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도화선 (2)
* * *
#5
내가 살아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
손발에 전혀 감각이 없다.
무언가 소리를 치려고 해봐도 목소리는 일절 나오지 않고, 온몸의 신경계가 한순간에 딱딱히 굳어 전부 마비된 것만 같았다.
지금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이 세상에 내 육체가 존재하긴 하는 건지, 모두 강한 의문이 든다.
……
무의식의 바다에서 출렁이는 해류를 따라 영원히 표류를 한다면, 아마 이런 기분이 아닐까.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의식을 안고 스스로의 의지 없이 그저 떠돌아다닌다.
온통 새까만 세상이었다.
나 말고 아무도 없는 미지의 장소였다.
그것이, 가장 큰 공포였다.
나는…… 죽은 걸까?
살면서 죽음이라는 감각에 딱 한 번, 아주 가까운 문턱을 넘어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이미 건넜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엔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비로소 죽었지만, 결국 죽지 못해서 살아가는 그런 몸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했었다.
그때 느낀 감각과 상당히 유사하면서도, 본질적으로 다른 듯한 느낌이다. 내 생명의 불빛이 확실하게 꺼져 가는 것을 느꼈었다. 그때는.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단 이 무감각의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끔찍하리만치 무서운 상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런 나만의 의식이 가진 공간 속에서.
그오오오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새까만 배경보다도 더 어두운, 그림자를 닮은 수상한 그것이 꿀렁거리며 천천히 형체를 갖추어 간다.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정말 기괴하며 괴이한 움직임이었던 까닭에, 참을 수 없는 혐오와 불쾌감이 들어 눈을 질끈 감으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나에게 눈이랄 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그 기괴한 덩어리는 곧 사람의 형상을 갖추었다.
「……아, 성공이네요. 잘 들어왔나요, 저?」
그것은 이윽고 쿡쿡 웃었다.
상한 우유처럼 변질되어버린 창백한 피부. 검붉은 빛으로 불길하게 확장된 동공. 마치 살아 있는 촉수처럼 수만 갈래로 흐물거리며 내 시야를 어지럽히는 머리카락.
고혹적인 미소를 그리는 입매 사이로, 인간의 것이 아닌 길쭉한 송곳니가 금방이라도 누군가를 물어 죽일 듯 번들거리고 있었다.
입고 있던 로브와 원피스 따위는 어디로 갔는지.
인간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라인의 대단히 육감적인 몸을, 전신에 착 달라붙는 검은 천쪼가리 같은 것으로 간신히 가리고 있는 중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보았던 그 한 쌍의 검은 날개가, 가로로 길게 뻗어진 채 불안정한 리듬으로 느긋이 펄럭인다.
그런 순간에, 휘날리는 머리칼 사이로 쭉 솟아오른 길고 굵은 그녀의 뿔을 조용히 응시하면서.
「……어머?」
부정할 수도 없이.
내 앞에 나타난 마족의 형상에,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부유하던 이 무의식의 공간이 크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척수반사적 반응이었다.
그저 본능이었다.
마족, 그러니까 한 명의 악마를 정면에서 마주하자 속과 위장이 진탕 뒤틀린다. 비록 육체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방금 나는 확실히 수십 번 토악질을 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참을 수 없을 만큼 강한 혐오감이 들었다.
그녀도 이 공간에 잠시 일었던 거대한 진동을 느꼈던 것인지, 검붉은 눈동자를 동그랗게 뜬다.
부드러운 인상의 미녀 교수가 저런 행동을 했다면 순진하며 무구하게 보였겠지만, 쳐죽일 상스러운 악마 따위가 저러니 그저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밖에 들지 않는다.
말은 하지 못한다.
다만 뜨거운 열기가 스며든 분노를, 날 잘도 속여 먹은 악마 새끼에게 여과없이 드러낸다.
너 누구야 이 십새끼야.
「……험악하기도 하셔라. 갑자기 이렇게 증오를 보이시면, 아무리 저라도 당황스럽다구요, 에지오 군.」
빙그레 미소 짓는 악마.
당장이라도 달려가 날개를 잡아 뜯어버리고 싶다.
「살짝 충격이네요. 전 나름 에지오 군한테 살갑게 다가갔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서로 마음이 통한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저 혼자 짝사랑하고 있던 것 같은 슬픔이에요. 유감이어라……」
누구냐고 물었어.
「지금 당신이 질문할 입장인가요?」
……
「흐음, 흐으음… 그렇군요. 으음. 지금도 이리 격렬한 증오가 제 피부 위까지 찌릿하며 느껴져요. ……저를 무서워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가슴 깊이 증오하고 있군요, 에지오 군?」
나는 없는 이를 빠득 갈았다.
닥쳐.
이런 짓을 하고 네가 무사할 줄 알아?
여긴 프론티어다. 너희 마족 같은 버러지 새끼들이 한 발자국이라도 들어왔다간, 교직원들에게 포위당해서 소멸하는 미래밖에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고 있는 건가?
「후후, 그거 삼류 악당 같은 대사인 거 알아요?」
악마는 다시금 쿡쿡 웃는다.
「제가 그런 것도 상정하지 않고 들어왔을까봐요? 천만에요. 저는 여기서 에지오 군의 신성을 하나도 남김없이 흡수할 거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목적은 전부 달성한 셈이에요.」
……소멸당해도 상관이 없다는 건가?
미친년이군.
「뭐어, 이 육체…… 나디엘리 할렌니아라는 사람을 구성하기까지 40년씩이나 걸리긴 했지만, 에지오 군의 신성이 가진 가치에 비하면 그깟 40년 따위 아무것도 아니에요. 디자인이 마음에 들긴 했는데 어쩔 수 없죠. 처음부터 이때를 위해 만들었던 육체인 걸요.」
이해 못 할 소리를 한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본체가 따로 있는 모양이다.
빌어먹을.
「너무 욕하지 말아요, 에지오 군. 저는 에지오 군이 정말로 마음에 들었단 말이에요. 물론 그 순둥순둥하고 여체에 쩔쩔매던 귀여운 에지오 군의 모습보단, 지금 이쪽이 제 솔직한 취향에 더 가깝긴 하지만요. 후후.」
역겨운 소리 지껄이지 마라.
반드시 죽여버리겠어.
「그러니까, 상처래두요. 저 울 겁니다?」
뒈져버려라.
씹어 죽일 년 같으니.
「……흐으응, 왠지 상당히 흥분되네요. 에지오 군처럼 멋진 인간이 정작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에서 그리 강하게 나와버리면, 제 입장에선 그것보다 환희스러운 일이 없거든요. 무심코 아래가 푹 젖어버릴 것만 같아요. 그렇게 되면 전부 에지오 군의 탓이랍니다?」
……역겨운 박쥐 년.
「네에 네에, 저는 박쥐랍니다. 조금 큰 박쥐지만요.」
악마가 날개를 장난스레 펄럭인다.
「으음, 에지오 군이 저희를 뼛속 깊이 증오한다는 건 아주 확실하게 알겠어요. 저희를 조금만큼도 신뢰할 가능성이 어디에도 없는 것 같고…… 지금처럼 제게 분노를 표출하곤 있지만, 설마 그랬을 줄이야. 흐으음. 흐으으음……」
악마는 골똘히 생각하는 듯 고개를 시계추처럼 똑딱이다가, 이윽고 손가락을 튕기면서 밝게 웃었다.
「에지오 군, 당신은 처음부터 저를 전혀 신뢰하고 있지 않았군요?」
……
「연구실에 들어왔을 때도, 저한테서 강의를 들었을 때도. 그냥, 어느 한 순간도 저를 티끌만큼도 신뢰하고 있지 않았어요. 정말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연구에 협조해주고, 그에 맞는 대가를 반드시 받아낼 생각이었네요. 의외로 차가운 걸요.」
……
「……아니.」
……
「당신은, 자신을 제외한 타인에게 일절 마음을 주지 않는군요. 마치 장벽 같아요. 이런 의식의 형태는 그리 흔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에지오 군의 것은 특히나 더 단단하게 세워져 있어요.」
……
「마음이 볼썽사납게 망가졌군요. ……가여워라.」
기분 나쁜 소리를 마음대로 지껄이고 있다.
알지도 못하는 타인이, 그것보단 악마 따위가 내 속내를 읽으려 한다는 시도 자체가 무척 불쾌하고 혐오스럽기 그지없었다.
「왜인지는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알 것 같으니까. 아마 신성을 획득했을 때겠죠. 대부분 그렇거든요.」
악마가 입을 가리며 웃는다.
그러던 순간에.
……생각의 자유가 꽁꽁 묶인다.
내 의식은 아주 느릿하게 침전하기 시작했다.
「저는 에지오 군의 신성이 탐나요. 진심으로.」
「왜냐면, 인간과는 달리 저희는 신성을 가질 수 없거든요. 에지오 군에게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랍니다? 그쵸?」
「원래라면 말이죠, 에지오 군. 에지오 군의 신성을 제가 그냥 꼭꼭 씹어 삼키는 것으로 끝났을 테지만, 으음…… 지금은 마음이 좀 바뀌었어요. 에지오 군의 신성은 저어어어엉말 특별하거든요. 단순히 먹어버리면 그걸로 끝이니까, 에지오 군이 가진 신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알고 싶은 거 있죠?」
「하나도 남김없이 맛보고 싶어요. 느긋하게 혀 안에 담아 평생이고 굴려대고 싶어요. 실체로 만들 수 있다면 절대 녹지 않는 사탕으로라도 만들어버리고 싶네요. 매 순간이 달콤할 거예요. 정말.」
「제게 이렇듯 큰 선물을 주신 에지오 군에게, 저 또한 보답을 드려야겠죠. 에지오 군이 궁금해할 것 같은 부분은, 에지오 군을 위해 마지막으로 여러 가지 알려줄게요. 후후.」
「제 이름은 엘리고스. 전쟁에 불참하여 추방된 72악마 중 하나.」
「그리고 저는, 마족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탐구자이기도 하죠.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신성이란 건 과연 무엇일까…… 저는 그게 궁금했어요.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쳤죠.」
「인간이 아닌 마족들은 왜 신성을 얻을 수 없는 걸까? 악마가 신성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을까? 인간은 과연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에, 이 같은 신성을 모두가 한 명도 빠짐없이 내재하고 있는 걸까……?」
「신도 참 불공평하시지. 차별이나 하고 말이에요.」
「물론 평범한 인간들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아주 작은 신성 따위, 없느니만 못한 그런 건 전혀 가지고 싶지 않아요. 제가 원하는 건 오로지…… 에지오 군처럼 유별나고 독특하면서, 강렬한 빛깔을 가진 사람들만의 신성(??).」
「이건 제 경험인데 말이죠. 에지오 군처럼 후천적으로 유별난 신성을 얻는 인간들은, 대개 공통점이 있었단 말이죠.」
「신성을 획득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인간이었거나, 아니면 작은 불빛조차도 보이지 않을 신성만 보유하고 있었다거나…… 뭐 그런 케이스?」
「그런데, 에지오 군 같은 인간들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확 각성해버려요. 시기도 형태도 전부 다르긴 하지만요. 제 강의에서 들으셨듯이, 후천적 초능력을 각성한 이들이 대부분 그런 경우랍니다. 에지오 군은 성실한 학생이니까 물론 기억하고 계시겠죠?」
「아무튼 말이에요, 그렇게 후천적으로 신성을 획득한 인간들은 대부분……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어요. 바로 기적에 가까운 일을 직접 겪는다는 것이었죠.」
「대체 무엇일까요? 뭐가 그렇게 중요해서 신성을 각성해버리는 걸까요?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기능해서, 평범한 인간을 에지오 군처럼 특별한 인간으로 바꿔버리는 걸까요?」
「저는 그게 미치도록 궁금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지켜본 결과, 저는 드디어 한 가지의 해답을 내놓을 수 있었답니다.」
「그들이 가진 공통점…… 그것을 저는, 시련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시련을 통과하면, 그 사람은 막대한 신성을 얻습니다.」
「실패하면, 죽어요. 그냥 그 자리에서 바로.」
「그러니까.」
「죽음을 비로소 극복한 인간만이, 그러한 신성을 가질 자격을 얻는다는 거예요.」
「……자, 에지오 군.」
「제가 후천적 초능력 각성에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했었죠? 그건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에요.」
「한 인간에게 시련이 내려질 때면, 그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큰 사건에 연루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거나, 혹은 어떤 식으로든 죽음에 가까울 정도의 심적 두려움과 고통을 그 안에 품고 있거든요.」
「개개인의 상대적 차이야 있겠다지만, 대개 그렇더라구요.」
「……그래서 말이에요, 에지오 군.」
「저는 에지오 군의 신성을 이제부터 아주 꼼꼼히 맛볼 거예요. 그러면서, 에지오 군이 신성을 얻게 된 과정…… 시련의 모습을 제 두 눈으로, 아주 긴밀하고 세밀하게 살펴볼 거예요. 일종의 데이터 수집인 셈이죠. 이건 아주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될 것 같으니까요.」
「시련을 겪은 본인만이 알 수 있는 경험을, 저도 같이 에지오 군의 옆에서 직접 체험해볼 거예요. 꺅! 진짜 재밌겠다. 그쵸?」
「에지오 군이 나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저는 알고 있어요. 그러니 제게도, 에지오 군의 신성을…… 조금만, 아니, 전부 나눠주세요. 에지오 군.」
「마음을 내려놓고 즐기는 거예요, 에지오 군.」
「물론, 약간, 아주 약간 힘들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이제부터 에지오 군은 본인의 시련을 통과하면서 겪은 일과 그에 따른 고통을, 바로 여기서 다시 겪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무너지지는 않을 거라고 믿어요. 에지오 군의 정신력은 인간 중에서도 꽤 강한 편인 것 같거든요. 이렇게 고요하고 넓은 심상세계는, 참 오랜만에 들어오는 것 같아요. 후후……」
엘리고스가 내게서 점점 멀어진다.
……아니, 내가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자, 에지오 군.」
「이제 저한테도 보여주세요.」
「……그날, 대륙을 관통한 빛기둥이 내리꽂혔던, 11월 19일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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