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서클 (5)
* * *
#8
유리는 남성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낀다.
후천적 학습의 효과였다. 대륙 전역에서 벌어진 전쟁통에 오빠를 영영 잃은 뒤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남성—아버지를 제외한—은 유리의 주위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아니.
어쩌면 유리는 자신의 죽은 오빠가 아닌 이상, 다른 남성과의 첫 대면에서부터 친밀감을 느낄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었다.
자연히 낯선 남성을 기피하게 되고, 접촉을 최대한 꺼리려 한다. 그나마 유순한 편에 속했던 어릴 적에 비해 상당히 까칠해진 성격도 한몫했다.
그런 유리였기에.
‘이, 이런 건 현실이 아니야…!’
눈앞의 그 천상 소녀처럼 보였던 세이라가, 사실은 남자였단 말에 거나한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유, 유리야. 괜찮아?”
“아야야야……”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바닥에 웅크린 유리를 보곤 루비아가 서둘러 유리 쪽으로 다가왔다. 얼마나 놀랐는지 발까지 헛디뎠다. 탁자 위에 있던 물건이 떨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어 다행이었다.
“그게, 저, 정말이세요……?”
전혀 예상지 못한 곳에서 기습 공격을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유리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끄응거리며 뒤통수를 매만지다가, 고개를 겨우 들어 세이라를 바라본다. 예상을 뛰어넘은 리액션에 당황했다는 듯 입을 손으로 가리고만 있었다.
작은 몸짓마저도 소녀스러웠다.
저러니까 말로는 도저히 못 믿겠단 스탠스를 취하는 것도 당연한 수순. 무척 파렴치한 일이 아닐 수가 없지만 직접 옷을 들춰보기 전엔 무슨 말을 해도 믿지 못할 것 같았다. 옆에서 벽에 머리를 박은 유리를 보곤 작게 비웃은 에지오도 매한가지인 생각이었다.
“너희한테 내가 어떻게 비춰졌는진 정확히 모르겠지만… 사실이야. 이런 걸로 거짓말해서 내가 뭘 하겠니?”
“마, 말도 안 돼요……”
유리는 거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느낌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굉장히 예쁜 언니다, 친해지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남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나니까 뇌리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괴리감이 꽉 들어찼다.
뭔가…
뭔가 내면의 무언가가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현실이 맞나? 여긴 어디지? 나는 누구? 언니가 아니라 오빠라고? 어라? 어째서…?
“야, 야. 임마. 정신 차려.”
“으에에에……”
에지오가 자신의 어깨를 잡고 흔드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유리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의식을 어딘가로 날려 보내야만 했다. 거의 뭐 놀라서 졸도할 지경인 유리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내려다보던 세이라가 문득 중얼거렸다.
“…저렇게까지 놀랄 줄은 몰랐구나. 좀 미안한걸.”
“아뇨, 얘가 이상한 거예요.”
남자라고 생각해도 아예 못 받아들일 만한 건 아니다. 그 결과로, 루비아는 살짝 놀란 듯했지만 결국 현실을 수용하는 데 성공했고, 뮤는 뭔가 호기심이 생긴 얼굴로 세이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곤 하나 이성으로서의 호기심이 아닌, 미확인 생물체에 대한 근원적 탐구심에 훨씬 더 가까웠다.
“야, 야. 유리. 유리? 예의를 어따 팔아먹은 거야. 일어나, 임마. 어? 일어나라고. 야.”
“……”
선배를, 그것도 앞으로 계속 볼 서클 회장님을 앞에 두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인사불성도 이런 인사불성이 없다. 축 늘어진 유리의 보드라운 뺨까지 톡톡 두드려 보던 에지오는,
“갸악—!”
“!”
갑자기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뿌리친 유리에 의해 바닥 위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런 에지오의 등을 빛의 속도로 받아든 뮤. “괜찮아?” 라고 물으니, 에지오는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 일단 알겠어요. 알겠는데……”
유리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전혀 진정은 안 되지만 일단 진정하려고 했다. 후우, 하면서 차분히 뺨까지 두드려 본다. 안력을 집중해 앞을 똑바로 응시한다.
그러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길게 늘어진 속눈썹이며, 앵두 같은 연분홍빛 입술에, 조막만한 얼굴, 윤기나게 찰랑이는 은빛의 머리칼……. 저 가느다란 몸선까지
제국 미스 콘테스트 1위를 당당히 차지할 법한 소녀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남자란다.
지나가던 개가 코웃음치겠다.
“헤, 헤에.”
대신 유리가 코웃음을 흘렸다.
에지오가 보기엔 이미 반쯤 실성해 보였다. 그쯤 에지오는 이 금발 꼬맹이를 기절이라도 시켜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못 믿겠다면, 으음……”
작게 중얼거린 세이라는.
스윽.
곧 유니폼 셔츠를 손으로 잡아 천천히 들어올렸다.
바로 그때.
“잠깐만요. 스탑.”
뭔가 기분이 이상해.
남자라는 걸 아는데도 그 새하얀 배가 드러나자, 에지오는 매우 빠른 속도로 손을 들어 세이라의 행동을 제지할 수밖에 없었다.
“…어? 왜? 나는 괜찮은데?”
“아뇨, 그런 것까지 안 해도 믿으니까. 됐어요.”
자긴 별 상관 없다는 듯 세이라가 무구하게 눈을 깜빡였지만, 에지오는 필사적으로 세이라의 상반신을 노출시키지 않으려 필사의 노력을 다해야만 했다……
#9
서클 회장 세이라 데 바이에른이 날 때부터 남자였고 뭐였고 간에, 일단 신입 부원이 될 네 명은 입부 신청서를 작성해야 했다.
“자, 여기에 인적 사항이랑 입부 동기 같은 거 적힌 대로 적어주면 돼.”
각자 한 장씩 받고 테이블 주변 의자에 착석했다.
팔락.
이름과 학년 따위의 인적 사항을 차례로 기재한 에지오는, 입부 동기를 서술하는 란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곧 거침없이 적어나갔다.
“다 썼으면 나한테 주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온 유리를 비롯한 네 명은 작성한 입부 신청서를 세이라에게 건넸다.
“음…”
세이라는 즉석에서 신청서를 검토했다.
마지막 장까지 넘기는 데에는 오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고심하며 종이를 넘겨가던 세이라의 푸른 눈을 멍하니 바라보던 에지오의 옆에서, 뮤는 살짝 오묘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세이라는 질투가 필요없는 대상인데 왜 자꾸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걸까……
곧 세이라가 짝, 하고 손뼉을 쳤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네. 입부 동기도 다들 서클 목적에 충실한 것 같고. 원래 1차 서류 면접 다음에는 면접도 있는데, 너희는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아.”
회장의 재량으로 입부 과정을 스킵한 다음, 세이라를 포함해 총 여섯 명이었던 부원 명단에 새로운 이름 넷을 추가한다.
그렇게.
“오늘부터 너희는 유람 서클 「엑소더스」의 부원들이야. 앞으로 잘 부탁해, 나의 소중한 후배님들.”
세이라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10
“질문하고 싶은 게 있다면 편하게 질문하렴. 앞으로 두 시간 정도는 너희 얘기만 들어줄 수 있으니까.”
세이라가 의자에 착석하곤 깍지 낀 손 위에 턱을 올려 말하자, 「엑소더스」의 신입 부원 네 명은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저, 선배… 아니, 회장님.”
“응, 말하렴.”
가장 먼저 조심스레 손을 든 건, 루비아였다.
“이 방은 어떨 때 사용하나요?”
“서클룸 말이지?”
“네…”
루비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세이라가 주변을 눈으로 훑으며 말했다.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는 너희의 자유야. 이제부턴 너희한테도 개인당 카드키가 하나씩 지급될 텐데, 여긴 부원 전용 공간인 만큼 너희가 들어오고 싶을 때 들어오면 돼.”
“아무 때나 상관없단 말씀이신가요…?”
“물론이야.”
세이라는 싱긋 웃었다.
“서클룸 분위기를 보면 알겠지만, 우리의 모토는 ‘자유’야. 때문에 심심하면 들어와서 피아노를 치는 부원도 있고, 저기 한 달 전에 기타를 배우겠답시고 가져와놓고 벽걸이 인테리어로 장식해놓은 부원도 있어. 할 일 없으면 저기 매트 펼치고 바닥에 누워 자는 부원도 있고. 수납장을 간식으로 잔뜩 채워놓곤 늦은 밤마다 영화를 보면서 하나씩 까먹는 부원도 있지.”
정말로 프리한 공간이었다.
쉬고 싶으면 들어와 쉬고.
자고 싶으면 들어와 자고.
너무 어지럽히지만 않으면 거의 모든 개인적인 활동이 허용되는 장소나 다름이 없었다.
이처럼 개방적인 분위기라면 부원간 친목을 다지기에도 어려움이 전혀 없을 터였다.
세이라의 얘기를 들은 유리의 눈빛이 흥미로 반짝거리며 환하게 빛났다. 정작 세이라와 시선은 아직도 잘 마주치진 못하지만 말이다.
루비아가 연이어 물음을 던졌다.
“회장님은 여기서 평소에 뭐 하세요…?”
세이라가 고운 눈썹을 치켰다.
“나? 나는… 회장으로서 할일을 하지. 내부 운영 기획, 예산활동, 서클 내외 관리, 홍보 담당을 맡을 때도 있고, 여행 기록이나 자료관리, 클래스에서 행사가 있는 날엔 하루종일 바쁘고…… 그러다 정해진 일을 다 끝내면 다른 부원들처럼 쉬기도 하고. 별로 다를 거 없어.”
“되, 되게 바빠 보이시는데……”
“아하하, 아니야. 말만 거창하지 실제로 하는 일은 진짜 얼마 없어. 그리고 회장이라는 직책은 괜히 맡은 것도 아니니까, 할 수 있을 때 더욱 열심히 해야지. 우리 착한 부원들이 옆에서 잘 도와주기도 해서 힘들거나 그러진 않아. 오히려 일할 때 더 즐거운걸?”
세이라는 무척이나 올곧고 성실해 보였다.
그 정결한 용모만큼이나 인품적으로도 흠결 없는 완벽한 사람이라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과연 서클 회장이란 직책에 누구보다도 어울리는 선배였다. 세이라의 말이라면 한 치 의심도 없이 믿고 따를 만하다고 해야 할까. 서클의 분위기가 화목해 보이는 이유에는 아마 세이라의 비중도 지대할 것이 분명했다……
“저기.”
“아, 응. 말하렴. 뮤.”
이번에는 뮤가 손을 들었다.
“정기적으로 꼭 참여해야 하는 날도 있나요?”
“정기 모임 같은 거 말이지?”
“네.”
왠지 의도가 빤히 보이는 듯한 질문에, 에지오는 잠시 뮤쪽을 바라보았다. 뮤는 멀뚱히 에지오와 눈을 마주하다가, 슬그머니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속 보고 있다간 부끄러워질 것 같았던 탓이다.
“음…”
세이라는 고민하다 짧게 대답했다.
“딱 잘라 말하자면, 없어.”
“그런가요…”
“여행에 참여할지 말지도 자유니까. 대신 이제 행사가 있는 시즌이나 서클 활동 관련해서 중요한 공지사항이 있을 땐 대부분 여기 화이트보드에 적어놓거든? 보통은 부원들이 알아서 확인하는데, 누가 확인 안 한 것 같다 싶으면 내가 직접 찾아가서 말해줄 거야. 아무래도 중요한 사항이니까. 일단 그렇게 알고 있으면 돼.”
세이라의 말을 듣고 작게 고개를 끄덕이던 뮤.
“왜, 활동에 참여하고 싶지 않니?”
“…그건 아니에요.”
도리질을 하던 뮤를 응시하던 세이라는,
“부원들과 어울릴지 말지도 너의 자유야.”
라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막상 우리 부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지내다 보면 너도 분명 즐겁다고 느낄 순간이 올 거야. 그 애들은 정말 착하고 좋은 애들이거든. 내 눈엔 너도 마찬가지로 보이고.”
“……”
“그런 딱딱한 표정도 얼마 지나지 않아 풀리게 될걸. 무엇보다 나는 네가 가급적 웃었으면 좋겠어. 너는 웃는 게 훨씬 더 예쁠 것 같거든.”
“……!”
흠칫한 뮤가 잠시 멍하니 있던 새.
“새, 생각해 볼게요…”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도 없을 노릇. 세상 무구한 얼굴로 그리 환하게 웃으며 말해오니, 원체 남에게 쌀쌀맞은 뮤도 일단 최소한의 예의를 차려 답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세이라의 알맹이가 남자란 사실에 더 혼란함을 느끼는 뮤였다.
“에지오 너는 궁금한 거 없니?”
서클룸의 어딘가를 응시하기만 하던 에지오에게 문득 세이라가 말을 걸어오자, 에지오는 잠시 고개를 돌려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는.
“저것들은 뭐죠?”
손가락으로 화이트보드를 가리켰다.
아니, 정확히는 그 뒤쪽을.
“저거라니……? 아.”
세이라가 머리를 주억였다.
“그렇지. 소개를 말로 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더 빠르겠다. 좋은 의문이었어, 에지오.”
세이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쪽으로 다가갔다.
스윽.
거기서 인화된 사진 몇 장을 떼어내더니, 깨끗한 탁자 위에 주르르 늘어놓곤 에지오와 유리 등에게 보여줬다.
“이건 우리 「엑소더스」의 역사야.”
그렇게 말하는 세이라의 눈에는 자부심이 가득해 보였다.
“이건 작년 여름방학에 다녀온 북부 대륙의 ‘용뼈 설산’에서 찍은 사진이고.”
풍경이 있고.
사람이 있다.
테이블 한가운데에 놓인 사진 중앙에는, 어느 설산(雪山)의 중턱쯤 보이는 곳에서 무릎을 굽힌 채 발갛게 달아오른 뺨으로 환하게 웃는 세이라가 보였다.
그 주위로 다섯 명의 사람들이 포진해 있었다. 서클 부원들일까. 다들 저마다의 개성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내가 1학년 때 지금의 부원들 몇 명이랑 따로 여행 갔을 때의 사진. 수백 년 전에 지어졌다는 고대 유적을 직접 본 건 처음이었는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서 무척 아쉬웠었어. 사실 입구까진 들어가긴 했는데 걸려서 쫓겨난 거지만 말야.”
쨍쨍한 햇볕 아래 넝쿨진 유적 기둥 주변에서, 챙 넓은 모자를 쓴 채 숯검댕이가 된 세이라의 얼굴. 막 사진기 쪽을 돌아보는 순간에 찍힌 터라 살짝 잔상이 흐릿했다. 생동감이 넘치는 사진이었다. 사진을 매만지던 세이라의 입꼬리가 즐거운 듯 슬며시 올라갔다.
“또, 이건 말이지.”
그리고, 이어.
봄—때로는 벚꽃잎이.
여름—물결치는 파도가.
가을—낙엽이 바스라지고.
겨울—눈꽃이 폴폴 내린다.
시원하게 물을 뿜는 계곡의 폭포, 주홍빛 저녁놀이 물결 위에서 반짝거리며 부서지는 광활한 바다, 덥고 축축한 열대우림, 부슬부슬한 모래로 가득한 사막 한복판의 지하 유적, 대체 뭘 타고 왔는지도 모르겠을 정도의 오지(??)에 위치한 외딴 섬, 눈 내리는 설원(雪?), 사람의 번쩍거리는 눈동자밖에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동굴, 빙하, 초원, 들판, 평원, 산맥, 협곡———
“이게, 우리「엑소더스」가 걸어온 길이야.”
더 넓은 세계를 향한 발걸음.
이미 졸업하고 없는 선배들의 족적마저도 전부 하나의 장면으로 기록된 사진들이, 무수하게 펼쳐져 있었다.
“얘는 아루라고 하는데, 굉장히 끼가 많고 활기찬 친구야. 근데 가끔 돌발행동을 할 때가 많단 말이지? 그래서 이 사진이 찍힌 다음날, 미리 챙겨온 수통을 다른 애들 것까지 몰래 혼자 마셔 버렸던 일이……”
에지오를 비롯한 네 명은 자연적으로 터져 나오려는 탄성을 막지도 못한 채, 세이라의 얘기를 듣는 데 급급했다.
세이라가 허용했던 두 시간 동안, 그들은.
사진 한 장 한 장에 담긴 이야기를 즐거운 듯 늘어놓는 세이라의 주위에 둘러 앉아, 아무 말도 없이 경청하기만 했다.
세이라는 훌륭한 이야기꾼이었던 까닭에, 미처 지루할 틈도 없었다.
남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그들에게 있어, 마치 사진 속 현장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제 여기에 너희가 들어가게 되는 거야.”
당장 올해부터라도 정규 활동에 참여한다면 너희들도 이 사진 속 인물들 중 한 명이 될 수 있을 거라며, 그렇게 된다면 분명 더 재밌는 여행이 될 거라며, 세이라는 그들을 둘러봄과 함께 말했다.
확실히, 즐거워 보이긴 했다.
유리는 기대감으로 부푼 가슴에 연신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중이었고, 에지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모험과 여행. 진정으로 삶을 즐긴다는 느낌이 물씬 드러나고 있지 않는가. 이 서클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진심으로 여기던 에지오였다.
그렇지만, 한편.
‘나는 에지오랑 따로 가고 싶은데……’
분명 가슴 떨리고 모험심 가득한 여행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건 맞았으나, 정작 루비아와 뮤의 관심사는 ‘에지오와 여행’이란 단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까닭에, 세이라의 말을 듣고서도 조용히 공감하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11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그로부터 얼마나 이야기꽃을 피웠을까.
시계가 어느덧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부원들 소개도 좀 해주려고 했는데, 이러면……”
밤이 깊었다. 신입 부원들도 각자 할 일이 있을 거다. 세이라는 탁자 위에 늘어놓았던 사진들을 한데 모아 정리하며 말했다.
“이건 내가 치우고 갈게. 나도 이제부터는 할일을 해야 하거든? 너희도 할일이 있으면 돌아가도 좋고, 아니면 여기 남아도 좋아. 아까 말했듯이 여기서 뭘 하든 너희의 자유니까. 혹시 마지막으로 질문이 있다면 하나 정도는 대답해줄게. 또 궁금한 거 있니?”
“아, 그럼 저기……”
그런 세이라의 말에.
에지오가 문득 손을 든 순간.
삑.
철컥.
“돌아왔습니닷!!! ……엥?”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