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상실의 대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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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월 19일 토요일 밤 프론티어 제 4학구 루나틱관에서 벌어진 의문의 테러와 화재 사건은, 다음 날 아침 부로 깔끔히 종식되었다.
사건의 원인은 에픽 클래스 소속으로서 초감각특론 강의를 담당하던 나디엘리 할렌니아 석좌교수의 개인적 소행으로 밝혀졌다.
끝없는 진취와 성취욕에 잠식되어 결국 손대지 말아야 할 금기를 저질렀으며, 그 과정에서 본인이 사망하고 에픽 클래스 신입생 한 명이 의식 불명이 되는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라는 식으로, 나디엘리의 숨겨진 정체가 가증스러운 악마라는 사실은 프론티어의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채로 남겼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한다면, 인명피해가 거의 없었다는 점일까. 정체불명의 연기에 노출된 이들은 정신을 잃는 것으로 끝났다.
라기보다는 더 오래간 노출되었다면 짙은 마기에 침식되어 큰일이 났을지도 모르나, 빠른 조치 덕에 사건 피해자들은 별 이상 없이 침대 위에서 정상적으로 깨어날 수 있었다.
추가로.
프론티어 본부에서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추산 피해액은 제국 중규모 마탑의 3년치 운용비에 가깝다고 한다. 화재 등으로 영구 소실된 연구자료 등의 가치를 전부 따졌을 때의 일이었다.
또한, 본 사건을 계기로 프론티어의 명성에 흠이 간 것은 달리 볼 것도 없이 자명한 사실이었다. 프론티어 측에서 직접 선별하여 초청한 석좌교수가 이런 일을 자행한 것이었다.
사건 개요가 공표된 바 엄밀히 말하면 전적으로 프론티어의 책임이라고 볼 수는 없었으나, 높으신 분들께선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다른 평범한 누구도 아닌 제국의 주적, 마족의 잠입이었던 까닭이다. 본부는 자신들의 책임을 뼈저리게 통감하고, 사건의 규모를 축소시켜 공표하는 대신 프론티어의 보안을 한층 더 강화하고자 했다.
이를 기점으로 신임 프론티어 교수를 선출할 때 더욱 신중에 신중을 가할 것,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로 프론티어 교수진들 전원에게 있어 엘레나 크라이모어와의 독대 면담이 예정되는 등, 프론티어 내외로 적잖은 여파가 퍼져 나갔다.
사건 자체는 그리 종결되었지만.
규모가 규모였던 만큼 소문이 퍼지는 속도 역시 빨랐다. 제 4학구에서 벌어진 에픽 클래스 교수의 자행적 테러. 거기에 직접적으로 휘말려 의식 불명이 된 에픽 클래스 학생 한 명.
무엇보다, 그날 그 자리에 출현했던 엘레나 크라이모어와, 지금 의식 불명이 된 학생이 건물 주변 한복판에서 벌였던 기묘한 행각까지……
수많은 프론티어 학생들의 입소문을 타고 흐른 그것은, 당연하게도 에픽 클래스 학생들의 귓가에도 들어갔다.
#13
초감각특론 강의가 중도 폐강되었다.
개강 일주일만의 일이었다.
수강생들은 정정기간에 다시 재신청을 해야겠지만, 프론티어 측에서 신임할 수 있을 만한 교수를 붙여 초감각특론 강의를 재개하겠다고 공표했기에, 일단 수강생 대부분이 잠자코 지켜보는 쪽이었다.
그렇게 되돌아온 월요일.
“무슨 일이래? 갑자기 소집하고.”
“몰라. 뭐 따로 공지할 게 있다는데.”
에픽 클래스 1학년 신입생들은, 하루 일과가 전부 끝난 저녁 시간 즈음에 케테르관 1학년 종합강의실로 모였다.
“아 다들 모였나? 공지한 시간은 다 됐으니까 만약 지각한 녀석이 있다면 너희가 알아서 전달해주도록 하고.”
여전히 제대로 넘길 생각은 꿈에도 없는지 삐뚤빼뚤한 올백머리의 타일러 르베귄이 신입생들을 쭉 둘러보았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번 주 토요일 밤에 제 4학구에서 꽤 큰일이 벌어졌었다.”
타일러는 잠시 손가락으로 단상 위를 두드렸다.
“듣기만 해도 무서운 테러, 그리고 화재. 도대체 어떤 간 큰 녀석이 프론티어에서 그 지랄을 했는가 싶었더니, 이번에 새로 들어온 나디엘리 할렌니아 석좌교수가 범인이랜다. 여기 몇 명 듣는 걸로 아는데…… 내가 상관할 건 아니겠지.”
타일러가 말을 잇는다.
“아무튼 그 자리에 있었던 너희들 친구 한 명이 현재 의식 불명이다. 에지오 크라닐… 맞나? 하튼 지금 이 자리에 없는 놈 말야. 어찌 잘 치료하긴 했는지 생명에 지장은 없다곤 하는데, 아직 의식을 되찾진 못한 모양이니까 혹시라도 병문안 갈 사람들은 여기 종이에 놔둔 위치 보고 알아서 찾아가도록.”
타일러의 말에 주변을 돌아보는 학생이 몇 있었다. 그의 말처럼 이 자리에 모인 신입생은 한 명이 빠져 14명뿐이었다.
“너희도 당분간 어디 쏘다니지 말고 여기 틀어박혀 있어라. 괜히 또 이번처럼 어디 휘말렸다간 너희뿐만 아니라 나도 피곤해진다고. …제길, 오랜만에 잠 좀 자나 싶었더니 갑자기 소집 명령이 내려지는 게 뭐냐, 대체……”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숨과 함께 중얼거리던 타일러가, 신입생들에게 할 얘기를 다 마쳤는지 마지막으로 한마디 내뱉는다.
“공지사항은 여기서 끝이다. 이상.”
드르륵.
그러고는 문 밖을 빠르게 나섰다.
널찍한 강의실에 남겨진 1학년 학생들은 잠시 멀뚱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 자체에 관심은 있었지만 피해자에겐 별 관심이 없었던 남학생들 몇이 무리를 지어 강의실 밖으로 향했다.
가브리엘은 이미 에지오의 상태에 대해 알고 있었던 모양인지 꽤나 침착해 보였다. 그러더니 옆자리의 알드리에를 향해 무언가를 속닥인다. 다만 알드리에는 가브리엘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말을 듣기만 하는 듯했다.
그런 학생들 사이로.
“……소문이, 사실이었네.”
강의실의 뒷자리.
주변으로부터 드문드문 들려오던 에지오 크라닐에 대한 소문이 전부 거짓 아닌 사실이라는 듯, 타일러의 선고 같은 알림을 듣고선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던 유리가 그리 중얼거렸다.
토요일 하루야 그렇다 치고. 일요일 역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에지오는 정말로 그 사건에 정면으로 휘말려버린 것이었다.
월요일 아침까지는 아무것도 확정난 게 없어 소문을 사실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하지만 이렇듯 어디 가서 한 대 맞고 오는 것도 모자라 의식 불명까지 되어버린 상황을 타일러가 친히 설명해주자, 유리는 무언가 혼란스러워진 상태로 옆자리를 조심스레 돌아보았다.
“……괜찮아, 루비아?”
“……”
안 괜찮아 보이긴 한다.
돌아본 그곳엔 아까부터 입을 살짝 벌리고만 있는 루비아가 있었다. 지금 모습만 봐서는 입에 벌레가 들어가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았다.
아무렴 일요일 낮부터 에지오의 걱정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던 루비아다.
에지오와 그간 친하게 지내던 가브리엘조차 어디 갔는지 모르겠단 대답을 내놓았으니, 루비아는 그쯤에서 에지오에게 정말 큰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며 유리의 옆에서 발을 동동 굴렀던 것이었다.
……그랬던 루비아의 현재 심정이 어떨지, 유리는 감히 예측하지 못했다.
너무 호들갑 떠는 게 아닌가 싶어 별일 없을 거라며 루비아를 다독여주긴 했었는데, 막상 일이 이렇게 되자 뭘 어떻게 말해줘야 좋을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작 유리 본인의 마음속도 생각보다 그리 차분한 상태가 아니었음에.
‘…이게 뭔 일이야, 대체.’
모르겠다. 걱정, 걱정인가. 그것보다는 어디 한 군데 다쳐서 돌아오면 좋겠다, 같은 생각을 장난으로라도 했던 탓일까. 그랬기에 이유 모를 죄책감이 드는 것일까. 유리가 한층 쭈글해진 자세로 손가락을 맞대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루비아의 옆자리에 앉았던 스텔라 역시 가만 앉은 채로 눈을 깜빡이고만 있었다.
“……에지오 씨가…? 아?”
그리고는.
'아' 라든지 '응?' 이라든지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살짝살짝 양옆으로 기울이는 것이었다.
일단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제각기 심각한 얼굴이 된 삼인방의 뒷자리.
“……”
원래라면 강의실의 맨 뒤에서 시끄럽게 쫑알거리고 있었어야 할 사샤 엘네가, 오늘따라 얌전해진 상태로 조신하게 앉아 있었다.
하늘빛의 로우 트윈테일을 손으로 매만지며 힐긋 옆을 향해 시선을 돌려본다.
이젠 정말 사샤의 존재조차 신경을 쓰지 않는 건지, 옆자리에 앉는다 해서 귀찮다는 표정마저 짓지 않는 뮤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사샤는 아직도 그때의 일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위험한 곳으로 향하려 하길래 뮤의 팔을 붙잡았던 순간, 자신을 향했던 그 싸늘한 눈빛과 겨울서리처럼 냉철한 목소리.
조금이라도 뮤의 신경을 그 이상으로 거슬리게 했다면 정말로 사샤 자신을 사/샤로 만들어 버렸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드르륵.
“힉!”
그러던 와중 뮤가 의자를 끌고 일어선 탓에, 옆에 있던 사샤는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아 밸런스를 유지하곤, 등을 돌려 강의실을 나서려는 뮤한테 조심히 말을 걸어본다.
“그, 그게. 있잖아! 사샤가, 그때 미안했……”
사샤의 사과는 듣지도 않은 채로.
아니, 들리기는 하는 건지 의문이었지만.
토요일 밤부터 머릿속에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들어 있지 않았던 뮤는,강의실의 계단을 뚜벅거리며 타고 내려가 곧바로 문을 열어 나섰다.
#14
다음 날, 화요일.
오전 11시 검술 강의에 두 명의 학생이 결석했다.
뮤와 에지오 크라닐이었다.
다만, 에지오 크라닐의 경우 특례로 결석 중에도 출석이 인정되었으나, 뮤의 경우는 아니었다. 구태여 다른 사유를 제출할 필요 따위 느끼지도 못한 건지 아무 말도 없이 결석해버린 것이었다.
검술 강의뿐만 아니라 그날 있었던 모든 강의에 뮤는 한순간도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다.
엘레나는 떠나기 전 뮤에게 수업을 성실히 들을 것을 권했으나, 당연하게도 뮤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정확히는 들을 수 없었다. 애당초 수업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수업을 들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게 분명한 까닭에, 차라리 에지오가 있는 병실에서 하루종일 그가 깨어나길 기원하며 옆을 간호하는 편이 더 낫다고, 뮤는 그리 판단했다.
“…나 왔어, 에지오.”
화요일 저녁.
제 2학구 에픽 클래스 기숙사 부지 주변에 위치한 에지오 크라닐의 개인 병실.
황실 직속 재단이 후원하는 의료원 VIP실의 문을 열고 들어선 뮤는,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로 손잡이를 천천히 밀어 문을 닫은 뒤 앞을 향해 시선을 두었다.
새하얀 침대 위에 얇은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에지오가 그곳에 있었다.
환기를 위해 조금 열어두었던 창문 틈새로 미약한 바람이 들어온다.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는 에지오의 앞머리를 바람결이 부드럽게 쓸었다.
병실 내부는 잠잠하디 고요했다. 탁상 위에는 뮤가 가져온 화분이 놓여 있었다. 은은한 꽃향기가 넓은 병실 내부에 감돌았다.
타박거리며 걸음을 옮겨 에지오가 누워 있는 침상 앞 의자에 착석한 뮤는, 벌써 3일째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에지오의 얼굴을 차분히 내려다보았다.
겉보기엔 그냥 고요히 잠든 것만 같았다. 다만, 조금 길고 오랜 잠을 자고 있을 뿐이다.
엘레나의 말처럼 몸은 회복했지만 정신을 차리기엔 아직도 멀기만 한 듯했다.
어쩌면 이대로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여느 때처럼 또 눈물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왜 에지오에게만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걸까.
…그날도 그랬다.
에지오는 정체불명의 사건에 휘말려 죽음에 가까운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버젓이 살아서…… 지금의 모습이 되어, 자신과 같은 클래스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건지, 뮤는 아직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제부터 차차 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려던 찰나에 또 이런 사건이 벌어진 것이었다. 에지오는 뮤의 눈앞에서 두 번씩이나 만신창이가 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끔찍한 일이었다.
에지오의 옆을 간호하다 깜빡 잠에 들기라도 하면 그때의 충격적인 광경이 자꾸만 꿈에 나타나 잠을 설치는 바람에, 뮤의 눈가는 살짝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심한 상처들은 대부분 치료하긴 했으나, 군데군데 미처 지우지 못한 잔흉터가 진 에지오의 손을 살포시 잡아 무언가를 추억하듯 느릿하게 쓰다듬는다.
처음으로 잡았던 에지오의 손은 이렇게 크지 않았었다. 서로 깍지를 끼면 적당한 크기로 알맞았을 텐데, 이제는 자신의 작은 손등이 에지오의 손가락으로 덮여버릴지도 몰랐다.
에지오는 많이 변했다. 그랬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겼어. 뮤.’
아니었다. 변하지 않았다.
그때 뮤를 향해 보여주었던 부드러운 웃음은, 결 하나 다르지 않고 분명한, 틀림없는 선배의 사랑스러운 미소였다……
그 시절의 선배를 생각하자 헤아릴 수 없을 소중한 추억들이 위로 올라왔다가, 재차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의식을 잃은 에지오의 손을 매만지고 있어서인지 감정의 격류가 한층 더 거세졌다.
‘…이러면 안 돼.’
하지만, 여기서 또 울음을 터트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많이 울었다. 에지오가 다시 깨어났을 때, 뮤 자신은 웃음으로 맞이해주기로 다짐했었다.
가시로 콕콕 찌르는 듯 아릿한 마음에 잠시 고개를 떨구던 뮤의 머릿속으로, 일요일 새벽에 들었던 엘레나의 목소리가 불현듯 떠올랐다.
— 아마, 당분간 예전 같지는 않을 거다.
“……”
…그건 무슨 말씀이었을까.
예전 같지 않을 거라니. 뭘 말하는지 몰라도 그런 추억 같은 건 싹 다 잊어버렸을 거라니.
만약 그게 에지오와 뮤 자신 사이에 쌓였던 모든 인연과 추억을 통틀어 일컫는 거라면, 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참혹한 기분을 느끼게 될 것만 같았다.
아냐, 확실한 건 아직 아무것도 없다. 자세한 상태는 깨어나봐야 알 거라고 했다. 그러니 지금은 오로지 에지오의 완전한 회복에만 집중한다.
미처 흐르지 못해 고여 있던 눈물을 손가락으로 슥슥 문지르던 뮤가, 화분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의자에서 막 일어선 참이었다.
——드르륵.
닫혀 있던 병실의 문이 열렸다.
“설마 VIP실에 있을 줄은 몰랐네. 에픽 클래스라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은……?”
뮤는 그곳을 돌아보았고.
꽃다발을 품에 안고 나타난 유리와 눈이 마주쳤다.
다만, 잠깐 유리에게 머무르던 뮤의 눈빛이 곧 유리 옆의 누군가를 향했다.
곧 그들은 병실 한가운데서 시선을 교차했다.
“……어, 음. 얘들아?”
뮤와 루비아가 말없이 서로를 가만 바라보는 가운데, 그 사이에 낀 유리가 눈을 깜빡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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