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회고 (8)
* * *
#28
11월 19일의 정오부터 깊은 밤까지의 기억은 루비아에게 존재하지 않았으나, 다행스럽게도 합숙 도중 납치 사건에 대한 크나큰 후유증 같은 것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괜찮아? 어디 아프고 그러진 않구?”
“진짜 엄청 걱정했다니까…”
“교수님들까지 주말 중에 출근하셔서 찾아보시고 그랬어. 막 범인들한테 심한 짓 당한 거 아니었지? 괜찮은 거 맞지?”
“으, 으응. 나 멀쩡해, 애들아. 봐, 어디 다친 데도 없구 괜찮으니까……”
여러 차질이 생겼으나 어떻게든 진행된 일요일의 합숙 훈련 숙소에서, 무사 귀환한 루비아를 향해 학생들의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아무렴 루비아는 마법부를 비롯한 로르센 아카데미 전체를 통틀어 굉장히 높은 인망을 가지고 있던 모범적 학생이었다.
때문에 루비아가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하면 멈춰를 연발하며 물이 필요한 거냐고 묻거나, 달리 필요한 게 있으면 우리가 대신 가져다 주겠다거나…… 그런 식으로 호들갑을 떨며 루비아를 근심 가득한 눈으로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슈리엘 선배님이 구해주셨다면서?”
“어쩜 좋아. 그렇게 다치시면서까지 자기 몸을 바쳐 후배를 목숨 걸고 구해주신 거 아냐? 진짜 멋지다……”
“근데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절대 알려주시질 않더라. 우리가 알면 안 될 정도로 큰일이었나봐.”
“뭔가 아시는 듯한 교수님들도 다 쉬쉬하시는 분위기고……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루비아?”
화제는 금방 사건의 주체였던 루비아를 넘어서, 귀환 이후 군데군데 여러 상처를 새기고 돌아온 슈리엘을 향했다.
정체불명의 사건에 휘말린 후배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선배의 미담은 삽시간에 여러 군데로 사이사이 퍼져 나갔다.
아마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어 마법부 학생들이 로르센 아카데미에 정상적으로 등교하게 된다면, 작년 마법부 수석 졸업생이자 아카샤의 별 최연소 하급 마법사인 슈리엘 데 라파르트에 대한 선망과 극찬 담긴 소문들이 갈래갈래 뻗어 나갈 것이었다……
그날 일요일에 진행된 합숙 훈련에서 루비아는 일부 열외되었다. 제대로 된 검사를 받아보기 전까지는 함부로 움직여선 안 될 것이란 지도교수의 판단에 따른 처사였다.
저녁 즈음이 되어 루비아와 슈리엘은 로르센 아카데미가 후원하는 신전으로 향했고, 거기서 루비아의 몸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단언받았으나, 슈리엘은 온몸 구석구석에 붕대 같은 천을 두르곤 신전을 빠져나왔다.
“선배님, 괜찮으신 거예요?”
“……아, 심한 상처는 아니다. 며칠 푹 쉬면 금세 나을 거라고 하더군.”
“그, 그러면 다행이네요……”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쉴 만한 일이었다.
합숙 훈련에 진행되는 숙소로 돌아온 슈리엘은, 다시 한번 3학년 학생들의 무수한 악수 요청과 함께 자신의 이름이 대강당 내부에 그로부터 한참이나 울려 퍼지는 것을 가만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난 뒤에 합숙 훈련 일정이 모두 종료되었음을 알리고, 이번 사건은 다행히 큰 피해 없이 지나갔다만 이것을 계기로 너희도 언제나 제 몸 지킬 수단을 항시 가지고 다녀야 한다며, 그런 식의 짤막한 교훈을 남긴 다음 쉬어갈 새도 없이 아카샤의 별로 빠른 복귀 절차를 밟았다.
그러기 전에.
루비아는 슈리엘에게 말해야만 했다.
“저, 선배님. 어제……”
떠날 채비를 마쳤던 슈리엘이 뒤를 돌아본다.
루비아는 우물쭈물거리다가.
고개를 넙죽 숙였다.
“절…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때 해주신 권유, 진지하게 생각해 볼게요. 그 외에도 제가 달리 보답해 드릴 게 있다면 얼마든지 시간을 내서라도, 선배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두 손을 모으고 곱게 허리를 숙인 루비아.
“……”
저녁 노을을 까맣게 물들이며 점차 저물기 시작하던 드높은 하늘을, 슈리엘은 별안간 아무 말도 없이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시선을 내려 루비아를 향했다.
“은혜, 보답, 감사…… 좋은 말이다. 그게 정말로 올바른 방향성을 띠고 있다면, 말이지.”
“……?”
무슨 의미인지 루비아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가급적 너를 위하려 했다. 다만 그뿐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너는 내게 아무것도 감사하지 않아도 좋아. 그러니 은혜를 갚을 필요도 없고, 무사히 살아났다면 그걸로 된 거다.”
허리를 숙였던 루비아가 고개를 들었다.
슈리엘의 표정은… 알 수 없었다.
말만 들으면 후배를 구하는 것은 선배로서 당연한 일이니 아무런 감사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라는 선의적 의미 같았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서 평소 같았으면 부드러운 미소라도 지어 주었을 슈리엘은, 오늘따라 변화가 거의 없는 표정으로 그리 말하는 것이었다.
“……졸업식 혹은 그전에, 네게 한 번 찾아가도록 하지. 그때까지 몸 건강히 지내길 바란다, 루비아.”
그 말을 끝으로 슈리엘은 등을 돌렸다.
터벅거리며 저 멀리 그림자마저 사라질 때까지.
“……”
루비아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29
루비아는 금방 원래 생활로 돌아왔다.
월요일부터 정상적으로 등교하기 시작한 루비아의 귓가로, 이틀 정도가 흐른 뒤 수요일 쯤 되었을 때 슈리엘의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 사건의 공로를 크게 인정받아, 아직 그의 위계가 기준 미달인 펜테밖에 되지 않음에도 아카샤의 별 소속 최연소이자 정식 마법사로서 등극했음을 알리며, 그야말로 로르센 아카데미 개교 이래 역사적 위업에 버금 가는 축포가 울렸다.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던 걸까. 슈리엘 선배는 대체 자신이 정신을 잃은 사이 무엇을 했기에 그런 공로까지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었을까.
그만큼 다쳤을 정도면, 아마 정말 목숨을 불사르면서까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을 것이었다. 듣기론 아무나 파훼할 수 없을 만큼의 강력한 결계가 숲 일대에 깔려 있어 외부에 있는 교수들마저 함부로 들어올 수 없었다고……
감사한 사람이었다. 고마운 사람이었다. 루비아가 2학년이 되어 마법부에 진학하게 되었을 때부터, 석차 1순위를 꾸준히 유지하던 슈리엘은 루비아의 재능을 알아보고선 그 빛이 바래지지 않도록 옆에서 성심성의껏 루비아를 도와주었다.
제 중요한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마저도 가끔은 짜투리 시간을 내어 루비아의 마법 연구의 진척을 봐주거나 그랬다.
그렇게 많은 도움을 받았었는데.
이번에는 목숨까지 구해져버렸다.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루비아는 이보다 더한 보답을 어떠한 방식으로 선배님께 드려야 할지 갈피조차 잡지 못했다……
그런 고민이 이어지던 금요일 날.
루비아는 여느 때처럼 이동 수업을 위해 마법부 별관을 빠져나가 다른 별관으로 같은 반 학생들과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교과서를 품에 안은 채 나무가 우거진 길을 지나치고 코너를 돌자, 문득 루비아의 시선은 자연스레 어딘가로 향했다.
“……”
그곳은 1학년 때의 본관이었다.
길을 걷는 루비아의 눈동자가 3층을 향했다.
그는 언제나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자세히 보면 옆모습이든 뒷모습이든 보이는 것이었다.
책상 위에 팔꿈치를 댄 채 턱을 괴곤 나른한 눈으로 창문 밖을 바라보거나, 혹은 책을 펼쳐놓은 채 무언가를 열심히 읽는다거나. 그런 모습들이 본관 주변을 지나칠 때마다 루비아의 눈에 들어왔다.
굳이 수업 시간뿐만이 아니더라도 쉬는 시간에 계속 같은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언제는 보이지 않기도 했지만, 극소수였다.
그랬던 것이었다. 그랬었는데……
오늘은 안 보였다.
아무도 없이 덩그러니 비어진 자리.
아니, 사실 어제도.
그저께도.
월요일부터도……
——에지오는 제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요즘 많이 바쁜가?
그런 생각과 함께 막 검술부 별관 주위를 지나치던 루비아의 주변으로, 허리에 검집을 찬 검술부 학생들이 문을 나서며 저들끼리 속닥거리는 소리가 조곤히 들려왔다.
“——들었어? 3학년 그 선배, 자퇴했다네.”
루비아는 잠시 멈칫했다.
“…아, 그 선배? 뮤랑 친하다던?”
“어어. 뭔 일인지 몰라도 그랬다던데?”
“그래? 그보다 뮤, 걔 원래도 탈주 많이 했었지만 요즘 특히나 더 안 보이던데. 진짜 그 선배랑 뭐 있는 거 아냐? 아무리 봐도 그냥 친한 선후배 사이는 아닌 것 같던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뭐어? 말도 안 되는 하지 마. 우리 3학년 호렌스 선배도 까버린 게 뮤였잖아. 게다가 지금까지 뮤한테 들이댄 능력 좋은 남자애들만 해도 몇 명이냐 대체? 퍽이나 그런 선배 좋아하겠다.”
“아니… 걔, 아카데미에서 친하게 지내는 남자가 그 선배밖에 없잖아. 뭣보다 은근 괴짜라니까? 진짜 막 그런 사이인 줄 까놓고 누가 알겠어. 남자 취향이 특이할 수도 있지.”
“에이, 설마. 뮤도 아니라고 했고.”
“저번에 누가 팔짱 끼고 있는 모습 봤다던데…”
“엑, 거짓말! 으으, 상상도 안 가네.“
“그치? 사실 나도 안 믿어. …아 배고프다. 오후 수업 끝나고 오늘은 그냥 밖에 나가서 먹을래?”
“좋지. 저번엔 내가 샀으니까…… 알지?”
“뭐래 대련 패배 패널티였음서. 꼬우면 다시 떠서 이겨 보던가.”
“쳇.”
여학생 둘은 루비아의 뒤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 귀담아 들을 만한 건 아니었을 텐데, 왠지 모르게 집중해서 대화를 전부 들어버렸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방금 지나쳤던 여학생들의 대화 화두에 올랐던 그 선배가 누군지, 알 것도 같았던 까닭이다.
루비아는 뮤를 알고 있었다. 다만 직접 만나본 적도 얼굴 한 번 맞대본 적도 없었으나, 그녀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워낙 아카데미 내부에서 유명인사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가끔 통합학부 3학년 친구에게 에지오의 소식을 물어볼 때면 언제나 빠짐없이 튀어나오는 이름이었으니까,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런 뮤가 친하게 지내는 남자 선배.
애초에 뮤의 주변에 남자가 많다면 모를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단 한 명밖에 없었던 거다. 그 사실은 뮤를 조금이라도 깊게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기억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통합학부 3학년 에지오 크라닐.
분명했다.
“……”
루비아는 다시금 본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텅 빈 자리가 보였다.
— 들었어? 3학년 그 선배, 자퇴했다네.
루비아는 멍하니 생각했다.
……자퇴했다고?
에지오가?
……왜?
불확실하게 떠들었던 말인 만큼, 그냥 소문에 불과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의 자퇴 소식이 부풀리기 식으로 퍼져 나갈 리는 없잖은가. 루비아가 자리에 멈춰 서서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뭔가, 뭔가… 너무 갑작스럽지 않나?
무언가 큰일이 있었나?
에지오한테?
갑자기 아무런 말도 없이, 이렇게 홀연히 자퇴를 해버릴 정도로…… 큰일이……?
그동안은 에지오가 아카데미 내부에 존재했었다. 지금처럼 길을 지나가면서, 계속 에지오가 있을 창문가를 바라보았다. 그가 저곳에 자리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버젓이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전히 나른하디 어딘가 시니컬한 푸른 눈동자. 예전부터 바라보기만 해도 무언가 안심이 되었던 에지오의 눈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문득, 루비아는.
손바닥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차오름을 인지했다.
내일은 주말이었다. 수업이 없는 날.
주말에, 에지오의 집에 한번 찾아가봐야……
“루비아.”
“……어, 어?”
충격에 휩싸인 루비아의 어깨를 누군가 가볍게 두드렸다. 뒤를 돌아보니, 길게 늘어진 생머리가 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소녀 역시 두꺼운 교과서를 손에 든 채로, 루비아의 어깨 너머를 향해 턱짓했다.
“뭘 멍때리고 있어? 빨리 들어가자. 오늘 깐깐한 교수님이잖아. 그 대머리.”
“……그, 그렇지. 응…”
친구의 말에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도.
힐끗.
루비아는, 본관 쪽을 돌아보길 반복했다.
#30
주말에도 루비아는 바빴다.
기본적으로 성실한 학생이었으며, 그렇기에 하루도 빠짐없이 일정 시간 이상은 꾸준하게 마법 연습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곧 졸업이 다가오다 보니 이러저러 일정이 섞여 평소보다 유독 바쁜 주말이었다. 다가오는 12월 마지막 2차 정기고사도 준비해야만 했고, 군데군데 신경 쓸 부분이 많았기에 쉴 틈은 없었다.
파지지지직——
“……앗!”
——팟.
스파크를 일으키며 형성되던 공간의 균열이 순식간에 닫혀버렸다.
개인적으로 대실한 연구실에서 마법 연습을 진행하던 루비아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정밀한 계산에 실패해버린 걸까. 평소보다 훨씬 떨어진 유지력을 확인하면서 루비아가 덜컹거리는 가슴 위에 조심히 손을 얹었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실수.
이상하다.
……오늘따라, 유독 실수가 잦았다.
“으음……”
루비아는 폭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집중이 하나도 안 되었던 것이다.
누가 함부로 가르쳐줄 수 없는 공간계 마법이니만큼 루비아 스스로 연구에 몰두해 전심전력을 다했어야만 했는데, 이처럼 여러 번이나 실패해버렸다.
아무렴 체내의 회로를 불태우며 머릿속에서 마법식을 계산 및 나열할 때는 초고도의 집중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러나 중간중간 자꾸 다른 생각이 떠올랐던 까닭에, 이렇듯 펼치는 마법에 문제가 하나씩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하아아.”
그게 뭐냐고 물을 것도 없이,
에지오 때문이었다.
에지오의 자퇴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계속 그 생각이 루비아의 머릿속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니, 원래도 에지오에 대한 생각은 항상 자리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더욱 심화된 것이었다. 지금처럼 마법 시전에 차질이 생길 정도로 조금 심각한 상태였다……
루비아는 스스로의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
계속 이런 모양이어서야 이후의 연습이 제대로 될 리도 없었다. 교본 등으로 어지럽혔던 테이블을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뒤, 루비아는 연구실의 키를 챙겨 문을 잠그곤 밖으로 나왔다.
——타타타탁.
한참 멍하니 서 있던 루비아는 이윽고.
곧 저녁이 되어 주홍빛 노을이 깔리기 시작하는 하늘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면서, 어딘가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31
불과 어제였던가.
루비아는 에지오의 자퇴 사실 여부를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통합학부 3학년 친구에게 에지오의 근황을 물어봤었다.
— 어, 우리 담임 교수님이 말씀해주시더라.
소문이 사실이라는 대답을 받았다.
왜, 라는 질문에는 당연히 자기도 모른다 했다.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다.
그냥, 그날 이후로 홀연히 잠적해버렸다고……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에지오……’
루비아는 더 불안해졌다. 초조해졌다.
알게 모르게 마음을 침식하기 시작한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서, 하루 루틴에 속했던 마법 연구도 도중에 그만둬버리곤 재빠르게 건물 밖을 나섰다.
타박, 타박……
……타타타타탁!
왠지 발걸음이 급해졌다. 종종거리며 잰걸음으로 걸어가던 루비아는 급기야 뛰기 시작했다.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
루비아를 알아본 옆반 학생들이나 2학년 후배들이 그녀에게 활기찬 인사를 건네오기도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루비아는 평소처럼 그들의 인사를 하나하나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하아, 하아, 하으으……”
결국 아카데미 기숙사 건물에 도착했을 때.
루비아는 가쁜 호흡을 차례로 몰아쉬면서, 기숙사 로비에 들어가 검술부 2학년 뮤라는 학생의 방이 몇 호인지 물어보았다.
“아, 감사합니다…!”
원하는 대답을 들은 루비아가 계단을 통해 층을 올라갔다. 저 높이서부터 내려오는 승강기를 기다리기엔 루비아의 마음이 더 급했다.
탁탁탁탁.
알고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상관없다. 유일하게 에지오의 근황을 자세히 알고 있을 만한 사람이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직접 물어보기라도 하기 위해서 이렇게 찾아왔을 뿐이었다.
벌컥, 하고 문을 열어 계단을 빠져나온 루비아는 이윽고 길게 이어진 복도 끝을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문 앞에 멈춰 섰다.
“후우, 후……”
루비아가 한층 과열된 숨결을 진정시키듯 가슴 위에 손을 얹은 채 조심히 입을 열었다.
“계, 계세요……?”
똑, 똑, 똑……
노크와 함께 그리 말하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시, 한번.
“저기, 계시면 잠깐만 열어주시면 안 될까요!”
똑, 똑!
조금 더 큰 소리가 났다.
그때.
——끼이이이익……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살짝 물러난 루비아의 시야로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절반 정도가 깔끔하게 정리된 방의 내부였다.
차곡차곡 쌓인 짐이 방구석에 놓여 있었다.
한쪽은 생활감이 잔뜩 묻어나 약간 더러운 모양새였는데, 그 반대쪽은 지나치게 깨끗하여 되레 위화감이 드는 그런 묘한 분위기의 방이었다.
문틈 사이로 고개를 내민 사람은.
“……누구세요?”
“어……”
루비아는 순간 숨을 삼켰다.
어둑한 방으로부터 복도의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얼굴에선, 그 분위기와 전혀 반대되는 퀭한 눈가가 드러나 있었다.
탁하디 칙칙한 자줏빛 눈동자가 슬며시 루비아의 몸을 훑어보고 있었는데, 그 주변의 살덩이는 왠지 퉁퉁 불어 있는 듯했다.
자다 일어난 것이라고 하기엔 조금 달라 보였다. 생기가 온통 시들어 죽기 직전인 식물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뭔가 심각한 상태의 소녀를 보고선 루비아가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혹시, 검술부 2학년 뮤…… 맞니?”
잠시 뒤에 조용한 대답이 돌아왔다.
“……네, 그런데요?”
맞구나.
때마침 안에 있어서 다행이다.
“저, 물어볼 게 있어서 왔는데. 나는 마법부 3학년 루비아라고 해.”
그런 말을 꺼낸 순간.
픽, 하고 뮤가 입매를 비튼 것도 같았다.
“……아, 당신이?”
“……?”
루비아가 눈을 깜빡였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뭐지. 얘 조금, 무서운 것 같은데……
살짝 겁먹은 루비아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잠깐 얘기 괜찮아……?”
“……”
뮤가 루비아의 눈을 바라보았다.
마주치는 게 뭔가 무서웠지만, 루비아는 꾹 참고 뮤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마음대로. 뭐가 궁금한데요?”
꽤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
안도하는 마음에 루비아가 연이어 물었다.
“그, 통합학부 3학년에 에지오 크라닐이란 남학생이 한 명 있는데. 너랑 에지오가 많이 친했다고 들었거든… 그럼 혹시, 이번에 에지오가 자퇴한 거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 해서……”
“……”
뮤는 눈동자만 굴려 루비아를 올려다보다가.
“아아… 알죠.”
“……!”
하긴, 은연 중에 떠돌아 다니는 소문이 존재했을 만큼 뮤 쪽에서 모를 리가 없었겠지만.
“그럼 왜 자퇴한 건지도, 알아…?”
루비아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런 뒤.
“……”
뮤는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둘 사이에 긴 침묵이 이어졌지만 루비아는 참을성 있게 답변을 기다렸다.
그러다 보니, 뮤가 아까부터 제 손에 꼭 쥐고 있던 뭔가도 눈에 들어왔다. 무슨 종이인가. 글씨가 적힌 것을 보니 편지인가 싶기도 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그림자가 졌던 탓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있던 뮤는.
별안간 입을 여는 것이었다.
“알아서 어쩔 건데요?”
“……어?”
“알아서 어쩔 거냐구요. 언니가 뭔데요? 에지오 선배의 뭔데, 왜 자퇴했는지 알아서 뭘 하려고 저한테까지 찾아온 건데요?”
“……어, 어?”
그 날카롭게 추궁하는 듯한 말에.
루비아가 한 걸음 물러서며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생각도 했다.
……그러게.
나는 지금… 에지오의, 뭐지?
친구인가?
……정말로? 정말 그렇게 생각해?
섣불리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딱 하나 있었다.
“소, 소꿉친구, 야……”
다른 평범한 인연들보다도 조금 더 깊은 인연이, 루비아와 에지오 사이에는 존재했던 것이었다.
지금은 비록…… 연결부가 희미하게 끊어질 듯 말 듯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소꿉친구?… 아하, 그런가요.”
뮤는 기운 빠지게 웃었다.
“언니는 어디까지 알고 있어요?”
“……응? 뭐를?”
“음, 아녜요.”
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딱 두 가지만 말해줄게요.”
“……!”
확실히, 뮤는 에지오의 자퇴 사건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늦은 시간이나마 뮤를 찾아오길 잘했다고, 루비아는 생각했다.
그러나, 뮤의 입에서 나온 말은.
루비아의 입장에서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에지오 선배는 지금, 거의 죽다 살아났어요. 비유 같은 게 아니라 진짜로.”
“……! 뭐, 뭐?”
뮤가 한 말을 이해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소모되었다. 불안감이 지워지긴커녕 더 커지기만 했다. 루비아는 꾹 쥔 손을 파들파들 떨면서 물었다.
“…왜, 왜? 무슨 일, 무슨 일인데? 에지오가 죽다 살아났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에지오가, 왜……?”
“그리고.”
뮤는 루비아의 의문을 무시한 뒤 말했다.
“자퇴한 다음에, 어디론가 떠났어요.”
“…떠나? 어디로?”
“글쎄요. 저도 모르니까 묻지 마요.”
“정말 모르는 게……”
“뭣보다 언니가.”
“……?”
“언니가, 에지오 선배랑 정말로 친구라면.”
꾸깃.
뮤는 제 손에 든 종이를 아주 약한 힘으로 꾹 쥐었다. 창백하디 새하얗고 가느다란 뮤의 손가락은 얕게 진동하고 있는 듯했다.
“선배를 찾지 마세요. 더 이상은.”
“……찾지 말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뮤와의 대화는 뭔가 이상했다. 질문에 대답해주는가 하면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꺼냈다. 그런 것을 제외하고서라도, 의미를 이해하기 힘든 말들을 건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니는.”
“……어?”
순간적으로 뮤는.
싸늘한 눈으로 루비아를 향해 말했다.
“제 눈 앞에 더 이상 보이지도 말고요.”
“……!”
잠시 주춤한 루비아를 놔두곤.
끼이익……
뮤가 슬며시 문을 닫으려 하자, 마음이 다급해진 루비아는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아니, 잠깐만! 에지오가 죽다 살아났다니, 그게 대체 무슨… 에지오한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그건, 그것만 알려줘! 에지오가 어디서 뭘 당했길래———”
쾅.
결국 뮤는 세게 문을 닫아버렸다.
“……”
조용한 복도에 홀로 남겨지게 된 루비아가,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리려다가 말았다. 그래봤자 절대 열어주지 않을 것 같았던 까닭이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맞이할 때부터 어렴풋이 알아봤지만, 죽은 식물처럼 시들어버린 뮤의 반응을 보니 더욱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게 현실감이 없었다.
에지오가 급작스레 아카데미를 말도 없이 자퇴해버렸단 사실도, 홀연히 종적을 감추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는 얘기도. 앞으로 몇 개월 남지 않은 졸업을 앞두고선 자퇴라니?
그리고, 무엇보다 죽다 살아났다니.
비유도 아닌 진실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었을까.
에지오가…… 죽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살았다고 한다. 그럼 다행인데, 다행이 아닌 것 같았다. 에지오의 죽음이란 키워드를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순간, 루비아는 머리에 망치를 거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대체, 뭐야…?”
정말로.
모든 일이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아무것도 모르는 루비아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