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날 차버린 소꿉친구와 전 여친이 같은 반이라 곤란하다-26화 (26/201)

〈 26화 〉 도화선 (3)

* * *

#6

똑, 똑, 똑……

“저, 손님. 죄송하지만 이제 마감 시간이라……”

똑, 똑, 똑……

“손님?”

……탁.

테이블을 두드리던 손가락의 움직임이 멈췄다.

대략 세 시간 전부터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입술은, 제 어깨를 두드린 점원에 의해 그제야 작게 달싹였다.

“……조금만 더, 있을 순 없나요?”

창문 밖은 까마득하게 어두웠다.

해는 이미 수평선 너머로 저물었고, 마감 시간이 부쩍 다가와 카페 내부의 조명은 일부 꺼진 채였다.

굉장히 예쁜 여학생이 있다고 하여 찾아왔던 손님들도 모두 떠나가고, 그렇게 마감 직전 카페에 혼자 남겨진 뮤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그리 점원을 향해 부탁해 오는 것이었다.

“어, 저, 그게……”

점원은 건실한 청년이었다.

다만 뮤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할 말을 전부 잊어버리곤, 말을 더듬으며 그 즉시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감은 자기가 혼자 전부 맡을 테니 먼저들 퇴근하시라고, 사장님께 얘기를 드려볼까 하며 속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뮤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입가에 띄우고 있던 희미한 미소도, 어느 순간 사라졌다. 아마 오후 6시를 갓 넘겼을 때였다.

에지오는 결국 오지 않았다.

……이 늦은 밤, 11시까지.

뮤가 앉았던 테이블에는, 정말 한 발자국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다섯 개의 벤티 사이즈 컵과, 먹고 남은 조각 케이크 그릇 등이 올려진 트레이가 여럿 놓여 있었다.

뮤의 부탁에 점원은 한동안 고민하다가.

진중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인다.

“……그럼, 30분 정도만 더 열어놓겠습니다. 시간이 다 되면 죄송하지만 카페에서 나가주셔야 합니다.”

“고마워요.”

짧게 감사 인사를 표한 뮤는, 다시 창문 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곧 점원이 안쪽으로 들어가 사장과 실랑이를 벌이는 듯한 소리가 미약히 들려오긴 했으나, 뮤에겐 하등 상관 없는 일이었다.

“……”

뮤는 턱을 괸 상태에서 팔에 힘을 풀었다.

그대로, 털썩.

테이블 위에 쓰러지듯 상체를 기대었다.

그 언젠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문득 수마가 찾아왔을 때처럼, 테이블 위에 두 팔을 얹고 그 사이로 옆얼굴을 기대었다.

에지오가 약속을 함부로 어길 인물은 아니다.

끝나면 여기로 오겠단 약속도 했고.

그렇지만 아직 이 카페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건, 저 건물 안에 지금까지 있다는 얘기일 텐데. 무엇일까. 저기서 대체 뭘 하길래 이리 오랜 시간 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

교수님을 만나러 간다고 했었지. 에지오의 초능력에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있어서, 연구 협조를 부탁받았다고 했다. 에지오에게 초능력이 있다는 말도 처음 듣는데, 그게 또 하필 대단한 건가 보다.

다만 자기 일도 아닌데, 그 사실에는 뮤 스스로가 덩달아 기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역시 에지오 선배라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 마음도 곧 다시금 불안해졌다.

앞으로 30분이다.

그 이후론 여기서 나가야 한다.

아침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부터 밤 11시까지, 거의 13시간을 족히 카페 내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에지오를 기다린 뮤였으나, 전혀 지친다는 감각은 받지 못했다.

에지오가 와주기만 한다면, 이따위 기다림과 불안함 정도는 한순간에 눈 녹듯 사라져버릴 테니까.

“……”

그러다 문득,

뮤의 시선은 카페의 출입문을 향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저기서 딸랑거리며 에지오가 모습을 드러내 주는 것일까.

뮤는 눈을 감고 그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왠지, 자기도 모르게 의자를 박차고 달려가 에지오의 품에 안겨버릴 것만 같았다.

이윽고 뮤는 형태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에지오가 싫어할 짓이다. 그러니 이처럼 헛된 상상으로만 끝낼 것이었다.

카페 마감 시간이 끝나버리면, 어디서 에지오를 기다려야 할까. 일단 카페 앞 거리에서 가만 기다리면 될 것 같긴 한데, 잘 모르겠다. 너무 늦은 시간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거리를 순찰하는 경비 기사들이 본인을 제지할 테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고분고분하게 기숙사로 돌아갈 생각은 아니었다. 뮤는 이 카페 주위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절대로.

왜냐면, 에지오와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약속했는데.

그리 생각하면서.

뮤는 별안간 심장이 덜컹거리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도 미약한 불안감은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희미하던 그 불씨가 어느 순간 크게 일렁인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는 마음으로 계속 버텼는데, 지금은 그게 안 될 것 같았다.

……그날도.

이렇게 하염없이 에지오를 기다렸다.

에지오는 밤 늦게까지 오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에지오는 온몸에 피를 흘리며 돌아왔다.

“……”

뮤는 생각했다.

그런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는다.

여긴 누가 뭐래도 제국이 자랑하는 절대 결계가 사방에 펼쳐진, 황립 프론티어 아카데미였으니까.

교직원들의 강함도, 거리에 깔린 경비 기사들의 수준도 전부 무시할 바가 못 된다. 뮤로서도 감히 대항심을 품을 수 없는 교직원들이, 프론티어에는 한가득이었다.

그렇게 강력한 보안을 자랑하는 프론티어다.

……그냥, 좀, 연구가 길어지는 거겠지.

에지오 본인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했지 않는가. 어쩌면 하루 이상으로 길어질 수도 있었다.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단언한 것은 자신이었으므로, 에지오가 이틀 내지 하루를 넘어 카페에 찾아온다고 해도 에지오에게 잘못이랄 건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 그런 거다.

불안해할 필요는 아무것도 없는 거다.

“……”

뮤는 시계를 확인했다.

점원이 약속한 마감 시간의 여유까지는, 앞으로 대략 10분 정도가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뮤가 나가버리게 되면, 에지오와 엇갈릴지도 모른다. 때문에, 카페가 문을 닫은 뒤로는 주위에서 기다려야만 한다. 어쩌면 에지오가 내일까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불안감도 있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더 큰 불안감이, 뮤를 자리에서 일으켰다.

딸랑—

검집 끝에 손을 얹으며.

뮤는 카페 출입문을 재빠르게 나섰다.

#7

뮤는 곧바로 행선지를 정했다.

에지오는 바로 저 건물에 있을 것이었다.

지레짐작에 가까울 수도 있으나, 아니라면 아닌 거겠지. 프런트 같은 곳에 가서 잠시 교수님을 불러달라고 요청해보면 되는 일일 터다.

연구실 같은 곳은 보통 밤 늦게까지 사람이 안에 있을 테니까, 혹시라도 부재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어? 너 왜 여기 있어?”

카페 밖으로 나온 뮤는 불 꺼진 건물들 사이를 향해 나아가려다가, 곧 뜻하지 않게 누군가와 마주쳐버렸다.

무언가 잔뜩 사들고 가는 것인지.

품에 봉투를 한아름 안고서 뮤를 올려다보는 사샤 엘네가 그곳에 있었다.

뮤는 현재 마음이 한시라도 급한 상태였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역시 사샤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그저 걸음을 옮겨 건물 쪽으로 향하려 했다.

사샤가 뮤를 졸졸 따라가며 쫑알거렸다.

“뭐야 뭐야, 사샤는 널 여기서 만나서 엄청 반가운데! 4학구에서 뭐하고 있던 거야? 참고로 사샤는……”

귀찮은 꼬맹이 같으니라고.

뮤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

바로 그 순간에.

끼이이이이이이이———

귀를 찢는 괴이한 이명이 격렬한 파동처럼 공기를 찢고 나아가, 그 자리에 있던 뮤와 사샤를 덮쳤다.

“……읏!”

“꺄아아아아악!”

뮤는 순간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사샤 역시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놓쳐버려서, 땅바닥에 과자 봉지들을 우수수 떨어뜨렸다. 사샤가 비명을 지르며 귀를 막고선 바닥에 주저앉았다.

— 끄아아아악!

— 뭐, 뭐야 방금?!

— 귀, 귀에서 피 나는 거 같아……

길거리를 지나다니던 사람은 아예 없진 않았다.

뮤와 사샤처럼 희끄무레하게 주변을 밝히던 조명 아래를 거닐다가, 어딘가로부터 발생한 소음이 귓가를 뚫고 뇌를 헤집자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비명을 질러댔다.

잠시 뒤.

현장에 위치한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그 이상한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중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저게, 뭐야?”

뮤 역시 그것과 동일한 광경을 보고 있었다.

제 4학구에서 유독 높이 솟아오른 건물. 에지오가 교수를 만나러 들어갔다던, 저 건물.

1층부터 14층까지는 불이 켜져 있었으나, 마지막 최상층만큼은 불이 꺼져 있던 모양새.

팟, 팟, 팟—

건물의 불이 위에서부터 순차적으로 모두 꺼졌다.

가장 높은 최상층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화재와는 달랐다.

남김없이 시꺼멓고 칠흑같이 어두워서,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어둠의 파편이었다.

사샤가 입을 틀어막곤 비명을 새어 냈다.

“히에에에엑, 저, 저게… 대체 뭐야……?”

최상층에서부터 흘러내리던 그 검은 연기가 건물을 점차 뒤덮기 시작하고,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격렬하게 맥동하며 꿈틀거리기 시작했을 때.

빠득—

뮤는 입술을 세게 깨물곤 피를 흘려냈다.

……멍청한 년.

병신 같은 년.

차라리 자살해버리는 게 좋을 텐데.

……너는 또, 같은 실수를 하는구나.

“야, 야! 저거 뭐야?! 뭐가 어떻게 되는 건데!”

“……”

사샤가 발을 동동 굴렀다.

무언가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비명을 지르던 사람들은 제각기 어딘가로 흩어졌다. 개중 몇 명은 교직원이나 본부에 연락하기 위해 주변 건물로 달려갔다.

뮤는 주먹을 꾹 쥐었다. 더욱 세게.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어 빨간 선혈을 주륵 흘렸다. 이미 짓씹은 입술에선 한 줄기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으나, 그깟 고통과 비교할 바 없는 참혹한 심정이 뮤의 가슴을 후벼파고 있는 것이었다.

정신 차려.

선배를 여기서 잃어버릴 수는 없어.

어떻게 되찾은 선배인데.

아직, 하고 싶은 말도 전부 못 했는데……

눈물로 얼룩진 과거를 반복하는 건,

더 이상은 싫다.

“……야! 어, 어디 가는 거야?! 딱 봐도 위험하잖아! 여기서 이러지 말고 교직원을——”

뮤는.

사샤를 가만 돌아본다.

“놔.”

팔소매를 붙잡고 있던 사샤의 눈에,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는 뮤의 서릿발 같은 눈동자가 싸늘하게 비쳐 보였다.

“베어버린다.”

어느새 뮤의 손에 검이 들려 있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았는데, 발도한 채였다.

“……히끅.”

사샤는 본능적으로 손을 놓았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로 여기서 죽을 것만 같아서.

생존을 위해 손을 풀었다.

자리에 굳어 연신 딸꾹질을 해대는 사샤를 뒤로하고, 뮤는 단숨에 대지를 박찬 뒤 불길한 검은 연기를 향해 돌진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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