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날 차버린 소꿉친구와 전 여친이 같은 반이라 곤란하다-29화 (29/201)

〈 29화 〉 뮤 (3)

* * *

#3

사서 일을 하다 보니.

아카데미 도서관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얼굴 또한 여러 번 보게 되었고, 개중엔 뮤가 도서관을 맡을 때마다 조금씩 보이는 정도의 책을 좋아하는 것 같은 이들도 썩 많았다.

하지만, 저 남자는 달랐다.

어째 사서 일을 맡고 있는 뮤보다도 더, 오랜 시간 도서관에 있는 것 같았다.

도서관에 가면 어김없이 그 남학생의 옆얼굴이든 뒷모습이든 사방에서 그가 나타났다가 책장 속으로 사라졌다.

책을 엄청 좋아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뮤도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게 아니다. 되레 공감하고 있었다. 독서를 저렇게나 좋아한다면, 분명 자신과도 맞는 공통점이 몇 있을지도 몰랐다.

지극히 유감스럽게도 다른 학생들에게 일체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던 뮤는, 그때 처음으로 타인에게 흥미 아닌 흥미를 가진 셈이었다.

그 남학생은 매일 도서관에 왔다.

명찰의 색깔을 통해 자기보다 한 살 위의 선배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알다시피 선배란 존재는 뮤에게 있어서 딱히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다.

그저 한 살 더 많을 뿐인 아카데미 학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남학생이 앉는 자리는 무언가 일정한 패턴을 지니고 있었다. 대부분 창가 구석 테이블이거나, 사람이 정말 없을 때는 대충 중앙에 와서 털썩 앉아 곧바로 독서에 집중해버린다.

뭘 그렇게 열심히 읽는 건지, 때로는 인상을 팍 쓰면서 이마를 손으로 짚기도 했다.

하여, 그의 독서는 뭐랄지……

별로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왜일까.

책을 읽는 건 재밌어서 읽는 게 아니었던가.

남학생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주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얕은 한숨을 쉬기도 했다.

내용이 이해가 잘 안 되는 건지 끙끙거리며 다시 전 페이지로 돌아가서, 꼼꼼히 정독하거든 본래 페이지로 돌아온다. 그러더니 이번에도 이해가 안 된 것인지 결국 몇 회 더 반복한다.

흐으음……

뭐 때문에 책을 즐기며 읽지 못하는 걸까…?

처음엔 그런 의문으로 시작했다.

남학생은 키가 작았다. 신입생인 뮤가 보기에, 같은 반에 있는 평균적인 남학생의 키보다도 한참이나 작아 보였다. 자기랑 비교했을 때는 대략 이마 정도의 위치에 정수리가 오지 않을까, 싶었다.

왜소한 체격에 비해 유니폼은 조금 큰 사이즈 같아서, 그것이 오히려 남자의 작고 하찮음을 강조하는 듯했다. 그런고로, 뭇 남성들로부터 드러나는 강인함이란 저 남학생에겐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만일 저 남학생과 팔씨름을 한다면 2초 안에 이길 자신이 뮤에게는 있었다.

그래…… 책에서 흔히 이르는 남자다움을 전부 배제해버린 듯한 소년이었다.

뮤 본인의 머리색보다 조금 더 짙고 어두운 흑발. 미간을 좁히며 손가락으로 앞머리를 당길 때마다 살포시 드러나는, 묘하게 푸른 빛깔을 가진 눈동자.

피부는 또 하얗고 말랑해서 분명 뮤보다 선배일 텐데도 어째 더 어려 보이는 인상이었다.

아카데미 입학 이후로 새롭게 깨우치게 된 잘생겼다, 라는 형용사. 저 남학생에겐 붙일 일이 절대로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못생겼냐, 라는 물음에는 그렇지 않다, 라고 즉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미소년처럼 잘생기지만 않았을 뿐이지 그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이상한 매력이 분명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 남학생을 관찰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뮤는 별안간 그런 생각을 했다.

저 남학생은 뮤가 틈이 날 때마다 호기심을 담은 눈빛으로 관찰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건지, 도서관에 찾아와 책을 빌린 뒤 계속 독서를 하기만 했다. 주변에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런 것이야 차치하고서라도, 한 가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었다.

저런 사람도 연애를 할 수 있을까?

……무척이나 실례되는 생각이었지만, 뮤는 순수히 그것을 궁금해했다.

에지오는 로맨스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의 타입과는 영 딴판이었다.

잘생기지도 않고, 남을 즐겁게 만들 수 있는 유머도 없고, 여자를 보호할 능력도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외부적으로 이성의 흥미를 이끌 수 있는 점이 따로 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책만 주야장천 읽어대는 것을 보니 평소 말수도 적은 것이 분명했다.

만약 저런 사람이 누군가와 사랑을 한다면, 그 시작과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뮤는 본인의 상황까지 생각이 연장되었다.

……그럼, 나는?

나는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예쁘고 귀여운데, 입학 초기부터 이어진 수많은 남학생들의 고백을 보면 그 사실을 더욱 부정할 수 없을 텐데…… 나는 왜 사랑이 대체 무슨 감정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는 걸까?

아니, 알고는 있다. 책에서 봤으니까.

운명의 상대를 보면, 가슴이 떨린다고 한다. 그것은 설렘이라는 감정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자기 전에도 그 사람 생각이 자꾸 나는 바람에 아침에는 한없이 피곤하고 잠은 계속 설친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그것은 전혀 나쁜 기분이 아니라고 하였다.

자꾸만 상대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고, 그 사람의 모든 걸 알고 싶어지면서, 조금이라도 상대와 멀어지는가 싶으면 가슴이 생채로 뜯어지는 듯한 고통을 받는다고 했다.

그 사람의 행복은 곧 자신의 것이라 했다. 그의 슬픔 또한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 하였다. 그 사람이 행복하여 웃으면 나도 웃고, 그 사람이 울면 옆에서 같이 운다 하였다.

마지막으로 그와 자신의 행복 말고는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결국 둘의 사랑을 위해 세상을 저버릴 만큼 위험한 감정이라고도, 어느 소설의 저자는 그리 경고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 보고.

뮤는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역시, 나는 평범한 사랑 따위 못할 것 같아.

그 남학생을 관찰한 지 두 달쯤 되었다.

로르센 아카데미 통합학부 2학년.

남학생의 이름은 에지오 크라닐이었다.

성씨가 붙어 있는 것을 보면, 분명한 귀족이었다. 그 사실에 뮤는 미약히 놀랐다.

하지만 동시에 납득하고 말았다. 귀족이 아니었다면, 저 남자가 이 명문 아카데미에 입학할 일은 아마 절대 없었을 것이라고……

에지오는 도서관에서 참 많은 책을 빌렸다.

책을 대출해줄 때마다 제목 같은 것을 슬쩍 훔쳐보면, 즐기기 위해 읽는 소설 같은 게 아니라 대부분이 전문성 있는 서적들이었다.

검술이라든지, 마법 이론이라든지. 연금술이라거나, 마공학도 있었다. 가끔은 재능 없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 책을 빌리기도 했다.

에지오가 섭렵하는 분야는 가림이 없었다. 닥치고 보이는 대로 책을 고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고른 책이라면 흥미 따위 전혀 없었을 텐데, 그럼에도 에지오는 그 책을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했다. 마치 목숨이라도 걸린 것처럼 필사적으로 읽었다.

뭔가를 찾으려 하고 있구나.

뮤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절망하는 모습이 여럿 보였다. 이따금 구석 창가 테이블에 앉아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책은 결코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반드시 끝까지, 그러고 나서 도저히 안 되는 것을 확인하면 그제야 포기했다.

……아니, 포기하지 않았다.

잠시 유예를 두었을 뿐이다.

정말 포기했다면 에지오는 두 번 다시 같은 분야의 서적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 많이 부러지고도 꺾이지는 않았다.

『흐응.』

신기한 사람이었다.

뮤로서는 처음 보는 타입의 인간이었다.

……조금, 흥미가 생겼다.

에지오는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고, 그때마다 자신에겐 아무런 재능도 없다는 사실을 복기하며 절망하는 듯싶었으나, 또 다시 정작 포기하지는 않았다.

에지오의 모습은 아카데미 내부에서 의외로 흔히 볼 수 있었다. 예컨대 도서관의 문이 닫히고 나면, 허락된 시간 내에서 아카데미의 여러 시설을 개인적으로 이용했다. 당연히, 책에서 본 내용을 기초부터 차근차근 실험하는 것 같았다.

전부 실패했다.

기초도 그에게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되었다.

없는 마력을 끌어올려 마법을 펼치려다 펑 터져버린 마법진의 잔재가, 에지오를 모랫바닥 위에 덜렁 눕혀버렸다. 잠시 대자로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던 에지오는, 유니폼에 묻은 먼지를 탈탈 털고서 다시 일어나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몇 번이고.

뮤는 멀리서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어째서 아무것도 못 하는 걸까.

온 세상이 그를 미워하는 것 같았다.

저렇게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면, 하나쯤은 성공해도 되지 않을까. 세상은 인격체가 아니었으니 인정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을 터였지만, 에지오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듯 불쌍한 사람이었다.

『……』

……그랬기에,

그 예전 침대 위의 자신이 떠올라버려서.

문득 뮤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어느 날.

에지오는 도서관 데스크에서 평소 빌리지 않던 종류의 책을 대출했다.

[ 너와 나만의 세계 / 유크레미안 지음 ]

전문성 같은 걸 위주로 다루는 이론 서적 따위가 아닌, 읽으며 스토리에 몰입하고 오로지 즐기기 위한 소설책이었다.

뮤 역시 몇 번 읽었던 적 있는 유명한 소설이었기에, 그 내용을 전부 알고 있었다. 상당히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였던 까닭에, 이불 속에서 남몰래 훌쩍이던 기억도 확실히 존재했다.

에지오는 그 책을 들고 창가 테이블로 향했다.

그리고, 한 시간쯤 뒤에.

『……아.』

웃었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에지오는, 분명 그 책을 읽으면서 살포시 미소 지었던 것이었다.

여태 인상을 팍 쓰거나 미간을 좁히며 끙끙 앓던 모습은 사라지고, 순수한 즐거움으로 페이지를 넘겨 가는 어린 소년의 모습만이 그곳에 있었다.

……역시, 원래 책을 좋아하던 사람이었구나.

뮤는 왠지 모르게 그것이 기뻤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에지오가 웃자 저도 모르게 픽 웃었다.

한편으로는 문득 아리송한 감정을 느꼈다.

저렇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째서 지금처럼 닥치는 대로 관심도 없는 책을 꾸역꾸역 읽어대기 시작한 걸까. 그건 정말이지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할 수밖에 없어서 해야만 하는 일.

지병이 나은 뒤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온 뮤에게 있어, 그때 당시 에지오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렇게 조금씩.

에지오에게 쌓여간 관심은, 그가 이렇게까지 노력하는 이유를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차츰 변해갔다.

통합학부 2학년 에지오 크라닐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서 뮤가 선택한 방법은……

썩 유감스럽게도 스토킹이었다.

……딱히 이상하다곤 생각 안 했다.

직접 다가가 말을 걸어도 상관은 없겠지만, 이쪽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나중에 눈치라도 채면 그때 대화를 나누어도 늦지 않을 것이었다. 아마도.

하여튼.

뮤는 어느 순간부터 에지오의 뒤를 따라다녔다.

본관에서 몇 친구들과 같이 복도를 거닐다 어느 순간 에지오의 뒷모습이 보이기라도 하면, 무리에서 자연스레 벗어나 에지오의 뒤를 살금살금 밟았다. 그런 식의 은밀한 스토킹이 계속되었다.

그리 일주일 넘게 관찰한 결과.

『……안 외롭나?』

에지오는 완벽히 혼자였다.

친구도 없이 언제나 혼자 다녔고, 도서관에 들리기 전 점심 시간에는 뒤뜰 계단 같은 이상한 장소에서 혼자 밥을 먹었으며, 아카데미에 등교할 때와 하교할 때도 전부 혼자였다.

혼자였기 때문에, 그의 노력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사실만큼은 조금 안타까웠다.

누군가 알아준다면 에지오는 그나마 덜 힘들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그게 자신이 될 생각은 없었다. 아직은, 아직은 아니었다. 자세한 이유는 뮤 자신도 몰랐다.

그런 나날이 계속되다가, 우연히.

도서관 사서를 신청한 가장 큰 이유였던 신간 도서 발주 신청에 관련한 문서를 들춰보던 뮤는, 불현듯 어딘가로 시선을 돌렸다.

도서마다 새겨진 각인을 통해 대출 내역이 자동으로 새겨지는, 개인 도서 대출 장부였다.

그러고 보니.

에지오는 뮤의 선배였다.

뮤가 입학했을 때부터 계속 도서관을 들락날락거렸는데, 그렇다면 대체 언제부터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던 걸까. 일단 지금까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마다 모습을 보였었다.

그게 살짝 궁금해져서.

팔락.

조심히 에지오의 장부를 들춰 보았다.

『……세상에.』

그리고,

뮤의 눈앞에 펼쳐졌다.

[ 학생 대출 내역 / 에지오 크라닐(통합학부 2학년) ­ 234권 (6개월 단위 산정) ]

……에지오의 꿈이.

에지오가 되고 싶었던 무수한 것들이.

중등부 1학년 2학기 말부터 지금까지, 즉 1학년의 겨울날부터, 2학년 1학기의 초여름이 찾아올 때까지……

200권이 넘는 책들이.

달리 말해,

200번이 넘는 실패들이……

에지오는 지금껏 책을 그냥 읽지 않았다.

하나의 책을 전부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고, 패턴을 살펴봤을 때 언제나처럼 그것을 기초부터 차근차근 테스트했으며, 책의 내용을 복습하고 끝도 없이 따라 하면서, 결국, 그렇게 매번 실패하고 말았다……

고작 6개월 동안.

200번이 넘도록.

그런데도, 에지오는 좌절하지 않았다.

……당장, 지금도 저 곳에 있었다.

『……』

뮤는 어느덧 멍하니 에지오를 보고 있었다.

비록 에지오는 뮤를 보고 있지 않았지만, 뮤는 그것에 아무런 상관도 않고 그저 데스크에 턱을 괸 채 에지오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에지오의 대출 내역에는.

재밌게도, 이론 서적 같은 것에는 평소 관심 하나 없었던 뮤였으나—— 중간중간에 빌린 책만큼은 뮤의 취향과 똑 닮은 소설들이 여럿 끼어 있었던 것이었다.

아핫, 하고 뮤는 작은 웃음을 지었다.

그치만 없을 텐데.

그 끝에 원하는 건 가지지 못할 텐데.

저렇게 노력하고 노력해서 결국 지금까지도 본인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차라리 포기해버리는 편이, 더 이롭지 않나 싶은 뮤였다.

……그래야만 할 텐데.

왜? 저렇게 필사적으로?

하기 싫은 건 안 하면 되는 거잖아.

자기처럼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야 인생을 더 즐겁게 살 수 있는 거 아닐까.

저렇게 끊임없이 좌절하고 절망하면서 또 다시 일어서는 모습은, 뮤가 생각하는 인생의 즐거움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어 보였다.

……아냐, 뮤.

저 사람은 하기 싫은 게 아냐.

하고 싶은 것도 더욱 아니고.

할 수밖에 없는 거다.

반드시 해야만 하기에 저리 노력할 수밖에 없는데, 그에게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거다.

슬픈 일이었다.

불쌍하네.

동정심이 절로 든다.

하지만, 그런 어줍잖은 동정심은 에지오의 뼈를 깎는 노력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일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러니 동정하지 말자.

불쌍히 여기지도 말자.

그의 좌절에 같이 슬퍼하지도 말자.

그럼, 에지오의 모습을 뭐라 생각해야 좋을까?

살면서 저렇게 필사적인 사람은 본 적도 없다.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 가까워지자 눈물을 흘리며 생을 바랐던 자신이었다.

그를 제외하고선 무언가에 저리 열중하며, 끝도 없이 무너지고 부러지면서, 결국 다시 일어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현재의 자신은 분명 천재의 반열에 들었던 까닭에.

없는 재능을 찾으려 하는 에지오의 모습을, 지금의 뮤로서는 절대 같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어느샌가 뮤는.

아침에 도서관에 잠깐 들릴 때, 점심을 먹을 때, 격주마다 돌아오는 부활동 시간, 그리고 방과후의 저녁은 물론이고—— 기숙사에 돌아와 심심풀이로 소설책의 페이지를 팔랑이며 넘기면서도.

작지만 거대한 어느 남자 선배의 모습을,

계속 머릿속 한구석에 담아두고 있던 것이었다.

이따금 에지오가 과부하된 머리를 식힐 겸 소설책을 대출하며, 창가 테이블에서 그것을 읽곤 별안간 실없는 웃음을 흘릴 때.

뮤는 저도 모르게 피식하며 같이 미소 지었다.

에지오는 뮤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았으나, 뮤는 에지오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남몰래 알아보았다.

얼마나 관심이 많았는지, 들키지 않게 뒤를 밟으며 스토킹까지 했다. 그랬던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저 흥미로운 선배에 대해,

더 알고 싶었던 까닭이다.

『……아핫, 설마.』

……뮤는,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었다.

지금 자신의 상태가, 어디서 본 것만 같다고.

하지만 틀렸다. 아직 아니었다.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뮤는 아직 에지오를 보며 그런 기분의 편린조차 느끼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그러던 순간에——

『……아.』

한참 턱을 괴고선 에지오를 멍하니 바라보던 뮤의 눈동자로, 불현듯 책에서 시선을 뗀 에지오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에지오는 정확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

깊은 바다처럼 푸르디 투명한 에지오의 눈은, 곧 뮤를 힐끔 보더니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다시금 책 속에 빨려 들어갔다.

정말 일말의 관심도 두지 않는 듯했다.

에지오를 제외한 모든 남학생들은 뮤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당황하며 황급히 눈을 피하거나, 아니면 말을 잃고 넋을 놓은 채 대부분이 5초 이상 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에지오는 달랐다.

역시나 특별했다.

『……』

……뮤는, 한동안 가슴 위에 손을 얹고서 터질 듯 박동하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중등부 1학년 1학기 말.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직전.

계속 지켜보다가.

지켜보고, 지켜보고, 또 지켜보다가.

도저히 못 참겠어서.

선배의 모든 걸 가지고 싶어서……

그래서, 고백했다.

『고백한 셈으로 치고, 친구들한테 돌아가요. 이 주위에 있으면 뭐… 예상한 반응 못 보여줘서 미안하게 됐네요. 원체 재미없는 사람이라.』

장난으로 취급받고 돌아가란 답을 받았다.

뮤는 그날 기숙사에 돌아가 엄청 크게 웃었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선배 앞에서는 티를 전혀 안 냈지만, 왠지 기뻤던 것이다.

자기를 차줘서.

그게 우습도록 기분이 좋았다.

……에지오가 더 좋아졌다.

정말, 주변에 아무런 관심도 하나 두지 않고 오직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우직한 에지오의 성정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그 마음이… 자신만을 향하게 만들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날 봐달라고 격하게 티를 냈다.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시선을 떼지 않고 계속, 에지오 선배에게 가까이 접근하면서. 옆에 있는 자기를 봐달라고, 강렬한 신호를 보냈다.

선배는 곤란해하면서 자기를 피했다.

무심코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누군가를 이렇게 격하게 껴안아 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더 곤란해하는 모습을 즐기고 싶었지만, 그러면 선배가 싫어할 것이었다. 그러니까 적당히 하자.

첫날, 뮤는 말없이 에지오의 뒤를 졸졸 따르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다음 날.

에지오에게 다시 고백했다.

또, 차였다.

뮤는 그때 살짝 우울한 기분을 느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역시 에지오 선배라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강인한 사람의 마음을 뺏어버리면, 지금의 내 마음과 곧이곧대로 연결되어버리면…… 과연 에지오 선배와 나는 어떤 사이가 되는 것일까?

누군가 떼고 싶어도 뗄 수 없는 그런 이상적인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소설이 아니니까, 많은 사람들이 헤어지고 또 갈등을 겪으며 결국 관계가 파탄 나는 모습을 여럿 보았다.

그러나 에지오 선배와 자신이라면.

어쩐지 소설 속 관계처럼 영원할 수 있을 듯했다.

아무도 불안할 필요 없는 그런 끈끈한 연인 사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난 그럴 자신 있는데.

선배만 허락한다면……

……그러니, 포기하지 않아.

그러자.

『……열심히 해봐. 아마 안 되겠지만.』

뮤는 터져 나오려는 환호를 감추느라 애를 썼다.

……기뻤다.

진심으로.

그 대답에 심장이 다시금 두근거렸다.

참지 못하고 선배의 옆에 앉아서, 참견을 시작했다.

선배의 인생에 뛰어들 권리를 허락받았다.

여태 지켜만 보던 선배와 즐겁게 대화했다.

그게 너무 기뻐서.

왠지 행복해서……

뮤 자신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 마음이 커지는 것을, 더 이상 막을 수 없다.

애초에 막을 생각도 없었다.

——나는, 선배를 틀림없이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4

그래.

……선배와 함께하면 행복했다.

마음이 행복으로 충족되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에지오 선배를 통해 처음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고, 뮤는 그 아련한 감정을 정말 소중히 여겼다.

책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간절한 마음을 전부 담기에는 문자로 표현이 부족할 정도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렇게 행복하면 행복해질수록……

욕심이 생겼다.

그 욕심은 점점 커져 나갔다.

왜냐면, 뮤는 이기적이었으니까.

자기가 가지고 싶은 것을 반드시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으니까……

모든 사람에게 독점욕 같은 욕망이랄 것은 분명하게 존재했으나, 억압된 환경에 너무나 오래간 노출되어 있던 뮤에게 있어 특히나 그 감정은 더욱 심화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조건도 충분하다 생각했으니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충분한 시간과 노력만 투자한다면, 에지오 선배는 언제든지 뮤 자신과 끈끈하게 연결될 수 있을 것이었다.

……아니었다.

아직도 연결되지 못했다.

여전히 뮤는 선배만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선배는 아니었다. 그들이 연인 사이가 된 이후에도, 분명 이전보다는 훨씬 가까워진 사이가 되었음에도…… 뮤는 때때로 외로움을 느꼈다.

선배의 마음을 전부 가지고 싶었다.

전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데… 안 돼.

도저히 불가능했다.

뮤보다 깊은 인연이 에지오의 안에 자리해 있었다.

분명, 에지오와 연인이 된 이후로 에지오의 마음은 뮤에게 조금이나마 넘어온 것이 확실했다.

그것만큼은 반드시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도.

전부는 아직 아니었다.

에지오의 마음이 100이라면, 자신이 가져갈 수 있는 건 오직 90뿐이었다. 어떻게든 발버둥을 쳐도 90이 한계이자 최대였다. 뮤로서는 절대 진입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 남은 10이 너무나도 신경 쓰여.

언제라도 밀고 들어올지 모르는 그 10이, 뮤에게 참을 수 없는 불안감을 선사해 주었다.

에지오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에지오를 더 자세히 알아가기 시작한 뮤의 눈에는 보였다. 자기와 함께 있을 때도 여전히 이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그리는 듯한 에지오의 묘한 분위기를, 뮤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에지오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된 뮤였으니까.

그게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때문에 언젠가, 에지오에게 그런 말을 하려고 했다.

자기는 대체품이 아니라고.

선배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건 나뿐이라고.

하지만 곧 그만두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에지오는 뮤를 한 명의 여자로 봐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그러려고 하고 있었다. 뮤도 에지오의 연인으로서 그 마음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지만——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정말 가능할까?

어느 여름날을 기점으로, 뮤는 조금씩 바뀌어 갔다.

그의 하루에 알지 못하는 부분이 하나라도 생기면 초조함과 불안함을 느꼈다. 에지오와 대화를 나누면서 무언가 진심을 확인하고 싶은 기분이 되어,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반복했다.

자기 말고는 아카데미 내부에 인연이 더 이상 없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불안했다. 왜. 어째서. 자기는 이미 에지오 선배와 연인 관계였을 터인데. 에지오 선배도 분명, 나를 싫어하고 있는 게 아닐 텐데. 불안해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는데……

에지오와 뮤는 평소 은밀히 만났다.

어느 날부터 그것도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물론 뮤는 가급적 밝히고 싶었다. 자신의 입장으로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던 까닭이다.

선배와 행복할 수만 있다면, 뭐, 그렇지만 선배가 싫어할 것 같으니까. 선배는 남의 부담스러운 관심을 받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밝히지 않는 편이 좋았다.

때문에 뮤 본인도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남들 눈에는 친한 선후배 사이처럼 보이도록 행동했다. 누군가 둘이 사귀냐고 물어오면, 선배를 떠올리면서 고개를 휘휘 저었던 것이었다.

에지오와 뮤는 일 년 가까이 그렇게 지냈다.

돌이켜 보면, 생각해 보니 에지오가 우리 관계를 밝혀도 괜찮다고 딱 한 번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 뮤는 선배의 입장을 생각해서 스스로 거절했다.

그러게, 참……

그걸 거절했던 것도 결국 자기 잘못이었다.

가장 처음에.

에지오의 빈틈을 채워주겠다고 한 건 뮤였다.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했던 것 역시, 뮤 본인이었다.

선배의 힘이 언제라도 되어주겠다면서, 항상 의지해도 좋다고 가슴을 탕탕 쳤던 뮤의 모습은 에지오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차라리, 겉으로 티를 냈으면 좋았을걸.

에지오가 루비아의 이야기를 어쩔 수 없이 해주었을 때, 그것 또한 자신의 부탁으로부터 이루어졌을 때. 불만인 듯 장난스레 볼을 부풀리긴 했다. 그 이상 질투의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랬던 거다.

뮤는 이기적이었다.

애당초 에지오의 인생에 직접적으로 간섭하고자 선전포고를 날렸던 뮤였으므로, 그들의 관계는 부정할 것도 없이 온전한 뮤의 이기심으로부터 시작했던 것이었다……

때문에.

정말 지독히도… 이기적이었다.

처음부터 선배의 의지 따위는 상관도 안 했던 거잖아. 전부 자기가 원하고 본인이 욕심을 내서 자초한 일들이었다. 그걸 이미 알고 있었잖아.

알면서도 관계를 맺길 원한 게 다름 아닌 뮤 본인이었을 텐데, 그런데, 나는 도대체 왜——

『……선배가 그 모양 그 꼴이니까, 언니가 싫어할 수밖에 없었던 거잖아요. 선배 같은 사람을 사랑해준 게 도대체 누군데. 선배 같은 걸, 내가 얼마나——』

모든 게 무너져버린 그날 밤에.

에지오가 가장 힘들었을 시기에.

뮤는 자신의 연인이자 평생을 바쳐 사랑했던 선배와의 마지막 대화를…… 에지오에게 있어 가장 큰 상처가 될 한마디와 함께 시작하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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