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입학 당일_연회장의 뒤편에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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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루비아는 누군가를 험담하거나 뒷담하지 못한다.
평소 반 친구들이 책상 주변에 둘러앉아 누구 남자친구가 얼마나 쓰레기라느니, 옆 반에 어떤 여자애가 자꾸 나댄다느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느니 하는 뒷말들을 조용히 듣기만 한다.
공감은 집단의 유대를 키우고 구성원들 간의 신뢰도를 높이는 중요한 일이었으나, 루비아는 뒷담화에 결코 참여할 수 없었다.
오히려 너무 심한 말을 한다 싶으면 어색하게 웃으며 ‘그런 의도는 아니었을 거야…’ 하는 식으로 뒷담화 대상의 변호를 해주기도 한다.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타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밉다는 감정은 알고 있다.
루비아도 한 명의 인격체였고, 때문에 어떠한 잘못을 저지른 누군가를 마음속으로 미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미운 감정의 편린조차 웬만해선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왜냐면, 그랬다간 상대가 상처받을 테니까.
뒷담화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도 그러한 맥락에서였다. 이들의 대화가 어딘가에서 퍼져나가 대상의 귀에 들리기라도 하면, 그 사람은 아마 크게 상처받을지도 모른다.
루비아의 천성(??)은 그런 것이었다.
흔들리지 않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으나,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가지는 연약함이란 속성에 너무나도 취약하다.
상처받는 것은 싫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건 더욱더 싫다.
때문에,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루비아는 그 사람을 향해 욕 한마디 하지 못한다.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뻗쳐도 ‘나쁜놈’ 이라는 한 마디가 루비아에게 있어서는 저주나 다름없는 심한 욕설이었다.
“……너. 에지오의, 후배였지?”
따라서.
루비아는 뮤가 싫다.
싫지만, 티를 내지 못한다.
무릎을 털면서 벤치에 힘없이 앉아, 냉정히 자신을 내려다보는 뮤에게 눈물자국이 말라붙은 얼굴로 중얼거린다.
“얘기는 듣긴 했어. 신입생 중에 엄청난 검술 천재가 있다고… 그리고, 나 졸업할 때 조기졸업했다는 소식도 들었으니까.”
“……”
“……너와 에지오가 친하게 지냈다는 건 알고 있어. 에지오의 소식은… 가끔 들리거든. 나 대신 에지오와 친하게 지내줘서…… 고맙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
뮤는 루비아와 말을 섞기 싫었다. 하지만 말은 듣고 있었다. 그쯤에서 속으로 얕은 분노를 삭이며 은밀히 속삭인다.
……네가 에지오 선배의 뭔데 고맙고 말고를 대신 생각해? 선배를 차버린 주제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사정이 곤란하다는 듯, 그렇게 주위에 휩쓸리면서, 자연스럽게 선배를 멀리한 주제에……
한편, 루비아는 새하얀 허벅지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은 자신의 연분홍빛 머리카락을 손으로 조심스레 매만진다.
“…그때 에지오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해서, 너를 원망하진 않아. 아마 너도 못 찾았던 걸 테니까. 에지오는, 우리가 자기를 찾지 않길 바랐을 테니까……”
“……”
기숙사 퇴실 준비를 하고 있던 자신을 찾아와.
가쁜 숨을 삭히며 에지오 선배의 행방을 물었던 루비아의 그늘진 얼굴을 기억한다.
그게 루비아와 뮤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였다.
“그렇지만 오늘, 드디어 나… 에지오랑 다시 만나게 되어서 기뻤어. 눈물 날 정도로 기뻤지만…… 아직, 에지오한테 제대로 사과하지 못했어. 용서를 받을 수 있다면 받고 싶어.”
그건 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에지오 선배는 자신들을 용서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마음속 불이 꺼지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러기엔 너무 늦어버린 탓이었다.
지금에 이르러선, 용서라는 행위가 가지는 의미를 이미 잃어버렸다. 변해버린 에지오 선배는 자신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게 가장…… 슬픈 일이었다.
뮤는 루비아에게 묻는다.
“선배… 에지오가 용서를 바라지 않는다면?”
“……그래도, 사과해야 해. 에지오는 나한테 가장 소중했던 친구였을 텐데… 그런 친구를 가장 크게 상처입혀버렸어.”
이 역시 뮤도 마찬가지였다. 뮤는 본인이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선배에게 너무 많은 아픔을 주었다. 혐오스러울 정도로 이기적인 말과 행동을,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들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 사실을 인지할수록 뮤 자신에게 루비아를 미워할 자격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점차 깨달아 간다.
하지만 미워할 수밖에 없는 거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처참히 무너진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 나면, 선배를 그 꼴로 만든 모든 원인들을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
뮤는 나지막이 입을 연다.
“……애초에, 에지오를 왜 거절했던 거야?”
“……? 그게 무슨, 아…”
루비아는 뮤가 무엇을 물었는지 깨닫곤.
살짝 갈 곳 잃은 시선으로 멍하니 답한다.
“……에지오가 너한테 그런 것도 말했구나. 으응, 뭐. 당연하겠지…”
뮤는 살짝 가소로움을 느꼈다. 선배는 그것 말고도 루비아에 관련한 많은 이야기를 해줬기에.
검집 끝을 툭툭 건드리며 입을 연다.
“에지오의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거절했던 거냐고. 어릴 적에는 둘이서 참 행복했었다며. 에지오랑 함께 있는 게 제일 즐거웠다며. ……근데 왜, 에지오의 뭐가 부족해서, 곁에 그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데 에지오와 연인 사이로 발전할 수 없다고 했던 거야?”
“……”
그쯤에서.
루비아는 가슴 한구석이 울컥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안 그래도 침울한 상황에, 자신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것도 모자라, 에지오의 친한 친구에 불과했을 터인 뮤가 에지오와 자신만의 깊은 사정을 쏘아붙이듯 캐묻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평소의 루비아였다면 여기서 끝났을 것이다.
천성이 둥글게 생긴 루비아에게는 날이 선 태도라는 것이 참 어려웠다.
그런데, 왜.
이 후배에게는… 조금 싫은 말이 나오는 걸까.
“……너는, 에지오의 뭐야?”
“하?”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루비아의 손길이 뚝 멈췄다.
이상하다. 가슴 한쪽이 기묘하게 뜨거웠다.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다.
그렇지만, 루비아는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감정을 다시 마음 깊은 곳으로 숨기고 싶지 않았다.
왠지…… 뮤에게는 하고 싶은 말을 해야 이 답답함이 풀릴 것 같았다.
스윽.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던 루비아는 천천히 머리를 든다.
이윽고 에지오가 아니라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극히 미묘하게 짜증이 어린 얼굴로 뮤를 향해 따박따박 묻는다.
“단순히 친한 후배 아니었니? 내가 알기론, 에지오와 많이 친했다곤 했는데…… 에지오와 나 사이보다, 너네가 더 가까워? 아니잖아. 그런 뒷사정까지 물어볼 사이일까, 우리가?”
“……”
뮤는 속으로 살짝 놀란 상태였다.
……지금 화를 내고 있는 건가? 이 언니가?
선배의 말로는 앉아서 엉엉 울 줄만 알지 남을 울릴 줄은 모르는 사람이랬다.
호기심으로 며칠 정도 루비아를 스토킹했던 뮤 역시 그 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객관적으로 착하고 예쁜 언니.
그 정도론 생각하고 있었다.
그 평가를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았다.
……아, 그렇지.
그런 거였구나.
뮤는 곧 가느다란 미소를 마음속에 그린다.
이 언니는 모른다.
에지오 선배와 자신이 사귀었다는 사실을.
“전 여자친구.”
“……뭐?”
“전 여자친구라고. 에지오랑 사귀었던.”
다음 순간.
뮤는 방금까지 날카로운 예기를 띠던 루비아의 눈동자가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
전 여자친구라는 말은 결코 뮤에게 있어서 좋은 뜻이 아닐 텐데……
왜인지, 지금만큼은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전… 여자친구……?”
루비아가 뮤에게서 시선을 떨군다. 뮤의 말을 받아들이기까지 대략 삼십 초가 넘게 걸렸다. 방향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한 루비아의 눈동자 속 에메랄드빛 연못의 물이 급속도로 메말라갔다.
“하, 하지만… 나한텐 그런 말, 에지오가… 해준 적도 없는……”
“뭐? 에지오가 왜 그쪽한테 말을 해야 돼?”
“……”
“자길 차버린 소꿉친구한테 가서 나 여친 생겼다, 이렇게 말을 해야 되나? 그럼 축하한다는 말을 듣고서, 그렇게 그냥 끝이 나는 거야? 아니잖아. 에지오는 오히려 더 비참해졌을걸?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하는데도, 그냥 아무런 감정도 없이 축하한다고만 대답해주면……”
“……감정이, 없다고, 내가……?”
루비아는 혼란스러웠다.
그랬으면 지금 뮤의 충격적인 발언을 듣고 이렇게 머리가 울리진 않았을 것이었다. 세상이 두어 번 크게 진동한 것 같았다. 방금 전까지 마음속에 피어올랐던 기묘한 열이 한순간에 식어간다.
대신, 새로운 불길이 피어올랐다.
“……나도 알아. 내가 아무런 자격도 없다는 거. 내가 에지오를, 그렇게 거절해버렸으니까. ……나는, 아직 여기 있는데, 내가 찼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버려서… 너랑 사귀었다는 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는 걸……”
“알면——”
“그랬구나, 에지오가… 여자친구를… 응. 너와, 사귀었구나…… 분명… 행복했었겠지? 너나, 에지오는, 나쁜 아이가 아니니까……”
뮤는 차가운 눈으로 루비아를 내려다본다.
행복하긴 했다.
…당신만 없었다면 계속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루비아가 힘없는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린다.
“……아하하, 나 되게 이기적이다… 에지오랑 친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귀었다고 하니까, 내가 모르는 에지오를 너는 많이 알고 있겠구나, 싶네…… 그렇게 좋은 기분은, 아니네……”
“……”
“……언제부터, 였어?”
뮤는 고민없이 대답했다.
“재작년 12월 23일.”
“……”
루비아는 뮤의 말이 거짓 하나 없다는 걸 알아차린다. 동시에, 뮤가 에지오를 무척 특별히 여기고 있다는 그 소중한 감정마저도 여실히 느껴버린다.
12월 23일.
그날에 루비아는 무엇을 했더라.
재작년 겨울의 일이라 그런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무언가……
아.
……그때였구나.
루비아의 마음은 한층 괴로워져 간다.
“이 정도면 물어볼 자격은 충분하지 않아? ……나는 말이야, 에지오를 정말 오랫동안 지켜봐 온 사람이라면 에지오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해. 친구가 아니라 한 명의 이성으로서도.”
“……”
뮤는 에지오의 모든 것을 좋아했다.
진심으로 좋아했기에, 그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뮤가 평소에 읽는 연애 소설의 남자 주인공과 에지오는 전혀 정반대의 타입이었다.
그럼에도, 뮤는 에지오를 열렬히 사랑했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
루비아는 여러 감정을 한번에 느끼고 있었다.
가슴 안쪽이 답답한데, 울 것 같기도 하고, 그리움이 사무치는가 하면, 따가운 자책감이 들기도 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종류의 울컥함이 목구멍을 가득 메워서, 이걸 토해내고 싶어도 꾹 참고 삼켜야만 했다.
“……넌, 에지오를 좋아… 아니, 사랑했던 거지?”
“지금도 마찬가지야. 자격은 없지만.”
“……그렇구나.”
루비아는 별안간 뮤를 부럽다고 생각했다.
에지오를 사랑하고 있다는 게 보인다. 사랑은 형태가 없는 마음이라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할 텐데, 말과 행동에서부터 뮤가 에지오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조금씩 느낄 수 있다.
루비아에게 없는 것을, 뮤는 가지고 있었다.
에지오를 향한 사랑을 말하는 게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였다.
“……난,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어.”
루비아는 상서로운 신상 아래서 자신의 죄를 고하듯 느릿하게 입을 연다.
“지금까지 사랑은 행복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와 연인이 된다고 생각하면, 그냥…… 두렵기만 했어.”
루비아는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라왔다. 그렇기에 때묻지 않을 수 있었고, 그렇기에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다.
“1학년 때 에지오를 거절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였어. 에지오는 나의 소중한 가족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나를 한 명의 여자로 생각했단 말에, 살짝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 그래서…… 무서웠어. 에지오와 더 깊은 관계가 되어버리는 게. 우리 사이가 한순간에 바뀌어버리는 게……”
상처주는 것이 무섭다.
상처받는 것이 무섭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깊어질수록 서로에게 주는 상처가 더욱 깊숙이 남는다.
모르는 사람이 나를 욕하는 것과, 믿었던 사람이 나를 욕하는 것이 전혀 다른 것처럼.
그렇게 되는 미래가, 무서웠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따위 두려움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에지오를 잃어버리는 게 더 두려워.”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일주일간 이어진 결석 다음.
에지오는 정말 갑작스레 졸업 직전에서 아카데미를 자퇴한 뒤, 자기가 살던 방의 짐마저 싹 비워버린 채 어딘가로 잠적해버린 것이었다.
같은 아카데미 내에서 활동할 때는 멀리서나마 에지오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지만.
그가 루비아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후에, 그리고…… 모든 진실을 깨달은 뒤에.
루비아는 한동안 미칠 듯한 불안감에 휩싸여 차마 죽지 못해 살았다.
멀쩡히 살아는 있는 건지.
그를 찾게 되면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도대체 어떠한 사죄의 말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확실치 않아서……
정말로 힘든 나날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프론티어에서 에지오와 재회하게 된 바로 오늘.
루비아는 어쩌면 예전과도 같이……비로소 편안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뼈마디가 조금 선명한 손을 쥐었다 도로 펴며.
루비아는 조용히 생각한다.
“……”
에지오의 첫 고백 이후로 3년이 흘렀다.
그동안 루비아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하면서, 차츰 정신적으로 성숙해졌다. 더욱 깊은 고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태 아카데미의 남자 선배들, 혹은 남자 동급생들과 한 공간에 있었을 무렵, 루비아는 때때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받았다.
루비아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꿈틀거리는 욕망이.
그들의 일방적인 사랑이… 무섭기만 했다.
자기가 알던 사랑이란 감정의 그 편안함과 행복감이라는 건 어디에도 없고, 막연한 두려움과 불편함이 그 자리를 대신 채웠다.
……루비아는 모두를 좋아했지만, 그뿐이었다.
아무리 많은 이성들이 루비아를 사랑해주어도, 어째서인지 루비아는 그 마음에 대답해 줄 수 없었다.
루비아에게 있어서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은, 혈육을 제외하고서 단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그 사람을 크게 상처입힌 것은 자신이었다.
그 사람의 상처를 보듬어 준 것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결국 둘은, 어쩌면 자신보다 더 깊은 관계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물며 루비아는 그 사람을 잃을 뻔했다.
영원히.
그것 또한 자신의 탓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 모든 상황이 합쳐지자, 루비아는 지금 자신의 마음속에서 휘몰아치는 복잡함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살아 돌아온 에지오와 다시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쁘고 행복한데, 더없이 슬프기도 했다.
자신과 멀어진 사이에 누군가와 더 밀접한 관계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살짝 아려왔다.
대체 왜일까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에지오의 옆에는 늘 자신이 있었다.
자신을 제외하면, 에지오는 언제나 혼자였다.
이성은 아무도 없었다.
“……”
루비아는 그 사실을 멍하니 깨닫는다.
로르센 아카데미를 다닐 적에.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한 명 있다.
어느 날, 그 선배에게 전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에지오에게 뮤라는 연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들어버린 순간에.
……어라.
심장이, 욱신거렸다.
“……아?”
루비아가 마음속에서 무엇인가 흐릿한 감정을 자각하려 할 즈음에, 뮤는 기가 찬 목소리로 입을 연다.
“고작 그 정도로 에지오를 거절했단 거지? 난 평생 이해 못할 시답잖은 이유네.”
“……”
“에지오는 너한테 차이고 나서 엄청 노력했어. 달라지려고. 난 그걸 옆에서 쭉 지켜봤고. 에지오가 날 알지 못할 때부터 계속. 그렇게 노력해서, 지금 뭐… 많이 달라졌지. ……어때, 새로워진 에지오를 본 소감은? 이제 좀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
“물론, 지금에서야 에지오를 사랑하려고 해봤자 소용없어. 에지오는, 이미 우리 둘 다. 아무도 좋아할 자격이 없으니까. 이제 와서 뭘 하겠——”
그때였다.
“음, 일단 하나는 확실히 알겠군.”
“……!”
“……!”
어디서 나타났는지, 루비아와 뮤 사이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씩 웃는다.
“일단 그 에지오란 자식이 죄 많은 놈이라는 건 알겠다. 청춘이네, 청춘이야. 풋풋한 사랑놀음도 좋은데…… 너네 지금 안 가면 연회 끝나버린다? 내가 알기론 이거 평가에도 들어가거든. 입학 첫날부터 출결 점수 까먹을래? 엉?”
“에, 엘레나 선배님… 왜 여기에?”
살짝 뒷걸음질 치며 그리 물은 뮤를 향해 엘레나가 인상을 팍 구긴다. 실로 무서운 기세였다.
“뭐 임마? 왜 여기에? 내 모교에 내가 있으면 안 되냐? 그리고 연회장엔 없을 거라 했지만 연회장 밖에 없으리란 말은 안 했다? 새끼들이 빠져가지고…… 빨랑 들어가!”
“히약!”
“에, 엘레나 선배님… 저, 저 옷 찢어져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벤치에 앉은 루비아와 뮤를 거의 질질 끌고 가다시피 연행하며, 엘레나는 동의만 얻는다면 상대 성별 기숙사 출입이 가능한 기숙사 규칙을 떠올리곤 오묘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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