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날 차버린 소꿉친구와 전 여친이 같은 반이라 곤란하다-59화 (59/201)

〈 59화 〉 같은 길, 다른 꿈 (3)

* * *

#5

“일어나, 루비아. 도착했어.”

“……흐아?”

에픽 클래스 기숙사 정거장에 도착하기 직전, 눈을 감고 연신 꾸벅거리고 있던 루비아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비몽사몽한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루비아는, 곧 흐읍­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리려는 듯 자기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아, 아. 미안해. 깜빡 잠들었네…”

가방을 챙겨 일어나려 한다. 나는 천장에 매달려 내려온 손잡이를 붙들고 있었는데, 쪽잠을 자서 그런지 전혀 개운하지 않고 더 피곤해 보이는 인상의 루비아가 좌석에서 엉덩이를 뗀 순간.

“…꺄앗!”

때마침 정거장에 들어서던 트램이 급격하게 속도를 늦추었고, 그 반동에 루비아의 몸이 쏠려 옆으로 크게 비틀거렸다.

—탁.

그대로 볼썽사납게 넘어지며 가방 안의 내용물이 쏟아진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바로 앞에서 루비아를 내려다보고 있던 내가 재빠르게 움직여 그녀의 옆구리를 팔로 감싸 안았다.

“조심해.”

“——!”

깃털처럼 가벼운 몸. 갈비뼈의 아래 부분이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잘록한 허리였다. 잘 익은 복숭아처럼 달달한 향이 풍긴다.

“……고, 고마워. 에지오.”

어딘가 상기된 목소리. 귓불도 붉어졌다.

루비아의 비스듬한 몸을 일으켜 세워주자 심히쭈뼛거리며 가방을 두 손에 붙들곤, 고개를 푹 숙이며 문 앞으로 걸어간다.

나 역시 루비아를 뒤따라 그 옆에 섰다.

—치이이익……

트램 문이 열리고, 우리는 함께 내렸다.

하얀 타일이 깔린 정거장 바닥 위에 발을 내딛으며 루비아를 향해 슬쩍 말을 걸어본다.

“루비아.”

“……으,응?”

“아까 내가 한 말 기억하지? 무리하지 말라는 거. 내가 할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는데, 잠은 제때 자는 게 좋아.”

잠시간의 텀을 두고 루비아의 대답이 들려왔다.

“…괜찮아. 아직, 멀쩡해.”

이건 되도 않는 허세도 아니다. 그냥 루비아의 둥근 성격상 본능적인 반응인 거다.

전혀 안 괜찮아 보이고, 매우 피곤해 보인다.

저런 상태에서 조별과제의 리더 역할까지 맡게 되면 여러모로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텐데. 루비아가 속한 조원들의 수질이 어떤지 내가 자세히 아는 것도 아니고.

…정말 조만간 날을 잡아야 하나.

루비아와 긴밀히 얘기할 필요성이 생겼다. 조별과제 건 말고도, 요즘 루비아는 예전과 비교해 확실히, 아니, 아주 많이 달라졌다. 거기엔 내 영향이 적잖게 들어가 있을 터다.

루비아뿐만 아니라 뮤도 문제다.

스텔라는 또 어떠한가.

하물며 프론티어에서의 무난한 일상을 영위하려면 다른 남자 학생들, 그러니까 헥토르나 알드리에 같은 친구들이랑도 안면을 좀 터놔야 하는데.

졸업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뭐 이리도 많은지. 온전히 공부와 훈련에만 매진할 생각이었는데, 이게 잘 안 되네. 정말 혼돈의 학교 생활이었다.

타박, 타박.

루비아의 허세 아닌 허세를 끝으로 대화가 끊긴 우리는, 기숙사의 안쪽 공원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나는 이제 오후에 있을 검술 수업 시간까지 대기하며 밥이나 먹을까 했는데, 루비아는 따로 일정이 있는 걸까. 없으면 그냥 기숙사 들어가서 쉬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던 어느 순간에.

“어.”

“…아. 에지오… 씨.”

잘 조경된 공원의 한켠에서 쪼그려 앉아 화원을 관찰하던 듯 보이던 스텔라와 마주쳤다.

그때, 나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 같던 루비아가 순간적으로 이쪽을 돌아본다. 스텔라를 발견하곤 반가운 듯 이곳을…… 어라, 왜 가만 서 있지?

아무렴 상관없나. 내가 먼저 물었다.

“여기서 뭐 해?”

저번 기숙사에서의 일이 떠올랐으나, 내색하지 않는다. 스텔라는 주변의 눈을 의식한 듯이 언제나처럼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대답한다.

“꽃… 보고 있었, 어요.”

“…어, 그렇구나.”

아닌가.

진짜로 부끄러워서 이러는 건가.

예전의 알프렌이 비록 자연을 사랑하긴 했지만.

길을 가다 예쁜 꽃을 보면 줄기를 비틀어 꺾고, 여기 있는 꽃 같은 걸 관찰하기보단 개미굴을 파괴하길 즐기던 호전적인 성향의 소유자였는데.

스텔라의 양아버님께서는 자기 수양딸에게 대체 어떤 교육을 시키셨길래, 사람의 근간마저 바꿔버린 것인가. 아니면 그냥 단순히 커가면서 자신의 여성성을 비로소 깨닫고 조신해진 건가.

괴리감이 상당해서 살짝 신기한 기분이지만.

뭐 어때. 안 어울리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알프렌이 아닌 스텔라가 이러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저 한 폭의 그림 같다.

다만 꽃구경을 들킨 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듯 슬슬 내 시선을 피하던 스텔라를 향해 물었다.

“스텔라. 너 이따 나랑 검술 같이 듣지?”

“네…? 네.”

“밥 먹었어?”

“……아직?”

“그럼 같이 먹을 사람은?”

“어……”

쪼그려 앉아 있던 스텔라의 백은빛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가, 내 어깨 너머를 향한다.

저 뒤에 멈춰 서 있던 루비아. 아무 말도 없이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루비아…? 거기서 뭐 하세요……?”

고개를 갸웃한 스텔라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에 루비아는 정신을 차린 듯 몸을 움찔거렸지만, 여전히 우리 쪽으로 다가올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스텔라가 연이어 묻는다.

“혹시 밥 아직 안 드셨으면, 저희랑 같이……”

루비아가 도리질을 한다.

“나, 나는 조금 쉬어야 할 거 같아서. 먼저 기숙사에 들어가 볼게, 얘들아. 오늘은… 너희끼리 먹어.”

볼을 긁적이며 웃던 루비아가 황급히 등을 돌린다. 직후 2동 기숙사를 향해 빠른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

“……?”

나는 침묵했고, 스텔라는 의문을 표했다.

뭐…

쉰다면 어쩔 수 없지.

그 편이 컨디션 관리에는 더 좋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유리는?”

“응? 유리?”

탁탁, 새하얀 허벅지 위를 털면서 일어난 스텔라가 짧게 반문했다.

그나저나 루비아가 떠나고 주변에 아무도 없다 보니, 스텔라는 나한테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은근 철저하네, 얘.

“너네 항상 같이 먹었잖아.”

루비아, 스텔라, 유리. 이렇게 셋은 시간만 맞으면 언제나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했다.

“아… 유리는 아직 교양 수업 중일걸……? 돌아오려면 한 시간은 더 있어야 할 텐데. …기다릴까?”

“원래는 어떻게 했는데?”

“음… 루비아랑 얘기하면서 기다렸지.”

흐으흠­.

한 시간인가. 너무 긴데.

어쩔 수 없지.

혼자서 밥 먹는 삶…… 의외로 편하단다, 유리. 너도 곧 깨닫게 될 거야.

“아냐, 나 배고프다. 그냥 우리끼리 먹자.”

“응.”

스텔라는 군말없이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그래도 친구 사이의 의리가 있지 유리를 기다리자고 말할 줄 알았는데, 꽤 의외였다.

이제 겨우 일주일 만난 친구보단 과거에 석 달 인연을 쌓았던 내 쪽의 말이 더 영향력 있다 이건가.

친구를 빼앗는 느낌이라 왠지 미안해졌다.

……그러고 보니.

요즘 가브리엘이랑 밥을 먹은 기억이 별로 없네.

가끔 보기론 알드리에인지 하는 그 친구랑 좀 친해지려 하고 있는 것 같긴 하던데. 한참 멀리서 보면 그냥 가브리엘 혼자 이야기를 떠벌리고, 알드리에는 가만 서서 듣기만 하는 듯했다.

무얼, 워낙 붙임성 좋은 녀석이니 알아서 잘 친해지겠지. 그렇게 친해져서 나한테도 소개시켜주면 될 일이다.

그나저나.

슬슬 같은 반 남학생 애들이랑도 친해져야 하는데…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건 그 삼인방이었다.

하티 유레시안, 자스칼 폰 매그나스, 그리고 이번에 나와 같은 조가 된 헥토르 드 알칸트라.

‘……잘 되겠지.’

헥토르야 차치하고서라도.

유스필 데리아. 걔가 제일 큰 문제다.

조별과제를 생각하니 머리가 또 아파 왔지만.

그래도,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과제 수행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빌런 녀석들은……내 나름의 방식을 통해 깔끔히 처리를 할 생각이었으니까.

#6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머리를 감추기 시작하고, 땅거미가 느릿하게 걸어오기 시작하는 이른 저녁.

‘봐주는 게 하나도 없냐. 도대체…’

지난 1주일 간 이루어진 실력의 변화를 확인하겠다며 갑작스레 아벨과 모의 대련을 치렀던 탓에, 화끈거리는 손목과 팔목, 종아리 등을 주무르고 있던 내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저, 저 왔어요­. 헤엑, 헥.”

제 3학구 오르도 클래스 정거장.

조원들과 약속했던 오후 7시가 다 되어가는 와중, 적갈색 유니폼 복장의 레니가 정거장 뒤편으로부터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레니는 여기에 살았다. 그러니까, 제 3학구 오르도 클래스가 바로 레니의 클래스였다. 그런 주제에 가장 늦을 뻔하다니. 역시 가까울수록 제일 늦게 도착한다는 말이 정론이었던가.

“수고했어, 레니. 설마 뛰어온 거야?”

“아, 네에. 걸어가면 늦을 거 같아서……”

어차피 시간 안에 도착했으니 상관없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내 주변 벤치에 각자 앉아 있는 조원들을 본다.

가장 먼저 삼십 분 일찍 도착해 미리 대기하고 있던 나와, 그다음에 트램을 타고 도착한 알프리스 폰 체블루프. 다음으로 레니였다. 그러니까 지금 모인 사람은 세 명뿐이었다.

……아냐. 아직 망한 거 아니다.

헥토르는 유감스럽게도 오늘 비는 시간이 없었다. 때문에 비는 날짜와 시간을 내 노트에 적어줬고, 우리는 여기서 짧은 회의를 마친 뒤에 헥토르와 시간을 맞춰서 모임 약속을 다시 잡을 거다.

스윽.

내 주변에 앉아 있던 알프리스가 문득 벤치로부터 몸을 일으킨다. 그리곤 내게 슬며시 다가와, 귓속말로 속삭인다.

“에지오. 다들 널 보고 있어. 너 덕분에 내가 이런 많은 관심도 받아보고, 뭔가 기분 좋은데?“

“신경 끄는 게 좋을걸. 괜히 피곤해져.”

“하핫­ 역시 이 정도쯤은 일상이라 이건가? 인기인의 삶, 부러운걸.”

“인기인은 무슨. 동물원 원숭이의 삶이지.”

단언컨대 참으로 쓸데없는 관심이었다. 내 질색한 표정에 또 다시 유쾌한 웃음을 지어 보이던 알프리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문득 정거장 벽면에 걸린 시계를 확인한다.

어느덧 7에 해당하는 곳을 가리키는 시침.

초침이 일정 주기마다 째깍이며 점점 오른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하고, 이제 막 오후 7시가 넘었음을 알렸다.

여기 있는 건 아직도 세 명이었다.

“……”

“……”

“……”

유스필이 어디 학구에 살더라. 2학구였나. 그럼 나랑 같은 학구에 사는데, 왜 나보다 한참 늦는 걸까.

아직 단언하긴 이르다. 이제야 막 7시를 넘겼을 참이다. 트램을 놓쳤다면 다음 트램을 타는 데 넉넉히 잡아 20분 정도는 늦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가만히 앉아 유스필을 기다렸다.

그동안 가방에 넣어둔 「마나통제학 I」이란 제목의 서적을 꺼내어 좌르르 펼쳐 본다. 중등부 때 어렴풋이 이런 내용의 전문 서적을 읽었던 것도 같아서,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잠시간 뒤.

“아, 안 오네요……”

레니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각자 밥을 먹지 않고 와서 그런지, 레니의 뱃속에서 아주 조용한 꼬르륵 소리가 나는 듯했다.

—탁.

그쯤에서 나는 책을 덮었다.

시계를 확인하니…7시 45분이었다.

5분이면 별거 아니었다. 10분이면 그럭저럭 참을 만하고, 20분이면 트램을 놓쳤다는 변명하에 간신히 묵인할 수 있다.

그런데 40분을 넘어서.

이제 한 시간이 다 되어가려 한다.

…분명히.

오늘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건 헥토르뿐이라 했고, 나머지 조원들은 금일 오후 7시 제 3학구 오르도 클래스 정거장에 모이는 안건에 전부 동의했다.

유스필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고.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맞은편에서 다리를 꼬고 있던 알프리스가 그런 말을 툭 내뱉었다. 본인도 배가 고픈 듯하다. 나도 슬슬 허기가 지는 중이었고.

가볍게 얘기라도 나눌 겸 식당 먼저 들렸다가 카페 같은 곳에서 천천히 회의를 전개해나갈 예정이었는데, 글쎄다.

늦게라도 도착한 유스필에게 우리를 납득시킬 만한 사정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아마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할 것이었다.

조별과제는 무엇보다 ‘약속’이란 것에 가장 민감해야 했으니까.

각자 맡기로 약속한 역할을 잘 해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중요한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땐 한 명의 실수로 모든 일이 무너져 버린다.

가장 기본의 기본인 시간 약속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그건 이미 조별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

—치이이익……

트램 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린다.

“—아, 찾았다!”

우르르 쏟아지는 학생들의 무리 속으로, 두리번거리다 우리를 발견하곤 여유로이 손을 흔드는 금발 여학생의 모습이 보인다.

“늦어서 미안해­ 다들 먼저 와 있었네?”

다다다다. 그렇게 달려오는 유스필의 모습을 눈으로 훑었다. 노골적이고 불쾌한 시선이 아니라,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 그녀의 손을 확인하고 있었다.

——가방이 없군.

나를 비롯한 레니, 알프리스는 일단 전부 가방을 챙겨왔다. 그 안에는 나와 같이 「마나통제학 I」 서적이 들어 있을 테고. 아무렴 우리가 이번에 모인 것은 그 과목의 조별과제 수행을 위해서, 였으니까. 교과서를 챙겨오는 건 기본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가방조차 없다는 말은…과제를 수행할 최소한의 의지조차 결여되어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할 것이었다.

나는 이제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정확히 58분 늦었네. 무슨 사정 있었어?”

일단 들어나 볼까.

“어? 아, 그게 사실­ 목욕하다가 그만. 너무 기분 좋아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 미안해.”

오전 강의실에서 내게 했었던 것처럼 곧바로 넙죽 허리를 숙인다. 내가 됐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벌떡 고개를 들고는, 왠지 굳어 있는 듯한 우리들의 분위기를 보면서 갸웃거린다.

“…왜들 그래? 사과했잖아. 늦어서 미안하다고. 아예 말도 없이 빠진 것도 아닌데. 내가 많이 좆같은 짓 했어? 또 사과하면 돼?”

스윽.

다시금 가볍게 머리를 숙이려는 그녀에게.

“유스필 데리아.”

오전엔 헥토르가 유스필의 이름을 불렀지만.

이번에는 나였다.

잠시 멈칫한 유스필이 재차 갸웃거린다.

“…뭐야, 왜 갑자기 목소리 깔어. 빡쳤어?”

빡치지 않았다. 몹시 화가 났을 뿐이지.

나는 차분하게 물었다.

“목욕을 언제 시작했는데?”

유스필이 곰곰이 생각하다 답한다.

“30분 전쯤…?”

“6시 30분이란 말이지?”

“아마…?”

탁, 탁.

나는 손가락으로 가방끈을 두드리며 말했다.

“…제 2학구에서 여기까지 트램 타고 오는데 최소 10분에서 최대 20분까지 걸려. 그런데 약속 시간 30분 전에 목욕을 시작했다고?”

“나도 빨리 끝내려고 했는데­”

“급한 사람이 머리까지 싹 다 말리고 와? 너 고급 생활 마법 쓸 줄 알아? 아니잖아. 보니까 신성술 전공이던데. 머리 말려주는 신성술도 있었나?”

“……”

유스필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나는 연이어 묻는다.

“가방은 또 어디다 뒀어. 교과서는.”

“급하게 나오느라 깜빡 잊었어.”

“…아니, 너 전혀 급한 사람의 그게 아니라니까? 지금 네 말이랑 행동이 매치가 된다고 생각해?”

선을 지킬 줄은 아는 년이라고 했나. 개소리 말라 그래라. 그랬으면 헥토르와 강의실에서 그 사달이 나지도 않았겠지.

유스필이 인상을 와락 구긴다.

“……야, 너까지 왜 그래? 내가 좆같으면 좆같다고 하랬지. 미안하다고 했잖아. 다음부터 안 그러면 되는 거 아냐? 꼴랑 한 시간 늦었다고 사람 너무 갈구는 거 같은데­”

원래 나였다면 적당히 넘어갔을 거다. 화는 나더라도, 정말 그녀의 말처럼 다음부터 그러지 않는다면 용서의 여지가 있었으니까.

……옛말에.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고.

고쳐 쓰는 거 아니라 했다.

“너, 그냥 돌아가라.”

“……어? 뭐?”

좁혀진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던 내가.

더없이 싸늘하게 유스필의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우리 조에 넌 필요 없으니까. 꺼지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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