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입학 당일_연회장의 뒤편에서 (2)
* * *
#3
기적이 연달아 일어나면.
그건 단순한 기적의 연속인가?
아니면.
병신 같은 신의 장난질에 불과하고.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씨발, 뭐든 상관없다.
난 좆됐다.
#4
입학식이 끝나고.
에픽 클래스 신입생들, 그리고 학생회 선배들,
귀빈들은 전부 연회장으로 향했다.
“……”
“……”
“……”
그렇지만, 우리는 남았다.
여기에.
엘레나가 날 마지막으로 호명한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아, 머리가 아프다. 지금 딱히 뭔가를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냥, 뮤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서 날 돌아봤고, 루비아는 거의 뭐 비명을 지르기 직전인 것 같았다.
다들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겠지.
엘레나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 셋 다 같은 아카데미 출신인 걸 알 테지만, 정작 우리 사이의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은 건지.
그래서 그냥, 먼저들 연회장으로 떠났다.
이야, 신기하긴 하네.
한 아카데미에서 에픽 클래스가 세 명?
이야……
학장이 지금쯤 탭댄스를 추고 있을 거다.
각지에서 몰려드는 신입생 파티에 축포를 울리며 입이 귀에 걸린 채 윈드밀을 돌고 있겠지.
금발 꼬맹이, 유리 폰 아르티나는 아무래도 이 둘한테 관심이 있던 것 같다.
머리 위에 물음표를 잔뜩 띄우면서도 눈을 부라려 날 노려보면서, 그녀들을 함부로 다루지 말 것을 눈빛으로 전해왔다.
그런고로.
연회장의 그림자.
외길에 난 산책로 벤치에서, 깍지 낀 손 위에 턱을 괴고 바닥을 가만 내려보는 내 양옆에, 침묵하는 루비아와 뮤가 있었다.
그러니까.
……날 차버린 소꿉친구와, 내 전 여자친구가.
“……”
“……”
“……”
불편한 침묵이 계속 이어진다.
어지럽네.
토할 것 같아.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대화하고 싶지도 않다.
답답하다. 답답해서 뒤질 거 같아.
이 답답함은…… 짜증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그거랑은 좀 다르다.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죽을 것 같은 압박감이다.
나는 딱히, 이들에게 내 무언가를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루비아는 뭐, 마법 천재였으니까. 프론티어에는 올 거라고 나지막이 예상하긴 했다.
하지만 에픽 클래스에 당당히 들어올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여긴 ‘특별한’ 재능을 가진 녀석들이 모이는 곳이었으니까.
뮤는…… 조기졸업이라고 했나.
나와 헤어진 뒤로, 얼마나 노력했길래.
지금은…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마치 지금의 나처럼.
연회장에 제때 참석할 수 있으려나.
뮤는 1번이다. 1번이 가지는 의미는 꽤 크다.
여기서 가장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는 말일 테니.
그런 뮤에게 눈독을 들인 높으신 분들이 참으로 많았을 텐데, 그거 참 아쉽게 됐다.
이 녀석은 내 존재를 눈치 채자마자 조용히 호소해 왔다. 나와 얘기가 하고 싶다고. 그건 루비아도 마찬가지였다.
10년 같은 1분이 흘렀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루비아였다.
“…저기, 뮤라고 했니?”
“……”
“그… 이 친구, 어… 에지오랑 단 둘이서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런데, 잠깐 자리를 비켜줄 수 있겠어……?”
“……”
“…아, 안 되는 구나… 응… 알았어……”
뮤는 그저 싸늘한 눈으로 루비아를 힐긋 바라볼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는지.
루비아는 불안한 듯 입술을 달싹이면서, 혹시라도 부서질까 연약한 도자기를 다루듯 조심스레 내게로 물어온다.
“……정말, 에지오, 야?”
말끝에 희미한 떨림이 섞인다.
한참 다물다가 입을 열었다.
“……어.”
내 대답에 흠칫, 하면서 작게 몸을 떤다.
“……그게, 나… 음. 몰라봤어. 되게. 내가 아는 에지오가… 어디에도 없어서. 너무 많이 달라져서, 그게… 음……”
자기도 말을 꺼내긴 했는데 뭔가 할 말을 찾지 못한 건지, 계속해서 말끝을 늘였다.
많이 당황한 것 같다. 갈피를 잡지 못하며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나와 프론티어에서 재회한 것에 여간 보통 충격이 아닌 듯했다.
그건 차치하고서라도, 너무 많이 달라져서 알아보지 못했다는 루비아의 말.
어쩌면 나도 돌려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 짧은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조금은 수척해진 것 같다.
그렇다고 어여쁜 본판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살짝 앙상해졌을 뿐이지, 그녀는 여전히 희미하게나마 빛나고 있었다.
루비아는 자그마한 주먹을 꼭 쥐고 옅게 떨면서 간신히 말을 잇는다.
“……에지오, 많이 컸구나. 키도 엄청… 살도 좀 빠진 것 같구. …아닌가? 키가 커져서 살은 더 붙었으려나…? 음, 손도… 되게 커졌구. 그리고, 음…… 상처는, 다 나았어?”
상처라니.
뭘 물어보는 걸까.
내 입에서 나조차 놀랄 만큼 서늘한 음성이 나온다.
“……뭔 상처?”
“……아, 으응, 아니야.”
루비아가 희미하게 몸을 떤다.
빌어먹을.
이러고 싶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말이 날카롭게 나간다.
아니야, 진정 좀 해라. 에지오 크라닐. 루비아는 내 적이 아니다. 처음 루비아를 괴롭게 만들었던 건 나였다. 루비아가 내게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는 거다.
성격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낯선 사람에게 먼저 장난도 걸 줄 알게 되었고, 아까 그 금발 꼬맹이와 노닥거릴 때처럼, 여러 가지로 예전의 에지오 크라닐과는 참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아무것도 변한 건 없었나 보다.
이 녀석들과 함께 있으니까.
예전의 내가, 다시 돌아왔다. 여기로.
루비아는 내게 가장 소중한 친구가 아니었나.
루비아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니 루비아는 오히려 멋대로 멀어져버린 나를 원망해도 모자랄 텐데, 뭐가 이리 착해서 변해버린 나에게 이만큼 저자세로 나오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스륵.
손으로 앞머리를 가볍게 쓸었다. 잿빛 머리카락 몇 가닥이 손가락 사이에 묻어 나왔다.
그대로 고개를 살짝 드니, 루비아의 보석 같은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에, 에지오……”
저 눈동자에 어린 건 뭘까.
죄책감, 회의감?
혹은…… 예전의 내가 늘 하고 있던 눈?
눈물을 삼키던 루비아가 묻는다.
“……나, 에지오 몸에 잠깐 손 대도 돼…?”
“……”
내 변화를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아예 존재 자체가 달라져버린 에지오 크라닐이, 바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을 제 손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루비아는 그렇게 간절히 물어왔다.
어릴 적, 말도 없이 내 손을 잡고 숲속으로 이끌었던 루비아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가슴이 살짝 욱씬거렸다.
……뭘까.
우리는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대답 대신 팔을 들어올렸다.
멍하니 내 팔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만져보던 루비아는, 이윽고 시선을 아래로 떨구어 내 유니폼을 본다.
에픽 클래스를 증명하는 유니폼.
루비아가 멍하니 중얼거린다.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딱히, 뭐 없었어.”
궁금하겠지. 당연하다.
세상이 전부 날 부정하는 듯 가진 재능이 미천했던 나다. 삶을 연명할 방법이라곤 너무나도 한정되어 있던 나였다. 보는 이가 절로 측은하며 안쓰러울 정도였던 무능의 극치.
그런 불쌍한 아이가, 대륙 최고의 재능을 가진 녀석들만 모인다는 이곳에,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서서, 이리 다시 나타났으니까.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이상할 만도 하지.
나도 지금 내가 부자연스러워.
“……”
루비아는 뭔가를 더 물어보고 싶은 모양인지, 자꾸 우물쭈물거린다.
하지만 그 말을 끝내 도로 삼키고 만다.
어느 순간.
루비아는 결심한 듯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아.”
그러자 눈동자 속 녹빛 연못 사이로, 그보다 더 크게 흔들릴 수 없을 정도의 파문이 일었다.
“……”
왜일까.
내가 그녀를 보는 눈은, 어떻게 바뀌어버렸기에.
저렇게 마음이 아프다는 얼굴을 하고 있을까.
“……정말, 달라졌구나. 그 예쁜 머리색도… 하지만, 에지오가 맞아. 응…”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뭐야.
루비아의 눈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루비아의 자세가 점차 무너졌다.
“미안해, 에지오… 미안해……”
“……뭐가?”
워낙 울음을 잘 터트리는 성격이긴 했지만.
갑자기 이럴 줄은 몰랐다.
왜 이래. 이러지 말자 우리.
들어올렸던 내 팔을 부여잡고, 천천히 몸을 숙여가면서 오열하듯 눈물을 쏟아낸다.
……분위기 참 칙칙해지네. 돌겠다.
“……그냥, 그냥 다. 다 미안해… 히끅, 내가, 내가 에지오한테, 정말 못할 짓을, 끅, 했어… 죽을 만큼, 미안해……”
루비아가 울고 있다.
그 언젠가 루비아에게 내 마음을 처음으로 표현했을 때처럼, 더없이 슬픈 얼굴로 울고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 가슴이 아픈데.
아픈데……
그걸로 끝이었다.
……루비아가 나한테 미안해 할 게 있나.
아니, 아무것도 없다.
루비아는 아무것도 모를 테니까.
그렇다면, 루비아는 미련한 거다.
깨끗한 마음을 가진 순수한 루비아는 언제나 곧잘 울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미안해, 끅, 에지오… 미안해… 그때, 나……”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다.
그때라니.
어느 순간을 말하는 걸까.
……딱히 아무것도 떠올리기 싫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찬찬히 고민해 본다.
루비아가 왜 이렇게 울고 있을까.
대체 무엇을 잘못했다고.
거듭 말하지만, 루비아는 잘못한 게 없다.
아무것도.
그러니까 내 안에 잠든 기억 속에서도 루비아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티끌 하나 없이 순수한 아이로 남아야만 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작열하며 불타오르는 겁화(?火). 기형적으로 꺾여버린 팔과 다리. 텅텅 비어 거덜난 마력. 역류하는 선혈. 죽었지만 죽지 못한 채 기적적으로 움직이는 유약한 몸뚱아리.
온몸이 너덜너덜해지면서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괴성과 함께 악을 쓰며 달려들어서, 내게 기적이 처음으로 일어났던…… 선명한 그날의 기억.
— ……아… 슈리엘, 선, 배님…?
그 끝에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그것으로 전부 끝나버렸던… 악몽 같은 하루.
……거기 있는 건 나였지만 내가 아니었다.
그랬을 텐데, 루비아가 절대로 알 리가 없는데.
그럼 루비아는 잘못이 없는 게 맞잖아.
루비아가 내게 미안해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거다. 오히려 루비아를 내치고 그동안 친구로도 지내주지 못한 나의 잘못이 가장 크다고 봐야겠지.
“흐윽, 흐에에엥… 끅… 끄으으윽……”
루비아가 오열하고 있다. 그 새된 목소리를 한사코 죽이면서, 자리에 무너져 앉아 내 팔을 붙잡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곤란하네.
연회장, 그래도 가야 하긴 하잖나.
“…그만, 뚝. 그쳐.”
“미안해, 끅, 미안해… 에지오……”
“하……”
짜증이 난다.
루비아가 울어서 짜증이 나는 게 아니다. 그냥 이 상황 자체가 짜증이 난다. 좆같은 기적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도 정도껏이어야지, 왜 나한테만 계속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됐으니까, 울지 마.”
“…미안해, 나, 정말, 에지오에게… 꼭, 사과하고 싶었는데, 에지오가…학교, 자퇴하고, 끅…어떻게, 뭘 해도, 계속 못 찾아서……”
“……”
……그 뒤로 날 찾아다녔던 건가.
어차피 무슨 짓을 한들 절대 못 찾았을 거다. 그러니 지금 이러고 있겠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면 꽤나 수척해진 지금의 몰골 또한 그 탓이었던가.
……솔직히 말하면, 조금 관심을 두다가 얼마 안 되어 신경 끌 거라고 생각했다. 루비아와 나는 이미 상당한 거리를 둔 채로 멀어져 있는 상태였으니까.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내 예상보다 훨씬 더.
가슴속에 희미한 죄책감이 든다.
루비아는 새된 소리를 냈다.
“말이라도, 말이라도 해주지 그랬어……”
“……미안.”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니, 뭐.
내가 버젓이 살아있는 이상 언젠가 내 존재를 알릴 생각은 했다.
이렇게 프론티어에도 입학하게 된 마당에, 내 소식이 루비아에게 닿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으니까.
근데 이럴 때 만나고 싶진 않았다.
하물며 같은 반으로는 더욱더.
……우선 루비아의 눈물을 그치게 해야겠다.
내가 엄하게 다그치듯 말했다.
“울지 말라니까. 계속 울면, 너랑 계속 친구 안 할 거야.”
“……히끅.”
그리고.
루비아는 내 말에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예쁜 얼굴이 엉망진창이 되어서, 고운 턱 끝으로 물방울이 맺혀 떨어지고 있다.
“……날 아직… 친구라고, 생각해주고… 있었구나, 에지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히끅.”
눈물을 그치라는 내 말을 어느 정도 들으려 하는 듯, 루비아는 옷소매로 얼굴을 쓱쓱 문지르면서 작은 목소리로 숨죽여 울었다.
……결국 울긴 할 건가 보다.
우선 루비아는 일단락 됐나.
의문이 송송 피어나기는 한데.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들을 수 있겠지. 아무래도 루비아는 나와 자퇴 이후 평생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해서 날 다시 보고 오열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그거랑은 좀 다르다. 상상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수가 다가온다.
……그 새끼가, 결국 말했나.
머리가 지끈거린다. 씨발.
좆같네.
루비아의 턴이 끝난 건지, 옆에서 소리가 들린다.
“……”
“……”
이미 속에서 울음을 전부 쏟아낸 건지.
어째서인지 겉으로 눈물은 한 방울도 흘리고 있지 않은데, 속으론 끊임없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있던 건지……
언제나의 미성이 희미하게나마 묻어 있으나, 쩍쩍 갈라지고 목이 쉰 듯한 목소리로.
뮤는 내게 입을 연다.
“……선, 배. 맞아요?”
아까 확인했잖아.
하지만 그러려고 물은 게 아닐 터다.
그 단어를 꺼내는 것이 무척이나 오랜만이라는 듯. 다시는 여기서 꺼내게 될 줄 몰랐다는 듯.
어색하기 그지없는 발음이었다.
“……그래, 임마. 나다.”
“……아.”
그 순간 변화가 일어났다.
내가 프론티어 입구에서 뮤를 처음 봤을 때.
그 이전의 냉정하고 싸늘한 분위기가 눈처럼 녹아내리고 있다.
감정 하나 모르는 것 같던 흔들림 없는 자줏빛 눈동자가, 누구의 침입도 허락하지 않을 것 같던 굳게 닫힌 입술이.
사정없이, 흔들리며, 깨지고, 부서지면서, 결국, 환상처럼 일렁거리며, 다시 원래의 투명한 빛깔을 되찾아오고, 그녀는, 그렇게, 내 기억 속의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후배, 뮤로 변해갔다.
“선배… 저, 저, 그게, 저예요……”
검은 머리칼. 자주색 눈동자. 허리춤에 찬 검집. 키는 조금 큰 것 같고, 인상도 좀 달라졌나.
그래도 여전히 뮤다.
……한데 왜일까.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애석하게도.
반가움이 아니었다.
난 아직도 뮤의 잘못은 없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누구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날 모든 걸 잃어버렸지만, 그 모든 업보는 전부 오로지 나에게서 비롯되었던 것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나은 인간이었더라면,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
처음부터 그 뒤뜰 계단에서 뮤를 단호히 거절했었으면 그랬을 일도 없겠지.
그날……혼자 남겨졌던 뮤가 지독히 울면서 날 저주하며 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욕설을 쏟아부었을 일도, 아마 없었을 거다.
그러니 나의 잘못이다. 전부.
그렇기에.
이미 나는 너무 많은 길을 되돌아왔고.
이제, 돌아갈 수 없었다.
“……하나 정정하자. 난 네 선배가 아니야, 뮤.”
“……아.”
뮤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동급생이지. 우린 이제부터 동등한 친구로 지내게 될 사이야. 그러니, 날 선배라고 부르지는 마. 절대로.”
우리들은.
어긋난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 첫 단추로, 나는 지금까지 쌓아온 그녀들과의 인연을 전부 없애버리고자 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