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날 차버린 소꿉친구와 전 여친이 같은 반이라 곤란하다-127화 (127/201)

〈 127화 〉 정리 (6)

* * *

#11

꽤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계약이 이행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시점으로부터 내가 제정신을 차릴 때까지, 대략 2주라는 기간이 지났다.

지금 당장 나를 어지럽게 만드는 것들은 둘째치고서라도,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소모해 버린 것이었다.

진짜로…

큰일이었다.

그 위대하신 대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안정을 취하고, 아카샤의 별을 떠나 수도에 위치한 게이트를 통과해서 마력 열차에 오른 뒤, 나는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성적…… 망했네.’

그렇다.

나는 여러 방면으로 좆된 것이었다.

테트라가 이르길, 무슨 조치를 취해놨다고 하긴 했는데. 정확히 뭔진 모른다. 예상컨대 저번처럼 출석만 인정하고 끝 아닐까.

과제라든지 그런 부차적인 것들에 전혀 참여를 못 했으니, 내 성적이 어떻게 나올진 안 봐도 뻔했다.

‘내 올 A+가……’

근심 섞인 한숨이 멈추질 않았다.

초장부터 거하게 말아먹었다. 이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어째 손해만 잔뜩 본 느낌이다. 인류의 정점에 오른 대마법사를 만날 수 있었단 점은 나름 업적이라 칭할 수 있겠지만……

‘피만 본 것 같네.’

주말 아침이라 은근히 북적거리는 열차 내부의 전경을 시야에 담으며, 멍하니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득과 실을 계산해본다.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

그토록 알고 싶었던 걸 끝끝내 알게 되었다.

……다만 누군가의 말처럼, 차라리 모르면 좋았을 것들이었다.

바로 어젯밤의 일처럼 생생히 떠오르는 기억 속의 장면들을, 눈을 감은 채 찬찬히 되짚어가다 보면, 결국 어느 한구석에서 목구멍이 턱 막혀 버리고 만다.

그랬던 거구나.

그래서, 그랬던 거였어.

그런데, 왜……

어느 행동은 이해할 수 있고, 어느 행동은 이해할 수 없다. 진실을 알고 나니 보이지 않았던 것도 보이게 되었다. 그것은 좋은 일이기도, 나쁜 일이기도 했다. 굳이 비율을 따진다면, 아마 후자에 가깝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재회한 이후로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을지 모른다. 감정이. 그도 그럴 게, 전부 내 인생에서 적잖은 비중을 차지했던 사람들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 둘의 모습을 떠올리면,

정말 무서울 정도로……

아무 생각이 없다.

‘……’

진짜.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내 심리는 굉장히 혼잡한 상태였다.

당장 기억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도 문제라면 문제인데,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워 생긴 성적의 문제도 있었고, 평소 끌어안고 있던 문제까지 전부 합쳐지니 이러다 스트레스로 길바닥에서 한번 쓰러지는 게 아닌지 스스로가 걱정될 지경이다.

그리고 하나 더.

테트라가 내게 사과하며 말하길,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기억들을 죄 봉하는 것에는 실패했다고 부언했다.

‘대체 뭐야, 이것들은……’

그러니까……

지금도 정신을 집중하면 온몸에서 찌릿하고 반응이 오는, 무척이나 길고 긴 고행길의 기억들 말이다.

그나마 한계까지 압축한 결과 남은 것이 일부라고 했었나. 그 일부만으로도 평범한 인간은 가볍게 미쳐버릴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야, 그렇겠지. 지금 나만 해도 당장 눈만 감으면 불구덩이 속에 있는 것만 같은 끔찍하디 생생한 감각이 엄습하는데, 이젠 잠자리에 편히 들기도 요원해진 것이었다. 어쩌면 오늘부터 매일 밤이 악몽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다만, 방지책으로 직접 겪었던 현실인지 꿈인지 내 의식이 분간할 수 없도록 영혼에 무언가 조작을 가했다고 듣긴 했다.

그래도 대부분은 얼마 못 가서 심신에 큰 장애가 생길 거라는데, 아무렴 나는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네 정신력과 영혼의 강도는 자기가 여태 봐온 인간들 중에서도 매우 강력한 편에 속한다고.

솔직히 나라는 인간을 너무 고평가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아직은 그럭저럭 버틸 만한 걸 보니 극복하는 것도 크게 어렵진 않을 듯했다.

나와 똑같은 고행길을 걸었던 선배 되는 입장에서 내어주는 조언도 몇 들었으니 아마 괜찮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차라리 마음 편했다.

억지로 머리를 텅 비운 채 철도 위를 굴러가는 열차에 몸을 맡기다 보니, 어느새 프론티어에 도착해 있었다.

한두 번 해봤던 것들인지라 능숙하게 검색대를 통과하고, 통로를 지나 도시 내부에 입성한 뒤 에픽 클래스로 향하는 트램에 탑승했다.

그렇게 도착한 에픽 클래스 기숙사 부지.

“어라?”

정거장 앞에서 마주친 사샤가, 멀뚱히 날 올려다보더니­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창백하게 질린 채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야, 야…… 잠깐만.”

“어, 어어, 어! 어어어어어어! 으어에으어아!”

그리고는.

내가 미처 말릴 새도 없이, 곧바로 뒤를 돌아 우다다다­ 달려가서 결국 큰 소리로 나의 복귀를 동네방네 알리기 시작했다.

“하아.”

뭔가 귀찮은 일들이 잔뜩 벌어질 듯한 예감에, 미간을 꾹꾹 누르며 천천히 안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12

“후배야아아아아아아!”

왠지 오랜만에 듣는 것 같은, 실제로 오랜만인 익숙한 목소리가 내 귓전을 쩌렁쩌렁히 때리고.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빠르게 내가 있는 곳을 정확히 알고 찾아와 몸을 던진 레이린 아이오나가, 전쟁통에 헤어진 가족이라도 재회한 듯 울음을 삼키며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살아있었구나…! 진짜 걱정했었다구…! 갑자기 실종이라니, 어디서 크게 다치고 온 건 아니지? 응?”

“네, 네. 보다시피 완전 멀쩡해요. 울음 뚝 그치시고. 보는 눈도 많은데……”

공터 한복판인지라 일단 떼어내려 했더니, 괴력까지 발휘해 가면서 필사적으로 날 놓지 않으려 하고 있다. 내 팔뚝을 비롯한 여기저기를 손으로 매만져 가면서 어디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다.

“안 그래도 너한테 선물 줄 거 다 완성한 참이었는데…… 걱정돼서 진짜… 나 어떻게 되나 싶었다니까…… 어디 봐봐. 진짜 다친 데 없어? 한쪽 팔이 의수라거나 그런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요.”

조금 사심이 담긴 것 같은 손길에 나는 멋쩍게 웃으며 손아귀에 힘을 주려 했다. 그러려던 찰나.

“히얏……!”

“선배님, 진정하세요. 진정. 에지오도 방금 돌아왔다구요. 무턱대고 그러시면 곤란해요.”

매우 차분한 손길로 레이린의 옆구리에 두 손을 얹고는, 그대로 쭉 끌어당긴 스텔라가 뒤편에 있었다.

나도 나름 힘을 세게 주긴 했는데, 꿈쩍도 않던 레이린이 이번에는 아주 깔끔하게 떨어져 나갔다.

뭐지, 스텔라.

은근 힘이 센 편이었나……?

“네가 뭔데 나와 에지오의 감동적인 재회를 방해하는 거야­!”

스텔라의 손에 잡혀서 버둥거리던 레이린이 뒤를 홱 돌아보곤 그리 소리쳤다.

그에 스텔라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에지오의 같은 반 친구 스텔라 데 펠트라인이라고 해요. 그런데, 선배님께서도 정말 에지오를 생각하신다면 지금은 잠시 안정을 취하게 해주는 것이 어떨까요? 아직 에지오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잖아요. 진짜 어딜 다쳤다면 방금 그 행동은 오히려 에지오한테 피해를 끼치는 일이 되었을 거예요.”

“그, 그건 그렇지만……”

것보다 스텔라 얘, 다른 사람 앞에선 수줍은 모습 잘만 보이더니… 지금은 또 안 그런다. 뭘까.

결국 레이린은 알았다는 말과 함께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지금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서 방금처럼 과격한 인사를 보내온 건 일단 레이린뿐이었다.

사샤 엘네의 광역 어그로가 성공적이었는지, 주말 점심에 기숙사 밖으로 나가지 않은 학생들은, 의문의 실종 사태로부터 성공적으로 복귀한 나를 보러 공터에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여어, 결국 또 살아돌아왔구만.”

개중에는 반갑게 손을 들며 다가오는 녹빛 머리의 남학생도 있었다. 나는 픽 웃으며 대충 가브리엘과 주먹을 가져다 맞대었다.

“그래. 또 왔다. 오랜만, 가브리엘.”

“새끼가 말이야. 자꾸 어딜 갔다 오는 거냐?”

“그냥 좀 일이 있었다. 자세하게 말해줄 순 없고.”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너무 많은 얘기를 늘어놔야 할 것 같았던 까닭에, 가능하면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비밀로 남기고자 했다.

가브리엘은 별 불만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살았으면 됐지 뭘. 전에는 삼 일 정도더니 이번엔 꽤 길어지길래 진짜 뒤진 거 아닌가 싶었다. 정말 실종돼서 죽은 거라면 북부의 예법을 따라서 장례를 치러줄까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그건 다음을 기약해야겠구만. 쩝.”

“다음은 개뿔이. 불길한 소리 하지 마라. 난 오래 살 거야.”

“그래, 그래. 아무튼 멀쩡한 거 봤으니 됐다. 난 이만 들어가 볼란다. 뭔 일이었는진 모르지만 몸조리 잘해라.”

형님들이 부르신다며 너털웃음을 짓던 가브리엘은, 곧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곤 3동 쪽으로 사라졌다.

내 모습을 그저 구경하기 위해 잠깐 나온 것 같은 선배들도 보였고, 저 주변에서 얼쩡거리다가 이쪽으로 몇 번 시선을 던지는 같은 반 학생들도 보였다. 그러던 중 내 눈이 가늘어졌다.

‘……쟤는 또 뭐가 불만인 걸까.’

이지적이고 전형적인 귀족상의 헥토르가 저기에 있었다. 그 옆에서 안경을 고쳐 쓰던 하티 유레시안도 보였다. 팔소매를 걷어 올린 건장한 근육질 체구의 자스칼 폰 매그나스도 보였고.

저 셋이서 자주 몰려다니는 광경을 여럿 보았다. 입학 이후 대략 한 달 정도가 지난 지금까지도 저러는 걸 보면, 계속 같이 다닐 생각인가 보다.

그들은 공터에 모인 사람들의 중심에 선 나를 잠깐 돌아보는 듯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관심을 끄곤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 그래서… 정말 무슨 일이었던 건가요? 아카데미에 연락 같은 것도 따로 없었던 걸 보면 진짜 큰일이 있었던 거 아닌가요…?”

어느샌가 수줍 모드로 돌아온 스텔라의 조심스러운 물음이었다. 이제 슬슬 무서워질라 그러네.

어찌 대답할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국 가브리엘한테 답했던 것과 비슷한 유형의 답변을 내놓았다.

“개인적인 일이 있었던 건 맞아. 그런데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다 끝나기 전까진 외부랑 전혀 연락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서……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 걱정하게 만들었다면 미안해, 다들.”

“아, 아녜요. 멀쩡히 돌아오신 것만으로도 안심인걸요...”

“맞아! 어제까지도 계속 걱정돼서 울고 그랬는데, 진짜 괜찮은 것 같아서 나도 안심이 되네. 정말 어디 다친 데 없는 거 맞지?”

“글쎄, 그렇다니까요.”

멋쩍게 웃으며 뒷목을 긁었다. 레이린은 날 매우 걱정한 눈치였다. 울었다고 해서 보니까 눈이 살짝 부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원래는 미안해야 할 게 아닌데 괜히 죄스러운 기분이 들고 그런다. 한편으론 날 진심으로 걱정해준 것 같아서 조금 고맙다고나 할까……

“돌아왔구나, 후배님. 우리도 걱정했었어.”

“그래! 네가 갑자기 없어져서 환영회 일정도 아직 못 잡았는데, 이젠 드디어 시작할 수 있겠네!”

“미안한데 시험기간이 코앞이야, 아루. 계획을 짜도 시험 다 끝나고 해야 하는 거 알지?”

“아, 안다구…… 으윽… 공부 싫은데에……”

“흠, 에지오.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을 해라. 에픽 클래스 수업에 있어서 2주의 공백은 꽤 크니까 말이지. 서클 활동은 원래도 자유지만 당분간은 우리도 시험에 집중할 예정이다. 그러니 넌 네가 자리를 비운 동안 밀린 일을 처리하는 데 집중하도록 해. 뭔가 공부 쪽에서 도움이 필요하다면 세이라한테 따로 찾아가는 것도 좋아.”

“감사합니다, 선배님들. 나중에 찾아뵐게요.”

이후로는 내가 가입한 「엑소더스」서클의 회장인 세이라와 아루, 네메시스 그리고 튀폰 등의 부원들도 찾아와서 내 무사를 확인하곤 돌아갔다.

‘쓰읍.’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깨달은 사실 하나.

시험이 코앞이다.

‘……이건 진짜 큰일인데?’

1학기 첫 중간고사가,

당장 다음 주 월요일부터 시작이었다.

뭘 어디서부터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기 그지없다. 전공, 교양 모두 내가 없어진 이후로부터 진도가 상당히 나갔을 텐데. 나만 홀로 뒤처져 있는 거 아닌가. 이거 지금부터 벼락치기 한다고 해서 고득점을 받을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그리 자신은 없는데.

것보다,

‘모의 실습도 있고……’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하긴 하다.

저건 딱히 준비한다고 해서 뭐가 되는 것도 아니긴 한데. 일단 여기서 배우는 것들과 아예 연관이 없진 않으니까. 기본적으로 검술과 마법을 훈련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인류의 주적을 상대하기 위해서인 만큼, 강의에서 듣고 배우는 것들은 전부 도움이 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뭐 어쩌겠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건 그렇고.

나는 공터에 모인 이들과 적당히 담소를 나누면서 그간 있었던 일들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주로 스텔라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같은 학년 소식은 아무래도 스텔라가 잘 알 테니까.

“……뭐? 왜? 뭐 때문에 둘이?”

그러던 어느 순간.

큼지막한 일들 중에서 귀로 듣고도 믿지 못할 이야기가 스텔라의 입에서 나오길래, 나는 무심코 미간을 좁히고 말았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뮤와 루비아가 싸웠다고 한다.

연무장을 반쯤 파괴하면서까지, 매우 격렬하게.

……왜?

“그게, 뮤는 당연히 말해주려 하지 않고. 루비아도…… 별로 말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어요. 둘 사이에 뭔가 충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되게 심한 싸움까지 번진 걸 보면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을 텐데……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요즘 분위기가 아직 뒤숭숭한 편이에요.”

“그렇구나……”

그런 일이 있었던 건가.

뭐지, 싶으면서도.

‘……’

그 둘의 이름이 스텔라의 이름에서 언급되는 순간부터, 입매가 묘하게 굳는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근데, 음… 뮤랑 루비아 둘 다 당… 신의 실종 이후로 많이 침울해진 것 같긴 했어요. 조금 신경도 날카로운 것 같았고요. 둘이서 당신의 실종과 관련해 뭔가를 알아보려고 하는 것 같았었는데…… 그 과정에서 무슨 충돌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에요.”

“따로 조사를 했단 말이야?”

“네, 네… 아마도 그럴 거예요. 오늘도 주말이라 일찍 외출을 했던 걸로 아는데…… 혹시 돌아오면서 마주치진 못하셨나요?”

“음, 그랬으면 같이 돌아왔겠지.”

“그, 그렇죠……”

항상 그들과 같이 다녔던 스텔라는 지금 혼자였다. 금발 꼬맹이도 안 보이고, 루비아도 안 보인다. 루비아가 없으니 아이리스도 없다. 다들 기숙사 밖으로 나간 걸까. 주말인 만큼 어디서 뭘 하든 본인의 자유겠지만, 음. 나를 찾으러 나갔다고 생각하니 오묘한 기분이 든다.

“얘기해줘서 고마워. 나는 일단 담임 교수님을 좀 봬야 할 것 같아서, 먼저 들어가 볼게.”

“으, 으응. 알았어요. 푹 쉬세요…”

“선배님도 이만 들어가시구요.”

“그럴 거긴 한데…… 이따 시간 되면 우리 서클룸에 찾아와? 너한테 줄 선물 다 완성됐단 말이야. 네가 입은 모습 꼭 보고 싶어.”

“알았어요. 나중에 찾아갈게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서 스텔라가 넌지시 물어온다.

“……선물이요?”

“아, 이 선배님이 패션 서클 회장이시거든. 그래서 나한테 무슨 옷을 하나 선물해주고 싶다고 하셔서.”

“그, 그렇군요. 네. 선물……”

스텔라가 무어라 중얼거리는 새, 그 옆에서 레이린이 문득 자신의 핑크빛 카디건 옷자락을 손으로 들어 보였다.

“지금 내가 입은 거랑 똑같이 생긴 옷이야! 색깔은 다르긴 한데, 소재도 똑같은 걸 써서 정말 색깔만 다른 거야.”

그때.

“……똑같은, 옷?”

“응.”

왜­? 하는 얼굴로 레이린은 스텔라를 갸웃거리며 돌아본다. 지금 공터에 있던 사람들은 거의 다 떠나간 지 오래였다. 이 자리에 남은 건 나와 스텔라, 그리고 레이린뿐이었다.

“그거 혹시……”

“응? 뭐가? 혹시 뭐?”

왠지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간 상태로, 레이린은 말을 흐리는 스텔라에게 연거푸 반문했다.

결국,

“아, 아무것도 아녜요.”

“그래, 아끼는 후배한테 선물 좀 할 수도 있지. 그치?”

“네, 네. 그렇죠……”

스텔라가 빙긋 웃었지만.

어쩐지, 눈꼬리가 그대로인 것 같았다.

#13

공터에서 스텔라와 레이린과 헤어진 뒤, 나는 1학년 담임 교수인 타일러 르베귄이 있을 교수연구실로 향했다.

‘……안에 계시겠지?’

오늘은 주말이다.

프론티어에서 근무하는 교수들도 기본적으로 자택은 있지만, 타일러의 경우는 교수연구실에서 숙식을 처리한다고 들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사전 연락 없이 찾아가는 건 민폐가 아닐까 싶지만, 테트라는 내게 돌아가자마자 복귀를 보고하는 것을 먼저 권했었다.

하여,

—똑, 똑.

“교수님, 계십니……”

교수연구실의 문을 두드린 순간.

────왜!

“!”

깜짝 놀라 문에서 급히 떨어졌다.

────왜 안 된다는 거냐고요!

문 안쪽에서,

누군가 고함을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전부 알고 있잖아요. 알고 있는데 대체 왜 알려줄 수 없다는 거냐고요!

────글쎄, 나는 알고 있다고 말한 적이 없다. 무엇을 착각하는 건지 몰라도 이 이상은 교권 침해다. 교권 침해. 이제 좀 내 연구실에서 나가주지 않겠나? 나의 황금 같은 주말을 이딴 식으로 낭비하면 굉장히 기분이 더럽단 말이지.

시니컬한 남자의 목소리.

직후, 분노로 격양된 음성이 이어진다.

────그게 지금 담임 교수가 할 법한 말과 행동이에요? 사람이 2주 넘게 실종이 됐는데… 그것도 자기가 맡고 있는 학생인데, 어떻게 된 건지 모른다고요? 조사할 생각도 없어요, 그럼? 살아는 있다면서요! 그걸 어떻게 안 건데요, 대체! 다 알고 있잖아!

────아, 모른다니까. 몰라. 살아 있으면 된 거 아닌가? 그리고 너, 사람이 적당히 눈치가 있어야지. 내가 지금 모른다고 하잖아. 지금 내가 아무리 월급을 루팡하고 있다곤 하지만, 기본적으로 교수의 자질이 부족한 놈팽이는 교수로 안 뽑는다 이 말이야. 이게 정말 뭔 뜻인지 모르겠나? 이건 이제 내 선에서 해결할 문제가……

────됐고, 빨리 알고 있는 거나 전부 알려줘요! 더 늦으면 에지오한테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벌컥!

왠지 심각한 상황으로 번질 것 같아서, 아니, 이미 상당히 말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도중이긴 한 것 같았지만.

일단 연구실에 난입했다.

“또 뭐……!”

험악하게 일그러진 인상과 함께,

귀찮은 듯 뒤를 확 돌아본다.

“안녕.”

나는 가능하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맞이해주고 싶었으나, 어쩐지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그저 문을 밀고 들어갈 뿐이었으며.

“……………어.”

뮤는 날 보더니 그대로 굳어 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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