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날 차버린 소꿉친구와 전 여친이 같은 반이라 곤란하다-78화 (78/201)

〈 78화 〉 마무리 (6)

* * *

#12

“푸하­ 벼, 변태 새끼……!”

입에 걸린 주박을 풀어주자마자 매도를 당했다.

어느덧 불그스름한 노을이 하늘 아래로 뚝 떨어지는 시각. 그림자가 드리운 건물 길목의 벽을 등지고 선 유리가 몸을 벌벌 떤다.

“가, 가까이 오면 소리 지를 거야.”

“…너 잡아먹으려고 여기 데려온 거 아니거든.”

입을 틀어막는 동안 유리의 숨결이 몇 차례 닿은 탓에 약간 흥건해진 손을 대충 옷가지에 닦고, 나는 자그마한 한숨과 함께 말했다.

“애들 앞에서 헛소리 하면 안 되지. 임마.”

“애, 애들한테 다 말할 거야. 넌 남이 빨아준 손수건 냄새를 계속해서 진득히 맡는 진짜 변태 중의 변태라고……”

“우리 확실히 하자. 나는 분명 그 손수건 냄새가 신기해서 맡아봤던 건 맞지만, 네가 생각하는 그런 변태는 아니야. 어떠한 뒤틀린 성적 취향도, 냄새 페티쉬 같은 것도 없어.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유리는 당연한 소릴 왜 하냐는 듯한 얼굴로 날 쏘아봤다. 억울하네 진짜.

“……좋아. 손수건 냄새를 맡았던 것과, 내 생각보다 향기로웠던 건 부정하지 않을게. 그건 분명한 사실이잖아?”

“여, 역시 변태 맞잖아……!”

유리가 경악한다. 내가 손을 들었다.

“아냐. 들어봐. 난 그냥 신기해서 그랬어. 순수한 호기심이었다고.”

“그게 지금 말이 되는……”

“남이 빨아줬으니까 분명 평소에 내가 쓰던 손수건 냄새랑은 꽤 달랐겠지. 네가 직접 세탁했을 거고. 그런데 너는 귀하게 자란 왕녀님이시잖아? 평소에 옷가지 직접 세탁해 본 적 있어?”

“……없는데. 그거랑 대체 무슨 상관…”

“매우 큰 상관이 있지. 거기서 새로운 호기심이 발동했거든. 손수건에선 네 교복과 비슷한 냄새가 나는데, 이걸 세탁할 때는 뭘 쓴 걸까. 같은 걸 쓴 걸까. 꽤 독특한 향인데. 좋은 걸 쓰네. 교복이랑 같은 냄새가 나는 걸 보면 손수건은 직접 세탁한 걸 텐데.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혀봤을 것 같은 왕녀님이 제 손으로 세탁한 손수건이라니. 오호, 이거 귀하네요. 이런 의식의 흐름이……”

에라이 시발. 뭐라는 거야.

모르겠다.

“…아니, 잠깐만. 그냥 냄새 좋아서 맡았다는 건데 뭐가 변태야? 갑자기 이해가 안 되네?”

나 혼자 말하다 말고 급발진하는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던 유리가 대답하듯 중얼거린다.

“자, 자기가 변태란 것도 자각 못 하는 변태인 거야……? 너 진짜 저질이구나……?”

“아니, 솔직히 맞잖아. 나 변태 아니라니까? 누가 너 냄새 안 좋대? 계속 맡아볼 정도로 좋은 걸 좋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

“……무, 뭐? 머?”

유리는 그만 뇌정지가 온 듯했다.

“길 가다가 향기로운 꽃 있으면 괜히 몇 번 맡아보고 싶잖아? 나도 그냥 그랬던 거거든? 잠깐 생각해 보니 이렇게까지 매도당할 일인가 싶어서 열이 뻗치네? 내가 감옥에 끌려가 옥살이를 할 만한 불경죄를 저질렀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냐? 얘기도 제대로 안 들어보고 변태 새끼라느니­ 아까 나랑은 친하지도 않다느니­”

“뒤, 뒤에 건 상관 없잖……”

“그래서 그렇게 말 했어 안 했어. 딱 말해.”

“……해, 했는데 뭐.”

유리의 기세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어라.

그냥 억울해서 다박다박 아무 말이나 뱉은 것에 가까운데, 어쩌다 보니 해결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이대로 밀고 나가면 될지도?

“나 같은 사람은 말이야. 내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내 눈앞에서 날 친구 아니라고 할 때 엄청 크게 상처를 받아. 알아?”

“……그, 그걸 내가 어떻게 알…”

“모르면 이제부터라도 알아야지. 난 너랑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내가 좀 곤란해. 조금이 아니라 많이 곤란해.”

“……”

“내가 너랑 더 친해지고 싶다는 표현은 전부터 많이 해왔었지? 전에 너 운동할 때도 그랬었고. …그래, 그것도 있었네. 내가 넘어져서 위험할까봐 잡아준 것뿐인데 정작 고맙단 말도 하나 없고. 나 억울해서 어떻게 사냐 진짜.”

“……”

“유리야. 나 많은 거 안 바란다.”

“……”

“다시 물을게. 너 나랑 친하냐 안 친하냐.”

“……안 친하지 않아.”

“그게 말이야 방구야. 제대로.”

“머, 뭐…! 이 정도면 됐……”

“너 내 친구 맞아? 응, 아니­ 로만 답해.”

“……응.”

“근데 아까 왜 그랬어.”

“……”

“쓰읍.”

“……모, 몰라.”

“모르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지?”

“……장난 치는 게 아니라, 진짜 모른다구. …아, 아마 너랑 같이 여행 갈 수 있을 만큼 친한 거 아니라고 하는 뜻에서­”

“아, 그러니까 나랑 친구는 맞는데 여행은 좀 선을 넘었다? 나랑 같이 가는 게 부담스럽다?”

“다, 당연한 거 아냐? 어떻게 이성이랑……!”

“그럼 그렇게만 말하면 되지. 뭘 딱 잘라서 나랑 안 친하다고 말할 필요까지 있었냐?”

“……”

유리는 조용히 침묵했다. 옳커니.

“다시 생각해 봐도 나 많이 아프다. 유리야. 너한테 조금 실망했다. 표현이 다소 서툴러도 본심은 착한 아이라 생각했는데. 진심 어린 사과의 한마디 정돈 해줄 수 있는 거 아닐까 싶네……”

“……”

“사실 나만 너랑 친해지고 싶었던 걸 수도 있고. 지금까지 너한테 괜히 부담만 줬던 거라면 미안하다. 내가 많이 부담스럽고 싫으면 난 여기서 너한테 더 다가가지 않을게.”

“무슨……”

“애들한테 네가 뭐라고 해도 신경 안 쓸 거고, 나한테 사과 같은 거 안 해도 돼. 이제부터 그냥 적당히 아는 사이로 지내자. 나도 억지로 친구 만들고 그럴 생각은 없어. 앞으로 자주 봐야 되는 만큼 가급적 빨리 친해지는 게 좋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근데 정 나랑 친해지는 게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잖아. 그치?”

유리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그… 그런 게……”

“그런 게 아니고 너도 나랑 친해지고 싶다고 하면,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그냥 딱 사과 한마디만 해줘. 그거면 끝이야. 다른 거 전부 필요 없으니까. 만약 그 반대라면, 뭐…… 여기까지 괜히 끌고 와서 미안해. 그만 돌아가도 좋아. 아니다. 그냥 내가 먼저 돌아갈게.”

“……”

쉴 틈 없이 폭풍처럼 밀어붙이자 유리는 내 눈만 겨우 피하면서 말 더듬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내가 진심으로 서운한 듯 티를 내고, 서글픈 듯 쓴웃음까지 지어 보이자 눈에 띄게 안절부절하다가 결국 마지 못해 모기만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미, 미안…”

내가 이겼다.

나는 부드럽게 웃어주며 말했다.

“그래, 역시 착하잖아. 이래서 난 네가 좋아.”

“……!”

스윽, 스윽.

타악.

“이, 이건 진짜 하지 마아아…! 진짜 싫다구.”

“알았어, 알았어.”

“알았긴… 그러면서 또 할 거잖아…”

어떻게 알았지.

싫어하니까 일부러 그러는 맛이 또 있는 건데.

아무튼 내심 상처 받은 건 진심이다. 원체 이런 쪽 감수성이 민감한 사람이라. 그래서인지 더 억울한 마음이 배가 되었던 거고.

좋아. 어떻게든 어영부영 넘어가는 데 성공했다.

라고 생각했건만.

“…근데, 그건 진짜 변태 같잖아. 객관적으로 보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 아냐……? 네가 빨아준 손수건을 돌려받고 누가 코로 깊숙하게 킁킁거린다 생각해 봐. 이상하지 않냐구……”

자리를 떠나기 전 그리 중얼거리길래, 턱을 가만 쓰다듬던 내가 반론했다.

“물론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변태는 아닐 수도 있지. 수상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악질 범죄자인 건 아니잖아?”

“그, 그렇긴 한데……”

“그리고 이건 결과적으로 널 칭찬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냄새가 좋다고 하는 게 도대체 왜 나빠? 사람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데엔 얼굴도 중요하지만 몸가짐, 그중에서도 냄새가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해. 그런 점에서 유리 너는 대부분의 남들에게 완벽에 가까운 첫인상을 줄 수 있다는 거야. 얼굴도 인형 같이 되게 귀엽고 예쁘고, 냄새도 달달한 우유랑 상큼한 레몬처럼 향기롭고 그윽하고……”

“그, 그만, 그만해. 더 변태 같다구. 진짜로! 알았으니까! 냄새 얘기는 이제 더 하지 마……”

유리는 그쯤 진심으로 질색하는 것 같았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하는 표정을 짓다가 결국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처음으로 사귄 이성 친구가 뭐 이딴……”

“어, 내가 처음이야? 의외로 기쁜데.”

“기뻐하지 마. 기분 나빠.”

어깨를 쓸며 으으, 하던 유리가 말을 잇는다.

“……그동안 왕궁에서만 살았으니까. 또래 남자애는 어릴 때 빼곤 거의 본 적 없어. 귀족들 자식이랑 몇 번 보긴 했는데, 배운 것들이란 게 하나같이 어리기만 해서… 마음에 안 드는 녀석들뿐이었어.”

그림자 드리운 벽면에 등을 기댄 채.

유리는 중얼거리듯 입을 연다.

“그리고, 보기 싫어도 보인단 말야. 지금으로선 적법한 왕위 계승자가 나뿐이니까, 자기들 자식이랑 나랑 어떻게든 엮어볼려고 하는 것들이랑… 심지어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건지, 날 보는 눈에 더러운 욕망이 그득해선. 가진 것들이 더 해. 거기서 더 가지려 한다구. 끝도 없는 권력욕이나, 심지어는… 성욕까지. 도저히 이해가 안 돼. 성년된 지 한참 넘은 주제에, 고작 열 살 조금 넘게 먹은 어린애한테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거야, 걔네들은……?”

고운 눈썹이 안쪽으로 휘어지고, 작은 앵둣빛 입술을 질근 깨문다. 상당히 좋지 못한 기억이 얽혀 있는 듯했다. 아무래도 과거의 일인 듯한데. 지금보다 더 어린 모습의 유리를 떠올려본다.

세상에. 여기서 더 작고 귀여워진다고?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주고 싶어질지 모른다. 사진 남아 있다면 보고 싶네. 아무튼.

그런 어린애한테, 음심(?心)을 품는다라.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솔직하게 역겹다.

“…내가 널 변태 새끼라고 하긴 했지만, 너한테는 그런 게 안 보이니까. 특별히 접근하는 걸 허락해주고 있는 거야. 알겠어? 고마워하라구.”

유리가 입술을 삐죽이며 손가락으로 내 어깨를 꾸욱 찔렀다. 별로 안 아프다.

결국 평소의 유리로 돌아오긴 했지만, 이야기를 꺼내며 이마 맡에 은근히 어려 있던 그림자까진 아직 그대로였다.

그래. 아무 이유 없이 제멋대로인 말괄량이 아가씨가 되진 않았겠지. 거기에는 유리 나름의 사정과 고충이 섞여 있을 것이었다.

“어. 고맙다. 나랑 친구해줘서.”

“……알면 잘해. 내가 딱히 말 안 해도 어디에서 민감해지는지 대충 생각하고 행동하란 말야.”

“아니, 그건 힘들지. 말은 해줘야 알 거 아녀. 내가 무슨 독심술사도 아니고.”

“……”

그 말을 꼭 해야겠냐는 듯 질린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유리가, 다시금 푸욱 한숨을 내쉰다.

“돌아가서 잠이나 자. 지금 다크서클 엄청나니까.”

“……어, 그래?”

따로 지적받을 정도인가.

가만 얼굴을 만져보다 머리를 주억였다.

“피부가 좀 거칠긴 하네.”

“그래. 그러니까 들어가 자라고. 난 이제 애들한테 돌아갈 거야.”

그 말과 함께 유리가 벽면에서 등을 떼었다.

길목 밖으로 걸어가는 유리를 문득 돌아본 나는.

“……손수건, 말하면 안 된다?”

“안 해!”

갸악­ 하고 성난 고양이처럼 털을 세워보이던 유리가 말총머리를 살랑이며, 저 멀리 사라졌다.

#13

일요일. 오후 2시.

프론티어 본부에 도착해 메이드의 안내를 받고 지하로 내려간 나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로 같은 복도를 지나 어느 밀실 앞에 멈춰 섰다.

“안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를 마친 메이드가 그리 말하곤, 내 뒤쪽으로 스르르 빠져 나갔다.

굳게 닫힌 철문. 어째서인지 문을 열기도 전에 복도 여기저기 묻어 있는 듯한 찌든 담배 냄새가 만연해 있었다. 이 안은 더 심각할 것 같은데. 어쩔 수 없다.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갈 수도 없었으니, 나는 자그마한 심호흡과 함께 문 손잡이를 잡고 조심스레 밀어 열었다.

끼이이익……

“저 왔습니다, 엘레나 선배니… 콜록, 켈록.”

육중한 철문이 끼긱거리며 열린다. 잿빛 연기가 훅 끼쳤다. 손을 휘휘 저으며 연신 콜록거리던 내가 겨우 눈을 뜨고 앞을 바라봤다.

내가 사전에 듣고서 찾아왔던 엘레나 선배님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질 않고, 웬 거지 한 명이 테이블 앞 의자에 흐물거리며 걸터 앉아 있었다.

“…어, 왔냐.”

담배, 담배, 담배, 그리고 재떨이. 구울(Ghoul) 같은 목소리가 쩍쩍 울렸다. 테이블 위에 처박았던 이마를 느릿하게 든다. 누가 보면 여기 수감된 죄수인 줄 알겠는 얼굴,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해 보이는 피폐한 얼굴의 엘레나가 몽실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앉어.”

“……”

손을 휘적인다. 분부대로 의자에 앉았다.

“잠깐만. 쓰읍… 후우……”

한 차례 새로운 줄담배를 태우던 엘레나가, 기름기 줄줄 흐르는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넘기고, 옆에 산처럼 자리한 서류 뭉치에 손을 대는가 싶더니 에이 썅, 하는 소리를 냈다.

“볼 필요도 없지. 이미 다 알고 있는 건데.”

“저는 왜 부르셨……”

“닥치고 있어 봐. 질문은 내가 할 테니까.”

“네, 넵……”

내가 정자세로 바르게 고쳐 앉았다.

“새끼, 그래도 네 좆같이 잘생긴 얼굴 보니까 여전히 새롭네. 기운이 절로 난다야. 거짓말이지만.”

“……”

“널 부른 이유는 별거 없어. 근황 토크지. 근황 토크. 글고 내가 널 부른 것도 맞는데, 어차피 내가 안 불렀어도 프론티어에서 널 불렀을 거다. 이번 사건 여파가 꽤 컸거든. 거기 직접적으로 연루된 사람들 죄 불러다 조사해야 하니까. 개중엔 네가 1순위였을 텐데­ 쓰읍, 후우… 어쩌다 보니 네가 가장 마지막이 됐다. 이해해라.”

뭘 이해하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기운 빠지도록 픽 웃던 엘레나는 순식간에 태워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아주 자연스럽게 새로운 담배를 꺼내어 꼬나물었다.

“후배.”

“네, 선배님.”

“뭘 원하는 표정인데.”

“……”

“뭐, 괜찮아. 괜찮아. 다른 새끼들은 몰라도 넌 편하게 있어도 돼.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하고, 배고프면 나한테 밥 사달라 하고. 원하는 거 있으면 다 말해 그냥. 내가 다 들어줄게. 어. 물론 말하는 거 들어주기만 한다고. 으핰핰.”

“……”

내 무반응에 엘레나가 표정을 굳혔다.

“구라야. 예쁜 후배 못 챙겨줄 게 뭐 있냐.”

“……”

“돈이 필요하다면 적잖게 줄 수 있지. 썩어나거든. 아티팩트? 씨팔, 돈으로 안 되면 드래곤이라도 잡아오지 뭐. 대륙 여행도 상관없어. 게이트 프리패스권이라고 들어봤나? 네가 원하면 개인적으로 훈련도 봐줄 수 있다. 네 가능성을 최대로 이끄는 정도야, 전혀 어렵지 않아. 물론, 내가 안 해줘도 넌 알아서 잘 성장할 테지만.…아, 근데 여자친구는 못 만들어준다? 호문쿨루스(Homunculus)라면 가능한데. 혹시 관심 있냐? 없겠지. 넌 몸보다 정신을 더 중요시 여기는 놈인 거 같으니까. 여하튼 편하게 말해도 돼. 네가 원하는 게 뭐든 말이야.”

엘레나가 잿빛 숨결을 토해낸다.

“결국, 너나 나한테는 다 의미 없거든.”

바로 맞은편에서 뿜어진 새로운 연기에 콜록거리던 것도 잠시, 낄낄거리던 엘레나는 별안간 본인의 안대를 툭툭 건드리며 말한다.

“내 후배. 에지오 크라닐. 이 불쌍한 새끼야.”

잠깐 고민하며 매만지는 듯하다가.

이내 손을 거두곤­

나머지 한쪽 눈으로 날 직시한다.

“기억, 지금 당장 찾을 수 있다면 어쩔 테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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