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날 차버린 소꿉친구와 전 여친이 같은 반이라 곤란하다-161화 (161/201)

〈 161화 〉 1학기 모의 실습_네비로스의 미궁 (20)

* * *

#40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 유리의 운명을 봤다고?”

“아마 그렇게 되겠네.”

스텔라는 담담하게 긍정했다.

“하지만 거기엔 내가 있었잖아.”

“방금 말했다시피 네 운명은 별조차 함부로 관측할 수 없어. 그러니, 내가 본 미래에 네 모습이 있었다는 건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거였어.”

“그럼, 대체……”

“나도 몰라. 어째서 네가 거기에 있던 건지.”

스텔라가 모르면 나 또한 알 수가 없다. 점점 더 혼란 속으로 빠져가는 가운데, 스텔라는 제 옆의 유리를 곁눈질하며 중얼거린다.

“어쩌면, 에지오 너의 모습을 했을 뿐, 전혀 다른 사람일 수도 있지. 누군가 너로 둔갑했다거나. 혹은……”

스텔라의 말을,

내가 받는다.

“…나라고 착각할 만큼, 지나치게 닮은 사람?”

바로 그때였다.

“──아니야!!”

공동의 천장을 뚫고 나갈 듯 높이 치솟는 목소리에, 우리 모두가 발원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끄럽잖아. 뭐 하는 짓이야?”

뮤가 짐짓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이내 네비로스의 뒷모습을 휙 돌아본다.

우려와 달리 네비로스는 우리 쪽에 신경 하나 쓰지 않고 있었다. 아까 스텔라의 말에 끼어들었듯 대화는 전부 듣고 있을 테지만.

“그럴, 그럴 리가.”

달밤처럼 낯빛이 창백하고 어두워진 채, 작은 주먹을 꾹 쥐고 어깨를 파들거리며, 머리를 양옆으로 작게 흔들거리고 있는 유리.

“……그럴 리가 없어.”

무엇을 부정하고 있는 건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왜 그래, 갑자기?”

절대 피해갈 수 없을 운명을 전해 들었기 때문일까. 그 내용이 자신에게 큰 해가 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을까. 유리는 상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착각… 일 거야. 그치?”

동의를 요하는 붉은빛의 눈동자가, 스텔라를 향하며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글쎄. 일단 내가 본 건 확실할 거라고 생각……”

“─아니라니까! 아냐! 아니라고!”

유리는 그쯤 거의 악을 질렀다.

왜 저러는 건지 아무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상황을 수습하고자 나선 사람은 충격에서 겨우 빠져나온 루비아였다.

“유, 유리. 우선 진정해. 네가 다칠 일은 없을 거야. 우리가 꼭 그렇게 만들 거야. 약속할게. 응…?”

떼쓰는 어린아이를 달래듯 차분한 음성.

자신의 목덜미와 등을 부드럽게 감싸며 쓸어내리는 손길에, 유리는 급격히 가빠졌던 숨을 조금씩 고르는가 싶더니.

“…아냐, 그런 게 아냐. 그런 게……”

“……유리?”

마지막의 한 줌까지 부정을 토해내고.

“미안해, 내가 잠깐 착각을 했나 봐.”

어지러운 듯 이마에 손등을 짚으며 한숨 섞인 사과를 건네왔다.

“…세상은 넓으니까.”

그런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41

유리가 가까스로 진정한 뒤, 나는 지금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스텔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정리를 해보자. 일단 여긴 저 녀석의 본거지 비슷한 곳이고, 이 공간은 환상이 아닌 엄연한 현실이라고 했지.”

스텔라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맞아. 대륙 어딘가의 지하에 이 공동이 실제로 묻혀 있을 거야. 우리는 거기로 강제 워프를 당한 거고.”

“대륙 어딘가…?”

“워낙 오래전의 기억이기도 하고, 그래서 위치는 자세히 특정할 수 없지만…… 아마 서부에 남아 있을 확률이 높아.”

대륙 서부라니.

종종 망령들의 범선이 폭풍우와 함께 출현한다는 대해와, 전쟁 종식 이후에도 전선에서 꾸준히 대립하고 있는 마물들─아직 정화되지 못한 마기(??)에 의해 자연 발생하는 언데드들이라 소탕의 느낌이 강하지만─과 인간 병사들이 즐비한 그곳 말인가?

“…뭐? 그럼 우리가 여기서 탈출한다고 해도 프론티어에 바로 돌아갈 순 없는 거 아냐?”

대륙이 얼마나 넓고 큰지 알고 있다면, 복귀가 하루 이틀로 가능할 리 없다는 사실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제, 제국 근처까지 가는 게이트도 없을 텐데……”

루비아가 곤란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괜찮아. 내가 알고 있는 게 맞다면, 여기 어딘가에 대륙 어디로든 통하는 포탈이 있을 거야. 그걸 이용해서 탈출하면 돼.”

“……그, 그런 게 있어?”

스텔라의 대답에 안심하던 것도 잠시, 루비아는 놀라움을 드러내며 그리 물었다.

사실 확인 차 묻는 질문이라기보단, 존재 자체에 의문을 품는 느낌이었다. 대륙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포탈이라니. 그런 절대 게이트가 실존한다고?

“있어. 저 남자가 워낙 신출귀몰하고, 재야의 대마법사랍시고 어디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세상에……”

이미 네비로스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싹 지워진 채였으나, 신화나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던 물건이 실존한단 사실과 동일한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스텔라는 짧은 부언으로 네비로스의 신비(??)를 일축했다.

“놀라워하지 마. 자기 힘으로 만든 게 아니니까.”

“……어, 어?”

자기 힘으로 만든 게 아니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일까.

“받은 거지.”

“그렇습니다. 주신께서 제게 내려주신 축복!”

“!”

이번에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연거푸 저쪽을 힐긋거리고 있었는데, 잠깐 눈을 돌린 사이에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 기괴하다. 눈구멍만 뚫려 있는 새하얀 가면. 장발에, 나보다 키가 크다. 뒷짐을 진 채 우리를 살짝 아래로 내려다보며, 그리 말해온다.

“꽤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계셨더군요. 개인적으론 더 듣고 싶었지만, 이제 슬슬 준비가 다 되어가는 참이었기에 여러분들을……”

“죽어!”

뮤가 허리를 비튼다.

일방적인 폭력과 살상에 검은 필요하지 않았다. 으스스한 가면을, 아니, 머리를 으깰 생각으로 주먹을 휘두른다. 단 한 방에 온 힘을 담는다. 푸른 마력이 휘몰아치는 뮤의 주먹이 공기를 찢으며 네비로스의 머리통으로 쇄도했다.

“──!”

“인사 방식 한번 특이하시군요! 당신의 그런 화끈한 점, 저는 좋아합니다! 하하하하!”

후웅─

우리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파공음이 귀청을 찢어발겼을 정도로 무척이나 빠른 일격이었는데, 뮤의 주먹은 애꿎은 허공만 갈랐다.

“이게……”

“야, 야! 멋대로 행동하지 말라고 했……!”

스텔라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뮤는 이미 바닥을 박찬 뒤였다.

타악─!

근 이십 미터에 달하는 거리에 단숨에 좁혀졌다. 포탄처럼 날아가 네비로스의 신형을 타격한다. 이번에는 배. 아예 터트릴 생각으로 힘껏 정권을 내지른다. 우리들이 보기에는.

분명히, 닿았다.

그러나.

“제단 주변에서 함부로 날뛰면 위험하니, 조금만 더 거리를 벌려 볼까요?”

닿지 않았다.

네비로스는 어느샌가 우리 옆에 있었다.

피가 튀는 걸 언뜻 본 것도 같았는데, 전부 다 착각이었던 것처럼 네비로스의 몸체는 멀쩡하기만 했다.

“흡!”

다시 한번 뮤가 진각을 밟고 날아와, 네비로스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후웅!

마찬가지로,

닿지 않았다.

“제가 당신의 화끈한 점을 좋아한다고 하긴 했는데…”

“죽어어어어!”

“그렇지만, 앞으론 조금 자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크윽……!”

“불사의 군단을 다룬다곤 하나, 본질은 여러분과 같은 인간이라서.”

“……하앗!”

“아무리 저라도 제대로 맞으면 죽습니다.”

뮤는 자신의 일격이 무위로 돌아갈 때마다 지면을 굴렀다. 몸을 날리다시피 해서 이루어진 공격이 그대로 통과한 까닭이다.

눈을 한번 깜빡이면 저 왼쪽 구석에 있던 네비로스가 오른쪽 외벽까지 이동해 있고, 가끔은 공중에 나타났다가 뮤가 바닥을 부술 듯 힘껏 점프할 때 홀연히 사라지는가 하면, 우리들 옆에 서서 가면을 고쳐 쓰고 있었다.

뮤의 돌발 행동이 꽤나 갑작스러웠던 터라, 우리들은 자리에 잠시 굳어 있었다. 애초에 그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는 것도 고작이다. 초 단위의 전투에 무슨 수로 개입하라는 말인가.

“아이스 필드(Ice Field)!”

“루, 루비아!”

그러나 루비아는 했다.

“죽여야 한다며! 그럼 도와줘야 하는 게 맞잖아!”

쩌저저적─

계속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던 건, 주문의 영창을 위해서였던가. 쭉 펼친 루비아의 손바닥에서부터 혹한의 냉기가 파도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 무슨!”

“…성공했어?!”

스텔라가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지면을 차갑게 얼어붙히며 돋아나기 시작한 얼음의 가시들이, 빙판 위에 딱 맞추어 나타난 네비로스의 발을 묶었다.

“어떻게……”

스텔라의 중얼거림에 루비아가 답한다.

“모습이 사라질 때 공간이 일그러지는 흐름을 찾았어. 텔레포트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의 공간 마법인 것 같지만… 처음 느껴보는 흐름이라 오히려 더 쉽게 찾아낼 수 있었어.”

처음부터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던 걸까. 네비로스의 패턴을 분석하고, 삽시간에 파악한 뒤, 예측하여 마법을 흩뿌렸다.

대체 어느 정도로 마나 감응력이 뛰어나야 가능한 일일까. 아니, 그 하나론 부족할지도 모른다. 마법이란 현상에 있어서, 루비아는 가히 절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대마법사…? 아니, 그렇진 않을 텐데…”

얼음 가시에 발이 묶인 네비로스가 중얼거린다.

그러더니.

“…아직 피지 못한 꽃이라면 주신께서 더욱 좋아하시겠군요! 좋습니다, 좋아요! 여러분들과 점점 더 함께하고 싶어집니다! 이토록 찬란한 재능들이라니…! 주신께 축복을 받아 영광스레 성장하는 모습을 너무나도 보고 싶군요!”

파캉!

정말 한시적인 발묶음이었다.

루비아의 마법이 통한 틈을 타서 뮤가 달려든 찰나, 깨부숴진 얼음 파편을 사방으로 비산시키며 또다시 바람처럼 사라지는 네비로스.

루비아가 주문의 영창을 외며 크게 소리쳤다.

“아이스 필드(Ice Field)!”

쩌저저적!

실패했다면 성공할 때까지.

네비로스가 나타날 위치를 예측하고 마력을 터트리는 루비아를 돌아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스텔라에게 말을 걸었다.

“스텔라. 다른 건 나중에 물을게. 하지만 여기서 탈출하려면 누구보다 네 도움이 가장 필요한 거 알지.”

“……”

“죽일 방법은, 있어?”

스텔라는 네비로스를 아는 눈치였다.

어쩌면, 약점도 알고 있지 않을까.

염력을 펼칠까 말까 하던 유리도 나와 같이 스텔라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마침내 그녀의 입이 열렸다.

“아예 없진 않아.”

* * *

0