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입학 당일 (4)
* * *
#7
다행히 늦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대강당 앞,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학생회 선배들이 보였다.
적당히 고개를 숙이면서 학생증을 보여주고 입장하니, 그곳은 웅장한 홀이었다.
육중한 문 뒤에 있던 것은 한눈에 담기지 않을 정도의 드넓은 공간.
고개를 거의 수직으로 꺾어야 보이는 아득히 먼 천장 아래, 찬란하디 아름다운 샹들리에가 홀 내부를 화사히 밝히고 있다.
비스듬히 설치된 좌석의 개수는 홀 내부의 인원수를 한참이나 초과했다.
입장해 있던 학생들은 정해진 좌석 위에 앉아 옆자리의 친구와 목소리를 죽인 채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입학식이 시작될 때까지 가만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선배로부터 미리 안내받았던 좌석으로 향했다.
뚜벅거리는 소리가 난다.
몇 학생들이 발소리에 이쪽을 돌아봤다가, 시선을 원래대로 돌린다. 과연 제국 최고의 재능인지, 다들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턱.
전방에 있는 단상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착석했다. ……살짝 긴장되네. 정말 무언가 제대로 시작되려 하고 있다는 실감이 난다.
저 위, 그러니까 홀 내부 2층과 3층 좌석에 군데군데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본다. 입학 행사에 초청받은 귀빈들이다.
제국의 공작, 백작, 제후국의 국왕, 공국의 대공이라든지… 높으신 분들이 참 많았다. 아주 많았다.
어째 입학하는 신입생보다 귀빈의 숫자가 많다. 뭔데 이거.
그때였다.
“—우리 딸! 여기다! 여기!”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한 손바닥을 부비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2층 좌석에서 크나큰 환호성이 터졌다.
“장하다 우리 딸! 엄마는 믿고 있었단다! 잘 찾아왔구나!”
“휘우! 우리 딸이 최고다! 멀리서도 빛이 나는구나 아주! 아빠 엄마는 유리가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럽단다!”
웅성웅성.
현장에 있던 모두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 아아, 아, 아……”
그곳엔 인간 홍당무가 있었다. 귀까지 발갛게 익어서는 뭐라 말도 못하고 어버버거린다.
“아, 으, 지, 진짜……! 몰라 이제……!”
손과 어깨를 부들거리던 금발 꼬맹이는,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몸을 축 늘어뜨렸다.
이마를 손목으로 짚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좀비처럼 좌석으로 걸어간다.
음.
……다음부턴 놀리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나와 금발 꼬맹이까지 입장을 마치고.
대충 세 칸쯤 앞에 있는 그 소녀의 뒤통수를 지긋이 응시하고 있자니.
마침내 입학식이 시작되는 10시가 되었다.
……그런데.
홀 이곳저곳에 각을 잡고 서 있던 학생회 선배들 몇이 수군거리며 무언가를 논의한다.
술렁술렁.
왜인가 싶었는데……
아직 한 사람이 오지 않은 모양이다.
정말 그러네. 좌석에 앉아 있는 학생은 나를 포함해서 전부 열 네명이었다.
저 금발 꼬맹이와 내가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입학식부터 지각하는 어느 신입생이 있던 모양이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거나, 원체 설렁설렁한 성격이거나. 에픽 클래스에 입학하는 녀석들은 다들 하나같이 특이한 애들뿐이라고 했으니, 뭐.
어쩌면 입학식 시작 한참 뒤에 간신히 참석하거나 아예 모습조차 안 드러낼 수도… 그건 너무 갔나.
대략 5분쯤 더 지났을 때였다.
— 아, 아. 잠시 안내사항이 있겠습니다.
마력으로 증폭된 음성이 홀 내부를 울린다.
— 아직 신입생 한 명이 도착하지 않아 행사가 잠시 지연되었습니다. 귀빈 여러분께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학생회 선배들은 귀빈들의 빡빡한 스케줄도 있고, 이대로 학생 한 명 때문에 일정 전체를 지연하는 것도 좀 무리가 있다 싶었는지, 서로 간단한 논의를 마친 뒤 입학식을 시작하려 했다.
— 더 이상의 지연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함에 따라, 이제부터 제 61기 황립 프론티어 아카데미 정규 에픽 클래스 입학식을……
그 순간에.
벌컥—!
“죄, 죄송합니다아아아…! 저 왔어요……!”
가쁜 숨소리가 섞인 목소리가 뒤에서 울려 퍼졌다.
타이밍 참 좋게도 들어온다.
행사를 막 시작하려던 학생회 선배가 화들짝 놀라서 몸을 잠깐 움츠렸다.
그리고 방금 들어온 신입생을 지긋이 째려보더니, 빨리 와서 앉으라고 손짓한다.
“헥… 헤엑… 죄송합니다, 열차를, 헥… 잘못 타가지구… 길을, 헷갈려서, 헥, 지각해서 죄송합니다아……”
생각보다 얼빠진 사람이었다.
노선을 착각한 건가. 그럴 수도 있다.
의외로 빈번한 실수다. 제국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열차를 대개 타본 적이 없었을 테니.
아무튼 문이 열리는 순간 반사적으로 금발 꼬맹이 때처럼 모두 뒤를 돌아봤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머리가 딱딱히 굳어서.
고위 석화 마법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
부끄러운 듯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졸래졸래 좌석으로 뛰어가는, 하얀 유니폼의 소녀가 있었다.
착석하더니 헤픈 웃음을 지으면서 학생회 선배들을 향해 여기저기 고개를 숙이고 다닌다.
거기까지면 그냥 덜렁이는 친구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고 끝이었을 터다.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에, 소녀가 가진 연분홍빛 머리색이 눈에 들어오면서.
비록 내 기억 속 누군가의 헤실거리는 웃음과는 희미하게 결이 달랐지만, 그 특유의 입매와 눈꼬리는 전혀 변함이 없어서.
활짝 핀 꽃처럼 생기 돋는 웃음을 띤 얼굴이, 정작 이전보다 볼살은 조금 패인 채로 어울리지 않게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그리고 있는 듯해서.
미처 알아차리는 게 조금 늦었지만.
나는자연스레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루비아?”
#8
소꿉친구라.
그녀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한 번 늘어놓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것이다.
내게 루비아란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별 헤는 밤을 수백 번 지새워도 루비아와의 씁쓸한 추억을 전부 읊지 못할 것이었다.
……그래, 씁쓸한 추억.
그런 게 있다.
불현듯 떠올렸을 때 웃음이 터져 나오는 행복한 추억이 있는가 하면.
잠깐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릿해지고 쓴웃음이 지어지는 추억 아닌 기억이 있다.
둘은 같지만 다르다.
공통점은 분명 과거에는 한때 행복했었단 것이고.
차이점은, 회고하는 대상이 지금도 내 옆에 있는가, 아닌가…… 거기서 추억과 기억의 경계선이 그어진다.
루비아는 지금 내 옆에 없었다.
그러니 씁쓸한 기억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은 희석되었던 까닭에.
잠깐 떠올리는 것 정도야 아무렇지 않다.
애당초 내 삶에서 루비아의 존재를 지워버리면, 그건 내가 나 스스로를 죽여버리는 거나 다름이 없다.
자살은 싫다. 루비아가 슬퍼할 테니까.
루비아도 내가 자기를 잊지 않길 바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루비아가 나를 기억해주길 바란다.
하여 언제부터인가, 우리 둘은 죽을 때까지 서로를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루비아와 나는 8살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여름철 마룻바닥 위에 뒹굴며 할 일이 없어 심심할 때, 겨울철 쌓인 눈을 보며 눈사람을 만들어 놀고 싶을 때, 시답잖은 장난감보다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그것이 우리에겐 서로였다.
같이 있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댔다.
같이 있을 때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해맑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댔다.
그랬기에.
서로가 떨어져 있으면 금방 우울해졌댔다.
그래서, 불안하고 우울한 기분은 싫으니까 하루라도 더 빨리 만나고 싶어지는 사이였다.
어릴 적 루비아와 나는.
그 좁디좁은 시골 아카데미에서 계속 붙어다녔다.
그 나이 애들답게 놀림도 받았지만, 우리는 부끄럽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루비아는 좀 부끄러워했던 거 같기도 하고. 일단 난 아니었다. 꼬우면 니들도 같이 끼어서 놀든가. 그런 입장이었다.
사실, 그러다 보니 정말로 우리 사이에 끼어들려고 하길래 몇 명은 은밀히 쫓아냈다.
속 좁은 질투심이라고 하지 마라. 루비아도 나랑 둘이 있는 게 더 즐거운지 막상 애들이 다가오면 곤란해 했었다고.
나는 이름뿐인 귀족이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그냥 간단히 몰락 귀족이라고 하면 되겠지. 솔라 제국 크라닐 남작가의 외동아들, 에지오 크라닐. 그게 바로 나였다.
가문 족보에 지대한 관심은 없었다.
남이 세운 과거의 영광을 제것마냥 내세우는 것만큼 추한 일이 없었던 까닭이다.
아무튼, 가문에 돈이 없었다.
때문에 다른 귀족들처럼 좋은 아카데미를 다니지 못했다. 태어났을 적엔 그래도 평민들보다는 부유했던 것 같은데, 8살이 되었을 즈음에 정신을 차려 보니 변두리 시골 영지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
넓은 초원 위에 지어진 오두막 같은 집을 보고 멍을 때렸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곳에서 아카데미 초등부에 입학하게 되었다.
젼교생이 몇 명이던가. 백 명도 안 됐을 거다.
어릴 적 내가 다닌 아카데미는 지원금으로 간신히 폐교 위기를 넘겨가던, 곧 폭삭 무너져 바스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시골 아카데미였다.
그 아카데미 입학 전에, 루비아와 처음 만났다.
나는 뭐랄지……
어렸으니까.
사춘기가 곧 찾아올 어린 애새끼였으니까.
하물며 성씨가 이름 뒤에 붙어 있긴 한…… 그래도 명색이 귀족가 외동아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귀족인 동시에 몰락한 귀족이었으니,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전보다 훨씬 좁아진 집에서 살게 되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만 섞인 투정도 부렸던 것 같은데 아버지한테 몇 대 맞으니 입은 쏙 들어갔다.
그래도 내 처지가 부끄럽고 안쓰러운 건 여전했기에, 산책이라는 명목으로 사색을 하러 집을 나설 때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에헤헤, 다녀오겠습니다!”
그런 내 옆집에서.
나보다 작고 허름한 집에서.
어떤 내 또래 여자아이가 해맑은 웃음으로 부모님에게 손을 흔들고, 과일 바구니를 옆구리에 끼운 채 놀러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반짝거린다고 생각했다.
뭐, 평민이니까.
어릴 적부터 계속 이런 촌구석에서 살아왔으니 저게 당연하겠지. 나와는 살아온 환경이 전혀 달랐을 테니까. 되도 않는 자존심을 부리면서 저렇게 웃을 수 있는 것에 대한 부러움을 감추었다.
그날 사색한 내용은 대체로 이랬다.
평민들은 다 저런가?
저런 집에서 사는 것도 그냥 그렇게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건가?
그런 건가?
나도, 언젠가…… 저렇게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해맑게 웃으면서 집밖을 나서게 될까?
이 작고 허름한 오두막 집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싫은데, 그런 건.
왜, 글쎄.
나의 부모님은 본인들이 몰락한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전보다 행복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고. 여유가 생겼달까.
그들은 자신들의 가문이 몰락했는데도, 이름뿐인 귀족이 되어 이제 사교장에 한 발자국도 들일 수 없는 그런 부끄러운 가문이 되어버렸는데도, 금방 여기 생활에 적응해버렸다.
무서운 친화력으로 관계를 점차 넓혀가며.
이웃을, 친구를, 멋대로 만들고는.
그리고, 그들의 딸을 나에게 데리고 왔다.
그때 봤던 여자아이였다.
“이쪽은 루비아. 네 옆집에 사는 아이인데, 어때. 엄청 귀엽지 않니? 예의도 참 바르단다. ……자, 에지오. 인사해야지.”
왜인지.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반면.
여자아이는……
내가 그때 보았던 그 티끌 하나 없이 해맑은 미소로, 부끄러워하지 않고 인사하는 거다.
“안녕, 에지오! 난 루비아야. 친하게 지내자?”
……그 미소가.
나는 좋았던 거다.
#9
저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잊을 리가 없다.
그녀가 짓는 화사한 미소의 성질이 얼마나 달라졌든 간에, 나는 속으로 그녀의 정체를 확신하고 마는 것이었다.
……틀림없다.
루비아가 좌석에 앉아 흐트러진 유니폼을 손으로 꾹꾹 눌러 정리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멍하니 보고 있었다.
뮤로 추정되는 소녀의 정체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루비아만큼은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으로 딱딱히 굳어버린 내 어깨를, 누군가 툭 치면서 가볍게 진동시켰다.
“새끼, 여자 좀 밝히냐? 응?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면 민폐잖냐.”
“……!”
가출했던 정신이 확 돌아왔다.
옆을 보니 살짝 경박해 보이는 인상의 녹빛 머리 남자가 있었다. 나와 같은 신입생이었다.
……얘가 주의를 주지 않았으면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을지도 모른다. 내심 고마움을 느끼며 헛기침을 했다.
“……아. 내가 너무 보고 있었나? 큼. 그런 거 아냐. 잠깐 아는 사람인가 해서 살펴본 거야.”
“흐으으음. 그으래?”
남자는 전혀 안 믿는다는 투로 웃었다.
“예쁘긴 하네. 일단 만나서 반갑다. 난 가브리엘 라마니카. 거 어디냐, 말해줘도 모를 나라에서 유학 왔거든. 앞으로 잘 부탁하고.”
“…어. 에지오 크라닐이다. 반갑다, 나도.”
그때.
앞쪽에서, 뭔가 크게 들썩인 것 같았다.
……기분 탓인가?
그건 그거고.
아까부터 진한 시선이 느껴졌다.
“……오호?”
가브리엘이 흥미로운 기색을 흘렸다.
어디서 보내오는 강렬한 신호인고 하니, 아까 내가 잔뜩 머리를 헝클어주었던 금발 꼬맹이가 날 존나게 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가브리엘이 내 어깨를 쿡쿡 찌른다.
“야, 에지오. 쟤 너한테 관심 있나 본데? 아닌가? 난가? 저 여자애가 우리쪽 보는데?”
“……아마 나 때문일걸.”
“뭐? 진짜? 이야, 너 좀 생겼다고 해서 벌써 여자 하나 꼬신……”
“그거 아니니까. 일단 쉿. 선배가 보잖아.”
학생회 선배의 눈길이 이쪽을 향하고 있다.
붙임성은 좋은데 말이 너무 많고 목소리가 쓸데없이 크다. 내 말에 가브리엘은 알았다는 듯 실실 웃으며 다시 정자세로 앉았다.
— 아아, 아.
소란이 멎어 잠잠해진 홀 내부에, 마력으로 증폭된 음성이 웅웅거리며 퍼져 나간다.
— 신입생 여러분, 그리고 본 행사에 참여해 주신 귀빈 여러분.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이제부터, 제 61기 황립 프론티어 아카데미 정규 에픽 클래스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짝짝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장내를 가득 울리고.
자리를 비운 학장을 대신해 어떤 학생회 선배가 대신 형식적 인사말을 떠벌리는 동안, 나는 그저 입밖으로 삐져 나오려는 한숨을 필사적으로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