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날 차버린 소꿉친구와 전 여친이 같은 반이라 곤란하다-41화 (41/201)

〈 41화 〉 상실의 대가 (2)

* * *

#2

제 4학구의 길거리는 순식간에 난잡해졌다.

위이이이이이잉—!!

유례없는 사태에 경보음이 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하고, 그것을 들은 학생들은 피해가 예상되는 반경 너머로 황급히 도망치거나 그 경계선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 이 이상 진입은 위험합니다! 물러나십시오!

— 모두 기숙사로 긴급히 복귀해주십시오!

거리를 순찰하던 기사들은 본부로부터의 긴급한 지시에 따라 상황을 통제하며 학생들을 더욱 뒤로 물러나게 했다.

아닌 밤중에 테러와 화재라니.

아주 간소한 사건 사고는 간간이 있었어도 이러한 큰 사태는 근래 들어 처음이었다.

프론티어의 건물은 기본적으로 보안 설계가 충실히 되어 있었으나, 이번 사건에 있어서는 별로 큰 기여를 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라는 것이었다.

저 불길하게 치솟는 검은 연기는 엄밀히 보면 일반 화재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연기란 사실을 알 수 있을 테지만, 그것을 사실대로 공표하여 학생들 사이에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제 4학구를 비롯한 프론티어의 교수진들에게 일괄 전달된 메시지 중에는 마(?)와 관련된 사건이니 보다 진중하고 신속하게 사건의 원인을 밝히고 처리할 것, 이란 내용이 담겼다.

타타타타탁—

그러던 와중.

본부로부터 메시지를 전달받은 몇 명의 교수가 긴급 파견을 준비하기도 전에, 가장 먼저 건물로 뛰어들었던 학생이 한 명 있었다.

‘……에지오가 위험해.’

정말 한 치의 고민도 없다는 듯 즉발적인 움직임이었다. 때문에 누군가 뮤를 제지할 틈마저 존재하지 않았다.

폭발적으로 날뛰는 마력을 오른발에 실어 진각을 밟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일그러지며 깊게 파였다.

그것을 기점으로 전방을 향해 폭풍처럼 쇄도한 뮤는 눈앞에 드러난 검은 연기를 똑바로 직시했다.

검풍(?風)을 일으켰다.

깔끔한 횡베기가 들어갔다. 거센 풍압에 밀려난 검은 연기는 일순간 양단되었다.

다만 뮤의 예상처럼 일반적인 연기도 아닌 것 같은 게, 두 갈래로 찢어질 때 무슨 괴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사이한 괴물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였다.

끈적한 불쾌감에 뮤는 인상을 찌푸리곤 다시금 바닥을 거칠게 박찼다. ——쾅!

부우우웅! 홰액!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연기를 베고, 또 베어내면서, 암흑에 휩싸인 건물의 출입구를 향해 내달렸다.

‘……에지오가 몇 층에 있는지는 몰라. 1층부터 쭉 둘러봐야 해.’

도를 넘어선 긴장은 사람의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되레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주변의 분위기는 사이하기 그지없었으나, 뮤는 잔잔한 수면과도 같은 마음으로 오직 하나의 목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공간에 희끄무레한 푸른 잔상이 묻은 선이 남겨질 때마다 그곳에 자리한 검은 연기가 쩍 하고 갈라졌다.

“허억, 허억, 허억……”

오로지 시야를 한 곳에 고정한 상태로 바람을 가르며 내달리던 뮤는, 곧 출입구 근처에 다다르자 문 밖으로 절뚝이며 도망치는 하얀 가운의 남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씨발, 이게 대체 무슨 일……”

“저기요!”

아마 관계자일 터였다. 안경 쓴 남자가 화들짝 놀라 뮤를 돌아봤고, 대번에 남자의 앞에 도달한 뮤는 그의 어깨를 턱 붙잡고선 마치 잡아먹을세라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여기, 에픽 클래스 강의 담당 교수님이 계신다고 들었는데, 그분은 몇 층에 계시죠?”

뭔 기백이 그렇게 센지.

남자는 덜덜 떨면서 말했다.

“…모, 몰라요. 에픽 클래스고 뭐고 안에 사람이 다 쓰러져 있다고요. 저, 저는 일단 여기서 나가야……!”

“대답해요.”

“히이익­.”

푸른 안광이 일렁거리는 뮤의 눈동자를 마주하자, 침음성과 함께 질겁한 남자가 곧이어 고개를 발발발 저으며 빠르게 말했다.

“……지, 진짜 몰라요! 모른다구요! 애초에 여긴 제 2학구도 아니라 제 4학구고… 아, 아!”

눈을 크게 뜬 남자가 입을 달싹였다.

“이, 이번에 새로 부임한 교수가 한 명 있었어요. 되게 유명하고 실력 좋은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저, 저는 말단이라 잘 몰라요.”

“그래서 몇 층에 계시냐구요!”

“히이익… 아, 아마 최상층… 일, 걸요…!”

나쁘지 않은 수확을 얻었다. 쓸데없이 무섭게 했나 싶기도 한데, 지금으로선 그게 더 효과적이었다. 한쪽 알에 금이 간 안경을 쓴 남자에게 뮤는 고개를 끄덕이며 등을 밀쳐주었다.

“고마워요. 잘 가요.”

말하는 동시에 남자의 앞길을 향해 검파를 꾹 쥐고선 마력을 일으켰다.

일반적인 검사는 벨 수 없는 것을 베어버린 뮤의 검이 반월의 잔상을 그리며 전방을 향해 쭉 나아갔다. 남자가 도망칠 수 있도록 활로를 트여주고선 곧바로 뮤는 등을 돌렸다.

직후, 다시 한번 진각을 밟는다.

콰앙!

‘……최상층, 최상층이란 말이지.’

영 얼빵해 보이는 남자의 말이었다. 워낙 급박한 상황이기도 했으므로 쉽게 믿어서야 안 되었을 테지만, 우선은 아직까지 건물 밖으로 에지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건물 내부에 아직 존재함을 알아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처음 검은 연기가 터져 나온 장소는 이 건물의 최상층인 15층이었다. 확실했다. 그곳에서 에지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뮤는 하도 세게 깨물어 선혈이 주륵 흘러내리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선, 참으로 고통스러운 마음에 얕은 침음성을 내보냈다.

추측하건대 에지오를 개인적으로 호출한 교수의 짓이었을 터다. 아니면 연구를 도와주는 과정에서 뭔가 잘못되어 이처럼 큰일이 터졌다든가……

어느 쪽이든 에지오의 목숨이 위험하단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았기에, 뮤는 슬며시 떠오르는 다른 잡념을 전부 제쳐두고서 오로지 하나의 목표만을 뚜렷하게 상기했다.

——에지오를 구한다.

다른 어디도 아닌 프론티어라고, 카페 안에서 안일하게 기다리기만 했던 자기 자신을 무참히 질책해야만 했다. 그런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다.

뮤의 입장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는 이전과 비교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에지오가 스스로 닥쳐온 위험을 헤치고서 건물 밖으로 탈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짙고 무거운 연기에 가장 먼저 직접적으로 노출되었을 사람이 바로 에지오였을 터다. 방금 만났던 남자도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쓰러졌다 하지 않았는가. 피해를 입었으면 입었지, 멀쩡할 이유는 절대로 없었다.

부우우웅! 홰액!

“……콜록, 콜록.”

뮤 자신도 이렇게 돌진하고는 있지만, 연기를 조금씩 들이마실 때마다 몸이 살짝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왼손으로 코와 입을 막은 채 나머지 한 손으로 검을 휘두른다.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포기를 입에 담을 수 있는 건 에지오를 성공적으로 구하고 나서의 일이 될 듯했다.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을 거야.’

으득.

경첩이 고장난 채 활짝 열려 있는 건물의 출입구에 도착한 뮤가, 로비에서부터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이를 세게 악물고선 재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3

제 2학구 에픽 클래스 2동 여자 기숙사.

“……휴우.”

1층 복도 한가운데에 위치한 방 안에서.

은은한 주홍빛 조명등만을 켜놓곤 푹신한 침대 위에 앉아 있던 유리가 문득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등받이 쿠션에 작은 몸을 기댄 채 말없이 창문 밖 테라스 너머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한밤중의 밀회는 급작스레 종료되었다.

심각한 일이 벌어지는 와중 한가로이 간식거리를 먹으며 시시덕거릴 여유가 더 이상 없었던 까닭이었다.

더 하고 싶었던 얘기가 많아 살짝 아쉽긴 했지만, 이런 시간은 비단 오늘만 보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이곳에선 왕궁과는 달리 언제든 늦은 새벽까지 친구와 수다를 떨 수 있었다. 아무렴 훗날을 도모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 아쉬움이야 차치하고서라도, 잠에 들기 위해 따뜻한 물로 목욕을 기분 좋게 마친 뒤 잠옷까지 갈아입은 유리가 이처럼 근심 섞인 한숨을 내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백 퍼센트, 아니. 백 이십 퍼센트.

화재니 테러니 뭐니 하는 사건이 프론티어 내부에서 발생했단 소식을 유리의 부모님인 아르티나 국왕과 왕후가 듣기라도 하는 순간, 국정을 죄다 내팽개치고 바로 이곳까지 달려올 것임이 분명했다.

“으으으으……”

어디 하나 아픈 곳 없이 팔팔하기 그지없어 멀쩡한 딸내미의 몸 여기저기를 만지작거리며 눈물을 쏟을 지경으로 걱정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상상하자, 유리는 또 다시 이마가 지끈거리는 듯싶었다.

그래, 흔한 일이었다. 어차피 그럴 거다. 여기서 유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는 그러기 전에 미리 서신을 보내놓는 것밖에 없었다. 자기는 괜찮으니까 혹시라도 올 생각 말라고. 오면 5년 동안 방학에는 왕국에 한 번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스르륵­.

유리가 양손으로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날 적부터 특별한 관리 없이도 비단 같은 머릿결을 자랑했으나, 유리를 특별히 애정한 왕궁 시녀들의 열성적인 빗질 등으로 완성된 순금빛의 머리칼은 그야말로 극상의 부드러움을 가지게 되었다.

머리끈을 푼 탓에 길게 늘어져 치렁치렁한 그것을 손틈 사이로 폭포수처럼 흘려보낸 유리가, 다시금 의미 모를 한숨을 얕게 머금곤 입술 밖으로 솔솔 새어냈다.

“후우우…”

부모님의 극성적인 태도를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지만. 왜 그러는 건지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함부로 막 저리 가라 할 수도 없지만은. 일단 나한테도 입장이라는 게 있는 거잖아.

이러다 내가 한 3일 정도 실종되기라도 하면 그 사이에 나라 폭삭 망하겠다, 아주. 무슨 자기들만 걱정하나. 나도 여러 가지로 걱정되거든.

연분홍 빛깔로 물든 부드러운 실크 재질의 잠옷 팔소매 밖으로 절반 모습을 드러낸 유리의 뽀얀 손이, 이불을 꾹 쥐고선 그것을 제 허리 맡까지 덮었다.

폭신하고 따스하다. 왕궁의 침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방은 이전보다 좀 작았지만 유리는 오히려 이 방이 더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방은 쓸데없이 넓고 크기만 했던 탓에, 중앙 침대 위에 혼자 웅크려 앉아 있을 때면 참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독함이 불시에 들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상체만 빼꼼 내민 채 이불을 덮곤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던 유리가, 살포시 눈을 감았다.

칠흑 속에 잠기자.

곧 흐릿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 유리, 내 사랑하는 딸아. 너는, 너는… 어디에도 가지 말거라. 꼭 우리 곁에 있어 주렴. 이 못난 아비를 혼자 두고 가지 말거라… 제발……

“……”

지금까지 제깍 잠자리에 들었던 밤 10시를 한참 넘어섰던 까닭에 몸이 피곤할 법도 한데, 왠지 모르게 잠은 전혀 오지 않았다.

부모님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그쪽에도 생각이 닿게 되었다. 이렇게 혼자 있을 때면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이었다……

한동안 말없이 창문 밖을 바라보던 유리가, 곧 아까 들었던 경보음 다음에 이어진 안내음을 다시금 상기했다.

제 4학구. 테러와 화재. 건물 연쇄 폭발 가능성.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키워드였다.

다른 어디도 아닌 프론티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누가 뭐래도 제국 최고의 요새 같은 곳이 아니었던가.

그런 장소에 테러가 일어나다니. 한동안 두고두고 회자될 게 분명한 대사건이었다.

……거기에 휘말렸을지도 모른단 거지.

그 녀석이 말야.

아니, 뭐. 사실에 의거한 인과를 따지고 있을 뿐이었다. 휘말리면 휘말린 거고, 아니면 아닌 거고.

루비아가 단순히 그 녀석을 에픽 클래스 부지 내에서 찾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잖나. 지금 저 반대편 기숙사에서 아무 걱정 없이 드러누워 자고 있을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야 1도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가능성은 엄청 낮은 거다. 그 녀석이 교수를 만나러 향했다던 제 4학구는 꽤 넓었고, 어느 한 곳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한들 프론티어인 만큼 금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었다.

알아서 잘들 하겠지 뭐. 달리 걱정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거였다.

“……하?”

유리는 그쯤에서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곤 혼잣말로 그리 중얼거렸다.

……걱정? 누가?

내가?

그 녀석을?

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건 걱정이 아니었다. 친하지도 않은, 굳이 친해질 생각도 없는 사람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일 따위 있을 리가 없잖은가.

그 녀석은 유리에게 있어 철저히 남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외부인도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맞대야만 하는 주변인에 가까운 녀석이라, 루비아의 언급 때문에 잠깐 단편적인 생각이 떠올랐을 뿐이었다.

교수를 만나러 제 4학구에 들렸고.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고. 아까 전 제 4학구에서 뭔가 큰일이 터졌고.

그런 식의 인과를 따져 보다가 그 녀석이 일에 휘말렸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정도. 딱 거기까지였다. 그 이후 녀석이 어떻게 되든 말든 유리에겐 하등 상관없는 일이었다.

살면서 좀 크게 다칠 수도 있지 뭐.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게 우리 인간의 삶이라는데……

“……”

……으음.

아냐.

생각을 잘못했다.

죽는 건, 역시 좀 그렇지.

당장 그 녀석을 제외하고서라도 같은 반의 누군가가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떤 방향으로든 신경이 쓰일 거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만 보였던 얼굴이 영영 세상을 떠났다는 말 아닌가. 그런 께름칙한 경험은 누구든 싫어할 거다.

그래.

그러니까 죽지만 않으면 돼.

죽지만……

“……아이 씨, 진짜!”

유리가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확 잡아 끌었다.

머리 끝까지 덮고선, 그대로 미끄러지듯 등받이로부터 몸을 끌어내리곤 침대 위에 대충 누웠다.

……죽긴 누가 죽는다고 그래?

명색이 나와 같은 에픽 클래스인데, 그깟 테러 같은 거에 당해서야 되겠어? 에픽 클래스의 명예가 떨어진다구. 기왕 휘말릴 거면 사건을 멋지게 해결하는 편이 더 좋잖아.

몰라. 알아서 잘들 하겠지.

아무튼 걱정 안 해. 아니, 안 돼.

그런 녀석을 걱정해서 내가 얻는 이득이 뭐가 있다고. 내 기분만 괜히 나빠지잖아.

오히려 좀 다쳤으면 좋겠네. 날 멋대로 놀리고 화나게 한 벌이나 받았으면.

……그렇다고 정말 크게 다쳐서 돌아오면 내가 저주한 것 같이 느껴지니까, 어금니 하나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아닌가. 누구한테 맞아서 눈이 퉁퉁 불어 오는 게 차라리 더 우스울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 된다면 물고기 같다며 실컷 놀려줄 자신이 있었다.

“흣.”

그건 꽤 재밌겠네. 이불 속에서 유리는 피식거리며 별안간 웃고 말았다.

“……바보 같아.”

그 녀석한테 중얼거리는 혼잣말이나 다름없었지만, 어쩌면 시답잖은 상상을 하고 있는 자신한테도 적용될 법한 말이었다.

그렇게 본인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한동안 제 4학구에 있을 터인 에지오 크라닐의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던 유리였다……

#4

“콜록, 콜록……”

루나틱관 1층.

내부는 깜깜하디 어두웠다.

무언가에 의해 전력 공급이 끊겨 정전이 나버린 것이었다. 비상 전원 장치마저 망가져버린 걸까. 안 그래도 거무죽죽한 연기 탓에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데, 빛마저 차단되니 썩 곤란했다.

우우우웅……

결국 마력의 푸른 빛에 의지해 탐색을 개시할 수밖에 없었다. 뮤는 검면에서 뿜어지는 마력을 통해 주변의 시야를 확보했다.

아까 도망친 남자가 말한 것처럼 미처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데스크 위에 벌렁 엎어져 있거나, 겹치고 겹쳐 의식을 잃은 사람들. 열린 문 안에서도 그와 비슷한 광경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 됐지만 뮤에겐 지금 이들을 구조할 여유가 없었다. 곧 자기 말고도 프론티어 쪽에서 이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인력을 투입할 거다.

이 사람들은 전적으로 그들에게 맡기고, 뮤 자신은 누구보다 먼저 이 건물 어딘가에 있을 에지오를 찾아내야만 했다.

뮤는 자신의 코와 입을 틀어막았던 손을 치우고선 그리 높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에지오 선배——!!”

메아리가 사방에 통통 튕겼다. 뮤의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하지만 기대하던 대답은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여긴 없는 건가……”

사람들을 밟지 않게 조심하면서 연기를 헤쳐나가며 빠른 속도로 1층을 전부 둘러보고, 에지오가 없음을 확인한 뒤에 곧바로 계단을 향해 질주했다. 당연하지만 승강기는 이용할 수 없었다.

“선배——!! 어디 있어요——!!”

뮤는 더욱 마음이 조급해졌다.

분명 최상층이라고 했었지. 그렇다면 차라리 최상층을 먼저 둘러본 다음에 한층씩 내려가는 편이 좋을 듯했다.

어두캄캄한 계단을 단숨에 폴짝 뛰어오르며, 뮤가 각 층에 도착할 때마다 문을 벌컥 열고선 에지오의 이름을 불렀다.

탁탁탁탁—

건물 내부는 기괴하리만치 고요하고 조용했다. 덕분에 뮤의 외침은 더욱 선명히 뻗어 나갔으나, 여전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에지오도 아래층의 사람들처럼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걸까. 최상층에 도착하면 일단 뭐든 한 명씩 얼굴을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콜록, 콜록… 큭……”

연기의 농도는 층을 올라갈수록 짙어졌다. 같잖은 마력을 일으켜선 제대로 베지도 못했다.

뮤의 마력 회로가 더욱 뜨겁게 불타올랐다. 전신의 혈도를 내달리며 빠직거리는 스파크가 튀겼다. 검파로부터 웅혼한 진동이 느껴지자 뮤는 그것을 횡으로 그었다. 다시금 쩍 하고 갈라지며 트인 활로를 통해 계단을 오른다.

“에지오——!! 어디 있어——!!”

어디에 있는 거예요, 선배.

들린다면 대답해줘요.

제발…

여기 계속 있다간 제아무리 뮤라도 안전하지 않을 터였다. 가급적 신속히 에지오의 신병을 확보하고서 탈출해야만 하는데, 그림자조차 보이질 않는다.

“하아, 하아……”

점점 가빠져가는 호흡을 꽉 붙들곤 그렇게 13층을 넘어 비로소 14층의 문을 벌컥 열었을 즈음에.

“에지오———!! 들린다면 대답……!”

뮤가 잠시 외침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한 손을 들었다.

“……잠시만.”

곧 미간을 좁히며 무언가에 귀를 기울인다.

……쿵.

……쿠구구구.

뮤의 날 선 기감에 확실히 잡혔다. 뮤는 곧바로 온 신경을 쏟아부어 그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미약한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아니, 지금 서 있는 곳에서는 그리 느껴질지 모르나 분명 층 전체가 진동할 만큼 거대한 충격이었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처음 작게만 들리던 그 소리는 점점 몸집을 불려갔다. 위에서부터 쿠궁거리며 뭔가 부수고 내려오는 듯한 진동음이——

——콰아아앙!

“……!”

뮤가 열었던 문에서부터 저 멀리.

부스러기 같은 먼지들이 천장에서 구름처럼 일더니 곧 굉음과 함께 박살나고 무너졌다.

쿠웅!

“뭐, 무슨…!”

떨어진 잔해 속에서 내려앉은 무언가.

정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

스윽.

뮤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하곤 다시금 검세를 정돈했다.

타박, 타박……

언제라도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친 채 열린 문 안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온통 어둠에 휩싸인 내부는 시야의 사각을 제외한 중앙 부분만이 희미하게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꿀꺽.

침을 삼켰다. 긴장한 채 슬며시 다가간다.

일순.

괴이한 소리가 들렸다.

「……—.」

……사람인가? 무슨 소리지?

뮤가 손에 든 검면에서 발하는 희끄무레한 빛이, 잔해더미에 묻혔던 무언가의 형체를 흐릿하게나마 밝혀내기 시작한다.

적이라면 베어낼 준비는 언제라도 되었다.

그러나.

“……어?”

드드득…

생물체 같지 않은 울음소리와 함께 웅크려 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무언가의 잔뜩 더러워진 몸체가 마력이 쏘아내는 빛에 비추어져 뮤의 시야 속에 선명히 드러났다.

그 순간에.

“——!”

뮤는 하마터면 검을 손에서 떨어뜨릴 뻔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눈을 그 이상 크게 뜰 수 없을 정도로 동그랗게 만들곤, 위험한 연기를 들이마시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척수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은 것이었다.

“……서, 선배?”

그곳에 비틀거리며 서 있는 무언가는.

「……그으아—.」

자신이 그토록 찾아다녔던 사람이자, 동시에 뮤가 알고 있던 모습과는 달리 뭔가 이상한 상태의…… 에지오 크라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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