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날 차버린 소꿉친구와 전 여친이 같은 반이라 곤란하다-153화 (153/201)

〈 153화 〉 1학기 모의 실습_네비로스의 미궁 (12)

* * *

#22

─ 끄이에에에엑!

찌르고.

─ 캬아아아아……

베고.

─ 그륵, 그르르륵. 그윽……

조르고, 부숴서.

─ 끼에에에엑……

“……”

끝끝내, 주위를 침묵시킨다.

언제 전투가 있었냐는 듯 소름 끼치도록 조용해진 통로의 한복판에서, 더 깊숙한 어둠 너머의 회랑을 가만 응시했다.

짙은 흑발의 소녀── 뮤가 길목을 지날 때마다, 고요한 비명이 메아리쳤다. 손아귀에 쥔 무기의 종류도 매번 바뀌었다. 필요 이상으로 힘을 준 탓에 무기는 손쉽게 파괴되기 십상이었다.

결국 최후에 남은 것은 굳은 핏물과 썩은 살점 따위가 덕지덕지 달라붙은 철제 메이스였다.

뮤는 이 흉악한 무기가 꽤 마음에 들었다.

달리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냥 거력을 담아 휘두르면 되었으니까. 그럼 끝이었다. 너무나 쉽고 간단한 방법이지 않은가. 무거운 메이스를 휘둘러 마물의 머리를 으깰 때마다 손과 팔을 타고 전해지는 저릿함도 상당히 기분 좋았다.

물론.

살육을 즐기는 건 아니지만, 그냥, 화가 나서.

이 고요한 분노를 어디 토해낼 길이 없어서.

괜한 화풀이를 마물들에게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답지 않았어.’

뮤는 스스로 인정했다.

자신답지 않았음을.

필요치 않은 격정에 정신이 팔려 그만 본래의 목적도 잊고 마물들을 죄 척살하러 다닐 뻔했다.

겨우 제정신을 다잡긴 했지만 감정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일련의 찝찝함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쓸데없는 얘기를 하면 안 됐는데.’

엉성한 도발에 보기 좋게 넘어가 버렸다.

지금 당장은 머리를 텅 비운 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었는데, 그 가증스러운 핑크 머리가 억지로 되새김질을 하게 했다. 정말이지 최악의 기분이었다. 남에게 감정을 조종당한 거나 마찬가지였고, 거기다 쓸데없는 추억까지 떠올리게 만들어선……

‘이건 아닌가.’

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표현이 조금 심했지 않는가. 조금 더 순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건 선을 넘는 생각……

……선을 넘어?

누구에게?

그런 추억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나 자신에게?

‘……바보 같긴.’

어차피 상대도 별 보잘것없는 한때의 기억으로 남길 뿐이라면, 전부 잊어버리고 없던 일로 만들고 싶을 정도라면, 자기 혼자 절대 지울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인 것처럼 꼭 끌어안고 있어 봐야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 의미 따위 어디에도 없었다……

입술을 짓깨물며 한숨을 돌린 뮤가, 불현듯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상념들을 싹 밀어 버린 채 정면을 노려보았다.

끝도 없는 암흑이 이어지고 있었다.

살짝 시선을 위로 올리면, 원래는 뻥 뚫려 저 높은 하늘을 드러내고 있었으나,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도록 꽉 막힌 천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내려 앞을 바라본다.

어디로 향하는 건지 모를 암흑의 회랑. 정말 띄엄띄엄한 간격으로 양쪽 외벽에 횃불이 달려 희미한 빛을 비춰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런 장소는 본 적이 없었다.

함정 같은 것도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벌써 얼만큼이나 걸어왔는지도 모를 만큼 무아에 빠져 마물을 척살하고 다닌 결과가, 자기 눈앞에 있는 것이겠지.

‘도착한 건가…’

드넓은 미궁의 끝.

최중심부.

그곳으로 향하는 입구에, 마침내 뮤가 도달했다.

#23

체력을 비축하고 준비에 만전을 가한 뒤 회랑 속으로 향하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닐지 모른다.

아직까지 마물의 기척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갑작스레 툭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뮤는 거침없이 곧바로 걸음을 내디뎠다.

저벅…

“……”

언뜻 귀를 기울이면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서늘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있다.

천장이 꽉 막혀 버리니 주변 일대가 정말로 새까맣기 그지없었다. 횃불의 희끄무레한 빛이 닿지 않는 공간의 경우, 눈을 뜬 것과 감고 있는 것의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음산한 소음은 덤이었다. 이 같은 환경에 면역이 없는 사람이라면 지레 겁을 먹고 꽁무니 빠지게 도망갔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뮤는 주저하지 않았다. 올 테면 와보라는 듯, 길고 긴 회랑을 묵묵히 걷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빛이 보였다.

횃불의 불꽃이 아니라,

조금 더 푸르스름한 빛이.

‘……끝인가?’

진즉 무언가 자신의 앞길을 막을 때를 대비하여 메이스의 손잡이를 꾹 쥐고 있었는데, 결국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뮤는 고개를 돌려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끝도 없이 이어진 어둠이 보였다. 결코 짧진 않은 길이의 통로였다. 단순히 긴장을 주기 위한 목적이었던가. 체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단 점에선 나쁘지 않았으나, 조금은 김이 새는 것도 사실이었다.

다시 앞을 바라보며 회랑 끝으로 쭉 나아가자, 천장이 뻥 뚫린 원형의 공간이 뮤의 눈앞에 펼쳐졌다.

두 개의 달은 붉은 빛을 머금은 채 여전히 잿빛 구름에 가려져 떠 있었다.

그 아래 별다른 장식도 없고, 특별한 문양 따위도 없이 울퉁불퉁한 돌바닥과 외벽이 전부인 공간 속에 한 걸음 내디딘다.

주변을 둘러본다.

방금 들어온 통로를 제외하면 밖으로 향하는 다른 입구 같은 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넓은 크기도 아니었다. 여기서 마물과 격렬한 전투를 벌이기란 상당히 요원해 보였다.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장소는 아닌 것 같고, 대체 무엇을 위해 안배된 공간인 것일까……

뮤의 시선은 곧 한가운데에 고정되었다.

“아…”

비석 같은 석판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그 아래.

아랫부분에 손잡이 같은 것이 달린, 정사각형 모양의 문이 누워 있었다.

아마, 당기면 위쪽으로 개폐될 것이었다.

‘여기가 끝이 아니었구나.’

즉, 지하로 향하는 문이었다.

멀리 있기에 자세히 볼 수 없는 글씨가 무어라 새겨진 석판 앞으로 다가가기 전, 뮤는 불현듯 어깨에 메고 있던 배낭끈의 존재를 재차 인식하곤.

‘로프를 지급했던 이유가……’

막상 쓰려고 하면 어디 마땅히 쓸 길이 없었던 로프의 진짜 용도를 그제야 깨달았다.

비석과 허리를 로프로 연결하고 내려가라는 걸까.

다만 지하의 깊이를 알지 못하는 입장에선 어느 정도 길이로 묶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아무래도 혼자 하기엔 무리가 있는 걸로 보이는데. 기믹을 배치한 의도야 그렇다 치고, 일단 문이 열리지 않으면 의미가 무색하니 앞을 향해 걸어갔다.

뮤는 안력을 집중했다. 비석에 새겨진 글씨를 보기 위함이었다.

이런 수상한 곳에 알 수 없는 석판과 문이 있다면, 석판에 적힌 수수께끼를 풀어서 문을 여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뮤가 지금껏 듣거나 봐왔던 가공의 이야기 속에선 대체로 그러했다. 추리 소설을 좋아했던 뮤였기에 수수께끼 풀이 같은 건 나름 자신이 있었다.

“흐음.”

매끈한 턱을 어루만졌다. 뭘까.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조금씩 내부서부터 솟기 시작하는 호기심에, 뮤는 저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사람 취향이라는 건 변하질 않는구나.

무릎에 손을 얹고 허리를 굽힌다.

귀 뒤로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과연……’

그러자 비석에 새겨진 글씨가 명확히 들어왔다.

다행스럽게도, 고대 문자 같은 건 아니었다.

짧고 굵은 한 줄.

[ 손잡이를 위로 당기시오 ]

“……”

뮤는 말없이 손잡이를 붙들고 위로 당겼다.

#24

“피가… 멈추긴 했는데. 괘, 괜찮은 거 맞아?”

“아니, 안 괜찮아. 솔직히 이대로 죽어도 문제없지 않나 싶어. 다음에 기절할 땐 영영 못 깨어날 것 같은데 말이지.”

“무, 무서운 소리 하지 마. 죽긴 왜 죽어. 여기서 진짜로 죽을 리가 없잖아……”

“내가 뭐라고 말했더라?”

“……아무튼, 네가 말한 대로라면 지금 죽을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불길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일어나기나 해.”

“아니, 일어날 수 있어야 자리에서 일어나든가 말든가 하지…… 애초에 이게 전부 누구 탓인데. 응?”

“……으읏.”

유리가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문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왼 팔뚝을 오른손으로 붙잡고 꽉 틀어막는 중이었다. 지혈이 끝난 터라 굳이 손으로 막을 필요까진 없었지만, 가만히 놔두면 왠지 더 고통스러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피가 훅 빠져나가 파리해진 안색을 겨우 폈다. 팔뚝을 붙잡고 있던 손을 들어 엄지를 치켜 세워 보였다. 씨익 웃는 것은 덤이다.

“완벽한 팀킬이었어, 유리.”

“……으우으으.”

유리가 사과도, 그렇다고 평소처럼 적반하장으로 나서지도 못하는 채, 내 옆에서 애꿎은 손만 휘적거리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는 조금 복잡했다.

어찌 되었건 유리랑 같이 다니게 된 이상 미궁을 돌파하다 보면 필시 전투가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아직 정신력이 회복되지 않아 염력을 쓰기 힘든 유리에게 대충 마물을 붙들고 있는 정도만 해달라 했었고, 유리가 알겠다 했지만, 결과적으로 유리의 염력이 방출될 일은 거의 전무했다.

왜냐면, 나오는 족족, 내가 해치웠으니까.

레이스 같은 마물은 유리가 처리할 수 없다. 그러니 내가 해야 한다. 다른 마물들도, 뭐.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지 않는 이상 시야에 보이자마자 냅다 달려가 뚝배기를 깨버렸다. 하다 보니 포인트를 잘 잡을 수 있게 되어서 그런지, 꽤 수월한 사냥이 쭉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유리가 할 일이 없어졌다. 내 뒤에서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을 뿐. 당연히 진짜로 빤 건 아니고. 아무튼.

그런 식의 전투가 지속되다 보니 유리는 자기가 정말로 필요한가­? 같은 딜레마에 빠졌고, 급기야 내가 싸우려는 걸 제지한 뒤 자기가 나서겠다고 호기롭게 외친 적도 있었다. 서로 돌아가면서 싸워야 체력도 아낄 수 있고 뭐 그런 게 아니겠냐고.

나는 네 상태가 아직 괜찮지 않으니 조금 더 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지만, 자긴 이렇게 남의 보호만 받는 포지션을 진짜 싫어하니 그냥 자기 뒤에서 쉬고 있으라 했다. 아무리 말해도 내 말을 들을 것 같지가 않았다. 대충 무슨 심경인진 알 것도 같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유리에게 전투를 맡겨 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 걱정이 기우였다는 걸 입증하긴 개뿔, 경고했던 정신력 부족으로 염력 컨트롤에 실패해서 애먼 마물의 공격을 허용해 버렸다.

말하자면 마물을 이쪽으로 끌어당겼다고나 할까. 자살이나 다름없는 행위였지. 게다가 유리에게 좋지 않은 기억을 심어준 구울이었고.

비명을 지르며 놀라 자빠지길래,

내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대신 물렸다.

끝.

피는 분수처럼 철철 흐르고, 팔뚝은 끊어질 듯 아프고. 머리가 아득해지는 와중에 지혈은 해야겠고.

일단 마물이 오지 않을 법한 장소로 유리의 부축을 받으며 이동한 뒤, 풀썩 주저앉아 마력을 끌어올려 손바닥 위로 불꽃을 피워냈다.

뭐, 어쩌겠어.

붕대 같은 것도 마땅히 없는걸.

그냥 상처 부위를 불로 지졌다.

그쯤 정신을 잃었던가. 겨우 깨어났더니 덜 지졌어서 다시 한번 지지고. 지글거리며 살 익는 냄새가 주위에 만연하고. 다시 훼까닥 의식을 놓아 버리고.

그리고 조금 뒤 깨어나서, 양쪽 팔을 감싸고 있던 옷의 부위를 찢은 뒤 상처 부위에 빙 둘러 꽉 묶고.

이러저러 고통에 익숙해진 까닭일까. 세상 떠나가랴 비명을 지르진 않았다. 어금니가 부서지도록 세게 깨물긴 했지만. 날 지켜보던 유리는 도저히 못 보겠는지 손으로 눈을 가렸었다.

그런 유리에게 나는 손을 치우라고 했다. 똑바로 보라고 했다. 끔찍해도 눈을 돌리지 말라고 했다.

이건 네 실수로 인해 생긴 상처였으니까.

중요한 순간에서 네가 실수하면, 다른 동료가 어떻게 되는지 이 기회에 확실히 새겨두라고.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었다.

유리는 점차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 되어가면서도 꿋꿋하게 내가 상처를 지지는 과정을 전부 지켜보았다.

전적으로 유리를 탓하기 위해 그런 건 아니었다. 나를 대신해 나서려는 유리를 진즉 단호하게 만류하지 않은 내 잘못도 있었거니와, 그 의도가 전혀 나쁜 종류의 것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여태껏 나 혼자 싸우고, 나 혼자 지치는 것 같으니, 자기가 날 대신해서 싸우려 했을 뿐인데, 그 이상으로 질책을 해봐야 뭐가 좋을까.

실수야, 뭐……

다음부터 안 하면 되지. 유리도 이참에 확실히 깨달았을 거다. 한번 제대로 실수하면 아주 끝장난다는 것을.

아무튼.

그로부터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가,

바로 지금이었다.

“파, 팔은… 움직일 수 있겠어?”

“음, 조금 정도는?”

빙빙 돌리는 것까진 가능하다.

속도는 엄청 느리지만.

“어, 어떻게 하지……”

“어쩌긴 뭘 어째. 일단 한쪽 팔로 싸워야지. 정 뭣하면 네가 나 대신 싸워줘도 좋고.”

“그, 그랬다가 지금 이렇게 된 거잖아.”

“괜찮아. 실수만 안 하면 돼.”

“이제 그럴 자신이 없다고……”

“그럼 여기서 다 포기할래?”

“……”

이미 많은 길을 지나왔다. 동시에 나는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에, 우리가 목표로 하던 곳이 있노라고. 정확히는 나만의 목표였겠지만. 솔직히 지금은 생존만 하면 된다는 생각도 들고 있긴 하고. 굳이 특별 과제를 달성해야 할까. 거기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잠자코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다, 내가 지금 이 상태여선 너한테 방해만 될 게 분명해. 포기는 내가 먼저 하는 게 낫겠지.”

“어?”

유리가 벙찐 목소리를 흘린다.

이판사판이다. 어차피 우리에게 좋지 못한 미래가 예정되어 있다면, 최소한의 발악이라도 해봐야지.

아직 멀쩡한 오른손을 번쩍 든 채, 고개를 꺾어 불길한 색깔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을 모아 소리쳤다.

“──에픽 클래스 1학년 15번 에지오 크라닐, 이 이상의 실습 진행을 전면 포기하겠습니다! 감독관 님께서 듣고 계시다면 절 밖으로 꺼내주세요!”

“야, 야야야야야! 뭐, 뭐 하는 거야!”

유리가 호들갑을 떨었다.

“가만있어 봐. 이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거니까.”

당연히 실습인 만큼, 중도 포기도 가능하다. 그러나 고작 실습 따위에서 꺾여 중도 포기를 선언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명예도 깎이고. 겁쟁이란 소문도 금방 날 거고. 무엇보다 포기할 이유가 딱히 없으니까. 그래서인지 다들 제 한계까지 부딪치다가 타의로 탈락 처리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나 역시 포기할 마음은 쥐뿔만큼도 없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생각이었고.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한들, 유리가 내 옆에 없었다 한들, 미궁의 중심부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갔을 거다.

그렇지만 지금은 너무 큰 위험성이 생겨 버렸다. 여기서 실습을 더 진행하다간, 유리와 나 둘 중 한 명이 죽을 수도 있다. 솔직히 여기까지 왔으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당장의 성적이 단 하나뿐인 목숨보다 소중할 리 없었다. 누구 한 명 죽게 놔두어선 안 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차분히 기다렸다.

1초, 2초, 5초가 지나고,

60초가 지났다.

그렇게 5분이 다 되어 가는 동안, 내 몸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

“음, 못 들으신 건가?”

아닌데.

전부 다 보고 있을 텐데.

다시 한번.

“에픽 클래스 1학년 15번 에지오 크라닐입니다! 중도 포기를 선언하겠습니다! 감독관님, 듣고 계십니까──!?”

……

……

……

반응이…

없네.

“유리.”

“……응.”

유리가 어두운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우리 진짜 큰일 난 거 같다.”

“응.”

포기를 선언한 내가 밖으로 소환될 줄 알고 자기 혼자 남겨질까 걱정하던 유리는, 이제 완전히 다른 걱정을 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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