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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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알프렌은 부모 없는 고아였다. 전쟁으로 인한 건 아니었고, 날 적부터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듯하다. 지금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고아원에서 여섯 살 무렵까지 쭉 자라왔을 거다.
그런 알프렌이 나와 떨어져 있는 동안 어디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왔는지 궁금하긴 했다. 어쩌다 공작가의 수양딸이 된 건지도 여간 신기했고. 저번에 물어보긴 했었는데, 나중에 알려준다고 했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방금 스텔라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그간 스텔라에게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어느 정도 예측을 가능케 했다.
최전선에 끌려갔다고 했다.
나이로 따지자면 아직 초등부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어린아이가, 10년 전 벌어졌던 전쟁에 징집되었단 말인가? 머릿속에서 무수한 혼란이 일어났다. 그런 건 말도 안 되잖아……
북부, 동부, 서부, 남부.
중앙 대륙을 포함한 알티마 대륙을 벗어나—— ‘경계’ 너머의 전혀 다른 세상인 마계를 정복하기 위한 대원정. 혹은 대전쟁. 인간과 악마의 시체로 시산혈해를 이루었던 거나한 피의 나날들.
기나긴 사투 끝에 결국 인류의 처절한 승리로 종지부를 찍어, 연합군의 주축이 되었던 제국이 더욱 강성해지는 계기로 발돋움한 역사의 전장.
나는 어린 알프렌이 그 참혹한 대지 위에 서 있는 광경을 불현듯 상상해 보았다. 이내 속으로 도리질을 했다. 뭔들 좋지 못한 그림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 그렇게 심각한 표정 짓지 마. 이미 지난 일인걸.”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이대로 침묵하는 것이 최선의 존중일지. 고민하는 사이에 스텔라가 날 보며 웃었다.
자세한 사정은 알 길이 없더라도 분명 끔찍한 일을 겪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스텔라의 화사한 미소에는 빛이 바랜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전쟁이 한창이었을 시기에, 나는 부모님과 함께 외딴 시골로 내려갔을 거다.
당시 세상이 흉흉했다고는 하나 아주 멀리 떨어진 대륙 바깥에서 벌어지는 전쟁이었다. 몇 달 뒤에 승전 소식이 들려왔을 즈음엔 작은 불안과 걱정의 조각마저 훌훌 날려보냈다. 어차피, 전쟁의 민낯이 뭔지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을 정도로 어렸던 우리들에겐 뭔들 크게 와닿지 않았을 테지만.
너무나 대비되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거기서 어떤 일을 겪었던 건지조차 물을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그냥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하필이면 저번 스텔라의 방에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일부 털어놨었는데. 루비아와 보냈던 평화로운 시간들. 그런 얘기들을 스텔라의 앞에서 즐거웠다는 냥 미소를 그리기까지 했지. 갑작스레 이유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반대편에서 스텔라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행을 겪고 있었을 동안, 나는……
“글쎄, 심각한 표정 짓지 말라니까?”
경직된 내 뺨을 스텔라가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옆을 돌아보니 살짝 뾰루퉁해진 얼굴이었다.
자긴 괜찮은데 왜 네가 앞장서서 그러고 있느냔 기색이다. 과연 그 말대로였다. 이미 지난 일이고, 스텔라는 이렇게 훌륭한 공녀님으로 자라주었다. 그걸로 된 거 아닐까. 곤란한 듯 웃어주니 스텔라가 마주 웃는다.
“고생했겠다.”
짧은 내 말에, 돌아오는 반응도 짧았다.
“맞아. 고생했어.”
정작 본인은 생글생글 웃는 낯이었던 터라, 나 역시 한결 김빠진 듯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괜히 말 꺼냈나? 아무튼… 그때가 처음 별의 목소리를 들었던 순간이야.”
그때 내가 물었다.
“목소리라 하니까 갑자기 생각난 건데.”
“응.”
“별이 네게 직접 미래를 말해주는 거야?”
“응? 음…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궁금하네.”
“어떤 게?”
“별의 목소리란 건 어떤 목소리일지. 뭔가 상상이 안 간다고 해야 하나. 네가 말하는 별이란 어쩌면 저 하늘 위의 신(?)이랑 같은 거 아니야? 사람의 운명을 점지할 정도니까.”
“글쎄…? 아직 신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 다가오는 별의 느낌은 아주 특별하고 친숙하거든. 마치 옛날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 같아. 신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 무엇보다……”
“무엇보다?”
“이런 말 하면 어떻게 보일진 모르겠지만, 나는 신을 믿지 않거든.”
“……진짜? 왜?”
무신론자라. 의외의 사실에 내가 묻자, 스텔라는 밤하늘 쪽으로 고개를 살짝 젖히며 말했다.
“나는 내가 믿는 것만 믿으니까.”
“……”
“내가 힘들 때 마침내 다가와 준 건, 신이 아니라 별이었어. 내가 힘들 때 믿었던 것도 신이 아니라 별이었고. 그러니까 신은 믿지 않아. 있다는 걸 알고 있어도 믿지 않을 거야. 그러기로 했어.”
어딘지 확신에 가득 찬 듯 단호한 투에 가만 고개를 주억였다. 다른 사람의 신앙관이 어떻든 내 입장에선 크게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하물며 스텔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별이 떨어지듯 하늘로부터 고개를 떨군 스텔라가 날 바라본다.
“맞아, 에지오. 궁금하다고 했었나?”
“……어?”
“별의 목소리 말이야.”
“그랬긴 했는데… 왜?”
“네가 원한다면, 들려줄까 싶어서.”
스텔라가 배시시 웃었다.
“사실 아직 한 번 남았거든.”
“……남았다고?”
“응.저번에 네가 의식을 잃었을 때, 병문안을 가려고 했었는데 가문에서 사람이 찾아왔었어. 가문을 이끄는 데 내 도움이 필요해서 나에게 부탁을 하러 온 거였는데…… 거절했어. 정확히는 이미 기회를 써버렸다고 거짓말했던 거지만.”
“왜 그런 거짓말을……?”
“으음, 말도 없이 찾아와서 네 병문안 가는 걸 막길래 왠지 화도 났구. 요즘 나에게 너무 의존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할지…… 사실 프론티어에 입학하는 것도 양부님은 반대하셨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억지를 부려서 겨우 들어온 거야.”
말 잘 듣는 조신한 공녀님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나름의 의견 표출은 하고 다녔구나.
“그리고, 봤었거든. 내 운명을.”
스텔라가 내 눈을 직시했다. 은하수가 그대로 녹아내린 듯, 반짝이는 은은한 백은빛의 눈동자. 더없이 수려한 소녀가 이윽고 활짝 웃었다.
“역시, 여기 오는 건 맞는 선택이었던 것 같아.”
#6
“에지오. 너한테 아까 말했었지? 너한테 보여주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장소랑 타이밍이 좋지 않아서 지금은 조금 그렇다고.”
“아, 어.”
“그게 이거였어. 너에게 별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거.”
그러자, 떠오른 의문을 그대로 입에 담았다.
“……그럼 나한테 뭘 보여주는 게 아니라 들려주는 거 아냐?”
“달라, 달라. 말이 그렇다는 거야. 정말 들려주실 때도 있지만, 기억으로 남겨주실 때가 가장 많아. 대신 새벽에 자다 꾸었던 꿈을 아침에 일어나서 잠깐 희미하게 떠올리는 것처럼, 정말 한순간의 장면으로 지나가 버리니까, 집중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을 거야.”
“……그래서, 지금 나한테 보여주겠다고?”
“응. 오늘이 가장 좋은 날인 거 같아. 별도 무척 잘 보이고, 내 기분도 컨디션도 아주 좋아. 어쩌면 별님도 기분이 좋으신 나머지 네게 평소보다 더 많은 걸 보여주실 수도 있어.”
뭔가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라 스텔라의 말끝에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었다. 운명을 보여준다니. 뭘 어떻게 보여준다는 말일까. 스텔라는 잠깐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잠자코 내게 말했다.
“여기도 나쁘지 않긴 한데…… 더 좋은 장소로 가야 할 것 같아. 따라와, 에지오.”
“어…… 정말로? 지금 시간도 많이 늦었고……”
“괜찮아, 괜찮아. 그런 거 신경 쓸 나이는 이미 지났잖아. 가자, 에지오. 어서 일어나.”
기분이 좋다는 게 절대 거짓말은 아닌 듯, 벤치에서 일어서는 스텔라의 몸놀림이 정말 산뜻하도록 가벼워 보였다.
발걸음에 맞추어 나풀거리는 얇은 카디건. 무슨 노래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어딘지 잔잔한 콧노래 소리와 함께 흥얼거리며 내 앞에서 도도도 걸어가는 스텔라의 뒷모습을 따라갔다.
내게 자기만 아는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싶어 잔뜩 신이 난 채 나를 동산 위로 이끌었던 알프렌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추억을 떠올린 탓인지 왠지 그리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땐 그랬지, 같은 생각으로 얌전히 스텔라의 뒤를 따르는데.
“저기가 좋겠다. 올라가자!”
신입생들도, 선배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 야심한 시각의 가로등 아래서 어딘가로 손을 쭉 뻗곤, 웃으며 날 돌아본다.
“…알았어. 너무 뛰지 마. 그러다 다칠라.”
잠깐 멍해졌던 내가 피식하며 걸음을 계속했다.
문득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려나.
지금 이 순간은, 구태여 선명히 기록하지 않아도 내 기억에 길이길이 남을 테니까.
#7
“왜 이런 곳에 계단이 있는 걸까……”
“우리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었던 거 아냐? 잘 됐지. 그래도 닦이지 않은 산길을 오르는 맛이 또 있었는데. 조금 아쉽다.”
스텔라와 내가 향한 곳은 어느 언덕이었다.
이런 거대한 도시 속의 초목이라. 1동 남자 기숙사 뒤편에 위치한 녹빛의 언덕. 작은 산에 가까울까. 다만 진입로를 찾지 못해 무작정 올라가야 하나 생각했던 우리들은, 얼마 걷지 않아 꽤 오래된 듯한 석재 계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찌르르르……
무성한 수풀 속 풀벌레 소리가 만연했다. 사방은 정말 쥐 죽은 듯 고요한데, 계단을 밟는 우리들의 발걸음 소리와 별안간 바람에 스치는 잎사귀 소리만이 이 공간의 전부처럼 느껴졌다.
언덕의 능선을 타고 오른다. 스텔라는 본인의 새하얀 양말 군데군데 흙이 묻기도 했지만, 그런 데 전혀 신경 쓸 겨를조차 없는 듯했다. 신이 나서 계단을 마구 오르고 있다. 그녀의 뒤를 따르며 혹시 몰라 주변을 돌아보던 나 역시 덩달아 몸이 가벼워졌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아, 여기다.”
방금 우리가 있던 곳보다 조금 더 하늘에 가까운, 이 조그마한 언덕의 산등성이에 우리들은 마침내 다다랐다.
“와아……”
탁 트인 전경. 얼마 안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저 멀리 1동 기숙사의 옥상이 보였다. 체감 시간이 적어서 그런가. 한층 시원하고 맑아진 듯한 공기를 가득 들이마시며 스텔라가 숨을 토해냈다. 송글거리는 땀방울과 약간 상기된 듯한 얼굴. 스텔라는 지금 순수히 기뻐하고 있는 듯 보였다.
좌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3동 건물과 그 뒤의 풍경이 보이긴 하지만, 이 드넓은 밤하늘을 전부 가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광원이 반짝거렸다. 그것을 한없이 올려다보는 스텔라의 눈동자도 같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오늘 별 진짜 잘 보인다…… 감동받을 거 같아.”
“그러게나. 되게 예쁘네.”
지금의 우리는 예전과 달랐던 까닭에, 마법을 사용했다면 조금 더 편하게 올라올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겠지만. 스텔라는 구태여 그러지 않았다.
뭐, 스텔라가 아니라 알프렌이라면 그럴 만했다.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하고, 산과 들에서 제 몸으로 뛰놀기를 좋아했던 아이였으니까.
“이리로 와봐, 에지오. 여기 앉자.”
스텔라가 저 앞에서 내게 손짓했다.
“흙 묻을 텐데…… 괜찮겠어?”
“오늘은 괜찮아. 그리고, 마법도 있는걸.”
“아… 하긴.”
카디건을 벗어줄까 하다가 말았다.
내려가기 전에만 처리하면 상관없겠지. 대륙에서 가장 강성한 제국의 공작가 따님 되시는 분께서, 생글생글한 얼굴로 돌 굴러다니는 흙바닥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무릎을 모아 끌어안은 뒤 날 돌아보며 빨리 옆에 앉으라 눈빛으로 재촉한다.
“으, 차가.”
흙바닥은 무척 시원했다. 다만 내 바지 원단이 원단인지라, 옆에 앉은 스텔라는 더 차가울 거다. 그런데도 오히려 그것이 기분 좋다는 냥 웃고만 있었기에, 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오늘 나오길 잘한 거 같아. 이렇게 신나는 기분, 엄청 오랜만이야.”
스텔라가 시계추처럼 몸을 리듬감 있게 양옆으로 흔들며 중얼거렸다.
“…나도 좋네. 좀 상쾌해지는 것 같아.”
아까까지만 해도 목이 멜 듯 답답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싹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물론 완전히 지워질 수야 없겠지만, 이렇게라도 잠깐이나마 모든 고민을 잊을 수 있는 시간이 썩 반가웠다.
머리를 텅 비운 채 하염없이 별과 하늘을 구경할 수 있다니. 이대로 가만 멍을 때리면 두어 시간은 금방일지 몰랐다.
“너도 좋아해줘서 다행이야, 에지오. 오늘은, 아니, 지금만큼은 너를 괴롭히는 고민 같은 건 싹 다 잊어버려.”
“……알고 있었어?”
“엄청 심각한 얼굴로 벤치에 덩그러니 앉아 있으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걸?”
“……”
맞는 말인지라 머쓱함에 볼을 긁적였다. 역시 가브리엘 말대로 그냥 들어가 자는 게 나았으려나.
아니, 그랬다면 스텔라와 여기에 같이 올라오지도 못했을 거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옛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르고.
“있잖아, 에지오.”
“……응?”
고개를 젖혀 밤하늘로 시선을 향했던 사이, 날 부르는 스텔라의 목소리에 옆을 돌아보았다.
바로 옆에서 스텔라와 눈을 마주쳤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놀라 흠칫하기도 했지만, 태연히 눈을 깜빡거리며 되물었다.
그러자.
스텔라가 고개를 살며시 기울이며 손을 내민다.
“잠깐, 손 좀 줘볼래?”
뭘 하려는 걸까. 내가 말했다.
“손은 왜……”
“왜긴, 아까 말했잖아.”
“아……”
별의 목소리였나. 아직도 감이 잘 안 잡힌다. 어떤 식으로 미래를 보여준다는 건지.
손을 잡으면 내게도 뭔가 보이는 걸까. 스텔라의 지시대로 그녀의 손을 얌전히 잡았다. 굉장히 작고 부드러워서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잠깐 떠오른 무언가를 묻기 위해 스텔라를 바라보니, 어쩐지 아까보다 조금 더 얼굴이 붉어진 채였다.
“근데, 스텔라.”
“…응?”
“정해진 기간마다 한 번 들을 수 있다고 했잖아?”
“응.”
“얼마나 되는진 몰라도 짧진 않을 것 같은데…… 그런 중요한 기회를 나한테 써도 돼? 전에 말한 것처럼 네 가문에서도 따로 여기까지 찾아와서 부탁할 정도면……”
“……”
스텔라가 멍하니 날 마주보더니.
푸흐, 하고 나머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에지오.”
그리고, 이어 말했다.
“너니까 쓰고 싶은 거야.”
“……”
“나는 항상 네 도움이 되어주고 싶었어. 에지오 너는, 누가 뭐래도 내가 처음으로 사귀었던 친구였으니까. 정말 짧은 시간이었지만, 살면서 그때보다 재밌게 놀았던 적이 없기도 했고. 그러니까 전혀 아깝지 않아. 처음부터 너를 위해 쓰고 싶었어.”
“……”
그 말을 들으니, 내 손에 전해지는 스텔라의 온기가 더욱 따스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누그러지는 한마디에 나는 비로소 마주 웃어 보였다.
“…고마워, 스텔라.”
“나야말로 고마워. 좋은 추억 만들어줘서.”
직후.
스텔라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리고,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
“으응, 아니야.”
작게 도리질을 한 스텔라가, 문득 내가 아닌 밤하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별자리는 선명히 빛나고 있었다. 알카이드, 미자르, 아크투루스, 스피카, 데네볼라…… 아까 보았던 봄철의 별자리들이 아득한 저 너머에서 반짝이는 빛을 발한다.
잠깐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스텔라가, 도로 눈꺼풀을 열곤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