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날 차버린 소꿉친구와 전 여친이 같은 반이라 곤란하다-74화 (74/201)

〈 74화 〉 마무리 (2)

* * *

#2

프론티어 한 학기 등록금이 3천만 라트 정도다. 연간 학비만 무려 6천만 라트에 달한다. 그외 교육비로 지출하는 비용까지 전부 합하면 어림잡아 8천만 라트에 준하는 돈을 쓰게 된다. 1년 동안.

프론티어 5학년 과정까지 모두 수료한다 가정했을 때, 한 학생이 5년간 지불해야 하는 액수는 4억 라트.

평민으로선 평생 꿈도 못 꿀 무시무시한 금액이다. 애당초 입학 기준에 발을 걸치는 것도 요원할 일이겠지만.

물론 평민이라 할지라도 프론티어에 자력으로 입학할 방법은 있다.

미래를 담보로 중앙은행에서 프론티어 특별 학자금 대출을 왕창 끌어오거나—입학 기준을 충족한다는 요건하에—, 아니면 제국의 지원을 받을 정도로 특출난 본인의 가능성을 증명하거나.

다시 말해 장학금이라는 거다. 매우 뛰어난 재능을 지닌 학생은 신분 불문하고 정해진 액수의 장학금을 지원받는다. 정도에 따라 전액 장학금을 보장받는 경우도 있다. 에픽 클래스처럼.

여하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였다.

3억 라트는 매우 큰 돈이 맞지만, 원래대로라면 프론티어에서 4년 다니기도 전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 액수였다.

새삼 내가 얼마나 대단한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는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천만도 아니고 무려 3억 라트가 적어보이다니. 이 돈이면 아껴 쓴다 가정했을 때 10년은 족히 버티고도 남을 금액이건만……

나 역시 지금은 몰락했다곤 하나 전직 귀족이었다. 가난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고, 그렇다고 해서 부유한가? 라고 묻는다면 조금은 애매한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그저 그런 귀족.

그런 경험들에 기반하여 이거저거 전부 따져봐도 일개 학생이 가지기엔 적잖게 많은 돈이라는 인식을 떨칠 순 없었다.

아니, 뭐. 그건 그렇지만. 당장 우리 반 애들 보면 공작가 공녀라든지. 왕녀라든지. 걔네들은 아마 3억 라트 정돈 한 달 용돈으로도 능히 받을 수 있을 터였다. 3억 라트가 뭔가. 원한다면 그 이상도 그들의 부유한 부모님으로부터 어렵지 않게 뽑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새삼 신분의 격차를 느꼈던 것도 잠시, 나는 피해 보상금이라는 명목으로 받은 이 통장의 쓸모를 고민했다.

일단 전액 장학생이고. 때문에 학비 관련해서 지출할 사비는 하나도 없다.

그러면 교육 외적으로 유흥의 목적이라든지. 물론 그럴 생각은 별로 없었지만. 이 경우에도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할 것 같진 않았다.

대부분의 편의 시설은 에픽 클래스 학생증을 들이밀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고, 훈련장이라든지, 장비 지원도 빵빵하다. 수학(??)하는 학생의 입장으로선 더없이 완벽하디 쾌적한 환경이었다.

돈은 준비되어 있는데 쓸 곳이 전혀 없었다. 이 무슨 과분한 상황이란 말인가.

어느 정도 결론이 섰다.

일부는 저축하고, 일부는 고향에 있을 부모님께 보내드리기로 했다. 어련히 잘들 쓰시겠지. 그리 하고 싶으시다던 농장 경영도 어쩌면 가능할지 몰랐다. 저번에 마지막으로 들렸을 때 밥 반찬도 좀 부실한 거 같더만. 건강은 챙기셔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통장을 케이스에 다시 넣고, 박스째로 책상 위에 놓았다. 쓰임새는 천천히 생각해봐도 늦지 않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내 돈이니까.

으음, 뭐랄지……

갑자기 졸부가 된 느낌이다.

근데 여기서 뭘 더 준다는 걸까.

제국의 중심이란 곳은 이름값을 하려는 모양인지 스케일도 참 큼지막했다.

……이러다 아티팩트도 주는 거 아냐?

“설마.”

너무 간 생각인 듯해서 피식 웃고 말았다.

#3

“아, 저기 온다.”

아침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제 3학구 오르도 클래스 정거장에서 마지막 한 명을 기다리던 우리는, 저 멀리서 헥헥거리며 뛰어오는 인영을 발견하고선 손을 흔들었다.

“헥, 흐엑, 저, 저 왔어요오……”

아니나 다를까. 레니였다.

제 3학구에 거주할 터인 레니를 제외한 나, 알프리스, 그리고 헥토르는 이미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나는 늘 그랬듯 30분 전부터 이미 도착해 있었고. 헥토르가 의외로 20분 전쯤 정거장에 도착했으며, 알프리스가 그 다음으로 합류했다.

역시나 하나의 법칙이라는 건지, 약속 장소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을 레니가 가장 늦게 도착했다. 태도를 보면 자기도 늦고 싶어서 늦는 건 아닌 듯한데. 이거 진짜 뭐 있는 거 아닌가?

“레니도 도착했고…… 다 온 거 같네.”

가장 늦었다고 해봐야 9시 55분이었다. 결과적으론 약속한 시간이 다 되기 전에 모두 모이는 데 성공했다.

“이제 가자.”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돌아보다가, 원래 있었어야 할 사람을 떠올리던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등을 돌렸다. 그러자 잠시 뒤 일행들도 내 발걸음을 뒤따랐다.

#4

인근 카페의 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밀려 들어온다. 종소리를 딸랑거리며 들어선 우리를 향해 점원이 밝은 인사를 건네왔다.

주말 아침. 카페 내부에 사람은 적당했다. 몇 없는 사람들이 우리를 힐긋 돌아본다.

­웅성웅성.

주말이었던 탓에 유니폼을 입지 않고 있어 그닥 시선이 몰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나에 대한 소문이 프론티어 곳곳에 퍼져 있긴 해도, 얼굴을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입은 유니폼을 통해 소문의 주인공이 나라는 걸 유추하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는데, 오산이었다.

누구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 일행에게 꽂히는 시선들이 따갑도록 느껴졌다.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슬금슬금 거둬지긴 했지만.

“너희는 뭐 마실래? 주문은 내가 할 테니까.”

내 몫의 아이스 밀크티를 주문하기 전, 그리 말하며 뒤를 돌았다. 가방 주머니에서 학생증도 미리 꺼내놓은 채였다.

무슨 원리로 작동하는 건진 몰라도 프론티어 내부에선 학생증을 이용한 결제가 가능했다. 지금 나의 학생증과 연동된 계좌는 아마 프론티어 본부에서 개설해 준 계좌일 것이었다. 갑자기 마음이 무척 든든해진다.

“어… 저는 블루베리 주스로 할게요. 오, 옵션은 아무렇게나 해주세요오……”

“알았어. 알프리스는?”

“네가 사는 거라면 가장 비싼 거.”

“그럼 아무 커피 숏 사이즈로 하나 시킨다.”

“미안하다. 아이스 카라멜 마끼아또로 부탁해. 벤티 사이즈로. 아, 드리즐도 추가해줘.”

진작 그럴 것이지. 그래도 원하는 게 많다. 주문을 접수한 내가 마지막으로 헥토르를 돌아보았다. 굳이 말로 하지는 않고 가만히 보기만 했다.

“……”

모임 장소에 도착한 이후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헥토르는, 지금에서야 첫마디를 꺼내었다.

“모른다.”

“……응?”

나는 갸웃하고 말았다. 뭔 소리여. 헥토르는 팔짱을 낀 채 미간을 구기며 그리 말한다.

“이런 데서 뭘 마셔본 적이 없으니, 모른다고 했다. 이름들이 다들 직관적이지가 않군. 카페란 곳은 원래 다 이런가?”

“……”

“네 뜻대로 해라. 내가 즐겨 마시던 음료를 이곳에서 찾을 순 없을 테니.”

과연 고위 귀족이라는 건가. 호화로운 대저택 안에서 거의 모든 의식주를 해결했겠지.

카페 같은 편의시설은 비교적 서민들이 이용하는 경우가 태반이었기에, 헥토르처럼 고위 귀족 출신 프론티어 신입생의 경우 현지적응에 깨나 애를 먹는 이들도 많은 모양이었다.

뭔가… 뭔가네.

흐음.

헥토르 혼자 여기 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마 주문하는 법도 모르지 않을까.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턱만 쓰다듬고 있을 헥토르의 모습이 자연스레 연상되었다.

“그, 그래. 뭐… 알았어.”

참으로 기이한 기분에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데, 헥토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먼저 2층으로 성큼성큼 걸어 올라갔다.

점원에게 주문 내역을 읊은 뒤 결제까지 끝내고서, 주문한 음료가 나오기 전 헥토르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간 우리는 중앙에서 약간 창가 쪽으로 위치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뒤.

아래층에서 점원의 부름을 받은 내가 트레이 위에 각자의 음료를 올려 가져왔고, 개중에는 헥토르의 몫도 있었다.

“이건……”

바닐라 크림 뭐시기였나. 아무튼 휘핑크림이 잔뜩 들어갔다. 엑스트라로 추가한 거다. 카라멜 시럽도 듬뿍 넣었다.

평소 달달한 걸 좋아하는 루비아도 이건 좀… 하면서 질색할 수준이지 않을까. 난 몰라. 아무거나 주문하라고 한 건 헥토르였다.

내심 개인적 악의가 아예 들어가지 않은 선택이라 볼 순 없어도, 혹시 헥토르가 미칠 정도로 단맛을 성애하는 입맛의 소유자일 줄 누가 알겠는가.

유감스럽게도 그건 아닌 듯했다.

자기 앞에 내놓아진 컵을 슬쩍 보던 헥토르가 썩은 표정으로 날 노려봤다.

“에지오 크라닐. 왜 이런 걸 시킨 거냐.”

“아니, 네가 아무거나 시키라며?”

“……쯧.”

헥토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옆에서 바라보던 레니가 빨대를 쭉 빨면서 히익 하는 표정을 지었다. 무지성으로 완성된 키메라 음료의 맛을 상상해 보는 것이겠지. 나도 상상해 보긴 했는데, 일단 한 모금 마시자마자 바로 저기 테이블 구석에 두고선 눈길도 주지 않을 것 같았다.

“……”

헥토르가 그랬다.

“이런, 개……”

그래도 맛은 보려는지 한 잔 홀짝이다가, 곧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 되어 일그러진 얼굴로 조심스레 잔을 밀어냈다. 나도 모르게 웃을 뻔했다.

테이블에 배치된 티슈로 입가를 박박 닦는가 싶더니, 고개를 홱 돌리곤 날 노려보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슬그머니 입을 틀어막은 채 목울대를 꿀렁이면서 화장실로 향했다. 대체 얼마나 충격적인 맛이었으면 본능적인 거부반응까지 일으키는 걸까.

그것보다.

예상한 반응보다 훨씬 좋은 리액션을 보여주는군. 내심 흡족한 마음에 손뼉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게 누가 초면부터 남의 부모님을 들먹이래, 임마.

물론 헥토르의 죄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런 자리에서 아무거나, 라는 말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몸소 깨달을 필요가 있었다. 꼬우면 직접 메뉴 고르든가. 어.

“맛이 별로였나 보네. 나름 괜찮은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

“……”

내가 그리 중얼거리며 너희도 마셔보겠냔 의미로 헥토르 몫의 음료를 들이밀자, 레니와 알프리스는 매우 정중히 사양의 의사를 내보였다.

#5

아직도 안색이 파리한 헥토르와 함께, 우리는 곧 넓은 테이블 위에 백색 시트지를 깔고선 각자의 교과서를 꺼내었다.

“이런 고급품이 무한정 지원된다니…… 프론티어는 정말 얼마나 돈이 많은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야.”

“비, 비싼 건가요……?”

알프리스의 중얼거림에 레니가 슬쩍 물었다.

“어, 음. 그렇지. 아마 한 장에 삼만 라트 정도 할걸?”

“삼, 삼만이요……?! 고작 종이 한 장인데!”

레니가 기겁하자 알프리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지. 프론티어한테도 고작 삼만 라트일 테고.”

“……그렇게 말씀하시니 할 말이 없네요…”

내가 개인적으로 챙겨온 가방 안에는 테이블 위에 깔린 시트지와 동일한 시트지가 대략 80여장 정도 들어 있었다.

기본적으로 과제 수행을 위해 지급되는 개수가 이 정도였고, 부족하면 교수 연구실에서 여분의 시트지를 찾아가면 된다.

물론 몰래 뒤로 빼돌려 판매하다 걸리면 가차없이 퇴학이다. 애초에 용도 이외로 사용할 수 없도록 일종의 마법적 처리도 가해져 있고.

그래서 이게 뭐를 위한 물건이냐면.

간단히 말해서 도화지였다.

정말로, 그냥, 도화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스케치북 같은 거 말이다.

물론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필요한 건 크레파스가 아닌 전혀 다른 물건이었다. 아니, 물건이라기보단 좀 더 다른 종류의 것. 아무튼 이용할 도구의 차이가 존재했다.

과제 수행에 앞서.

「마나통제학」에서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건 강의 제목으로부터 알 수 있듯, 마나를 통제하는 방법이다.

마나를 통제하려면 마나를 이해해야 한다.

마나를 이해하려면 마나의 본질을 꿰뚫어야 한다.

마나의 본질을 꿰뚫으려면, 선행적으로 하나 이상의 필수적인 능력이 요구된다. 개중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것이 바로—— ‘마나 감응력’이었다.

눈이 없는데 앞을 볼 수 있을 리가 없다. 마나 감응력이라는 건 사람에게 있어 눈이나 다름없다. 마나를 보고 이해하고 느끼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

눈이 좋을수록 사람은 더 많은 풍경을 시야에 담을 수 있다. 너무 멀리 있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도, 비로소 볼 수 있게 된다.

마나 감응력이란 그러한 것이었다. 때문에, 마나 감응력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마나의 본질에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러한 면에서 마나 감응력을 높이는 방법에는 일반적으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으로 꼽히는 지론은 ‘많이 보고, 많이 느껴라’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경험의 폭을 넓혀라.

제일 간단하면서도 제일 어려운 일이었다.

보다 다양한 종류의 많고 많은 마나를 직접 다뤄보는 거다. 각기 다른 요소로부터 파생되는 마나의 특성, 순도의 높고 낮음에 따라 변화하는 성질 등…… 마나학이란 본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체화와 경험을 더 중시하는 학문이다. 일단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걸 다루니까. 감각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결과적으로 이번 조별과제는 개인의 마나 감응력을 높이기 위한 훈련의 일환인 셈이다.그 과정에서 약간의 협동력과 개개인의 수행력을 요하는 문제를 던져줬을 뿐이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두 가지야.”

첫째. 주제에 관련한 자유 연구 및 결과 발표.

단, 각 조원이 지닌 마나의 고유한 색깔을 차례로 기입하고, 역사적으로 그 색깔이 가지는 의미를 대략적으로나마 서술할 것.

또한, 각 조원의 마력 회로가 어떠한 기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지 분석할 것. 각 조원의 마력 회로를 비교했을 때 어떠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지, 조원마다 관련 내용을 한 개 이상 서술할 것.

이와 비슷하게 「마나통제학 I」에서 배운 내용을 얼마든 활용하여 주제에 맞는 자유 형식의 연구 논문을 작성하고, 다음주 목요일까지 중간 결과물을 제출할 것.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었다. 조원들 간 협동만 잘 이루어진다면 남은 5일 동안 빠르게 끝마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둘째.

‘별’을 완성할 것.

우리는 테이블 위에 깔린 시트지를 내려다보았다.

이것은 도화지였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화지.

도구는 마나(Mana).

이 위에다 마나를 주입하면, 그 부분은 마나를 주입한 대상의 고유한 색깔로 물든다. 즉 고유한 마나의 색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화지였다. 마나를 새기는 종이였던 까닭에 여기다 마법진을 그리면 해당하는 마법이 발동된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여하튼.

이 시트지로 달성해야 하는 수행 목표.

그것은 ‘별’을 그리는 것이었다.

시트지는 다소 작았다. 일반적 서류에 쓰이는 종이를 두 장 겹치면 대략 이 정도 크기가 나오지 않을까.

흰색 일색의 시트지 위에는 다섯 개의 꼭짓점이 찍혀 있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꼭짓점마다 두 개의 선이 이어져 있어, 양쪽을 제외한 각 꼭짓점과 연결되어 하나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간단하게 그려진 별 모양의 도형.

우리는 이 도형의 속을 우리들의 색으로 채워 넣어야 했다.

…사실상 이 과제가 제일 문제였다.

무척 어렵거든.

뭐가 어렵냐고 물을 수 있다. 그냥 색칠놀이 아니냐고. 정해진 구역에 색을 채워넣으면 되는 것뿐인 일 아니냐고.

맞다.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조원 한 명 당 반드시 하나의 면을 전부 채워야 하고, 그것은 정해진 선을 절대 벗어나선 안 된다. 만약 그리는 도중에 탈선하거나 다른 조원의 면과 색깔이 섞여버린다면, 감점이다.

무엇보다 별의 중앙에는 조원 모두의 마나를 섞어 그려 넣어야만 했다. 한 층씩 겹겹이 쌓아 전부 채워 넣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여기서도 조금만 실수하면 끝이다.

그럼 실수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냐.

그것도 맞다.

그런데 실수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나를 다루는 건 무척 세심하고 섬세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그 때문인지 시트지의 크기도 굉장히 작은 편이었다.

추가로, 이 시트지는 굉장히 민감한 종이라서, 개인의 마나 통제 수준 정도와 감응력 등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말인즉 조금만 힘을 더 주거나 덜 주어도 브러시 크기가 자기 맘대로 들쑥날쑥하게 변해버린단 얘기. 안 그래도 작은 크기의 도형인데, 정해진 선을 벗어나지 않기란 굉장히 요원해 보였다.

첫번째 과제를 수행하기에 앞서, 우리는 고유한 마나의 색깔을 확인하기도 할 겸 시트지 위에다 마나를 주입해 보았다. 첫 타자는 레니였다. 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손끝에 정신을 집중한다.

그렇게 지익­ 하고 물감이 스며드는 것처럼­

“……”

도화지 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히, 힘이 약했나……?”

갸웃거리던 레니가 다시 한번 손을 갖다댄다. 조금 더 강한 세기의 마력을 주입한 채로.

그러자, 이번에는.

“앗, 아……”

“……”

“……”

“……”

완전히 제 구역을 전부 물들이고도 남아 한참 탈선해버린 주홍빛 동그라미를 바라보면서, 나는 말없이 새로운 시트지를 꺼낼 준비를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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