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마무리 (3)
* * *
#6
쉽지 않다.
그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으음…… 생각보다 어렵네. 이거.”
알프리스가 손가락을 들었나 놨다 하길 반복했다. 턱을 괸 채 이미 더럽혀진 도화지 위에다 아무렇게나 점을 찍어본다.
큰 점.
작은 점.
중간 크기의 점.
분명 내려찍는 속도와 세기는 동일한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매번 다른 크기의 점이 찍혔다.
“그러게. 오늘 안에는 안 될 거 같은데.”
생각보다 훨씬 예민한 종이였다. 이래서야 완성을 전제로 과제를 수행할 수 있을지나 문제였다.
그래도 알프리스는 마법 전공으로, 조금 더 마나란 것에 조예가 깊은 친구였다. 일단 나보다는 실력이 좋지 않을까. 그런 알프리스가 저 정도라는 것은 아무래도 2번 과제의 해결까지 적잖은 시간이 소모될 거란 어두운 미래를 암시하고 있었다.
교수님.
이제 고작 2주차에 뭔 이런 과제를……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프론티어 학생들을 한두 번 가르치는 게 아닐 터였다. 우리들의 평균 수준 정도야 능히 파악하고 있겠지. 아무리 그래도 이 괴랄한 난이도는 좀 어떨까 싶다.
이대로면 내 염원인 A+는 멀리멀리 날아가 버린다. 그러기 전에 뭐라도 해야 했다.
“이, 이거 막 기분이 이상해요. 분명 약하게 누른 거 같은데 갑자기 확 커지고… 힘을 조금 줄였다 싶으면 아예 찍히지도 않고……”
가장 먼저 시트지 위에 점을 찍었던 레니도 구석 한켠에서 조심히 손가락을 움직인다. 찍은 부분이 주홍빛으로 물든다. 레니의 고유한 마나 색깔은 주홍색인 모양이었다.
“어렵군, 어려워.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었나 하고 자괴감이 살짝 드는걸……”
알프리스의 경우, 레니보다는 나았지만 썩 처참한 결과였다. 끙끙거리며 선을 그어보지만 투박하고 울퉁불퉁한 면만 생길 뿐. 살짝 보라색이 섞인 듯한 갈색으로 면이 채워져 있다.
흐음, 저게 알프리스의 색인가. 정말로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는구나. 조금 흥미로웠다.
“……”
그리고, 헥토르.
내가 헥토르에게 대접했던 음료는 그 이후로 쳐다도 보지 않고 있다. 여전히 썩어 문드러진 표정의 헥토르가 한숨을 쉬며 손가락을 든다. 언뜻 날 노려본 것도 같았다.
그러곤 자기 몫의 가장자리에서 마력을 주입하는 순간, 그 자리에 짙은 남색의 파문이 일렁거렸다.
나를 비롯한 조원들이 잠깐 헥토르의 손가락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런 와중에도 헥토르는 말없이 선을 그었다. 쭉, 쭉. 막힘없이. 시원스레 직선이 뻗어 나간다. 일정한 굵기를 지닌 채.
“…쯧.”
이제는 버릇이라 생각될 법한 소리가 헥토르의 입가에서 새어 나왔다. 이쯤 되면 그냥 세상 만사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다.
속세에 불만이 많은 청소년이 도화지 위에서 손가락을 도로 떼었다.
우리는 그 아래의 것에 집중했다.
알프리스가 문득 중얼거렸다.
“……맞아, 헥토르도 에픽 클래스였지?”
그에 레니도 고개를 가만 주억인다.
헥토르가 시범적으로 그었던 선은, 제 분량의 새하얀 면을 어느 하나의 빈틈도 없이 꽉꽉 채워버렸다. 한 치의 빗나감이나 어긋남도 없었다. 완벽하게 제 몫을 해낸 것이었다.
그야말로 절제의 극한.
어쩐지 헥토르의 마나색인 짙은 남색으로부터 싸늘하디 차가운 인상을 받았다. 굳이 따로 조사하지 않아도 그 특성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헥토르는 으스대지도, 그렇다고 레니와 알프리스를 향해 깔보는 듯한 시선을 보내지도 않았다. 마치 이게 당연하다는 것처럼. 언뜻 거만해 보이지만 마냥 그렇지만도 않은 눈빛이었다.
그것은 곧 나를 향한다.
헥토르는 본인의 능력을 증명했다. 이 정도라는 걸 내게 눈으로 알려줬다. 분명 대단한 수준인 건 맞을 터다. 헥토르가 정확히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진 모르나, 굉장한 수준의 마나 감응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그런데도 마법 전공 수업에서 2단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걸 보면, 아직 루비아나 스텔라와는 비할 바가 아닌 듯하고. 여하튼.
헥토르가 저번에 한 말이 있었다. 나는 좀 다르길 기대해보겠다는 말. 나의 아버지까지 들먹이며, 그리 지껄였었다.
“……”
다만 내 역량을 판단하겠다는 듯 팔짱을 낀 채 날 빤히 바라보는 헥토르의 앞에서, 나는 잠깐 고민하고 있었다.
돌고 돌아 내 차례가 온 거다. 이제 내 차례긴 한데. 그런데. 헥토르를 제하고서도, 레니와 알프리스까지 날 기대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근데.
에픽 클래스라고 전부 같은 수준인 게 아냐.
당장 1번인 뮤와 15번인 나 사이의 격차만 봐도, 어? 알잖아. 내가 삼 초 안에 처발릴 자신 있었다.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사용한다 쳐도 어차피 매우 빠르게 처발리는 건 예정된 수순이겠지만.
다시 말해서 개개인의 역량도 대상에 따라 작거나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에픽 클래스는 막상 파고 들어가면 얘네들이 선망하는 것만큼 위대한 학생들의 모임 같은 게 아니었다.
어느 정돈 다들 하자가 있다고.
그 스텔라도 검술에 영 재능이 없는 걸 보면 완벽 초인들은 아니란 거다. 뮤가 규격 외로 특별한 거야. 걔는 아마 마음만 먹으면 에픽 클래스 월반도 헛웃을 만한 일은 아닐걸……
“역시 에픽 클래스들은 대단하네요…”
“제국의 미래니까. 저번에 에지오가 보여줬던 그 소멸의 기예도 참 놀라웠지. 음음.”
그러니까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말아줘.
가볍게 점 하나 찍어보려던 내 손가락이 빳빳하게 굳고 말잖아.
솔직히 말해서… 자신 없다.
이 몸뚱아리, 제법 쓸만하다곤 하지만 아직 완벽하게 익숙해지지도 않았고. 루비아나 스텔라, 눈앞의 헥토르 같은 애들이랑 비교하면 마나 다루는 데 있어 수준 떨어질 게 분명하니까.
“…미리 말하지만 나 뭐 없다? 기대하지 마라?”
“에이, 우리보다야 낫겠지. 에픽 클래스인데.”
“맞아요, 맞아요.”
아니 진짠데.
별로 신경 안 쓰려 했는데 막상 진지하게 눈을 반짝거리니, 곧 실망 내지 아쉬움을 드러낼 레니와 알프리스의 얼굴이 상상되어 괜스레 머쓱해졌다.
무엇보다 헥토르 저 녀석. 분명 비웃는 것처럼 조소를 지을 거다. 고작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느냐는 얼굴로. 그건 왠지 보기가 싫었다.
할 수 없나.
어차피 해야만 하는 일이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손을 들었다. 좌중의 시선이 내 손끝에 모인다. 조원들이 했던 것처럼 정신을 집중한 채 마력을 주입하여, 그대로 내리찍었다.
꾸욱.
잠시 뒤.
“……어라?”
레니가 그런 말을 흘렸다.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운 건 레니만이 아니었다. 알프리스도 매한가지였다.
그리고, 나도.
어, 음.
뭔가 이상한데?
분명 마력을 주입했다. 적절한 세기라 생각한다. 물론 내 마음처럼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글쎄. 도화지 위는 여전히 새하얗다. 말인즉, 아무런 점도 찍히지 않았다.
“히, 힘이 약했나 보네.”
레니가 그랬던 것처럼 너무 약하게 찍은 것일 수도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고서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주변의 소리 하나 들리지 않게 될 만큼 고요한 수면 아래 빠져든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교하고 정밀한 마나 컨트롤을 담는다. 손끝에 모든 정신력을 몰아넣은 채 아까보다 조금 더 강한 세기로 꾸욱, 하며 시트지를 눌렀다.
‘…됐나?’
이번에는 뭔가 주입되는 느낌이 나긴 했다.
거기서 위로 쭉 올려본다. 선을 긋는다. 중간에 무너져도 상관없다. 새로운 종이를 꺼내면 되니까. 그런 마음으로 직선을 그어보는데.
“……”
“……”
“……마력 제대로 넣은 거 맞아?”
“맞는데…… 뭐, 뭐지?”
이상하다.
여전히 도화지는 새하얗다. 어떠한 변화도 없다. 느낌은 오는데 반응은 없는 기묘한 상황이다. 이후로 몇 번을 찍어봐도 그대로였다.
그럴 린 없겠지만 혹시 마나가 텅텅 비었나 싶어, 아주 작은 스파크를 일으켜 봤다. 멀쩡하게 파직거렸다. 뭔데 이거?
“새, 새 종이로 해보는 건 어때요?”
“글쎄. 아마 똑같을걸……”
장비 탓을 하기도 좀 그런 것이, 나 빼고 전부 성공했잖는가. 실패한 것도 성공한 것도 아닌 애매한 결과가 나왔다. 그 탓에 레니와 알프리스도 실망한 게 아니라 아리송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나도 참, 이게, 곤란했다. 뭔지 몰라도 여기서 내가 실패하면 안 되는데. 안 그래도 조원 한 명 없어서 그 문제도 따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쩔 도리 없이 머리만 북북 긁던 와중.
“이미 칠해진 면 위에 해봐라.”
“……?”
헥토르의 목소리였다.
잠깐 멈칫하던 나. 무슨 말인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주홍색과 남색 등으로 범벅이 된 시트지. 그 위에 덮어씌우듯 칠해보란 거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냥 반응이 없는 거 같은데 그게 될까, 하는 생각을 자연히 하다가.
‘……아.’
문득 헥토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설마. 그런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이며 재차 손을 들었다. 반으로 잘린 타원형이 되어버린 레니의 주홍색 면을 향해 손가락을 움직인다.
아까와 같이 손끝에 마력을 담아, 그대로 쭉.
헥토르가 나지막이 입을 연다.
“역시.”
그러자
내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덮어씌워지는 것도 모자라 아예 구멍을 뚫어버린 것처럼. 레니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버렸다.
다만 물감이 섞이듯 서로의 색이 혼합되는 게 아니라, 오로지 나의 마나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일정한 굵기로 지익 그어지는 투명한 직선들을 바라보던 레니가 입을 벌렸다.
“안 보이는 게 당연했네요……”
백색(白色).
그게 내 고유한 마나의 색이었다.
#7
“에지오. 나 슬슬 속이 울렁거리는데.”
“…그럼 슬슬 여기까지 할까?”
“으윽, 마력을 너무 썼더니 머리 아파요……”
테이블에 축 늘어진 레니가 뒷머리를 싸맸다.
조별과제에 대한 논의는 정오를 지나 오후 5시까지 이어졌다. 아침은 다들 먹고 왔고, 점심은 카페에서 대충 해결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대략 7시간 정도를 카페에 죽치고 앉아 있었던 거다.
이런저런 토의 결과, 1번 과제는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만나서 그때 완성하기로 했다. 개인별로 가진 고유 마나의 색의 의미를 조사하고 정리한 뒤 한번에 모으는 식으로.
지금 당장 도서관에 다 같이 가서 자료를 조사해봐도 괜찮겠지만, 다들 일정이 있었다. 나와 레니는 몰라도 알프리스와 헥토르가 저녁 약속이 예정되어 있다는 듯하다.
마력 회로의 구조라든지 각자 특화된 부분이라든지는 이 자리에서 얼추 얘기를 나눴다.
알프리스의 경우 무수한 계열로 나뉜 마법을 다루는 만큼 범용성이 높은 측면으로 회로가 복잡하게 발달했다든지.
레니는 왜소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강력한 파워가 동반되는 일격기(一??)를 주로 사용하는지라, 특정한 타이밍에 마력이 한 점에서 폭발할 수 있도록 좀 더 튼튼하고 단순한 구조가 형성되었다든지……
여러모로 흥미로운 대화가 이루어졌다. 지식을 넓히는 데 있어 좋은 참고 자료들이 될 것 같았다.
더 세세하고 자세한 구조 같은 건 따로 조사를 해봐야 알 일이다. 이 역시 월요일날 만나서 해결하기로 했고.
전반적인 연구 논문 작성은 경험 많은 알프리스가, 발표는 내가 주도하기로 했다. 어디까지나 주도다. 나 혼자 하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어차피 전부 돌아가면서 하게 될 거고.
1번 과제는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2번 과제.
“……근데, 저희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요…?”
테이블 위를 정리하던 와중 레니가 중얼거렸다.
아직 집어넣지 않은 시트지. 내가 오늘 가져왔던 80여장 중 스물다섯 장째에서 덜컥 완성되어버린 결과물이 그곳에 놓여 있었다.
조원 한 명의 부재로 남은 한 개의 면을 제외하면, 모든 면이 깔끔하게 어디 하나 엇나가지 않고 채워져 있는 별 모양의 도형.
레니와 알프리스가 오늘 안에 못 할 거 같다고 말한 것치고는 매우 긍정적인 결과였다.
어쩌다 이런 결과가 나왔느냐면, 음.
내 색깔은 백색이다.
시트지랑 똑같은 색.
하물며, 나는 의외로 마나 감응의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헥토르와 별다르지 않게 미세한 조절까지 해가며 면을 깔끔히 채워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겼다. 결국 내가 무슨 짓을 한들 티가 안 났다. 멀리서 봐도 가까이서 봐도 내가 면을 채웠는지 안 채웠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처음과 똑같이 새하얗다.
물론 마나를 새기는 종이인 까닭에 검증한다면 제대로 마나가 주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테지만, 육안으로는 전혀 구분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아무튼 하긴 해야 하니까.
감각을 믿고서 채워보긴 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거, 지우개로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시트지에 그려진 것들은 일반적인 도구로 지울 수 없다. 대충 하얀 물감 뿌릴 수는 있어도 결국 지워지는 건 아니다. 어떻게든 티가 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아까 레니의 면 위에다 칠했던 나의 백색 마나는, 그 아래 자리했던 주홍색을 정말 감쪽같이 지워버렸다.
덮어씌운다는 개념을 넘어,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뭐랄지. 다른 사람의 마나와 닿으면 섞여들지 않고 그저 하얗게만 물들인다.
나를 제외한 알프리스와 레니, 헥토르의 마나는 서로 섞이면 물감처럼 그 중간 단계의 오묘한 빛깔을 내긴 했는데, 내 경우만 달랐다. 정말로 지우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원리일까.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결론은 그거였다.
아직 조절이 미숙한 레니와 알프리스가 실수한 부분들을, 내가 지운다.
그렇게 시범적으로 몇 번 슥슥 그어보고 나니까, 정말 감쪽같은 완성품이 만들어졌다. 별의 중앙은 아무래도 내가 가장 먼저 맨 아래층을 깐 다음에 칠해져야 하는 모양이라, 그렇게 했고.
뭔가… 뭔가…
편법으로 어찌저찌 만드는 데 성공했다.
내가 보기에도 썩 깔끔했다. 따로 도구 같은 걸 이용해서 오밀조밀 뜯어보지 않는 이상 약간의 조작이 가해졌다는 걸 아무도 모를 만큼.
물론 내 분량과 유스필의 분량이 하얀색 일색이긴 했지만. 미완성 같은 완성이랄지.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당연히 안 되지. 혹시 모르니까 더 연습해 와.”
“히잉……”
프론티어 교수가 바보도 아니고. 이런 페이크에 순순히 걸려줄 리가 없었다. 2번 과제는 어차피 개인 평가 항목도 있고. 특정 면 채우기에 실패하면 그 조원의 점수만 깎이는 게 아마 대부분일 거다.
그래서 나는 딱히 별 걱정하지 않았다. 레니와 알프리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열심히 하라는 말밖에 해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앉았던 테이블을 싹 정리하고, 사용한 식기들을 트레이 위에 올려 담았다. 조원들에게 연습용 시트지도 여럿 분배했다.
알프리스는 감만 잡으면 금방 해낼 것 같았고, 레니는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할 수 있을 거라며 어깨를 두드려주니 축 늘어진 채 헤픈 웃음만 흘렸다.
“아까 말해줬던 대로, 월요일날 보자.”
“그래. 수고했다, 에지오. 레니도. 헥토르도.”
“고생하셨어요오……”
“……”
카페를 나선 우리들은 인사를 마친 뒤 각자 목적지를 향해 갈라졌다.
레니는 기숙사로, 알프리스는 다른 트램 정거장으로. 헥토르는 에픽 클래스 기숙사에 들릴 줄 알았더니 나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듯했다.
등을 돌리기 직전 날 보며 언제나 그랬듯 혀를…… 차진 않았고, 그냥 무심하게 쓱 돌아보다 그냥 길거리 속으로 사라졌다.
“피곤하네…”
너무 머리를 썼나. 여기저기가 쑤셨다. 눈알에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집중하며 마나를 써댔던 것도 꽤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기숙사로 돌아가서 좀 쉬다가 밥 먹고 운동이나 해야겠다. 그 뒤엔 3동에서 개인 훈련도 해야 하고. 도서관 들려서 자료 조사도 좀 해야 하고. 뭐가 이렇게 바쁘지?
“……”
그것들 외로도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당장 내일 예정된 엘레나 선배님과의 면담. 거기서 내가 엘레나 선배님께 반드시 질문해야만 하는 것들. 얻어내야만 하는 것들. 아직도 매듭짓지 못한 일들.
한시라도 빨리 떼어놓고 싶은 혹 같은 것들이 내 머릿속 안에 너무 많았다.
마음 편한 학교 생활이 도저히 안 돼.
이렇듯 뭔가에 몰입하던 순간이 팍 깨져버리면, 밀물처럼 들이닥치는 고민들이 날 삽시간에 뒤덮기 시작한다. 머리도 아픈데 그냥 돌아가 쉴까.
“후우.”
…모르겠다.
일단 기숙사로 돌아가자.
머리든 몸이든 푹 쉬고 나면, 뭐라도 되겠지.
#8
트램에서 내리니 있던 기운도 쭉 빠져서, 오늘은 그냥 밥이고 뭐고 들어가 잠이나 자야겠다, 그리 생각했는데.
“후배야아아아아!”
……어, 그래.
왜 안 오나 했다.
쉴 틈이 없네, 진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