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정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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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수라장, 혹은 이미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간 싸움터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희뿌연한 연기가 군데군데 퍼져 있어 시야를 확보하기가 영 힘들었다. 팔소매로 입을 가린 채 콜록이며 황급히 주변을 눈으로 훑는다.
창문은 산산이 깨져 있고, 천장에 매달린 조명은 덜렁거렸으며, 지면은 메마른 듯 쩍쩍 갈라진 채다. 미처 연소되지 못한 잔불과 불똥이 여기저기서 튀기고 있다. 흥건한 물웅덩이가 바닥의 균열 사이로 출렁거린다.
원뿔 형태의 얼음 조각이 비산하고, 그것들은 대부분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동강이 나버린다. 쿠구구궁. 이미 바스러져 파편이 된 지면을 재차 응집하여 하나의 벽으로 세운 루비아가 짧게 손짓하는 것과 동시에, 푸른 불길과 뒤섞인 검은빛의 잔상이 매서운 속도로 돌진한다.
콰아아앙─!!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갔다. 유리 조각들은 다시금 깨지고 깨져서 고운 모래처럼 변해버린다. 부서진 방벽의 잔해를 지나쳐 대번에 도약한 뮤가, 급히 손을 내뻗는 루비아를 향해 검날을 내리쳤다.
‘미, 미쳤어?! 저건 진심이잖아!’
유리가 속으로 비명을 삼켰다.
저대로 닿는 순간, 루비아의 몸은 두 쪽이 나버릴 거다. 연무장의 문을 열어젖힌 유리의 낯빛이 숨길 수 없는 경악으로 물들었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저 싸움을 말려야 했다. 이 이상 진행되면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누구 한 명 아주 크게 다칠 것 같단 생각에 재빨리 소리친다.
“멈추라고 했잖아아아아아! 그마아안! 그만해 다들! 친구끼리 뭐하는 거야아아아아!”
높은 비명이 천장을 때린다. 유리의 붉은 눈동자가 더 붉게 타오르고, 실처럼 가느다란 머리가닥이 삽시간에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이를 악물고 시선을 고정한 채 정신을 한 점에 집중시킨다.
──우우우우웅!!
다만 유리의 예상과는 달리 저대로 충돌한다 해도 루비아는 충분히 뮤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었으나, 가일층 심화된 둘의 싸움을 목격한 유리의 입장에서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당장 멈추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유리?”
그제야 유리의 존재를 인식한 건지, 일부가 검게 그을린 루비아의 눈길이 홱 하고 옆으로 돌아갔다.
아차, 싶었던 순간에.
“네 패배야.”
끝이 타버린 까닭에 다소 삐뚤빼뚤해진 머리칼을 휘날리며, 반월을 그리듯 굽이치는 검날이 루비아의 정수리를 향해 빛살같이 쇄도한다.
바로 그 순간.
“……!”
“내가, 멈추라고, 했지……!”
강풍이 일고,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압력에 맞부딪힌 뮤의 검격은 제자리에서 멈추었다.
—우우우웅……
루비아의 방호 마법은 가까스로 펼쳐진 상태. 일 초라도 더 늦었으면 정말 위험했을 수도 있을 법한 찰나의 순간, 아슬아슬하게 안을 파고들지 못한 검날은 결계에 자그마한 빗금을 남겼을 뿐이었다.
비단 검이 움직임을 정지한 것뿐만이 아니라, 뮤의 몸체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은 채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마치 공중을 부양하듯. 갑작스러운 기현상에 뮤가 버둥거리며 몸을 비틀어 보지만 쉽지 않다.
뮤가 인상을 찌푸리며 눈동자를 옆으로 굴렸다.
마력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기이한 힘의 파동이 느껴진다.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떨면서 두 손을 앞으로 쭉 뻗은 유리의 모습이 보였다.
맹렬한 화염처럼 타오르는 붉은빛의 안광이 일렁거리는 가운데, 뮤는 기어이 자신을 통제하는 데 성공한 유리와 눈을 마주쳤다.
“으극……”
각자 가진 재능의 한계를 시험해 볼 일이 별로 없어 대부분은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사실이지만, 유리의 초능력은 에픽 클래스 내부에서도 매우 강력한 부류에 속했다. 허구한 날 에지오한테 능력을 봉해져서 그렇지.
유리가 에픽 클래스 신입생 2번의 자리를 꿰찰 수 있었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당장 뮤의 아래에 있는 학생이 바로 유리였다. 가진 재능의 격으로는 1번인 뮤에게도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남한테 방해받는 건 싫은데……’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다. 마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면 해방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체력을 어느 정도 소진한 지금은 꽤 어려운 일이다. 빠르게 판단을 마친 뮤가 입술만 겨우 움직여 말을 내뱉었다.
“이거 풀어.”
“푸, 풀어주면… 여기서 더 안 싸울 거라고 약속해.”
“그래, 약속할게. 그러니까 풀어. 이러고 공중에 매달려 있는 거,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네.”
확실히 이상한 기분이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염동력과 마력의 기묘한 차이를 느끼며, 뮤는 지금 이 순간의 감각을 최대한 뇌리에 저장하기로 했다.
잠시 고민하던 유리가 이윽고 머리를 끄덕이며 천천히 손을 아래로 내렸다.
툭, 하고 제어가 풀린 뮤는 가볍게 착지했다.
스윽.
그리고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본다.
“결판은 못 지었지만, 아무래도 내 승리인 것 같네. 이건 너도 동의하지?”
너덜너덜한 유니폼 차림의 루비아는, 격렬한 전투로 인해 가빠진 호흡을 고르며 차분히 대답한다.
“……아니, 방금 유리가 들어오지 않았으면 내가 이겼을 거야.”
“흐응, 무슨 근거로?”
“내 생각보다 네가 강하지 않았으니까.”
“……하, 꽤 재밌는 말을 하는구나.”
물론 뮤의 상태도 만만치 않았다. 아무렴 서로가 밉긴 하지만 다짜고짜 생사를 걸고 싸움을 벌일 정도까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진심이 가미된 싸움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던 까닭에, 어느 정도 전력을 다한 바 루비아와 뮤, 둘 다 적잖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
루비아의 발언은 상당히 거슬렸으나, 저리 말해봤자 루비아가 자신보다 약한 것은 오롯한 진실이었기에. 뮤는 별로 마음에 담아두지 않기로 했다. 저런 도발까지 일일이 받아줬다간 본인만 손해였다.
자신들이 벌인 광경을 가볍게 둘러본 뮤는 한숨을 내쉬며 본인의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싸움이 어느 정도 종식되었다고 판단한 유리가 빠르게 둘의 앞으로 달려왔다.
울퉁불퉁한 지면을 폴짝 뛰어넘으며, 굳은 표정으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뮤와 루비아를 향해 묻는다.
“이, 이게 다 뭐야아아아…… 왜, 왜 싸우고 있던 거야? 무슨 일이 있던 건데, 너희들? 응?”
아무래도 연무장의 상태를 보면 당분간 이 장소는 제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할 것 같았다.
능력 있는 에픽 클래스의 교수님들이 어떻게 잘 해주시겠지만, 학생들이 공유하는 공간을 이 정도까지 망가뜨린 것에 대한 책임 정도는 반드시 부담해야 할 것이었다.
라고는 하나, 유리에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 둘이 왜 싸웠느냐, 였다. 과정이나 결과를 보면 결코 단순한 대련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연무장을 이렇게까지 만들진 않았을 것이었다. 도를 넘지 않도록 적절한 선도 지켰겠지.
하지만 유리가 현장을 급습했을 때 뮤는 진검을 들고 있었다. 루비아 역시 사람을 쉽게 꿰뚫어 죽일 수 있을 법한 얼음창들을 여럿 소환한 상태였고.
같은 반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지 않고 자칫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싸움을 벌였단 사실에 유리는 정말 놀라고 있었다.
이 주변을 휩쓸었던 마력의 흐름이 뚝 멎는다. 잠잠해진 공간 속에서 루비아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냥, 잠깐 충돌이 있었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큰일은 아니야. 걱정하지 마.”
당연히 믿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큰일이 아냐?! 와, 완전 뒤집어졌잖아…… 것보다 빨리 치료해야 하는 거 아냐? 둘 다 괜찮아?”
유리가 호들갑을 떨며 이걸 어쩌지, 하는 표정으로 둘을 돌아보지만.
“……그래, 얘 말대로 별거 아니었어. 언젠가는 싸워야 했으니까 싸웠을 뿐이야.”
유리로선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함께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뮤는 군데군데가 찢어진 자켓을 벗은 뒤 한쪽 어깨에 걸쳤다.
“궁금한 거 있으면 얘한테 물어봐. 어차피 얘도 안 알려주겠지만.”
얼룩덜룩한 얼굴을 손등으로 닦는다. 연무장을 가로지른 뮤가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쿵, 하는 소리가 짧게 울린 뒤에.
“그, 그래서…… 진짜 무슨 일인데?”
“……”
“둘이 뭐 때문에 싸운 거야? 응? 안 그래도 요즘 그 녀석 때문에 분위기 뒤숭숭한데…… 설마 그거랑 관련 있던 거야? 저번에도 둘이서 따로 뭐 하는 것 같았고……”
“……”
무언가 대답을 바라는 듯 유리의 간절한 눈이 루비아를 향했지만, 루비아는 평소의 이미지답지 않게 미간을 찡그린 채 조용히 침묵할 뿐이었다.
#6
당연히, 소문이 안 날 리가 없었다.
1학년 전용 연무장이 대파(大?)되었다. 원상복구를 위해 3일 정도 임시 폐쇄될 예정이라고 한다.
거기서 발견된 격렬한 전투의 흔적.
일련의 사건이 벌어진 다음 날, 심상치 않은 모습의 뮤와 루비아를 목격한 학생들의 생각은 곧 한 군데로 모아질 수밖에 없었다.
둘이 싸웠구나.
그것도 엄청 거칠게.
그것이 사실로 판명 나는 데에는 그다지 어려운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당장 루비아에게 둘이 싸웠냐고 물어보면, 한눈에 봐도 진실 여부를 알 수 있는 반응이 돌아오는 것이다.
일단 하나 결론이 내려졌다면, 그를 뒤따르는 의문이 하나 더 추가되기 마련이다.
대체 무엇 때문에 싸웠는가.
그에 대해서, 에픽 클래스 1학년 14번 가브리엘 라마니카는 아주 간단한 가정을 내놓았다.
─척 보면 척이지. 치정 싸움이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나머지 결국 싸움까지 번지고 말았다는, 그런 단순한 얘기였다.
물론 그러한 말들을 남들에게 떠벌리고 다니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깊은 관찰과 통찰을 경유한 임시적인 가정에 불과할 뿐.
다만 가브리엘 본인은 아마 자신이 도출해낸 사건의 내막이 아마 구 할 정도의 신뢰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하여, 가브리엘이 거론한 남자란, 당연히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에지오 크라닐이었다.
입학 초기부터 꾸준하게 셋의 관계성을 의심해왔던 가브리엘은, 에지오가 며칠 전 의문의 실종 사건에 휘말리고 나서 둘의 반응을 쭉 지켜봤다.
도저히 뭐가 없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알드리에,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기숙사 로비 소파 등받이에 몸을 편히 기댄 가브리엘이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무엇을?”
항상 수면 아래 잠들어 있는 듯 우수에 젖은 청년의 눈꺼풀이 느릿하게 깜빡였다.
알드리에 캄비온.
제국 캄비온 백작가의 장남으로, 에픽 클래스 1학년 6번의 자리에 위치한 남학생이었다.
“어제 뮤랑 루비아가 대판 싸웠대잖냐. 나는 아무래도 걔네가 싸운 원인이 에지오한테 있다고 본다.”
“어째서지?”
“그 녀석이 실종된 이후로 둘 다 잔뜩 신경이 예민해져 있던 거, 너도 봤을 거 아냐? 원래도 같은 아카데미 출신인 에지오랑 접점이 많은 것 같았고……분명 그 셋 사이에 뭔가 있었을 거다. 그러다가 어제 그 녀석의 실종과 관련해서 의견 충돌이라도 났던 거겠지. 일주일 넘게 묵히고 있다가 이번에 제대로 터진 거고.”
의외로 가브리엘의 추리는 정확했다. 틀린 점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에지오 크라닐, 그 이름을 언급하는 가브리엘 본인의 머릿속도 의문으로 들어찼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닥 많지 않았다.
일련의 사건에 관한 모든 정보가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손을 놓아버렸다. 일단 교수의 말을 들어보면 숨이 붙어있다곤 했으니, 더 이상의 불필요한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가브리엘의 물음에 잠깐 침묵하던 알드리에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나는 별로… 관심이 없어.”
“그럴 줄 알았다.”
알드리에는 입학 초기부터 혼자 다니길 자처하던 녀석이었다. 아카데미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에 무심한 것처럼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묵묵히 제 할 일만 성실히 하는 느낌.
원체 생긴 것처럼 말수가 적고 혼자서 조용히 다니는 걸 선호하는 편이지만, 정작 가브리엘이 옆에서 이처럼 말을 걸어오면 적당히 대꾸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에지오한테도 알드리에를 소개시켜주려고 했었는데, 그 자식이 워낙 여자애들이랑 같이 있을 때가 많다 보니 타이밍을 좀 놓쳐버렸다.
‘갑자기 괘씸해지네.’
애먼 곳에서 종적을 감추고 실종된 것은 마냥 웃어넘길 일은 아니었으나, 기왕 살아서 돌아올 거라면 대충 반년쯤 뒤에 돌아와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가브리엘이었다……
“그건 그렇고.”
테이블 위 빈 캔을 우그러뜨리면서, 가브리엘은 무심히 툭 던지듯 말했다.
“공부는 좀 했냐, 너?”
“……공부?”
“어.”
싫은 표정을 짓던 가브리엘.
“좀 있으면 중간고사잖아.”
“……그렇지.”
그에 동의하듯 알드리에가 고개를 끄덕인다.
1학기의 첫 중간고사.
아직 시험 내용에 관해 들은 것은 없지만,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일정에 가브리엘은 약간의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머리 말고 몸이 고생하는 과목이라면 그나마 괜찮았을 텐데, 필수 교양 과목을 수강하고 있는 입장으로서 상당히 걱정되는 부분이 많았다.
“공부라……”
알드리에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시험은 그동안의 성실함을 평가받는 대목이지. 평소 하던 대로의 결과가 나올 거다.”
“그러니까, 넌 걱정 없다는 거지?”
“……”
알드리에는 물끄러미 가브리엘을 바라보았다.
“너는 아는 게 없구나. 가브리엘.”
“뭐 임마?”
여기서 갑자기 시비를 건다고? 가브리엘이 눈썹을 치켰다. 근데 맞는 말이라 거기서 더 화내진 못했다.
“필기 공부를 성실히 못했다고 낮은 점수를 받을까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나?”
“아니, 뭐. 그렇긴 한데……”
“내 생각에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어째서인가 하고 의문을 표하는 가브리엘에게, 알드리에는 차분히 말을 꺼냈다.
“외부에서 수강하는 교양 강의 등의 시험은 필기 항목도 분명 들어갈 터이나…… 에픽 클래스의 시험은 대부분 실기로 이루어진다.”
“어, 뭐야. 그랬어? 진짜?”
“그래. 그리고…… 이번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필기와 실기를 통한 고득점이 아니다. 물론 전체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배운 것을 가벼이 총결산하는 모의 실습의 평가 비중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겠지.”
“모의 실습……?”
처음 듣는 단어다.
물론 알드리에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가브리엘만 모르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우리들은 제국의 미래다. 제국은 우리가 에픽 클래스가 설립된 최초의 목적에 걸맞은 행보를 보이길 원하고 있어.”
에픽 클래스는 제국의 미래이자 과거 수많은 업적을 이룩했던 영웅의 후예들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은 대개 일정한 주기마다 벌어지던 전쟁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운 이들이다.
그 전쟁이란
당연하게도, 인마대전(人?大戰)을 의미한다.
“모의 실습은…… 교육생에게 마(?)를 처단할 능력이 충분한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단순한 마물 퇴치를 뜻하는 게 아니다. 재능을 십분 발휘한 전투뿐만이 아니라 고립된 상황에서의 생존 능력 등…… 아주 많은 분야의 능력이 세분화되어 5년의 교육 과정 동안 에픽 클래스 재학생들에게 예민한 잣대를 들이밀 것이었다.
“어… 그런 얘기는 못 들었는데?”
“그러니까 아는 게 없다고 했던 거다.”
“……”
가브리엘은 딱히 할 말이 없어졌다.
“그럼 이번 모의 실습은 정확히 뭘 하는 건데?”
“모른다.”
“……뭐?”
“평가를 담당한 교수가 알려주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어. 에픽 클래스의 모의 실습은 매년 당일 아침에 그 내용이 공개된다. 사전 준비를 할 틈은 주지 않겠다는 것이지.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 능력 역시 매우 중요한 평가 항목에 들어가니까.”
“이런……”
가브리엘은 낮게 탄식했다. 정확히 뭔지 감은 별로 안 잡히지만 그리 쉬울 것 같진 않았다. 미리 준비하고 안 하고의 차이도 정말 큰 법인데. 당일 아침에 부리나케 시험 내용을 공지받고서 바로 시험을 치른다니…… 필기가 아니란 점은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시험이라 언급했던 만큼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었다.
얼마 뒤면 치러질 모의 실습 얘기를 듣고 한 친구의 모습을 떠올린 가브리엘이 슬쩍 물음을 던졌다.
“혹시… 그거 참여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냐?”
“글쎄.”
그에 대해선 알드리에도 아는 바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참여하지 않으면 큰 불이익이 있겠지. 어쩌면 추후 졸업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이 생길 거라는 것.
“하긴, 그렇겠지……”
그 대답에 가브리엘은 잠시 중얼거렸다.
말을 멈추고 시선을 어딘가에 옮긴다. 가브리엘의 눈은 곧 기숙사 로비의 문 밖을 향했다.
어둑해진 묵빛의 하늘. 어느덧 길었던 하루가 끝을 알리고 있었다.
벌써 일주일도 넘게 시간이 흘렀지만, 오늘도 결국 에지오는 돌아오지 않았다.
‘……잘 살아 있겠지, 뭐.’
가벼이 상념을 털어낸 가브리엘은, 자기 전 인사의 의미로 알드리에의 어깨를 툭 건드린 뒤 몸을 일으켜 제 방으로 돌아갔다.
#7
‘……추워.’
눈을 뜨면, 아무것도 없는 새까만 방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