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친해지길 바라 (4)
* * *
#8
“……같이 먹자고? 내가, 너희랑?”
“으, 응…… 혹시 혼자인가 해서.”
“그렇긴 한데……”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란 것은 비단 유리뿐만이 아니었다.
성격 좋은 루비아가 같은 반 친구한테 저녁 같이 먹자고 권유할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가 나였다.
……왠지 나만 신경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낮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이런 권유를 루비아 쪽에서 먼저 해올 줄은 몰랐다.
괜찮은 건가 이거.
얼굴 맞대고 밥이나 잘 넘어갈지 모르겠는데.
물론 여긴 루비아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일대일로 서먹하고 어색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에서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를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아마도.
그래도 말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불편하다.
그게 당연하지.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 앞에서 날 붙들고 엉엉 울던 소꿉친구랑 한 자리에서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잖는가.
정작 루비아도 내 눈치를 살살 보고 있다.
이래서야 식사 자리에 들어가면 나 한번 보고, 다시 한입 먹고. 나 한번 보고, 다시 한입 먹고를 반복할 게 분명하다. 뭐가 어떻게 흘러가든 결코 화기애애한 밥상 분위기 따위 기대할 수 없을 것이었다……
굳이 같이 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유리만 봐도 차마 루비아를 말리진 못하고, 그저 내가 루비아의 권유를 거절해주길 온몸으로 바라는 것 같았다.
그보다 유리, 얘는 진짜.
언젠가 한 번 진솔한 대화를 나눠서 같은 반 친구에 대한 올바른 예절 교육을 따끔하게 주입시켜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애 취급 싫어하는 것 같더니 누구보다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하는 건 자기 아니냐. 진짜로. 사람 마음에 안 든다고 땡깡이나 부리고 말이야.
루비아가 이렇듯 부탁해 오니 단칼에 거절하기도 힘든 상황이 되어버려서, 유리를 핑계 삼아 일단 말을 꺼냈다.
“괜찮겠어? 얘가 좀 불편해할 텐데.”
“응?”
루비아가 자기 옆 유리를 돌아봤다.
확실히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무슨 일 있었어? 둘이?”
루비아 쪽에서 무언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리 물어오자, 나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난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쟤가 날 싫어하는 것 같아.”
루비아가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어? 진짜? 정말이야, 유리?”
“……”
쓸데없는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유리는 날 한번 지긋이 째려보더니 결국 루비아와 내게서 시선을 돌리며 작게 입을 연다.
“……좋아하지는 않아. 별로야. 마음에 안 들어. 처음 보는 사람 머리도 막 만지고, 하여튼 짜증나.”
“머, 머리를……?”
루비아가 살짝 놀라워하며 말했다.
유리는 그런 루비아의 반응이 자신 말에 힘을 실어준다고 생각하는지, 한껏 당당해진 투로 다시금 말을 잇는다.
“그래! 나 완전 무시한다니까, 얘? 내가 무슨 자기 여동생 같다면서 일방적으로 친근하게 굴질 않나. 말 걸지 말아 달라고 하는데도 자꾸 옆에서 툭툭 건드리고. 자꾸 참견하는데 화가 안 나고 배겨?”
그쯤에서 내가 반박했다.
“아니, 얌마. 먼저 까칠하게 군 건 너잖냐.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나만 완전 이상한 사람 만드네 이거?”
“뭐어? 내가 틀린 말 했어? 내 입장에서 너는 이상한 사람 맞거든?”
“하이고…남 말 하신다. 네 말대로면 처음 보는 사람한테 능력까지 써댄 게 누군데? 그거 잘못하다가 나 다쳤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그리고, 애꿎은 사람 마음에 안 드는 이유라도 제대로 말해줬으면 또 몰라요. 그냥이 뭐야, 그냥이?”
유리는 검은 리본으로 묶인 금빛 머리칼의 꼬리를 흔들며 투정 부리듯 말한다.
“뺀질한 얼굴도 목소리도 다 마음에 안 든다. 됐어? 난 남자들도 싫지만, 특히나 너 같은 타입의……”
“유리.”
“……응?”
우리의 다툼 아닌 다툼이 식당 복도 내부를 미약한 메아리로 채워갈 즈음에.
유리의 말을 루비아가 끊었다.
스산한 냉기가 감돌았다.
돌아본 그곳에는.
입을 꾹 다물고선 복잡한 표정을 하다가, 고운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딱딱히 굳은 목소리로 유리를 내려다보는 루비아가 있었다.
“에지오의 말이 진짜야?”
“뭐, 뭐가……?”
“에지오한테 네가 능력을 썼다는 거.”
다시 말해서 화가 난 루비아가 있었다. 뭔가 체감상 굉장히 오래만에 보는 모습이라 꽤나 신선했다.
유리는 안 그래도 작은 몸집이 더 쭈그러진 채로 더듬거리며 변명하듯 대답했다.
“아, 음… 얘, 얘가 날 엄청 화나게 해가지구. …그, 그리고 중간에 갑자기 능력이 사라져서 결국 쓰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였……”
“어쨌든 썼다는 거지?”
루비아의 서늘한 듯 압박적인 말투에 유리는 조용히 머리를 끄덕였다.
“……으, 응…”
루비아의 어조가 한층 강해졌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건 잘못된 행동이야. 같은 반 친구를 하마터면 위험에 빠뜨릴 뻔하다니. 에지오의 말처럼 에지오가 만에 하나라도 큰일이 났으면 어떡하려고 했어?”
“……”
“입학 첫날부터 위험한 사고가 날 뻔했잖아. 에지오가 널 얼마나 화나게 했든, 그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어. 너한테는 조금 실망이야, 유리.”
뭐야.
생각보다 많이 화난 것 같았다.
그 조심스러운 루비아가 상대한테 직접적으로 실망했다는 강한 워딩을 사용할 줄은 몰랐는데……
유리도 적잖게 충격을 받은 것인지, 짓궂은 장난을 들켜 부모님께 잔뜩 혼이 나 기가 죽은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응… 미안, 루비아…”
뭐랄지.
안쓰러운데 하찮게 귀여웠다.
지금의 유리에게 동물귀가 달려 있었다면 아래로 축 늘어지지 않았을까.
루비아는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아니, 나한테 미안할 게 아니야. 이건 에지오한테 미안해야 되는 거야. 에지오한테 똑바로 사과해, 유리.”
“……”
그쯤에서 유리는 완전히 격침되었다.
루비아가 내 편을 들어주는 건 고마운데, 유리의 얼굴이 심상치가 않다. 이러다 나에 대한 호감도만 더 깎이는 거 아닌가 싶네.
그런 건 둘째 치고서라도.
내 말과 행동엔 항상 틱틱거리던 유리가 루비아의 진심 다그치기에 꼼짝 못 하는 것을 보니, 다소 흐뭇한 기분이 속에서부터 슬슬 올라오기 시작한다.
곧 유리의 쥐꼬리만한 목소리가 기어 올라온다.
“……미…”
“……?”
탱글거리는 연분홍빛 입술이 달싹거린다.
유리는 매우 갈등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드높은 자존심을 꺾고서 루비아의 말을 고분고분히 따라 나한테 사과를 할지, 아니면 그래도 나한텐 절대 고개를 숙이진 못하겠다며 겨우 친해진 루비아의 호감도를 왕창 깎아 먹을지.
둘 다 하기 싫을 거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그러게 친구한테 잘 좀 하지 그랬어. 이게 전부 다 네 업보다. 달게 받아라, 이 녀석아.
루비아가 지켜보는 옆에서, 유리는 파들거리는 입술을 질근 깨물고선 간신히 단어 조각을 토해낸다.
“미…… 미…”
“작게 말하면 안 들려, 유리. 고개도 들고.”
“……”
루비아가 옆에서 엄하게 다그친다.
이렇게 상황이 흘러갈 줄은 예상도 못 했는지, 유리의 말랑한 볼과 귀가 붉게 달아오른 채였다. 지금쯤 격렬한 수치심이 유리의 안쪽에서 날뛰고 있을 거다.
하도 억울하고 분한 것인지, 속눈썹 끝에 핑 도는 물방울. 이래서야 애를 울리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음……
막상 눈물까지 보이니까 괜스레 미안해지네.
이 정도면 반응 볼 거 다 보지 않았을까.
왜, 글쎄.
나는 솔직히 별로 신경 안 쓴다.
결과적으로 피해 입은 건 하나도 없었잖는가. 오히려 유리의 능력을 씹고 자그마한 복수까지 해주었으니 내 입장에선 쌓일 게 딱히 없었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얘가 화내면 역으로 참 가소롭기만 하고.
무엇보다, 까칠한 고양이 같은 유리의 태도가 고분고분해지면 그건 그거대로 재미가 없을 것 같달까……
계속 팔짱을 낀 채로 상황을 지켜보려다가.
내가 먼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됐어, 루비아. 사람이 좀 실수할 수도 있지. 결국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괜찮은 거 아냐? 애초에 난 별로 화나지도 않았어.”
“……!”
내 실드에 유리가 말을 멈추고 살며시 고개를 든다.
나라면 분명 킬킬거리며 자신의 수치 어린 사과를 끝까지 받아낼 거라 생각한 모양인지, 살짝 당황한 듯 보이기도 했다.
눈썹을 들어올린 루비아가 나를 바라본다.
“아니야, 에지오. 이건 유리가 너한테 제대로 사과를 해야 하는 부분……”
“루비아.”
“……”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괜찮다잖아.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그리고 유리의 말도 아예 틀린 건 아니야. 나랑 얘기하기 싫다는 애 잡고 자꾸 늘어졌으니 미움받을 수도 있지.”
“……”
“너도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긴 했어. 좀 진정해. 우리끼리 대화로 풀면 될 문제를 네가 그렇게까지 나설 필요는 없잖아.”
내 말에 루비아가 살짝 멍한 눈을 했다.
“……나, 나서다니… 나는 그냥…”
그러더니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다.
……분위기는 왜 또 숙연해지는데.
미치겠네. 거 참.
이해는 한다. 루비아가 화난 포인트는 아마도 내가 위험에 빠질 뻔했다는 그 상황 자체였을 거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만 언급하고 말지 않았을까.
굳이 유리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필요까진 없었다. 평소의 루비아답지 않았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도 마냥 기쁜 일은 아니었다. 특별히 신경 써주는 건 고마운데, 별로 달가운 기분은 아니었는지라.
우리 셋 사이의 기류가 묘해지니 스텔라는 어쩔 줄 몰라하며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별빛같이 예쁜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 밥 먹으러 갈 생각에 내심 싱글벙글하고 있었을 텐데, 미안하게 됐다.
괜히 나 때문에 서먹해진 분위기 속에서 저녁을 먹게 될 듯하니……
일단 어떻게 매듭을 지어야 할 것 같다.
유리와 계속 이렇게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쯤에서 나는 먼저 굽히고 들어가기로 했다.
내 경험상 유리 같은 타입에겐 아마 이런 방식의 접근이 한층 다가가기 쉬울 거다.
“야, 유리.”
“……”
유리는 시선을 돌려 내 눈을 피했다.
나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며 입을 연다.
“내가 널 많이 거슬리게 했다면 미안하다. 엄청 미움받을 짓도 별로 안 한 것 같은데, 되게 날이 선 태도길래 심통이 난 것도 좀 있어. 그렇게까지 마음에 안 들어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
“…그래도 임마, 네 성격은 알겠는데 뭐라도 말해줘야 고치지. 물론 내 얼굴이랑 목소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그건 어떻게 고칠 수가 없긴 한데…… 정말 어떻게 해서든 나랑 눈 마주치는 것조차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고. 설마 그 정도까지 내가 싫은 거야?”
“……”
침울해진 유리는 잠시간 아무런 반응도 없다가.
도리도리.
아주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냐. 난 네가 싫지 않아. 귀여운 여동생 같단 말도 정말 예쁘고 귀엽게 생겼길래 호감을 표시하는 의미에서 해본 말이었어. 그게 널 비하하는 말처럼 느껴졌다면 사과할게. 네 입장을 헤아리지 못한 내 잘못이 맞다. 미안해.”
“……”
내 진심 어린 사과가 잘 전해진 걸까.
이번에는 머리를 천천히 끄덕인다.
정말 나랑 동갑 맞냐, 너.
왜 자꾸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게 만드는지.
잠시 루비아 쪽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루비아랑 얘기해봤으면 알겠지만, 원래 걱정이 좀 많은 친구거든. 잠깐 화냈다고 해서 너무 속상해하진 말고. 사과만 제대로 한다면 이런 걸로 널 싫어한다거나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
“그런 의미에서 난 가급적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나도 네가 싫지 않고, 너도 내가 싫지 않으면 우리 화해하는 의미에서 악수나 한번 할까? 굳이 말로 안 해도 되니까, 너도 나한테 미안한 게 있으면 나랑 쿨하게 악수 한번 해주면 돼. 쉽지?”
“……”
말을 마친 뒤.
아직 내 눈을 피하는 유리에게 손을 슬쩍 내밀었다.
저녁 먹자고 식당에 들렀던 게 어쩌다 이 지경까지 흘러버렸는지. 복도에 사람이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이다. 당사자 아닌 누가 보기라도 했으면 살짝 부끄러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오른손을 내민 채였다.
한편.
유리의 붉은 눈동자는 자기 앞에 들이 밀어진 내 손이 부담스러운 듯 시선을 옆으로 돌리곤 있었으나, 내가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자 점점 원래 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재촉은 하지 않는다.
참을성 있게 기다릴 뿐이다.
“……”
“……”
침묵이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스윽.
결국.
내 손 크기의 절반 정도 되는 유리의 하얗고 뽀얀 손이 조금씩 위로 올라와서, 결국 내 손에 얽혀 그 따스한 온기를 내게 나눠준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유리는 조심히 말을 꺼낸다.
“……미안.”
“……!”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유리의 붉게 물든 얼굴이 그 증거였다.
아까도 수치심으로 빨갛게 익어 있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은 수준은 아니었다.
자기도 말해놓고 부끄러웠는지 그냥 입을 꾹 다문 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는다.
그걸로 충분히 만족이었다.
나는 유리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며 짧게 흔들었다.
“고마워, 유리. 앞으로 잘 지내보자.”
“……몰라.”
결국 나와 악수했던 손을 빠르게 빼내어 유니폼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아까처럼 내가 아닌 다른 곳을 응시하기 시작한다.
유리한테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역시 귀여운 여동생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게 어딜 봐서 나랑 동갑인 여자애의 귀여움이냐고.
“루비아.”
나는 왠지 복잡한 얼굴의 루비아를 향해 말했다.
“……아, 응.”
정신을 차린 루비아가 고개를 들었다.
“권유해줘서 고마운데, 오늘은 너희끼리 먹어도 돼. 여기서 내가 끼어드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스텔라… 맞지? 스텔라도 낯 많이 가리는 것 같은데, 모르는 남자애랑 갑자기 밥 먹는 게 불편할 수도 있잖아. ……어? 아니라고?”
말하는 사이에 스텔라가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괜찮다는 뜻인가?
그보다 꽤나 격렬한 부정이라 살짝 당황했다.
어떻게 거절할지 말을 고민하는 사이에.
수줍음 탓인지 얼굴을 붉히던 스텔라가 가슴 위에 다소곳이 손을 얹곤 조용히 입을 연다.
“…저, 저도 에지오 씨랑… 친해지고, 싶어요. …밥, 같이 먹어요…”
처음 들어본 스텔라의 목소리는, 깊은 밤에 들으면 잠들기 딱 좋은 잔잔한 음색을 가지고 있었다.
루비아도 유리도 스텔라가 말하는 모습은 잘 보지 못했는지, 눈이 동그래져서 놀란 눈치였다.
루비아야 그렇다 치고.
스텔라까지 저렇게 말하는 상황이다.
남은 건 유리다.
“……”
유리를 가만 내려다보고 있으니, 유리는 네가 알아서 하라는 듯 고개를 가만 옆으로 돌린다.
이거 참.
나는 떨떠름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같이 먹지 뭐.”
밥 한번 같이 먹자는 결정까지 대략 십 분 정도가 걸렸다. 여기서 굳이 또 혼자 먹겠다고 빠지는 건 그림이 좀 그렇겠지.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되고.
“그, 그럼 이제 갈까… 얘들아?”
내 끄덕임에 애매하게 웃던 루비아가 앞장 서서 우리를 식당 안으로 이끌었다.
……잠시 뒤.
그들과 함께 뷔페 형식으로 쭉 나열된 음식들을 그릇 위에 골라 담으면서, 나는 아까부터 품고 있던 의심을 마음속으로 결론지었다.
“오오, 야. 유리. 이건 뭐냐? 검은콩처럼 생겼는데 냄새가 전혀 달라. 좀 비린 거 같은데… 이것도 비싼 거야?”
“호들갑 떨지 마, 바보야. 캐비어도 안 먹어봤어?”
“응? 캐비어?”
“벨루가 캐비어잖아. 비싼 건진 나도 몰라. 나한테 묻지 마. 그래도 네가 모르는 걸 보면 그렇게 흔한 건 아닌가 보네.”
“이야, 역시 한 나라의 귀하신 왕녀님이구나? 고급 음식에 대한 조예가 참 깊어.”
“…시끄러.”
다른 애들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긴가민가했는데 맞는 거 같다.
“……”
내게 먼저 합석 권유를 해왔던 루비아는 지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