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 1학기 모의 실습_네비로스의 미궁 (16)
* * *
#30
뮤가 이전에 걸어왔던 회랑과 비슷한 통로.
그러나 조금 더 외벽 사이의 간격이 넓었다.
사방은 벽으로 꽉 막혀 있고, 방금 열고 내려온 문으로부터 새어 들어오는 빛을 제외하면, 한 줌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다. 횃불이 켜지지 않았다면 완전히 어둠에 잠긴 모양새였을 것이다.
‘…저건.’
뮤는 눈을 가늘였다.
통로는 그렇게 길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저 너머의 모습이 뮤의 눈동자에 비치고 있었다.
이곳과 달리 처음부터 밝혀져 있는 공간. 그 너머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뮤가 작은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제단… 인가?”
가까이서 보지 않아 정확한 생김새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저 검고 딱딱해 보이는 것이 아마 감독관이 칭했던 ‘제단’이라는 걸,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정말로, 미궁의 끝에 다다랐다.
그런 실감이 들었다.
들어올 때 문이 열려 있지도 않았고, 비석에 밧줄도 감겨 있지 않았던 걸 보면, 자신이 첫 번째로 미궁의 끝에 도달한 게 아닐까.
오만과 자만이라는 걸 제하고서도 자신보다 빨리 도착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란 생각은 늘 품고 있었다. 권위 없는 자의 허풍 따위가 아닌, 능히 해낼 능력이 있는 자의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터벅, 터벅.
적잖게 피곤… 하긴 하지만, 이제 전부 끝이다. 저것만 잘 마무리하면 자기 몫의 실습은 끝이 난다. 어깨를 뿌득이며 걷자, 뮤가 어두컴컴한 회랑을 지날 때마다 꺼져 있던 횃불에 불이 붙었다. 그래도 긴장은 늦추지 않는다. 갑자기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지하라 그런지 바깥보다 훨씬 더 서늘하다. 추운 바람이 분다. 어디서 들어오는 걸까. 뮤 본인은 더위를 잘 타지만 추위에는 다소 강한 편이었기에, 어깨를 쓸지도 않고……
아닌가.
차가운 손을 볼에 가져다 대어 보았다.
얼음처럼 차갑다.
‘추워.’
춥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전혀 아닌 모양이다.
뮤가 이렇듯 추위에 약간 취약한 모습을 보이게 된 건,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었다.
─ 언제 와요, 선배……
그날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그날부터 온몸을 감싸는 차가움이 싫어졌다.
“……하.”
추운 겨울과 혼자가 싫었다.
소복하게 내리는 눈도 싫었다.
펼친 손바닥 위에 내려앉아 차가운 물로 변해 녹아 없어지는 눈송이를 볼 때면, 처음으로 그와 인연을 맺었을 때의 기억이 흐릿하게나마 되살아나 버리니까.
눈의 차가움보단 사람의 온기가 좋았다.
그랬던 뮤였으나,
이제는 반대가 되었다.
모든 걸 잊기 위해 그 싫었던 환경에 스스로 뛰어들었다. 사사로운 감정들을 전부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
그 사람은 거짓말을 싫어했지만, 안타깝게도 거짓말이라는 건 이렇게나 편하고 좋은 것이었다.
진심 따윈 어디에도 드러내지 않은 채, 절대 벗겨지지 않을 단단한 껍질로 본심을 감춘다.그렇게 결심하고서 차가운 날붙이에만 매진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그를 다시 만나 버렸다.
솔직히 기뻤다.
기쁘지 않을 리가 없잖은가.
그렇지만.
— …날 이제 그만 놓아줬으면 좋겠어.
다시 만난 그 사람은 자신을 거부했다.
그리고, 처참히… 버렸다.
‘버리다니.’
이미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한테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하면, 그것보다 더 고문 같은 일이 어디에 있을까. 심지어 자기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모든 걸 용서하려고 한다. 단지, 그 조건으로 자길 더 이상 마음속 깊이 두지 말 것을 원했을 뿐이다.
그걸 허락하지 못한 건 자신이었다.
처음 그를 버린 건 자신이었다.
껍질 속에 몸을 감출 때만 해도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다. 그리 자신했다. 그러나 그건 고작 겨울에 부는 쌀쌀한 바람 따위가 아닌, 거칠게 휘몰아치는 태풍을 만난 적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자만심에 불과했다.
아냐.
마음이란 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그만.’
피곤해서 그런 걸까. 그래서 제대로 된 판단이 서질 않았던 걸까. 아니면 쓸데없는 감정이 짙어져서 그런 걸까.
문득 실습 따위 어찌 되든 상관 없다는 생각으로 바닥에 멍하니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울고 싶은 기분이 들어 버려서, 더 이상의 회상은 그만두자고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었다.
마음은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둑 터진 듯 혼자 힘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게 된 흐름에, 뮤는 결국 딱 한 방울을 흘리고 말았다.
#31
이럴 때일수록 다른 생각 같은 건 해선 안 될 일이었지만, 한번 시작하고 나니 과거의 상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 타박.
그랬던 뮤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을 때, 시야의 폭이 확 넓어진 것과 동시에 바닥을 밟는 자신의 발소리가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타오르는 횃불이 있긴 하나 그 수는 지극히 적다. 이 넓고 넓은 공간을 전부 밝히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나, 분명히 이곳은 밝았다. 다른 공간보다도 훨씬. 온통 푸르스름한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커다란 돔 형태의 공동이었다.
뮤는 시선을 한가운데로 향했다.
특이한 장식 따위는 없었다. 검은 돌로 만들어진 비석과 제단. 붉은 비단이 공물을 바치는 공간 위에 깔려 있었다.
무엇을 위해 안배된 건지 알 수가 없다.
제단이라 함은 제물과 공물을 바쳐 제사를 올린 뒤 신적인 존재에게 축복 혹은 예언을 받는 것이라 알고 있을 텐데…… 주위에 신의 모습이 조각된 석상 같은 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교단의 물건이 아닌 걸까.
잠시 뒤 뮤는 곧 납득하고 말았다.
온갖 사이한 마물들이 넘쳐나는 이런 미궁의 지하에, 신성한 제단이 잠들어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이상한 일이겠지.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
예복도 준비되어 있지 않으며, 그닥 신성하지도 않다. 오히려 음산한 분위기만 풍길 뿐이다. 게다가 검은 돌로 만들어졌다. 종교적으로 검은색은 별로 좋은 의미가 아니다. 흑(?)은 마(?)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검은 돌로 만들어진 제단은, 과연 무엇에게 공물을 바치도록 하는 걸까.
새하얀 설원 위에 찍힌 점 하나처럼, 공동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제단. 뮤는 홀린 듯 그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저벅.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걸.”
멈칫.
완벽히 혼자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목소리를 들었다. 뮤는 반사적으로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위 마수가 소환될 거야. 제대로 된 방비책 같은 게 없다면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너는……”
너무 공간이 넓었던 탓일까.
통로를 지나며 들어온 공동의 구석, 벽면에 몸을 기대고 앉아 무릎을 끌어안은 채 잠자코 박혀 있던 누군가를 미처 보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냐. 여긴 외부와 완벽히 단절된 공간이지만, 또 하나의 현실이기도 해.”
“……뭐?”
“제단에서 소환될 고위 마수는 가짜 환영 같은 게 아니라 진짜고, 여기서 입는 상처 역시 그대로 현실에 반영될 거야. 즉── 죽음에 이르는 공격을 받으면 정말로 죽는다는 거지.”
무릎을 탁탁 털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미궁의 주인이 뭘 준비해 놓았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가급적 저건 건드리지 마. 그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 어쨌든 여기에 올 테니까. 내가 본 미래가 맞는다면.”
“……여긴 언제 온 거야?”
“조금 전.”
‘내가 첫 번째가 아니었다고?’
문은 닫혀 있었고, 로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네가 올 줄은 몰랐는데…… 괜찮겠지. 너라면 아예 도움이 안 되지도 않을 거고. 아무튼 제단은 건드리지 마. 세 번 말했어.”
무시하고서 앞쪽으로 걸어가던 뮤에게 천천히 다가오며 말한다.
빛을 받아 찬란하지만 어딘가 탁한 색이 감도는 머리칼. 그것은 아마 핏물에 의해 떡이 진 까닭일 터였다.
군데군데 찢어진 의복 속으로 새하얀 살결이 보인다. 숱한 전투의 흔적들이다.
깊게 드러난 쇄골 위에 목걸이가 매여 있었다.
별다른 특색 같은 건 없다. 흔해 보인다. 그렇지만 집중하면 아주 미약한 마력의 기류가 느껴진다. 뮤는 저 목걸이가 모종의 마법이 부여된 아티팩트일 거란 확신을 가졌다.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는데?”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하는, 정확한 근거도 없는 말에 순순히 따라줄 이유가 하나 없었다.
“그래야 오차 범위가 줄어드니까.”
“무슨.”
“믿지 않아도 상관없긴 한데……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네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다칠 거야. 아주 크게. 그래도 괜찮겠어?”
──스텔라 데 펠트라인.
그녀가 어째서 여기에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제하고서라도, 지금 스텔라는 뮤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었다.
“헛소리를……”
“에지오가 다칠 거라고 했어.”
“……너.”
“우리가 도착했으니, 곧 미궁의 주인이 여기로 올 거야.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지금 뭘 해봐야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탁한 은백색의 눈동자가 뮤를 직시한다.
“내 친구들이 오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낼 거야. 그러니 넌 돌발행동 같은 거 하지 말고 내 옆에서 가만히 있어 줘. 그럼, 아무도 다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어. 펠트라인 가(家)의 운명을 걸고 맹세할게.”
목걸이에 달린 장식이 위치한 곳에 손을 얹으며, 스텔라는 작게 힘이 들어간 어조로 그리 말해왔다.
#32
“…날 데려가. 대신 남은 애들은 밖으로 꺼내줘.”
“에, 에지오!”
“야, 무슨……!”
도박이라면 도박이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네비로스가 우리에게 늘어놓은 말들이 전부 진실이라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모두 우릴 늪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거짓말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를 포함한 모두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럴 바에야, 한 명만 희생하는 편이.
“너 미쳤어?!”
확, 하고 내 팔을 끌어당긴다.
루비아가 아니다.
기겁한 표정의 유리였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 네가 뭔데 우리들을 대신해서 혼자 가겠다고 하는 거야!”
“유, 유리…….”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하늘 위로 뻗어 나간다.
루비아는 유리의 옆에서 그녀를 말리려는 듯 팔을 붙잡곤 있으나, 루비아 역시 유리의 뜻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였다. 날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느릿하게 젓고 있었다.
“저 사람이 원하는 게 정말로 나 한 명이라면, 여기선 내가 먼저 따라가고 요구를 들어주는 게 맞아. 그걸로 너희의 안전이 보장된다면.”
“웃기시네! 내가 언제 지켜 달라고 했어?! 멋대로 정하지 말란 말이야! 따라갔다가 죽기라도 하면 어쩔 거냐고!”
“안 죽어. 걱정 마.”
“걱정하는 게 아니고 화를 내는 거라고!”
“괜찮아.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말했잖아. 그리고 저 사람의 목적이 정말 나 한 명이라서 이런 일을 벌인 거라면, 그건 너희들을 위험한 상황에 휘말리게 한 내 책임이기도 해. 그러니까 이건……”
“너, 너── 한 번만 더 그런 소리 해봐. 가도 같이 가. 절대로 너 혼자 가게 두진 않아.”
“유리……”
유리가 까득, 하고 이를 갈며 내 손목을 단단히 붙잡는다. 그러나 손이 작아서 손목을 전부 감싸진 못했다. 붙들고 있는 손이 용암처럼 넘쳐흐르는 듯한 분노로 덜덜 떨리고 있다.
뿌리치려면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겠지만, 그 힘에 담겨진 의미가 손을 쉬이 놓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눈물겨운 우정이군요.…그런데 여러분께서 이러시면 제가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이 된 것 같지 않습니까? 그건 좀 싫은데요.”
네비로스는 잠시 멈췄던 발을 그대로 빙글, 뒤로 돌리곤,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에지오 크라닐. 제가 왜 당신을 원한다고 생각하죠?”
그 질문에 잠자코 대답한다.
“…나는 당신의 말을 믿지 않아. 믿을 만한 근거가 없어. 그러니 당신이 인간이라는 말도 믿지 않아.”
유리에게 손목을 붙들린 채 계속 말을 잇는다.
“너희 마족들은 지금까지 날 굉장히 먹음직스러워했어.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면 내 존재 자체가 꿀 발린 사탕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야. 엘리고스처럼 오래 살아온 대악마도 날 보자마자 참지 못하고 먹어 치우려 들었어. 그 정도로 마족들이 자제심을 잃게 만드는 뭔가가 나한테 있는 거야. 그건 아마──”
말을 끊고 나머지 한쪽 손을 들어 보인다.
머릿속에 불꽃이 튀기자마자,
파아아앗 하고 새하얀 빛이 터져 나온다.
“이 빛과 관련 있는 것이겠지.”
“……으호호.”
네비로스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말씀드렸듯 제가 마족은 아닙니다.…그렇지만 에지오 크라닐, 당신의 그 기묘한 빛에 불나방처럼 이끌렸다는 건 부정할 수 없군요.”
“역시.”
“하나, 그것만이 제 목적의 전부는 아닙니다.”
“……뭐?”
네비로스는 유감스럽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말했지 않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의 소망을 이루어주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그 말을 못 믿는다고 했을 텐데.”
“그렇다면, 이제부터 믿으십시오.”
무슨 근거로─.
네비로스가 가면을 어루만지며 날 바라본다.
“에지오 크라닐, 당신이 가진 그 신성한 빛은 당신에게 있어 축복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저주이기도 했지요. 맞습니까?”
“──!”
“그리 놀라지 마십시오. 당신 같은 이들에겐 흔한 일이니까. 비단 당신만 그런 것도 아니기에.”
네비로스가 가면 속에서 혀를 찬다.
“가엾기는. 자기가 커다란 덫 상자에 들어 있는 것도 모른 채, 있는 힘껏 발버둥 치려다 결국 덫에 걸린 꼴이라니.”
“……”
“그러나 안심하시길. 그리 가여운 당신에게도 아직 기회가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제가 이렇게 찾아온 겁니다.”
여전히 믿지 못할 소리만 잔뜩……
“영원히 풀 수 없는 족쇄. 그건 언제 어디서든 당신의 발을 묶을 것이고, 행동을 제약할 것입니다.”
네비로스가 손가락으로 내 발목을 가리켰다.
“당신을 노리고 있는 것들이 주위에 만연할 때도, 그 족쇄 때문에 멀리 도망가지 못할 겁니다. 눈부신 태양빛은 손으로 가린다고 전부 가려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어떻게든…… 당신을 찾아낼 겁니다.”
“그럼, 당신도……”
“아예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강렬한 빛에 이끌렸다 하지 않았습니까? 도저히 흥미가 돋지 않을 수가 없었거든요. 으후후.”
역시, 결과적으로 날 찾아온 건 맞지 않는가.
“아무튼 에지오 크라닐, 당신은 지금 이 시각에도 서서히 마모되어 가는 중일 겁니다. 종래에는 그 맑고 깨끗한 빛이 당신의 인격을 모조리 잡아먹겠지요.”
네비로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러면, 오로지 내재된 본능에만 따르는 한 마리 날짐승이 되는 겁니다. 평범한 인간의 사사로운 감정 따위 어느 무엇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인간으로부터 찬찬히 멀어져 갑니다.”
“……”
“그리하면 남들도 당신을 기피하겠지요.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일 테니까. 인간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두려움을 품는 습성이 있으니까.”
네비로스가 가면 속의 눈을 빛낸다.
“아니, 지금도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당신은 남들과 다를 바 없이 멀쩡한가요? 제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는데요.”
감정.
사사로운 감정인가…
네비로스가 진한 웃음기를 머금는다.
“그것 보세요, 결국 당신들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
루비아와 유리는 나와 네비로스가 나누는 대화의 맥락을 따라가지 못하겠다는 듯, 각자 혼란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들이었다.
“하지만.”
네비로스가 가볍게 운을 띄운다.
“저라면, 그런 당신을 구원해줄 수 있습니다.”
“……무슨.”
“영영 잃어버렸다 생각했던 것들을, 전부 되찾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당신을 평범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바라지 않는다 말하지 마십시오. 여태껏 제가 봐왔던 모든 역천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마음속 깊이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자유를.”
“사랑을.”
“끝없이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당신도 예외가 아닐 겁니다. 지금이야 애써 괜찮은 척하며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물처럼 흘러갈수록, 때가 다가올수록 그 갈망의 크기는 점점 불어날 테지요.”
“제가 그 갈망을 해소시켜 드릴 수 있다는 겁니다.”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그 방법이 대체 무엇인지. 당신의 주위에 있는 역천자들은 아무도 알려주지 못했던, 어쩌면 알려주지 않았던, 족쇄를 푸는 방법을.”
“이 시간이 지나면 기회는 영영 없습니다.”
“어떻게,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저를,따라오시겠습니까?”
“당신 한 명만 데려가란 제안은 흔쾌히 수락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큰일을 벌이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당신과 원만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무엇보다…요구대로 남은 분들은 당신과의 대화가 끝나면 밖으로 최대한 안전하게 내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대해선 여지가 없도록 피의 맹약을 맺어드리죠. 어쩌시겠습니까?”
“……”
네비로스가 스윽 손을 내민다.
“에, 에지오.”
“너, 내가 말했어. 멋대로……”
아니.
굳게 다짐한 채 말한다.
“가겠어.”
양옆에서 큰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에지오!”
“너, 내 말을 뭘로 들은 거야?!”
루비아와 유리가 내 팔을 하나씩 붙든다.
후우─
심호흡을 하고 입술을 깨물자.
“아주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네비로스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자유를 얻는 방법이란 매우 매우 간단합니다.”
츠츠츠츠츠츳──
공간의 틈새가 찢겨지며 벌려진다.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모를 포탈을 열고, 네비로스는 힘차게 두 팔 벌려 소리쳤다.
“배교(??)하십시오!”
“그리고, 새로운 신(?)을 맞이하십시오!”
네비로스가 틈새 속으로 한 걸음 내디딘다.
타악─
그와 동시에 루비아와 유리의 손을 뿌리친다.
타타타탁─
후웅!
단숨에 내달려 네비로스가 넘어간 포탈 속으로 몸을 던지는데, 순간 허공에 붕 띄워진 듯 부유감이 드는가 싶더니.
“너 진짜, 죽을래?!”
“멋대로, 가지, 말라고, 했잖아!”
“아니, 야, 너희들──”
염력이 먹히지 않아 날 끌어당기는 것에 실패한 유리가, 내 목덜미를 콱 붙잡은 채 뛰어들었으며, 루비아는 실로 오랜만에 입 밖으로 꺼내는 험한 말과 함께 나와 같이 포탈 속으로 몸을 던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