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친해지길 바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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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예전 같았으면 반사적으로 입을 열며 그렇지 않다고 냅다 부정했을 터다.
루비아가 나를 가장 소중한 친구라 생각해주는 것처럼, 나 역시 루비아를 내 몸의 나머지 절반이나 다름없는 친구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쉽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질문의 뜻을 내 스스로 헤아릴 때까지 적잖은 수고가 들었다. 루비아를 싫어하느냐는 물음이 가슴 깊숙한 곳으로 푹 들어와서, 내게 진심 어린 대답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나는 루비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루비아가 나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듯이, 나 또한 루비아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올바른 친구 사이에 이런 감정이 오고 가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뭘까.
산골짜기를 함께 뛰어넘으며 해맑게 웃던 소꿉친구 루비아와 에지오가 더 이상 여기에 없다면, 잔뜩 어긋난 우리의 관계는 이제 어디로 나아가야 좋은 거지.
무엇보다, 나는 루비아와 앞으로 5년간 어떻게 지내고 싶길래 이런 차가운 태도를 계속 유지하게 되는 걸까.
친구와 화해하고 싶다는 바람은, 다시 그 친구와 잘 지내보고 싶다는 마음의 발로로부터 이루어진다. 그러한 맥락으로 지금 내 심경을 따져보고자 한다.
나는…… 예전처럼 루비아와 다시 서로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고 싶은가?
예전의 나는 그걸로 만족을 하지 못하고 큰 실수를 저질러버렸다. 내가 아무리 바뀌었다곤들 하나, 그 이후로 루비아의 곁에 다시 서본 적이 없기에 결코 내 마음을 확신할 수 없다.
그 지독한 경험을 되풀이하는 것도 싫고, 이제 와서 루비아와 나 사이에 얽힌 매듭을 풀고 응어리진 감정을 해소하는 건, 일단 나부터가 원하지 않는다.
그러기엔 너무 지쳐버렸다. 여러가지로.
“싫어하진 않아.”
루비아가 앉은 벤치의 옆에 감히 앉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바로 아래 흙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지금 루비아의 얼굴을 보면서 얘기하면, 이 말은 절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때문에.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아.”
“——!”
루비아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도, 나는 그쪽을 보지 못하기에 이리 말을 꺼낼 수 있는 것이었다.
수면 위에 비치는 내 얼굴은 여전히 어색하다.
특유의 시니컬한 눈매는 여전하다고들 하지만, 그 이외의 전부가 너무나도 달라져 버렸으니. 입학 전에 찾아뵌 부모님도 날 알아보질 못하시더라.
솔직히 좀 충격이었다.
나중엔 내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시고 아들이 훤칠해졌다며 기뻐하시긴 했지만, 아무튼.
지금의 나에게서 예전 에지오 크라닐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어쩌면 겉으로 보이는 육신뿐만이 아닐 수도 있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은 추억으로 남기는 게 좋다고 생각해, 루비아.”
“……”
낮에는 너무 복잡했었지.
워낙 혼미한 충격이기도 했고, 해야 할 말이나 하고 싶지 않은 말이나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서 잔뜩 뒤엉켜 뇌가 고장을 일으킨 것 같았다. 아무렴 뮤와 루비아가 한 자리에 있었으니까.
지금은 그나마 낫다.
밤이 되자 마음이 차분해졌다.
물론 심경이 복잡한 건 그대로였지만, 중점 이외의 것으로 생각이 여기저기 분산되는 쨍쨍한 낮보단 훨씬 좋았다.
예컨대.
이처럼 루비아와 한 자리에 있을 때.
루비아가 지금 내 옆에 있었지만, 확실하게 예전과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떨어지기 싫었고, 어디 시선을 돌리는 일도 없이 루비아만 계속해서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지금의 나는 루비아가 불편하다.
……그게, 슬픈 일이다.
슬픈 일은 맞지만, 정작 나는 이게 맞는 것이라 생각하며 눈물 한 방울 찔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서글픈 것이었다.
안타까운 감정밖에 들지 않는다.
우리 사이가 너무 깊었기에, 그 안쪽에 남은 상처 역시 깊은 구덩이 속에 자리하고 말았다.
지금의 우리는 한참 먼 바깥으로 나와버려서, 다시 그 안쪽까지 들어가 상처를 메꾸기에는 불가능한 부분이 무척 많다. 어린 시절처럼 손에 흙을 묻혀가며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우리 둘만 생각하던 그런 한때를, 이제는 재현할 수 없었다.
사아아아—
잎사귀를 스치며 날아오는 바람이 무언가를 속에 담곤 내 귓가를 두드린다.
한층 강화된 기감은 주변의 소리와 사물의 변화 등을 놓치지 않고 흡수하여, 내 옆에 있는 루비아가 끌어안은 무릎과 허벅지 사이로 떨어지는 물방울의 소리마저 온전히 담아낸다.
“……미안해, 에지오…”
그래도 아직 친구로는 생각하는 모양이다.
루비아가 울면, 여전히 마음은 아프다.
안 그래도 수척해진 모양새라 우울함은 배가 된다.
전처럼 나를 부여잡고 쓰러져 우는 등의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 슬픔은 오로지 자기만의 것이라는 듯, 나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고개를 푹 숙인 채 새하얀 네글리제를 투명한 빛으로 점차 적시고 있었다.
곧 루비아의 물기 어린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싫어졌다고 해도… 난 할 말이 없어. 그럴 짓을 했어. …그치만, 나 지금 너무 아파.”
“……”
“……에지오가 나한테서 멀어지려고 했을 때, 마음이 아팠지만, 그게 에지오가 원하는 거라면… 나는 에지오한테 더 다가가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 사실 그래선 안 됐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을까……?”
내게 묻는 건 아닐 터였다.
잠깐의 침묵 후에 루비아는 말을 잇는다.
“미안해, 에지오…… 나 역시, 그때 거절하지 말았어야 했나봐. 나도 내가 너무 어렸다고 생각해. 내가 알고 있던 사랑이, 완전 잘못되어 있었던 것 같아. 나 정말로, 그동안 에지오 말고는 의지할 수 있던 사람이 한 명도……”
“그건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야, 루비아.”
무슨 얘기를 꺼내나 했더니 그때 일이었나.
사실 관계만 따져보면 루비아와 나 사이의 관계를 망친 주범은 다름아닌 나 본인이었다.
그 때문에 루비아를 볼 때마다 드는 감정이 더 이상 편안함이 아니라 자책감 혹은 불편함이 되어버린 것이었고.
그로 인해 루비아가 받았을 상처 역시 명백한 내 잘못이었다.
그러니 이것은 루비아가 사과해야 할 부분이 절대로 아니었다.
굳이 해야 한다면, 내 쪽이 더 가깝다.
“미안해.”
루비아가 숨죽여 대답한다.
“……에지오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그냥, 전부 다.”
루비아에게 고백했던 일도.
멋대로 멀어져버린 일도.
루비아에게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인 자책감은, 내가 좀 더 못나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일도 없었을 거란 생각에서 기인한다.
안타까운 거다. 이 모든 상황이.
조용히 침묵하던 루비아는 문득 입을 연다.
“……에지오.”
“어.”
“나, 점점 나쁜 아이가 되어가는 것 같아.”
“……왜?”
루비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의외의 순간이라, 연못에서 시선을 떼고 잠시 루비아를 돌아보았다.
무릎에 파묻은 고개에서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이런 생각 되게 이상하다는 거 아는데…… 아까 너무 불안했어. 우리 식당에서 일 있었잖아. 그때 에지오의 말은 틀린 거 하나 없었는데… 엄청 속상했고, 한편으로는 화도 났던 것 같아. …아, 에지오한테 화가 났던 게 아냐. 그냥, 내 자신한테.”
“……”
루비아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젓는다.
“…모르겠어. 유리는 좋은 아이야. 귀엽고 착해. 나도 그걸 아는데, 에지오랑 재밌게 얘기하는 모습을 보니까… 불안했던 거야. 난 이렇게나 에지오한테서 멀어졌는데, 새로운 아이가 에지오랑 더 가까워지려고 하는 게, 정말 이상할 정도로 속상했어. 왜일까? 나 진짜 이상하지, 에지오……?”
“……”
대답을 바라고 질문하는 것은 아니었을 터다.
루비아가 자조적으로 중얼거린다.
“……식당에서는 계속, 그랬어. 나는 이제 에지오와 예전처럼 지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젠 전부 옛날 기억일 뿐인데, 그런 기억에라도 기대서 잠깐이나마 에지오와 나 사이엔 엄청 많은 추억들이 있었다고…… 그런 식으로 내 스스로를 안심시키려고 했던 것 같아.”
“……”
“으응, 지금은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을 하는 편이 옳은가.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나랑 루비아가 친구조차 애매한 사이가 되어버린 지금, 그 사이로 유리가 치고 들어오는 것 같으니 영문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는 말 아닌가.
하물며 그 감정의 자세한 정체는 루비아 스스로도 모르는 것 같았다……
글쎄.
유리는 일단 여전히 귀여운 여동생 쯤으로 생각하고 있긴 한데… 루비아처럼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있진 않으니 어느 정도 맞는 생각일 수도 있겠다.
이대로 현상유지가 되어버리면, 아마 지금의 내게 있어서 루비아보다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유리일 것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루비아의 말을 들어보면 루비아는 나와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야 당연하겠지. 나도 그 마음은 알고 있다.
다만,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이었다.
사실만 말하면 유리와도, 루비아랑도, 뮤랑도, 어느 누구랑도 일정 수준 이상 친해지고 싶지 않다.
자연적으로 벽을 세우게 되는 것이었다.
세상 일 예측하기 참 쉽지 않으니 나중이야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그런 마음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쯤에서.
루비아는 눈물 젖은 볼을 손가락으로 쓸어올리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낮에 뮤라는 아이랑 잠깐 얘기를 했었어.”
“……그래?”
“응.”
루비아가 민감한 질문을 입에 담는다.
“에지오랑 사귀었다고 해. 그게… 진짜야?”
아, 뮤가 루비아한테 그걸 말했었나.
딱히 상관은 없다.
이미 깨진 관계이기도 하고.
그 당시 루비아만 모르고 있던 게 아니라, 아카데미 학생들 전체가 나와 뮤가 사귀었다는 사실을 한 명도 모르고 있었다. 생각 외로 철저한 보안이었다.
다만 뮤의 돌발행동 등을 볼 때 딱히 비밀 연애 같지 않은 비밀 연애였는데, 워낙 우리 둘이 어울리지 않아서 그런가. 아카데미 내부에서 뮤와 내가 연인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의외로 거의 없었다.
소문이 퍼져 나갈 일은 절대 없었던 것이었다.
“그랬지.”
“……”
내 긍정에 루비아는 잠시간 입을 다물었다.
무어라 더 물어볼 것이 있을 줄 알았는데, 루비아는 그 뒤로 한참이나 입을 열지 않았다.
정적이 계속되자 생각이 다른 데로 굴러간다.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모르겠다. 내일 아침에 제대로 일어날 수나 있을런지.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이 모이는 곳인 만큼 출석이라든지 평가에 있어 되게 깐깐한 편일 터다. 지각하면 얄짤 없을걸.
오늘의 목표였던 오두막 안에는 들어가보지도 못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만나버려서, 이처럼 축 처진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게 되어버렸다. 루비아도 그렇겠지만, 나는 여전히 루비아가 불편했기 때문에, 그리 좋은 휴식 시간은 아니었다.
산책로에 떠도는 밤공기는 차갑다.
루비아는 어깨를 완전히 드러낸 네글리제 차림이었으므로, 저 얇은 옷 하나 입고 이곳에 계속 있다가는 감기에 걸릴지도 모른다. 이 주변에 습기가 좀 차 있기도 하고.
식당에서 루비아의 상태가 이상했던 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결되었으니, 슬슬 돌아갈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내 쪽에서 루비아에게 먼저 말을 걸 건덕지도 별로 없고. 그다지…… 더 얘기하고 싶지도 않았고.
“너도 춥겠다. 이제 돌아가자, 루비아. 지금 자야 내일 일어나서 수업 받지.”
가디건 끝에 쓸린 흙먼지와 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나서, 루비아를 내려다보며 그리 말했다.
달빛을 받아 찬란한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이 루비아의 목선과 등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러다가.
내 앞에서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던 루비아는 별안간 고개를 들어서, 달빛이 투명하게 차오른 눈동자로 입을 열었다.
“에지오, 마지막으로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돼?”
“……뭔 부탁?”
너무 오래 구부려 있어서 다리가 아프니 대신 일으켜 달라는 부탁이라면, 들어줄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오늘만 나쁜 아이 할래. 아니, 지금만.”
그게 부탁인가 싶었더니 이내 루비아는 에헤헤, 거리며 바보처럼 웃는다.
“잔뜩 속상했고, 누군가 위로해줬으면 좋겠는데, 다른 사람으로는 안 돼.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위로받아야만 오늘 편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아. 안 그러면 이대로 밤을 새버릴 것 같거든.”
루비아가 발을 아래로 내려 신고 왔던 슬리퍼를 딛고 일어나, 그 앞에 있던 나와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서 빤히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가까이서 다시 보게 된 루비아의 얼굴은.
로르센 아카데미 시절보다도 더욱 성숙해져 무척이나 아름다워졌다는 사실을,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내 입장에선 결코 부정할 수는 없었다.
“에지오가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안 쓸 거야. 그냥, 에지오도 오늘만이라는 생각으로… 내 부탁을 들어줬으면 좋겠어.”
찌르르르—
온통 깜깜한 배경 속에서도 눈부시게 빛나는 루비아의 얼굴색은, 어느샌가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루비아가 희미한 미소와 함께 팔을 벌렸다.
“나,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돼?”
부끄러운 듯 얼굴을 잔뜩 붉히면서도.
내 눈을 피하지 않고 글썽거리는 눈동자로 그리 부탁해오는 루비아의 모습은, 내가 그 무리한 부탁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에지오를 다시 만나서 정말 기뻐. 그치만 사정은 묻지 않을게. 그냥, 있어줘서 고마워. 물론 에지오는 내가 정말 싫겠지만…… 그래도,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될까?”
“……”
내가 입을 다물고 있어서인지.
루비아는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으응, 아니야. 나 오늘 나쁜 아이 하기로 했으니까. 에지오의 말은 신경 안 쓸래.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주라?”
타박, 타박.
다시금 아련하게 웃음 짓던 루비아는.
자리에 굳어 있던 나를 향해 단 두 걸음 다가와서, 한껏 벌렸던 양팔로 조심스레 내 몸을 끌어안았다.
사아아아—
루비아의 연분홍빛 머리칼이 살포시 휘날렸다.
찬바람이 스치고, 그 안에 실린 루비아의 달콤한 향기가 그대로 내 전신을 휘감는다.
루비아는 내 가슴팍에 말랑한 오른쪽 볼을 기대곤, 부드럽게 눈꺼풀을 감으며 중얼거린다.
“겉은 차가운데, 되게 뜨겁고… 단단하네.”
“……”
꼬옥.
내 등을 휘감은 팔에 힘을 더 준다.
나와 더없이 밀착한 루비아의 작고 여린 몸체가 여실히 느껴진다. 내가 힘을 조금만 줘도 부러질 듯 가녀린데, 그런 주제에 봄날 햇살처럼 따뜻하고 절대 놓고 싶지 않을 만큼 부드러웠다.
이대로 눈을 감아도 루비아의 몸이 가진 형태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따금 바람에 휘날린 루비아의 머리칼이 내 허리와 다리를 조금씩 훑고 지나간다.
루비아는 내 품에 파묻힌 채로 나긋이 말한다.
“엄청 크다. 딱딱하기도 하고, 그런데…… 너무 편해.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아. 게다가… 이렇게 가만 귀를 대고 있으니까, 에지오의 심장 소리도 막 들리고 그래. 신기하다, 정말……”
정말로 기분 좋다는 듯 루비아는 자연스레 미소지었다. 내려다보는 입장에서 작은 정수리와 오똑하게 솟은 콧날 정도밖에 잘 보이지 않았으나, 루비아는 분명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찬바람을 많이 맞아서 그런지 처음 날 끌어안았을 때 루비아의 몸은 차가웠다.
그러나, 이렇게 내 품에 들어온 채 꼼짝없이 있다 보니, 어느샌가 따스한 체온이 셔츠 너머로 스며들게 되었다. 루비아는 지금 얇은 천옷만을 입고 있었기에 더 선명히 느껴진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팔을 내리고만 있었다. 루비아는 그걸로도 충분하다는 듯 계속해서 날 꼭 끌어안은 채로, 조그마한 몸을 꼼지락거리며 천천히 입을 연다.
“……어릴 때 이후로 에지오 말고 다른 남자 품에 안겨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커서도 결국 에지오 품에 안겨버렸네. 에헤헤… 지금 에지오는 예전의 에지오랑은 완전 다른데, 결국 똑같은 에지오라서 그런지 진짜 편안하고 행복한 거 있지?”
“……”
루비아는 고양이처럼 볼을 내 가슴팍에 부볐다.
그리고……
“으응, 나, 역시 에지오를 제일 좋아해. 에지오가 다시 돌아와줘서, 내 옆에 존재한다는 게… 진짜 진짜 행복해. 에지오는 내 가장 소중한 친구이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내 유일한 안식처야.“
“……”
“응… 다시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을 만큼… 소중한……”
이렇게 될 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꼬옥.
점점 내 몸을 끌어안은 루비아의 힘이 더 강해져서, 끝에 가선 손으로 내 셔츠 등 부분을 꾹 쥐어잡곤.
제 얼굴과 맞닿은 곳을 투명한 물방울로 조금씩 적셔가면서, 차츰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내 생각에는.
친구가 울고 있으면 위로해주는 것이 정상이다.
……그랬을 텐데.
내 손은 여전히 바닥을 향한 채로, 그 자리에 미동도 없이 가만 서 있을 뿐이라는 게, 그것이 날 끌어안으며 울고 있는 루비아한테 오로지 미안한 감정밖에 들지 않아서.
있지도 않은 진심으로 루비아를 어설프게 위로할 바에는, 차라리 그녀가 제 슬픔을 조금이나마 털어낼 때까지 기다려주고자 하며, 산책로의 끝에서 멍하니 달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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