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우연한 인연 (1)
* * *
#1
트램에서 내려 기숙사로 돌아왔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쯤 복귀해서 그런지, 바깥에 사람이 꽤 북적거렸다. 한낮의 점심 시간이었다.
물론 말이 북적거린다는 거지, 전교생이 백 명도 채 되지 않는지라 그리 난잡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마냥 점심 시간이라 사람이 많이들 돌아다니는 건 아닌 듯했다.
기본적으로 가슴팍에 별 세 개와 네 개 정도 달고 다니는 선배들이, 공원 곳곳에 팜플렛을 들고서 주로 나와 같은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뭔가 홍보하고 있었다.
어떤 선배들은 괴상한 컨셉까지 잡고 홍보 활동을 벌이더라. 퍼포먼스가 워낙 화려해서 눈길이 절로 가긴 했다.
아무튼.
무엇인가 하면, 서클 홍보 활동이었다.
그렇다. 서클(Circles).
훈련 등 개개인의 스펙을 쌓기 위해, 혹은 특별한 취미를 여럿이서 건전하게 즐기기 위해, 아니면 단순히 친목을 교류하며 느슨한 향유를 보내기 위해…… 목적이 뭐든 간에 학생 여럿이 모여 결국 청춘의 한철을 구가하게 되는 활동이 서클 내에서 이루어진다.
입학 이후 1주차 동안 간간이 보인다 싶더니, 내가 병실에 입원해 있던 3일이 지나 2주차에 들어서자 절정기를 맞이한 모양이다.
아직은 별 생각이 없어 불필요한 권유를 피하고자 공원을 빙 둘러 갔는데, 멀리서 나를 발견한 선배들 몇이 곧바로 뛰어와 팜플렛을 냅다 건넸다. 게다가 대부분 나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저번 사건의 영향이 적잖게 크긴 컸나 보다.
그런 식의 권유가 은근 많았다.
기숙사에 들어오기까지 세 번 정도.
생각은 해보겠다며 팜플렛을 받아오긴 했는데, 그냥저냥 무미건조한 마음이었다.
차라리 관심 있는 분야였으면 몰라도, 패션이니 보드게임이니 마술이니 하는 것들이었는지라 그닥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타박, 타박.
오후에 마법 전공 수업이 있었다.
그전에 일단 밥이라도 먹을 생각으로 기숙사 로비에 들어섰는데, 그곳에 있던 누군가가 나를 보고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오! 에지오 이 새끼, 오랜만이다?”
녹색 머리의 실눈 근육남. 가브리엘이었다.
“여, 오랜만.”
“예아.”
인사를 나눌 요령으로 나와 주먹을 가볍게 맞댄 뒤 가브리엘이 묻는다.
“소문 다 났다. 뒤질 뻔했다며? 좀 괜찮냐?”
“머리 아픈 거 빼고는 멀쩡해. 거기 의원 말로는 전보다 더 건강해졌다는데, 나도 잘 모르겠다.”
“…뭐? 진짜? 그게 말이 돼? 이게 뭐,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그거냐?”
“나야 모르지. 그쪽이 그렇게 말하는데 어쩌겠어. 일단 무리없이 움직일 수 있는 건 맞는 거 같다.”
“허어…… 신기하네. 확실히 뭐가 달라진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턱을 쓰다듬으며 상처 하나 없는 내 얼굴을 관찰하던 가브리엘은, 고개를 끄덕이곤 기숙사 문밖을 향해 엄지를 세웠다.
“안 뒤졌으면 됐다. 밥 아직 안 먹었지?”
“어.”
그것으로 의사소통이 끝났다.
먹으러 가자는 말도 없이 우리는 문을 나섰다.
#2
수요일 하루의 일과가 모두 끝났다.
기숙사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뉘인 채로, 오늘 진행되었던 마법 전공 수업의 노트를 정리했다.
‘하루 빠진 게 이렇게 크네...’
월요일과 수요일, 그리고 금요일에 강의가 있었던 까닭에 하루 정도 진도가 늦춰진 셈이었다.
고작 한 시간 분량이었지만 프론티어—— 특히나 에픽 클래스의 강의 수준은 우습게 볼 만한 것이 아니었다.
로르센 아카데미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되었다. 그야말로 애교 수준이나 다름이 없었지. 물론 나는 마법부가 아닌 통합학부였으니 자세한 커리큘럼의 차이까진 알 수 없었으나, 일단 강의를 듣는 학생들 중 나만이 고생하는 건 아닌 듯했다.
핵심적인 수업 내용을 이해하면서 필기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당일 배운 마학 이론을 그 자리에서 직접 구현해보라 지시한다.
그렇게 성공하는가 싶으면 가르쳐주지도 않은 이론의 심화 과정을 제시하며, 방금 배웠던 이론을 응용해보라 말하는 것이었다.
내 경우에는 1단계만 간신히 통과했다. 조금 불완전하긴 했지만 결과물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엔 성공했으니 나름 뿌듯했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눈을 감기만 하면 곧바로 무아(無?)에 빠질 수 있을 만큼의 말도 안 되는 집중력과, 이미 4위계 수준 따위는 아득히 벗어났을 정도의 높은 마나 감응력을 요구하는 2단계.
그 갑작스러웠던 테스트를 깔끔히 통과한 학생은 스텔라와 루비아뿐이었다.
“……”
스텔라와 루비아, 라고 하니까.
오늘 수업 끝물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루비아.’
‘……응? 응?’
‘뭐야. 왜 그렇게 놀라?’
‘아, 아냐. 무슨 일이야?’
수업의 마침표가 찍어지기 5분 전쯤.
스텔라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루비아의 곁으로 살금살금 이동해서, 그녀의 귓가에 대고 음량을 낮춘 채 물었다.
‘미안한데, 혹시 월요일 날 강의 뭐 했는지 좀 알려줄 수 있을까? 내가 그때 수업을 못 들었어서……’
왠지 당황한 듯 보였던 루비아는 내가 아닌 다른 어딘가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다가,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볼을 긁적였다.
‘아, 아아…… 그게, 있지. …미안해. 나도 그때 필기를 못 했거든. 수업에 집중이 안 되어가지구, 기억 나는 것도 별로 없어…… 미안……’
놀랍도록 별일이었다.
그 성실한 루비아가 수업 진도를 놓치다니.
왜 그랬는지 물어보기도 전에 교수가 강의 종료를 알렸고, 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짐을 챙겨 강의실을 나서려 했다.
‘제, 제가 알려드릴… 까요?’
‘……어?’
스텔라였다.
우리 얘기를 듣고 있었던 건지,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린 채 귀밑머리를 살며시 쓸어넘기고 있었다.
‘저, 저는 해놓은 게… 있어서…’
‘노트 필기?’
‘네, 네에…’
나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주면 고맙지. 그럼 한 시간 정도만 빌려가도 될까? 금방 따라 적고 돌려줄게. 스텔라 너도 써야할 테니까.’
‘……’
내 말을 듣던 스텔라가 입을 다물더니.
끝이 휘어진 백은발을 손으로 매만지며 말했다.
‘아, 아뇨. 이건… 단순 요약만, 해놓은 거라…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응?’
스텔라가 머리를 더욱 푹 숙였다.
‘도서관 같은 데서, 제가 따로… 알려드릴게요… 에, 에지오 씨만 괜찮으시다면……’
갈수록 목소리가 개미처럼 기어 들어갔던 탓에 잘 들리지 않았으나, 대충 뭔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말인즉.
일대일 과외를 해주겠다는 얘기였다.
하긴, 스텔라 정도면 정리를 잘해놨을 것이 분명할 테지만 그냥 보면서 스스로 이해하는 것과 남이 쉽고 간단히 설명해주는 것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물론 스텔라가 날 가르쳐줄 선생으로서 적합하냐는 질문에는 살짝 애매한 입장이었다.
일단 날 보기만 하면 자연스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는 고개와, 내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면서 수줍게 얼굴만 붉히고 있는 모양새가 가장 큰 문제라고 해야 할까……
매번 그런 상태였다 보니 거기서 스텔라가 먼저 나한테 대담히 권유해 올 줄은 몰랐기에, 꽤나 새삼스러운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이를 계기로 스텔라와도 친해질 수 있다면 하등 나쁠 게 없었다.
‘당연히 괜찮지. 스텔라 너야말로 괜찮겠어? 일정이 있는데 내가 괜히 방해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
‘그, 그런 거… 하나도, 없어요.’
대번에 내 말을 끊은 스텔라가 중얼거렸다.
‘…만약 있어도… 신경 안 써요…’
‘응? 뭐라고?’
‘…아, 아무것도… 아녜요오.’
스텔라는 그쯤 거의 조신하게 모은 자신의 허벅지만 줄창 내려다보고 있는 채였다. 벼가 익듯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럼, 이따 저녁 먹고 도서관에서 만날까? …아닌가? 설명해주려면 좀 떠들어도 괜찮은 곳을 가야 하나?’
도서관은 기본적으로 정숙이었다. 우리만 이용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개인 전용 독서칸이 따로 있긴 해도 거긴 말 그대로 개인 전용이다. 두 명이서 그 좁은 공간에 들어가긴 좀 그렇잖은가. 여러모로 불편하기도 할 테고.
그렇게 스텔라와 한참 대화를 하다가.
나와 스텔라 중간에 있던 루비아를 문득 보았다.
가만 앉아서 우리들의 대화를 듣기만 하던 루비아. 일어날 타이밍을 잡지 못한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뭔가 말하고 싶은 눈치였다. 입술이 살짝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루비아도 나처럼 월요일 필기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렸다.
아무래도 같이 듣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야 뭐, 루비아를 가급적 평범한 친구처럼 대하려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까진 조금의 어색함이 남아 있긴 하다. 루비아도 마냥 나를 편하게 여기지는 못하는 듯하고.
그렇기에 앞으로 차차 관계를 회복해 나가면 될 일이다.
…나의 가장 친했던 친구로서.
여하튼.
그거야 그런데, 자기도 함께하고 싶다고 말하면 되는 일 아닐까. 왜 그렇게 우물쭈물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발적인 의사표현을 그다지 어려워 하는 애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스텔라도 묘한 낌새를 눈치챈 건지, 루비아 쪽을 힐긋거리고 있었다. 결국 보다 못해 내 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려던 순간.
—덜컹.
‘나, 나는 이만 가볼게…… 또 보자, 얘들아.’
조금 인위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가방의 손잡이를 두 손에 쥐어잡은 뒤 그렇게 강의실을 떠나갔던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싶지만.
지금까지의 기억을 살펴봤을 때, 내가 불편해서 라는 해답이 가장 정확한 것 같았다.
아무렴 밤의 산책로에서 있었던 일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를 끌어안고 펑펑 눈물을 흘렸던가. 그런 일이 있던 지 이제야 겨우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뿐이었다.
루비아 입장에선 그때와 달리 이상하게 살가워진 내 태도가 불편할 만도 하지 않을까, 싶긴 하다.
……아무튼, 그렇게.
스텔라와는 오늘 저녁 8시쯤 약속을 잡았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두 시간쯤 뒤였다.
도서관은 상기했던 이유로 만남의 장소에서 배제되었고, 그 이후 대략 5분 정도 떠들면서 협의를 진행했다.
이런저런 사유를 고려하여 장소를 선정한 결과——
우리는 스텔라의 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밥 먹고 여자 기숙사로 가야 한다.
“……”
음.
…왜 이렇게 됐더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