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날 차버린 소꿉친구와 전 여친이 같은 반이라 곤란하다-76화 (76/201)

〈 76화 〉 마무리 (4)

* * *

#10

“오늘은 괜찮지? 약속 없지? 응?”

“저, 선배님… 이런 행동은 부담스럽다고 제가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

“아이, 그래서 약속 있냐구 없냐구.”

“없…… 긴 합니다.”

“그럼 됐네 뭐! 같이 밥 먹으러 가자!”

“……”

이걸 딴 핑계 대고 도망갈 수도 없고.

여느 때처럼 내 팔을 마음대로 끌어당겨 식당 쪽으로 이끄는 레이린 선배. 굳이 말로 안 해도 대충 피곤하단 표정 지어주면 알아서 물러날 줄 알았건만, 헛된 희망이었다.

남들이 보든 말든 질질 끌려가는 모양새가 되어 결국 기숙사 식당 한켠 테이블에 같이 자리하고 말았다.

“후배랑 밥 한번 같이 먹는 것도 힘들다. 친해지는 것도 힘들구. 너네 담임 교수가 우리랑 하는 친목회 취소했다면서? 타일러 교수님이었나?”

“예, 뭐……”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몰라­. 안 그래도 작은 학교잖아. 나 같은 선배들이랑 얼굴 한 번씩 터야 모르는 것도 알려주고 밥도 사주고 그러는 건데 말야. 아, 여기 밥 말구 밖에 나가서 먹는 거. 가끔 식당 메뉴가 질릴 때도 있거든.”

“아하……”

“그 교수님 있잖아. 타일러 르베귄. 나 1학년 때랑 2학년 때도 되게 유명하신 교수님이었거든.”

“그래요?”

“응. 게으른 천재라구. 그 교수님이 연금술로 만드신 포션들 같은 거, 뭐 하나 개발될 때마다 거의 뭐 하나같이 죄다 포션계의 혁명 수준이었거든. 아마 상상 속에서만 전해지던 엘릭서(Elixir)와 가장 비슷한 포션을 최초로 만들었던 사람이 타일러 교수님이었을걸?”

“……엘릭서를?”

영혼 없는 리액션과 함께 이것저것 널린 음식들을 접시 위에 담던 도중 레이린이 그리 말하자, 나는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엘릭서라. 한 모금 홀짝 마시는 것만으로도 잘린 팔다리가 알아서 쓱 붙는다는 마법의 음료수 아닌가.

“응. 컥 하고 죽은 사람이 마시면 와! 하고 살아나는 그거.”

“그걸 만들었다고요?”

“물론 열화판이야. 아무래도 이미 죽은 사람까지 살리는 건 불가능했다나 봐. 대신 한 병 전부 마시면 최고위 대신관만이 일 년에 한 번 다룰 수 있는 축복과 비슷한 효과를 주긴 했다더라.”

그건 그거대로 엄청난 일이네. 팔다리는 고사하고 목이 잘렸어도 도로 붙었을 거다. 물론, 갓 잘린 따끈따끈한 목이라는 전제하에. 아무렴 일정 시간을 벗어나면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어질 테니까.

“제조에 들어가는 재료가 재료인지라 한 번 만들고 나서 그 뒤론 시도조차 못 했던 거 같지만. 그래도 만들었을 당시의 레시피는 있었을 거 아냐? 그거 하나 구입하자고 어지간한 제후국 국고 수준의 라트 보증 수표가 여기저기서 막 쏟아졌다는데…… 하여튼 대단하신 분이셔. 그치만 교수라는 직책에 적성이 맞으신 건진 잘 모르겠다. 히히.”

매일 혈색 없이 썩은 표정으로 구부정하게 다니던 타일러의 모습을 떠올렸다. 연금술이란 대체 뭘까. 과연 무엇이기에 그런 세기의 천재로 칭송받을 사람을 약쟁이처럼 만드는 것일까……

“아무튼 그래서, 나는 너뿐만 아니라 후배들 얼굴도 제대로 못 봐서 많이 아쉬워. 이번 신입생들은 다들 예쁘구 멋지구 귀엽다던데에… 에지오 너만 봐도 대충 알 것 같지만 말야. 어쩜 그렇게 생겼니? 진짜 신이 내린 육체라니까, 너는?”

참새처럼 조잘거리는 레이린 옆에서 무지성으로 끄덕거리며 음식을 담고 있자니, 어느새 나와 레이린은 식당 1층 창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었다. 이대로 포크를 들면 음식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도 모를 기세였다.

“많이 먹어, 많이. 너 평소에도 그 몸 유지하려면 많이 먹을 거 아냐? 운동도 잔뜩 할 거구.”

그러면서 육즙이 줄줄 흐르는 큼지막한 스테이크 두 덩이를 내 접시 위에 얹어준다.

죄송하지만 이렇게 많이는 못 먹는데요. 많이 먹는다는 게 별로 틀린 말은 아니긴 해. 소비한 만큼 보충을 해야 하니까. 근데 오늘은 딱히 이렇게까지 안 먹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하나만 먹을게요. 하나만.”

“엑, 그걸로 되겠어?”

“안 그러면 백 퍼센트 남길 걸요. 그리고 오늘은 별로 많이 못 먹을 것 같아서요.”

“…어? 왜? 속 안 좋아?”

레이린이 눈을 깜빡거리며 내게 물어온다.

그제야 내 표정을 살펴보는가 싶더니, 앗… 하는 소리와 함께 말했다.

“안색이 별로네. 어디 아파…?”

“아픈 건 아니고… 조금 피곤하네요. 아침 일찍부터 조별과제 회의 좀 하고 오는 길이었던지라.”

“그, 그랬구나아……미, 미안해. 드디어 마음에 드는 후배랑 같이 밥 한 끼 먹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너무 신나서……”

레이린이 쭈글해졌다. 나이프로 고기를 빠르게 썰던 움직임도 급격히 느슨해졌다. 입술을 앙 다물고선 눈썹을 안쪽으로 휜 채 포크를 든다.

먹기 좋게 잘린 스테이크를 콕 찍고, 오물거리던 작은 입에 슬며시 가져다 넣었다. 양념 소스가 접시 위로 뚝뚝 떨어진다. 그 모습을 가만 지켜보던 내가 한마디 했다.

“그러다 옷에 묻어요.”

“으, 응?”

“카디건에 소스 묻겠어요. 겉옷은 벗고 드시지.”

“아……”

팔을 쭉 내리면 손등을 전부 덮을 정도로 품이 넓은 분홍색 카디건. 내 손목 부근을 툭툭 두드리며 그리 말하자, 고개를 끄덕인 레이린이 카디건의 팔목을 몇 번 접었다. 놀라울 정도로 얇고 뽀얀 손목이 드러났다. 농담 하나 안 치고, 검지랑 엄지로 고리 만들어 잡은 뒤 힘 세게 주면 그대로 부러질 것 같다.

“그러다 묻는 게 아니라 이미 묻었네요.”

“…엑, 진짜?”

“네. 여기 티슈.”

접기 전 아래쪽에 소스가 약간 묻어 있는 걸 봤다. 테이블 위에 떨어진 소스와 접촉한 나머지 생긴 불의의 사고였다.

그나저나 레이린도 우아하게 자란 귀족 아가씨였을 텐데. 음식 흘리고 먹으라 배우진 않았을 테고. 아까 말한 것처럼 흥분 상태라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 아하하. 부끄럽네에. 후배한테 이런 지적도 다 받구…… 선배로서 위엄이 안 살잖아?”

“흘리고 먹을 수도 있죠, 뭘.”

“그, 그런가…… 일단 티슈 고마워.”

레이린이 묻은 부분을 슥슥 닦았다. 물론 얼룩이 전부 지워지진 않는다. 세탁 관련 생활 마법을 쓸 줄 안다면 금방 해결할 수 있겠지. 티슈로 몇 번 문지르던 레이린이 문득 울상을 지었다.

“아끼는 옷인데… 히잉……”

입술까지 오물거린다. 내가 물었다.

“아끼는 옷이에요?”

“아, 응. 내가 직접 만든 거라서……”

“……어. 진짜요?”

뭐야. 수제작이었단 말인가?

“응… 저번 겨울 방학 때 만들었어.……왜, 왜? 이상해? 나는 나름 잘 만들었다구 생각했는데…… 네, 네 눈에는 아닐 수도 있구. 응. 너무 그렇게 자세히 보면 안 된다…?”

척 봐도 쓰인 울 원단이나 봉제나 재단이나 마감 솜씨나 시중에서 판매하는 고급품들 그 이상의 품질인 듯 보여서, 영락없이 비싼 옷이겠거니­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손수 만들었다니. 그건 꽤나 놀라운 사실이었기에 나는 순수히 감탄하고 말았다.

“대단하네요, 선배.”

“……어?”

“대단하다고요. 선배가 말해주기 전까진 몰랐어요. 귀족들 사교장에서 쓰이는 복식은 아니지만, 고급스러움 만큼은 전혀 뒤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가 않았거든요. 명품이네요. 직접 만든 거라면 시중에 판매하는 명품보다도 더 가치 있겠죠.”

“며, 명품이라니. 가당치도 않아. 이건 그냥……”

레이린이 당황하며 손사래를 젓는다.

나는 대신 느릿하게 도리질을 한다.

“물론 제가 옷에 대해 그리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일반인인 제가 보기에도 썩 명품 같아 보이면 무척 대단한 거 아닐까요? 육안으로 어설픈 곳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것부터가 엄청나다고 생각해요. 저는.”

“……”

“패션 서클 회장이시라더니, 과연 회장직 맡을 만하셨네요. 음. 이 정도 디자인이나 제작 실력도 있으시고, 열정도 충분하신 거 같고…… 왜 신입부원들이 도망을 갔을까요. 일단 신청을 했으면 관심은 있었다는 건데. 이런 능력자 선배님을 보고서도 나갔다는 게 참…… 신기할 따름이네요.”

“……”

“아, 그렇다고 제가 패션 서클에 들어가겠단 얘기는 아닙니다. 그거랑 이건 좀 다른 얘기인 거 아시죠?”

“응… 아는데, 아는데 후배야……”

레이린이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후배야…… 나 울어…”

“……아니, 울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어요. 그냥, 진짜 대단해서 그래요. 저는 약간 그런 게 있거든요. 다른 사람들의 끝없는 노력이나 재능의 산물 같은 걸 보면 괜히 존경스럽고 그래요.”

“응… 응… 알아, 우리 후배 착한 거.”

레이린이 손끝으로 눈가를 슥 훔쳤다.

갑작스런 내 극찬에 감동 먹은 건가. 그래도 정말 순수히 경탄했을 뿐이다.

일전에 레이린이 말했듯 폐부 위기라는 상황도 겹쳐서 좀 안쓰럽기도 했고. 이 조그마한 학교에 서클 회원이 많아봤자 얼마나 많겠나 싶겠냐만, 레이린 포함 세 명은 좀 어떨까 싶다. 몇 번 대화를 나눠 보니 그리 나쁜 선배인 것 같지도 않은데. 왠지 잘 됐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일까.

“사실 내 옷 칭찬해 준 사람은 너밖에 없는 건 아닌데, 이렇게 칭찬해줘서 울 정도로 감동 먹은 건 너밖에 없어. 엄청 엄청 기쁘다. 이거 만들 때도 사연이 많았어서, 네가 날 알아주는 것 같아서 가슴이 막 멋대로 울컥하는 거 있지. 이런 적은 정말 처음이야……”

아니, 그 정도까지?

얼마나 진심 어린 칭찬에 고팠으면 이럴까.

“후배야. 정말 진심으로 말하는 건데.”

“네.”

“패션 서클, 들어와 볼 생각 없어? 나 이번으로 확신했어. 나한테는 네가 꼭 필요해. 아니다. 어쩌면 서클 안 들어와도 될지 몰라. 서클 없이도, 너만 있으면 나는 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 지금보다 더 가깝게 지내고 싶어. 어떻게, 안 될까?”

애절한 눈빛이다. 진짜로 나를 원하고 있다는 마음이 강렬하게 전달되는 눈빛. 말하자면 내 입장에선 다소 부담스러운 얼굴이다.

레이린이 상체를 내밀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내 손까지 덥석 붙잡는다. 아니, 우리 공공장소인 식당에서 이러진 맙시다. 예? 사람들 다 보잖아요. 저기 지금 가브리엘도 있는 거 같은데. 아니 뭐야 진짜 있네.

“……그냥 친하게 지내자는 말이죠?”

내 손을 감싼 레이린의 손으로부터 슬며시 벗어났다. 레이린은 아쉬운 듯 눈을 흘기다가, 곧 작게 고개를 주억인다.

“너만 괜찮다면, 가끔 같이 놀러도 가고. 밥도 같이 먹고. 폐부…… 될지 안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서클 전용 룸에서 부원들이랑 같이 놀기도 하구. 내가 만든 옷도 좀 입어줘 보구. 너는 딱히 뭐 안 해도 되니까. 내가 다 알아서 할게.”

“그, 선배님. 제가 전혀 싫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응, 응…”

“그렇게까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낼 수는 없고요. 제가 좀 여러가지로 바빠서. 공부나 훈련 외의 시간을 잘 못 만들어요. 그래서 선배님 서클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서클 활동 자체에도 별로 관심을 줄 수가 없었던 거고……”

“되, 되게 성실하구나, 너……?”

“…아무튼 그래요. 물론 선배님이랑 친해지면 저야 좋기는 하겠죠. 아직 학교 생활이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이러저러 2학년이나 3학년 수업에 관해 배울 게 있기도 할……?”

“……”

“……선배님?”

레이린이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서클 활동에 집중하느라, 공부… 많이 안 했거든……”

“……”

“그래서 아마 가르쳐 줄 게 없을… 진 않을 거야. 왜냐면 내 친구들이 있으니까. 응. 아마 걔들한테도 너 소개시켜주면 되게 좋다고 막 잘해줄 텐데, 내 친구 중에 공부 잘하는 애 몇 명 있으니까… 걔네한테 배우면 되지 않을까…?”

아, 예. 뭐.

그 부분은 일단 넘어가는 걸로.

“아무튼 제 입장은 그래요. 정말 죄송하지만 서클에는 가입을 못 할 거 같고… 학교 생활 쪽에서 도움을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공부 빼고.”

“네. 공부 빼고요.”

정말 어지간히 던졌나 보구나……

“솔직히 저희 아직 몇 번 보지도 못했잖아요? 갈수록 얼굴 빈번히 맞대게 될 텐데, 어떻게든 친해지겠죠. 서로 편하게 지내요. 편하게. 선배 되시는 분한테 해도 될 말인진 모르겠지만, 레이린 선배가 이런 걸 더 편하게 여길 것 같아서.”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너 진짜 갈수록 마음에 든다, 후배야. 혹시 괜찮으면 나랑 사귈래?”

“…네?”

“농담이야. 표정 심각한거 봐. 흐흫.”

무슨 농담을 그리 살벌하게.

레이린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더니.

유니폼 주머니 안에서 뭔가 주섬주섬.

내게 그것을 슥 내민다.

“그러면 이거 받아, 후배야.”

“……이게 뭐죠?”

“우리 서클 전용 룸 카드키.”

“예?”

그걸 왜 저한테 줘요.

“학생회관에 우리 서클 전용 룸이 하나 있거든? 거기 원할 때 네 마음대로 들어가서 쉬어도 되고, 안에 냉장고에 있는 거 아무거나 집어 먹어도 되고. 졸리면 자도 되고. 그냥 네 집이다­ 생각해. 서클 가입 안 해도 되니까 그냥 받아. 부원들한테는 내가 얘기해 둘게. 이거 너한테 줘도 각자 카드키 하나씩 있으니까 걱정 말고.”

“아니, 괜찮……”

“받아줘, 후배야. 안 와도 되니까. 올해 신입 부원을 딱 한 명 받을 생각에서 준비했던 건데, 아무래도 너밖에 없는 것 같아. 너 말곤 받을 만한 신입생도 안 보이고. 어차피 너 안 받으면 버릴 거나 마찬가지라 그냥 받는 게 좋아. 자, 넣어둬. 넣어둬.”

“어엇, 어……”

억지로 내 유니폼 가슴팍 주머니에 카드키를 집어넣은 레이린은, 그제야 후련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씨익 웃었다.

“후배야. 난 평소에 별일 없으면 거기 들어가 자거든? 주로 저녁 먹고 밤에.”

“…그런데요?”

“그냥, 그렇다구.”

턱을 괸 채로 배시시­ 웃는다.

그냥 그렇다니까 나도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간단히 말해서 아무 생각 안 하겠단 소리였다.

“후배야, 그럼 우리 이제 친구인 거야?”

“…글쎄요?”

친한 선후배 사이를 친구라 불러야 하나?

아니, 아직 완전히 친한 것 같지도 않긴 한데.

“아, 얘들아!”

레이린은 멋대로 받아들이곤, 별안간 접시를 든 채 우리 옆을 지나가던 어떤 여학생 무리에게 말을 걸었다. 거기서 단발머리를 한 여학생 한 명이 삐딱하게 고개를 돌린다. 가슴팍에 새겨진 문양 위에는 레이린과 똑같이 별 세 개가 달려 있었다.

“뭐야, 우리 버리고 튄 배신자잖아?”

“미안 칭기덜! 근데 나 얘랑 친구 먹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생! 짱 멋진 후배!”

“…오? 진짜네?”

“나 얘 알아. 걔 아니야? 이번에……”

“너희 이제 밥 먹는 거지? 일로 와봐, 얘 진짜 착하고 멋있어. 우리랑 같이 먹자. 우리 에지오 소개시켜줄게. 물론 내가 먼저 친해졌으니까 나보다 더 친해지면 안 돼.”

아니.

진짜 왜 이래요 나한테.

그냥 일어날까?

라고 생각하며 행동에 옮기기도 전에, 여학생 선배 세 명이 우르르­ 나와 레이린이 앉았던 테이블 의자에 착석했다. 방금 전 단발머리 선배가 이번에는 나한테 말을 걸어온다.

“안녕, 후배야. 이름이 뭐니?”

“에지오 크라닐이래.”

“조용히 해 이년아. 나도 알거든?”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야, 레이린. 친구가 어색해하잖아. 이래도 돼? 빨리 네가 우리들 좀 소개해줘봐. 그렇다고 저번처럼 나이 잘못 알려주면 진짜 죽인다.”

“머리 자연이야? 신기하다­. 보들보들해.”

아.

속이 거북해……

이런 자리, 역시 익숙하지 않다……

누가 날 꺼내줬으면 하는 마음에 주변을 잠깐 둘러보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알드리에와 밥을 먹고 있던 가브리엘이 날 보며 싱긋 웃고 있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저 녀석, 포크를 역수로 쥐고 있던 거 같은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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