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낙인 (5)
* * *
#12
슈리엘이 떠나자, 나는 혼자 남겨졌다.
‘딱히 할 것도 없는데……’
다른 마법사에게 볼일이 있다면 회랑으로 향하라 했지만, 아카샤의 별에 아는 마법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대로 돌아갈까 했으나……
기왕 이렇게 된 거, 슈리엘이 말했던 오후 3시까지 관광 겸 마탑이나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엔 함부로 들어가지도 못할 통제구역이다. 제국 마법의 정수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니. 이보다 값진 경험이 또 있을까.
발을 오른쪽으로 돌린 나의 피부가 따끔거렸다.
‘마력이 곳곳에서 느껴져.’
지금 나의 수준과 비교조차 무색할 정도의 강대한 마력들이, 일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마력을 전혀 깨우치지 못한 일반인이 어쩌다 이곳에 들어선다면, 경우는 두 가지로 나뉘겠지.
회로가 강제로 일깨워지거나,
그대로 불타 사라지거나.
그 정도로 압박감이 강렬했다. 마나 감응력을 키우기에 참 좋은 훈련 장소가 되겠군.
주먹을 가벼이 쥐었다펴자 찌릿, 하고 정전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손바닥 안에서 작은 스파크가 파직파직 터져나간다. 이곳에서 만일 주변 마나를 빌리는 마법을 발동한다면, 평소의 배는 되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들의 기본적인 위계가 엑시(6)를 우습게 넘본단 사실이다.
병단의 최중요 전력으로 취급받을 수 있을 수준의 마법사들이 널리고 널렸다. 고작 3위계에 불과한 나 같은 건 마법사 축에도 끼지 못할 터.
여기 있는 이들은 대개 자신이 살던 곳에서 둘도 없을 천재라 칭송받았겠지. 범재는 평생을 갈고닦아도 한계가 있었을 테니.
천재 하니까 생각나는 게 또 있었다.
……로르센 아카데미 개교 이래 역대 최고의 재능이라 평가받는 루비아라면, 슈리엘처럼 아카샤의 별에 입탑하는 과정에도 별 어려움이 없었을 텐데. 그녀는 어쩌다 프론티어에 들어오게 된 걸까.
나로선 아무것도 모른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하나라도 더 알고 싶다.
기억을, 되찾고 싶다.
—루비아는…… 잘 지내고 있던가?
“……”
슈리엘이 사라진 저편을 멍하니 바라본다.
내가 찾으려는 건 비단 그날의 일뿐만이 아니었다. 보다 근본적인 것도 찾고 싶었다.
이를테면, 내 몸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라든지.
신전에서 깨어난 뒤로 어디를 향했고, 무슨 일을 겪었고…… 테트라라면, 그 모든 걸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엘레나가 뜻모를 이야기를 많이도 해줬다.
역천(??)이니. 마신(??)이니.
듣는 입장에선 굉장히 현실감 없는 말들.
그러나 정작 누구보다 비현실적인 존재는 나였음에, 엘레나의 말이 아예 거짓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하늘과의 계약. 이 세상의 모든 마(?)를 멸하기 위해 새로이 태어난 우리들. 정해진 운명—— 대부분이 뜬구름 잡는 소리다. 그렇지만 속에 담긴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할 내가 아니다.
엘레나와의 면담에선 아리송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으나, 내가 어떤 거대한 흐름에 휘말렸단 것만큼은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원해서 이런 몸이 되었나.
원해서 그런 일을 겪었나.
아니다.
그 하늘이란 게 점지한 대로, 나는 인형처럼 움직임을 당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하필 나인가.
어째서 나여야만 했는가.
사실을 고하면, 매일 밤마다 끊이지 않는 근심 속에서 살아가는 나날이다.
많이 지치기도 했다.
평화로운 삶이 좋았다.
‘시골을 벗어나지 말 걸 그랬나……’
아니.
그랬다면 루비아와 떨어졌을 거다.
그때의 난 버티지 못했겠지.
결국, 똑같은 순서로 일이 흘러갔을 거다.
운명이니 뭐니.
그게 다 뭐라고……
“근심이 많아 보이시네요.”
그때였다.
마탑의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리며 마른세수를 하고 있는데, 내 옆에서 불쑥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참으로 신비로운 소년이었다.
“오해는 마세요. 저는 당신의 체내 마력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았을 뿐이니까요. 인간의 마음 같은 건, 하나도 모르거든요. 그렇지만 당신 같은 상태의 인간들은 대부분 걱정이라는 게 많다는 것 같아요.”
“……누구세요?”
이런저런 말을 떠벌리며 다가온 소년.
어린아이 특유의 천진난만한 미소까지 짓는 걸 보면, 영락없는 어린애였으나 나는 구태여 존대를 붙였다.
왜냐하면.
‘……터무니없이 강하다.’
본능적인 경각심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으니.
에픽 클래스 교수진들.
어쩌면 그 이상.
자연스레 나의 목울대가 고저를 그렸다.
잊으면 안 된다.
여긴 아카샤의 별이라는 걸.
겉으론 이렇게 어려 보이는 소년이, 최소 6위계의 강력한 마법사라는 사실을, 절대 망각해서는 안 되었다.
“고객님은 특이한 사례라서 심층조사가 필요하세요. 여기저기 문제가 많아 보이시는데, 저희 쪽에서 간단한 테스트 이후 결과 해석을 해드릴 테니 잠깐 따라오실래요? 아, 간단한 음료 대접도 해드릴게요. 부담 없이 한 잔 하고 가셔요.”
고, 고객님……?
여린 몸속에 감춰진 실력만큼이나 수상한 냄새를 풀풀 풍기며 다가오는 소년에게서, 나는 잠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제 돌아갈 거라……”
“라는 게 요즘 유행이래요.”
“……?”
“입장에서부터 문제가 생길 줄은 몰랐네요. 깜빡했어요. 밖에서 데려갈까 하다가, 안으로 들어오시는 모습을 보고 잠깐 기다렸어요. 아까 그분과 할 얘기는 다 하신 거겠죠?”
그분이라면, 슈리엘을 말하는 걸까.
아까부터 날 지켜보고 있었다고?
“데려간다니, 무엇을……”
“제 이름은 소개할 필요 없겠죠.”
어째 사람과 말하는 것 같지가 않다. 원활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소년은 자기가 할 말만 하고 있었다.
—저 외부인, 누구랑 말하는 거야?
—몰라. 정신병자인가?
—미친놈도 참 많군.
—내가 보기엔 자네도 미쳤다네.
—갑자기 왜 시비인가? 이 썩을 노인네야.
주위에서 나를 보고 쑥덕거리는 마법사들.
뭐지.
……이 소년의 모습이, 안 보이는 건가?
“되었다면, 절 따라오세요.”
“잠깐만요. 대체 어디로……”
“제 말에 토를 달지 말아주세요, 손님.”
싸늘하게 짓쳐오는 목소리가 귓전을 울리자, 나는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저는 당신을 데려오라는 임무를 받았을 뿐이지, 당신의 궁금증을 해결해주란 임무를 받은 게 아니거든요.”
서슬퍼런 눈동자가 날 꿰뚫을 듯 푸른 안광을 흘려내고 있었던 까닭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럼 이제 따라오세요. 조용히.”
결국 어디로 가는 건지도 모른 채.
앞장서는 소년의 뒤꽁무니를 열심히 쫓았다.
#13
“……여길 왜 데려왔……”
소년이 내게 눈길을 향하자, 입을 닫았다.
‘뭔가 좀 이상한데.’
탑의 안으로 날 이끈 소년이 향한 곳은.
남자 화장실이었다.
……
여기까지 날 데려오라는 임무를 받았다고?
누구야, 그거?
—쪼르르르르……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 한 명이 소변기 앞에 있었는데, 설마 저 사람인가 싶어 유심히 바라보았다가.
“……뭘 그렇게 보는 거요? 궁금해?”
“아, 아닙니다.”
저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헛기침을 하며 옆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거기 있는 거울에 문득 시선이 닿았다.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거울을 보았다.
‘미친.’
분명 내 앞에 있을 터인데.
소년의 모습이 보이지가 않았다.
‘……진짜 귀신인가?’
아니면 환각?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뭐 하세요? 따라오지 않고.”
“……”
소년은 무언가 깊이 고민하는 듯하며 변기가 있는 칸을 하나씩 두드리더니, 저 끝의 칸에 멈춰 서서 내게 손짓하고 있었다.
이거.
따라가도…… 되는 거겠지?
소년의 뒤를 따랐다가 무슨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는 게 아닌가 싶어 잠시 자리에 정지하고 있자니, 소년은 그런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사납게 치켰다.
“안 오세요?”
“……”
“흐음.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건 매우 쓸데없는 걱정이에요.”
역시나 소년의 목소리는 나 말고 들리지 않는 건지, 무척 시원한 표정으로 볼일을 마친 로브의 마법사가 내 옆을 지나쳤다. 소년이 자리하여 있을 터인 뒤로는 눈길 하나 주지 않은 채.
“주인님의 마법은 완벽해요. 좌표 계산이 실패할 경우는 절대로 없을 테니 걱정 마세요.”
소년이 문을 가볍게 두드린다.
딱.
“이걸로 됐어요. 이제 문을 열면 주인님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 거예요.”
“……”
“뭐 하시는 건가요. 움직이지 않고.”
“……”
“정 움직이지 않으시겠다면, 어쩔 수 없죠.”
소년이 중얼거렸다.
“강제로 데려가는 수밖에.”
손을 뻗는다. 오 미터 남짓한 거리에서, 소년이 활짝 펼친 손바닥을 꾹 쥐었다. 짧은 중얼거림과 함께 팔꿈치를 뒤로 쭉 당긴다.
돌연.
육중한 마력이 가해지자, 내 머릿속에서 반사적으로 불빛이 반짝였다. 번갯불처럼 뇌리를 스치는 감각이 일음과 동시에.
“!”
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마치 자석처럼 소년에게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내 몸의 통제 권한을 잠시 잃는 듯싶었으나.
“이건 또 무슨……”
일 미터 정도 바닥을 긁는 것에 그쳤다.
“……저항인가요? 아니, 그 정도 저항력을 갖추고 있는 것 같진 않아 보였는데……”
잠시 당황스러움을 여실히 드러냈던 소년은, 이윽고 자그마한 미소를 짓는다.
“흥미롭네요. 그 능력. 주인님도 좋아하시겠어요.”
그래도 다음은 없다.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진심을 다한다면 소년은 얼마든지 날 강제로 옭아맬 수 있었다.
‘도망칠까?’
아니.
나는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 주인님이라는 게, 대체 누군데?”
그러자.
“별 하나의 주인.”
내 의문에 드디어 소년이 답한다.
“사령(死?)과 생령(??)의 주(?). 영원한 계약. 부패한 사도. 유일한 구도자. 최초의 굴레. 시대에 종언(??)을 내리실 분. 마지막 구원. 그리고——”
기계음처럼 또박또박 말을 꺼낸 소년은,
“……”
방금 두드렸던 문을 향해 불현듯 고개를 깊이 숙인 뒤 옆으로 물러났다.
“나의, 주인님.”
마치 경외를 표하듯.
끼익
찰나의 이후 문이 열리고.
“마루. 나한테 언제 또 그런 거창한 호칭을 붙인 거니. 듣는 사람 부끄럽게 말이야.”
분명 빈칸이었을 곳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자수정을 녹여 실을 짜낸 것처럼, 흐르는 듯한 연보랏빛의 긴 머리칼. 요염한 디자인의 개량형 로브가 걸음에 따라 펄럭인다.
질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백옥 그 자체인 피부는, 조명 아래서 아득한 빛을 흩뿌린다.
도저히 같은 인간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실로 비인간적인 아름다움에, 나는 무언가 불쾌하면서도 본능적인 두려움 내지 소름마저 느끼는 참이었다.
차라리,
요정(??)이라고 하면 맞는 표현일까.
요정이 말했다.
“하도 안 오길래 그냥 내가 나왔어. 물론 다시 데려갈 거긴 한데, 그전까진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일 것 같았지 뭐야. 우리 마루가 좀 답답했지? 대신 사과할게.”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들을 줄 알았어요.”
“아냐. 너는 사교성을 기를 줄 알아야 해, 마루. 나한테 하는 것만큼 다른 인간에게도 해주면 참 좋을 텐데.”
“……노력해 볼게요.”
“거짓말 하기는.”
목소리는 의외로 끝이 날카로웠지만.
“그보다, 네가…… 엘레나의 낙인을 가진 사람이구나?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네. 반가워.”
그만큼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낙인……’
그리고, 엘레나의 이름.
내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신비로운 존재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 나는 알 것도 같았으나.
“그……”
“응?”
입이 근질거려, 결국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
“여기, 남자 화장실인데……”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