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같은 길, 다른 꿈 (5)
* * *
#10
밤이 깊었기도 하고, 여기서 우리가 이러고 있는 꼴을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그거 참 부끄러운 장면이 될 것 같았다.
“하지, 말라고, 히끅, 했는데, 또, 하고…”
대체로 내가 곤란해진다.
매우 많이.
어린아이처럼 길바닥에 쪼그려 앉아 방울방울 눈물을 떨어뜨리는 유리를 내려다보면서 혼란 섞인 고민에 빠졌다.
유리 같은 감수성 풍부한 여자애가 울고 있을 때 효과적으로 달랠 수 있는 방법 따위, 나는 모른다.
여태 그런 걸 배워본 적이 있어야지. 하다 못해 비슷한 경험이라도 있던가……
…경험. 경험이라.
오래전 얘기였지만.
어렸을 적 루비아는 툭하면 울곤 했었다.
물론 유리랑은 조금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는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였으나, 어찌 되었건 내 앞에서 울음을 보인 적이 정말로 많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그럴 때마다 나는 어떻게 했더라.
어떻게 했긴. 옆에서 같이 울었지.
…역시 어린애들이었다.
도움이 안 되네.
그렇다고 맨날 같이 울기만 한 건 당연히 아니었다. 어쩔 땐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루비아의 울음을 뚝 그치게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런데 그 방법들은 지금 이 상황에서 못 써먹는다. 유리가 울음을 터트리게 된 원인이 온전히 나한테 있었던 까닭이다.
결국 한숨을 삼키며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다리까지 굽혀서, 눈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있는 유리의 앞에 마주 앉았다.
“히끅, 흑, 히윽……”
연약하디 미약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간헐적으로 떨리는 작은 어깨. 그 위를 보듬어주고 싶어도 현재 유리는 철저히 나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유리의 앞에 앉아서, 맞지 않는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머리를 좀 더 아래로 내렸다. 주변에 누가 오나 안 오나 힐긋 보면서도 차분하게 기다림을 계속했다.
지금 유리에게 필요한 건 진정이었다.
아무래도 꽤 많이 놀라고 부끄러웠던 것 같은데, 이렇게 울음을 한바탕 터트리고 나면 머리끝까지 치달았던 격한 감정이 한순간에 식어 버려, 종래에는 조금이나마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해지게 된다.
그래도 말이지.
동갑이라곤 해도 나한테는 정말 최소 두 살 아래의 여동생처럼 보이기만 했던 까닭에, 항상 도도한 자존감으로 가득 찼던 유리가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목 놓고 우는 모습을 보자 왠지 두 배 세 배로 미안해졌다.
이 뒤로 얘가 해달라는 건 다 해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객관적인 상황만 따지고 보면 정작 내가 치를 죗값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서도……
얼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상처 입은 동물처럼 불쌍하도록 파르르 떨리던 유리의 어깨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확연하게 그 떨림이 잦아들었다.
말없이 품속에서 새로운 손수건을 꺼내어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내 바로 앞에서 울고 있던 유리의 눈가에 더 이상 물방울이 차오르지 않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좀, 괜찮아?”
“……”
운동 등으로 인해 달아올랐을 몸의 열이 유리의 얼굴을 불그스름하게 물들인 채였다. 차가운 밤공기도 그에 한몫 했으리라.
조막만한 얼굴로부터 실선으로 이어진 눈물 자국. 매끈한 턱 아래서 뚝뚝 방울져 떨어지던 눈물은 그 아래 길바닥에 보다 짙은 색의 작은 점들을 남겼다.
가까스로 울음은 그쳤지만 아직도 기분은 풀리지 않은 듯, 연한 딸꾹질과 함께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유리. 바로 앞에서 조용히 자길 지켜보고 있는 나한테는 시선 하나 주려 하지 않는다.
그쯤 나는 유리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아무 반응도 없길래 나지막이 입을 연다.
“깨끗해. 새 거야.”
“……”
가만 손을 내밀고 있는데, 받으려 하지 않았다. 살짝 충혈된 유리의 눈이 손수건을 아주 잠깐 바라봤다가 곧 원래대로 돌아간다. 아무래도 단단히 거부감을 산 모양이군. 그러니 말을 잇는다.
“내가 닦아주는 건 싫어하잖아. 그런 얼굴로 기숙사에 돌아가기도 곤란하고. 이걸로 우선 닦아.”
“……”
유리는 대답도 반응도 없었다.
별로 나와 아무런 대화조차 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표현인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손수건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줘도 괜찮다는 무언의 허락인지.
아마 후자는 절대 아닐 것 같았지만.
계속 이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닦아주려는 시늉만 하면 자기가 알아서 거부하거나 손수건을 낚아채 가겠지 싶었다.
…문득,
유리의 루비 같은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 안에 들어 있던 게 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어느샌가 얌전히 손을 뻗어 손수건 너머로 유리의 눈가를 매만졌다.
유리는 거부하지 않았다.
아니, 잠깐 형식적으로나마 왼손을 들어 내 손을 뿌리치려는 듯했으나, 너무나도 작은 힘이었다.
유리가 눈을 살짝 찡그리듯 살포시 감았다.
내 손이 정확히는 손수건이 유리의 왼쪽 볼에 닿았다. 탄력 있는 젤리처럼 부드럽고 말랑한 하얀 살결. 잡티 하나 없는 맑음과 투명함이 유리의 피부결 위에 공존하고 있었다. 스윽, 스윽. 길게 늘어진 눈물자국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천천히 지워나갔다.
…왜 거부를 안 하지?
손수건을 제 얼굴에 대려고 하는 순간 기겁하며 정신을 차리곤 내 손을 뿌리칠 줄 알았는데.
이래서야 완전히 비에 쫄딱 젖은 길고양이를 살살 매만져주는 모양새다. 방금 전까지 내가 진짜 싫다며 엉엉 울던 유리가 이러니 무슨 속셈인가, 하는 의심도 되었다.
뭔가 무서운데. 이러다 불쑥 싸대기 날라오는 거 아닌가. 이번에는 반응 제대로 못 할 거 같단 말이지.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조심스레 사과의 말을 꺼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거 아냐. 진짜로. 운동하고 돌아오는 건지도 몰랐고, 나도 운동하러 가는 길에 마침 널 발견해서 인사나 가볍게 나누려 했던 거야.”
작고 오똑한 코를 거쳐서 이번에는 오른쪽 눈가.
애교살이 위치했을 부분을 손수건으로 톡톡 만져주자, 유리의 고운 미간이 잠깐 찡그려졌다가 곧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
그 모습은 지금 이 자리에서 유리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주고 싶을 정도로 내 안의 무언가를 자극했는지라, 무심코 실없는 미소가 입매로부터 흘러나오고 말았다.
“…내가 너를 좀 더 많이 알았더라면,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사줄 테니 한 번만 봐달라고 했을 텐데. 나는 아직 네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네.”
——그 순간.
유리의 몸이 작게 움찔거렸다.
“……방금, 뭐…”
“……?”
작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못 들을 말이라도 들었다는 듯, 슬며시 뜨인 눈동자에 명백한 불신의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뭐라고 말을 하려는 것 같은데 많이 울었던 탓인지 목이 메여 잘 나오지 않는 듯했다. 갑자기 뭘까. 나는 아무것도 모르기에 그저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뭐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
혹시 밥 같은 거 사주는 걸로 달리 사과하려 한 게 잘못이었나? 이것도 설마 어린애 취급인가?
아닌데. 밥 사주는 행위의 대체 어디가 문제인가. 친하지 않은 사람이 대상이든, 친한 사람이 대상이든 밥을 사준다는 행위란 자연스러운 커뮤니케이션의 대표주자가 아니었던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뭔가 물을 새도 없이 유리의 눈가에 다시 차오르는 그것. 하지만 결국 흐르지는 않았다.
미처 흐르지 못하고, 붉은 연못 사이에 여실히 고여 있었다. 그대로 눈물을 내버리면 어느 무엇이 문제가 되기에 그랬을까.
유리의 앙 다문 입술이 무언가를 토해내고 싶어 근질거리고 있었으나, 결국 목구멍 너머로 삼킨 유리가 별안간 내 손에 들린 손수건을 빼앗았다.
팍. 스윽, 스윽.
얼굴에 남아 있던 물기를 깨끗이 지운다. 미간은 잔뜩 찡그려진 채였다.
쪼그려 앉아 있던 자세로부터 벌떡 일어나, 후들거리던 다리를 손으로 툭툭 치더니 바람막이의 지퍼를 잠그기 시작한다. 지이이익. 차가운 바람에 식었던 땀내음의 잔향이 한순간에 사그라든다.
제자리에서 일어선 유리는, 얘가 왜 이러는지 몰라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던 날 지긋이 째려본다. 킁, 하는 콧소리가 문득 흘러나왔다.
“…갈 거야.”
그러냐.
그렇게 보인다.
본래의 상태를 되찾은 것 같아 나름 안심이 되었다.
나 역시 유리를 따라 몸을 일으키니, 바람막이 주머니에 두 손을 푹 찔러넣은 유리는 도도하게 내 옆을 지나쳐 2동 기숙사 건물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평소보다 조금 빠른 듯한 워킹이었다. 그에 따라 한데 묶인 유리의 머리칼이 좁은 간격으로 꼬리치며 살랑였다.
“……진짜 싫어, 너.”
목소리와 함께 그림자도 멀어져 갔다.
가로등 불빛에 순금빛 정수리가 반짝였다가, 이윽고 반경을 벗어나자 어둠 속에 도로 잡아먹힌다.
잠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유리가 기숙사로 돌아갈 때까지 나는 이 길바닥의 한가운데서 잠자코 서 있다가, 문득 저편에서 선배로 보이는 학생 두 명이 걸어오자, 일단 3동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자기 전 운동은 반드시 해야 했으니까. 피곤해 죽겠지만 어쩔 수 없다.
“…아.”
무심결에 품속을 뒤적거리다가.
뭔가 깨달은 나는 방금 유리가 향했던 2동 기숙사 쪽으로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
손수건, 내일 돌려주겠지……?
#11
금요일.
오전의 마법 전공 수업.
“루비아 양. 준비 됐나요?”
“…네, 교수님.”
몇 명 되지 않는 학생들과 교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루비아는 교수가 지시한 대로 공간계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리 직접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인 까닭이다.
우우우웅. 차분히 눈을 감은 루비아의 몸에서 푸르스름한 안개가 일렁거리는 듯했다.
지금 루비아가 시범으로 보여주려는 것은 마법과 마법의 연계이자 조화.
한 가지가 아닌 두 가지 마법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써—정확히는 아주 찰나의 텀을 두어 시전해, 마치 동시에 사용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보다 변칙적인 활용을 가능케 만들어준다.
“——,—.”
가까이서 들리지도 않을 작은 속삭임. 눈을 감은 루비아는 곧바로 무아의 상태에 빠져들었고, 영창이 지속되자 들고 있던 스태프 끝으로부터 보랏빛을 머금은 마력이 둥근 형태를 빚기 시작한다.
—5위계 공간 계열 마법, 인스턴트 포탈(Instant Portal).
준비를 마친 루비아가 위치를 지정하기만 하면, 두 개의 작은 균열이 공간을 찢고 가르며 나타나, 그 안에 빨려 들어가는 사물을 다른 쪽의 균열 밖으로 이동시킬 것이었다.
하지만 그 유지력은 2초 남짓한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여, 다음 마법을 수월하게 연계하려면 정말 광속과도 같은 연산력과 영창이 필요했다.
루비아에겐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스태프를 든 손이 아닌 다른 한 손으로부터 천천히 피어오르는 스산한 냉기.
멀리서 루비아의 마법을 침착히 지켜보고 있던 나와, 그 옆의 스텔라마저 무심코 어깨를 쓸어내릴 정도로 차가운 서리가 강의실 내부의 기온을 뚝 떨어뜨린다.
—4위계 얼음 계열 마법, 아이스 스피어(Ice Spear).
인스턴트 포탈은 이미 발동되었다.
좌표만 지정하면 될 일.
얼음으로 이루어진 창이 냉기를 흩뿌리며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며, 나는 아까와 똑같이 루비아를 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마법이 아닌, 루비아를.
조용히 눈을 감고 주문을 외는 루비아를.
…직감에 의해, 나는 오른손을 꾹 쥐었다.
일순.
——우우우웅!
——쐐애애액!
루비아가 눈을 뜸과 동시에.
종이를 부욱 찢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 찢겼다.
가까운 공간에 쩌적거리며 균열이 일고, 온통 새까만 암흑뿐인 그 속을 향해 루비아가 소환한 얼음의 창이 꿰뚫듯 쏘아진다.
가히 기적적으로 정교한 마법 컨트롤. 교수가 짤막이 감탄했고, 지켜보던 학생들은 저마다 놀라움을 표했다. 완성된 형태며 위력이며 무엇 하나 나무랄 데 없이 깔끔했다.
길쭉한 창대가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자마자 루비아가 재빨리 다음 포탈을 열었다.
——찌지지지직!
다시 한번 공간에 균열이 일어나고, 처음 열었던 포탈은 이미 반쯤 닫힌 상태였다.
그때.
내가 오른손을 쫙 펼쳤다.
“……읏!”
종일 괜찮은 척하던 루비아의 표정이 별안간 일그러지고, 그 탓에 흔들린 집중력이 그만 좌표를 잘못 계산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불안하던 우려감이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원래 루비아와 교수의 의도대로였다면.
아이스 스피어를 전방으로 쏘아낸 다음, 천장에 포탈을 열어 그 아래 바닥을 향해 벼락처럼 내리꽂히게 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꺄아아아악!”
내 옆의 스텔라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쐐애애액!
균열을 통과한 루비아의 아이스 스피어는.
두 번째 균열을 통해, 누구도 아닌 시전자 루비아의 머리 위로부터 수직으로 낙하하며, 아직 상황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 루비아를 정수리부터 반으로 쪼개버리기 위해 그 촉을 날카로이 세운다.
—콰앙!
오른발로 지면을 힘차게 밀어낸다.
투포환처럼 쏘아진 내 몸이, 때마침 고개를 위로 든 루비아의 얼굴에 그 창끝이 닿기 전.
미리 준비해둔 마력을 칭칭 휘감아 오른 주먹을 쭉 뻗고, 아이스 스피어의 창대를 정확히 타격한다.
—파캉!
머릿속에 섬광이 튀긴다.
강도가 낮은 얼음 계열 마법인 이상 파괴는 본디 쉬웠겠지만, 누구도 아닌 루비아의 마법이다. 지금의 내 실력으론 조금 부족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능력이 발현됐던 탓에.
아이스 스피어는 그대로 두 동강이 나면서,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져 결국엔 강의실 문 쪽을 향해 얼음 파편을 휘날렸다.
…강의실에 까마득한 침묵이 흘렀다.
위험을 즉각 감지했던 교수가 손을 휘두르기도 전에 내가 먼저 달려가 루비아의 마법을 부숴버렸다. 답지 않게 놀란 모양새였고, 학생들 몇은 입을 틀어막듯 하며 돌처럼 굳어 있는 채였다.
얼음 조각이 내 어깨에 튀었다. 축축하다.
살짝 얼얼한 손을 쥐락펴락하면서, 어느샌가 멍한 눈으로 자리에 폭삭 주저앉아 있던 루비아를 향해 다른 한 손을 내리뻗었다.
어제보다는 한층 나은 얼굴인 듯했지만, 그건 잘 가꿔진 표면이자 겉모습일 뿐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었다. 아까부터 괜히 마음을 졸이며 루비아를 지켜보고 있던 게 아니었다.
루비아는 현재 많이 몰려 있었다. 심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정확히 뭐 때문인진 몰라도, 그 사실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잡아, 얼른.”
“……”
보채듯 말하자 루비아는 조심히 손을 뻗는다.
무척 오랜만에 잡는 듯한 루비아의 가녀린 손가락이 내 손등을 감싸고, 나는 힘차게 끌어당기며 루비아를 겨우 일으켜 세웠다.
길게 뻗은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적잖게 충격을 받은 듯했다.
침묵하던 교수가 조용히 입을 연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 다들 보셨겠지만, 이렇게 계열이 다른 두 가지 마법을 동시에 응용하게 되면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결과가 종종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것은 시전자 역시 포함하는 말이었으리라.
눈앞에서 사람이 죽을 뻔했다.
덜컹거리는 가슴을 끌어안고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던 학생들은, 곧 정신을 차린 뒤 가방을 챙겨 강의실을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나와 루비아, 그리고 저 뒤의 스텔라를 제외한 채로.
조용해진 강의실 한가운데서, 루비아가 나를 향해 경직된 미소와 함께 고개를 꾸벅 숙인다.
“고, 고마워… 에지오. 나, 나 자꾸… 도움만, 받네…… 에헤헤… 조금, 부끄럽다아……”
이전과 확연하게 빛이 바래진 웃음을 보며.
나는 잠시 루비아의 뒤편에 있던 스텔라를 힐긋 돌아보곤, 루비아에게로 다시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마음속으로 굳은 결심을 지었다.
아무래도 오늘인 듯했다.
…루비아와 얘기를 해야만 하는 날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