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마법 (2)
* * *
#3
에픽 클래스, 더 나아가 프론티어에 존재하는 모든 서클들은 세 가지의 분류를 갖는다.
한 클래스에만 국한되지 않고 프론티어의 여러 클래스 학생들을 규합한 연합 서클.
한 클래스의 전교생을 가입 대상으로 하며, 전용 서클룸 등의 풍부한 지원까지 이루어지는 중앙 서클.
규모나 성과가 비교적 작은 탓에 중앙 서클이 되지 못한 일반 서클.
이렇게 세 종류의 서클들이 프론티어 내부에 포진해 있다.
“원래는 고문이랄 것도 없이 학생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서클들이 대부분이긴 합니다만, 저는 제가 처음 설립한 서클의 회장이었던 관계로, 교수이자 선배의 직함으로서 서클이 세워졌던 본질이 흐려지지 않도록 특별 고문을 맡고 있지요. 다만 규모가 너무 커져 저 혼자 관리하기엔 다소 힘에 부치는 경향이 없진 않지만요. 그래서 회장을 맡은 학생이 고생하고 있습니다만……”
제펠린 교수도 에픽 클래스 졸업생이었다. 전혀 몰랐던 사실에 눈을 동그랗게 뜨던 것도 잠시.
“에지오 군.”
“예.”
“마법(??)을 배워보고 싶지 않습니까?”
이미 월, 수, 금마다 배우고 있을진대.
제펠린은 웃으며 그리 말했다.
——마법인가.
선천적으로 후달리던 마력량. 조금이라도 억지로 불태우면 오버히트로 인해 통으로 바짝 익어버릴 듯했던 부실한 마력 회로.
머리가 아닌 몸이 결코 따라주지 않았던 비참한 현실에 절망했으나,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마법을 펼치길 계속했고, 그 결과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무의미한 나날들.
나는 어릴 적부터 루비아라는 천재를 가장 가까운 옆에서 지켜봐왔던 관계로, 마법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과 아름다움에 깊이 감명받았으나, 막상 그림의 떡처럼 보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거창한 이념은 피하고자 합니다. 때문에 통칭, 마학(??) 연합 서클 「토트(Thoth)」는 에지오 군 같은 유망한 인재들을 언제나 환영하고 있습니다. 아카데미 자퇴 이후 반년도 채 되지 않아 단숨에 3위계 가까이 끌어올린 당신의 저력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에지오 군.”
“……”
제펠린은 에픽 클래스 교수였다. 이런 명패는 아무나 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단순 위계로만 따져도 10위계 근처에는 가 있겠지. 테트라 크로울리 같은 시대의 위인에는 다소 후달리는 면이 있을지도 모르나, 제펠린 역시 나 같은 것이랑은 비교할 바 없을 정도의 지식과 실력을 지닌 대마법사(大???)에 근접한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내게 권유하고 있는 거다.
너의 놀라운 재능을 믿으니, 내가 담당하는 마법을 위한 서클에 들어올 생각이 있느냐고.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카데미 동기들에게서 고작 그 정도도 못하냐고 손가락질이나 받던 에지오 크라닐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에 어떠한 표정을 지어야 할지.
그것을 내 손으로 이룬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올라선 위치라는 것에 나는 과연 순수히 기뻐할 수 있을지.
이런저런 연유로 고민은 길었지만 대답은 짧았다.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교수님.”
제펠린은 잠깐 콧잔등을 툭툭 건드리다 말한다.
“…겸손인가요?”
“사실을 말씀드리고 있을 뿐입니다.”
“흐음.”
하나하나 조목조목 뜯어보면, 내가 정말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어째서인지 나를 처음 본 주변인들은 날 범상치 않은 사람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할 필요도 없건만 영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제가 에지오 군을 영입하려는 이유는, 당신의 뛰어난 지능과 이해력 덕분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그거죠.”
“그거라니요?”
“에지오 군의 기이한 능력.”
제펠린은 이어 말한다.
“그리고, 고유한 백색(白色) 마력.”
“……!”
“인류 최고의 대마법사 테트라 크로울리와 동일한 고유 마력을 지닌 당신을, 제 입장에서 눈독을 들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거야, 방법은 많지요. 경지에 이르면 눈에 보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몸속에 들어 있는 게 뭔지.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에지오 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원소와 계열에 적성을 가지기란, 무척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걸 아셨으면 합니다. 술식과 연산을 좋아하는 마법사들의 언어로 따지자면 100억분의 1 확률로 어긋나는 공용 좌표 계산 간략화 술식이, 어느 괴상한 차원의 좌표를 찍어 해당 좌표로 블링크를 시전한 마법사를 존재하지 않는 별세계(?世?)로 보내버리는 것과 동일한 확률입니다.”
제펠린이 빙긋 웃는다.
“즉, 불가능한 일이라는 뜻이지요.”
모든 원소와 모든 계열에 적성을 가진 사람. 그것이 뜻하는 바를 곧이 곧대로 해석하자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봐도 무방한 일이었다.
무엇이든 하고자 하면 이룰 수 있다.
달리 말해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제펠린이 말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내게 부여된 불가해의 수많은 가능성 중 마법이란 길에 관심이 있느냐고, 그리 물어오는 것이었다.
“백색의 정보가 가장 적은 이유를 아십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펠린이 이어 답한다.
“가장 최근에서야, 그리고 마지막에 비로소 등장한 색깔이기 때문입니다. 그전까진 아무도 케테르의 속성을 전수받은 자가 없었지요.”
“케테르라고 하심은……”
책에서 본 적 있다.
초기 황립 프론티어 아카데미의 구성 멤버이자, 제1차 인마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 십천 중 일천(一?). 시아인 케테르.
그러고 보니, 에픽 클래스의 다목적 관(?)들도 그들의 이름을 본따 지은 것 같았다.
“에지오 군도 아시는군요.”
고개를 끄덕인 제펠린이 말한다.
“인간의 몸으로 하늘에 닿은 열 명의 사람을 가리켜 십천(??)이라 부릅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요. 그 멀고 먼 과거에 현대인들도 함부로 이루지 못할 위업을 여럿 달성하여 영원한 난제이자 미스터리로 남았을 정도이니……”
제펠린은 동경의 눈빛을 언뜻 내보였다.
“시아인 케테르는 말이죠. 최초의 대마법사 다음으로 10위계 데카(Deca)를 넘어선 대마법사이자, 검술의 극한에 다다른 소드마스터이기도 했으며, 높은 하늘 위 신(?)의 힘을 직접적으로 인간의 대지 위에 강림시킬 수 있는 대신관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다루지 못하는 이치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케테르는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서 오래간 드높이 평가되어 왔지요.”
“다만 오롯이 순수한 모든 가능성, 즉 케테르의 정수를 가지고 있는 백색 마력의 소유자는 아직까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대마법사 테트라 크로울리는 케테르가 가지고 있던 무수한 가능성 중 마법의 가능성을 지니고 태어났지요.”
“정확히는 그녀가 마법의 길을 선택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만. 아마 검술을 택했더라도, 어렵지 않게 소드마스터를 달성할 수 있었을 겁니다. 대신 승급에 이르는 시일이 조금 걸렸겠지만요. 세월이 흐르면서 케테르가 세상에 남겨놓은 의지가 흐려졌다, 라고 보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말입니다. 어쩌면 에지오 군이 최초로 케테르의 후예를 자처할 수 있는 위인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감히 해봅니다.”
“그렇다면 저는 제 손으로 미래의 영웅이자 위인을 직접 키울 수 있는 대단한 영광을 쥐게 되는 것이겠지요. 에지오 군을 정말 높이 평가하고 있는 저의 제안이 받아들여져서, 에지오 군이 「토트」에 들어오시게 된다면요. 물론 루비아 양도 함께 말입니다.”
돌고 돌아 다시 한번 권유를 해온다.
“루비아 학생도 충분히 대마법사의 자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녀라면 필시, 졸업 이후 이십 년 정도가 흘렀을 즈음엔 아카샤의 별 꼭대기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모르는 게 아니라 반쯤 확신하고 있습니다. 루비아 학생 정도의 마법적 재능을, 저는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녀는 매우 특별한 학생입니다. 에지오 군. 그런 루비아 양과, 에지오 군은 오래된 친구 사이고요. 이런 우연도 달리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만남이 이미 운명의 일부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리 부담을 가지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즐겁게 마법을 갈고 닦는다 생각하시길. 에지오 군의 학습 태도를 보았을 때 마법에 그리 흥미가 없는 편도 아닌 듯해서 말입니다. 거기다가 친한 친구와 함께라면 더 재밌게 서클 활동을 즐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친한 친구……
그런가. 쓴 미소가 지어졌다.
“마음이 바뀐다면 언제든 탈퇴해도 좋습니다. 그전까진 언제든 물심양면으로 예산 지원을 약속해 드리지요. …이건 자랑이 맞습니다만, 「토트」는 꽤 유서 깊은 연합 서클이라서. 프론티어에서 나오는 지원금의 액수도 일반 서클에 비해 차원이 다릅니다. 「토트」 출신 선배들의 후원금도 적잖습니다. 정기 회비도 비싸지 않은 편이니, 외부 활동비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마법 연구 꿈나무들에겐 이보다 최적의 환경이 없을 겁니다.”
확실히, 대단한 조건이었다. 대다수의 젊은 마법사들이 쩔쩔매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금전 문제인데, 제펠린 교수가 담당하는 서클에 들어간다면 그런 걱정은 싸그리 없어진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돈도 아낄 수 있는데 원하는 연구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건 정말 연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눈 돌아갈 만한 조건이었다.
……근데 자꾸 루비아를 들먹이는 게, 좀, 그렇네. 친한 친구랑 같이 활동한다면 능률이 향상될 수도 있겠지만은.
“…루비아 학생의 의견은 어땠습니까?”
내가 그리 물어오자, 제펠린은 대화가 좋은 흐름으로 흘러간다 느꼈는지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더군요.”
하지만, 잠시 뒤.
“사실 얼마 전에 며칠 더 고민해 보겠다고 이야기를 해오긴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음……”
제펠린이 날 물끄러미 바라본다.
묘한 시선이었다.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낀 다음 가입할 서클을 결정하고 싶다 하여서, 그렇게 하도록 놔두었습니다. 자유로운 학생의 의지를 제 임의로 결정할 순 없으니까요.”
“…그럼 루비아가 가입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제 입장에선 에지오 군이 「토트」에 들어온다 해주시고, 루비아 학생의 마음까지 대신 설득해 주신다면 남은 임기까진 정말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텐데요. 후후.”
농담이라는 듯 날 보며 웃지만, 아무리 봐도 반쯤은 진심인 것 같았다.
“아무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루비아 학생처럼 조금 더 고민해 보고 난 뒤에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난 마법에 그리 재능 있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루비아 수준을 따라갈 순 없을 거다. 제펠린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내가 가진 특수한 백색 마력이라든가, 나도 모르는 내 괴상한 능력이라던가. 그것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서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대부분일 거다. 제펠린은 구태여 그걸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고.
나와 루비아의 합이 잘 맞을 거란 제펠린 교수의 말은 어느 정도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겠으나, 글쎄……
아마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 교수님. 제게 말씀해주신 내용 중에 루비아의 얘기도 있었죠.”
“그렇습니다. 문제가 있나요?”
“음, 문제라면 문제인데……”
내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루비아는 아마, 제가 없는 곳에서 더 집중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보기에도 루비아는 마법적 재능이 차고 넘쳐요. 때문에 루비아를 방해하고 싶진 않습니다.”
“……루비아 양과 에지오 군이 함께 있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말인가요?”
“그런 쪽에 가까울 거라 생각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안해주신 건 감사합니다만, 저는 거절하겠습니다. 대신 루비아를 설득하는 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흐음……”
제펠린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내 표정에서 뭔가를 읽었던 걸까. 문득 고개를 숙여온다.
“……여러분의 교우 관계에서 제가 적절치 않게 넘겨짚은 부분이 있었을지도 모르겠군요. 혹시라도 마음이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에지오 학생.”
“괜찮습니다. 별일 아닙니다.”
정말 별일 아니었다. 정말로.
상황이 대충 정리되었다 싶었을 즈음.
“그렇지만, 에지오 군.”
“예?”
“조금 더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우수한 인재를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이 주체가 안 되는군요. 혹시라도 마음이 긍정적인 쪽으로 기울어진다면, 루비아 학생을 설득하는 역할도 대신 부탁드리겠습니다. 에지오 군이 서클에 가입한다고 하면, 루비아 학생이 에지오 군을 따라 가입하는 건 어쩐지 쉬운 흐름이 될 것 같거든요.”
“……”
제펠린 교수……
학생의 자유로운 의지니 뭐니 하더니.
은근히 끈질긴 사람이었다.
#4
짤막한 인사를 마친 뒤.
교수 연구실의 문을 열고 나오는데.
“……응?”
—탁탁탁.
멀리서 발소리가 들렸다.
아니, 가까운 곳인가?
복도의 끄트머리, 우측으로 이어지는 모서리에서 들리던 다급한 발소리는 곧 희미하게 멀어져 갔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다. 한적하고, 조용하다. 그래서인지 발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귀를 바짝 기울이며 천천히 소리가 난 쪽으로 걸어가 보는데,
—우당탕탕.
흐릿하게 멀어져 가던 발소리가, 거하게 넘어지는 소리로 바뀌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이전보다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복도의 모서리 부분을 지나쳐,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뭐지?”
아무도 없었다.
분명 승강기 앞에서 누군가 넘어진 것 같았는데, 그새 일어나고 어디로 간 건지 휑하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 한쪽에 시선이 꽂혔다.
비상 계단의 문이 열려 있었다.
“……”
뭐가 그리 급했던 걸까.
이 역시 별일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위층에서부터 내려오는 승강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