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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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움찔 놀라 뒤로 몸을 뺐다.
“깜짝 놀랐잖아. 스텔라.”
“미안해. 바로 옆까지 다가와도 전혀 눈치 못 채길래, 나도 모르게 그만……”
확실히 주변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별 보기에 집중하긴 했다. 어느샌가 내 옆에 자리하고 있던 스텔라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길게 드리운 눈꺼풀이 반달처럼 곱게 휘어졌다.
“옛날 동화 속 주인공 같았어, 너.”
“……칭찬이야?”
왠지 놀리는 것 같았다.
옛날 동화는 어린애들 전용이잖나.
감성에 취해 별자리를 올려다보고 있던 내 모습이 스텔라에게 어찌 보였는진 잘 모르겠다. 살짝 부끄러워진 마음에 머쓱하며 손을 아래로 내렸다.
“글쎄?”
“글쎄는 또 뭐야. 나 놀리는 거지?”
스텔라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건 아냐. 그냥, 시기도 딱 좋겠다. 별 보러 기숙사에서 나오는데, 에지오 네가 보이더라구. 보자마자 든 생각이 그거였어. 동화 같다. 너 있는 공간만 꼭 다른 세상 같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칭찬이야. 응.”
놀리는 거 맞네 뭐. 장난스레 웃는 스텔라를 눈으로 흘겼다.
그보다 얘, 나랑 둘이 있을 때만 아예 이러기로 작정을 한 건가. 나쁘다는 건 아닌데, 가끔 평상시에 스텔라를 만나면 언제나 수줍게 말을 건네오는 터라 영 익숙해지지 않을 때가 있었다. 물론 스텔라의 비밀을 아는 입장에선 차라리 이쪽이 원래 성격에 더 알맞은 것 같긴 하다만.
“옆에 앉아도 돼?”
“그래라.”
나는 벤치에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엉덩이를 끌며 옆으로 조금 물러나자, 스텔라가 남은 빈 공간에 살포시 착석했다.
“…안 추워?”
“전혀? 왜?”
“아니, 추워 보여서. 내 거라도 줄까 했지.”
스텔라는 청색 원피스에 새하얀 카디건을 걸친 채였다. 하얀 양말과 슬리퍼. 달빛에 비치는 맨다리가 굉장히 뽀얗게만 보였다.
“적당히 기분 좋을 정도로 선선한 날씨인걸. 하나도 안 추워. …그리고 왠지 기분이 이상하네. 너한테 그런 말을 다 들을 줄이야.”
“…기본 매너잖아. 이런 건.”
예전 같았으면 춥다고 서로의 옷가지를 대번에 빼앗아 들려 했을 것이었다. 그러다 쌈박질도 했겠지. 실제로 주먹다짐까지 간 적은 없었지만, 어. 알프렌이랑 비슷하게 자주 티격태격거렸던 것 같기도 하고. 워낙 오래전 일이라 전부 기억은 안 난다.
“배려도 할 줄 알고. 다 컸네, 에지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를 생각해봐. 그리고 나만 큰 게 아니라 너도 많이 컸거든.”
“내 키는 별로 안 자랐는데?”
스텔라가 자기 머리 끝에 손을 두더니, 일직선으로 쭉 나를 향해 그었다. 직후 내 목 부근에서 움직임이 멈추었다. 스텔라와 나의 앉은 키 역시 제법 차이가 났다. 사실 이런 몸이 되기 전이라면 오히려 스텔라보다 내가 작았을 수도 있겠다만. 그걸 굳이 언급할 필요까진 없을 듯했다.
“몸만 큰 게 아니잖아.”
“으음… 그렇긴 하지.”
얼치기 시절 우리들에 비하면 지금의 우리는 정말 많이 성장한 상태였다. 하루만 큰일을 겪어도 성장하는 게 사람이라는데, 그로부터 벌써 10년에 달하는 시간이 흐른 것이었다.
……나는 어째 어릴 적보다 퇴화한 것 같긴 한데. 결과적으론 성숙해진 셈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자각 정돈 하고 있었다.
나는 아까 스텔라의 말을 되받았다.
“별 보러 나온 거라고 했었나?”
“아, 응. 오늘 날이 좋아서.”
하긴. 유독 별이 잘 보이긴 했다.
멍하니 앞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여전히 좋아하는구나, 별.”
내게 처음 별자리 보는 법을 가르쳐줬던 게 스텔라였다. 말로만 설명하는 게 아니라 직접 하늘 위에 점을 찍어가며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내게 친히 알려주었다. 덕분에 별 보는 법은 어느 정도 터득하게 되었다. 어릴 적 스텔라와 헤어진 뒤로도 가끔 관련 서적을 찾아보거나 그랬으니까.
“응.”
스텔라가 짤막이 대답했다.
이어 내게 묻는다.
“너도, 아직 좋아해?”
나긋한 물음이었다.
“좋아하지. 예쁘잖아. 보다 보면 마음도 편안해지고. 게다가 안 좋아했으면 여기서 이러고 있지도 않았을 거야.”
“응, 그렇지.”
봄의 대곡선. 봄의 대삼각형. 아까 찾았던 별자리들을 잊지 않고 눈에 새겨넣은 채였다. 반짝이는 별가루가 잔상처럼 일렁거린다.
스텔라와의 침묵은 고요하디 편안했다. 야심한 밤 수려한 미모의 소녀와 한 벤치에 자리하여 멀거니 별을 함께 올려다본다. 이보다 더 몽환적인 상황은 없으리라. 다만,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스텔라가 아니라 알프렌이었다. 검은 머리의 쾌활한 소년. 알고 보니 소녀. 짐짓 피식 하는 웃음이 새었다.
“…왜 웃어?”
“아니, 그냥. 아직도 안 믿겨서. 정말 철석같이 남자로 믿고 있었구나, 싶더라고.”
사실 가끔 긴가민가하긴 해.
스텔라한테 진짜 쌍둥이 남동생이 따로 있었고, 그 남동생한테서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든지. 맥아리 없이 허무맹랑하지만 아예 가능성도 없진 않을 법한 스토리를 떠올리기도 했다.
언제적 얘기를 하는 거냐며 스텔라가 장난스레 내 어깨를 건드렸다.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 듯 곤란함 섞인 홍조가 옅게 떠올라 있었다. 이거 봐. 전혀 익숙해지질 않는다니까. 괴리가 너무 크다고.
“차라리 계속 남자였던 편이 더 좋았어?”
스텔라가 그리 물어오자,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아니고. 지금 모습 무척 잘 어울린단 소리야. 스텔라랑 알프렌이랑 아예 별개의 존재로 생각될 정도로. 너한테 쌍둥이 남동생 있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자꾸 든다니까.”
“……칭찬이지?”
“글쎄?”
칭찬은 맞지. 하지만 아까 스텔라가 그랬듯 나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스텔라가 폭 한숨을 쉬더니 이내 수줍게 웃었다.
“…너도 마찬가지거든. 언제 이렇게 멋지게 자라서는, 여기서 우연히 다 만나고. 반갑긴 한데 아직도 얼떨떨해. 정말 에지오 맞아?”
“그래. 아쉽게도 나야.”
사실 나도 안 믿겨. 지금의 내가 나라는 게.
이런 모습이 되어버린 걸 과연 ‘자랐다’, 라고 표현해도 좋을지. 결과적으로는 내 몸이니까 성장이라면 성장인가.
일평생 바라 마지않던 육체를 갖게 되긴 했지만, 의외로 이러저러 불편한 점이 있…… 기는 개뿔이. 생면부지 남의 호의를 떡 먹듯 쉽게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는 영 찜찜한 점만 빼면, 거의 모든 면에서 이 몸은 굉장히 쓸모 있었다.
“너도 많이 변했다. 에지오.”
“그러게.”
기실 몸의 극적인 변화뿐만이 아니더라도, 나는 스텔라의 말처럼 많이 변하긴 했다. 주로 정신적인 측면에서.
제국 남부 해안선이 가까운 어느 별장의 주변, 알프렌과 처음 마주했을 당시의 나는 생각보다 순진하고 여리디여린 남자아이였다.
어린아이니까 당연한가. 하기사 그 나이대에 세상이 밉니 어쩌니 지지리 궁상을 떨 일이 있을까.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의 우리가 살아왔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까.
스텔라가 문득 입을 열었다.
“에지오.”
“응?”
“혹시 기억할진 모르겠는데…… 다음에는 여름 말고 다른 계절의 별자리를 네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었지.”
그랬나. 본가로 돌아갈 때 알프렌과 헤어지면서 정답게 그런 대화를 나누었던 것도 같았다. 말없이 고개를 주억이자니 스텔라는 내가 아닌 깜깜한 하늘을 잠자코 올려다본다.
“하나는 이뤘네. 봄.”
“……”
왠지 추억에 젖어든 듯한 스텔라를 향해.
“얼마 안 가서 질리도록 보게 될걸.”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다섯 번이나 반복될 사계절을 함께하게 될 거다.
돌연히 떠오른 생각에 말을 이었다.
“네가 보여주고 싶다는 게 이거였어?”
“응?”
“저번에, 나한테 보여줄 게 있다면서. 혹시 나한테 봄철의 별자리를 보여주고 싶었던 건가 해서.”
“아하…… 그건 아니야. 따로 있어.”
“뭔데?”
“으음, 나중에 알려줄게. 장소랑 타이밍이 조금 그렇네. 엄청 중요하고 그런 건 아니니까 딱히 기대하진 마.”
그러면 더 기대하게 되는데. 나중에 알려준다니까 구태여 더 묻진 않았다.
잠깐의 적막이 흐르고.
“있잖아, 에지오. 그거 알아?”
“……?”
얼마나 깊었는지 모르는 밤. 내 옆에 앉아 다리를 느릿하게 흔들던 스텔라가 어느 순간 말을 흘렸다.
“별은 예로부터 사람들의 길잡이 역할을 했어. 신앙과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지금도 여전히 별이 가져다주는 운명을 믿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 그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고.”
“점성술(占??)을 얘기하는 거야?”
“흐음, 비슷한데 조금 달라. 그나저나 점성술도 알고 있구나?”
“관련된 책을 읽은 적이 있었거든.”
“그래? 아무튼……”
스텔라는 설명하기 난해하단 표정을 지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별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 말했던 것처럼 숲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믿고 의지할 대상이 필요할 때, 내 앞날을 전혀 예측하기 힘들 때…… 그럴 때마다 별은 내게 다가와 줬어. 예전에는 내가 별에게 다가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무슨 소리일까.
노랫가락을 부르듯 나긋한 스텔라의 목소리는 묘하게 중독성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스텔라의 말에 집중하고 있자니 별안간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정해진 기간마다 딱 한 번, 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그리고 별은 내게 많은 걸 보여줘. 어쩔 때는 사람의 운명조차.”
백은빛의 눈동자가 달빛을 담았다.
“여기서는 미래시(???)라고 하는 것 같아.”
짧지만 강한 울림은 내 안을 푹 파고들었다.
미래시. 그대로 풀이하자면 단어 그대로 미래를 본다는 말이다. 운명과 미래라는 것은 인간으로선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자리해 있다. 드물게 교황의 자손, 성녀가 언뜻 신탁을 통해 인간사(人??)를 예측한단 풍문이 돌긴 했으나 자세한 사실여부는 알 수 없다.
놀라운 마음에 멍하니 물었다.
“……미래를 볼 수 있단 거야?”
“조금은? 정말 조금이지만.”
스텔라가 말을 이었다.
“별님은 되게 부끄럼쟁이셔서, 전부를 보여주진 않아. 가끔은 전혀 필요치 않은 엉뚱한 운명을 보여주실 때도 있고. 콕 집어서 어떤 집단과 개인의 운명을 보고 싶다면 선뜻 내어주시긴 하는데, 변덕을 많이 부리실 때도 있어. 특히나 그게 중요한 운명이라면 더욱 심해지기도 하고.”
뭔가 대단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스텔라.
전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아 보여서, 그리고 무엇보다 별이란 단어의 울림에서 주는 신비한 분위기가 스텔라와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지는 것만 같아서. 작은 의심 하나 품지 않은 채 물었다.
“……그거, 예전에도 가능했던 거야?”
아니면 나한테 알려주지 않았던 거려나.
스텔라는 고개를 내젓는다.
“너랑 처음 만났을 때는 아니었지.”
“그럼 언제부터……?”
“음……”
스텔라가 허벅지를 덮은 원피스 옷자락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겹친 손을 꼼지락거리며 아래를 내려다본다. 사락거리며 늘어진 백은발 탓에 옆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어쩐지 곱지만 침잠한 음성으로 입술을 달싹이는 듯했다.
“처음 별님이 내게 목소리를 들려주었던 건, 아마 너랑 헤어지고 나서 얼마 안 되었을 때.”
어림잡아 10년 전쯤인가.
스텔라가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도망치다가, 최전선에 끌려갔을 당시 죽을 뻔한 적이 있었거든. 그때 나한테 별님이 다가와 주신 거야.”
“……”
“결국 나도 살아남을 수 있었긴 했지만, 덕분에 가주님…… 그러니까, 지금 나의 양부님도 구해드릴 수 있었어.”
이어지는 이야기에.
나는달리 할 말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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