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낙인 (1)
* * *
#1
“마루, 나 물 좀 줘.”
테트라 크로울리가 아카샤의 별에 복귀한 지도 어느덧 며칠이 지났다.
마탑주는 마탑주. 백수처럼 퍼질러 놀 게 아니라 그동안 밀린 일을 해야만 했다.
마루가 마탑주 대행으로서 처리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던 까닭에, 테트라 본인이 직접 손을 써야 하는 부분이 몇 있었다.
하지만 테트라는 구태여 푹신한 매트리스 위에 이불을 깔고 그 위에 발랑 드러누웠다.
냠.
테트라는 아늑한 쿠션감 아래 파묻혀 손짓으로 블루베리 머핀을 둥둥 띄운 뒤, 그대로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마루가 직접 구워 만든 것이었다. 굉장히 만족스러운 식감에 테트라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마루?”
“여기 있어요. 주인님.”
사실 마루를 따로 시킬 필요도 없건만, 테트라는 마루에게 물을 떠오도록 명령했다. 마루는 착실하게 주인의 명을 따랐다. 테트라가 누워 있는 침대 주위에 똑바로 선 마루가 찬물이 담긴 컵을 건네자, 테트라는 그걸 잠시 지켜보더니.
“먹여줘.”
“……”
“빨리이이.”
마루가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든 간에, 테트라는 앙탈 섞인 비음까지 흘려대며 마루를 재촉했다. 엘레나가 봤다면 제발 나잇값 좀 하라고 지랄에 지랄을 떨었을지도 모를 노릇. 그러나 엘레나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테트라는 친히 자신의 친우에게 중지 손가락을 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마루는 제 주인을 향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 드세요.”
그대로 물컵을 테트라의 말랑거리는 입술에 가져다 대어, 서서히 각도를 기울이나 싶었지만.
“우웅. 이거 시러.”
“……”
“제대로 먹여줘.”
“지금 먹여드리고 있지 않아요?”
“마루, 정말 내 마음을 모르겠어?”
테트라 불퉁한 눈으로 마루를 쏘아봤다.
그러자 마루가 답했다.
“네. 전 호문쿨루스니까요.”
“……그거랑 이거랑 뭔 상관이야?”
마루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인간의 마음은 제가 알 수 없어요.”
그러자.
“마루. 내가 항상 말했지.”
테트라는 마루의 볼을 쓰다듬었다.
“너는 이미 인간이야.”
“……주인님.”
“아니라고 해도 소용없어. 나는 지금까지 이 세상에 없었던 수많은 진리를 창조하거나 발견해냈고, 마루 너는 나로 인해 또 하나의 진리가 될 거야.”
“……”
“마루, 너는 인간이 될 거야.”
테트라의 동공이 반짝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밤하늘의 별처럼 생긴, 평범한 인간 같지 않은 눈동자가 타오르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테트라는.
‘계약’과 ‘약속’을 절대로 어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암시 혹은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마루는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님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었다……
마루가 테트라의 실험으로부터 ‘태어난’ 지 꽤 오래도 되었다만, 아직 테트라는 정결한 인간의 혼을 마루의 안에 이식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탄생시키지 못했다. 마루는 그 자체로 마루여야 했으니까.
그래도 테트라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그럼 이제 먹여줘. 앙~.”
“그러니까 먹여 드리고 있지 않……”
“입으로.”
“읏.”
테트라가 생글거리며 웃었고.
마루는 물컵을 탁자 위에 올려놓은 채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노, 놀리지 마세요. 주인님.”
그런 말을 남기곤 고개를 돌려 자기가 있을 곳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미치겠어 정말.”
얼굴이랑 귓불도 붉어졌던 것 같은데. 테트라는 아주 귀여워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마루가 도망치는 것 정도야 간단하게 막을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다. 저 반응으로 충분히 만족했으니까.
순식간에 모습이 사라진 마루의 흔적을 눈으로 살피던 테트라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게 어떻게 인간이 아니야?”
#2
테트라는 펜을 돌리며 머릿속의 달력을 팔락팔락 넘겼다. 그러면서 한켠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또 다른 한쪽에선 거대한 서고에 잠들어 있는 방위 마법진의 흠결을 점검한다. 테트라는 언제나 세 개 이상의 사고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일이 귀찮게 됐네. 정말로.’
여기서 오래 머물 생각은 없다. 목도 없이 살아 움직이는 해골과 ‘약속’했던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불멸(?) 주제에 시간 개념은 칼같이 중시한단 말이지. 어차피 흘러가는 세월의 감각도 잘 느끼지 못하면서. 해골이 거주하는 장소는 좌표지정 텔레포트도 불가능한 지역이라, 일정 반경 이상 들어가면 직접 걸어가야만 했다.
그랬는데.
‘엘레나 그년이 진짜……’
하필이면 지금 ‘낙인’을 쓸 게 뭐람.
귀찮은 일은 가급적 빨리 처리하고 싶었다. 낙인이 쓰인 장소와 위치는 대강 알겠는데, 왜 쓰였는지를 모르겠다. 누가 가지고 있는 건지도. 일단 엘레나 본인은 아니다. 그랬다면 진작 찾아왔을 테니까.
‘도대체 원하는 게 뭘까…’
이제 거의 일주일쯤 지난 것 같은데도 테트라에게 접견 요청을 해오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테트라를 찾으려는 일말의 움직임이라도 있다면 모르겠으나, 낙인의 소유자는 계속 한 장소에만 머물러 있었다.
‘진짜 쓸데없는 것이기만 해봐……’
낙인.
그것은 테트라 크로울리와 엘레나 크라이모어 사이에 이루어진 일종의 계약이다.
계약 조건은 단 하나.
발동된 낙인을 소지한 대상의 기원(??) 하나를 실현시키는 데, 영혼이 허락하는 한계까지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
거부할 시 패널티는 존재하지 않는다. 애당초 거부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계약이니까.
쉽게 말하자면 어린아이들의 소원권 같은 것이다. 그게 엘레나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갔다. 분명 엘레나가 건네준 것이겠지만, 테트라는 도통 그 사이에 얽힌 뒷사정을 모르겠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대마법사 테트라 크로울리의 무궁한 마력은 본디 약속과 계약, 그리고 대가를 통해 이룩한 힘이기에 테트라가 그 규율을 어기는 순간 존재가 무너져 버린다.
다만 절대적인 칙령에 얽매여 있는 테트라는 언제나 자신을 옥죄고 있는 규율에서 벗어나길 원했다.
남들이 보기에 테트라 크로울리란 대마법사는 누구보다도 괴짜스럽고 자유분방한 인물이지만, 그녀의 심장은 이미 누군가의 손에 쥐어 잡혀 있었다.
그런고로.
다시 말하지만.
귀찮은 일은 가급적 빨리 처리하고 싶다.
그래. 어디 대마법사를 제 수하처럼 부려먹을 수 있는 희대의 소원권을 도대체 어떤 식으로 사용할 것이길래, 엘레나 그년이 선뜻 건네줬는지나 좀 보고 싶었다.
사람의 죽음을 원한다면 죽음을. 소생을 원한다면 소생을. 국가의 멸망을 원한다면 특정 마법진이 인챈트된 스크롤 한 장을.
불가능한 일을 원한다면 테트라는 그것을 가능에 가깝게 만들어줄 수 있었고, 기적을 원한다면 기적에 가까운 일을 실현시켜줄 수 있었다.
정점(??)의 칭호는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대마법사 중의 대마법사.
그러니,
테트라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물론, 낙인을 소지한 대상이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하려 한다면 테트라는 어떻게든 손을 쓸 거다.
당연한 얘기였으나, 그러기도 전에 엘레나가 그런 낌새를 보이는 녀석한테 낙인을 건네줄 리 없었지만 말이다.
그보다 엘레나 그년 때문에 지금 자신의 상황이 꽤나 곤란해졌다.
마음대로 마탑을 떠나 돌아갈 수도 없고, 이미 마탑 전체에 복귀 소식이 쫙 깔린 상태다. 더군다나 테트라는 성대하게 열린 환영식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마탑주니까. 그간의 성과 보고 정도는 받긴 해야 할 텐데……
그냥 환영받는 거 싫어서 몰래 돌아왔다 하지 뭐. 이래저래 길고 짧은 말이 오고가는 게 귀찮을 뿐이지, 막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너무 내 연구에만 몰두하는 것도 안 좋고.’
제1, 제2 마탑주는 이미 테트라의 조용한 복귀를 알아차렸겠지만. 형식적으로도 소박한 연회를 연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애당초 각 학파의 수장들은 서로 얼굴을 본 지가 꽤 된 참이었다.
에테르 학파가 아카샤의 별 최고의 진영으로 올라섰을 때부터, 테트라는 본인 진영의 입지를 견고히 다지기 위해 그들과 최대한 접점을 만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최근 테트라의 연구 진척도가 상당히 높아졌음에 따라 집무실을 오래간 비우는 일이 많아지면서, 에테르 학파가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를 주위로부터 여럿 듣게 되었다.
에테르 학파에게 있어 새로운 진리의 문을 연 창시자가 바로 테트라 크로울리였으니, 정작 그녀 본인이 없으면 학파의 발전이 더딘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탑의 일보다 테트라 본인의 연구가 더 중요한 것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태초로부터 부여된 규율을 벗어나.
인간을……
새로운 섭리(?理)의 문을……
‘마루……’
“주인님.”
“마루우우우우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마루에게 달려가 몸을 던진 테트라가, 자신의 품 안에서 버둥거리는 마루를 끌어안고 연신 볼을 부볐다.
마루는 답답하다며 테트라의 어깨를 탁탁 쳤지만 테트라는 마루를 절대 놓지 않았다.
“아파요, 주인님.”
“괜찮아. 안 부서져.”
“…이건 제 몸인데요?”
그렇게 마루가 풀려난 건 조금 뒤였다.
“주인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헝클어진 머리카락의 마루가 말했다.
뭔가 또 소식을 물어왔구나. 테트라는 싱긋 웃었다. 마루는 역시 똑똑한 비서였다. 테트라의 지식을 전수받은 만큼 동기화율도 높은 것 같고.
타이밍이 참 절묘했다.
“응. 나도 알아.”
테트라가 집무실의 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연보랏빛 색으로 반짝이는 머리칼의 가닥을 손으로 빙글 돌리며, 테트라가 문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나는 여기서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혹시라도 헤매는 것 같으면 아무 문이나 연결해주렴.”
마루는 주인의 분부를 받들어 고개를 숙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