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정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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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싫은 하루가 시작된다.
황립 프론티어 아카데미 제2학구 에픽 클래스의 분위기는 평소와 같았다.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 훈련하는 성실한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전날 밤새 친구들과 놀다가 늦잠을 잔 나머지 아침 강의에 지각해버린 학생도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시험 기간에 맞추어 공부를 하다 머리를 쥐어뜯는 학생들, 3동 카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휴식을 취하거나 평소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며 집단으로 여가를 즐기는 학생들.
전부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다.
“안녕, 뮤. 역시 여기 있었네.”
“……”
몇 명만 빼고.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던 뮤를 찾아온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뮤는 땀으로 늘러붙은 앞머리칼을 손으로 쓸면서, 손아귀에 쥔 검을 잠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후우, 뜨거운 숨결을 내뱉음과 동시에 자켓 지퍼를 풀고 쭉 내린다.
“무슨 일이야.”
착 가라앉은 음성이 루비아를 향했다.
적대적이고 날이 선 듯한 뾰족함은 여전했으나, 그것은 비단 루비아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뮤와 루비아는 전보다 관계가 훨씬 나아진 편이다.
아니, 이걸 나아졌다고 해야 할까.
그녀들은 지금 일시적 협력 관계였다.
“너한테 더 물어볼 게 있어서.”
“물어볼 거라니?”
자신이 아는 건 전부 말해줬을 텐데. 뮤도 따로 움직여서 조사를 해보려 했지만, 아는 사람이 거기에 있다며. 본인이 직접 알아보겠다고 한 루비아였다.
오늘은 4월 10일 일요일.
꼭 주말만 외출이 가능한 건 아니지만 시간적 여유를 따졌을 때 어제 외출했을 가능성이 높다. 뮤의 그런 추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어제 거기에 가봤거든. 아는 선배랑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예 수확이 없던 건 아니었어.”
“그래? 뭘 알아냈는데?”
어제, 그러니까 토요일. 루비아는 예정대로 본부에 외출 기록을 남긴 뒤 프론티어를 빠져나갔다.
그렇게 로브를 두른 루비아가 향한 곳은 제국의 중심에 위치한 거대 마탑, 아카샤의 별.
현재로선 에픽 클래스의 교수진들도 전부 입을 다물고 있어 발자취조차 알지 못하는 에지오의 행적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을 장소였다.
그러나 마탑 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경비병에게서 들은 말은 굉장히 의외스러웠다.
“마탑주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대.”
“……뭐?”
뮤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제3마탑의 마탑주는 이미 1년 전부터 자리를 비운 상태라고…… 최근 복귀한단 소식은 있었는데, 결국 환영식에 나타나지는 않았대. 그러니까 거기에 마탑주는 없는 거야.”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나한테 말해줬단 말야. 자기는 마탑주를 만나러 갈 거라고. 그 사람이 자길 도와줄 거라고 말했었어.”
“그게 언제인지는 말해줬어?”
“……그건 아닌데, 갈 데가 거기밖에 없잖아. 게다가 가능하면 빨리 가고 싶어 했던 것 같았고…… 아마 없어진 날 바로 출발했을 가능성이 높아.”
“음…… 이상하네. 정말.”
루비아는 조용히 손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습관적으로 손톱을 치아 사이에 두려다 곧 아차 싶어 그만두었다.
“아무튼 그걸 물어보려고 온 거야. 네 말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거기로 향한 게 맞아?”
“정황상 그렇다니까.”
“으음…… 정말…… 모르겠네.”
날이 갈수록 불안감은 더해진다.
지난주 토요일, 에지오 크라닐은 프론티어를 떠나 바깥으로 외출한 뒤 종적을 감추었다.
돌아오는 월요일에 재차 신입생들을 소집한 타일러 르베귄 담임교수가 그 사실을 알렸고, 그 녀석은 이상한 데 얽히는 일도 지지리 많다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일단 프론티어에서 조사를 해보고 있다곤 하는데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에지오의 실종 소식을 들은 1학년 신입생들은 당연히 뒤집어졌다. 저번에 있었던 사건에서도 주축이 되었던 에지오다. 이번에는 또 무슨 사건에 휘말린 걸까. 아무도 내막을 알지 못했다.
에지오가 크게 다치거나 실종되는 것에 트라우마가 있던 뮤와 루비아는 물론이고, 유리마저 이번에는 장난기를 쭉 빼고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그 외로도 에지오와 친분이 있던 사람들—스텔라, 가브리엘 등—의 경우,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여 따로 조사까지 벌였을 정도다.
그들도 그러한데, 뮤와 루비아는 또 어떨까.
실종 사실이 알려진 직후부터 곧바로 타일러 교수를 찾아가 한바탕 뒤집어엎는 건 고사하고, 해당 사건과 연관이 있을 만한 사람을 모두 찾아가 에지오의 지난 행적을 탐문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에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내막을 알 턱이 없다. 빈번하게 허탕을 쳤다.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가고, 주어진 단서는 극히 적었다. 에지오와 깊은 인연이 있던 뮤와 루비아는 약 이틀 간 퀘퀘묵은 근심에 절어 살았다.
1학년 학생 한 명이 바깥에서 실종되었다는 소문은 금세 에픽 클래스 내부에 퍼져 나갔다. 그 소문의 대상이 1학년 15번 에지오 크라닐이란 사실 역시 덧붙여지자, 다른 학년의 학생들도 난리가 났다.
주로 「마스터피스」 서클의 회장이라든가, 소중한 부원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에 발칵 뒤집어진 「엑소더스」서클의 부원들이라든가.
「엑소더스」의 경우입부 당일 미팅을 했던 부원이 아니라면 에지오의 얼굴은 보지도 못했겠으나, 일단 신입 부원에게 큰일이 났다는데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3학년 레이린 아이오나는 이제 옷을 다 만들었는데 막상 줄 사람이 없어져서 굉장히 혼란스러워했다. 정말 아끼는 후배에게 무슨 큰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다.
그렇게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이 없으나, 몇 명의 학생들이 저마다 근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때.
타일러가 재차 신입생들을 소집한 뒤에, 머리를 긁적이며 새로운 공지사항을 알렸다.
──에지오는 실종된 게 아니다.
자세한 이유는 알려줄 수 없지만 잠시 사정이 있어서 외부에 체류하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말했다. 다만 언제 돌아올지도 미정이고, 그냥 아직 살아있다는 것밖에 말해줄 수 없다고 한다. 에지오를 걱정하던 학생들에게 제공된 정보는 극히 제한되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대부분이 크게 안심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생존 사실이 알려졌다. 가브리엘은 그럼 그렇지 역시 쉽게 죽을 놈이 아니라며 한숨을 푹푹 쉬었고, 유리는 그럼 됐다며 에지오에게서 신경을 껐다. 라고 하지만 어젯밤에도 불현듯 떠오르는 바람에 이불 속에서 괜한 신경질을 내었다.
다만 스텔라는 여전히 에지오의 무사를 빌면서 밤하늘의 별에게 기도를, 그리고 뮤와 루비아는 지금처럼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며 일시적 협력 관계를 맺은 뒤, 에지오의 갑작스런 실종에 관한 일을 조사하고 있었다.
처음은 루비아가 뮤를 찾아갔던 것이 먼저였다. 혹시 최근 에지오와 가깝게 지냈던 뮤라면 알고 있는 게 있을까 싶어서. 에지오를 한시라도 빨리 찾고 싶은 마음은 둘 다 같았으니, 뮤는 의외로 긍정적인 답변을 루비아에게 내놓았다.
현재 에지오는 일부 기억을 잃은 상태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 아카샤의 별에 가서 제3마탑주에게 도움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자신에게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며, 그렇다면 아마 거기에 뭔가 해답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에지오의 상태에 대해서는 루비아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카샤의 별과 마탑주란 단어가 뮤의 입에서 나왔을 때, 미처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법에 일가견이 있는 루비아로선 그것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잘 인지하고 있던 까닭이다.
뮤가 구태여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루비아는, 비교적 자유로운 행동이 가능한 주말이 돌아오자마자 바로 짐을 챙긴 뒤 아카샤의 별로 향했다.
아카샤의 별에는 아는 선배—슈리엘 데 라파르트—도 있었고, 여차하면 그를 만나서 에지오에 대한 것을 물어볼 생각도 하고 있었다.
물론 슈리엘의 얼굴을 편하게 볼 수 있을진 모르겠다만, 일단 가봐야 아는 것이었다. 워낙 마탑에서 바쁘게 지낸다고 하셨으니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그렇게 반드시 단서를 찾겠다는 결연한 마음을 가지고 아카샤의 별에 들어섰던 루비아였으나, 결국 아무런 수확도 없이 프론티어에 돌아오고 말았다.
아니.
방금 말했던 것처럼,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제3마탑주가 자리를 비웠다.
에지오는 분명 제3마탑주를 만나러 간다고 했는데, 1년 전부터 이미 어딘가로 떠나고 없는 상태라고 한다. 마탑에 복귀하지도 않았다.
그럼 에지오는 여기서 대체 무엇을 한 걸까.
마탑주를 만난 게 아니라면……
“……마탑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말은 그렇게 하지만 뮤도 내심 불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루비아의 말이 진실이라면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까닭이다.
어쩌면 아카샤의 별에 가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전혀 다른 곳에서 무언가 큰일에 휘말린 거라면 좀 더 조사를 해봐야 한다.
“본부에서 답변은?”
“안 왔어.”
“그렇겠지. 교수들도 하나같이 닥치고 있는데. 윗대가리인 본부라고 알려줄 리가 있나.”
뮤가 한숨을 쉬었다. 바닥에 내려놓았던 검을 다시 쥐고는 가볍게 한 번 내리그었다.
부웅.세찬 바람이 불었다.
검을 휘두르자 조금은 마음이 차분해진다. 미약한 검풍으로 머리칼을 휘날리며 뮤가 루비아를 향해 물었다.
“그거 말고는?”
“……으응?”
“그거 말고 다른 건 뭐 알아낸 거 없어?”
“음……”
마탑주는 자리를 비웠다. 거기까진 입구에서부터 확인한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에지오가 아카샤의 별에 방문한 것이 맞다면, 그를 한 번쯤 목격한 사람이 아카샤의 별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아니, 그럴 필요도 없다.
“내 생각엔, 에지오가 거길 간 건 확실한 것 같아.”
“뭐? 아까는 의심했잖아.”
“그렇긴 한데……”
얻은 정보를 조합한다. 고운 미간을 좁힌 루비아가 침음성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나한테 유리가 말해줬어. 에지오랑 지난 토요일 대낮에 트램 정거장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데, 그때 걔가 자기한테 아카샤의 별에 간다고 말했대.”
“……뭐? 진짜로?”
“응. 확실해. 경황이 없어서 자기도 까먹고 있었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아. 그거랑 이것저것 합쳐서 전부 따졌을 때 에지오는 분명히 아카샤의 별로 향한 게 맞아. 그리고 거기서 돌연 실종됐고. 그런데 정작 만나러 갔을 마탑주는 아직 복귀하지도 않았다, 라……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루비아가 심각한 얼굴로 고민함에 따라 뮤도 흥건한 땀을 털어내며 옷자락으로 이마를 닦았다.
“거기 분위기는 어땠는데?”
“아카샤의 별?”
“어.”
“음…… 살면서 가본 적이 별로 없었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이상한 것 같진 않았어.”
“최근에 무슨 사건이 벌어져서 막 흉흉하다거나 그러진 않았고?”
“응.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아.”
“흐응, 프론티어 에픽 클래스 한 명이 거기서 실종되었는데 아무 분위기 변화도 없다는 건가……”
프론티어에서도 자세한 사정을 알려주지 않고, 아카샤의 별에서도 아무런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다면, 그건 분명 위에서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닐까.
“이건 더 조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
“그러게……”
이내 뮤의 눈길이 루비아를 향했다.
“거기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했었지? 그 사람한테 따로 물어볼 순 없어?”
“음, 되게 바쁘신 분이라. 아마 따로 만나는 건 안 될 것 같은데.”
“편지로 물어보면 되잖아.”
“……그런가?”
생각해 보니 그렇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워낙 바쁜 탓에 답장이 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는 정도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다만.
‘……그래도, 되는 걸까?’
슈리엘과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던 루비아로서는, 에지오의 행방 탐색을 목적으로 정말 오랜만에 연락을 드리는 것이 도의적으로 옳은가 싶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생각해볼게.”
그때.
“생각해볼게, 가 아니지. 당장 편지 써서 보내. 지금 가능한 건 뭐라도 해야 할 거 아냐.”
“그게, 선배님한테 민폐가 될 수도 있고……”
“지금 민폐인지 아닌지가 중요해?”
뮤는 간만에 뿔이 난 음성으로 말했다.
“에지오가 실종됐다고. 살아있는 건 다행이라 쳐. 근데 언제 돌아올지도 몰라.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도 몰라. 난 하루하루가 불안해 죽겠거든? 나도 당장 가서 마탑인지 뭔지 전부 뒤집어엎고 싶은데, 그럼 더 큰일이 날 테니까 가까스로 자중하고 있는 거야. 근데 넌 아니잖아.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에지오를 찾고 싶은 거 아냐, 너도. 이 와중에 다른 사람 사정 걱정할 때야?”
“아냐, 난 그냥……”
“시끄러워. 넌 정말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겉으론 에지오를 위하는 척하지만, 결국 전부 자기 자신의 마음이 더 편하려고 하는 행동이 대부분이었잖아. 안 그래?”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래, 그러시겠지. 넌 아무것도 모를 거야. 전혀 모른다는 스탠스를 취해야 네가 우위에 설 수 있을 테니까. 제발 순수한 척 좀 그만해. 너는 순수한 게 아니라 우유부단하고 답답한 거야. 루비아.”
“난 내가 순수하다고 한 적 없어.”
“네 모든 말과 행동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너 자신은 아무 잘못 없다고. 너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너는 최선을 다했다고. 전부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러니까 책임은 너한테 있는 게 아니라고. 네 스스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주변인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거란 말이지. 다 자기 잘못이라 생각할걸. 결국 네가 선택을 좀만 더 잘했다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모든 상황을 자기한테 유리한 쪽으로 합리화 시키잖아.”
“……네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러는 거야?”
“너와 에지오에 대해선 좀 알고 있지.”
뮤는 입술을 강하게 짓씹었다.
“에지오는 널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 바쳤어.”
“……”
“그 정도로 너를 위했고, 너만을 바라봤어. 내가 에지오와 사귀면서 1년이 꼬박 넘도록 에지오의 마음을 원했는데, 결국 그날이 올 때까지 에지오는 나를 바라봐주지 않았어. 대신 너를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지. 너한테 처참히 버려졌는데도. 그리고 널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거야.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에지오는 정말로, 널 위해서라면 모든 걸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었어.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아직도 모르겠어?”
“……”
“이제 와서 후회하기도 늦었는데, 지금 네 언행을 보면 절대 에지오를 위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아. 여전히 너는 에지오를 겉으로 위하는 척만 하는 거야. 네 마음의 부채를 덜어내기 위해. 네 스스로 에지오를 위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건 절대 진실이 아니야.”
“……”
“있잖아. 에지오가 또 사라질지 몰라. 어쩌면 정말 큰일이 생겼을지도 몰라. 그런데도 넌 에지오만을 바라보고 있지 않아. 여전히 너무 많은 걸 신경 써. 내가 보기엔 전부 쓸데없는 것들이야. 이젠 버릴 때도 됐지 않아? 그런 설렁한 마음가짐으로 대체 에지오에게 뭔 속죄를 하냐는”
“네가.”
그때.
“네가 뭘 알아—!”
루비아가 소리쳤다.
높은 비명이 장내에 메아리친다. 날카로운 울림이 뮤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뮤의 눈동자가 급속도로 커졌다.
“……너.”
“열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뜨거운 숨을 거칠게 몰아쉰다. 루비아의 망울진 눈에 물방울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뮤의 눈빛이 낮게 침잠했다. 반면 입매는 서서히 올라갔다. 꽤 흥미로운 반응이었던 까닭이다.
이처럼 강렬한 감정을 토해낸 것이 정말 오랜만인지, 아니면 아예 처음인 건지, 루비아는 폭발할 듯 쿵쿵거리는 심장을 끌어안은 채 뮤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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