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 변화 (3)
* * *
#6
“뭐는 뭐가 뭐야. 지금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이냐고.”
“그거야……”
꼬나물었던 담배. 시니컬한 눈매. 금발. 비스듬한 자세. 그간의 행적과 말투.
이건 뭐 정해진 답안 아닌가.
“양아치?”
“……”
허, 하는 표정을 짓다가 머리를 북북 긁는다.
“그렇게 보였다면 훌륭하게 성공한 셈이네. 니들 앞에서 개지랄 떤 것도 맞고, 틈만 나면 씨발거리던 것도 맞으니까. 양아치, 양아치라…… 그러니까 너는 나랑 상종하기 싫어하겠지?”
“너도 대충 알지 않아?”
“잘 알지.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거.”
“더럽다니.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비유가 그렇단 거야. 그리고 애초에 틀린 말도 아니지 않아? 오물은 손에 대면 손이 더러워진다고. 너 같으면 나 같은 양아치 새끼를 곁에 두고 싶겠어?”
“……”
“봐, 똑같은 거라니까.”
유스필은 누군가를 비웃었다. 습관적으로 자켓 주머니에 손을 넣는가 싶더니, 아차 하는 얼굴로 날 슬쩍 바라본다. 담배를 꺼내려 한 것 같다. 입술이 씰룩거리고 있는데. 금단 현상까지 오는 거냐.
한숨을 푹 쉰다. 신발로 바닥을 두드리며 달달 떨고 있다. 신경이 불안정한 것처럼 연신 그러던 유스필이 문득 말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할진 모르겠지만 나 여기서 알바하고 있어. 입학하자마자 자리를 구했지. 경력은 좆도 없지만, 일 잘할 자신도 있고. 게다가 나 그래도 꾸미면 꽤 봐줄 만한 편이거든? 바로 채용해줬어. 사장이 나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더라고. 큭큭.”
“그걸 네 입으로 말하는 것도 어떨까 싶다.”
“뭐, 아니야? 팩트는 팩트잖아.”
“……”
말을 말자.
“그래서, 여기가 첫 번째로 구한 알바 자리. 네가 말한 그 양아치가 접대용 미소 짓는 거 보니까 어때. 좀, 프로 같았으려나?”
표정 관리가 예술이긴 했지.
대충 내 대답을 알겠다는 듯 유스필이 픽 웃었다.
“……첫 번째로 구했다는 말은?”
내가 묻자, 유스필이 가볍게 답했다.
“아, 다른 알바도 하고 있거든.”
“……다른 알바?”
“어.”
유스필이 손가락을 빼들었다. 하나씩 접는다.
“평일 저녁엔 4학구에서 레스토랑 홀 알바. 밤엔 여기서 이 시간까지 알바. 주말엔 2학구에서 점심부터 밤까지 상가 청소 알바. 점심쯤 공강 시간에 하나 더 구해보려고 하긴 하는데, 월수금만 있는 건 잘 없더라고. 그래도 잘 찾아보면 하나쯤 있을 것 같긴 해. 누가 뭐래도 여긴 프론티어잖아?”
그쯤 말하고, 내 동의를 구하듯 나를 본다.
한편, 나는 살짝 멍해져 물었다.
“……세 개를 동시에 하고 있다고?”
“어.”
무슨 문제 있냐는 듯한 투였다.
문제는 없지.
다만, 평일엔 홀 서빙과 주방 아르바이트를 풀로 채워 한다던가. 카페는 그렇다 쳐도. 주말까지 쏟아부어서 상가 청소 같은 고된 아르바이트를 전부 도맡아 한다는 건, 어지간한 철인이 아니고서야 힘든 일이 아닌가 싶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숨 돌릴 틈도 없이 살면. 휴식은 대체 언제 취하는 거지?
아무래도 유스필은 유흥비 등을 벌려고 알바를 하는 것 같진 않아 보였다. 그러려면 적어도 번 돈을 쓸 시간 정돈 만들어 놔야 하는 거 아닐까. 정말 프론티어에 일하기 위해서 온 사람 같았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유스필을 보는 내 시선이 약간 묘해졌다.
좀 더 부드러워졌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알바를 하는 이유가 뭐겠어.”
“돈 벌려고?”
“그래, 돈 벌려고. 그럼 여러 개를 하는 이유는?”
“……더 많이 벌려고.”
“그거야.”
많은 돈. 더 많은 돈. 그게 필요했다.
유스필은 귀족 영애였을 거다. 비록 나처럼 몰락했으나, 과거엔 틀림없이 이런 일들과는 연관점 하나 찾지 못했을 터.
“의외로 흔하잖아. 입학하려고 빚지는 거.”
귀족가는 대체로 부유하다. 적어도, 빚을 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난 여기 졸업한 뒤에 어디 5년 이상 묶여 있을 입장이 아냐. 그래서 가급적 졸업하자마자 빚을 몽땅 청산하려고 이 지랄을 하는 거지. 이 정도 페이스라면 얼추 졸업 직전엔 4천만 정도 남아있을 건데. 그렇게 두면 안 되니까, 알바를 더 늘려야지.”
빚까지 져가면서 겨우 입학을 했다. 프론티어에서 이루고 싶은 게 대체 뭐였길래. 결국, 유스필은 공부에 관심이 없어 보였잖는가. 내 표정에 담긴 생각을 읽었는지 유스필은 킥킥 웃었다.
“알바를 공부랑 같이 병행해보려고 하긴 했는데, 씨발. 안 되더라. 도저히 안 돼. 성적 장학금 같은 것보단 알바해서 버는 돈이 훨씬 잘 벌리는데 뭣하러 공부를 열심히 해? 여기서 뭘 제대로 배워가는 것도 좋겠지만, 나한테는 여기 졸업장이 제일 중요하다고.”
일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공부까지 머리에 욱여넣으려니 몸이 버티질 못하겠단 건가. 그럴 만하다.
머리로 이해는 하고 있는데, 아직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예컨대 첫 모임 당시의 일이라던가. 그날 유스필이 보였던 띠꺼운 태도가 아직까지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렇군, 그래서.
“이런 얘길 왜 나한테 하는 건데?”
유스필의 의도가 궁금했다. 냉정하게 보자면 개인의 사정은 사정이고, 유스필은 나의 친한 친구 같은 사람도 아니었거니와, 조 모임 때 여간 좋지 못한 언행을 했던 건 사실이었던 까닭이다.
“나도 모르겠다.”
“……?”
“그냥, 너한테나 애들한테나 좆같이 군 거 미안하다고. 내가 원래 항상 빡쳐 있는 상폐년이기도 한데, 그날은 특히 더 좆같았거든.”
“유스필.”
“……왜? 뭔데 화났냐.”
“그런 말은 함부로 하지 마.”
“뭔 말? 상폐년이라고 한 거? 이것도 팩트……”
“유스필.”
“……얼씨구. 한결같네 아주.”
유스필이 비웃듯 나를 본다.
“너 전에도 그랬지? 잃을 게 없다고 해서 네 자신까진 잃지 마 라고. 솔직히, 좀 많이 오글거렸던 거 알아? 소름 돋아서 진심으로 좆 까라고 해버렸잖아.”
그렇게 말하면 내가 좀 머쓱해지는데.
“글고 나한테 그런 말은 필요 없어. 네가 굳이 안 말해도 아니까. 날 내가 왜 잃어? 절대 그럴 일 없어. 아직 안 잃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지만. 점점 맛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원래의 나는 이제 찾을 수 없으니까, 변해가는 내가 ‘나’가 되는 거야. 그러니 내 인생에 멋대로 끼어들려곤 하지 마. 그게 가장 날 비참하게 만드는 거니까.”
“……”
그게 정말이라면, 내가 할 말은 없다.
그쯤에서 유스필은 고개를 아래로 살짝 떨구었다. 달빛에 드리운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발 앞꿈치를 들었다 놨다 했다.
“이게 내 삶이야. 몰락한 뒤 살아남기 위해 택했던 방식이고. 알량한 자존심 세워봐야 실제로 나한테 있는 건 좆도 없는데 허세만 부리는 셈이잖아? 차라리 다 내려놓고 근본도 없는 년처럼 구는 게 훨씬 낫지.”
“……”
“봐, 너희도 나한테 완전히 정 뗐잖아. 나랑 얽혀서 괜히 좋을 일도 없고. 손에 더러운 오물만 묻히고 다니는 여자애랑 누가 친해지고 싶겠어? 성격도 존나 더럽고. 난 내가 이런 여자라는 걸 아니까 차라리 아무도 내 옆에 안 왔으면 좋겠는 거야.”
유스필의 입매로부터 짧은 조소가 지어졌다.
글쎄. 여기서 내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유스필이 나한테 이런 부분까지 얘기해주는 이유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때 말야.”
“……그때?”
“처음 모임 있었던 날 있잖아.”
“아, 어.”
“그때 과제 모임 있으니까 그 시간 전까지만 잠깐 하겠다고 식당에 말했는데, 거기서 허락해주긴 했거든?”
유스필이 별안간 웃긴 상황을 떠올렸는지 키득이며 말을 잇는다.
“근데 약속했던 퇴근 시간 직전에 창고 청소하다가 자재들이 무너져 내린 거야.”
“……”
“막, 으, 상자 안에서 막 검은 가루 같은 게 존나 홍수처럼 날 덮치더라고. 쫄딱 뒤집어 썼지 뭐. 퇴근하고 바로 갈 생각이었는데, 그대로 어떻게 가냐? 식당 화장실엔 아무것도 없고. 그럼 기숙사에 갔다 와야 하니까 일단 퇴근하고 무작정 달렸지. 씻고 나와서 보니까 이미 한참 늦었네?”
“……”
“그때 걍 다 좆같더라. 혼자 공부 던지는 거면 몰라도 이건 첫 조별과제잖아? 나만 좆되면 뭐 그러려니 하겠는데 너희들까지 끼어 있으니까 일단 가보긴 해야 하겠지? 그래서 알바도 빼고 그랬던 건데, 막상 일이 그렇게 되니까 내가 씨발 뭐하고 있는 건지 싶더라. 현타 씨게 왔어. 골빈년처럼 머리가 텅 비어버리대? 원래도 골빈년이긴 했는데. 아무튼.”
또 다시 자기를 깎아내리는 말을 하길래,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던 순간.
나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유스필이 픽 웃는다.
“……그 사정을 너희한테 설명해주고 싶지도 않았고. 쪽팔려서 어떻게 말하냐? 식당 청소 알바하다 오물 뒤집어 써서 씻고 오느라 늦었다. 내가 아무리 밑바닥까지 내려갔다지만 그건 좀 다른 문제거든. 그래서 내 주제에 무슨 성적 챙기기냐, 싶기도 하고 걍 급발진 박았어. 미안, 말 좆같이 해서. 사과도 좆같이 하네. 미안.”
저번처럼 고개를 꺾일 듯 숙이진 않았다. 쓰게 웃으며 그리 말하길래, 나는 별다른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유스필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머리는 어떻게 말렸냐고 했었나? 신성술에 왜 이런 게 있는진 모르겠는데, 이런 것도 가능해.”
자켓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빼들곤,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왼다. 그러더니 손바닥에서부터 따스한 빛이 피어났다. 어둠에 좀먹혔던 골목길이 일순간 빛의 길처럼 환해졌다. 반사광이 드리운 얼굴의 유스필이 재밌는 농담을 하는 것처럼 말했다.
“이거 머리에 대고 대충 비비면 말려지더라. 은근 편해. 출근하면서 머리 말릴 때 유용하게 쓰고 있어.”
……뭐야. 진짜 있었던 건가.
유스필의 이런저런 말을 듣고, 아예 거짓말은 아닐 거라 판단한 뒤. 손에서 피어난 빛을 거둔 유스필의 손끝으로부터 보이는 굳은살들을 잠시 바라보던 내가, 나지막이 입을 열려던 찰나.
“설마 사과할 생각은 아니겠지?”
“……”
“그딴 걸로 사과하면 너만 손해야. 내가 존나 띠껍게 군 건 맞으니까 걍 그대로 있어.”
유스필이 주먹으로 내 가슴팍을 아주 미약히 쳤다. 초승달처럼 휜 고양이상의 눈꼬리. 그러다 자켓 주머니에 손을 넣어 담뱃갑을 꺼내더니, 입에까지 물고선 그제야 아차 하며 날 올려다본다.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으나 혀를 차며 알아서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는다.
그쯤 의문이 생겨 물었다.
“넌 네 옆에 누가 안 다가왔으면 좋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
“근데 나한테는 왜 이런 말을 해주는 건데?”
오해가 있었던 사정을 이해해 달라는 건지. 불우한 상황을 동정해달란 건지. 후자는 유스필의 성격을 보면 절대로 아니겠지만. 추측되는 이유가 여러 가지여도, 결국 하나로 귀결되진 못했다.
“음……”
표정만 보면 나도 몰라, 하는 대답이 나오게 생겼다. 그러지는 않았다. 유스필이 장난스레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기왕 알바 하는 거 들켰기도 하고, 그냥 그럴 때 있잖아. 나 말은 이렇게 하지만 가끔 혼자 궁상 떨 때도 많거든? 나도 내가 뭐하는 년인지 잘 모르겠는데. 사람이다 보니까 아예 안 외롭진 않더라고.”
슬쩍 의도적으로 얼굴을 구기며 말을 잇는다.
“게다가 생리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감성도 괜히 생기고. 오락가락하고. 넌 남의 얘기 잘 들어줄 것 같아서 그냥 한번 말해봤어. ……그래도 뭐, 예상이 아예 틀리진 않은 것 같네.”
왠지 민감스러운 단어에는 조심하게 된다. 내가 몸을 움찔거리자 유스필은 흐응, 하며 비음을 흘렸다. 그런 쪽에 익숙하지 않다는 걸 알고선 은근하게 손가락으로 내 어깨를 쿡쿡 찔러왔다.
“이거이거, 은근 쑥맥이라니까 진짜? 생긴 건 여자 수십 수백 울리게 생겨놓고. 사교장에서 어지간히 대쉬 많이 받았겠는데 말야.”
“……그런 적 없어.”
“지랄. 안 믿어. 구라도 뻔뻔하게 치네.”
아니, 뭐. 나도 처음부터 이 몸으로 다녔었다면 정말 그랬을 수야 있겠지만. 실제로 아닌 걸 어떻게 하나.
불현듯 유스필이 물었다.
“진짜 여친 없어?”
“……없어.”
“그럼, 없었어?”
“……”
“……이건 대답 못 하네. 하긴, 말이 안 되긴 해. 상대가 누군진 몰라도 사귀는 동안 눈은 되게 호강했었겠네. 흐흫.”
아니……
아마 그 반대였을걸.
“야, 근데.”
“?”
“너 트램 안 끊기냐?”
“……아.”
이런. 여기 너무 오래 있었다.
시계를 보니, 그래도 빨리 뛰어가면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얘기해줘서 고맙다. 가볼게.”
황급히 등을 돌려 정거장으로 뛰어가려는데.
“야, 잠깐만.”
또 뭐야.
“방금 얘기, 어디 가서 누구한테 말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이거 나중에 쪽팔려서 혀 깨물고 죽는다 진짜.”
“……안 그래.”
“그럴 것 같았어.”
이제 진짜 간다.
“그리고, 하나 더.”
“나 늦어.”
“더 빨리 뛰면 되지.”
“……뭔데? 빨리 말해.”
뭘 그렇게 서두르냐는 듯, 여유로운 태도로 흥얼거리던 유스필이 골목 밖으로 나를 따라 나서며 말을 잇는다.
“일부는 진심이야.”
“……뭔 소리야?”
내가 갸웃하며 되묻자.
“너 잘생겼잖아. 나 얼굴 많이 보거든. 너 분명 여친 없다고 했었지?”
“……”
의미심장한 질문을 해오곤, 대답 없이 고개를 돌리는 날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목요일에 보자. 바이바이.”
뭐랄지.
……참, 오묘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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