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도화선 (1)
* * *
#1
태양 아래 짙은 그늘이 드리운다.
살짝 오므린 연분홍빛 입술. 창백하디 새하얀 피부. 또렷한 눈매 속에 잠든 고요한 자주색의 눈동자. 광원을 받아 반짝거리는 검은 머리칼이 뮤의 옆얼굴에 달라붙어 흘러내린다.
평행선을 그리다 중간에서 어긋난 눈썹이, 내게 무엇인가 중요한 할 말이 있다는 걸 암시하고 있었다.
오늘은 평일이 아닌 주말이다.
뮤가 여기서 뭘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앞으로의 일정이 더 이상 없었기에 기숙사로 복귀하려고 했던 것이었겠지. 그러다 나를 우연히 마주쳐, 잠깐 대화라도 하길 바라는 것이었고.
뮤와 얘기를 한다고 하면…… 뭘 해야 좋을까.
연회장에서 뮤에게 말했던 것처럼, 내가 그녀에게 할 말은 대부분 편지로 끝낸 상태였다. 하지만 뮤는 아니었을 터다. 그러니 내게 이처럼 시간을 내주길 간절한 마음으로 요청하고 있었다.
“미안, 지금 어디 갈 데가 있어서. 다음에 얘기하자.”
“……”
그런 뮤의 부탁을, 나는 거절했다.
구차한 변명 따위가 아니다.
대화를 꼭 나누고 싶은 건 아니었으나, 뮤의 말을 들어줄 생각 정도는 있었다.
다만 시기가 안 좋았을 뿐이다.
지금은 제때 약속한 시간에 맞추어 나디엘리의 개인 연구실로 향해야만 했다.
뮤는 입술을 다문 채로 시선을 처연히 내렸다.
“……어디 가는데?”
여기까지 트램을 타고 왔을 정도면 볼 일이 있어서 왔다는 걸 뮤도 알고 있을 터다. 기특하게도 날 더 붙잡지 않고, 뮤는 내게 행선지를 물어왔다.
나는 잠시 고개를 어딘가로 돌렸다.
“저기 계시는 교수님이 부르셔서.”
그리 먼 곳에 있지는 않았다. 당장 여기서도 눈에 보이는 저 높은 건물의 최상층에, 아마 나디엘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뮤도 내 시선을 따라 그곳을 바라보았다.
“……교수님이?”
“응. 내 초능력을 연구하고 싶으시다는데.”
“초능력……”
뮤는 내 말에 고민하는 듯했다.
결국 내 옷소매를 붙잡았던 손에 힘을 풀고선, 머리를 작게 끄덕였다.
“알았어. 일이 있으면 어쩔 수 없지.”
“그래, 나중에 또……”
재차 등을 돌리려는 내게,
“잠깐만, 에지오.”
뮤가 다시 날 불러세웠다.
“……왜?”
이번에는 또 뭘까.
“끝나고 다른 예정 있어?”
“딱히 없는데……”
“그러면.”
뮤가 조심스레 벤치에 앉았다.
그러더니 날 올려다보며 묻는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도 될까?”
“……”
그렇게 나와 얘기가 하고 싶은 건가.
뮤의 표정은 상당히 진심인 듯 보였기에,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언제 끝날지 몰라. 오래 걸릴 수도 있고.”
“괜찮아. 상관없어.”
아니, 내가 안 괜찮다.
해가 질 때까지 저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곳에서 계속 기다리게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뮤는 본인이 하고 싶다면 반드시 그렇게 하는 사람이었으니, 내가 돌아올 때까지 아마 계속 이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었다.
나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럼 어디 카페나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어. 끝나면 거기로 갈 테니까. 여긴 복잡하기도 하고, 오래 앉아 있기 불편하잖아.”
내 말에 뮤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얌전히 끄덕였다.
“……으, 응. 고마워…”
“고마울 일인지는 모르겠네. 저 옆 거리에 시그널 카페 보이지? 저기 가서 기다려. 끝나면 갈게.”
슬슬 정거장에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 와, 씨. 지린다. 말 걸어볼까?
— 아서라, 넌 와꾸 딸리잖아. 내가 가볼게.
— 지랄은……
벤치에 앉은 뮤와, 뮤를 내려다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던 나를 보며 술렁거리더니, 몇몇은 영문 모를 자신감을 가지고 이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려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응, 알았어.”
그제야,
뮤는 환하게 웃었다.
#2
나디엘리의 연구실은 최상층인 15층에 있었다.
꽤 귀한 대우를 받는 모양인지, 제 4학구에서 유독 고급스러운 건물 안에 개인 연구실이 위치하고 있었다.
듣기론 프론티어 본부가 에픽 클래스 특별 교육을 위해 직접 초빙한 석좌교수라고 하던데. 알고 보니 제국 내외에서 꽤 이름을 날린 교수인 듯했다. 더군다나 이번 학기가 첫 부임이라고.
아무튼 대단한 사람이라는 거다. 물론 나디엘리가 유명해진 것엔 아마 숨겨진 이유가 하나 더 있지 않을까 싶긴 한데, 그건 일단 논외로 치고.
나는 그러한 권위 높은 교수한테 따로 호출을 받아, 그녀의 연구를 사적으로 도와주게 된 것이었다.
내 능력이 그렇게나 특별한 걸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초능력이라는 분야에서 웬만한 교수도 혀를 내두를 탑클래스에 위치한 교수가 직접 그리 단언했으니, 맞다고 보는 쪽이 더 올바르겠지.
우우우웅……
승강기를 타고 오르며 손을 쥐락펴락했다.
정작, 가서 무엇을 도와줄지는 아직 아무것도 듣지 못한 상태였다.
다만 연구를 도와준답시고 또 저번처럼 손을 잡아서 날 곤란하게 만든다거나, 오히려 그보다 더한 짓을 한다면 정직하게 허리를 숙인 뒤 연구실을 재빠르게 나설 생각을 하고 있었다.
띠링—
이런저런 상념을 거치다 15층에 도착했다.
승강기를 벗어났다.
그 앞쪽에 쭉 뻗은 대리석 복도가 보인다.
방음이 각 방마다 잘 되어 있는 모양인지, 주변 분위기는 무척이나 고요하고 잔잔했다.
나디엘리의 연구실은 복도에서 오른쪽으로 꺾은 다음에 그대로 직진하면 나온다고 했었나.
뚜벅, 뚜벅—
정말로 방이 딱 하나 있었다.
그곳에 가까이 다가가서, 복도 끝에 있는 철문을 손가락으로 두어 번 두드렸다.
똑똑.
“교수님, 저 초감각특론 강의 수강생 에지오 크라닐입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철컥.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그 사이에서 나타난 부스스한 얼굴의 나디엘리가, 반가운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서 와요, 에지오 군. 들어오세요.”
#3
“차라도 한 잔 하시겠어요? 부끄럽지만 탈 줄 아는 게 홍차밖에 없긴 한데, 그거라도 괜찮으시다면……”
“아, 예. 뭐든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요, 잠깐 기다리고 있어요.”
나디엘리가 옆방으로 들어섰다.
“……”
손님용 소파에 앉은 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디엘리의 연구실은 아직 짐을 전부 옮긴 게 아닌 모양인지, 열지 않은 박스와 물건들이 혼잡하게 배치된 형태였다.
공간은 상당히 널찍하다. 알 수 없는 문서들이 가득한 테이블 뒤로 직사각형의 창틀이 태양빛을 통과시키고 있다. 언젠가 보았던 아카데미 학장의 의자처럼 푹신해 보이는 그것이, 옆으로 반 바퀴 돌려진 채 바닥 위로 놓여 있다.
책장에는 이런저런 전문성 가득한 서적들이 보인다. 초능력뿐만 아니라 예상 외로 다채로운 분야의 도서를 소유하고 있었다. 어쩌면 취미가 독서인 것일 수도 있겠지. 물론 지금으로선 쓰이지 않는 고대 문자로 가득한 고서가 책장에 몇 권 꽂혀 있다는 건, 상당히 신기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한편으론 새삼스럽기도 했다.
겉으로 느껴지는 나디엘리의 분위기는 푹신하고 편안하기 그지없는데, 여긴 왠지 경직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다만, 연구실이라는 특성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었다. 원래 그런 쪽은 좀 차가운 느낌이 들지 않는가.
“자, 여기 있어요. 에지오 군.”
“감사합니다.”
연구실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나디엘리가 쟁반 위에 찻잔을 올려 가져왔다.
꽃무늬가 새겨진 새하얀 찻잔 안에는 그윽한 내음의 붉은 액체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입맛에 맞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조금 달달할 수도 있는데,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단 것도 잘 먹어서……”
“후후, 그럼 다행이네요.”
나디엘리는 현재 로브 차림이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된 듯한 모양새였다.
전신을 감싸던 남색 로브 대신, 유난히 가슴 부위가 폭발적으로 두드러진 검은 실크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러한 원피스의 색과 대조되어 더욱 선명한 우윳빛의 피부가 햇살을 받아 영롱히 빛난다.
내 맞은편 소파에 앉은 나디엘리가 조신히 다리를 모은 채로, 차를 홀짝이며 내게 입을 연다.
“에지오 군.”
“네, 교수님.”
“오실 때 본부에 연락은 하고 오셨나요?”
“…예? 그야, 교수님께서 연락하고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
“아, 그렇죠. 맞아요. 그냥 물어봤어요.”
나디엘리가 후후 웃었다.
“다름이 아니고, 에지오 군을 이렇게 연구실로 부른 건…… 전에도 말했듯 에지오 군의 특별한 초능력을 개인적으로 연구해보고 싶어서에요.”
탁—
찻잔을 홀짝이던 나디엘리가 그것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
찻잔 손잡이에 얽혔던 나디엘리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눈에 들어오자, 저번의 일이 생각나서 문득 부끄러워졌다.
“신경 쓰지 말아요. 에지오 군의 잘못은 아니니까.”
“……예?”
“그럴 줄 알고서 에지오 군의 손을 잡았던 것이니, 마음에 두지 않아도 괜찮다는 거예요.”
나디엘리가 고요히 웃었다.
왠지 생각을 그대로 읽힌 듯한 기분이 들어, 내 어깨에 작은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나디엘리도 눈치를 챌 수 있을 만큼 그녀의 손에 시선을 두었던 것은 사실이기에,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뒤.
“에지오 군.”
“예.”
나디엘리가 내 이름을 조곤히 불렀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내 예감이 속삭인다.
“본인 스스로 판단하기에, 에지오 군의 초능력은 정확히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제 초능력, 말입니까?”
“네.”
뭐라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일단 떠오른 답변을 내놓았다.
“……대상 안에 내재된 재능을 없애거나, 재능에 관련된 힘을 소멸 혹은 열화시키는 종류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능, 재능 말이죠……”
나디엘리가 으음,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제가 보기에는 말이에요, 에지오 군.”
“네, 교수님.”
“프론티어에서도 그러한 답변을 내놓긴 했지만, 사실 에지오 군의 초능력은 그렇게 애매한 말로 확정지을 수 있는 종류의 능력이 아니에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나도 내 능력에 관해 어떤 확신을 가질 순 없었다.
깨우친 지 몇 개월 안 됐기도 하고, 프론티어에서도 여러 실험을 해봤으나 방금 내가 말한 대답 외의 해답을 내놓을 순 없었으니까.
하지만 나디엘리는 과연 초능력 분야의 권위적인 교수답게, 내 고유 초능력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재능을 없앤다, 라는 말을 이해하기 전에 그보다 상위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나디엘리가 연이어 묻는다.
“에지오 군, 대체 재능이란 뭘까요?”
“……?”
재능이란 무엇인가.
막상 그렇게 직설적으로 물으니, 뭐라고 정의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입을 다물자, 나디엘리는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작게 웃으며 입을 연다.
“일반적으로 통념되는 재능이란, 사람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모든 것을 말해요. 어떤 일을 수행함에 있어 필요한 재주와 능력… 그 모든 걸 통틀어서 우리는 재능이라고 부르죠.”
“그렇기에, 재능이 없다는 말은 어떤 일을 정상적으로 수행해낼 수 없음을 뜻하고, 재능이 있다는 말은 그 일을 더욱 원활하고 수월하게 해낼 수 있음을 뜻하구요.”
“그래요. 재능이란, 사람이 타고나는 모든 걸 말해요. 유전 혹은 외부적 요인을 통해 얻어낸 재능 역시, 모두 같은 재능에 속하죠. 그러한 재능을 없애버린다는 것은, 사람의 근간을 이루는 구성 요소를 아예 소멸시킨다는 말이에요.”
“이건 굉장히 무시무시한 일이에요. 잘못 하면 사람의 몸과 영혼이 갖춘 밸런스가 무너져 조각조각 나뉘어버릴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에지오 군은 사람의 재능을 마음대로 빼내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려줘요. 이건 사실 절대로 말이 안 되는 일이거든요.”
“그렇기에 에지오 군의 능력이 특별한 거예요.”
“상대방의 재능을 일시적으로 소멸 혹은 열화시킨다니…… 들어본 적도 없어요. 세상에 존재해서도 안 될 위험한 능력이구요. 만일 이상한 곳으로 발전하게 되면, 아마 손짓 한 번으로 사람을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폐인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게 될 걸요.”
“그, 그렇습니까……?”
왠지 다그침을 듣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 능력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종류의 것이라니. 뭔가 께름칙하게 무서운 말이다……
그런 내 불안감을 해소하듯, 나디엘리는 찻잔을 손에 든 채로 싱긋 웃었다.
“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달라요.”
“……네?”
눈을 깜빡이는 내게, 나디엘리가 묻는다.
“에지오 군, 재능에도 등급이 있다는 걸 알고 계시나요?”
등급이라……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알 것도 같다.
“평범한 사람이 한 걸음 나아갈 때, 그럭저럭 쓸 만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세 걸음 내지 두 걸음 나아가요. 그보다 조금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다섯 걸음 정도 나아갈 것이구요.”
나디엘리가 찻잔을 가벼이 홀짝인다.
“하지만 격이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이 전부 길 위를 걷고 있을 때, 혼자서 하늘 위를 부양하며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지요.“
무슨 짓을 해도 자기 힘으론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높은 곳까지 올라가 있어서, 그저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 과거의 나는 그들을 보면서 수없는 좌절감을 느꼈었다.
“천재(??)라는 것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뜻해요.”
나디엘리가 빙긋 웃는다.
그러더니 운을 띄우며, 짤막하게 말을 잇는다.
“천재란 뭘까요?”
“바로 하늘이 내린 재능이랍니다.”
“인간의 유전 같은 걸 통해 습득한 재능이 아니라, 하늘이 직접 점지한 재능이죠.”
“그렇다면 하늘은 뭘까요?”
나디엘리가 별안간 손가락을 천장으로 올렸다.
……아니, 그 너머를 가리킨다.
“신(?)이랍니다.”
그리곤, 들었던 고개를 내려 날 바라본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천재들은 모두, 강력한 신성(??)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신성, 이요?”
그녀의 입에서 예상 외의 단어를 들었다.
다만 나디엘리는 종교적 관점에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디엘리가 진중히 머리를 끄덕였다.
“네. 각자의 신성이 가지는 색깔은 모두 다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일반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의 신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신성…… 그걸 속에 품고 있는 것이 바로 천재랍니다.”
“게다가, 모든 사람들은 전부 미약한 신성을 그 안에 품고 있어요. 아무렴, 부정할 수도 없이 이 세계는 신이 만들었으니까요.”
“하지만 가끔은 색깔도 특이하고, 또 형태도 특이한 신성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원래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미지의 능력을 가지게 되기도 하지요.”
“에지오 군, 바로 당신처럼 말이에요.”
“신성(??)을 가진 이들을 배격하는 신성(??)…… 에지오 군의 능력은, 그 누구보다도 모순적이면서 또 그만큼이나 흥미로워요.”
“불세출의 천재들 같은 강렬한 신성을 띠고 있지는 않으나, 그 색과 형태가 너무나도 특이해요.”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의 신성을 자신의 신성으로 뒤덮어, 자기보다 작은 신성을 가진 이들의 능력을 잠시 정지시키거나, 자기보다 강한 신성을 가진 이들의 능력은 일부나마 물들여 그 기능을 제한시켜 버리죠.”
“——이것이 바로, 에지오 군이 가진 능력의 정체랍니다.”
말을 마친 나디엘리가 빙긋 웃었다.
“……”
세상에나.
뭔가 알아서는 안 될 비밀을 알아버린 기분이다.
능력의 소유주였던 내 스스로, 그리고 프론티어마저도 알지 못했던 능력의 정체를 샅샅이 까발리고 있던 나디엘리를 멍하니 바라보기도 잠시.
“하아— 저는 말이죠, 에지오 군……”
나디엘리는.
어느새 전부 비워버린 찻잔의 겉면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면서, 뜨거운 한숨을 토해낸다.
“지금까지 살면서 에지오 군처럼 유별난 신성을 몸으로 겪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처음 경험했을 때는 그 자리에서 바로 에지오 군을 덮쳐버리고 싶었어요. 집어넣은 날개가 찌릿 울릴 만큼 무척이나 짜릿한 경험이었답니다. 고작 4일 기다리는 것도 너무 힘들었던 거 있죠?”
“……네? 뭐, 뭘 하고 싶었다고요?”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아니.
방금 뭔가 이상한 말을 더 한 것 같았는데.
“덮쳐버리고 싶다고 했어요, 에지오 군.”
“……”
나디엘리가 또 다시 미소를 지었다.
부르르.
한 치의 부정도 없이 그리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알 수 없는 소름을 느꼈다. 전신의 핏기가 창백하도록 싹 가시고,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린다.
전에 내 손을 잡았을 때만 해도 어렴풋이 이상한 사람이란 생각은 하긴 했었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라.
“……교수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드득, 빠드득, 뿌득——
나디엘리의 검은 원피스 등 부분에서, 근원지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난다.
다만 너무나 끔찍하고 징그러운 소리였던 까닭에, 나는 그저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혐오감을 떨쳐내기 위해 격렬한 몸서리를 쳐댔다.
화악—
그림자 속에서 한 쌍의 검은 덩어리가 양쪽으로 넓게 펼쳐진다. 거기까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나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처음 나디엘리와 눈을 마주쳤을 때.
“에지오 군.”
그때 보았던, 그 고요하디 투명한 눈동자가……
“……저는 당신의 신성(??)이 탐나요. 아주.”
천천히, 검붉은 색으로 물드는 것을 보았다.
탁—
짧은 소음과 함께, 연구실의 불이 꺼졌다.
내 시야가 순식간에 새까매졌다.
갑작스러운 정전인가.
그건 아니다.
만약 정전이라면……
창문 밖까지 어두울 이유는 절대 없었으니까.
고오오오—
시야 구석까지 새까맣게 물든 암전된 연구실.
나디엘리, 아니——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길게 찢어진 눈동자가 새빨간 연기를 어둠 속에서 사방으로 흘려댄다.
뇌속에서 경고음이 미친 듯이 울려대고 있었다.
「정말 허술하다니까요, 병신 천치들 같으니. 뭐가 백 년 동안 한 번밖에 뚫리지 않은 절대 결계란 거예요?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금방 들어올 수 있는데.」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
입술을 파들파들 떠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손님 대접용 소파에 붙어버린 듯 꽁꽁 묶여서, 어느 순간 나는 내 몸의 통제권을 모조리 잃어버렸다.
「……아, 금방은 아닌가요? 여기까지 오는 데 40년 정도 써먹었으니. 그래도 뭐, 이 정도면 싸게 먹혔다고 생각해요. 후후.」
나디엘리였던 것은 입을 열지 않고 말했다.
내 머릿속에 그녀의 목소리가 노이즈가 낀 듯 잔뜩 일그러진 채로, 구겨져 쑤셔박힌다.
「시킨 대로 본부에 연락도 안 했고, 주말 토요일 아침이고. 에픽 클래스는 기숙사 통금도 없다면서요? 그럼 이틀쯤 없어져도 아무도 신경 안 쓰겠네요. ……그렇죠? 에지오 군?」
……도망쳐야 해.
그래야 하는데.
뼈를 꺾고 부숴버릴 생각으로 관절을 틀어보려고 해도, 도저히 몸이 움직여주질 않아서,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뭐어, 이틀 뒤에는…… 어차피 다 빨아먹고 남은 에지오 군의 껍데기밖에 남지 않겠지만요.」
그녀의 일그러진 웃음을 끝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4
제 4학구 세리아 클래스 정거장.
2번 도로의 시그널 카페.
이번 한 달 중 가장 많은 손님이 모인 듯한 카페 내부에서, 부드러운 클래식이 내려앉은 가운데, 창문가에 배치된 테이블에 앉아 얼음이 동동 띄워진 커피를 마시던 누군가가 있었다.
다만 사람들의 시선이야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는다는 듯, 아까부터 자신을 향해 접근하던 남학생들을 전부 냉정히 걷어내면서, 뮤는 턱을 괴고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선배, 언제쯤 오실까……’
비쳐 내려오는 햇살은 따스하다.
에지오와 드디어 얘기할 기회가 생겼다.
“……흐응, 흥, 흥♪”
때문에, 오늘은 왠지 잔뜩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뮤는 아주 오랜만에 혼자 있는 장소에서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