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1학기 모의 실습_네비로스의 미궁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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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일반적인 마물의 종류 정도야, 책에서 본 적 있다. 아카데미 교육 과정에서 배우기도 한다. 고블린(Goblin)이나 구울(Ghoul) 같은 하급 마물들이 대표적인 예시다.
다만 그 많고 많은 하급 마물 카테고리에서 구태여 왜 그들을 예시로 들었냐 하면은.
─ 그으으아아아!
“미, 미친, 존나 징그러워!”
구울을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홀쭉 들어간 배는 움푹 꺼져서 안쪽의 갈비뼈 라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썩은 회백색의 살점이 팔다리 여기저기에 덜렁거리며 간신히 붙어 있는 수준이고, 그마저도 격한 몸짓에 실시간으로 투두둑 떨어져 나간다.
뭉개진 살갗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온 부식된 뼛조각들 하며, 누군가 억지로 잡아 뜯기라도 한 듯 벌어질 수 없는 각도로 벌어진 턱.
쩍 벌어진 입에서 불길한 색깔의 녹빛 침이 줄줄 흐르고 있다. 살아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게걸스레 먹어 치우려 하는 마물이 내 쪽에서 팔만 뻗으면 닿을 지근거리에 있었다.
─ 그으으아아!
벽에서 꾸물거리며 툭 튀어나오더니,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나를 보자마자 무섭게 달려든다.
미쳤다. 이건 정말로 미쳤다.
생리적 혐오감에 참을 수 없는 구역질이 난다.
“으으윽!”
후각을 마비시킬 정도의 지독한 악취. 시체 썩는 냄새가 대체 뭔지 평생 기억하게 되겠군. 반사적으로 미간을 구긴 채 입을 틀어막았다.
─ 타악!
속이 역류하는 듯 치솟는 구역질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주위를 빠르게 둘러본 다음 급히 뒤를 향해 도약했다.
─ 후웅!
구울이 애꿎은 허공을 할퀸다.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다.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다음 순간 구울의 목이 두두둑 꺾여 나를 본다.
뻥 뚫린 공허한 눈구멍을 마주하며 이를 갈았다.
……도망쳐야 하나?
아니.
그건 좋지 못한 선택이다.
당장 구울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도 마치 공명하듯 괴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놔두면 괜히 주변의 괴물을 더 끌고 오게 될 거다. 빠르게 처리하고 미궁의 중심부를 향해 계속 전진하는 편이 좋다.
추적을 따돌릴 수만 있다면야 좋겠지만, 방금처럼 외벽에서 새로운 마물이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그만한 위기 상황이 또 없다.
그럼 저 마물을 죽여야 한다는 건데.
약점,
구울의 약점이 뭐였지?
─ 그으으아아아!
구울이 다시 한번 내게 달려든다.
역시나 징그럽고, 소름 끼치고, 웬만해서는 저 썩은 몸체에 닿고 싶지도 않았지만, 지금 그런 사정 하나하나 따질 때가 아니다.
외벽 사이의 거리는 꽤 넓다. 성인 남성 네 명 정도가 어깨를 맞대고 있어도 될 만큼.
거리를 눈대중으로 재면서 고개를 홱 들었다.
─ 츠즈즈즈!
발을 뒤로 끌고.
구울의 박자에 맞추어 몸을 살짝 비틀었다.
직후.
─ 뻐억!
─ 그에엙!
회심의 돌려차기가 구울의 옆구리에 작렬하고, 내 발등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물컹한 감각이 남았다.
“……이런.”
아예 상체와 하체의 연결부를 작살낼 생각으로 힘껏 찼는데, 구울은 딱딱한 벽면에 부딪히곤 비명을 토해내더니, 전혀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는 듯 삐걱거리며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다.
충분히 예상한 일이다. 타격으로 조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그 틈에 재빨리 자세를 다잡고, 배낭을 살포시 바닥에 내려놓은 채 조용히 주문을 외었다.
“플레어(Flare).”
당장 무기가 없어서 약점을 찌를 순 없지만.
아무렴 죽은 시체인 만큼,
화장(火?)이 먹히는지 한번 보자고.
─ 화르르륵!
쭉 펼친 내 손바닥에서 불꽃이 치솟는다.
순식간에 주변이 환해진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구울의 머리에 겨눈 채 재차 입술을 달싹인다.
“굽이치는 바람 · 모여들어 가르는 칼날이 되리── 윈드 커터(WindCutter).”
─ 후우우웅!
소슬한 바람이 분다.
직후, 한 점으로 모여든다.
그것은 곧 보이지 않는 바람의 칼날이 되었다.
왼쪽 손바닥에는 시뻘건 불꽃을.
오른쪽 손바닥에는 바람의 칼날을.
모든 동작은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활시위를 당기듯 일직선으로 팔을 배치한 뒤,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강하게 응집된 바람의 세기를 느끼며.
─ 그으으으아아아아!
두 마법을 융합한다.
“플레임 커터(FlameCutter)!”
─ 파앙!
허공이 잠시 일그러졌다.
불길은 꺼지지 않고 바람을 휘감는다.
성공적으로 속성 변화를 일으킨 마법이 더욱 강력한 위력을 품는다.
스텔라와 시험 준비를 할 때 이미 숱하게 연습해본 마법이다. 그러니 실패할 리가 없었다. 긴박한 상황 탓에 살짝 집중력이 흐트러지긴 했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였을 뿐이다.
─ 쐐애애애액!
불꽃을 머금은 칼날이 그대로 직진했다.
공기를 가르고,
그 앞의 것도.
─ 그으으윽──?!
스걱──
타오르는 칼날이 구울의 목을 깔끔히 절단했다. 구울은 내게 달려들던 자세 그대로 부자연스레 굳어 버렸다.
─ 그… 으으어어어……
잠시 뒤.
퍽.
데구르르…
구울의 절단된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 콰아아앙!
일직선으로 나아간 칼날은 구울의 머리통을 떨군 뒤에도 멈추지 않고 쭉 직진하여 반대쪽 외벽에 부딪혔다.
폭음과 함께 약간의 그을음을 남겼을 뿐.
미궁의 통로를 잠시 밝혔던 불길은 그렇게 사라지고, 남은 건 절단과 동시에 절단면이 지져진 구울의 몸과 머리뿐이었다.
“후우, 후우……”
머리를 잃은 구울의 몸이 허물없이 고꾸라진다.
털썩─.
헤어진 머리와 몸이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바닥에 내려놓았던 배낭을 도로 챙기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해치웠나?”
정말로 죽은 건가?
정말로?
더 이상 꿈틀거리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발로 세게 밟아보거나 쿡쿡 찔러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숨겨진 약점이야 뭐든 간에 머리를 자르면 대부분의 마물은 죽는다. 구울도 마찬가지였다.
현실에서 마물을 상대하는 게 처음이라 여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만, 생각보다 의외로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앞으로 마력이 받쳐주는 한, 구울 한 마리 정도는 그렇게 큰 부담이 될 것 같진 않았다.
“……후우.”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한숨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단 하나 해결했지만, 다음에 또 뭐가 나올지 모른다.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어두컴컴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통로에 더 머물러 있는 건 질색이다. 악취도 심각하고. 조금 허기가 지는 도중이었는데 덕분에 식량을 아낄 수 있게 됐다.
배낭에서 나침반을 꺼낸 뒤, 여태 내가 지나온 길과 대조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기 위해 잠시 고민을 했다.
간단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종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지급받은 배낭에 들어 있는 거라곤 나침반과 로프, 힐링 포션, 횃불 그리고 식량과 식수뿐이다. 나침반을 제외하면 나머지 물건은 미궁 돌파에 써먹을 데가 딱히 없다.
로프는 대체 왜 준 거야? 외벽 등반하라고? 그러기엔 말도 안 되게 높은데?
모르겠다.
딱 하나 알 수 있는 건, 이 미궁의 생김새가 곡선이 가미된 형태라는 것이다.
외벽을 따라 걷다 보면 길이 묘하게 휘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내가 동굴에서 빠져 나왔을 때부터 그랬으니, 이 미궁은 아마 원 형태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실습에 참여하는 1학년 학생은 총 열다섯 명.
둥그런 원 형태의 미궁에서 각 스타트 지점 간의 거리를 균일하게 나누어 설정했다면, 시작의 동굴을 빠져 나왔을 때를 기준으로 직선상의 중간에 원의 중심이 위치해 있을 거다.
거기가 바로 미궁의 최중심부일 것이다.
아마도 ‘제단’이 존재하고 있을 장소.
어디까지나 내 가설이 옳다는 가정하에, 말이지. 이런저런 변수가 꽤 많으니까. 아직 확신하긴 이르긴 해도…… 그것 말고는 당장 방법이 없다.
일단 방침을 그렇게 정해볼까.
‘북서부인가…… 음?’
나침반을 보면서 혹시나 뭐가 또 튀어나오진 않을까 조심하며 걸음을 옮기는 새, 별안간 소리가 들려왔다.
─ 꺄아아아악……
목소리의 크기는 아주 작다. 따라서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멀리서 작은 비명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함정에 당했는지, 마물에 당했는지 알 수 없다. 아니면 단순히 나처럼 마물을 마주하고 놀라 자빠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비명 소리를 듣고 이 공간에 나 혼자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어서, 무심코 안심하는 내가 있었다.
동시에 불안하기도 하다. 저건 누구의 목소리일까.
이 역시 알 수 없다.
아니, 더 이상 신경 쓸 수가 없다.
“아.”
의문의 소리에 정신이 팔려서.
함정을 밟았다.
─ 쐐애애액!
화살이 날아오는가 싶더니, 내 종아리에 박히기 전에 다급히 몸을 날렸다. 단단한 외벽에 등허리를 강하게 부딪혔다.
컥, 하는 신음이 새어 나왔지만.
─ 쐐액! 쐐액!
화살은 한 발이 아니었다. 시간차를 두고 다시금 쇄도하는 두 발의 화살이 각각 내 팔과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급하게 허리를 아래로 숙였다. 바닥에 거의 몸을 눕힌 채로 가쁜 숨을 가다듬었다.
뭐 어떻게 된 게 진정할 틈이 없네. 미치겠다. 이번에는 시간차 함정인 거냐고.
그러다 어깨 부근이 불에 데인 것처럼 뜨거워 그쪽을 살펴보니, 옷자락이 살짝 찢겨 있었다.
아프다. 아프지만 참을 만했다. 큰 상처도 아니었고. 그래서 팔찌에 내장된 마법도 발동되지 않은 거겠지.
다 괜찮은데, 딱 한 가지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이 모든 게 현실이라는 거. 화살촉이 내 목덜미에 처박히는 순간, 전부 끝이라는 거.
그래도 나름 다행인 게, 바닥에서 송곳이 솟구치는 식의 함정이었다면 꼼짝없이 꼬챙이 신세가 되었을 거다.
다행…… 이지?
“후우, 일단 일어나야……”
바로 그때였다.
─ 파아아앗!
몸을 숙이면서 손바닥으로 짚은 바닥이.
더없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니 시발.
“뭐 이딴──”
─ 달그락달그락.
─ 그으으아아아.
마물이 소환진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하, 하하, 하……”
다음으로 나타난 해골이 서슬퍼런 곡도를, 구울이 나무로 된 방패를 들고 있는 것을 확인하곤, 반쯤 정신을 놓았다.
긍정적 사고는 사람을 즐겁게 해준다.
“하하하하하──!”
─ 그르르륵…?
─ 달그락달그락.
내가 미친놈처럼 크게 웃어 젖히자, 지성이 없을 터인 마물들은 움찔거리며 순간적으로 나한테 다가오지 못하는 듯싶었다.
뭐……
출제자의 의도는 둘째 치고.
안 그래도 무기가 없어서 곤란했는데.
잘 됐네.
“들어와, 이 새끼들아.”
─ 우우우웅!
싸늘히 눈을 굳히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8
“저 1학년 학생은 꽤 능숙한 몸놀림을 보이는군요. 마물을 마주해도 패닉에 빠지지 않고 적절하게 잘 대응했어요. 함정을 신중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파훼하기도 하고.”
“확실히. 도망치기 바쁜 학생도 있는데 말이오.”
허공에 투영된 스크린에서는 1학년 15번 에지오 크라닐의 모습과 1학년 7번 사샤 엘네의 모습이 차례로 띄워지고 있었다.
“한데…… 전체적으로 우수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저 학생이 가진 특별함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군요. 저 정도는 일반 클래스의 1학년 상위 학생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어째서 에픽 클래스에 선별될 수 있던 건지, 저는 그게 좀 궁금하네요.”
“불평 말고 좀 더 지켜보시오. 이제 시작일 뿐이니. 프론티어의 결정이니만큼 분명 차별화된 무언가가 있을 것이오.”
프론티어 본부 상층. 실습을 참관하는 귀족들이 모인 장소에서, 에지오 크라닐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평범했다.
우수하다.
하나, 단지 그뿐이다.
그렇게 특출나지도 않고, 못나지도 않다.
그에 반해……
“저 학생은 정말로 놀랍습니다.”
“내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지. 참으로 범상치 않은 실력이오. 도저히 1학년…… 아니, 원체 올해 들어 중등부 3학년이어야 했을 학생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군.”
“이번 1학년 수석은 저 아이 같군요.”
“저 또한 동의합니다.”
귀족들의 무수한 찬사가 이어지고.
─ 그으으으아아!
─ 콰앙! 콰아앙!
─ 푸욱! 꽈르르릉!
말 그대로 인간 전차처럼 무섭게 미궁을 돌파하는 소녀의 모습이 스크린 속에 담겼다.
걸음걸이는 시작부터 거침이 없다. 배낭 속에서 수통을 꺼내어 콸콸 들이마시고, 입가를 닦은 뒤 동굴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함정이 발동되어 화살이 날아오면 고개만 살짝 까딱여 피하거나, 손으로 콱 잡아내기도 했다. 그리고는 우지끈, 부러뜨린다.
그러고 몇 발 정도는 주워서 무기로 사용한다. 마물의 목과 심장에 화살촉을 처박고 피를 분수처럼 뿜게 한다.
구울이고 스켈레톤이고, 가차없이 머리통째로 폭발하거나 산산이 조각나 버린다.
소녀── 뮤의 앞길을 막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뮤의 발걸음이 뒤를 향할 때는 오직 벽으로 앞길이 막혔을 때밖에 없었다.
“조금…… 두렵기도 하군요. 저렇게나 아름다운 학생일진대, 마치 폭주하는 한 마리 맹수를 보는 듯한 기분입니다.”
말하자면, 피로 물든 꽃이었다.
어느 귀족의 중얼거림에 호응하는 이는 없었지만, 속으로는 다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뮤의 출중한 외모에 감탄할 시간은 없었다. 화면 너머로 경이로운 무력을 보여주는 뮤의 모습을 구경하며 할 말을 잃을 뿐.
그러던 어느 순간.
“네비로스 공.”
그 나지막한 부름에.
와인잔을 홀짝이던 장발의 남성이 고개를 돌린다.
“이 실습, 정말 괜찮은 게 맞는가?”
아르티나 국왕이 가리킨 곳에는, 팔목에 화살이 박힌 채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학생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1학년 10번 하티 유레시안. 왜소한 체구의 남학생이 바닥에 엎어진 채 부들거리며 배낭을 뒤지고 있다. 사전에 지급받은 힐링 포션을 꺼내려는 듯 무척이나 처절한 움직임이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실전 같은 실습이라곤 하나, 수위가 너무 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 비록 성인에 가까우나 아직 어린 학생들이라네. 프론티어의 안목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만, 만에 하나 실수라도 벌어지게 된다면……”
“송구스럽지만 지난 에픽 클래스의 실습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전하.”
“……”
그걸 속세에서 벗어나 있던 자네가 어떻게 아는가, 라는 반박을 아르티나 국왕은 목구멍 너머로 삼켜야만 했다.
“따님을 걱정하시는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혹시나 크게 다칠까 두려운 마음이시겠지요.”
“크흠. 그거야 아비 된 입장에선……”
“그러나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어째서인가?”
네비로스의 말에는 다른 귀족들도 귀를 기울였다.
감독관인 로베르는 이 자리에 없었다. 대신 미궁을 만들어 낸 네비로스가 참관인 자격으로 귀족들의 무리에 끼어 있었다.
네비로스의 존재는 당연히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재야의 대마법사. 마도의 정점에 도달한 대마법사들 중 하나. 속세를 벗어나 신비의 베일 속에 감싸여 있던 공간 계열 마법의 대가.
자세한 정체는 물론이고 외견이 어떻게 생겼는지마저도 불분명했던 네비로스가, 그들의 눈앞에 실물로 있는 것이었다.
네비로스는 검붉은 액체가 담긴 와인잔을 가볍게 찰랑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저 미궁의 배경은 허상세계(??世?)입니다. 모든 게 허구인 세계이지요. 때문에, 저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현실이 아닙니다. 단적으로 말해 미궁 속에서 팔이 잘리든, 목이 잘리든. 실습이 끝나는 순간 모두 원래대로 돌아올 겁니다.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이지요. 그렇게 설계되었으니 너무 염려들 마십시오.”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프론티어의 교수진들이 사전 검증은 끝낸 지 오래다. 미궁 속에서 입은 상처들의 경우 바깥으로 나오면 모두 원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자리에 있는 귀족들도 그 사실을 사전에 익히 들어 알고 있을 터. 다만 아르티나 국왕은 네비로스에게 재차 확답을 듣길 원했다.
“글쎄요.”
“무어라?”
네비로스는 새빨간 와인으로 입술을 적셨다.
“제 마법은 완벽합니다. 저는 그것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의심을 하시겠다면 마음대로 하십시오. 다만, 지금 이 자리에 위치한 저는 아직도 저 미궁의 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걸…… 부디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하.”
“……네비로스 공. 지금 학생들의 귀한 목숨을 가지고 농담을 하겠다는 건가?”
“송구스럽지만, 농담이 아닙니다. 저는 제 마법에 아주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서요. 전하께서 이미 확인한 사실임에도 굳이 의심을 하시겠다면, 저는 조금… 아주 조금, 기분이 나빠질 것 같아서 말입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이해가 되셨습니까?”
“……”
앉은 자리에서 벌컥 일어날 뻔한 아르티나 국왕은, 웃는 얼굴에서 표정 변화 없이 와인잔을 홀짝이는 네비로스를 노려보다, 결국 한숨과 함께 다시 자리에 착석했다.
그리고.
─ 끼야아아악!?
“……”
“……”
염동력을 이용해 어찌저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제 딸의 가련한 모습을 눈에 담으며, 아르티나 국왕과 왕후는 제발 자신들의 가슴이 철렁거릴 일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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