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날 차버린 소꿉친구와 전 여친이 같은 반이라 곤란하다-135화 (135/201)

〈 135화 〉 시험 (4)

* * *

#9

오늘치 훈련을 모두 끝내고, 운동까지 마친 뒤에 기숙사로 돌아오니 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죽겠네……”

온몸이 저릿하다.

내일 새벽 일어났을 때가 두렵구만.

따뜻한 물로 몸까지 노곤하게 녹이고 난 뒤 침대 위에 안착하자, 축적된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와 사위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기분은 나쁘지 않다. 이대로 잠에 빠져들면 아주 꿀잠을 잘 것 같다고 할까. 어차피 이따 새벽에 또 일어나야 하긴 하지만, 그전까진 세상 모르게 꿈도 꾸지 않은 채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꿈 같은 건, 꾸지 않는 채로……

“……”

팔뚝부터 발끝까지 제발 휴식을 취하게 해달라며 비명을 지르는데, 내 머릿속은 도저히 수마에 잡아먹힐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떠오른다.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은 기억들이.

내 숨소리를 제외한 모든 소리가 완벽히 차단된 공간에서, 이렇게 정신을 놓고 있다 보면 어느샌가 나는 낭떠러지 끝에 서 있었다.

절벽. 그리고 바닥이 없는 나락.

간신히 뻗어 올린 팔.

그러나.

또, 떨어지고 만다.

“음.”

눈을 떴다.

이 정도로 몸을 혹사시켜도 쉽게 잠에 들지 못하는 건가.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서 좀 무리한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의도가 제대로 먹히지 않은 모양이다. 한마디로 실패다.

“후우.”

부스스한 머리칼을 정돈하며 침대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창문 밖은 어둡지만 밝아서, 달빛만이 창틀 너머에 내려앉고 있었다.

전신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기만 한데, 이 미친 듯한 피로감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당장은.

짜증이 치민다.

앞으로의 매일 밤은……

상당한 고역이 될 것 같다.

“……미치겠네.”

단순히 환상처럼 흐릿한 기억 때문만은 아니다. 이건 어떻게든 불길한 꿈 정도로 치부하고 넘길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게 언제쯤 가능해질진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내성이 생겨야 하는 문제니까.

“끄응.”

어깨 부근에서 잠깐 통증을 느낀 탓에 오른손으로 주무르고 있자니, 이불 위에 내려놓은 나의 왼손이 보였다.

아무 장신구도 없는 매끈한 손.

그중 약지를 하염없이 응시했다.

……원래라면, 아마 저기에 뭔가 끼어 있어야만 했을 텐데. 아닌가. 어차피 몸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사이즈도 안 맞게 되었을라나.

껴보지 않아서 모른다.

한 번도.

“하아.”

역시나, 마주친 적은 없다.

연무장에서 스텔라와 밤 늦게까지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며 검술에는 영 꽝인 공녀님을 가르치고 있을 때도,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은 내 활동 범위가 그리 넓지 않았으니 미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림자조차 밟지 못했던 건 오늘이 처음이다.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그쯤에서 피식 하는 웃음이 흘렀다.

“이제 와서 뭘.”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우습다.

그녀를 용서하겠다 했지만 더 이상 다가오는 것을 거부한 사람은 나고, 날 놓아달라는 말을 냉정히 해버린 것도 나였다.

물론 그건 절대 친구로서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긴 했으나…… 그녀에게는 얼마든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법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 일편단심으로 다가왔던 사람이다. 나에게 배신당했다는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겉과 속 모두 틀림없이 강인한 사람이었지만, 내겐 가끔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나는 싸늘하게 내쳤다.

내게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뮤만 더 힘들 테니까.

친구라면 얼마든지 되어줄 수 있는데.

물론.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겠지만.

“어렵네.”

정말로 어렵다.

곧 치러질 모의 실습 따위의 난이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렵다. 그까짓 시험보다, 이렇게 꼬이고 꼬인 인간관계가 더 더 곤란하다.

왜 하필 같은 아카데미에 들어와서. 내가 자원하긴 한 거지만. 자꾸 이상한 일에만 엮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다 때려칠까. 시발.

“아아아아……”

이마를 감싼 채 고개를 숙인다.

그립다. 시골.

부모님도 보고 싶고.

그동안 편지는 간간이 주고받았었는데…… 마지막으로 본 것도 이런 몸이 된 이후에 딱 한 번 고향에 들렀을 때니까.

어떻게 된 거냐며 호들갑을 떠시던 부모님에게는 그냥 3년 동안 무럭무럭 쑥쑥 컸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어차피 나한테 있었던 일은 아실 리가 없으니.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사건의 전말이나 구체적인 내용이나 극비로 치부되어 외부로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도 했고.

여하튼 그렇게 부모님을 뵈러 갔을 때.

어머니에게서 들은 말이 하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들, 루비아랑은 요즘 잘 지내니? 같이 내려오는 모습을 본 적이 없네. 저번에도 루비아 혼자 집에 내려왔었는데.

이전보다 훨씬 예뻐졌다며 극찬을 하셨지만, 정작 살은 좀 더 빠진 것 같다면서 밥 좀 두둑하게 먹고 다니라고 한 소리하셨다나.

오래 있지는 않고 3일 정도 머물다 돌아갔다고 한다. 처음 도착했을 땐 곧바로 자기들을 찾아와서 내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 물어봤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받은 편지 외엔 본가에 코빼기도 보인 적 없다고 하자 매우 실망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그걸 보곤 역시 아직도 사이가 좋구나­ 싶긴 했는데, 정말 그랬다면 왜 같이 내려오지 않고 여기서 널 찾는 걸까, 하는 물음을 던지시기도 했다.

그에 대해선 어떻게 잘 얼버무리는 것에 성공해 간신히 넘어갔지만은…… 솔직히 루비아 얘기를 들었을 땐 본능적인 불편함이 더 앞섰어서, 그렇게 큰 신경을 쓰지 않고 넘어갔었다.

곧 루비아도 졸업인데 어디 진학할 예정인지 등에 관해선 별 대답 없이 돌아갔었다고. 아무래도 프론티어 행은 좀 더 나중에 정해진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나랑 같이 입학할 수 있었겠지. 난 몰랐으니까.

아무튼.

—어, 어머…… 에지오 맞니? 아닌 것 같은데? 너 누구니?

—성장기를 겪었다기엔 너무 많이 컸는데……?

—아, 오랜만에 뵙습니다. 루비아 아버님, 어머님.

그 뒤로 언제나처럼 루비아의 가족들이 우리집으로 찾아와서는, 옛날 추억을 회상하며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지기도 했었다.

주로 내 외적 변화에 대한 얘기나, 루비아와 함께했던 아카데미 생활에 대한 얘기나, 내가 루비아를 따라가겠다고 생떼를 쓰며 겨우 학비를 얻어냈을 때의 일이나, 나와 루비아의 어린 시절에 대한 얘기나, 양쪽 부모님 공인하에 이루어졌던 부끄러운 약속의 내용이나, 각자의 연애 사정이라든지, 너희는 언제 사귈 거냐는, 아니, 이미 사귀고 있냐는 식의 질문이라든지……

이러저러 알맞게 대응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루비아랑 3년 동안 얼굴을 맞대고 대화한 횟수를 꼽으라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멀어진 사실을 언급해버리면, 이후 화기애애한 식탁의 분위기가 어떻게 될진 안 봐도 눈에 선했으니까.

루비아도 딱히 나와 틀어졌단 얘기를 하지 않은 듯하니, 부모님들도 그렇게 해맑은 얼굴로 나한테 물어올 수 있었겠지.

굳이 부모님을 걱정시켜드리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걸 거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님들은 무슨 죄라고.

뭐……

그 외에도 많은 일이 있긴 했지만.

루비아보다 오래 있진 않고 오히려 더 짧게, 이틀 정도 머무르다 요즘 많이 바쁘단 말과 함께 돌아갔다.

확실히 고향이 마음 편하고 좋긴 한데.

틈만 나면 루비아와의 추억과 향수가 날 자극하니까, 오히려 더 버티지 못할 지경이 되어서 되레 불편한 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이렇게 보면 고향행도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네.

결국 돌고 돌아 원점이다.

“……”

밤그늘에 잡아먹힌 창문을 돌아본다.

너머에는 2동 기숙사가 있다.

커튼이 쳐져 있는 방도 있고, 아직까지 불이 켜져 있는 방도 있다.

1층은 대부분 불이 꺼져 있었다.

테라스 밖으로 나온 학생들도 없다. 따라서, 나는 아무 말 없이 2동 기숙사의 1층을 쭉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방에 틀어박혀 있나……’

어젯밤,

나는 루비아와 얘기를 나눴다.

오직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 용서할 것도 없지만 그녀를 용서하고, 과거의 일들을 모조리 청산했으며, 그간 서로에게 못다 한 말들, 아카데미에서 쌓였던 오해와 진실 등…… 지금 처리하지 않으면 언제 다시 풀 수 있을지 모르는 매듭들을, 하나씩 천천히 풀어나갔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본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 한마디를 꺼내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널 좋아했어. 루비아.

확실하게.

보다 확실하게, 정리해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누구도 오해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내가 루비아에게 품었던 감정. 그 이후에 일어났던 일들. 뮤와 연인이 되었던 일. 그날에 현장에서 벌여졌던 일 등등…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당시에 무작위로 떠오른 기억들을 그대로 말에 옮긴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냥, 루비아에게 이러저러 하고 싶은 말이 좀 많았던 것 같다.

……어쩌면, 그게 내 쪽에서 루비아한테 털어놓는 마지막 진심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내 얘기는 꽤 길게 이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한 시간은 고사하고 두 시간도 넘었나.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뒤.

루비아는 그날 밤, 내게 한 가지의 고백을 했다.

정말, 정말……

무심코 어금니를 꽉 깨물 만큼.

최악의 고백이었고.

결국, 나는 차갑게 화를 내었다.

나와는 이제 평범한 친구로 지내줄 수 없겠다고 말하는 루비아의 눈물 어린 사과를, 도저히 가만 들어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생겨버렸다고.

감정이.

자신조차 모르겠는 이 불투명한 감정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자기도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분명 평범한 친구를 향한 것은 아닐 거라고.

네가 원하는 친구 관계는……

아마 이루어줄 수 없을 것 같다고.

고개 숙이며, 울면서 사과를 했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상황이 너무하지 않는가.

세상 모든 악의가 나를 향한 느낌이다.

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된 지금에서야……나는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들을 비로소 가질 수 있게 된 걸까.

“……진짜, 너무하네. 당신.”

내 고개가 향한 곳은 천장이었다.

어쩌면 그 너머.

아득한 구름 위의 누군가를, 나는 떠올렸다.

그것도 정말 잠깐이었다.

머리는 여전히 엉키고 꼬인 실타래처럼 복잡하다. 몸은 분명 피로했으나, 한계에 달해 쓰러질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럼 한계까지 몰아붙일 뿐이다. 그래야만 오늘 밤은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옷장에서 레이린 선배가 내게 선물해준 와인색 카디건을 몸에 걸친 뒤, 신발을 신고 기숙사 밖을 향해 터벅거리며 나섰다.

“후우……”

공터에서 구름에 가려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동그랗게 뜬 밤이었다.

#10

“이번 신입생들의 수준은 좀 어떻게 보십니까?”

“글쎄요…… 재작년 기수에 비하면 확실히 5번 위로는 수준이 엇비슷한 것 같긴 하지만, 그 아래로는 뭐…… 그렇게 큰 특색이 보이진 않는 것 같군요. 여전히 비범한 아이들이긴 하지만요.”

“그렇습니까?”

“뭐어,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요.”

“하긴 그렇지요. 가진 재능을 온전하게 개화할 수 있을지 없을지 판가름할 수 있을 만한 시간이 잘 없었으니까요.”

“그렇죠. 실습 결과를 기대할 뿐입니다.”

“달리 눈에 띄는 학생은 따로 없습니까? 이번 실습에서 뛰어난 성적을 기록할 것 같은 학생이라든지……”

“음…… 들려오는 평가와 보고를 봤을 때 그나마 주목할 만한 기대주가 아예 없진 않았습니다.”

“오, 그렇습니까? 그게 누구죠?”

“처음과 끝.”

“예?”

“첫 번째 번호와 마지막 번호가…… 제게는 조금 특별하게 보이는군요.”

“1번과 15번이라면…… 뮤와 에지오 크라닐 학생 말씀이시군요?”

“아, 그래요. 그런 이름이었지요.”

“1번의 경우는 확실히 재작년 수석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것 같긴 합니다만…… 15번은 어째서입니까? 분명, 신체적 조건은 훌륭하지만 입학 테스트 당시의 결과를 봤을 때, 가진 재능은 그렇게까지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구태여 특별한 점이라고 해봐야 그 미지의 능력 하나뿐……”

“그겁니다.”

“예?”

“바로 그 특별함 하나가, 15번 학생을 아주 흥미로운 존재로 만들어줍니다. 나머지 무색함을 전부 제외하고서도 말이죠.”

“……흐음, 저는 잘 모르겠군요.”

“하하, 단지 제 개인적인 소견일 뿐입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누구의 말씀도 아닌 네비로스 님의 말씀인 만큼, 저도 뭔가 그 학생을 괜히 눈여겨보게 될 것만 같군요. 하하.”

“제가 뭐라고 그러십니까. 전 일개 마법사일 뿐입니다.”

“무엇이긴요, 이번 실습에서 사용될 장소를 흔쾌히 제작해주신 위대한 대마법사이시죠. 전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그런 넓은 공간을 그렇게 짧은 시간만에 만드실 수 있는 건지……”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답니다.”

“농담도 참……”

“하하…… 그보다,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말입니다.”

“아, 예. 얼마든지.”

“총괄 감독은 누가 맡기로 했답니까?”

“아, 그건 제가 맡기로 했습니다. 물론 네비로스님께서 유사시에 대비한 안전 장치 등은 전부 준비해주신 덕분에 수고가 덜했습니다. 대부분 진짜 마수들이긴 하지만, 학생들의 목숨이 위험할 것 같으면 강제로 밖에 내보내지니까요. 그렇게 되면 탈락 처리가 되고 탈락 시점을 기준으로 점수를 합산…… 딱히 걱정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물론 뛰어난 학생들인 만큼 하급 마수 따위에 죽을 일은 절대로 없겠지만, 안전 방비는 되도록 확실하게 하는 것이 좋으니까요.”

“응당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건 그렇고, 총괄 감독이 당신이라……”

“실습 감독을 맡는 건 처음이긴 하지만, 어차피 감독이 할 일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내부 상황도 밖에서 지켜볼 테고요. 제가 할 일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 못 미더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뇨, 딱히 그런 게 아니라.”

“예? 그럼……?”

“감독은 당신 한 명뿐인 겁니까?”

“예, 일단은……”

“이름뿐이라도 실습 감독으로서의 권한은 가지고 계시고요.”

“그, 그렇죠.”

“흐음, 좋아요. 딱 좋네요.”

“예? 무슨……”

────푸욱.

“꺽, 끄윽, 켁……”

“아아, 사방에 피 튀기지 마세요. 닦는 거 은근 귀찮으니까. 몸에 힘 빼고, 그렇지. 그렇지…… 아주 잘 했어요.”

“꺼윽, 꺽…..”

“사일런스(Silence).”

“……”

“자, 그럼……”

스윽.

“일어나라.”

「……그으아아아.」

“흐음, 구멍만 어떻게 잘 메꾸면 되겠군요. 잠깐 가슴에 묻은 것만 닦고…… 머리도 좀 예쁘게 정리하고. 좋아요, 이제 말끔하네요. 완전히 똑같아요. 그럼, 이제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아시겠죠? 준비하시고, 레디. 큐.”

「예, 네비로스 님.」

“이제 가보세요. 할 일 하셔야죠.”

「알겠습니다. 좋은 밤 되시길.」

“인사도 할 줄 알고, 정말 착한 시체네요.”

「감사합니다. 네비로스 님.」

“그래요, 그래요. 이제 정말 가보세요. 같은 공간에 시체가 있으면 제 기분이 매우 더러워지거든요.”

「예, 알겠습니다.」

───끼이이익……

“자, 그럼……”

네비로스는 핏방울 묻은 와인잔을 흔들었다.

홀짝.

맛이 아주 좋았다.

입꼬리를 귀까지 끌어올려, 네비로스는 웃는다.

“그렇게까지 주목도 받지 않는 모양이니, 한 명쯤은 괜찮지 않을까요? 후후……”

달이 동그랗게 떠오른 밤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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