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날 차버린 소꿉친구와 전 여친이 같은 반이라 곤란하다-14화 (14/201)

〈 14화 〉 친해지길 바라 (2)

* * *

#4

결국 다시 3동에 돌아왔다.

1층에 있는 1학년 전용 연무장 문을 열고 들어서니, 고운 잔디가 깔린 널찍한 필드와 왜 있는지 모를 관객석이 보인다.

깔끔하게 정돈된 환경에 감탄하기도 잠시.

“오, 에지오. 저기 네 친구 아니냐? 옆에는…… 누구더라?”

연무장에 선객이 있었다.

“와­ 너 진짜 대단하다! 검이 막 손에 달라붙어 있는 거 같아. 어떻게 하면 너처럼 멋지게 휘두를 수 있어? 응? 응?”

“……”

부웅­ 휘웅­

“있잖아, 근데 조기졸업이 뭐야? 다른 친구들 말로는 우리보다 네가 한 살 어리다는데, 그게 진짜야? 그럼 사샤가 언니인 거야? 응? 응? 응­?”

“……”

부우우웅­ 휘익­

“치이… 왜 아무 대답도 안 해줘? 사샤가 싫어?”

“……”

“헤에에­ 싫다는 말은 안 하네? 그럼 사샤가 좋은 거지? 그치? 사샤, 계속 여기 있어도 돼? 응? 응? 으으응­?”

저 멀리서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묵묵히 제 검을 휘두르고 있는 뮤와, 그 옆에서 쫑알쫑알 시끄럽게 주위를 뱅글뱅글 도는 한 여학생이 있었다.

얇고 가는 목소리만 들어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녀석이었다. 아까 강의실에서도 뮤의 곁에서 달라붙어 이것저것 캐묻던 녀석. 유리와 동등하거나 그 이하일 정도의 땅딸막한 키를 가지고 있었다.

사샤였나 샤샤였나.

아마 사샤 엘네란 이름이었을 터다.

물빛에 흰 물감을 섞어놓은 듯한 하늘색 머리카락이 목 부근에서 양갈래로 나뉘어, 그 깨방정 떠는 움직임에 따라 사방으로 휘날린다.

연무장에는 딱히 수련하러 온 것도 아닌지 유니폼 차림 그대로였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뮤의 검술 수련을 방해하고 있다.

“사샤는 친구가 만들고 싶은 것뿐인데… 대화도 한번 안 해주고… 진짜 그러기 있어?”

“……”

부웅­ 부웅­

과연, 초인적인 집중력을 가진 뮤는 사샤의 필사적인 존재감 어필을 깔끔하게 개무시하면서 허공을 베어가르는 중이었다.

대답 하나 없는 뮤에게 사샤는 입이 댓발 튀어나와 툴툴거리기 시작했으나.

“야아­ 너 계속 이러면 아무리 사샤라도 삐진…… 꺄악!”

휘이익—!

이곳까지 미약한 바람이 전달될 정도로 절도 있는 내려베기가 이어지자.

바로 옆에서 허리를 살짝 숙이고 있던 사샤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었다.

“위, 위험했잖아! 말로 해, 말로! 고치지는 않을 거지만!”

“……”

날카로운 검 끝이 연무장 바닥을 향해 있었다.

물론, 사샤의 패악질에 짜증을 참다 못한 뮤가 사샤를 사/샤로 이등분하려 한 것이 아니라, 연무장 문이 열린 뒤 가브리엘과 내가 들어온 것을 목격하면서 잠시 수련을 멈춘 것 같았다.

“……”

살짝 눈이 커진 뮤가 날 보고 있었다.

“­응? 뭐야, 뭔데?”

사샤도 뮤를 따라 이쪽을 본다. 뮤의 미묘히 당황한 얼굴과 나를 번갈아 보면서 눈을 깜빡인다.

뮤에겐 미안하지만 이쪽으로 관심이 옮겨붙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 우린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 저기 가서 할 테니까.”

가브리엘과 연무장 오른쪽 구석으로 향하며 그리 말하자, 뮤는 검을 쥐지 않은 손을 휘적였다.

“……아, 아니야. 나도 막 그만하려는 참이었어.”

그렇다고 보기엔 사샤의 듣기만 해도 어지러운 정신 공격을 멀쩡히 버텨내면서 잘만 하고 있던 듯했다.

여기서 얼마나 있던 건지는 몰라도 뽀얀 피부 위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보면, 꽤 오래간 자세를 다잡고 있던 것 같다.

괜히 방해한 건 아닌가 몰라.

불만스러운 듯 눈을 가늘이던 사샤가 입을 연다.

“어래래… 사샤한텐 한마디도 대답 안 해주더니. 사람 완전 차별하는 거야, 뭐야! 완전 서운해.”

그러거나 말거나.

뮤는 귀 뒤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면서, 제 검을 검집 안에 집어넣고 우리가 열고 들어온 연무장 문을 향해 걸어간다.

스윽.

막 손잡이를 붙잡기 전에.

나를 뒤돌아보며 말한다.

“여, 열심히 해…… 에지오.”

왠지 불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내 이름을 부를 때 약간 목소리를 떨기도 했고.

아직 익숙해지려면 한참인 듯하다.

나는 손을 들어 화답해주었다.

“어, 고맙다.”

“……응.”

희미하게 웃은 뮤가 자신을 뒤따라 달려오는 사샤를 떨쳐내듯 문을 빠르게 닫았으나, 사샤는 우리를 돌아보며 볼을 부풀리더니 점점 멀어져가는 뮤를 쫓아 연무장 밖을 나섰다.

#5

“역시 뭐 있잖냐, 에지오.”

“뭐가?”

가브리엘이 내게 훈련용 목검을 던지면서 그리 말했다.

“인상만 보면 표정 하나 모를 것 같이 생겼는데, 아까 너한테만 웃어주고 가는 거 봤냐? 분위기도 무슨 아련해 죽겠던데. 내 직감은 말하고 있거든. 너희 사이에 절대로 뭔가 있었다고.”

이래서 눈치 빠른 녀석은 싫다니까……

라기보단 눈치 못 채는 게 이상하긴 하다.

“뭐 없다니까 계속 그러네. 숫기가 없어서 그래. 너도 뮤랑 친해지면 적어도 사샤처럼 무시당하진 않을걸.”

받아든 목검을 이리저리 붕붕 휘두르면서 대답하자, 가브리엘은 침음성을 내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그거랑은 좀 다른 느낌이었거든. 뭔가 접근을 차단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말 한번 걸기 뒤지게 어려운 타입 같은데…… 나중에 기회 되면 네가 다리 좀 대신 놔주라. 괜히 먼저 들이댔다가 좋은 꼴 절대 못 볼 것 같어.”

“다리는 무슨 다리. 뮤한테 관심 있냐?”

“엉? 예쁘잖아. 우리 반 1번이고. 친해져서 나쁠 거 없지 않나? 어차피 계속 같은 반에서 얼굴 보고 지낼 텐데.”

“뭐, 그렇긴 하지……”

내가 중간 연결고리를 담당해준다고 해서 뮤와 가브리엘이 원만하게 친해진다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긴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의 뮤가 가브리엘 같은 타입의 친구를 두고 싶어할지부터 의문이긴 하다.

가브리엘도 다소 경박하긴 하나 나쁜 녀석은 아닌 것 같긴 한데. 굳이 따지자면 뮤가 싫어하는 타입에 가깝지 않나 싶다.

……내가 이런 말 하는 것도 좀 우습나.

“사실, 여기 유학 올 때 기대를 좀 하고 왔단 말이지. 내가 살던 곳은 무슨 털보 아저씨들밖에 없었거든. 히야­ 진짜 그 추운 곳에서 소금냄새 땀냄새 나는 아재들이랑 붙어살려고 하니 죽느니만 못하겠더라. 나도 좀 청춘을 즐기고 싶었다 이말이야. 맞선 후보랍시고 데려온 여자는 무슨 덩치가 아이스베어 성체급이더라고.”

“그래서 제국으로 유학 온 거야?”

가브리엘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거기서 못 살겠다 하고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제국물을 딱 마셨을 때, 아, 여기가 바로 내 무덤이 될 곳이구나. 하는 삘이 딱 왔지. 크으, 바로 앞 거리만 나가도 그냥 절로 불끈해지는 누님들이 쫙 줄을 서 계시는데……”

양팔을 벌리며 감탄사를 내뱉는 가브리엘.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이거 위험한 새끼였네. 네 머릿속의 악마를 내가 대신 치워줄 필요가 있겠다.”

가브리엘이 미간을 팍 좁혔다.

“뭐? 야, 에지오. 우리도 이제 곧 성인이야. 아니, 우리 나라에선 이미 나 성인이거든? 학생이라고 연애하지 말란 법 있어? 남녀가 교접하지 말란 법 있냐고. ……아, 그리고 그거 아냐? 여기 기숙사는 상대 동의만 얻으면 여자 기숙사도 출입 가능하단다. 듣기론 이성 교제도 딱히 금지가 아니고 오히려 장려하는 쪽의 분위기라는……”

“됐으니까 검이나 잡아. 계속 그런 얘기하면 내가 제일 먼저 공격하는 곳은 네 아랫도리가 될 거야.”

가브리엘이 낮게 탄식했다.

“허어­ 사내 자식이 돼가지고 쓸데없는 부끄러움이 많구만. 너 혹시 동정이냐? 겉으론 여자 세넷씩 밤낮으로 후리게 다닐 것처럼 생겨가지곤……”

“연무장에 온 이유를 잊지 말자는 거지. 일단 검이나 잡어, 임마.”

가브리엘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알았다, 알았어. 재미없기는. 근데 동정이란 질문에는 대답 안 하는 거 보니까 진짜 동정 맞나 보……”

말없이 검을 세워 가브리엘의 낭심을 조준하자, 가브리엘은 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여기까지. 그럼 제대로 시작해보자고.”

그리 말하면서 제 손바닥에 목검을 툭툭 두드린다.

“검은 오랜만이네.”

“오랜만?”

“아, 쓸 일이 별로 없었거든. 배우긴 했는데, 손맛이 영 별로라서.”

손맛은 또 뭐야.

여러모로 범상치 않은 녀석이다.

가브리엘이 문득 내게 묻는다.

“그냥 가볍게 한 판 붙으면 되는 거지? 아까 힘을 좀 썼더니 슬슬 근육통 오는 거 같은데.”

“괜히 열 낼 필요는 없지. 마력도 쓸 필요까진 없고. 네 재능이 뭔지 잠깐 보여준다는 생각으로 하면 돼.”

“흐음, 잠깐으로 될까 싶긴 한데…… 일단 오케이. 자, 에지오. 너 먼저 들어와라. 이 가브리엘님께서 선공을 허락해주마.”

씩 웃던 가브리엘이 자세를 잡는다.

“……”

“……”

대화가 사라지자 우리 둘 사이에 정적이 감돌았다.

살짝 다리를 벌린 가브리엘은 분명 잘 단련된 전사의 형(?)을 구사하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을 뿐인데도, 빈틈을 파고들기가 굉장히 어려워 보였다. 어떤 각도로 들어가 쳐야 할지 잘 예상이 가지 않는다.

진심을 내는 대련은 아니다. 간단히 서로의 능력을 시험한다는 명목하에 치러지는 연습 대련이다.

그럼에도, 막상 전투 태세에 들어가자 이것을 싸움의 일종이라 인식한 뇌가 저도 모르게 감각을 활성화시킨다.

……후우.

전신을 감싸는 것은 희미한 긴장감이다.

내 눈은 가브리엘의 팔과 다리, 손, 어깨를 면밀하게 훑었고, 그가 언제든 내가 공격해오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확실하게 인지하면서.

쓰으윽.

오른다리를 뒤로 끌며 뻗은 뒤.

“흐읍—”

한 호흡에 바닥을 박찼다.

타앙—!

포탄처럼 쏘아진 내 몸이 순식간에 주위 배경을 끌어오며 가브리엘의 사정거리 안으로 진입한다.

날카로운 공기가 내 얼굴을 할퀸다. 귀를 찢는 바람 소리가 북처럼 울린다.

부우웅—!

멈추지 않고 양손으로 쥔 목검을 횡으로 휘두른다.

“오, 꽤 빠른데­?”

“……!”

카앙—!

맞부딪히는 순간 무지막지한 저릿함이 손목을 타고 온몸을 찌르르 울렸다.

단련된 몸과 균형 잡힌 자세를 보며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가브리엘은 한 치의 물러남도 없이 내 공격을 그대로 받았다.

그 짧은 사이에 자세를 비튼 가브리엘이 유연하게 내 목검을 받아친다.

얼굴을 가리듯 오른팔을 들고, 목검 끝을 연무장 바닥으로 향한 채 서로의 목검을 ?자로 교차시킨다.

스가가각— 부우웅!

그 상태로 걷어내듯 내 목검의 날을 바깥으로 밀어내면서, 동시에 팔을 머리 위로 회전시켜 내 왼 어깨를 향해 대각으로 내리찍는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의 전환이었다.

츠즈즈즛—

힘 대결에서 밀려났던 내가 왼발을 축으로 몸을 반 바퀴 회전했다.

그리고.

쩌엉—!

서로의 목검이 허공에서 다시금 충돌했다.

“크윽……!”

이번에도 거대한 저항감이 손목을 뒤덮는다.

미친. 하마터면 목검을 놓칠 뻔했다.

그야말로 무식한 힘이었다.

이를 악물었다.

타악—!

힘을 폭발적으로 집중시켜 가브리엘의 목검을 위로 쳐내고, 머리를 쪼개듯 양손으로 빠르게 내려 벤다.

“어허­ 위험하잖냐.”

까앙—!

가브리엘이 작게 미소짓는다.

한 손에는 손잡이를, 한 손에는 날이 없는 부분을 꾹 쥐어 받아낸 뒤 그대로 튕겨낸다.

제길. 회심의 공격이 허무하게 막혀버렸다.

부웅!

직후 허리를 숙여 일점으로 날 찌르고 들어온다.

목에 아슬아슬하게 닿으려던 찰나.

타악—!

재빨리 뒤로 도약했다.

“……”

“……”

서로의 거리가 벌려지고, 짤막한 공방을 나누었던 우리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브리엘 녀석, 검은 오랜만이라더니 힘이고 기술이고 나에 비해 전혀 부족한 수준이 아니다.

오히려 근력은 나를 앞서가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아까 체력단련장에서는 나를 봐줬던 건가? 아무래도 그건 아닌 듯했다.

우리의 대결 과정은 처참하기 그지없었기에 서로 진심이 아니었다면 결코 성립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까진 가브리엘의 재능이 뭔지 모르겠다. 전투센스가 천부적으로 탁월한 것 같긴 하다. 검을 이 정도까지 다룬다면, 다른 무기는 더 잘 다룰 수 있다는 걸까.

그렇게 많은 경합을 나눈 것도 아니라서 가브리엘의 수준을 전부 파악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나보다 약한 것 같진 않았다.

목 부근에 흐르는 땀 한 방울을 의식하며 입을 열었다.

“후우…… 가브리엘 너, 싸움 좀 치는 재능이냐?”

어째 체력단련장에서 보던 모습이랑 전혀 딴판이었다. 힘에서 확실하게 밀릴 줄도 몰랐고.

“응? 그걸 그렇게 봐야 하나?”

가브리엘은 애매하게 웃었다.

“사실, 나도 뭐라 설명하긴 힘들거든. 우리 아버지는 나야말로 부족을 이끌어갈 진정한 후계니 뭐니 했지만, 아까 말했듯이 난 싸움보다 여자가 좋았단 말이지? 정작 나는 전투에 돌입해야만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는 것 같긴 한데…… 이거 덕분에 제국 유학도 다 와보고, 혈통에는 딱히 불만이 없어.”

가브리엘은 그리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싸움 들어가면 힘 좀 세지고 반응도 좀 빨라지고. 처음 보는 무기도 금방 다룰 줄 알게 되고. 뭐, 그런 거지.”

아니, 뭐야.

진짜 야만전사 부족의 후계였던 거냐.

“생긴 건 비열하게 생겨서 방식은 야만적이네.”

“­뭐 새꺄? 너 지금 내가 눈 작다고 무시하는 거냐?”

가브리엘이 실눈을 부릅뜨며 말을 잇는다.

“그리고 임마, 내 재능은 그게 전부가 아니야. 함 더 들어와봐. 이번에는 안 막을 테니까.”

“……음? 안 막는다니?”

“말 그대로지. 날 걍 때려봐라.”

뭘 어떻게 때려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일단 하라는데 해봐야지 뭐.

“다쳐도 난 모른다.”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타앙—!

다시 바닥을 박차고 가브리엘에게로 뛰어들었다.

부우웅—!

그 상태에서 아까 했던 것처럼 가브리엘의 옆구리를 치고 들어간다.

공기를 이등분하며 베어가르고, 무거운 흑단 목검의 날이 가브리엘의 유니폼을 구기며 파고든다.

퍼억—!

상당한 타격감이 검면에서 울리자.

아차 싶었던 순간.

“……!”

“자, 봤지?”

분명 공격은 정확히 명중했는데.

어째서인지 가브리엘은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 서서 내 힘이 강하게 실린 목검을 그대로 받아냈다.

마력을 끌어올린 것도 아니다.

순수한 육체의 강도였다.

이건, 뭐……

마치 돌벽을 때리는 것 같은 단단함.

오히려 고통을 느끼는 건 내 쪽이었다.

좀만 더 세게 쳤으면 내 뼈에 금이 갔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감전된 듯 저릿한 팔목을 주무르며 멍하니 말을 꺼냈다.

“……어떻게 돼먹은 몸이냐, 너?”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좀 단단했거든.”

가브리엘은 태연한 얼굴로 옆구리를 문질렀다.

“……그냥 단단한 수준이 아닌 거 같은데? 이거 뭐 칼도 제대로 안 들어가는 거 아냐?”

어이가 없어서 목검으로 툭툭 쳐보는데, 느낌상으론 잘 갈린 칼로 쑤셔도 살이 조금 파일까 말까 한 정도였다.

“오, 어떻게 알았냐? 다른 부족이 후계를 제거하겠답시고 날 암살하려 든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죄다 실패했었지.”

“……나랑 같은 인간 맞아?”

“물론이고 말고.”

가브리엘은 실실 웃었다.

“아버지 말로는 고대 바이킹의 가호니 뭐니 하는 게 나한테 붙었다고 하더라. 맷집 좀 세고. 싸울 때 좀 강해지고. 아, 겁도 좀 없어진다. 그래. 맞아도 안 아픈데 무서울 게 어디 있겠냐.”

고대 바이킹은 또 뭐야.

가브리엘 이 새끼, 생각보다 거물이었다.

가브리엘은 별안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하나 문제가 있어.”

“뭔데?”

“마법은 영 젬병이다, 나. 배워도 배워도 잘 써먹질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마력 같은 건 죄다 힘 쓰는 데다가 써먹고 있다.”

……정말 근육뇌였던 건가.

뼛속부터 전사의 피가 흐르는 오리지날 바이킹이었다.

“자… 내 정보는 이만하면 다 깐 거 같은데.”

가브리엘이 목을 주무르며 나를 본다.

“이제 네 차례다, 에지오.”

“……”

흐음.

나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게 네 재능이라는 거지? 고대 바이킹의 가호인가 뭔가…… 아무튼 그걸 ‘타고났다’ 라는 거 아니야?”

“뭐, 그런 거 아닐까? 아버지가 더 잘 알겠지만.”

아까까지는 긴가민가했는데.

이제 확실하게 인지했다.

잠시 거리를 벌려서 입을 연다.

“가브리엘.”

“응?”

“맞아도 안 아프다고 했지?”

내 질문에 가브리엘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냐.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력 풀충전해서 쑤시면 아무리 나라도 심하게 아프다? 그런 좋지 못한 생각은 하지 마라?”

“아냐, 연습 대련에 마력까지 쓸 필요가 어디 있어.”

“……그래서 그건 왜 물어봤는데?”

“아니, 뭐.”

나는 목검으로 손바닥을 툭툭 치다가.

씨익—

가느다란 미소와 함께 손잡이를 꾹 쥐었다.

“그럼 맞고 울어도 내 잘못은 아니니까.”

“……? 뭔…”

타앙—!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돌진해서.

퍼억—!

멀뚱멀뚱 서 있는 가브리엘의 옆구리를 다시금, 목검의 날로 공을 치듯 세게 갈겨버린다.

머릿속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그 순간에.

“소용없……———커흑?!”

까앙—!

뭘 하는지 가만 지켜보던 가브리엘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얻어맞은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연무장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끄으으어으아으어악—……”

잔디 위에 엎어져 부들거리며 옆구리를 감싸고 파들파들 떨리는 손을 내쪽으로 뻗는다.

가브리엘의 눈은 가히 오랜만, 어쩌면 처음일 수도 있는 격통에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억, 꺼윽, 억… 야, 이, 씨, 카흑, 이게, 뭔……”

“내 잘못은 아니라고 했다?”

내가 검을 붕붕 휘두르며 그리 말하자, 가브리엘은 배신감이 역력한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아니, 이, 씨발, 너… 마력, 쓰지, 말라고… 했…”

“방금 그게 마력으로 보였냐?”

“……”

확실히 마력 회로가 돌아가지도 않았고, 검로에서 희끄무레한 푸른 잔상이 묻어나오지도 않았다.

자기도 그걸 알고 있는지 가브리엘은 고통에 몸을 이리저리 뒹굴며 간신히 입을 연다.

“그럼, 뭔, 데… 이 새끼야… 아오, 존나, 아프네……”

뼈는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쳤으니 멍만 조금 들고 말려나. 그래도 몸이 워낙 튼튼한 모양이니 금방 낫겠지. 네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한 죄다, 이 녀석아.

“별건 아니고.”

가브리엘의 옆에 쪼그려 앉아 검으로 가브리엘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입을 열었다.

“너만 그런 능력 타고난 게 좀 불공평해서, 고까운 나머지 잠깐 없애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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