… 이렇게 귀엽고 예쁜 후배가 안아달라고 달려오면 적어도 한 번쯤은 못 이기는 척 안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 임마. 좀 전에 뭐라고 했냐니까?”
“그런 게 지금 중요해요? 선배 저 보고 싶었어요, 안 보고 싶었어요? 그것만 빨리 말해요. 저 삐지기 전에. 대답해 줄 때까지 선배랑 말 한마디도 안 할 거예요. 흥.”
“……”
돌겠네.
뮤는 내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꽤 즐겼다. 생각해 보니 꽤는 아니고, 아주 많이.
낯간지러운 말을 잘 못 한다는 걸 알고선 매번 저렇게 부끄러운 대답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던 나는, 결국 옆 벽면으로 몸을 슬쩍 옮기면서 조용히 말했다.
“……나도 보고 싶었으니까, 앉기나 해.”
“우흐흐흐흐.”
뮤의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그럼 실례할게요, 선배. 읏차.”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옆에 낑겨 앉는다.
어깨가 밀착하면서, 유니폼 너머의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졌다. 뮤의 머리칼로부터 퍼져나간 은은한 꽃향기가 주위 공기에 스며든다.
뮤는 항상 나와 함께 이곳에 왔다.
본관 뒤뜰 계단.
뮤가 검술부에 진학하면서 도서관리부 겸직은 못 하게 되었기 때문에, 굳이 도서관에서 만날 필요도 없어졌다.
그러니 다른 데 가도 되는데, 여기가 왠지 마음이 편하댔다.
사실 나도 그래.
탁 트인 경치도 나름 좋은 편이고, 바람결에 가만 흔들리는 수풀과 나뭇잎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차분해진다.
노을이 물들어간다. 뮤의 검은 머리색은 반짝이는 주홍빛으로 예쁘게 뒤덮였다.
부스럭.
뮤는 가방 속에서 챙겨왔던 책을 꺼내었다.
나 또한 아무 말 없이 덮었던 책을 다시금 펼쳐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팔락이며 페이지를 넘기긴 하지만, 방금 읽었던 내용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내 왼 어깨에 작은 무게감이 느껴진다.
“……”
이전처럼 흠칫하지는 않는다. 살짝 굳을 뿐이다.
그닥 넓지도 않은 어깨가 뭐 그리 편하다고 매번 이러는지……
자기가 좋다는데 쫓아내기도 뭣하니까, 목을 옆으로 조금 움직여서 기댈 수 있는 공간을 더 만들어 주었다.
희미하게, 뮤의 작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
“……”
서로 대화는 없어 조용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만의 시간이었다.
#6
“안녕, 얘들아?”
트램 밖으로 나서니, 앞에 선배님이 계셨다.
선한 미소를 띠고 있는 단발머리의 여성.
무엇보다, 별이… 네 개.
하늘 같은 4학년 선배란 말이 아닌가. 하물며 가슴팍에 초승달처럼 생긴 금빛 학생회 뱃지 또한 달려 있었다.
내리자마자 고개를 넙죽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
내 뒤로 아까 그 금발 꼬맹이도 인사했고, 그 소녀는… 고개만 간단히 숙인 것 같다. 따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격식 안 차려도 돼. 우린 이제 한 가족처럼 지내야 하는 사이인걸.”
학생회 선배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저쪽이 남자 1동 기숙사고, 저쪽이 여자 2동 기숙사. 가서 짐 풀고 학생회관 옆에 있는 대강당으로 모이면 돼. 키는 로비에 들어가면 거기서 다른 학생회 선배가 나눠줄 거야. 혹시 대강당 위치 잘 모르겠으면 나한테 물어보고.”
“넵. 감사합니다, 선배님.”
싱긋 웃는 학생회 선배를 뒤로 하고, 빠르게 캐리어를 끌면서 좌측 기숙사 건물로 향했다.
드르르륵……
거의 날듯이 뛰면서도 내 눈은 에픽 클래스 기숙사 부지를 샅샅이 훑었다.
짤막한 감상은, 그거였다.
존나 크다.
싱그러운 초록빛 수목, 널따란 정원, 잉어가 헤엄치는 맑은 연못 등……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섬나라의 대표 휴양지 뺨을 수십 대 후려칠 만큼 아름답게 조경된 경치가, 기숙사에 들어가기까지 내 눈을 옆에서 떼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과장 좀 보태서 무슨 궁전 보는 것 같다.
넓은 것도 넓은 거지만, 내가 지금 향하고 있는 기숙사 건물마저 압도적으로 거대하며 신발 신고 들어가는 게 죄스러울 정도로 고급스럽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에픽 클래스의 총학년은 5학년까지밖에 없을 텐데. 클래스당 인원 수가 열다섯 정원이라는 걸 감안하면, 전교생이 백 명도 채 되지 않을 텐데……
대체 기숙사가 왜 저렇게 크지?
답은 금방 나왔다.
방이, 존나 크니까.
“……와우.”
남자 1학년이 거주하는 1층 기숙사.
그 복도 끝에 있는 방.
거의 뭐 왕족이 머무는 궁전의 홀 같은 삐까번쩍한 로비에서 학생회 선배로부터 키를 받고 들어간 룸은, 터져 나오려는 환호성을 간신히 억눌러야 할 정도였다.
“지리네.”
내 살아생전 이보다 호화로운 방을 본 적이 없다.
꼴에 귀족이라고, 어릴 적 잠깐 인사차 방문했던 어느 백작의 저택도 이 수준은 아니었다.
탁 트인 시야를 가득 채우는 새하얀 벽면과, 그 아래 틈틈이 깔린 대리석 타일. 럭셔리한 화장실 안에는 샤워룸이 따로 분리되어 있다.
양쪽으로 젖혀진 커튼 뒤 투명한 창문 밖으로 기숙사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조를 보아하니 실외 테라스도 있다.
몸을 던지면 소리 없이 푹 파일 듯한 퀸 사이즈 침대. 누우면 바로 잠들 자신 있다.
간단히 살펴본 게 이 정도다.
이게, 5년간 지낼 내 방이란 말이지……?
아찔한 쾌감이 두근거리는 심장 부근에서 퍼져 나왔지만, 넋을 놓고 있을 시간이 없다.
캐리어만 신발장에 놔두고, 주머니 속에 학생증과 방 열쇠를 챙긴 뒤 복도로 나왔다.
은은한 조명등이 켜진 복도마저 고급스럽다. 분위기 지린다. 부드러운 카펫이 깔려 있어서 걸음걸이가 요란하지 않다.
방금까지 내가 있던 곳이 1동.
정반대에 있는 게 2동.
그 가운데에 있는 게 3동이다.
큼지막한 건물들이 ∩자로 놓인 형태인데, 내가 알기론 3동은 훈련장, 연무장, 수영장, 학생 전용 식당 등 온갖 편의 시설이 층마다 자리해 있다고 한다. 당연히 전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아울러, 각 동마다 길쭉한 통로를 통해 전부 로비에서 로비로 옮겨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물론 1동에서 2동으로 가는 통로는 없고, 각자 3동을 거쳐야만 오고 갈 수 있다.
입학식이 열리는 곳은 대강당.
살펴본 바 3동에 가서 계단 혹은 승강기를 타고 5층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런 다음 밖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지나 학생회관 옆 대강당을 찾아가면 되는데……
“……”
“……”
3동 승강기 앞.
내 옆에는 아까 그 금발 꼬맹이가 있었다.
근처에는 우리 말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곧 입학식이 시작되는 10시가 다 되어 간다.
내 예상으론, 아마 우리가 마지막으로 입장하지 않을까 싶다.
띠링—
내 존재를 공기처럼 무시하며 팔짱을 끼고 있던 금발 꼬맹이가, 그 잠깐을 기다리지 못하고 계단으로 향하려다, 승강기 소리에 멈칫하며 도로 발걸음을 되돌렸다.
문이 열리자 내가 먼저 승강기 안에 탑승했다.
“……흥.”
금발 꼬맹이는 일순 고민하는가 싶더니 가소로운 콧소리를 내면서 들어왔다.
나와 둘이서 있는 공간 속 불편함보다 시간의 촉박함을 더 우선시한 거겠지.
우우웅—
미리 눌러놓은 5층을 항해 승강기가 움직인다.
힐긋.
입을 다물고 이쪽엔 눈길 하나 주지 않는 도도한 녀석을 내려다본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인형처럼 생겼다.
작은 체구에 그보다 더 작은 얼굴. 그러면서 붉은빛 눈망울은 크고, 복숭앗빛이 감도는 입술은 모든 음식을 깨작거리며 먹어야 할 것처럼 조그맣다.
향기도 꽤 특이했는데, 상큼한 레몬향에 우유를 섞은 듯 새콤달콤한 내음이었다.
내가 툭 던지듯 말을 꺼냈다.
“친구야.”
“말 걸지 마. 그리고 누가 네 친구야.”
단칼에 싸늘한 대답이 돌아왔다.
베일 뻔했네.
“아까 선배가 그랬지 않냐? 우린 이제 가족처럼 지낼 사이라고. 근데 초면에 가족은 무리니까 일단 친구부터……”
“말 걸지 말라니까.”
고운 눈썹이 꿈틀거린다. 검은 리본에 묶인 금발도 꼬리가 미약히 살랑거렸다.
머쓱해서 물었다.
“내가 너한테 뭐 잘못한 거 있냐?”
“……그냥 마음에 안 들어.”
“아니, 마음에 안 든다고 앞으로 계속 얼굴 볼 친구를 그렇게 막 대해도 되는 거야? 나 되게 서운한……”
“시끄러워. 말 걸지 말라고 했잖아.”
까칠하긴.
그래도 대답은 꼬박꼬박 잘해주네.
“그럼 통성명이라도 하자. 이건 괜찮잖아. 난 에지오 크라닐이라고 하는데, 너는?”
“……”
아예 대답 안 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억울하네. 내가 뭘 했다고. 기껏해야 트램 안에서 장난 같은 눈싸움 한 게 전부 아닌가.
혹시 나 말고 다른 친구들한테도 이런 까칠한 태도를 유지할 건가 싶었는데, 그건 왠지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한테만 이런다고 생각하니 살짝 괘씸하다.
작은 목소리로 불만을 중얼거렸다.
“거 너무하네. 귀여운 여동생 같아서 잘 챙겨주려고 했더니……”
“……!”
이번엔 반응이 왔다.
좀 격하게.
“……뭐라고 했어, 지금?”
날 홱 돌아보는 붉은빛 눈동자에 괴이한 소용돌이가 치고 있었다.
……어라.
뭔가 건드린 것 같은데, 뭔지 모르겠다.
귀여운 여동생 같단 말은 칭찬에 가깝지 않나?
아, 여동생 키워드가 문제인가. 작은 체구에 비해 드센 성격을 보면 평소 어린애 취급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따지면 기분이 나쁠 만하지.
생각보다 정확한 추론이었다.
“아니, 다른 의미는 아니고 그냥……”
“……너.”
실처럼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스멀스멀 허공을 향해 피어오른다. 가녀린 어깨는 옅은 분노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너, 대체 누굴 깔보는 거라고 생각해? 말 걸지 말라고 했잖아. 그럼 알아서 닥칠 줄도 알아야지, 자꾸 나불대고 난리야. ……그리고 뭐? 귀여운 여동생 같아? 누가 누굴 챙겨? 하, 착각하지 마. 난 네 아래 따위가 아니라 오히려 그 위에 있어도 모자란 사람이야. 알아?”
몰라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임마. 뭐라도 말해줘야 알지.
……음음, 그렇구만.
척 봐도 대귀족의 영애 같이 생겼는데, 역시나 자존심이 무지하게 높은 타입이다. 마음에 안 드는 남자가 여동생 같니 뭐니 하며 자길 깔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는 것도 이해는 간다.
글쎄……
나는 나름 친절하게 다가갔다고 생각하는데.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필요 이상으로 까칠하게 군 저쪽의 잘못이 아닐까?
라고 생각은 하지만, 예전의 나도 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질색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살짝 공감은 한다.
그래도 얘처럼 대놓고 욕 박으면서 내치진 않았단 말이지. 아무리 봐도 얘 잘못이다. 응. 친해지긴 이미 글른 것 같지만은.
승강기는 곧 5층에 오른다.
동시에, 숨길 수 없는 압박적인 기운이 내 주위를 회전하며 몸을 옥죄인다. 금발 꼬맹이의 실 같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허공을 유영한다.
차가운 분노가 서린 목소리가 이어진다.
“이참에 똑똑히 보도록 해. 누가 네 위인지.”
뭔가를 하려는 듯하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동자 속에 소용돌이치는 것은 마력 아닌 무언가.
금발이 살랑이고,
고운 손이 휘저어졌다.
우우우웅—!
그녀가 선고한다.
“——꿇어.”
“……?!”
날 휘감았던 기운은 더욱더 짙고 강해졌다.
피부가 살살 따끔거린다. 뱀이 내 몸에 똬리를 트는 듯한 기분. 무형의 밧줄이 날 꽁꽁 묶어 아래로 끌어당기는 것 같은, 대충 그런 느낌인가.
마법은 아닌 것 같고. 신기한 능력이네.
띠링—!
곧이어 승강기가 5층에 도착했다는 알림이 천장으로부터 울린다.
문이 스르륵 열리면서,
그리고——
“……”
“……?”
아무 일도 없었다.
“……뭐 하냐?”
“어, 어? 이게 왜…… 어라?”
열린 문틈 사이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안 그래도 밝은 금발이 찬란하게 반짝인다.
“안 먹힌, 아니…… 사라졌다고?”
그 아래 있는 금발 꼬맹이의 하얗디 하얀 얼굴이, 순간적으로 붉게 물드는 것을 본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톤이 어긋난 목소리로 의문을 연달아 토해낸다.
“……이, 이럴 리 없는데? 왜? 응? 으응?”
“뭐가 이럴 리 없는데?”
가소로운 웃음을 지으며 그리 물어도, 어지간히 당황했는지 계속 멍한 눈을 하다가 문득 날 올려다본다.
“너,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뭐야, 뭘 하려고 했길래 그렇게 당황해? 나 아무것도 안 했어.”
“거, 거짓말 치지 마! 방금까지 제대로 작동하는 걸 확인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사라질 리가……”
흐음.
다른 건 참작의 여지가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동급생에게 능력을 쓰려고 하다니…… 정말 괘씸하다.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 응당 맞는 일이겠지.
몹쓸 버릇도 나중에 좀 고쳐줄 필요가 있겠다.
따라서.
스윽, 스윽.
“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잘 쓰던 능력이 갑자기 안 나갈 수도 있지. 네 능력이 사라진 건 아닐 테니까 안심해.”
“——기야아아악?!”
꼬맹이가 가장 싫어할 만한 짓을 해주었다.
손으로 머리를 잔뜩 헝클어준다.
금발 꼬맹이는 내 손에 의해 엉망진창이 된 정수리를 붙잡고, 그보다 더 달아오를 수 없는 얼굴로 고장난 듯 삐걱이는 반응을 보여준다.
“…너, 너너너, 지, 지금, 뭐, 무, 무슨 짓……!”
“먼저 간다. 지각하고 싶으면 계속 거기 있든가.”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 된 금발 꼬맹이는, 정신줄을 한참 놓고 있다가 곧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며 나를 뒤따라 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