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날 차버린 소꿉친구와 전 여친이 같은 반이라 곤란하다-36화 (36/201)

〈 36화 〉 회고 (7)

* * *

#23

『딱 하루만 볼 생각이었는데 말야.』

『이걸론 부족해. 아직 궁금한 게 많거든.』

『그러니까, 조금만 더 봐도 괜찮지?』

『……어어, 아직 죽지 마.』

『어차피 과거의 일이잖아?』

『…인간들이란 어찌 이렇게 나약한지.』

『……뭐, 그런 점을 제일 좋아하지만. 후후.』

#24

깊은 밤거리 사이를 질주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선배를 등에 업은 채, 그의 몸이 조금이라도 흔들리지 않도록 꽉 붙잡고선 마력을 끌어올려 폭풍 같은 바람을 일으키며 뮤는 가장 가까운 태양의 신전으로 내달렸다.

‘선배, 선배……!’

뮤가 지나가는 방향의 역으로 눈물방울이 떨어지며 하늘하늘 휘날렸다. 입을 꾹 다물곤 달리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으나, 눈가에서 흐르는 물줄기만큼은 어쩌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살려야 해. 선배를 살려야 해.

이대로 선배가 죽을 순 없는 거잖아.

선배의 상처가 너무 심각하다. 선배가 여기서 죽어버리면, 자기는 선배한테 가장 큰 상처를 준 마지막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런 미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뮤는 가슴이 찢어질 듯 뜨겁게 달구어졌다.

그래선 대체 뭘로 대가를 치러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선배가 향한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밖에 답이 없지 않은가. 아직 제대로 하지 못한 사과와, 용서의 말을…… 어떻게든 건네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이승이 되었든 저승이 되었든 간에.

아니, 부정적인 생각은 좋지 않다.

선배는 살 수 있다. 반드시.

그렇게 생각해야만 버틸 수 있다.

광장을 벗어난 이후로 얼마나 달렸을까.

저 멀리 신전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뮤는 속도를 더 높였다.

주변 사물이 나타났다가 금세 뮤의 뒤편으로 사라진다. 칼날처럼 매서운 바람이 뮤의 볼을 할퀴었다. 머리칼이 휘날려 선배에게 방해가 가지 않도록 머플러 안에 집어넣어 단단히 고정해 놓은 채였다.

넓은 부지 위에 홀로 자리한 태양의 신전. 광휘를 머금은 조각상이 꼭대기에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가운데, 뮤는 뛰는 것을 멈추지 않고 신전의 문 앞에 다가가 한 손을 들었다.

쾅! 쾅! 쾅!

“계세요! 계신가요! 신관님! 제발…”

뮤는 울먹이며 소리쳤다. 등으로부터 느껴지는 선배의 호흡은 아주 옅고 희미했다.

점점 선배가 지닌 생명의 불씨가 꺼져 가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어서, 뮤는 덜컹거리는 심장과 함께 더욱 물기가 어린 목소리로 처절하게 외쳤다.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선배, 선배가… 제발, 계신가요! 제발 살려주세요! 선배를, 살려주세요……!”

오늘은 늦게까지 기도를 드리지 않는 걸까. 신전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벌써 자정이 되어버린 시각. 밖에서 보기에도 내부가 어둑했던 것이, 대부분은 잠들거나 혹은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성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선배를 살려야 했다. 어떻게든.

쾅! 쾅! 쾅!

문을 한참 두드려도 반응이 없었다.

안 돼.

이대로면, 이대로면……

“아, 아아… 아아아아아아…!”

뮤의 심정은 더 급박해졌다.

갈라지고 찢어진 외침이 하늘을 울렸다.

“사람이, 사람이 죽는다고! 살려줘어어어어! 아직 살아있다고! 지금 치료 안 해서 죽으면 책임질 거야?! 살려달라고! 내가, 내가 뭐든 할 테니까… 제발…! 선배를 살려내애애애애애——!!!”

쾅! 쾅! 쾅!……

문을 거의 부술세라 두드리던 뮤는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에서 뮤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기 시작했다. 호흡이 점차 얕아지는 선배의 미약한 온기를 등으로 느끼면서, 뮤는 세상 모든 것을 원망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예요, 선배. 누가 선배를 이렇게 만든 거예요……

……용서할 수 없어.

선배를 이런 꼴로 만든 모든 걸 용서할 수 없지만, 더더욱 용서할 수 없는 건 바로 나였다.

그래서는 안 됐던 거잖아. 선배가 이대로 살아나더라도, 너는 이제 선배의 곁에 더 이상 설 수 없을 만큼 선배의 마음에 구멍을 뚫어버렸잖아.

사죄해야 해. 몸이든 마음이든 전부 바쳐서, 사랑하는 선배를 배신한 죗값을…… 반드시 치러야만 해.

그러기 위해선 선배가 살아야 하는 거잖아.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 옛적 날 살려줬을 때처럼 선배도 살려줘. 아니, 살려주세요.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제발.

신님……

“흐으으, 흐끅, 끄으으으… 흐아아앙……”

——그때였다.

문 앞에 주저앉아 오열하는 뮤의 앞에서.

……끼이익.

한참 두드려도 열리지 않던 신전의 문이.

비로소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뮤가 울먹이던 얼굴을 슬며시 들었다.

“비록 주신님의 곁에서 함께한다곤 하나… 저희 역시 필멸을 지닌 한 명의 인간입니다. 잠은 자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매님?”

“……아, 아…?”

문 사이로 얼굴을 내민 사람은.

웨이브 진 갈빛 단발의 주름진 여성이었다.

태양의 신을 섬기는 신관임을 뜻하는 새하얀 로브를 길게 두르고서, 자리에 주저앉은 뮤와 그 등에 업힌 처참한 몰골의 소년을 본 여성이 나지막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다만, 죽음에 가까운 이를 눈으로 보고도 축복 하나 내려주지 않는다면, 저희 인간을 자애로이 보듬어주시는 주신님의 뜻에 단단히 어긋나는 것이겠지요. 심한 상처군요. 이리로 들어오세요.”

#25

엄숙하고 웅혼한 신전 내부.

로브가 더러워지는 것은 상관도 없이, 에지오를 품에 소중히 들어 어딘가로 데려간 신관은 뮤를 밖에서 기다리도록 지시했다.

“……”

차가운 목재 의자에 착석한 뮤는.

마지막으로 선배가 자신에게 생일을 축하하며 건네주었던 그 작은 박스를 성물처럼 손에 꼭 쥔 채로,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저 높이 걸린 태양신의 미려한 조각상 앞에서 기도하는 것처럼 머리를 바닥으로 푹 숙인 채, 하염없이 바라고 또 소원했다.

신관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은 정말이지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선배의 생사가 저 안에서 갈린다고 생각하니 뮤는 미칠 것만 같은 불안함을 느꼈던 것이다.

신관이 문을 열고 나오면 쉽사리 얼굴을 보기가 힘들 것 같았다. 표정에서부터 선배의 운명을 조금이나마 읽기라도 하면, 결과에 따라 자신은 결국 무너지고 말 것이었다.

그것이 선배가 가까스로 목숨을 유지했기에 지나친 안도의 감정으로 주저앉는 것이거나, 혹은…… 그쪽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서 뮤는 날카로이 마력을 일으켜 제 손으로 제 몸에 험한 짓을 해버릴지도 몰랐다.

덜덜 떨리는 손과 다리.

진동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선배는 살아날 거다. 반드시 그럴 거다. 신관은 장담할 수 없다고 했지만,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최대한의 축복은 내려보겠다고 했다. 무엇 하면 주신님께 직접 요청을 해보기도 하겠다고.

다만 그건 웬만해서는 잘 해주지 않는 것이었다. 평범한 신관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종류의 축복이었다. 아무래도 문 안에 있을 여성은 대신관에 준하는 신성함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그에 살짝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뮤가 한참 눈을 꼭 감고서 온몸을 달달 떨던 어느 순간에.

끼이익……

조용한 신전 내부에 울림이 일었다.

반사적으로 뮤가 그쪽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어, 어떻게, 어떻게 됐나요……?”

“……”

새 로브로 갈아입고 나온 건지.

깨끗하디 새하얀 로브 차림의 신관은, 닫혔던 문을 열고 나서 천천히 뮤쪽으로 뚜벅거리며 걸어왔다.

언뜻 보기에 신관의 표정은 알 수 없었다.

“자세한 상황은 더 지켜봐야 알 듯합니다만…… 지금 상태론 생명을 부지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

“도대체 어떻게 숨을 쉬고 있던 건지도 의문입니다. 형제님께서 저리되신 게 언제쯤입니까?”

“저도 잘은… 몰라요. 하지만,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분명 오늘 있었던 일이니까……”

“그렇습니까.”

신관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살아 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놀라울 정도로요.”

“그 말씀은……”

조금 불안한 듯 떨리는 뮤를 향해.

신관은 작게 대답했다.

“…기적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가급적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렇다고 좋은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으니, 자매님께서도 마음의 준비는 하셔야 할 겁니다.”

“아……”

그 말에 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생명을 부지했다는 말만큼은 정말이지 안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관님……”

“무얼요. 오늘은 이만 돌아가보세요. 밤이 깊었습니다. 어린 자매님 혼자 돌아가시는 길이 위험하지 않도록 사사로운 축복 또한 내려드릴 테니, 잠시 기다려 주시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뮤는 울먹이면서 같은 말을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동시에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관도 공짜로 하는 일이 아닐 터였다.

“보답은 어떻게 드려야……”

신관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형제님께서 비로소 살아나셨을 때 입에 담을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저희 태양의 신관들은 같은 인간을 자애롭디 너그럽게 사랑하기에 응당 원하여 하는 일로 보답을 받다니, 당치도 않습니다. 자매님께선 어디서든 밤마다 같이 주신님께 기도해주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아……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무얼요.”

떨리는 목소리로 또 다시 눈물방울을 또르르 흘리는 뮤에게, 신관은 부드러이 미소 지어 보였다.

#26

다행스럽게도 선배의 목숨을 건졌다곤 하나.

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은 불안함과 죄책감, 그리고 그보다 더할 나위 없이 커져버린 자책감은 도무지 사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가끔식 치고 올라오는 불안감이 뮤의 몸과 머릿속을 전부 뒤집어엎을 때면, 그날 예정된 수업마저 빼먹고 광장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가 신전에 찾아가길 반복했다.

아직도 의식이 없는 선배의 소식을 듣고, 의자에 앉아 태양신 히페리온의 조각상 앞에 경건한 기도를 올렸다. 오직 선배를 살려달라는 의지 하나만으로. 그것 말고는 다른 데 집중할 겨를이 없었다.

다만, 딱 하나 있었다면…… 그것은 선배를 저렇게 만든 모든 사건들에 대한 증오였다.

그날 있었던 대화의 내용은 너무 정신이 없었던 탓에 잘 기억 나지 않았으나, 분명 선배가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다. 아직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가슴이 찢어질 듯 저려왔으나, 확실하게 알아야 하는 건 반드시 알아내야만 했다.

루비아.

어쩐지 저주스러워지고 만 이름.

선배가 끊어질 듯한 호흡으로 간신히 내뱉은 한마디 한마디에, 그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납치당해서.

구하려고 했다고 했나.

결국 구했다고 했나.

그 과정에서, 선배가 저 꼴이 되어버린 건가.

……결론적으로 루비아의 탓은 아니었다. 선배의 말대로라면, 그 언니 역시 피해자였을 테니까. 뮤도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바가 있긴 했다.

아카데미 내부에서도 은밀하게 도는 소문. 전통적으로 이루어지는 마법부 합숙을 다녀왔던 루비아와 마법부 졸업생 선배 한 명이 11월 19일 정오부터 밤까지 실종되었었다는 이야기가 존재했다.

자세한 내막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비단 로르센 아카데미뿐만이 아닌 거대 마탑 아카샤의 별과 제국 수도 헬리오스에 있을 대신전에까지 그 소식이 흘러갔을 만큼 꽤나 큰 사건이었다고도, 누군가는 말했다.

그 사건에 선배가 휘말렸던 것이다. 분명.

……그런데.

거기서 선배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다.

루비아, 그 언니가 납치를 당했다. 선배는 구했다고 한다. 그토록 심한 꼴이 되면서까지.

하지만, 도대체 왜 그 사건의 내막에 선배의 이름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걸까.

어째서, 그 졸업생 마법부 선배는 사건이 있던 직후 4일 정도 흐른 뒤에 어떠한 공로를 인정받아 아카샤의 별 소속 정식 마법사의 위(?)로 올라섰던 것이었을까.

선배는 단지 그곳에 자리했을 뿐이고, 사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채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을 뿐인 건가? 그 언니를 구출했던 건 오로지 그 마법부 선배의 행적이었던 건가?……

베일에 싸인 그 모든 진실은 선배가 깨어나야만 알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 뮤는 하염없이 오늘도 신전에 찾아가 기도를 올렸다.

그런 상태가 일주일쯤 지속되었을 때.

어김없이 오후 수업을 빼먹고 신전에 찾아간 뮤는, 일찍이 평소와 다르게 안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신관으로부터 좋은 소식 하나와 나쁜 소식 하나를 들을 수 있었다.

“……저, 정말, 정말요?!”

첫째는.

……선배가, 의식을 되찾았다.

즉, 완전히 생명을 부지한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뮤는 다리에 힘이 풀려 무심코 주저앉았다. 지나친 안도감에 문득 터져 나온 눈물까지 뚝뚝 흘렸다.

그러면서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고, 선배는 어디 있는 거냐며. 당장 만나게 해달라며 신관에게 매달려 사정하는 뮤에게, 신관은 갑자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이 둘째 소식이었다.

뮤를 조심히 떼어놓은 신관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그리 중얼거렸다.

“기적의 화신께서 이것을…… 혹여나 자신을 찾아온다면 자매님께 드리라 하셨습니다.”

태양의 신전의 각인이 새겨진 새하얀 봉투.

뮤는 이게 무엇인지 싶어 하다가.

말없이 봉투를 뜯어 그 자리에서 펼쳐 보고는.

“……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릴 때마다.

천천히, 눈동자를 글썽거렸다.

“……선, 배…”

조금씩 메이기 시작하는 목구멍으로부터 구슬픈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았으나, 결국 입을 다물고 있던 신관의 앞에서 은구슬 같은 물방울을 소리없이 흘려낼 수밖에 없었다.

「 뮤에게 」

고운 자필로 쓴 에지오의 편지는.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

선배는 이틀 전에 이미 전부 회복한 뒤였다.

하물며 로르센 아카데미에 자퇴 신청서를 넣은 이후였고, 편지를 쓸 당시는 아직 아니었으나 살던 집도 이제 떠날 거라고 했다. 아마 편지를 볼 때쯤이면 짐이 전부 정리되어 있을 거랬다.

또한, 자기는 아주 멀쩡하고 건강하니 몸상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너는 이제 나에 대해 어느 무엇도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그러니……

감사의 말이 쭉 이어졌다.

그동안 못난 자신을 누구보다 진심을 다해 사랑해주었음에 감사를. 네 덕분에 나는 분수에 맞지 않을 정도로 즐거웠던 시간을 보냈단다.

네가 만일 내 곁에 없었다면 나는 아카데미를 한참도 전에 자퇴했을 거랬다.

어느 한순간도 너라는 존재에 대해 싫은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너라는 사람은 언제나 나에게 있어 네 말처럼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자 틈이 벌려져 무너질 뻔한 자신을 지탱해주던 무척 소중한 존재였단다.

뮤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후배는, 아마 자기의 인생에 있어 길이길이 기억에 남을 사람이라고도 말했다.

그런 사람을,

자신의 첫 연인이 되어주었던 고마운 사람을,

눈물 짓게 만들었기에 죽을 정도로 미안했단다.

앞서 말한 것들은 편지로 말해봤자 소용이 없는 것들이랬다. 늦게나마 깨닫고 늦게나마 표현할 수 있게 된 진심은 이미 가치가 없어진 것이랬다.

그러니.

너에겐 반드시 사죄를 해야만 한다고 했단다.

……이런 나와 달리.

너는 자책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오로지 자기의 잘못으로 이루어진…… 모든 게 부족했던 자신의 탓이자, 너의 생일을 반드시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던 약속 하나조차 지키지 못한 한심한 남자의 당연한 말로라고 했다.

연인으로서 사소한 것 하나 신경 써주지 못하고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오로지 나만을 봐주는 너에게 똑같은 보답을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도 말했다. 그러니 네게 어떠한 말을 들어도 나는 감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댔다. 그게 당연한 거랬다.

때문에 너는 아무것도 자책할 필요 없댔다.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었기에.

개인으로서, 한 남자로서 부족함이 너무나도 많았던…… 그런 못난 나였던 까닭에, 진정으로 자길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제대로 된 보답 한 번 해주지 못했다고, 그런 식으로 끊임없는 사과를 했다.

그동안 나와 함께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네게 잘못해서 미안하다고도, 말했다.

너무 미안할 짓을 많이도 해버려서, 결국 네게 큰 상처를 주고 만 나는 너의 곁에 다시 설 자격이 더 이상은 없댔다. 그렇게나 미안하고, 또 미안하며, 네게 진 빚은 수도 없이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다시 한번 더 미안하다며, 선배는 말했다.

그 모든 보답을 전부 돌려주기엔……

자신은 이제 너무 지쳤다고 했다.

그래서.

이 편지는, 아마 뮤의 연인인 에지오 크라닐로서의 마지막 말이 될 것 같다고, 그렇게 말했다.

언제나 고맙고 사랑스러웠던 후배 뮤에게.

항상 나만을 바라봐주었던 뮤에게.

그리고.

———사랑했던 나의 연인, 뮤에게.

더 함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지독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용서를 구할 수도 없겠지만.

자신을 더 이상 찾지 말아달라고.

그만 잊어달라는 말은 감히 할 수 없어도, 그렇게 되어 네가 나보다 더 잘난 사람을 만나 행복했다면 좋겠다고……

나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았을 네가, 이제는 그런 상처를 주었던 내가 곁에 없을 테니 부디 행복하길 바란다고……

멋대로 회피하고, 도망치고, 네게서 멀어지는 게 정말로 옳은 일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지만.

자신은 지금 그러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겠다고.

그러니,

다시 네 곁에 서는 건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고.

때문에, 미안하다고……

너와 함께한 2학년 1학기 말부터, 너와 연인이 되었던 12월 23일의 그날부터 지금까지, 정말 많이 많이 고마웠다며…… 때문에 고마웠던 만큼 부디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며.

서로 연결되고 싶어 했던 너의 바람을.

끝내 이뤄주지 못하여 미안하단다.

그리고, 고마웠단다.

자길 사랑해줘서.

그런 너를, 나 또한.

——사랑했었다고.

이제야 담을 수 있게 된 그 말을.

오늘이 지나면 담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끝까지, 나는 네게 상처만 주고 말았다며.

이런 내가 차라리 곁에 없는 편이.

너에게는 더 이로울 거라며.

아니, 나에게도 그 편이 더 나을 거라며……

정말 오랜 시간이었단다.

많은 추억이 쌓였단다.

진심으로, 행복했었단다.

그랬던 우리를 위해,

이만 모든 걸 끝내자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다시 한번 이어지는 고마움과 미안함의 인사 한마디와 함께, 선배는 그것으로 편지를 끝마쳤다.

#27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뮤는 천천히 손으로 입을 가렸다.

편지의 끝자락에.

뮤의 눈꺼풀로부터 흘러내린 물방울이 닿기도 전에, 이미 눅눅하게 얼룩이 진 부분이 군데군데 존재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흐렸다.

그럼에도, 뮤는 편지를 품에 고이 접어 놓고는.

———탁탁탁탁!

신전으로부터 등을 돌려 달렸다.

향하는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인 아카데미에 다시금 들어와, 뮤는 자신을 스카우트했던 학장을 찾아갔다.

— 뭐, 뭐뭐…뭔가……? 뮤 학생?

막무가내로 학장실에 쳐들어가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학장에게 에지오 크라닐이란 3학년 학생의 자퇴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결과적으로.

신청서는 이미 접수되었다.

일처리는 빨랐다.

유감스럽게도 에지오 크라닐은, 이미 로르센 아카데미 소속이 아니었다……

문을 쾅 하고 열면서 또 다시 뛰쳐나간 뮤는, 이번엔 그 언젠가 딱 한 번 놀러가 본 적 있었던 선배의 집으로 향했다.

주변에 적당한 비용을 내고 혼자 거주하던 방.

——탕! 탕! 탕!

문을 한참 두들겨도 아무런 소리는 들리지 않고, 마력을 일으켜 문 안쪽의 인기척을 탐지해 보아도 결국 아무것도 건질 수 없었다.

——끼기기긱… 쾅!

문고리를 부수듯 잡아 돌려 결국 진짜로 부숴버린 뮤가 문을 활짝 열고서 그 안을 황급히 살펴봤지만.

“선배……!”

정말로, 공허하도록 텅 비어 있었다.

“……”

잠깐 돌처럼 굳어 있던 순간.

털썩.

가쁜 숨을 쉬던 뮤는 그 자리에 폭삭 주저앉았다.

선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에지오, 선배…”

이제 찾을 수 없는 그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뮤는 말없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정말로.

그 편지가.

……선배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