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날 차버린 소꿉친구와 전 여친이 같은 반이라 곤란하다-158화 (158/201)

〈 158화 〉 1학기 모의 실습_네비로스의 미궁 (17)

* * *

#33

제단이 위치한 공동.

“거, 건드리지 말라니까!”

“비켜. 난 여길 나갈 거야.”

실랑이 끝에 스텔라의 말을 무시하고.

성큼성큼 제단을 향해 다가가는 뮤.

“어차피 못 나간다고!”

“시끄러워.”

“시끄럽고 자시고! 원래 어떤 식으로 작동되어야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우리가 저기서 소환될 마수를 때려잡아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니까?! 미궁의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여기서 한 발짝도 못 나가! 내 말을 뭘로 들은 거야?!”

“제대로 들었지. 그리고 판단을 내렸잖아.”

뮤가 홱, 하고 무심히 고개를 돌린다.

“믿을 이유가 없다고.”

“너……!”

스텔라가 이를 바득, 갈았다.

“에지오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고 했어.”

“……”

“내 말을 무시하고 가면, 걔가 다칠 가능성이 매우 높아져. 그런데도 들은 체도 안 하고 마음대로 행동할 거야? 그러다 일이 전부 꼬여 버리면, 그 뒤의 상황에 대해선 어떻게 책임질 건데?”

“책임 안 져.”

“뭐?”

“내가 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데? 네 말을 전적으로 믿어야 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어? 뭔가 그럴싸한 말을 하려면 그럴싸한 근거도 같이 가져와야지.”

“맹세, 했잖아.”

“맹세…? 가문의 운명이니 뭐니 했던 거?”

뮤는 기가 찬 웃음을 지으려 했지만, 무기질적인 표정에 극적인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다.

“그런 건 나한테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아. 대가를 걸 거라면 네 스스로의 목숨 정도를 걸어 보든가.”

가문. 명예. 운명.

어느 하나 뮤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들이 스텔라에게 가져다주는 의미가 꽤 비장함을 뮤도 충분히 알고 있긴 했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그건 스텔라의 사정이다. 자신이 아니라.

“갑자기 무섭도록 조용해졌네.”

“……”

“역시, 가문 따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대가였잖……”

“──좋아, 걸게.”

“……뭐?”

“건다고. 내 목숨.”

가슴 위에 손을 얹으며 그리 말해온다.

‘……뭐가 저렇게 당당하지?’

뮤가 여태 관찰한바, 스텔라 데 펠트라인이 허풍을 떨 만한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비약이 너무 심하다. 말로만 들어선 믿지 못할 건덕지가 한가득이었다.

뿐만 아니라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자세로도 보이진 않았다. 저리 진정성 있게 함부로 못 믿을 말을 한다면, 경우는 아마 두 가지였다.

정말로 진심을 담아 호소하고 있거나, 절대 벗겨지지 않는 가면을 쓴 희대의 사기꾼이거나.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대체 뭐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 필사적이랄까. 무엇보다 조금 께름칙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땅에서 솟았는지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여기로 들어온 흔적 하나 없었던 것.

나름 첫 번째로 도착했을 거란 확신을 가지고 이곳까지 왔으나, 먼저 선수를 쳐 공동 구석에 홀로 자리하고 있던 것.

‘내가 모르는 다른 루트가 있었나?’

어쩌면 입장 방법이 하나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충 설명이 가능하다. 구태여 추측할 필요도 없이 물어보고 대답을 얻으면 되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뮤가 궁금증 해결을 위해 말을 다시 꺼내기 전에, 스텔라 쪽에서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운명을 볼 수 있으니까.”

“……?”

뮤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나는 미래를 볼 수 있어. 그게 나의 ’재능’이야.”

“미래를, 본다고…?”

그게 가장 믿기 힘든 말인데.

“맞아. 나는 이번 실습에서 일어날 운명들을 봤어. 거기엔 많은 친구들이 엮여 있었고, 너도 포함됐지. 내 친구들이 위험에 빠지는 걸 막기 위해 이렇게 먼저 찾아오지 않을 수가 없었어. …원래는 나 한 명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네가 날 뒤따라 도착한 건 의외야. 운명이 뒤바뀌기 시작했다는 증거거든. 그래서, 가급적 오차 범위를 줄이고 싶었던 거야. 내가 엿본 운명이 엇나가지 않도록.”

그러나 스텔라는 더없이 당당했다. 이 역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모습으론 보이지 않았다.

한참 뚫어져라 스텔라를 응시하던 뮤는, 미처 의심을 거두지 못한 듯 입을 열었다.

“미래는 네가 본 거지, 내가 본 게 아니잖아.”

“……”

스텔라가 초탈한 표정이 된 것도 잠시.

“뭐, 됐어. 네 말이 진짜라고 쳐. 네 말에 순순히 따르면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고 무난하게 실습이 종료된다는 건가?”

“……맞아.”

“애초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데?”

뮤가 성큼, 스텔라 쪽으로 한 발짝 내디디며.

“뭐가 문제라는 거야. 왜 위험에 빠진다는 거고. 난 여기까지 오면서 별달리 특별한 일은 겪지 못했거든. 그런데 마지막에 와서 다짜고짜 네가 날 막아서니까, 의심스러운 것도 당연하지 않아? 대체 네가 본 게 뭐길래──”

“나도 전부는 몰라.”

“뭐?”

“내가 본 건 일부뿐이니까. 그렇지만, 너를 포함한 반 친구들의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건 확실해. 말했듯 에지오도 마찬가지야. 그걸 막기 위해 내가 여기 있는 거고.”

뮤는 그쯤 스텔라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았다. 그 이름을 자신한테 협박하는 것처럼 들이밀어 봐야, 되레 반발심만 든다고.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냐며 전부 뒤집어엎을 수도 있다고.

“…이래도 믿지 못하겠다면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제단으로 가서 마수를 소환하든, 난동을 피우든 네 마음대로 해.”

체념한 얼굴로 스텔라가 중얼거린다.

직후 손으로 목걸이의 장식을 꾹 쥐었다.

사아아아……

고요하고 웅혼한 울림이 퍼져 나간다.

심상치 않은 마력의 기류가 스텔라의 몸을 휘감았다.

육안으로도 확연히 볼 수 있을 만큼 선명히 들끓기 시작한 그 기운들을 마주하며, 뮤는 스텔라 데 펠트라인에 대한 잠재적 위험도를 급격히 두 단계 정도 상승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네가 그렇게 하겠다면 나는 온 힘을 다해 널 막을 거야. 미궁의 주인이 이곳으로 올 때까지.”

#34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금방이라도 격렬한 전투의 신호탄이 쏘아질 듯, 무척이나 팽팽한 긴장감이 일대에 감돌기 시작한다.

스텔라가 침착한 얼굴로 뮤를 바라본다.

탁했던 은백색의 눈동자에 빛이 돌아와 있었다. 명멸하는 빛들이 은하수처럼 반짝거린다. 절대 부러지지 않을 굳센 의지 또한 깊숙이 박혀 있었다.

뮤가 여기서 제단을 향해 한 발짝이라도 가까이 다가선다면, 스텔라는 그 즉시 마력을 방출할 터였다.

‘무슨 자신감으로.’

뮤는 배낭에서 꺼낸 메이스를 꾹 쥐곤 내려다보았다. 힘은 얼마나 담아야 할까. 속도는. 어떤 강세로 휘둘러야 저 폭풍 같은 마력을 깨부수고 스텔라의 머리까지 닿을 수 있을까.

당연히 동급생을 죽일 생각 같은 건 없다. 단지 스텔라와 자신 사이에 전투가 벌어진다면 누가 어떤 방식으로 승리할지 대충 가늠을 해보았을 뿐이다.

─ 우우우웅.

뮤는 말없이 메이스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

그걸 본 스텔라가 흠칫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싸움이 벌어진단 직감을 하고 있는 건지. 어느 정도 보는 눈이 있다면, 스텔라 본인의 승기가 전혀 없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마력을 일절 거두지 않는다는 건, 뮤에게 말했듯 목숨을 걸겠다는 의지의 증명이나 다름이 없었다.

“…네가 날 정말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자만이나 오만 따위가 아니다. 그 사실은 스텔라가 증명했다.

“아니.”

깔끔한 부정의 대답이었다.

“그럼, 왜?”

“시간은 최대한 끌어볼 수 있겠지.”

“흐음……”

그걸로 족하다는 걸까.

그렇게까지 자길 막아서고 싶다는 걸까.

“재밌네.”

뮤가 오랜만에 흥미 어린 미소를 지었다.

사실은.

스텔라의 말을 이미 믿고 있긴 했다.

고작 특별 과제 달성을 첫 번째로 하기 위해 누굴 속이려 드는 건 절대 아닌 듯하고. 뮤 본인이 딱히 성적에 집착하는 타입도 아니었고. 진실 여부는 조금 더 기다린 뒤에 확인해도 늦지 않고. 이런저런 이유 등으로 납득은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조금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자길 협박할 재료로 사용한,누군가의 이름.

그게 왜 자신한테 먹힐 거라고 생각했는지를 대충 예측해보면, 아주 살짝 미간에 주름이 지는 것도 당연하다.

무엇보다.

스텔라 데 펠트라인은, 뮤에게 있어서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진 못한 인물이었다.

남들 앞에선 수줍음 탓에 몇 마디도 하지 못하고…… 어라, 뮤는 잠깐 이상함을 느끼고 말았다.

‘……수줍다고? 저게?’

그러고 보니.

평소처럼 존대를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뮤가 이 공동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말을 버젓하게 놓고 있었다. 다만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어색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달라도 너무 달랐지만, 평소의 모습보다 지금 스텔라의 모습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어째서일까… 그런 것보다도, 설마 남들 앞에서 보여주는 수줍은 얼굴은 전부 다 연기였던 건가?

저게, 스텔라 데 펠트라인의 본모습인가?

그리 이중적인 인물이라 생각하니, 자연스레 의심이 더 깊어지는 것도 어쩔 수가 없었다.

저렇게 완벽히 연기를 할 수 있다면 거짓말을 진실로 여기게 하는 것쯤은 매우 간단한 일이지 않겠는가. 수상쩍은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지금보다 더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뮤가 스텔라에게 그리 좋은 인상을 가지지 못했던 이유 중에서,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일이 한 가지.

그때, 검술 시험에서……

탈진으로 쓰러진 에지오 크라닐에게 누구보다 빨리 달려와, 그를 부축하고 의무실로 데려간 사람이다.

뮤는 그 자리에 잠자코 선 채, 하지 못했던.

하지 않았던.

그 일을 스텔라가 아무런 고민 없이 해냈다.

뮤가 여태 관찰한바 스텔라는 남들에게 구분 없이 친절을 베푸는 타입도 아닌 듯했기에, 에지오 크라닐과 어느덧 부쩍 가까워진 사이를 자기 앞에서 자랑하는 것만 같았다. 별로 의미 따윈 없을진대. 기분 나빠야 할 이유도 하나 없을 텐데……

조금, 울컥한 마음이 들어 버렸다.

‘……불공평해.’

자긴 미처 생각을 정리할 여유도 없어 하루하루가 미칠 것만 같은 속상함의 연속인데.

그랬기에, 에지오 크라닐이 실려 나가는 것을 멀리서 지켜봐야만 했는데. 그 형언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병문안도 미처 가지 못했는데.

그런데 스텔라는.

과거의 인연 따위 어느 무엇도 없이 아카데미에서 새로이 친해졌을 뿐인 스텔라는, 에지오에게 친절과 호의를 아무런 부담 없이 베풀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뮤가 스텔라를 보면서 느끼는 건.

시기와 질투와는 다른 감정이다.

이건,

분명히……

……

남을 미워하는 방법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는 뮤였지만, 세상에서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 단 한 명 있었다.

그런 뮤가 밉고 미워서 꼴도 보기 싫다는 태도를 악을 써가고 눈물을 흘리며 겨우 가장해야 할 만큼, 자길 죽을 만큼 미워하길 바라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뜻대로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그를 놓아주려고 했다.

시간이 전부 해결해 줄 때까지.

사랑 같은 감정 따위, 세월에 따라 흐르는 물살에 휩쓸리고 마모되어 결국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게 될 때까지.

누군가를 다시 좋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꺾이고 부러져서 종래에는 무슨 짓을 해도 일어설 수 없게 될 때까지.

참고 참아서 결국 버텨내려 했다.

그 끝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고 해도…

안 되면 되게 했던, 누군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좋아하게 만들겠다고 항상 다짐하던, 그랬던 뮤는 이제 여기에 없었다.

그냥…

실연의 아픔에 고장 난 소녀가 한 명 있을 뿐.

그런 거였다.

이제 전부 다 놓아주려고 했는데, 본래 자신의 자리였던 곳에 새로운 인연들이 가득 차 있는 걸 가까이서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뮤의 가슴은 점차 거뭇하게 물들어만 가는 것이었다.

그 새로운 인연들 중 하나가 스텔라였다.

“조금 노는 정도는 괜찮겠지.”

스텔라 데 펠트라인.

가주(家?)가 인마대전에서 기록적인 공훈을 세워, 그 위치가 하늘로 격상한 펠트라인 공작가의 영애이자, 한 떨기 꽃처럼 아름답고 수려한 귀족의 정석 같은 면모를 보여주는 여성.

“우리끼리 힘을 뺄 필요는 없지 않아?”

“왜, 이제 와서 겁나는 거야?”

“아니. 난 죽을힘을 다해 널 막을 거라고 했잖아. 각오는 얼마든지 되어 있어.”

두말할 것 없이 예쁘고, 성격 좋고, 헌신적이고, 돈도 차고 넘칠 만큼 많고, 미래도 별처럼 밝게 빛나며, 에픽 클래스에 발탁된 걸 보면 의심의 여지 없이 능력마저 출중하다.

말하자면, 누군가의 신붓감으로 전혀 뒤떨어지는 부분이 하나 없었다. 그야말로 완벽에 가깝다고 할까.

먹구름이 낀 듯 우중충한 과거 따위 존재하지 않고, 온전히 새로운 만남이다. 밝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나갈 뿐이다. 그런 인연이다.

가문의 입지 등을 생각해 보았을 때 절대 그럴 린 없겠지만─그렇게 부정하고 있을 뿐이지만─스텔라 데 펠트라인이 만일 에지오 크라닐에게 구혼(??)을 한다면, 에지오는 거절할 수 있을까.

“그래… 그럼 됐네.”

아니.

부정의 답을 내리자마자, 뮤는 뜨거운 숨을 목구멍 너머로 삼키며, 무거운 메이스에 마력을 힘껏 불어 넣었다.

─ 부웅, 부웅.

시계추처럼 흔들던 그것을.

긴장한 얼굴의 스텔라를 향해 척­ 하고 내민다.

“네 말은 믿겠지만, 노는 셈 치고 먼저 들어와 봐. 네 검술은 정말 형편없어 보였지만… 마력은 꽤 쓸만한 것 같네.”

“뭐?”

스텔라는 눈썹을 치켰다.

믿는다면서 싸우겠다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뭐 하자는 거야, 정말.’

결국 목걸이 장식을 꽉 쥐곤.

“전능하신 여신이여, 빛으로 나를 수호.”

방어 주문을 외우려던 찰나──

#35

쿠구구구구구구─

“…뭐, 뭐야.”

“……!”

드넓은 공동 전체가 크게 뒤흔들렸다.

무게 중심이 불시에 뒤틀린다.

뮤와 스텔라는 각자 자세를 다잡으며 바닥에 손을 짚고 천천히 밸런스를 유지했다.

먼지와 돌부스러기 따위가 천장으로부터 우수수 떨어진다. 황급히 고개를 위로 들어본다. 공동의 천장에 금이 가고 있었다.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라 당황하는 뮤와 달리, 스텔라는 침착을 유지했으나, 결국 한마디 침음성을 내뱉고 말았다.

공간의 베일이 한 꺼풀 벗겨진다.

허상(??)이 아닌 현실로의 진입을 시도한다.

공동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세상이 반 바퀴 뒤집어진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감각이 그들의 온몸을 휘감았을 때, 겨우 정신을 차려 보면 모든 건 현실로 돌아와 있는 채였다.

“몸이……”

방금까지 손에 들고 있던 메이스가 사라졌다. 어느새 어깨에 메고 있던 배낭끈도 온데간데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실습의 흔적이 죄 소멸한다.

군데군데가 찢겨졌던 의복도 말끔하게 복구되어 있고, 마물의 핏물이며 축축한 습기 등으로 인해 꿉꿉했던 몸과 머리칼은 전부 입장 전의 상태로 돌아온 것처럼 말끔하기 그지없다.

“이게, 어떻게, 된.”

“이쪽으로 와!”

스텔라가 소리쳤다.

“이제부턴 진짜 현실이야. 여기서 죽으면 다 끝이라고. 게다가, 아무도 여기서 멀쩡히 내보내 주려 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대체 무슨──”

지지지지지직─.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진동하던 공동이 점차 변화를 끝마쳐갈 즈음, 어느 특정한 공간의 틈새가 세로로 쭉 찢어지기 시작했다. 무심코 귀를 틀어막을 만큼 기이한 소리와 함께.

그리고.

뮤와 스텔라가 마침내 돌아본 그곳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고, 보여선 안 될 모습들이 뒤엉켜 튀어나오자.

“으으, 머리 뜯긴 것 같아……”

“학, 하악…… 뼈, 뼈 부딪쳤어.”

“콜록, 콜록. 너희 진짜 다 같이 손잡고 뒤지려고 아주 환장을─ 어? ……스, 스텔라?”

“너, 너희들이 왜……”

스텔라는 결국 막을 수 없는 운명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을 깨닫곤, 끝없는 절망에 빠진 얼굴로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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